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결과는 까였다. 그것도 대차게. 중간고사가 끝나고 과제 폭탄이 떨어지기 전. 날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그 날 난 이막그한테 고백했다. 거창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언젠간 전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오늘 실행할 마음도 없었다.
잠깐의 변명을 해보자면 오랜만에 마신 생맥 한잔과 집 가는 길에 굳이 데려다 준다고 하는 이막그의 행동 정도? 이건 오늘만의 일이고 사실 이막그의 행동은 오해를 사기 딱 좋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생각은 대차게 까인 오늘에서도 변함이 없다.
쪽팔리고 구질구질한 이 고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첫 만남에 있다. 아는 형의 소개로 친해진 이막의 첫 인상은 단순히 '잘생겼다'였다. 그 후에 친해지면서 원체 가지고 있는 베이스가 다정과 매너인 사실을 알았고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이게 나한테도 해당되는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게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될 줄도 몰랐다. 성격 좋은 이막그 곁에는 늘 끊이지 않고 여자친구가 있었다. 알게 된 지 3년 쯤 됐는데 연애 공백의 기간이 3개월을 채 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지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 그때는 친한 동생이라는 명분하에 말이다. 그 거지 같은 동생이라는 단어 동생이라는 단어로 남들에게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 깔끔히 접었어야 했다. 정확히는 이막그를 향한 내 마음을 말이다.
천성이 다정한 사람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은 꽤나 힘들었다. 이렇게 고백할 마음은 없었지만 이미 저질러버렸으니 한마디 하자면 대화하면서 사람 뚫어져라 쳐다보는거, 자꾸 귀엽다고 말하는 거 하나하나가 본인은 의식하지 않고 그냥 한 행동일지 몰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꽤나 당황스러운 말이라는 거 이막그는 멍청해서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다음 문장은 듣지도 않고 뒤돌아 걸어왔다. 따라오지 않는 이막그에 매번 눈치 없다고 한 소리 들었으면서 왜 이럴 땐 눈치도 빠른지 그것조차 오늘은 거지같았다.
갑작스런 고백에 당황도 했겠지만 그렇게 거절을 바로하냐 이막그 이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거 보니 아직 나도 깔끔히 끝내기엔 글렀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미 멋도 없고 무드없이 고백한 마당에 다시 달려가서 붙잡고 그 땐 왜 그렇게 행동했냐고 하나하나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이막그 한테서 나오는 말이 또 미안해일까봐 내가 고백을 한 사실이 왜 형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게 하는지 그 뜻을 알고 싶지 않아서 다시 뒤 돌아가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나 멍청하다. 아마 나쟤믽이나 황읹줁이 보면 답지 않다고 한 소리 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 한번이라도 더 들으면 애써 부정하고 있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와 좆같음을 알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꾸역꾸역 앞으로 걸어간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골목에는 개미 한 마리 없는게 편히 울라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괜히 손이 노는 게 싫어서 의미 없이 쌓인 카톡만 보고 있었는데 흐려진 시야에 누가 보면 평생 놀림감으로 나중에 술 먹으면 나오는 안줏거리로 딱 이었다. 타이틀로는 '이동엯 3년 짝사랑에 거지같은 고백으로 까이다?'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한 두방울을 기점으로 들어가는 길에 질질 짰다. 누가 보면 사연이 깊은 사람인 줄 알 것 같은 얼굴로 말이다. 고작 거지같이 고백해서 까여 놓고 완전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뭐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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