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냐냔 Profile picture
Sep 8, 2021 441 tweets >60 min read Read on X
박문대가 죽은지 1년이 지났다.

터무니없이 시스템 오류로 박문대의 몸에서 튕겨나온지 체감 1시간. 시꺼먼 암흑 속에서 깨어났을 때는 처음보는 천장이었고, 거울로 보는 내 모습은 잠깐 잊고있었던 내 원래의... 류건우의 얼굴이었다.
열어본 캘린더는 내가 의식이 없을 때부터 딱 1년이 지난 년도와 날짜. 검색창에 "박문대"이름을 검색했더니 맨 처음 뜬 인물 프로필 사진과 함께 사망 날짜가 적혀있더라. 20XX.XX.XX~ 20XX.XX.XX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씨발!!,
온점이 찍힌 거다. "박문대"의 인생에. 박문대 이름 옆에 좆같이 붙어있는 국화 한송이 그림을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치밀어오는 감정에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처박힌 휴대폰 액정은 산산이 부숴져서 시꺼먼 검은 화면만 떴다.
진정하자. 돌아갈 방법이, ...돌아가긴 뭘 돌아가 이미 일년이 지났는데 씨발. 그럼... 당장 일주일 뒤에 있던 콘서트는? 다른 애들은, ...
선아현, 큰세진, 이세진, 류청우, 차유진, 김래빈 한명씩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침몰하는 얼굴들을 애써 지워내며 망가진 휴대폰을 주웠다.
...엄두가 안 난다. 어떻게 됐는지 알아볼 엄두가. 그때, 방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한참 전에 묻어둬야했던, 철이 들기도 전에 떠나 보냈었던... 어머니였다.
시스템 오류를 보상이라도 해주듯 류건우로 살아가는 세상은 완벽했다.
살아계시는 부모님, 넉넉한 재정, 그렇게 떨어지던 공시도 일주일 전에 붙은 상태로.
죽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 그것도 내 가족이 살아 돌아온 그 기분을 느낀다는 건, 내 예상보다도 훨씬 벅차고, 기쁘고, 행복하고 서러운.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 그래서 가슴 한 켠에 허전하게 비어버린 공간을 무시했다. 따뜻하고 아늑한 류건우의 생활에 녹아들기를 택했다.
이대로 나쁘지 않다고. 모두 없었던 셈 치고 지나가자고. 테스타 맴버들은 강하니까 내가 없더라도 잘 지내겠지. 지나가면서 광고에 걸려진 웃는 얼굴들을 보며 죄책감을 덜어내고 더 이상 상태창을 부르지도 않았다.
그렇게 외면했던 너희들을 다시 마주한 것도 우연한 계기였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 1주일 전, (기간은 최대 1년으로 일하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고 들음 대학 다니면 졸업할 때까지) 공시 준비를 하느라 잠깐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온 문자 내용에는 축하의 말로 시작해서
한 번 보자는, 섭섭하다는 끝맺음에 그날따라 변덕적으로 바로 약속을 잡은 것. 이제는 눌러쓸 필요도 없는 모자를 쓰고 들어간 술집에서는 손을 흔드는 김도현이 보였다. 그리고 회식이라도 하는지 다닥다닥 붙인 테이블에 앉은 익숙한 실루엣은...

'저 새끼가 왜 저기있어.'

청려였다.
"야~ 류건우!! 너 공무원 준비한다고 고생 좀 하더니 이제 팔자피겠다!, 하하"

내 이름 부르지 마. 공무원 준비했다고 말하지도 마, 이 새끼야...

분명 어느 때인가 술에 꼴아서 신재현한테 말했던 적이 있었지.

-후배님, 이름 가르쳐주세요.
-알면서 왜 물어. 박문대.
-그거 말고. 진짜 이름.
-....류건우.

...젠장.. 그때의 나 자신을 패고 싶다. 자기 혼자 신나서 떠드는 김도현을 뒤로하고 슬쩍 옆테이블로 곁눈질을 했다.
...들었나?
이쪽을 바라보는 신재현이랑 눈이 마주쳤다. 곧장 고개를 돌려 맞은 편에 앉은 김도현을 바라봤다. 예리한 새끼. 얽히기 싫은데.

"류건우, 야 임마 듣고 있어? ...아, 옆테이블? 저기 무슨 아이돌 그룹 같더라. 진짜 잘생겼어."
목소리를 낮춰서 속닥이는 꼴이... 더 시선을 끌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더라. 잘생겼네."

대충 끄덕여주며 김도현 앞의 빈잔을 채워주자 좋다고 히히덕거리는 걸 보다가, 문득 그림자로 어두워진 테이블에 고개를 들었다. 나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지 씨발.
"류건우씨? 저희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신재현이 말을 걸어왔다. 분명히 눈치 빠른 새끼니까 다 알아차렸겠지.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놀란 눈빛으로 저 사람 아냐고 물어오는 김도현을 무시하며 신재현을 바라봤다.
"처음 뵙는데요. 볼일 있으신가요?"
애매하게 대답하는 것 보다 우선은 잡아떼고 본다.

"이상하네. 분명 알 텐데."

-"글쎄. ...티비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요."

붙여놓은 옆자리 테이블을 보자, 이쪽으로 관심이 쏠렸는지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진다.
신재현은 뜬금없이 김도현을 보며 말을 걸었다.

"잠깐 건우씨랑 이야기해도 될까요?"

당황한 김도현은 상대방이 유명인이라는 사실에 동경심이라도 샘솟았는지 멍청히 고개를 끄덕이며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네네, 말씀들 나누고 오세요. 건우야 편하게 이야기하다 와."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 거절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나자, 신재현이 웃는다. 갑자기 짜증이 솟아 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밖으로 나가지."
신재현은 별말 없이 순순히 밖으로 따라 나왔고 나는 최대한 어두운 골목 구석으로 들어가 신재현을 가리고 섰다.
겨울밤 시린 색깔들이, 내뱉는 숨에 흩어지는 입김 탓에 유독 더 춥게 느껴졌다.

"용건이 뭐야. 박문대는 죽었어."
신재현은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알다시피 브이틱에 메인 보컬 자리가 비어있거든요."

류건우가 박문대랑 노래 실력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서 날 불러냈나? 메인보컬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 시기에 들이기에는 애매할 텐데.
조용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신재현이 입을 열었다.

"농담이고요. 여태 후배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어요. 이렇게 만나니, 꽤 반가워서. 잘 지내는 것 같네요."

쓸데없이 너무 많은 생각을 했군.

-"어, 그래. 너도 잘 지내냐?"
"후배님이 없어서 그닥. 꽤 슬펐는데."

퍽이나 그랬겠다.

"같은 맴버들 소식은 궁금하지 않아요?"

-"....잘 지내겠지."

선아현도, 큰세진도, 이세진도 류청우도 차유진도 김래빈도 모두 잘 지내겠지. 그러니 구태여 알 필요가 없다.
"...후배님답지 않네요. 외면하고 잊으려고, 안달난 사람같이. 예민하게 굴고 있어요."

... 맞는 말이다. 허를 찔렀다. 나는... 그냥 눈을 돌리고 싶은 거다. 박문대의 죽음으로부터, 박문대와 관련된 모든 걸. 지금 삶이 만족스럽다는 이유로. 지금 내 삶 어디에도 불행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이 삶에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니까. 내가 없어진 테스타의 고통은, 흔들림은 알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마주한다면

그립고 아쉬워질 것 같아서.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신재현. 나는 류건우의 삶에 만족해. 박문대였던 나는 죽었어. 너도 네 삶을 살아. 신경쓰지말고."
나도 내 삶을 살아갈 테니까.

이제와서 뭘 어쩌겠다고. 류건우로서 살아가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고민은 해봐요. 메인 보컬 자리, 반쯤은 진심이니까."

류건우가 부르는 노래가 썩 나쁘지는 않지만 데뷔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

"박문대랑은 다르게 몸이 바뀌어서. 할 생각도 없고."
"한 번만 불러주면 안돼요? 오랜만에 듣고싶은데."

신재현은 은근히 끈질긴 타입이다. 리셋증후군이 있으면 말 다 했지. 노래 부르기 전까지 날 놓아줄 생각은 없어보이는데. 불러서 기대를 깨뜨리는 게 더 깔끔하겠네. 나는 곡을 고르다가, 결국은 맴도는 익숙한 가사를 내뱉었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파란 꿈을 꿔"

단 한 소절이지만 내가 듣기에도 잘 부른 노래였다. 그래서 이상했다. ...그래, 꼭 박문대가 부르는 것 같이 실력이 똑같아. 좆됐네.
이건... 시스템이 있다는 소리잖아.

신재현이 나오지 않자
따라 가게를 나온 브이틱 매니저가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눈을 돌렸다.

"재현아, 여기서 뭐해."

신재현은 그런 매니저를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듯 눈짓하더니 내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봐요. 내가 이야기한 건 생각해보고요. 내 전화번호 알고 있죠? 연락줘요."
----

답지 않게 넋이 나간 것 같던 류건우는 대충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술집으로 들어갔다.

류건우가 들어간 후, 신재현의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매니저가 암흑 너머를 바라봤고.
"아, ■■씨도 있었네요. 건물 그림자 때문에 안보였어요."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온 한 인형을 쳐다봤다.

-"...이게 무슨 소리에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매니저 눈을 굴리다가,

"말씀들 나누세요. 재현아 이야기하고 들어와."

재빠르게 술집 안으로 들어갔고.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이 신재현을 바라봤다.

"하하, 어디까지 들었어요?"
-"무슨 소리냐고. 저 사람이 박문대야?"

분노와 울음기가 뒤섞인 탁한 목소리가 간절하게 신재현에게 치덕치덕 들러붙었다.

그다지 놀란 것 같지 않은 신재현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다 들었나봐요."
----

거슬렸다. 신재현을 만난 그 이후부터 내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다가 이제는 박문대의 목소리가 덧씌워져 같은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

..,시스템이 사라졌어도 스탯은 박문대와 그대로일 수 있지. 오류로 튕겨져 나갔으니까.
그런데, 이건 그때의... 악몽과 너무 비슷했다. 설마, 이 모든 게 꿈이고 박문대는 죽지 않았고 혼수상태라면? 그렇다면 시간을 끌지 말고 바로 돌아가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하는 건, ...돌아가면? 돌아가면 엄마 아빠는?
...다시는 못 볼 것이다. 씨발 어쩌란거야.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 좆같이 왜. 아파오는 머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의식하지 않아도 파리하게 질린 손끝이 볼품없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울컥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 때문에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억지로 쥐어짜내서야 겨우 쉰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 확인만 하는 거다. 확인만. 아닐 수도 있잖아. 섣불리 짐작하지 말자.

"...상...태창..."

띠링
섬찟한 소리가 들리자, 감았던 눈을 떴다. 눈꺼풀에 힘을 준 탓에 눈앞이 시꺼맸다가 서서히 밝아졌다. 눈 앞에 보이는 상태창은 평소랑 달랐다.

...로딩중....

...류건우 패치 완료

오류 보상 :
[🎉enjoy your happy life🎉]
> 받기 > 백업파일 불러오기
선택 강제까지 남은 시간 : 40일
순식간에 맥이 풀렸다. 백업파일? ...스탯 백업은 아닌 것 같고. 박문대가 살아있을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오류가 일어나기 전으로 말이다. 우선은... 선택 강제까지 시간이 남았다. 피곤한 눈가를 쓸며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천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이 세계가 내 세계였다면, 그러니까...

새로 장만했던 휴대폰을 들고는 주저하다가 박문대 아주사를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에 뜨는 박문대 심장마비, 추모, 테스타까지 싸그리 무시한 후에 위튜브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영상은 아주사의 박문대 분량을 중간중간 짜집어 올린 클립이었다.
습관적으로 스크린을 내리고 댓글창을 내려보자, 불과 몇 시간 전에도 띄엄띄엄 댓글이 올라왔더라.
ㅡ문대야, 천국에서 잘 지내? 너 그렇게 말도 없이 갑자기 가서, 나 많이 울고 힘들었어. 벌써 네가 떠난지 일년이 지났더라. ...자세히 보기

...손끝이 장문의 댓글에서 멈췄다.
난 아직도 문대, 네가 살아있을 것 같아.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널 잃은 계절이 또 다시 돌아오니까, 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나 이제 그만 힘들고 싶어. 너무 아프고 지쳐. 그런데 널 잊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널 좋아한 1분 1초가 행복했거든.
무대에서 네가 벅찬 표정으로 울 때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 거기서도 그렇게 행복해? 난 아파도, 넌 그랬으면 좋겠어. 이제 널 놓아줄게. 사랑해 문대야.

스크롤을 내렸더니, 박문대에게 쓴 댓글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눈앞이 흐려져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가 됐을 때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먹먹한 기분을 억지로 떨쳐냈다.
...아주사 박문대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과 류건우를 기억하는 부모님이 있다는 건, 류건우가 박문대로 변한 시점에서부터 박문대의 죽음까지의 공백이 남는다.

즉, 류건우가 동시간에 2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고 그 이후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성인까지의 류건우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살아계시는 부모님과의 과거는 내 기억에는 없어.'

여태 지낸 1년동안 부모님은 내 과거에 대해 언급도 없었고.
왜 이걸 진작 눈치채지 못했지?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뒤틀려버린 과거에도 지금 당장 행복한 현실에 겨워 사실이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박문대는, 나는 죽어서 아픔만 남겨두고 혼자 행복에 겨워 지낸 것이다.
...그래도 이걸로는 류건우가 동시간에 존재했다는 걸 확증하기는 부족하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텐데.

때마침 들리는 도어락 소리에 현관으로 나갔다.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어휴, 밖에 비가 얼마나 오는지. 우산 안 가져갔으면 쫄딱 젖었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아빠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건네주며 우산을 접었다. 현관 바닥이 빗물과 진흙으로 얼룩졌다.

"이크, 네 엄마가 알면 혼내겠네."
나는 군말없이 걸레를 가져와 닦으며 물었다. 조금 쉰 목소리가 나왔다.

-"재작년에 저 공시준비 하고 있었잖아요. 기억나세요?"

걸레질에 흙의 거친 알갱이가 현관 바닥을 사각사각 긁어댔다. 한참을 닦다가 대답없이 이어지는 침묵에 섬뜩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느릿이 올렸다.

