덕배님 자니까 썰이나 풀어야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걸 숨긴 기사단,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몬드에 분노한 다이루크가 결국 타락해버리는게 보고싶네용
다이루크 라겐펜더가 바르카를 살해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은 아주 공공연해졌어요...
그 고귀한 귀공자를 아무리 고문해도 정보는 한 조각도 나오질 않더라고요. 당연했어요. 다이루크는 고통에 익숙했으며, 이런 것에 자존심을 굽힐 리가 없었으니까요. 독단적으로 행동했다는 말을 여섯 번쯤 내뱉을 시점에야 그들은 수단을 바꾸기로 했어요.
그래요. 케이아 알베리히. 그 잔인한 기병대장은 상대가 누구든, 바닥까지 털어버리는 데 20분도 채 걸리질 않았어요. 푸른 머리의 기사가 손을 털면서, 그들에게 고갯짓을 했어요. 교회 지하 이층은, 자유의 도시 몬드라는 호칭과는 덜떨어진 곳이거든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불쾌한 피비린내가 짙어졌어요. 돌바닥에는 습기가 차서 미끌거렸고, 마침내 최하층의 녹슨 철창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머리가 지끈댈 지경이었죠. 케이아는 검자루에 손을 떼고, 더 이상 고귀하지 않은 다이루크를 내려다보았어요.

- 다이루크.
다이루크는 표독스럽게 눈을 치떴어요. 피 섞인 침이 바닥에 떨어졌죠. 당장 기절해도 모자랄 판이었는데도 버티는 게 용했어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요— 케이아는 철창에 한 걸음 더 다가갔어요.
- 이러지 않아도 돼.
- …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면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 지금이라도 추방령으로 바꾸자, 도련님…

케이아가 답지 않게 목소리를 떨었어요. 대답하지 않는 제 형제가 답답하기만 했어요. 정말 죽고 싶었으면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죽지 않아도 됐잖아. 속으로 묻고 싶은 질문이 쌓여만 갔어요. 기병대장 신분으로 지하감옥에 내려왔지만…
지금만큼은 다이루크의 케이아로 남고 싶었으니까요. 그들이 재갈을 채워놓은 것도 아닌데, 다이루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사안이 압수된 자리엔 뜯긴 줄만이 남아 있었어요.
- 도련님, 대답 좀 해봐.
다시, 조금 더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철창 너머로 손이 포개졌고요.
케이아라고 다이루크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자상하고 다정한 클립스 어르신, 어르신은 케이아에게도 분명 좋은 사람이었죠. 계부가 죽던 밤은 둘에게도 악몽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걸 감춘 바르카에게 다이루크가 분노하는 건 당연했어요. 하지만…
- 성급하지 않아도 됐잖아.
다이루크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마다—가끔씩이었지만— 케이아는 가슴 한켠이 이상하게 답답했어요. 그가 다이루크를 말렸다면, 싸워서라도 그를 제지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흘 전 밤에 낌새를 알아차려야 했어요. 예민한 케이아가 그걸 그냥 넘긴 건 기이한 일이었어요.
다이루크는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당직을 섰어요. 하얀 냅킨으로 뽀득하니 잔을 닦으면서 핀잔을 주는 건 잊지 않았고요. 그 주 다이루크는 말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거예요. 독한 압생트에 민들레주를 섞으면서도 형제가 술주정뱅이니 하는 독설을 내뱉질 않았다니까요.
다만 4온스짜리 잔을 건네는 손길이 어딘가 어색했다는 게 기억에 남아요.
- 정말 질리게 오는군.
다이루크가 톡 쏘아붙이자 그제서야 케이아는 어깨에 힘을 풀었어요. 그건 어서 마시고 떠나라는 무언의 압박에 가까웠지만요.

- 오늘 비번이라서.
과묵한 바텐더 앞에서는 영 술맛이 안 난다는 농담은 꽤 빛바랜 것이었어요. 다이루크는 가만히 케이아를 내려다보았어요. 파란 머리칼의 남자는 술잔 앞에서만큼은 좋은 미소가 잘 나왔거든요.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이 교활한 늑대에게 제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썩 마음에 안 들었죠.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어요. 먼저 질문하는 건 다이루크 쪽이었거든요. 4온스짜리 잔이 거의 빌 시점에 붉은 입술이 망설였어요.
- 너는…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케이아가 고개를 들었어요. 변함없이 파랗고 예쁜 눈동자로, 오묘하게 웃으면서요. 알코올에 젖어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유독 거슬리게 들렸어요.