-"아빠?"
식은땀 때문인지, 손안에 든 걸레가 유독 축축한 걸 느끼며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한박자 뒤늦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어, 그랬었지. 그랬었던 것 같아. 네가 작년 이때쯤에 붙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슬슬 첫출근이겠네."
역시. 뭔가 이상하다. 말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저 표정. 곧 너털웃음을 흘리며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아빠는 말을 이었다.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모르겠네. 건우 너에 대한 건, 한참 생각해도 안개낀 것처럼 생각이 잘 안 나. 우리 아들 섭섭하게. 아빠가 너무한다."
...

"...네. 그러게요. 섭섭하게."

불안한 예감이 든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진실을 들추려는 의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꼭, 맞지 않는 퍼즐 조각 하나를 억지로 구겨넣은 것 같이. 이질감이 들었다.
새하얗게 표백된 머릿속에서 문득 생각이 지나났다. 아, 당장 다음주에 출근이지. 휴대폰을 켜서 캘린더를 누르려다가, 문자어플을 켰다. 충동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전화번호를 눌렀다.

ㅡ나야. 류건우.
ㅡ생각해봤어요?

내가 미쳤다고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브이틱에 끼겠냐.

ㅡ꿈도 꾸지마. 그냥 얘들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한 거니까.
ㅡㅠㅅㅠ
이 안어울리는 이모티콘은 뭐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눌러 참고는 신청려를 재촉했다.
ㅡ대답은.
ㅡ글쎄요. 저도 테스타랑 썩 친한 건 아니라서.

사람 놀리는데 도가 텄네. 그래 테스타랑 접점이 없기야 하겠지. 테스타에서 유일하게 친분이 있었던 박문대가 죽으면서 연결고리가 끊겼을 텐데. 허탈함에 잠겨 있다가 읽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능구렁이 같은 새끼를 믿은 잘못이 크다.

'신청려가 오함마로 내 머리를 내리 찍으려 했던 사실을 가끔...아니 자주 까먹으려 하는 내 안일함에 반성하자.'

박문대가 죽고나서는 테스타에 관련된 글이 나오면 일부러라도 뒤로 가기를 눌렀던터라
근 2년간 테스타에 대한 소식은 인터넷이랑 척진 사람마냥 모르고있다. 실제로 휴대폰을 키면 쏟아져 나오는 게 테스타에 대한 소식들이라, 여태 잘 안 들여다보기는 했지. 박문대가 없어도 잘 살아가는 테스타를 보면서 괜히 안심하고는 했다.
강한 애들이니까. 같은 맴버를 잃어도 잘 견뎌냈겠지.
역시나 나는 위튜브에서 어그로를 가장 덜 끄는 것 같은 썸네일을 클릭했다. -테스타 위기부터 근황-

-안녕하세요 시사 이슈 달곰돌이입니다. 오늘은 그룹해체 위기부터 아픔을 극복하고 아이돌의 최정상에 오른 그룹 테스타의 역사를
알아볼 건데요, 벌써 연예계의 유망주 박문대군을 떠나보낸지 2년이 지났습니다. 영상에 앞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불미스러운 사건 직후, 테스타의 모든 일정은 취소되고 멤버들 또한 최소 약 3개월간의 활동중지 의사를 표명했었습니다. 테스타의 팬들 또한 슬픔에 잠기고
사회적으로 젊은 유망주의 죽음에 사회 분위기 침체까지 이어졌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힘들어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사람은 아마 가까이 지낸 맴버들이겠지요.

사회적 분위기 침체? 분명 박문대의 팬들의 스팩트럼이 다양한 편이긴 했으나...위튜브라면 이 정도 과장은 다 하지.
저도 당시에 큰 충격을 받았었는데요, 당시 실시간 생중계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던 테스타의 리더 류청우와 큰세진은 스탭에게 소식을 전달받고 다급하게 뛰쳐나가는 장면은 그때의 극박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자료 영상에서는 스탭에게 내 비고를 귓속말로 전해듣고 큰세진은 울 것 처럼, 류청우는 절망에 가까운 표정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이 생생하게 잡혔다. 곧장 의자를 박차고 한 마디 인삿말도 없이 급하게 스튜디오를 이탈하는 장면에서는 언제나 침착하던 테스타의 리더 류청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뭘 이런 영상을 끼워넣었지? 제정신인가. 썸네일을 자극적이지 않게 뽑아도 결국은 위튜브 조회수 빨아먹으려는 건 똑같다 이건가. 나는 간신히 이전 버튼을 클릭하려다가 곧장 이어지는 짧은 영상에 넋이 나갔다.
-"...아현아!! 선아현!! 어디가?? 어디가는 거야??"

일반인이 카메라로 찍은 듯 흔들리는 영상에서는 선아현이 집 앞 편의점이라도 나왔던건지 간단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채 뛰고 있었다. 말이 안들리는 건지 오르지 앞만 보고. 내 휴대폰 스피커에서 울음기 섞인 거친 숨소리가 터질 듯 울렸다.
가는 도중 몇 번 넘어질 뻔 하다가 결국에는 슬리퍼를 떨치듯 벗어내고 바람에 쓴 모자가 벗겨져도 울면서 뛰는, 선아현의... 절박한 얼굴이, ...흔들리는 초점에도 뚜렷이 내 눈에 박혀왔다.
선아현이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자 영상의 주인은 멀어지는 택시를 초점으로 잡다가 뛴 도중 벗겨진 슬리퍼부터 선아현이 뛰었던 길 그대로 점점이 이어지는 혈흔을 줌인했다.

"헐 무슨 일이지? 하아, ...무슨 일이야? 선아현 발에 피나도 막 달리던데... 괜찮나?"
가증스럽도록 뻔뻔한 목소리로, 애가 울면서 뛰는 걸 다 찍어놓고, 사이코패스 새끼가.
개같은 영상은 그게 끝이었다. 다행히 다른 애들은 연습실에 있어서 찍히지 않았나보다. 이어지는 달곰새끼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멍한 머리에 의식이 지 혼자 부유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박문대의 죽음으로 그룹해체 위기까지 왔었지만 다들 상처를 잘 봉합하고 힘겹게나마 그룹 활동을 이어갔다는 내용이었다. 박문대가 죽은지 1년, 수록된 앨범 중 하나는 연인과 헤어진 내용이었지만 해석해보면 박문대를 기리는 곡이었고
매번 콘서트를 진행할 때마다 그 곡을 빼놓지 않고 부른다고 하더라.
배세진은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고, 이세진은 미약하게 드라마나 영화의 작은 배역에 출연하고, 류청우는 토크쇼와 예능, 김래빈은 작곡가, 선아현과 차유진은 본업에 집중. 데뷔한지 연차가 좀 쌓이니까
슬슬 개인 활동들도 잘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룹활동의 비중이 80프로 였지만. 나는 영상이 끝나자마자 달곰새끼에게 신고를 때리고는 이끌리듯 영상에 나온 노래 이름을 검색했다. Daydream. 올라오는 영상들 중 콘서트 영상이 끼여있길래 터치했다.
시작은 암흑과 같은 어둠에서 검은 시스루 끈으로 눈을 가린 맴버들이 중앙에 누운 선아현을 감싸듯 둥글게 눕고, 일정하게 울리던 조용한 비트가 뚝 끊기면서 위로 팔을 뻗은 선아현의 노랫소리로 시작됐다.
[난 오늘도 꿈을 꿔
네가 없는 악몽을 오늘도, 내일도
알아, 단지 이건 just dream]

선아현이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시늉을 했다. 허공을 헛손질한 손아귀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면서 잔잔한 비트가 깔리는 동시에,
선아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 또 다시 곧장 암전. 어둠 속에서 서로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었던 맴버들이 일어나 대형을 잡자마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이어지는 무대는 연인과의 헤어진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꿈으로 도피를 하다가, 행복한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테스타 맴버들이 마지막에는 하나 둘 시스루 끈을 풀어내며 연인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끝났다.
긴 공백기 후 첫 콘서트 영상인데 무대에서 맴버들 모두가 슬픔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얼굴로 울고 있었다. 특히나 차유진과 김래빈은 마이크를 떼고 소리를 내며 어린 아이처럼 울고 있었고 시스루 안대를 차마 벗지 못 한 큰세진은 쭈그려 앉아 혼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큰세진의 등을 두드려주는 배세진과 선아현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한참 무대에서 흐느끼는 소리만이 스피커를 타고 울릴 때,
울지마!! 아냐 울어도 돼!! 괜찮아!! 얘들아 사랑해!! 라고 힘차게 외치는 러뷰어들의 목소리도 울음기가 묻어있었고. 행복해야 할 콘서트에서는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간신히 거친 호흡을 가다듬은 류청우가 애써 미약한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말을 하려 했지만,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벌어졌다가 이내 꾹 다물려 일그러지는, ...그 입매가 안쓰러워 보였다. 결국 류청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마이크를 쥔 소매로 눈을 가리면서 영상이 끝났다.
...문득 망각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많아봤자 고작 20대 중후반, 적으면 스물 초반. 아직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겪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의 한참 어린 애들이었다는 걸. 아이돌이라는 성숙해야만 하는 직업을 완벽하게 해내는 걸 옆에서 보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나잇대 애들이 겪을 필요도 없었던 일을, 비록 자의는 아니었지만 박문대의 죽음으로 겪게 만든 것이다. 내가 미션을 실패해서 죽었다고 가정해도 절대 사실대로 털어놓지는 않았겠지. 잔뜩 상처받아 울고 있는 맴버들 얼굴이 희미한 잔상으로 눈앞에 떠올렸다
...너희는 어쩐지 대소롭지 않게 이겨낼 줄 알았다. 어떤 일에도 곧잘 털어나 일어났으니까.

난 어쩌면 같은 맴버들을 대중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옭아매었을지도 모르지. 박문대의 죽음은 신경쓰지 말고 멀쩡히 잘 살라고. 이기적이게도 행복한 내 삶을 살아가기 바빴다.
멍청하게. 파랗게 질린 손끝으로 휴대폰을 끄려던 찰나,

징-

메세지가 왔다. 켜진 화면에는 신청려라는 이름으로 팝업이 하나 떠 있었다
-아, 테스타 매니저 구한다고는 들었어요.

...안 친하다며. 그쪽 사정은 어떻게 아는건데

징-

-테스타는 몰라도 그쪽 관리팀 몇몇이랑은 친분이 있거든요^^

...살다살다 첫출근 전에 사직서를 내는 날도 오네.

어차피 내가 이루지도 않은 합격,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저 좀 꽂아줄 수 있어요?

-맨입으로?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징글징글한 새끼다.

-뭘 원하는데.

-약속 하나 해요. 이번에는 죽지 않겠다고. 위급하면 나한테 기대겠다고.

-하나라며.
(...)
-알겠어.
적당히 예의만 차리는 보여주기식 면접은 순조로웠다. 회귀전 류건우랑 외적으로 변한 것도 없어보이는데 스탯빨인지 뭔지 자꾸 연습생 할 생각 없냐고 귀찮게 물어오는 대답에 춤도, 노래도 못한다고 무대공포증이라 올라가면 토한다 했더니 더 이상 헛된 영업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합격된 공시에는 취소 서류를 넣고, 극구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이 나이에 무릎도 꿇어보고 설득하고, 떼까지 써가며 강행했다. ...그냥. 맴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답지 않게 밀려온 그리움이 앞서서. 내 것도 아닌 자리보다 비슷한 직종이 편하겠지. 딱 한 달만 임시로 들어가는 매니저 말이다.
해보고 안되면 집에 돈도 많겠다 사진 작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우선 나는 백업하는 선택지를 완전히 뒤로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돌아온 부모님을 놓치기는 싫어서.
면접을 보고와서 저녁을 먹고 있자니 당장 내일부터 인수인계 들어간다고 출근할 수 있겠냐고 연락이 들어왔다.

내일이 출근이니 오늘은 일찍 자야겠군.

오랜만에 6명한테 시달릴 생각을 하니 골이 아파왔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기 전, 모자를 눌러쓰고 나갔다. 박문대의 그 티벳표정. 짓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은 맴버의 표정을 똑같이 짓는 매니저가 있으면 나라도 뭐하는 새끼인지 반감이 들 테니까. 직종도 직종인지라 모자를 써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게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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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전담 실장이 숙소에 들어오며 옹기종기 쇼파에 붙어앉은 6명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곧 새 매니저님 오실거야. 다들 말 잘 듣고."

"Wow, 우리 잘 지낼 수 있어요!"

"차유진 너 새로 오신 매니저 형 괴롭히지나 마!!"

"하하...얘들아 진정 좀 하고."
"조,좋으신 분이면 좋겠다."

"래빈, when!? 내가 언제?"

투탁거리는 막내들에 괜히 맏형의 위신을 살려볼까 배세진이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지만,

"크,크흠 얘들아 청우 말처럼 조용히..."

"너 맨날 매니저 형 간식 다 뺏어먹었었잖아! 형님이 착해서 그냥 주신거라고!"

늘 그렇듯 씹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어지는 시끄러운 거실의 소음이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모두들 새로온 매니저가 궁금한지 너도나도 조용히 복도를 들여다봤고.

시선 속에서 익숙한 스태프와 함께 들어오는 장신의 남자는
테스타의 새로운 그룹 맴버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비율이었다. 성큼성큼 걸어서는 거실에 서는 순간,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감탄만이 흘렀다.

"오...."
"Wow...."
"ㅇ,우와..."

눌러쓴 모자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날렵한 하관과 잘빠진 입술을 보자면,

"Perfect! 우리 매니저 형 잘생겼어요!"
...

다른 맴버들은 통탄스럽게도 지극히 1차원적인 차유진의 말에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려가 김래빈만이 발끈하고 말했다.

"차유진 바보야! 초면에 실례잖아! 자,잘생긴 건 맞지만."

"...안녕하세요. 테스타 새 매니저를 당담하게 된 류건우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새로 온 매니저는 영양가 없는 말을 씹어 넘기는 솜씨가 탁월했다. 마지막으로 꾸벅거리며 인사까지. 군더더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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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테스타는 여전했다. 설마 팀 분위기가 파탄났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기우였다. 현관문 밖에서부터 들리는 목소리들이, 박문대가 빠져도 붕 뜨는 느낌없이. 여전한 녀석들이었다.

'2년이나 지났으면 무뎌질 때도 됐지.'
"얘들아, 너희보다 나이 많으시니까, 형이라고 부르고."

"okay, 잘부탁해요 형!"
"잘부탁드립니다 건우형!!"

활기차게 대답하는 차유진과 김래빈을 이어 배세진과는 가벼운 눈인사를, 선아현과 류청우와는 짧게 인사했다.

"저,저도..."
"잘 지내봐요."
맨 마지막에서야 예전과 똑같이 웃는 얼굴로 큰세진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요. 건우형."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별 거리낌없이 큰세진을 손을 잡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큰세진은 박문대의 죽음으로 타격이 컸을 것 같은데.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내 걱정으로 울었더랬던. 배세진의 얼굴을 떠올리며 손을 놓으려던 찰나, 손아귀에 힘을 준 배세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가 건우형 나이 맞춰볼까요?... 지금은... 서른...그 쯤, ...서른 하나."
"딱 서른 하나겠다. 맞죠?"

배세진이 정해진 답을 읊듯 자신만만 표정으로 씩 웃었다.

"와, 맞아. 세진아 어떻게 알았어?"

내 나이를 알고 있던 스탭은 감탄사를 내며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큰세진은 속 좋게 웃었다.

"직감이요. 운이 좋았죠."

...이 새끼가 신기가 있었던가?
"Wow, 세진형 대단해요. 근데 직감 뭐예요? 감 맛있어요."

"차유진 바보야! 그거 아냐!"

"그,그 감은 먹는 감. 지,직감은 그러니까 a gut feeling, 그런 뜻이야."

직감이던 뭐던 손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붙잡힌 손이 슬슬 저려온다.

"Okay 나 이해했어요. 직감 뭔지 알아요."
다들 차유진에 관심이 쏠린 사이, 큰세진을 바라보던 시선을 맞잡은 손으로 내렸다.

-"손 좀..."

내가 말을 꺼내자, 큰세진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더니 놓아줬다.

"아이고, 미안해요. 너무 반가워서. 아팠어요?"

이 새끼는 눈도 멀쩡하게 달려있으면서 내 손등에 죽죽 찍힌 지 손바닥 자국도
안 보이나 보다.

내가 아니꼬운가?

그래도 그다지 별건 아니라 내색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곧 라디오 스케줄 있었죠? ...지금 내려가면 딱 맞겠네요."
전부터... 얜 또 왜 이래.

"그럼 매니저 하기 전에는 뭐했어요?"

큰세진이 붙임성이 좋았던 건 알고 있었지만, 늘 뒷자리를 고집하던 놈이 차에 타자마자 조수석에 앉을 줄은 몰랐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까부터 쉴새 없이 나에 대한 걸 물어오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게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불편하다.

"건우형, 듣고 있어요?"

-"...아, 네. ...뭐라고 하셨죠?"

"저희 팀이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매니저 하기 전에는 뭐 했는지... 그냥 궁금해서요. 아, 질문이 좀 그런가?"
웃는 낯이 어쩐지 미묘했다. 은연 중에 깔린 불쾌함. 적의. 쏟아지는 호의와 호의를 가장한 적의를 솎아내는 건 익숙한 일이라. 다만, 표정관리에 능숙한 큰세진이 저렇게 티를 낸다는게 걸렸다. 그것도 같이 일하는 비지니스 관계에서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은 없잖아.

...

신청려한테 뭘 들었나?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신청려가 큰세진한테 굳이 내 이야기를 전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럴 친분조차 없었다.

툭...툭, ...툭.

운전대를 손끝으로 치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일로 좀 길게 쉬고 있었어요."
그것도 아니면, 박문대가 죽고나서 성격이 더 꼬였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만만한 나한테 이러는 건가? 어디서 굴러 먹었는지 모를, 되도 않은 신입을 꽂았다고.

...어느쪽이든 개소리 같지만 차라리 그 편이 더 사실성이 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박문대랑 류건우가 동일 인물이었다고 말한다면 별 미친놈 소리를 들을 테니까.

"아~ 그러셨구나. 괜한 걸 물었나, 하하. 벌써 다 왔네요?"

마침 도착한 방송국에 차를 대고도, 또 나와서도 큰세진은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큰세진이 방송에 들어갔을 때, 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잠깐 복도로 나왔다.

ㅡ야
ㅡ너 큰세진한테 뭐 말했냐?

보낸지 1분도 안된 것 같은데 알림이 울렸다.

ㅡ아뇨^^
ㅡ매니저 일은 어때요?

이 새끼는 계속 폰만 들여다보나?
ㅡ할만 해.
ㅡ고맙다.

빚을 지긴 싫었지만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ㅡ힘들면 언제든 연락해요. 보컬자리 남아있으니까. 잘해줄게요.

...

휴대폰을 더 들여다보고 있으면 쌍욕을 박을 것 같아 그냥 화면을 껐다.
별 탈 없이 라디오를 마친 큰세진을 연습실로 보내고 회사에서 전달받은 배세진의 시나리오를 들고 점심쯤, 숙소로 갔다.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광경에 잠시 할 말이 막히더라.

"족발 어때?"

"엊그제 먹었잖아. ...비빔밥이 낫다니까. 야채가 들어가 있으니까!"

"저 pizza 먹고 싶어요!"
"차유진 이 돼지야! 피자는 어제 먹었잖아!"

"보,보쌈도 좋다고 생각해..."

"나 돼지 아니야!! 호랑이야!"

...배달 책자를 거실에 깔고도 모자라 배달 어플을 열어놓고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더라. 내가 문을 닫고 나서야 한참 싸우는데 집중하던 애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렇게 매번 배달시키면 밥값이 만만찮을 텐데. 배달 음식이란게 조미료나 간이 세서 얼굴도 잘 붓고 여러모로 건강에 좋지는 않지. ...박문대가 죽고 나서 계속 저 모양이었나?

"배세진씨. 시나리오 들고 왔어요."

들고 있는 프린트 더미를 흔들자,
"매,매니저 형 왔어요?"

"이야~ 또 보네요. 건우헝 점심은 드셨어요?"

"크,크흠...!!"

큰세진과 배세진, 선아현이 일어나 내 앞에서 시야를 막고 김래빈과 차유진이 은근슬쩍 배달 책자를 쇼파 밑으로 밀어넣었다.

어쭈, 손발이 딱딱 맞는 게 한 두번이 아닌 것 같은데?
엊그제 족발 먹고 어제 피자 먹은 것 보면 전과범들이다. 한참 관리 해야하는 시기에 이러면 곤란하지. 일주일 뒤에 화보 촬영이 있고

"어제 먹은 피자 맛있었어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어우러진 모자 밑의 웃는 입을 흘끗 본 차유진이 대답했다.
"네!!! 한국 피자 맛있어요. I love it!"

다급히 입을 틀어막으려는 김래빈은 한 발 늦었다. 시선을 피하는 배세진과, 허탈하게 웃는 큰세진 그리고 울망이는 눈을 한 선아현을 한 번 보고는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단호히 내렸다.

"다음주에 화보촬영 있는 거 알죠? 배달음식 앞으로 금지에요."
"Nooo....안돼요..."

절규하는 듯 그런 표정을 짓는 차유진을 옆으로 밀고 김래빈이 앞으로 나섰다.

"매니저 형님!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청우형이 만들어준 샐러드와 닭가슴살 그리고 건강음료를 이주 째 먹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들 샐러드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침울해하는 낯짝이 되더니 건강음료를 입에 담는 순간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배세진은 눈을 질끈 감았고 큰세진은 헛구역질이 올라오는지 욱, 거리는 소리를 작게 냈다.

"매일 그렇게 먹었어요?"
다이어트도 적당히 해야지 아니면 저렇게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한 번씩 찾게 된다. 우선은 부엌으로 발걸음을 돌려 냉장고를 열었다. ....각종 요리 재료로 꽉 차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닭가슴살이나 양상추, 과일과 야채 등으로 꽉 차있었다.
찬장을 살펴보니 조미료와 밀가루...는 유통기한이 지났군. 따로 빼두자. 서랍을 뒤적거리다보니 의외로 김밥김이 나왔다. 유통기한도 넉넉해서 쓸 수 있을 것 같고, 마침 보리도 있으니.

...옆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기웃거리는 다섯명 중에 선아현이 말을 걸었다.
"도,도와줄 것 있나요?"

"저도 돕겠습니다!"

"저 할 수 있어요!"

"혼자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뒤따라 김래빈부터 차유진, 배세진까지.

"복잡해질 것 같으니 전 눈치껏 빠질게요~"

"우, 세진형 치사해요!"

서글거리는 낯으로 말한 이세진은 뒤로 빠지며
다시 쇼파에 주저앉았다.

'저럴 놈이 아닌데.'

어딘가 꼬인게 있는데 그걸 모르겠으니 더 갑갑하네.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이 조합으로 도움 받을 수 있으려나?

"...아현씨는 닭가슴살 우유에 담가 놓으세요."

제발 2년간 요리 실력이 늘었기를 바란다.
-"...세진씨는 보리로 밥 지어주시고요."

-"유진씨랑 래빈씨는 당근이랑 시금치 씻어주세요."

"건우형 요리사예요? Yes chef!"
"넵!"
"아,알겠어요!"

각자 일을 주니 주방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각자 일을 하도록 두고, 난 계란을 꺼내 지단을 만들었다.
할 일을 제일 먼저 끝낸 선아현이 쭈뼛거리다 내 옆에 붙어왔다.

-"...찢어지니까 젓가락을 넣고 중간까지 돌려 넣어요. 중간까지 가면 들어서, ..."

지단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찰나, 이상하게 조용한 차유진과 김래빈에 고개를 돌렸더니 아슬아슬하게 당근을 붙잡고 칼을 조준한 차유진이 보였다.
"차유진!"

쟤한테 칼 쥐여준 거 누구야.

"너 내가 칼 들지 말라고 했지. 손 썰리고 싶어?"

단호한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차유진이 허공에서 칼을 멈췄다.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바로 썰렸다.'

작은 소란에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내가 했던 말이 퍽 이상하게 들렸을 걸. 쏠린 시선에 한숨섞인 말을 뱉어냈다.

-"...사촌 동생이 생각나서. ...그렇게 잡으시면 안돼요."

"아, 사촌동생.. 그,그렇구나."

"바보 차유진! 안 다쳤어?"

먹히지도 않을 변명을 하자 다들 그닥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짚어 넘어가기도 미묘한 탓인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유진은 칼을 잡을 때마다 꼭 손에서 피를 봐서 박문대에게 꾸지람을 들었지.

하필 그때마다 멘트도 같았어서 다들 박문대가 생각났을 거다.
차유진도 별반 다르지 않은지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마주보고 있는 류건우가 아닌, 박문대를 쫓고 있더라.

차유진 본인이 생각해도 박문대와 류건우를 겹쳐보는 자신이 어이가 없는지 허탈하게 김빠진 웃음을 흘렸다.
"Oh... 맞아. 나 칼 안돼요. 위험해요."

-"뭐, 안될 건 없고. ...손끝을 굽히고 썰어야 돼요. 이렇게."

차유진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가, 옆에서 칼질을 했다. 단정하게 채 썰리는 당근을 김래빈이랑 같이 신기하게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역시 차유진에게 칼을 넘기기는 껄끄럽지. 늘 피를 봤으니까. 결국 칼 쓰는 건 내가 도맡아 마무리했다.

여럿이서 하니까 얼마 걸리지는 않더라. 금세 쌓인 김밥이 크게 한 접시였다. 너무 많이 만들었나? 손자국이 쭉쭉 찍힌 옆구리 터진 김밥에도 차유진과 김래빈은 신나서 셔터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러뷰어! 나는 차유진이에요.🐯 매니저 형이랑 김밥 만들었어요! 오늘은 초록색 drink😱 없어요! 청우형 미안해요! 우리 매니저 형 awesome해요!

(찌그러지고 터진 김밥사진)
(멀쩡한 김밥 사진과 어중간한 김밥 사진들)
-유진아 오늘 김밥 만들었어? 귀여워ㅠㅠ
-저 찌그러진 철근같은 건 뭐임?
ㄴ김밥이래
ㄴ무슨 김밥이 저렇게 처절하냐
ㄴ약간 고문? 받은 그런? 사연이 있으신 듯
-얘들 김밥 만드는 거 보다못해 매니저가 개입한 것 같애ㅋㅋㅋㅋ
ㄴ누가 만들었는지 딱딱 보임
---
오늘자 테스타 큰세진 SBM 라디오 출근길 + 테스타 새매니저

(큰세랑 같이 찍힌 류건우 사진)

-와, 매니저라고? 난 어디 아이돌인줄 비율 미쳤다 진짜
-모자 밑으로 궁예질 해봤을때 저 하관이면 못생길리가 없다
-오ㅎ 이제 7인 다시 채우는 거임?
ㄴ도랐니? 지랄ㄴㄴ
ㄴ뭔 말을 못하네;ㅋ
ㄴ곰머 미만잡이지ㅋ 그 밑은 맴버 취급도 안해줄거임
ㄴ그냥 언급하지 말라고 X발 우리 애 좀 편히 쉬게 냅둬
ㄴ응 느그돌 고인돌ㅋㅋ
ㄴ미친X들이 돌았냐 진짜?? 고소 처먹어야 정신 차릴래?
-테스타 매니저 얼굴보고 뽑네
"세진 형!, 뭐봐요? 김밥 먹어요. 맛있어요!"

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큰세진은 다짜고짜 밀어넣어지는 김밥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게 너무 짜고 시고... 김밥에서 원래 이런 맛이 나나? 하필 길게 썬 김밥을 구겨넣어줘서 똥 씹은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접시를 보니 찌그러지고 옆구리가 터진 김밥이 있는데 보아하니 제 입에 든 게 저 망가진 쇠파이프 같았다. 정작 차유진은 멀쩡한 김밥을 집어먹고 좋다는 듯 웃고 있는 모습이...

'좀 괘심하네.'

"...큰세진 너, ...너무 댓글창 그런 거 보지마."

마찬가지로 김밥을 씹고있던 배세진이
휴대폰 액정을 보기라도 했는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오~ 형님 저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영광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히히덕거리며 말하자 발끈한 배세진이 말을 쏘아붙이려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넌 걱정을 해줘도...! 됐다. ...너 요즘 기분 안 좋아 보이길래. 그런 거 너무 많이 보면, 크흠... 어쩔수 없이 기분이 나빠지잖아."

...그렇게 티났었나.

"어쨌든 적당히 보라는 거야. 너무 신경 쓰지도 말고. 좋은 말만 듣기에도 벅차니까..."