- 왜, 도련님?
- 아버지를 사랑했나?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돌았어요. 케이아의 눈이 더 가늘어졌죠.
- 오늘따라 무른데.
- … 대답이나 해.

혀 뒷편에 씁쓸함이 남았어요. 다이루크는 아직 라겐펜더 가에 미련이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케이아가 왼손 검지로 술잔을 기울였죠.

- 왜 묻는 거야?
다이루크가 작게 코웃음쳤어요. 케이아가 분명 죄책감이 없는 뻔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 무언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었을까요. 그의 손길이 바쁘게 싱크대로 향했어요. 노즐을 닦으려고 새 냅킨을 집어 들 즈음에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따라붙었어요.
다이루크는 허리를 폈어요. 케이아는 여전히 턱을 괴고 있었어요. 술잔 옆에 손을 가지런히 놓으면서요.
케이아는 그 대답이 결코 현명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요, 그때의 다이루크에게는 미묘한 만족감이 돌았다는 걸 기억해요. 케이아를 내보내고, 술집을 마저 청소하고, 행주로 깨끗하게 식탁들을 닦고 나자 종탑이 열두 번 울렸어요. 종지기가 불쌍하지요. 내일이면 조종弔鐘을 울려야 할 테니.
그 다음은 다들 아는 대로, 기사단 꼭대기 대단장의 방은 쑥대밭이 되었죠. 다만 붙잡힌 건 다이루크였어요. 그가 아무리 무관의 왕이라고 해도 늙은 매를 이기기에는 쉽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이미 술수가 있었거나요.
다이루크가 붙잡혔다는 소식은 기사단, 아니 몬드를 통째로 뒤집었어요.
가장 정보가 빨랐던 기병대장조차도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죠. 처음에는 그도 이게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다섯 시간이 지나도 그 흔한 전보 한 장이 안 오는 거예요. 초조한 마음이 그를 들쑤셨어요.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케이아의 이름이 그들 사이에서 돌았어요.
항상 흐트러짐 없이 도도한 도련님, 그가 철저하게 반역자가 됐다는 사실이 케이아를 비참하게 했어요. 그 원인에 어느 정도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더. 만약 케이아가 클립스 어르신이 죽지 않게 막았다면? 그때 비밀을 털어놓지 않아서, 다이루크를 말릴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친했다면요?
그리고 그때…
… 다른 대답을 했다면.

- 나한테 말해줬어야지.

철창 너머로 시선이 묘했어요. 다이루크가 믿든 믿지 않든, 케이아는 그를 가로막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강제로 추방령에 사인하도록 할 수 있었고, 그를 빼돌릴 능력도 충분했거든요.
무엇보다, 다이루크가 정말 그에게 공범이 되자고 말했다면… 기꺼이 그랬을 테니까요.

- 나가.

다이루크가 마침내 입을 열었어요. 며칠 사이에 목이 잔뜩 쉬어서 거의 짐승이 으르렁대는 그것과 비슷했고요. 케이아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가까이 붙었죠.
- 지금이라도…
- 너한테는 할 말 없어.

다시 한번 쏘아붙이는 말과는 달리, 다이루크는 케이아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어요. 무언가 숨기는 데는 재주가 없었으니까요.

- 고집부려서 될 일이 아니야!
- 익일 사형수에게 뭘 바라는 거지?
세상에는 끝까지 비밀로 해야할 것들이 있어요. 케이아가 아무리 빌어도, 화내도, 협박을 해도 다이루크는 꼼짝도 하질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 형제를 단두대에 그대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케이아가 두 손 사이에 얼굴을 묻었어요.

- 가족을 세 번이나 잃긴 싫어.
그 말에 다이루크의 고개가 조금 올라갔어요. 그곳에는 한번도 보질 못한 케이아의 표정이 자리잡고 있었죠. 다이루크가 속으로 헛웃음을 머금었어요.
입술이 달싹였지만, 케이아는 차마 냉정해지지 못했어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병대장이라는 직함조차 끔찍했거든요.
사랑한다고 말하면 후회할 것만 같았어요.
- 난 가만히 못 있어.
- 그래서?

다이루크는 끝까지 아픈 말만 골라서 했어요. 이게 다 업보라고 생각하면서 케이아는 자물쇠에 손을 얹었어요. 물론 자물쇠는 몬드의 제일가는 연금술사들이 특별히 만든, 원소저항이 걸려 있는 물건이었지만요. 그가 상처입은 건 손등뿐만이 아니었어요.
- 부질없이 힘 빼지 마.