솔직히 조금 감동인데.
늘 틱틱거리던 배세진이 저러니까 새삼스럽단 말이지.

"형....저 감동했어요 진짜로. 이건 제 마음이에요~"

나는 부끄러운지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내 시선을 피하는 배세진에게 손수 김밥을 입에 넣어줬다.
갑자기 디밀어진 김밥에 무심코 입을 벌린 배세진이 인상을 급격히 찌푸렸다. 이어 작은 주먹을 쥐더니 내 등을 내리쳤다. 그건 차유진이 만든 김밥이었으니까.

나만 당할 수는 없지.

"하하~ 맛있어요?"
한참을 씩씩 거리던 배세진이 시나리오를 낚아채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먹고 다들 각자 방으로 흩어졌네.

류건우는 점심을 먹었다며 진작에 내려갔고 말이지.
...박문대가 죽은 후, 눈에 보이지 않던 괜한 구설수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일이 꽤 많았다. 그냥 아무 일 지나갔던 일들은, 터지고 나서 이상하게 술술 풀리던 일들은 다 박문대가 일구어놓은 업적이겠지. 그 후에 모니터링에 좀 집착하게 된 것 같다.
여전히 테스타하면 따라붙는 박문대가, 죽어서도 끌려다니는 네가 생각난다.

'좀 편히 쉬게 놔두면 어디가 덧나나.'

신청려랑 대화하던 류건우가 떠올랐다.

["신재현. 나는 류건우의 삶에 만족해. 박문대였던 나는 죽었어. 너도 네 삶을 살아. 신경쓰지말고."]
["나도 내 삶을 살 테니까."]

별 미친놈이었다. 자기가 박문대라는 개소리를 짓껄이잖아. 근데 그 어투가 널 닮아서. 머리가 새하얗게 질리고, 손끝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노랫소리도 맴돌았어.'
낮선 목소리에서 익숙한 창법, 숨소리... 문대 네 흉내 진짜 잘 내더라.

너도 알지? 기억상실증이라면서. 가끔 엄청 구체적으로 옛날 이야기 하는 거. ...근데 가끔 묘하게 연도가 안 맞는 거.

우리 나이라면 모를 노래들, 그때의 생활, 유행 그런 거 알고 있는 거.
진짜 류건우가 너야? 2년동안, 살아 있었던 거야?

....우리 친구잖아. 한 번쯤 찾아올 수 있었잖아. 말해줄 수도 있었잖아. 언젠가는 알려준다며. 문대야...나는 너 잃고 죽을듯이 아팠어 나는. 숨 쉬는 게 버거웠어 울다 지쳐 쓰러지고 난, 그걸 한 달을 반복하고
괜찮으면 괜찮다고 아프다고 하면 아프다고 욕 먹고 이런 것도 신경쓸 여유도 없이 낮밤이 뭔지도 모르고. 물 밑에서 사는 것처럼 숨이 막혀서 헐떡이다가.

...겨우 널 놓아줄 준비가 됐었는데.
박문대가 다른 사람이래. 멀쩡히 2년간 류건우로 살았었다고. 근데 그 사람이 말했어. 문대 넌 죽었다고. 난 내 삶을 살겠다고. 네가 어떻게 그래, 문대야. 난 2년동안 계속 널 생각했는데 죽은 널 끌어안고 있었는데. 와~,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그치. 말도 안되잖아.
박문대랑 다른 사람이면서. 내가 맴버들이랑 네 장례도 치루고 관이 타는 것도 보고 청우형이 상주로 서고...

....이번에 그 사람이 우리 매니저로 취직했더라. 가까이서 보니까 성격도 너랑 똑같아.
....

"킁,"

.....문대문대. 나 네가 정말 괘심하고 너한테 배신감도 짙게 느끼고 우울하고 또 비참했지만, 이런 것 쯤이야 언제든 아량 넓은 내가 다 용서해줄 수 있으니까.

진짜 너라면 ...네가 먼저 말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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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을 만들었던 그 날 하루를 제외하고 컴백이 코앞이라 순식간에 지나간 열흘은눈붙일 틈도 없이 일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만큼 맴버들과 붙어 있는 시간도 많았다는 말이 된다.
맴버들 식단관리를 위해 부엌을 자주 드나든 것도 가까워지는 데에 한 몫을 했고. 옆에서 지켜본 결과, 큰세진 말고는 다들 멀쩡히 지내는 듯 했다. ...근데 그것도 유독 나한테만.

'조만간 이야기를 해봐야하나.'
어쨌든 한 몸처럼 붙어다닌 요근래, 미디어에 여러 번 노출이 된 탓인지 러뷰어들 사이에서만 소소하게 화제가 됐던 내 모습이 이제는 타팬들과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면서 날 궁금해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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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게도 꿀리지 않는 테스타 매니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가는 류건우가 먼저 지나가고 맴버들이 차례로 가는 장면)

-ㄷㄷ 비율보소 모자 벗으면 존잘일듯
-매니저 왜 저렇게 얼굴 가림? 누가보면 지가 연예인인줄
ㄴ너같은 놈들 때문에^^
-잘생겼을 것 같은데 모자 한 번만 벗어조ㅠ
ㄴ존나 못생겨서 못 벗는다 저건 빼박임ㅋㅋ 벗으면 깰듯
- 아니 나만 쌔해?? 저번에 미친 매니저새끼 한 번 있었잖아. 그냥 좀 깨름칙함
ㄴ아 인정 모자 덮어쓰고 맨날 시커먼 옷; 저러니 범죄자같음
ㄴ저번에 애들 밥 챙겨준 것도 그렇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던데 왜 엄한 사람 붙잡고 ㅈㄹ?
'모자를 벗어야하나.'

이렇게까지 시선이 쏠릴 줄은 몰랐다. 모자를 눌러써도 그러려니 했을 것 같은데 스탯이 그대로라 좋아보이는 외양에 애매하게 가리고 있으니 궁금증이 도진 것 같다. 테스타가 매니저 사건이 컸으니 그쪽을 의식하는 사람들도 몇 있고.
'옷을 밝은색으로 입어야하나...'

외모 스탯이 A인 내가 모자를 벗더라도 꿀릴 맴버들이 없으니 묻혀서 그냥 좀 잘난 매니저가 되지 않을까. 처음에 걱정하던 그 표정도, 박문대의 얼굴과는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니 문제될 이유도 없지 싶고.
"형, 뭐 봐요?"

차유진이 운전석으로 고개를 내빼며 들러붙어오자, 휴대폰 액정을 끄고는 역시나 조수석에 붙어있는 서랍으로 손을 뻗길래 가볍게 손등을 때렸다.
"어딜. 너 오늘 초콜릿 먹었잖아."

"Nooo.... 근데 나도 형 얼굴 궁금해요."

휴대폰 글을 봤는지 슬척 모자챙 밑으로 고개를 내린 차유진의 뺨을 무심코 밀어냈다. 맥아리 없이 슬슬 밀려나는 차유진의 머리를 별 생각없이 쓰다듬어주고 있더라니 선아현이 차를 탔다.
"Hi, 형 왔어요?"

"으,응. 다녀왔어."

선아현은 쓰다듬받고 있는 차유진을 묘하게 바라보더니 은근히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쓰다듬어달라고?'

막상 의식했더니 뻘쭘해지는 상황이라 차유진에게서 손을 떼고는 선아현의 시선을 피하며 회사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도착한 회사에서 다가오는, 운영팀 팀 중 한 명이 말했다.

"건우씨도 같이 소회의실 3으로 가시면 돼요. 어딘지는 아시죠?"

"2층이요?"

"네, 네."

일정 이야기인가? 뭐 잡혔나?

바빴는지 바로 걸음을 옮기는 팀원을 보고는 곧장 2층으로 가서는 소회의실 문을 열었다.
"아~ 건우씨 왔어요?"

회의실 안에는 방금 들어온 선아현과 차유진을 제외한 나머지 맴버들이 큰 탁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무엇보다 살갑게 맞이하는 치프 매니저가, 무슨 꿍꿍이가 있나본데.
"앉아요 앉아. 차 드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확신한다. 뭔가 있다. 내가 의자를 빼고 앉아서야 치프 매니저가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예능이 하나 들어왔거든요. 단체 예능인데, 일이 좀 있었어서... 근 2년간 맴버들도 꺼려하고. 네, 안 받고 있었어요."
박문대가 죽고 난 후, 단체 예능 같은 건 독이었겠지. 우리 괜찮아요~ 라고 이미지를 보내면 같은 맴버 죽었는데 사이코패스냐고 욕먹고. 슬퍼서 질질 짜도 직업의식 없냐며 욕먹었을 테니까.

"그런데 마침 적당한 게 컨택이 오더라고요. V로그 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인데,"
아, 안다. V로그는 말 그대로 연예인이나 그 매니저들 일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서 류건우씨도 같이 메인으로 잡고 가고 싶다 하셔서."

...매니저 한 지가 열흘밖에 안됐는데? ...아마 감독이 늘 내가 해준 밥을 올리는 테스타 맴버들 인스타라도 봤나보지.
그림도 나쁘지 않아보이고 오랜만에 테스타 예능에다가 내가 늘 모자를 덮어쓰고 있다는 이유로 인터넷 상에서는 비밀스러운 이미지도 생겼겠다, 프로그램 시청률은 보장 됐다고 생각했을 거다.

-"맴버들은요?"

"저희는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예능 안 나간지 오래 됐어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건우형이 불편하면 굳이 할 필요는 없고요."

다른 맴버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거절하기도 뭣하고 마침 올라오는 여론도 신경이 쓰였던 참이라 순순히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습니다."

"좀 급박하게 촬영 일정이 잡혀서요, 스케줄 조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
그리고 2일 뒤,

"...네네, 그냥 일상생활 하시면 돼요. 의식하지 말고 편하게."

취직 후 숙소 가까이로 옮긴 내 자취방에 카메라가 설치됐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내일 아침부터 촬영할 거예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스탭들은 오피스텔에서 우르르 빠져나갔다.
늦은 저녁시간 카메라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설치된 카메라도 오랜만에 보네. 류건우가 돼서도 이 짓을 하다니.'

-띠띠띠띠,

눈을 감은지 체감 10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울리는 알람 소리에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가
암막 커튼 사이로 비추는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눈부셔..."

겨우 잠을 떨쳐내고 커튼을 치자, 해가 환하게 뜬 오전 7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박문대의 티벳표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봤다.

'좀 더 표정을 풀어서... 자꾸 의식해야겠다.'
그 이후로는 운동을 하고, 씻고 아침을 챙겨서 나누고. 별스러울 것 없을 일상이라 분량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게 숙소로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배달될 도시락에 가장 먼저 뛰쳐나온 차유진이 나를 반기려다 멈춰섰다.
"....oh....my ......god....형...모자, 모자 벗었어요? Wow..."

입을 살짝 벌리고 굳어있는 차유진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며 픽 웃었다.

"오바하지마. 잘생긴 사람 많이 봤잖아."

"Yes, 근데 다 연예인 이었어요! 형 일반인 이잖아요. So handsome!"
내 뒤에 따라붙던 차유진은 희희낙락하다가 김래빈과 이세진이, 선아현이 모여 있는 거실로 나가려하자, 뒤에서 갑작스레 내 얼굴을 두 손을 겹쳐 가렸다.

이거 너무 호들갑 아닌가?

시야를 가로막은 손을 치우려다 카메라가 있어서 가만히 내버려뒀다.
"뭐야 뭐야 차유진? 오~ 건우형 모자 벗었네?"

"차유진! 형 안 보이시잖아! 얼른 내려!"

손바닥 너머로 기웃거리는 세 명이 느껴진다. 특히나 궁금했는지 내 핑계를 대며 손을 내리라는 김래빈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서려있었다.

아현아, 침 삼키는 소리 다 들린다.
거실의 소란을 들었는지 어느새 류청우와 배세진도 거실로 와서는 내 근처에 기웃거렸다.

"유진아, 건우형 부담스럽겠다."

맞다. 부담스럽다. 시선은 익숙했지만, 이런 상황은...

"뚜둔! ....히히."

...뭐냐 그 효과음은. 차유진의 자진 효과음과 동시에 손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트이는 시야에 모인 얼굴들이 하나같이 다 차유진이랑 똑같자, 어쩐지 좀 웃겨서 답지않게 웃었다. 그 모습에 여태 애매하게 굴었던 이세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녹아든 그리움. 난 괜히 그 시선을 마주치고 심장이 내려앉아 눈을 스르르, 굴렸다.
"여태 왜 모자 쓰고 다니신 겁니까!"
김래빈이 내 어깨를 붙잡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소리쳤다.

"자,잘생겼어요!"

...외모 등급 S급한테 듣는 건 좀 짜릿하네.

"에이, 형 앞으로 모자는 압수할게요~"

"건우형,..! ...잘생기셨어요."

배세진까지?
외모 스탯 보정빨이 탁월했다. 다들 일반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이렇게 리액션들이 과한 거겠지.

"아이돌 해도 되겠습니다!"

"좋아요, 형 데뷔해요!"

그래도 여럿이 둘러쌓여서 이러는 건 좀 꼴볼견이지. 손에 든 도시락통을 들며 주제를 돌렸다.
"고마워. 오늘 샌드위치랑 제육덮밥 있어. 각자 골라가."

흐린 눈을 하고 도시락통을 내밀자, 맴버든은 어제 정한 그대로 두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 골라갔다.
"오~ 샌드위치."

"감사히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늘 있는 일인데도 인사를 한단 말이지. 맴버들이 가끔씩 찍는 사진이 아니었으면 방송용 구라라고 말이 좀 많았을 거다.
"형 진짜 최고에요!!!"

속이 알찬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차유진은 한껏 들뜬 기색이었다. 오늘 많이 먹어둬야지. 연습실에서 한참 구를 테니 말이다. 오늘 자정에 뮤비가 나오고 해 뜨기도 전,
이른 새벽부터 뮤붐에서 사전 녹화에다 무대가 있으니 오늘 저녁은 관리라는 명목하에 거의 굶다시피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을 좀 많이 먹어두는 편이 낫다.

저녁이 되면 배를 붙잡고 시들시들해질 차유진이 눈앞에 벌써 눈앞에 아른거리는군.

-"그러냐."
"건우형 정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제육덮밥을 한 숟갈 가득 퍼서 입에 넣은 김래빈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쪽도 입맛에 잘 맞아보여서 다행이다. 오늘은 최대한 맴버들과 붙어있으라는 방송국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괜히 밥 먹을 때 자리를 비키지도 못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같이 샌드위치를 씹으며 그냥 시간만 죽이는 중이었다. 이렇게 조용히 있어도 또 저들끼리 툭탁대는 차유진과 김래빈을 보고 있자니 방송 분량 걱정을 없을 성 싶었다.
"거,건우형 저도 언제나 가,감사해요."

유독 첫만남부터 내 근처를 맴돌던 선아현이 멀쩡한 식탁을 두고 내 옆에 앉아 뺨을 붉히며 말했다.

...전이랑 다를 바 없다고, 멀쩡하다고 느꼈지만...
가끔씩, 선아현은 박문대의 죽음 이후 어쩐지 처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것도 꽃같은 애가 그런 아우라를 뿜으니까 더 시선이 가더라.

-"많이 먹어. 그래야 힘을 쓰지."

괜히 선아현의 부드러운 머리로 손을 뻗었다. 쓰다듬에 놀란듯 눈을 크게 뜨던 선아현이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며 웃었다.
'멀쩡해 보이는데.'

그제서야 다시 프린트물로 눈을 내렸다. 당장 다음주에 있을 콘서트 관련 서류였다. ...나 같은 쩌리가 수를 놓을 짬바는 안되지만 무대 체크 겸 받았지. 자본의 T1답게 장비는 화려하고 값비싼 걸로 구색을 맞춰뒀더라.
걱정되는 부분은 바닥인데. ...마지막은 오픈형 돔에다가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연출. ...뭐, 상관없으려나. 그 날 일기 예보에는 맑음이 예정이라서. 올라오고 내려가고 비 내리는 타이밍을 딱딱 맞추면 딱히 문제 될 만한 부분은 없을 것 같았다.
짧은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연습실로의 이동이었다. 고작 하루 차이긴 한데 혹시 모를 유출 우려를 대비해서 V로그 스태프들은 연습실 근처를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비어버리면....

"네, 맴버들이 연습실에 하루종일 있어서 시간이 비거든요. 건우씨가 좀 채워주셔야해요."
분량은 내몫이지.

흐린 눈으로 옆에 따라붙은 카메라를 바라봤다. 내가 하는 걸로 봐서는 도저히 분량이 안 찰 것 같은지 제작진은 요구사항을 붙였다.

"평소에 휴식 시간 쓰는 것처럼 하시면 되는데요, 장소마다 미션을 드릴거에요."
"실패하시면 벌칙이 있긴 하지만 미션이 어려운 건 아니니 괜찮을 거예요."

하나 정도는 어려운 걸 낼 것 같은데.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건물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막상 나오니 할 게 없네. 내가 쉬는 시간을 어떻게 썼더라...
마음같아서는 이대로 집에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그렇다면 스탭이 미션 핑계를 대서라도 밖으로 끌고 나올 기세였다. 말이라도 꺼내보려 카메라 너머의 스탭을 향해 바라보자 단호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라.

"집밖 활동이어야 해요. 저희가 또 이럴 줄 알고 건우씨를 위해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혼자서도 잘 놀아요 check list] ><!!

-> 노래방가기
-> 쇼핑하기 지원금 30만원
-> 게임장가기
-> 애견 놀이터 가기

...알차게도 짜놨다.
... 읽을수록 시야가 흐려졌다. 애견 놀이터는 뭐야. 아, 이러면 딱 티벳표정일 것 같은데 지금. 어찌됐건 지금 나랑 성격도 비슷한 마당에 박문대를 연관시키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니지. 잠깐 고민하다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초점을 그냥 놓았다.

류건우는 이걸로 간다.
? 어쩐지 카메라가 떨리는 것 같은데. 다급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내리누른 스탭이 말했다.

"건우씨, 가시죠."
우선, 노래방은 재쳐놓는다. 여러모로 위험했다. 신청려를 만나고 난 후에 불렀을 때는 박문대의 호흡이나 작은 습관마저도 비슷했으니까. 다르게 부르라고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션 실패 벌칙을 안고 가서라도 다른 선택지에 최대한 시간을 빼놓고 노래방은 못 가는 걸로.
지금 상황으로는 쇼핑하기가 딱 적당하다. 모자 애호가라는 설정을 부여해주면 여태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던 내 모습에 명분이 생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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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백화점을 3번 돌아 3시간을 허비하고 심지어 미션으로 각 맴버들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하나씩 손에 들고 게임장을 가서 2시간을 허비했다. 미션으로 옆에 있던 셀프 사진촬영관에 가서 애들이나 찍을 네컷 사진을 각종 모자와 옷들을 돌려가며 찍었다. 그게 30분.
체감 10시간인데 정작 해도 지지 않은 4시였다.

'계획을 대차게 말아먹었군.'

....뽑기로 뽑은 회색 늑대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사격 경품으로 받은 선그라스를 끼고서 맑은 하늘 밖으로 나왔다. 표정이 제멋대로 풀렸다.

"지친다...."
손도 마음도 무거워진 채 스태프가 지정해준 애견 카페로 갔다. 이제야 좀 앉나 싶은데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강아지들만 나에게 구름떼처럼 몰린 곳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더라.

'쟤가 왜 저기있냐?'

콩이를 끼고 있는 신청려였다.
심신과 몸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재난을 넘어 재앙같은 새끼가 걸어오고 있었다. 난 내 무릎을 짚고 있는 큰 사모예드를 들어안고는 발밑을 조심해서 신청려 반대로 꽤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우 형.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 제작진이랑 다 짜고 친 판일 텐데 도망가야 별 수가 없겠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생글거리는 신청려의 낯짝이 퍽 재수가 없었다.
"요즘 많이 바쁘시더라고요. 연락도 안 보시고."

이제는 덩치가 꽤 큰 콩이를 들어안았다. 강아지는 죄가 없지. 좋다며 뺨을 핥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두자니 신청려는 그저 웃었다. 멀쩡한 얼굴로 사람 긁는 건 신청려를 따라올 놈이 없을거다.

-"미안. 보냈었어? 바빠서 확인이 늦어졌네."
"조금 섭섭한데."

신청려가 부러 눈썹끝을 장난스레 내렸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건우형이 행복해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런가. 지금 내가 내 상황에 행복하던가? 일단 마음은 편했다. 해결 된 것 하나 없는데도.

"...그래도 갈피를 못 잡으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을 몇 번씩이나 되돌린 놈이라 그런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도 꿰뚫어보는게 소름끼쳤다. 뇌가 확실히 둔해진 것 같기는 하다. 그냥 다시 들어온 소속감에, 일이 좀 달라졌지만 그걸로도 만족을 하니까. 애매한 씁쓸함이 혓끝에 감돌았다.
뭐지, ...뭔가... 아니다.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는 찝찝함을 떨쳐냈다. 신청려가 눈을 휘며 다시 입술을 열었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으면 큰일 나요."

"...뭐?"
느릿하게 흘러간 신청려의 시선은 내가 안고 있던 리트리버에게로 닿았다.

"...콩이요. 내려줘봐요."

콩이를 내려줬더니 배변패드로 가더라.

....타이밍이 좋게 맞아 떨어졌지만, 아까 그 말은.

'나한테 경고한거다.'
"그렇더라고요. 갑자기 일이 너무 잘 풀리고 큰 행복이 오면 당장에 기분을 누리느라 내가 처한 상황을 잊게 되고, 외면하게 되고. 머리가 둔해지고."

...

신재현이 은은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상황이 언젠가는, 무너지더라고요. 뜬금없는 행운에 개연성을 맞추려는 듯이 불행을 주는 거예요."

신재현이 탁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저 깊이 가라앉은, 가늠할 수 없는 심연으로 끌려가는 듯한 그런 기분이 문득 들었다.
"...방심하지 말아요."

그의 불행 중 일부분을 씹어삼킨 기분이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신재현이 몸소 겪으며 깨달았던 사실이여서. 개소리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어쩐지 지금 나와 닮아 있어서.
...조언은 알겠는데, 방송용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의미심장한 말이지.

-"그러게 내가 거기는 매도하라고 했잖아."

갑자기 주식으로 연결되는 맥빠진 이야기에 옆에서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있던 카메라맨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쉬었다.
"네. 주식이란게 그렇더라고요. 다 잃었네요."

신재현은 처음부터 주식 이야기였다는 듯 자연스레 받아쳤다. 확실히 신재현이랑은 같은 부류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어 괴롭다. 손발이 척척 맞잖아.
-"그러다 길바닥에 나앉으면 난 너 모른다."

'지금도 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다.'

"그래도 받아줄 거 잖아요."

무슨 자신감이지? 별 볼 것 없어지면 손절할 블랙리스트 부동의 1위가 본인인 걸 모른다니 안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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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더디게 갈 줄 알았던 신재현과의 시간은, ...정말 더디게 갔다. 중간에 맴버들 연습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연락만 안 왔다면 꼼짝없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박문대 삶아삼켰다는 말이나 들었겠지.
대놓고 실망한 스탭을 흐린 눈으로 무시하고는 분량은 다시 맴버들에게 맡겼다. 역시 내 기대에 져버리지 않더라. 특히나 차유진의 공이 커서 몰래 초콜릿을 쥐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 거라면 환장하던 녀석이 웬일로 챙겨서 주머니에 넣던데 침이 질질 흐를 것 같은 표정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무붐 당일, 사전녹화가 시작됐다. [Temptation] 유혹이라는 노골적인 곡명과는 다르게 각기 신부님같이 수단처럼 보이는 짧은 어깨망토를 두르고서 십자가로 포인트를 준 악세서리를 하나씩 매달고 각자 자리에 서서 눈을 감으면,
정적 속에서 영어로 된 성가같은 노래를 부르며 시작된다.

[당신께서는 저를 악마의 유혹과 시련에서부터 보호해주소서]

댕-

한소절이 끝나고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맴버들은 눈을 뜨고, 반박자 뒤늦게 눈을 뜬 이세진과 김래빈은 붉은 눈을 빛내며 웃는다.
그리고 곧장 김래빈의 목소리로 어떤 말을 역재생한, 마치 악마같은 목소리가 속삭이듯 찰나와 같이 짧게 들렸다가 뚝, 멎으면 강렬한 비트와 함께 차유진이 튀어나간다.

[속삭여 왜
그런 말들을 난 또 왜
듣고 있는지 몰라, ha]

어이없다는 헛웃음으로 파트가 끝난 차유진이
카메라를 쳐내듯 손을 휘두르면 차유진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로 시선이 옮겨가고, 이세진이 안무를 하면서 노래를 잇는다.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속절없이 난 네게 fall in
그렇지? 늪에 빠진 기분이야 이건]

칼같은 군무와 함께 노골적으로 허리를 돌리며 카메라를 보는 시선들이 관능적이었다
계속되는 노래에서 유혹에 흔들리는 파트는 이세진과 김래빈이 아닌 다른 맴버들이. 이미 유혹에 넘어간 듯 그런 가사의 파트는 이세진과 김래빈이 맡아 불렀다. 중간으로 갈수록 비트 밑에 깔린 속삭임은 심해지고,

[you temptation me
temptation me]
[Stop!]

그만하라는 단호한 말과 함께 맴버들이 두 귀를 막자, 정말로 귀를 막은 듯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먹먹히 멀어졌다.

[근데 들어봐]
[너도 원하잖아 이걸.]

김래빈과 이세진이 귀를 막은 채 웃으며 말하자, 먹먹한 소리 위로 뚜렷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다들 미미하게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 천천히 귀를 막았던 손을 내리자마자, 다시 한 번 심장을 울릴 것 같은 거센 비트와 맞춰서 맴버들 모두 짧은 망토를 거칠게 걷어 던졌다. 망토 안에는 크롭티나 딱 달라붙는 민소매, 등이 훤히 패인 셔츠... 노출이 심한 숨겨뒀던 옷들이 드러났다.
'전보다 빡세게 관리를 한 보람이 있네.'

셔츠 앞 단추를 거의 풀어놓듯이 해서 훤히 보이는 가슴골은 좀 위험한 것 같긴 했지만.

흠 잡을 곳 없는 무대를 폰으로 찍으며 소소히 감상평을 내리자니 문득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내게 드리운 어둠이 갑갑해졌다.
분명 아이돌 하기 전에는 이 위치가 익숙했는데. 무대 좀 서봤다고 부족하다는 건가?

헛웃음과 함께 울렁이는 속을 누르고는 절정에 치닫고 끝나가는 무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끝으로 나른하게 몰아쉬는 숨에서 그 밑에 깔려있을 벅찬 기분이 손끝을 타고 전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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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무붐 템테이션이 찢었다
-도랐냐고!!!! 도랐냐고!!!! 이 갓기천사들아!!!
ㄴ나를 꼬시려고! 작정을 했어! 어? 아주 그냥 나를 템테이션 템테이션 me...
ㄴstop
ㄴ근데 들어봐
ㄴ너도 원하잖아 이걸
그니까 다른 애들은 신부님, 큰세진이랑 김래빈이 악마라고? 너무 좋다 진짜...
큰세 김랩 😈 무대
(눈 뜨는 이세진짤)
(눈 뜨는 김래빈짤)

일단 빨간 렌즈가 대놓고 악마라고 못박음

코디 디테일도 쩌는데 테슽 스타일리스트 님한테 찬양 오백번 박고 간다 일 존나 잘해ㅠ 영원히 테스타 스타일리스트 시켜 티원 이 미친새끼들 무대랑 의상에서 느껴지는 자본의 맛이 향기롭다
(뒤쪽으로 길게 늘어진 벨트 사진)
얘네 둘만 이러거든? 내가 생각했을 때 이건 빼박 악마 꼬리 같음

(김래빈 십자가 귀걸이 사진)
(이세진 십자가 목걸이 사진)
보여?? 거꾸로 되어 있는 거

솔직히 과한컨셉이지만 역시 유구한 과몰입 컨셉장인들답게 잘 소화해냄
-진짜 얘네만큼 컨셉 과하고 그걸 오글거리지 않게 해내는 얘들 없다ㅠ
-난 악마니 뭐니 하는 건 좀 오글; 그래도 무대는 멋졌음 빨간 렌즈도 솔직히 에바였는데 와꾸빨로 넘긴듯
-스타일리스트 누군지는 몰라도 ㄱㅅ합니다 차유진 크롭티보고 혼절할 뻔;;
ㄴ나 움직이는 빨래판 첨 봤잖아 ㅆㅂ
ㄴ류청우 가슴골 콜카캐년보다 깊다. 빠져 죽을 뻔
ㄴ콜카캐년이 머임?
ㄴ세상에서 제일 깊은 계곡ㅎ
ㄴㅋㅋㅋㅋㅋ아 씨바 그걸 누가 아냐고ㅋㅋㅋㅋ
-아현아 너 등을 왜 내놓고 다녀ㅠ 날개 제거 수술한지 얼마 안돼서 많이 아팠구나ㅠ
ㄴ선아현 신부님 그 자체ㅠ 아니 천사ㅠㅠ
-배세 그냥 햄스터인 줄 알았지 민소매 보니까 팔 근육이 와... 보기 싫은 거 말고 예쁜 마른 근육이 진국임 먹고있던 사탕 던지고 티비 핥을 뻔
ㄴ(꼬라보는 햄스터짤)
ㄴ이잉♡
ㄴ도랐나봐 진짜ㅠ 정신 좀 차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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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반응이 쉴새없이 쭉쭉 치고 올라왔다. 아마 이번에 시도한 파격적인 노출 의상이 썩 괜찮았나보지. 아무리 운동해도 복근이 붙지 않았던 배세진은 다소 적게 노출했긴 했다만은 그것만으로도 앓는 팬들이 많았다.
새벽같이 시작된 스케줄에 앵콜 무대까지 마치고 피곤에 절은 맴버들이 대기실에 늘어져 있더라.