케이아도 알았어요. 무턱대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걸. 오늘 구해내지 못하면 내일 다이루크가 죽는다는 것까지. 그 초조함이, 그렇게도 교활한 케이아를 안달나게 했죠.
바닥에는 슬픈 얼음의 파편들만 흩어졌어요.
바로 앞에 체념한 형제가 갇혀 있으니 끔찍하게 절망스러웠고요. 속절없이 들리는 지하계단의 군화 소리가 알맹이 없는 면담의 끝을 알렸어요. 케이아는 위에 보고할 내용을 고르면서 다이루크가 한 번만 더 자신을 쳐다봐주길 바랬어요. 한 번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해주기를.
주인 없는 와이너리에 압류 딱지가 붙었어요. 그날 이후로 기사단의 입지는 흔들렸고, 몬드에 한 차례 또 폭풍이 일었죠. 폐쇄된 천사의 몫 앞에서, 케이아는 이따금 생각해요. 그때 자신이 다른 대답을 했다면, 다이루크 라겐펜더는 바보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창백한 얼굴이 다시 생각났어요. 머리를 몸통에 붙이느라 실패 네 바퀴를 써야만 했죠.

- 끝까지 이기적인 건 내가 아니라 도련님이었지.

나란히 핀 등불꽃 앞에서 케이아는 나약해졌어요. 가족을 세 번이나 잃기 싫다 했던 애절함이 철저하게 무시된 걸 원망스러워 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음을…
끝!
다이루크 안 죽이고 앵슷 쓰는법 구합니다 (1/n)
Tmi
- 다이루크가 처형된 건 재의 수요일
- 케이아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처형을 막고 싶었지만 막지 못했음
- 누군가 사형집행인에게 돈을 찔러서 도끼를 더 갈라고 얘기했다네요(그래야 덜 고통스럽게 가니까)
- 다이루크가 받은 건 원래 반역자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처우
- 올때 신의 눈은 압수조치인데 케이아는 숨겨서 가져왔음
- 다이루크가 복수하고자 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지키려고 했던 몬드
- 이 일로 다운 와이너리 주변 지역은 초토화됐는데 그 타격으로 와인 제조에 꽤 큰 손해가 있었을 것
- 이후 케이아는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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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Feb
햄스터케이지에 넣는 청게 케다

케이아는 오늘이 적기라고 생각했어요. 준비해 뒀던 세실리아 꽃도 싱싱했고, 바람도 적당히 부는 맑은 날씨였어요. 훈련 끝나고 다운 와이너리의 신상 앞에서 보자는 편지는 잘 전달됐을 거에요. 고르고 고른 자리가 신상 앞이라니, 케이아도 어쩔 수 없나 봐요.
그야, 첫 고백은 완벽해야 하니까요.
몇 번이고 할 말을 정리하면서, 오후 여섯 시가 가까워질수록 케이아는 잔뜩 긴장했어요. 심장이 막 뛰었어요. 저 멀리서 붉은 머리의 앙증맞은 사내가 달려오는 게 시야에 보일 때면 더더욱요. 아직 덜 익은 풋사과처럼 앳된 얼굴에 미소가 번졌어요.
- 케이아!
다이루크는 달리던 걸음을 늦추면서 숨을 골랐어요. 케이아가 끝나고 보자길래, 무슨 볼일이나 있을까 했던 심정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케이아는 뭐랄까…
이상하게 얼굴이 붉었어요.
- …다이루크.
케이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땀에 젖은 머리를 한번 뒤로 쓸었어요.
Read 17 tweets
16 Feb
응광= 빛의 보석
각청= 맑음을 새기다
중운= 무거운 구름
행추= 지나가는 가을
종려= 때가 되어 떠나다
향릉= 향기로운 수초
소= 도깨비
감우= 달콤한 비
북두= 북두칠성
신염= 화끈한 불꽃
호두= 호두
치치= 일곱 일곱
백출= 백색 의술
천형산= 하늘의 저울
적화주= 억새꽃 물가
망서 객잔= 소원을 펼치다
귀리 평원= 귀종과 종려의 이별
경책 산장= 가벼운 댓가지
절운간= 구름을 가르다
고운각= 외로운 구름
리월= 유리달
신월헌= 새로운 달의 누각
왕생당= 극락왕생
응광은 정확히 해석하면 엉긴 빛이 더 맞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빛이 엉기면 보석이 되니까…
미호요가 조금 더 번역에 친절해졌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지역 이름을 하나하나 뜯어봐야 이유를 알 수 있으니...(왜 적화주에 억새가 많은지, 왜 경책 산장에만 대나무가 나는지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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