"거,건우형 뭐해요?"

그 중 피곤해보이기는 매한가지인 선아현이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내 옆에 붙어왔다.
다들 수위를 넘길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떠들어대는 걸 어린애한테 보여줄 수는 없어서 휴대폰을 끄고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너희 무대 좋다고 그러는 거 봤어. 멋있더라."

선아현이 눈을 빛냈다. 기뻐하는 듯 들뜬 기색이었는데, 말을 하려는 듯 우물거리는 입술을 마주보다가
손끝으로 얕게 찢어진 입끝을 쓸었다. 눈빛도 살짝 몽롱한게, 좀 많이 피곤해보이는데. 고작 이 정도로 선아현이 몸에 무리가 왔다고?

-"무슨 일 있어? 너 왜 이렇게 지쳐보여."

"아,아뇨... 그냥 밤에 자,잠을 설쳐서..."

...이번에 룸메가 차유진이었던가. 그럴만도 하네.
정작 원인 제공자는 소파에 반쯤 누워 잘 자고 있었다. 저러니 밤에 잠이 안 오지.

곤히 잠든 차유진을 손수 흔들어 깨우고, 다들 피곤한 기색으로 건물밖을 나왔다.

"얘들아 수고했어!"

"래빈아!!"

"오늘 너무 멋졌어!"

"청우야! 여기 한 번만 봐줘"
나오자마자 맴버들 주변으로 따라붙어 말을 걸고 사진을 찍는 몇몇 팬들은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유지했다. 한참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때,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극성팬이 눈에 띄었다. 바로 차유진을 향해서 오더라. 주춤하던 차유진 앞으로 내가 막아서자,
마스크에 후드티를 뒤집어쓴 여성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내 품안으로 뛰쳐들었다.

"유진아! 차유진!"

"아, 좀 비켜!"

나를 밀쳐내고 기어코 차유진에게로 손을 뻗으려하는데, 주변이 웅성거렸다.
-"이러면 곤란해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부릅니다."

내가 두 팔을 벌려 계속해서 막아서자, 팬은 내 어깨를 거칠게 밀쳐내려다가 헛손질로 오늘도 어김없이 눌러쓴 애꿎은 내 모자를 날려보냈다. 와중에 손톱이 뺨과 눈을 긁고갔는지 따끔한 통증이 퍼졌고.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됐다.
"아니... 헐,..미친 대박..."

"뭐야? 뭔데!"

"모자 벗겨지셨어..."

"잘생겼는데?"

대놓고 구경하는 시선에, 카메라까지 내쪽으로 돌리자 류청우가 다급히 외쳤다.

"매니저형 찍지 마세요! 일반인이에요."

이미 셔터음이 터져서 별 의미는 없었지만.
'짜증나네.'

얕게 눈을 스치고 간 탓에 한쪽 눈을 감은 채 앞에 있는 여성을 내려다보자, 손끝으로 내 살을 긁는 감각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올려 나를 마주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극성팬은 뺨의 붉은 상처를 보고, 또 한쪽 눈까지 감은 나를 보고 당황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피... 죄,죄송해요"

아, 뺨을 더듬어보자 맺힌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눈은? 반사적으로 감긴 눈을 억지로 깜빡이자 맺힌 눈물이 떨어졌다. 아픔이 심한 것도 아니고. 괜찮을 것 같은데.
그 틈에 신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모자를 들고 털어내, 다시 깊이 눌러썼다. 좀 조용한 틈에 가자 제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오려는 맴버들을 다른 스탭들이 막고, 차로 이동시키는 게 얼추 보였다.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뒷걸음질 치다가 냅다 뛰었고.
"어어? 뛴다 도망치는데?"

"잡아봐! 잡아!"

"매니저 피 나. 아까봤어."

여전히 술렁거리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내쪽으로 뛰어오는 스탭에게 길을 비켰다.

"건우씨, 괜찮으세요? 눈 한 번 떠보세요."

모자챙을 위로 올리고 자꾸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떴더니 또 셔터음이 들리더라.
"충혈 됐는데... 거기, 찍지 마세요!! ...병원 바로 가죠. 혼자 갈 수 있으세요? 회사에는 제가 연락 넣을게요."

...v로그 분량은 제대로 뽑겠네. 여태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는 카메라맨이 눈치를 보더니 카메라를 내리고 입을 열었다.

"건우씨랑은 제가 같이 갈 테니까 스탭님은 일 보세요."
"아,...그럴까요? 건우씨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따라 가야하는데. 병원가는 것 까지는 찍기 좀 그렇고요."

찍을 거 다 찍어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네. 양심에 찔리긴 하나? 그래도 별 수는 없지.

-"...네. 병원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네."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고 나왔더니 부재중 전화가 30통이 찍혀있더라. 새 메세지는 500개.

🐻왜 전화 안 ㅏ밧고 그내요
🐻만ㅎ이 다쳤어요??

그 중 부재중 전화 15통이 이세진이고, 메세지 54통은 이세진이 개인적으로 보낸 메세지다.

...이세진은 날 싫어하지 않았나?
걱정 치고는 좀 과한데.

은연 중에 언짢은 기색을 내비췄던 이세진이었다. 묘하게 비꼬는 듯 하는 말, 내키지 않을 때 빠지는 행동.

이세진이랑 붙어다닌게 얼마인데 내가 착각했을 리는 없지.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지?
...모르겠다. 답이 없는데 이건.

'대화를 해봐야겠어.'

가만히 이세진의 문자를 보다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각막에 가볍게 상처났대. 괜찮아.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형, 눈 찔렸었어요? 피는 뭐예요? 아까 스탭형이 형 피난다고 그랬는데 근데 그 사람은요?

🐱형!! 괜찮아요? 고마워요, 죄송해,으악, no! 밀지마요 세진형!!
🐹고소해야하지 않아? 경찰에 신고부터 하자

...귀아프게 울리는 스피커의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나더니 큰세진이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물어왔다.

🐻피 뭐예요? 괜찮냐고요.

'이세진 답지 않게 예민한데.'

🐺어, 그거 뺨 긁혀서. 그것도 금방 낫는다는데.
🐺너 진정 좀 해봐.

🐻...아, 네. 괜찮은지 걱정이 돼서요.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제서야 한숨소리 섞인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티원쪽에서 처리해준다고 했어. 괜찮은데,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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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붐 퇴근길에 테슷 매니저 모자 벗겨짐

아니 어떤 미친새끼가 차유진 쪽으로 뛰어오는 거. 그래서 매니저가 차유진 앞에 가서 막음. 그 사람 막으면서 쨌든 이러면 경찰 부른다하던데 그래도 매니저를 막 밀치려고 하고 발버둥치더라? 와 그런 독한 새끼 첨봤음 진짜;;
주변에서 도와줘야하니 마니했는데 눈깔 뒤집혀서 그러는 게 무서워서 막상 막을 용기는 못 내더라. 나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함

그렇게 고군분투하다가 매니저 뺨 할퀴고 모자까지 벗겨짐

궁예질로 잘생겼다 잘생겼다 했을 때 난 솔직히 모자 벗음 깰 줄 알았음.

근데...내가 틀렸다 얘들아...
존나 잘생김 진짜!! 내 옆에 분도 뻥쪄있다가 카메라 돌리고 막 난리임 근데 한쪽 눈도 다쳤는지 눈 감고 눈물 흘리고 계셨어ㅠ 뺨에는 피나고...맴찢ㅠ
-잘생겼다고? 그래봤자 일반인이지 테슽 조합에 꿀려서 모자쓴 거일듯 애매하게 잘생겼으니까
ㄴ야 너 지금 (류건우 사진이 올려진 링크) 이것봐봐 아니 테스타 새맴버 매니저로 잘못 들어온 거 아님??
ㄴ방금 보고 왔는데 씨발 진짜 쩐다ㄷㄷ 모자 쓰고 다닌 이유가 있었음
-아니 잘생기고 말고가 아니라 다쳤다며 괜찮은거야?
ㄴ안 그래도 방금 덥앱에서 이야기해줌 다행히 눈이랑 뺨 얕게 다쳐서 금방 낫는다는데
ㄴ다행이다ㅠㅠ 별 미친놈들 왜 이렇게 많냐 인류애 떨어짐
-티원 미친놈들이 매니저 뽑으라니까 맴버를 뽑아놨어;
-그래서 류건우 언제 데뷔해?
ㄴ끼워넣기 하지 말라고 테스타 이 맴버로 그대로 갈 거라고ㅠ 얼굴 좀 생겼다고 설레발 치는 거 테스타 팬으로써 꼴뵈기 싫음.
-이번에 V로그에서 테스타 매니저 나온다는데.
ㄴ매니저 관두고 연예인하는 거 아님? 애초에 그 얼굴로 왜 매니저 하는지 모르겠음
쏟아져나오는 댓글에 괜히 머리가 아파와서 이마를 짚었다. 화제성 몰이는 확실하게 됐네. 벌써부터 V로그 측에서는 촬영 내용물 중 괜찮은 부분을 뽑아, 짧은 영상을 만들어 예고편으로 올렸더라.

데뷔를 하느니 마느니 이런 말들도 V로그 인터뷰를 보면 가라앉을 거다.
매니저란 직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처럼 나왔으니까. 그런 쪽으로 편집해 달라고 했고.

"건우야, 너 괜찮은 거 맞지? 아유 뭔 그런 사람이 있대? 한참 바쁘더니 얼굴에 상처나 달고 오고."

의사가 눈이 무리하지 않게 하루 정도는 쉬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
"괜찮아요. 금방 나아요."

마침 소식을 들은 부모님께 전화가 바로 와서 본가에 꼼짝없이 누워있는 중이었다. 일어나려는데, 부드러운 손길에 다시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휴대폰 그만 보고. 어서 쉬어."

이불을 덮어주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이, 어릴 때 느꼈던 따스함과 똑같아서.
그립고, 벅차고 새삼스러워서.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걸까?

...맥이 풀리듯 밀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맑은 하늘에 북적거리는 소음, 익숙한 건물은 중학교 강당 앞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보이는 얼굴은, ...류건우. 내 모습이 단번에 눈에 띄었다. 친구들한테 둘러쌓여 있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뛰쳐가더라.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순간 시야가 일렁이면서 3인칭이었던 시점이 1인칭으로 확 바뀌었다.

어쩐지 뛰는 심장이, 밀려오는 기쁘고 벅찬 감정이 마치 억지로 만들어 낸 감정처럼 거북했다.

"엄마!!, 아빠!!"

앳된 내 목소리가 멋대로 튀어나갔다.
"아들!, 빨리와. 사진 찍어주신다네. 웃어야지?"

떠넘겨지는 꽃다발을 들고 부모님의 중간에 선 채 카메라를 보는 것 까지.

"자, 하나...둘"

'씨발...이게, 대체.'

실붙은 인형처럼, 짜여진 판 위의 연극같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꼬리가 억지로 올라갔다.

찰칵-
카메라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익숙한 내 방 천장이 보였다.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모르는 기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모두, 보모님과 연관된 기억들. 겪은 적 없던 것들이 영상처럼 이어졌다. 마치 뇌 속에 억지로 들이붓는 듯한 정보였다.
이건, 이 세계의 류건우의 기억인가?

"...상태창."

띠링-

엿같은 효과음과 함께 보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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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번째 □□선
오류 류ㅇㅇ, ㅇㅇㅇ 정상화 패치 15% 진행중... ...

현상 유지시 ■□ 대상 : 류건우 -> 박문대
어지러운 글자들 속 보이는 건 부모님 이름이었다. 필터링 되어있는 글자는 뭐고, 신규 업데이트는... 류건우의 기억? 애초에 정말로 이 세계에 류건우가 존재했다면,

'기존의 류건우는 어디로 간거지?'

아니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를 붙잡고 멍하니 벽을 보다가 문득, 시선을 옮긴 책상에는 꿈속에서 찍은 사진이 액자 안에 넣어져 있었다.

원래라면 책상 위에는 저런 액자는 존재하지 않았지.

아니면, ....

'류건우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찝찝했던,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이 얼굴을 디밀었다.
당장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을 들고 류건우일적 내가 찍었었던 트로트 가수의 직캠을 검색했다. 위튜브 맨 상단에 뜨더라. 그렇다면, 그래. 원래도 말이 안됐어. 죽었다 살아돌아오는 게 가능하냐고. 아니 그렇게 따지자면... 이 모든 상황이...이상하잖아. 상태창이 있는 것 부터가,
씨발, 씨발... 이게, 원래도 말이 안된다고 했지. 무슨 오류 보상이랍시고, 이 상황에서 제일 이상한 건... 부모님이다. 저번에 아빠가 그랬어. 나에 대한 건 기억이 다 흐릿하다고. 정말, 그 사고가 안 난게 맞나? 내... 부모님이 맞나? 시스템은 오류라고 했었지. 별 좆같은게 사람을 농락하네 이제.
...전화번호부를 켰다.

류청우...류청우...

별로 많지도 않은 전화번호부 이름들을 스크롤하면서 괜스레마음이 초조해졌다.

'찾았다.'

바로 전화 버튼을 눌렀다.

이어지는 수신음이 길더라.

'빨리, 빨리 좀. 제발'
뚝.

"네, 건우형. 몸은 좀..."

-"류청우, 묻는 말에 대답해 봐. 너 사고 났잖아. 그 날 버스에서."

"...그걸 형이 어떻게, ...아, ...네. "

류청우는 한참 말이 없다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병원 가고, 나중에... 그 펜션, 거기서 불 났잖아. 알고 있었어?"
류청우는 생각하는 듯 음, 하더니 한박자 늦게 입술을 뗐다.

"....네. 그랬던 것 같아요."

-"거기서, 누군가가 죽었,죽었다거나..."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볼품없이 떨렸다. 뭐라 말을 해야할지 답지않게 버벅였더니 류청우가 알아듣고 말하더라.

"들었는데, 기억이 왜 이렇게 흐릿하지."
"...근데, 돌아가셨다는 거 들은 것 같아요. 부부였는데... 이름이... 이름이, 어... 분명 들었는데. 죄송해요. 이상하게 기억이 안 나요.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럼, 거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데?
뭔데 내 엄마 아빠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흉내를 내냐고. 더이상 집에 있는 게 거북했다. 꾸며진 상황에 보상이랍시고 농락당한 것도, 은연 중 알면서도 눈을 가린 것도.

'아, 다 그만두고 싶다.'

일어나서 차키를 챙기고, 겉옷을 입었다. 곧장 거실로 나가자
빨래를 개고있던 엄마가 옆에서 따라붙었다.

"건우야, 몸은 좀 괜찮아?"

엄마랑 목소리도 똑같잖아. 괴로웠다. 저 목소리, 날 걱정해주는 행동 사소한 습관, 입맛. 꾸며냈다고 하기에는 똑같아서. 정말 죽었다 살아난 것 같아서.
차마 얼굴을 볼 용기는 없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급한 일 생겨서 나가야해요. 몸도 나았고. 쉬세요."

"건우야, 그래도!"

붙잡으려는 손을 뿌리치고 신발을 구겨신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머리속이 복잡했다가, 순식간에 멍해졌다가,
수많은 물음들이 밀려왔다가도 휩쓸려 지나가길 반복했다. 왜인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고였다. 불규칙하고 가파른 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꺼내들고서 방황하는 손끝이 닿은 곳은, 결국 신청려였다.
"후배님?, 아. 건우형인가? ...무슨 일 있어요?"

-"나, 지금... 그러니까, ..."

괜찮은 척 목소리를 가다듬어도 물을 먹어서 떨리더라. 신재현은 잠깐 내가 말을 잇길 기다려주더니 말했다.

"어디예요? 지금 데리러 갈게요."
----
그때는 붙잡혀 왔었는데, 이제는 내 발로 걸어오네.

멍하니 테이블을 보며 옆에서 알짱거리는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신재현은 커피를 두 잔 내와서는 내 앞에 한 잔 내려놓더라.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지난 회차들이. 과거로 돌아오는 것? ...그럴수도 있죠."
"단지 시간이 돌아갔다면 왜 나만 과거로 돌아온 걸 기억하는지. 의문이 있긴 해요. 뭐 이렇게 따지자면 복잡해지니까. 평행세계 알아요?"

"그거 개소리잖아."

신재현은 내 말에 하하, 하고 웃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일어난 일들도 다 말이 안되잖아요. 어쨌든, 건우씨가 태어나지 않았던 세계에서 건우씨 부모님만을 오려서 붙인 거라면, 본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존재하고 박문대 빙의 전 류건우도 존재하고. 그럴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히. 시스템이 부모님을 오류라고 부른 것도, 애초에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거라면. ...아마 떠오른 내 기억들, 부모님도 떠올랐을 것이다. 반대로 류청우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었지. 정상화 패치라는 것, 설마.
기존에 돌아가신 내 부모님을 지우고 지금... 부모님으로 덮어씌우는 건가?

100%가 되면 나조차도 기존의 부모님을 모두 잊는 건가?

업데이트라는 게 이런 거라고?

"돌겠네 진짜."

다시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중얼거리자, 신재현이 묻더라.

"머리 아파요? 약 줄까요?"
-"됐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고. 난 이만 간다."

일어나려는 나를 신재현이 붙잡았다.

"다쳤다면서. 괜찮아요?"

다친 부위를 아는 것 같이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봤다.

"조심해요. ...브이틱으로 들어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다쳤던 내 눈가의 붉은 자국을 느릿이 쓰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어 뺨에 붙은 밴드를 툭, 건드렸고.

"보컬, 생각 있으면 바로 말해요."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

-"...테스타가 아니면 의미 없어."

고개를 돌리며 단호하게 끊어냈다.
가끔씩 내가 그리워지는 건 물결처럼 빛나는 불빛의 관중들과, 분에 겨운 사랑. 그리고 옆에 선 너희들.

신재현이 가라앉은 눈으로 웃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데려다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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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도착한 오피스텔에 사들고 온 맥주를 한 캔 뜯었다. 도저히 취하고 있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백업을 해야하나? 그럼 엄마아빠는. 아니, 내 부모님은 아니지. 억지로 집어넣은 기억들로 꾸며낸 거잖아.

알면서도 좀처럼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화를 낼 대상은 실체가 없고 지금 마땅한 목표도 없었다. 선택 강제까지 다가오는 시간만 목을 죄여오는데, 막상 1년동안 함께 했던 부모님을, 내 엄마아빠가 아닌 걸 알면서도. 놓으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들이닥친 기억도 한 몫한 것 같다. 아직은 위화감이 들지만, 점점 갈수록 무뎌지고 결국에는 원래 부모님을 잊겠지. 그러면 난, ...솔직히 욕망하고 있긴 했나보다. 가족이란 걸 내가. 나도 몰랐었는데, 체념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더라.
엄마가 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오더라. 그런데 이게 다 거짓말이고, 농락이었다고.
시스템의 손 안에서 완전히 놀아나는 게, 기분이 좆같았다. 거칠게 머리를 헝크러뜨리다가, 단번에 한 캔을 비웠다. 모르겠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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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머릿속과는 다르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상태창의 숫자는 뚝, 뚝. 떨어졌다. 차라리 일이 바쁘다보니 잡생각이 없어지더라. 결정을 내려야겠지. 하지만,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늦게 스케줄이 끝난 날, 숙소로 돌아가는 벤 안에서 류청우가 말했다.

"건우형, 어차피 지금 가면 5시간 후에 나오셔야 하는데 숙소 가서 같이 잘래요?"

이미 입이 맞춰진 사항인듯 맴버들은 류청우의 말에 적당히 동조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형 우리 방에서 자요!"
"난 찬성이야..!"

"유진이랑 아현이 방에 침대가 하나 남지~ 딱 자리도 좋네!"

얼씨구? 정작 방 주인 중 한 명인 선아현은 조느라 고개를 꾸벅꾸벅 거렸다.

요즘 많이 피곤해했지. 선아현이 밤잠을 설치는 이유를 알긴 알아야 했으니.
----
깊은 밤, 차유진은 의외로 담백하게 인사만 하고 바로 잠에 들더라. 선아현도 피곤했던지 잠에 빠지기는 금방이었고. 그렇게 지나가는 듯 하더니 이른 새벽,

"흐으...."

우는 듯 흐느끼는 소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거슬려서 몸을 일으켰다.
졸린 눈을 억지로 문지르며 일어났더니 아니나 다를까 잠을 못 잔다던 선아현의 침대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였다.

선아현의 침대로 갔더니, 쏟아지는 달빛에 얼굴이 잘 보이더라. 창문을 등지고 우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흑,...으..."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 쉼없이 맺혀 떨어지는 눈물. 젖어 늘어진 속눈썹. 왜 모든 게 이렇게 어려보이는지. 마치 어린애가 혼자 남겨진 듯 그렇게 서럽게 울어, 너는. 막힌 듯 숨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뚝, 멎었다.
찌푸려진 미간에 쳐진 눈썹 끝이 퍽 애닳아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흠뻑 젖은 뺨을 쓸어 닦아줬다.

"선아현. 숨쉬어."

그제서야 훅, 하고 급하게 들이쉬는 너.
"문대야..."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갔다. 잠에 취한 눈동자가 흐릿하게 날 쳐다봤다.

"...응. 여기 있어. 더 자."

넌 내가 없으면 숨 쉬는 것도 마음대로 못한 건지.

2년이 지났는데.
빛을 등져서 시커멓게 얼굴에 드리운 어둠에, 넌 박문대를 봤겠지. '박문대'의 말에 선아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한결 평온해보이는 표정을 보고 나서야 일어났다.

'오늘 자긴 글렀네.'

뒤숭숭해진 마음에 거실로 나왔더니 베란다 입구 유리창 너머로 흰 연기가 보이더라.
공시 준비할 때 밖으로 나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연기. 막막함에 응어리진 흡연자들은 다들 삭막한 표정으로 담배를 빨더라. 그런 인간이 여기에도 있을 줄은 몰랐는데. 베란다 문을 열자, 담배를 태우고 있던 남자가 날 돌아봤다.

'이세진일 줄 알았는데, 너였냐?'

류청우였다.
류청우는 말 그대로 담배를 태우고만 있더라. 입에 가져다대지는 않았는데 멍하니 연기가 뭉개지는 걸 보고 있는 꼴이, 위태롭게 텅 비어 있었다. 들켜도 상관 없다는 듯 류청우는 다시 떨어지는 담뱃재로 눈을 돌렸다.

"아현이, 울었어요?"
담배 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어왔다.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류청우 옆에 다가갔다. 숙소 베란다는 빛나는 야경이 꽤 볼만 했었지.

-"어. 울더라."

"...저희 원래 일곱명이었어요."

새벽감성과 담배 연기에 감정이 올랐는지 답지않게 민감한 말을 꺼냈다.
"...박문대라고. 아시죠? 갑자기 말도 없이 멀리 갔어요. 아무것도 남긴 것도 없고, 문대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나 많은데. 정작 문대 곁에는 저희밖에 없었어요. 보호자가 없더라고."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류청우는 말을 이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앞서더라고요. 당장 문대 장례는, 또 재산은. 사망신고는. 얘들은 어리잖아요. 세진형은 마음이 여리고. 그래도 내가 리더니까."

"...그 날 당시에도, 몇일동안 눈물이 나질 않았어요. ...내가 참 나쁜놈 같았는데."
류청우는 박문대의 사망소식을 들었던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스튜디오에서 이세진과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오고 있었지. 도중에 스탭이 귓속말로 전해진 소식은 현실감이 다소 없었다.
옆에 있던 이세진은 낯이 파리하게 질리더니 그대로 의자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걸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류청우도 같이 뛰쳐 나갔다.

생방송? 새하얗게 비어버린 머리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바로 달려간 병원에는, 이미 침대에 누워서 흰색 천이 덮인 박문대가 있더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따라온 이세진은 천 밑으로 삐져나온 박문대의 맨발을 보자마자 그 방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이세진이 그렇게 뛰쳐나간 이후로 뒤늦게 선아현이 왔다.
흰 복도에 피로 발자국을 찍으며 온 선아현이 벌벌 떠는 손으로 천의 끝자락을 잡길래 류청우는 아현의 손목을 붙잡아 저지했다. 선아현은 무너지듯 무릎을 꿇으며 흐느껴 울었다.

류청우는 그때도,

멍하니 흰 천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방안으로 배세진도 들어왔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우는 선아현을 챙겨서 방밖으로 나가던 배세진은 어린애처럼 소리내 울고 있었다. 차유진과 김래빈은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들이지는 않았다.

류청우는 혼자 남아서, 박문대를 계속 바라봤다.
문득, 천 밑으로 비죽 튀어나온 박문대의 발이 추워보였다.

천을 끌어 덮어줬더니 짧아서 내려간 천조각 위로 감긴 눈까지 보이더라. 손을 뻗어 박문대의 머리를 쓰다듬어봤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엉겨붙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그대로 닫힌 눈가를 쓸었다. 아직 온기가 남은 피부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류청우는, 결국.

충동을 참지 못하고 박문대를 일으켜 끌어안았다.
무거웠다. 오로지 류청우만이 박문대를 끌어안았고, 마주 안아주는 손길은 없었다. 상체를 일으키지도 못하는 박문대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다. 심장도 같이 곤두박질쳤다. 다급하게 박문대의 뒤통수를 감싸안자, 이번에는 두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문대야, 일어나."

"너 어쩌려고 이런 장난을 쳐."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류청우는 박문대의 죽음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때도 와닿지는 않았다.
"..,화장하기 직전에, 관 문을 닫기 전에. 문대가 누워있었는데. 시체에도 뭘 해놨더라고요. 생전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데... 정말 자는 것 같았어요."

매케한 연기가 뿌옇게 흩어졌다. 텁텁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고.
"깨우러 가려는데... 세진이랑 래빈이가 내 팔을 한 쪽씩 잡고 말렸어요. 저렇게 두면 우리 문대 불에 탄다고. 살아있는 얘를 왜 태우냐고. 미친놈들이라며, 욕을 했는데 세진이가 무릎을 꿇고 내 다리를 붙잡더라고. 형, 문대 죽었어요. 숨 넘어 갈 것 처럼 울면서."
"그래도 떨쳐내고 문대 어깨를 잡았는데, 깨우려 뺨을 두드렸는데."

"차갑고...딱딱하고. 산사람이 아닌거야. 그때 느꼈죠."

"...미친놈은 나였구나."

담담하게 말하는 류청우의 목소리가 씁쓸하게 폐부를 가득 채웠다.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희뿌연 연기는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류청우는 그때, 뒤를 돌아봤다. 이세진이 주저앉아서 팔뚝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었다. 선아현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그런 이세진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배세진은 고개를 돌리고, 김래빈과 차유진은 서로를 끌어안고. 전부 무너진 얼굴을 한 채.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다시 앞을 내려다봤더니 박문대가 고요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직원이 류청우를 붙잡고 끌어내렸다. 힘없이 사라지는 관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라진 박문대는 작은 항아리 안에 담겨 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온기가 남아있던 뺨도...
",..저 다음에는 아현이었어요. 자꾸 문대를 찾고, 문대 물건을 정리하려해도 곧이 곧대로 가져다두고. 문대 언제오냐고 하루에 열 번은 넘게 물었어요. 그러고 나서 괜찮아지는 것 같더니 저렇게 밤잠을 가끔씩 설쳐요."
"...세진이는. 방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폐인처럼 침대에서 그냥 울고, 울고 또 울다가 지쳐서 자고. 일어나면 울다가... 3일 만에 응급실에 실려가고. 세진형은 억지로 괜찮은 척 하는데 밤되면 또 울고."
...말문이 막혔다. 그래. 박문대는 게임 캐릭터 같은 게 아니었는데. 죽으면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정리해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야 끝이었지만, 맴버들은 끝내지 못한 박문대의 마무리를 지어야했다.
"유진이는 문대가 준 간식들 먹기 아깝다면서 한참 두고 있다가 유통기한 지나기 직전에 그걸 꾸역꾸역 다 먹더라고요. 눈물에 젖었는데."

한참 말없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있자, 류청우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런데,"
웃는 낯이 묘하게 바뀌었다.

"...건우형한테는 이야기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말 찝찝하실지도 모르지만,"

"형을 보면 그 얘가 떠올라요."

아무래도 같은 사람이니까.
잔잔히 미소 짓는 얼굴에서 서글픈 듯 아린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목소리도... 얼굴도 다른데 꼭 살아돌아온 것 같아서."

무심코 내뱉었다가 허탈하게 한숨을 쉰 류청우가 구석에 있던 탈취제를 제 몸에다 뿌리더니 건네주더라.
"죄송해요. 이제 문대 이야기 안 할게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하다."

읊조린 내 한 마디에
류청우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봤다.

"네?"
"...네가 힘든지, 애들이 어떤지. 몰랐었어. 매니저로써 다 알아야 했는데."

닥쳐온 위기에, 다른 것은 몰라도 중심이 흔들리면 끝이 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걸, 류청우는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니 담배 연기랑 함께 모든 걸 날려보냈겠지.
건네받은 탈취제를 뿌렸다. 상큼한 향기가 퀴퀴한 담배 냄새를 완전히 가려주지는 못하더라.

"...아뇨. 저야 감사하죠."

류청우가 뒷목을 쓸며 옅게 미소지었다.
새카맣던 하늘을 파아란 해가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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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일이었던 콘서트가 시작되기 세시간 전, 당담자와 함께 무대를 다시 체크했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리프트 끝까지 올라오고, 맨 위에 철제물 보이시죠? 저기 물 뿌리는 기계가 있거든요. 무대 뚜껑이 열리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그 부분은 직전에 바로 깔거고요. 미끄럼 방지 패드도 같이 세팅할 거라서. ...네네. 얼마 안 걸려요."

그러니까 돔 오픈은 콘서트 후반부에, 천장은 무대쪽만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고 마지막 무대는 비가 내리는 것처럼 연출될 것이다.
"천장이 열리면, 전 무대에서 쓰는 샹들리에는 어떻게 되죠?"

둥근 돔으로 된, 중앙부로 갈수록 높은 천장에 붙였다시피 가까이 와이어로 고정된 큰 샹들리에를 올려다봤다. 샹들리에가 필요한 공연이 오면, 붉은 천과 함께 내려오겠지.

'아무리봐도 천장에 고정된 것 같은데.'
"천장에 고정된 것 같이 보이긴 하는데요, 천장을 타고 둥글게 철제물을 설치했거든요. 거기에 철제 와이어 여럿이 붙어서 고정된 거예요."

"느리게 움직이는 리프트 달려 있어서 좌우로 움직이는 거 가능하니까 ...저쪽 보이세요?"

스탭은 손끝으로 무대 맨 윗단부에 난간이 쳐진 공간을 가르켰다.
"저기로 갈 거예요. 네. 천도 같이요."

그렇다면 별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단 말이지.

...다시 고개를 들어 샹들리에를 올려다봤다. 장엄하리만치 큰 샹들리에는 유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화려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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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시작 직전. 장내에 술렁임이 멎은 순간, 오히려 열기는 후끈 올라갔고 기대서린 긴장감이 큰 콘서트장을 빽빽히 메웠다. 그러다 터지는 한 마디에,

["Hellow Seoul!!]

"아아아아악!!!"

귓가가 멍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함성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그 이후로는 계획대로 순조로운 것 같았다.

한껏 장엄하게 꾸민 무대 세트장에 몰입한 팬들의 탄성은 끊이질 않았고, 맴버들도 늘 그렇듯 완벽하게 무대를 소화했다.

이번 무대장치에 돈을 털듯이 쏟아부은 탓에, 백스테이지에서는 다소 정신 없이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선아현과 차유진 둘이 준비한 무대가 끝나고, 곧장 이번 Temptation의 무대 준비가 시작됐다.

신부와 악마라는 컨셉에 맞춰 중세 교회풍의 배경을 꾸몄는데, 여기서 샹들리에가 내려오고 천장은 빔 프로젝트를, 뒷배경은 화면을 띄워서 마치 장엄한 교회를 묘사시켜놨다.
기둥이나 구조물도 밑에 바퀴가 달려있어 순식간에 세팅된 무대는 유명 관광지를 그대로 끌어다 놓은 것 같더라.

안개가 끼듯 흐릿하게 뿜어놓은 연기가 무대 밑으로 흘러내렸다. 신이라도 내려온 것 같은, 구름에 쪼개진 햇빛같은 조명이 무대를 비췄고.
[댕-]

청아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시작으로 인트로가 진행됐다.

그걸 백스테이지에서 보고 있자니, 비현실적으로 웅장한 광경에 순식간에 압도당했다. 손끝이 저릿해서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박문대가 살아있었다면.'

저 무대에.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지나간 어이없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박문대는 죽은지 2년이나 됐는데.

엉키는 머릿속에, 시선은 무대로 고정한 채 틀어막고 있던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손을 봤는지 편곡한 노래는 원곡의 강렬한 비트와는 달리 느릿하고, 불안정해서 위태로웠다.
타이밍에 맞춰 차유진이 뛰쳐나갔다.

["속삭여, 왜"]

오늘 새벽에도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물 밀듯 밀려왔었지.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 그 감정도.
이제는 경계가 희미해져간다. 꾸며낸 거짓이라고. 단지 농락이라고.

["그런 말들은 난 또 왜"]

농락일지라도, 난.

["듣고 있는지 몰라"]
그래.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박문대였던 순간은 꿈이 아닐까, 하고. 착각이 아닐까.

/귀가 먹먹해지고, 입매를 비틀어 비웃는 이세진이 보였다.

["...그렇지? 늪에 빠진 기분이야 이건]
모자랄 것 없이 진행되는 무대는 조금의 흠도 없었다.

박문대가 없어도 테스타는 이렇게 완벽한데.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갑작스레 죽은 박문대는 지금, 테스타의 구설수에나 등장하는 유일한 흠이다.

...늪처럼 질척거리는 감정들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중반까지 점점 분위기가 고조된 무대에서는, 비트 밑에 깔린 속삭임이 뚜렷해졌다.
["...temptation me"]

'여기, 박문대는 없잖아.'

남아있는 건, 백스테이지에 서있는 류건우 뿐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테스타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그럭저럭 성과도 내고.

[Stop!]
/노랫소리가 뚝 멎었다.
아니지, 내가 이대로 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든 것이 지워지잖아. 내 손으로 엄마아빠를 버리라고? 두 번 죽이는 짓이지 그건.

/귀를 손으로 눌러막은 맴버들의 노력에도 악마같은 목소리는 선명하게 속삭였다.

[근데 들어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나?

중학교 졸업식날 꽃다발을 안겨주던 엄마아빠의 모습, ...아니, 난 졸업식날 혼자였나? ...꽃은 구경도 못 했었고. 불쌍하다는 듯, 날 보는 동정어린 담임의 눈이 좆같았는데.
...아닌가? 그냥 날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졸업식날 엄마아빠랑 고깃집을 갔었는데. 괜히 기분이 들뜨고, 좋았었다. 사진도 찍었잖아. 내 방 책상 위에 있는데.

["너도 원하잖아 이걸."]

김래빈과 이세진 겹쳐진 목소리는, 낯선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roding...

...

....

....상태유지 지속! 삭■ 대상 : 박문대 활성화를 24시간 후 시작합니다.]

[오류 : 류ㅇㅇ, ㅇㅇㅇ 정상화 패치 97% 완료]
****
‘언제…돌아가셨더라?”

아니, 난 누굴 생각하고 있는 거지.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라?

안개가 낀 듯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기억은 아무리 떠올리려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깐 그 사이에.

어쩐지 모를 우울감과 초조함이 겹쳤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중요한 기억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걸 따질때가 아니지. 지금은 무대에 집중을 해야 한다.

쓸데없는 생각들로 멍을 때리고 있자 마침 맴버들이 무대를 끝마치고 다시 백스테이지로 돌아오더라.
숨을 몰아쉬는 맴버들 중에서도 특히나 선아현이 눈에 띄었다.
답지 않게 굳은 얼굴. 선아현은 전공이 무용 이었던만큼 체력이 좋아서 무대에서 날아다녀도 저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엊그제하고 어제 잠을 잤어도 그동안 겹겹이 쌓인 피로를 풀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겠지.

산소마스크를 들고 선아현에게 다가갔다.
곧장 받아들더니 모자란 숨을 갈급하게 들이쉬더라.

“선아현, 괜찮아?”

그렇게 선아현은 한참 말 없이 가파르게 호흡하다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상태가 영 불안한데.’

그런 선아현을 앉혀두고 무대 천장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다음 무대에서도 저 샹들리에랑 붉은 천은 그대로 쓸 거라 했지.

여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샹들리에를 올려다 봤다. 완전히 열린 천장 위로 쏟아지는 달빛이 샹들리에의 화려한 유리장식에 사방으로 쪼개져 서늘하게 빛났다.
그렇게 잠깐 멍을 때리고 있자하니 차유진이 곁에 와서 말을 걸더라.

“형! 뭐 봐요? …샹들리에? Oh, 예뻐요! I like it! 나 저거 마음에 들어요.”

여차하면 숙소에 가져다 놓고싶다는 그런 눈빛을 보내며 차유진이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느껴져 오는데도, 샹들리에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난 저게… 왜 저렇게 불안해보이지?”

무심코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을 하자 차유진은 웃더라.

“형 don’t worry~ 다녀올게요!”

내 어깨를 한 번 감싸쥐고 맴버들과 무대 밖으로 차유진이 나가서야 샹들리에에서 시선을 뗐다.

그렇게 새까만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무대에도 모든 조명이 꺼졌다.
잠깐의 암전 후에 들려오는 건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하게 편곡한 노래소리. 다시 모든 불이 켜졌다. 특히나 샹들리에가 다른 조명들 보다도 훨씬 더 밝게, 찬란하게 빛났다.

숨을 죽인 관객들은 조명이 켜지자마자 탄성을 내질렀고, 맴버들이 하나씩 가면을 벗었다.

…무대 컨셉은 가면 무도회였다.
어지러운 머리에, 묘한 기분에 집중을 못한 채 무대를 보다가, 문득 위를 쳐다보니 비가 내릴 것 같이 먹구름이 낀 하늘이 보이더라.

‘천장을 다시 닫아야겠는데.’

“저기요.”

지나가는 스탭을 한 명 잡고 말을 걸었다. 나를 돌아보는 얼굴은 정신이 없어보였다.

“네??”
딱히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닫을 것 같지만.

“저기 날이 흐린데. …”

“아, 네네. 말씀해 둘게요”

시선을 위로 올리자 따라 고개를 들더니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가더라.
‘뭐지.’

얼마 가지 않아서 샹들리에가 더 밝아졌다. 그 동시에, 갑자기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같은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설마. 구름에 가려져서 더 어둡다고 조명을 밝힌건가?

무대를 진행하던 맴버들은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별 차질 없이 진행하더라. 그제서야 이상함을 눈치 챘는지 천천히 천장이 닫히기 시작했고.

[“타탁,”]

노랫소리에 묻혀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 스파크 소리에 나는 곧장 샹들리에를 바라봤다.

…그 순간, 한껏 전류가 강하게 흐르고 있던 샹들리에가 폭발했다.
[“콰앙!!”]

순간 울리는 큰 소리에 맴버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올렸고.
무대 바깥에서는 높은 비명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뭐야”

연이어 터지는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흔들리자, 얼타는 듯 배세진이 멍하니 읊조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누군가가 뚜렷이 소리질렀다.

[피해!!!]
주춤거리던 맴버들은 그제서야 이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전부터 불안하더라니, 씨발. 무슨 일을 좆같이 해.

맨 끝에 있던 선아현도 이쪽을 향해 오는데, 하필 딱 샹들리에 중앙에서 비틀거리다 결국 주저 앉았다. 선아현을 보다가, 위를 쳐다보니 샹들리에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한쪽이 뜯겨 아래로 더 내려 오더라.

뭔가… 아, 백업. 백업을.

“상태창!”

[띠링-]

[roding…. ….]

로딩되는 둥근 타원만 계속 돌아갔다.

“좆같은,!”
맴버들은 우선 앞을보고 오는 상태라 선아현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나는 바로 옆에 있던 마이크를 낚아채, 곧장 무대 중앙으로 뛰기 시작했다.

일순 내게로 시선이 쏠린 맴버들을 향해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멈추지마! 너희 다 들어가! 빨리!”
[“타앙-, 삐이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마이크를 바닥에 내던졌다. 날카로운 소음에 날 돌아보던 맴버들도 백스테이지 쪽으로 뛰더라.

쓸데없이 돈을 처발라놔서 무대가 넓었다. 위를 다시 쳐다보니 천이 일부 젖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둘러놓은 빨간 천이 폭발에 휘말려 타오르고 있었다.
관객석까지는 피해가 닿지 않겠지만,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난 샹들리에의 잔해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선아현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막을 찢을 것 같은 비명소리가 순식간에 먹먹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정해두던 나사가 기어코 빠졌는지 하늘에서 불이 붙은 천을 감고 낙하하는 샹들리에가 사야에 잡혔다.

그 직후, 무대 중앙에 쓰러져있는 선아현 빼고는 모든 것이 시커맸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이 샹들리에는 느릿하게 떨어졌고.

난 쓰러져있는 선아현에게 팔을 뻗었다.
선아현을 끌어 안자마자 잡음 속에도 뚜렷하게 박히는 목소리.

“박문대!”

뒤를 돌아봤더니 이세진이 막고있는 사람들을 재치고 금방이라도 뛰어올 것 같더라.

“가만히!”

있어라 제발 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는 선아현을 최대한 감싸안고 아무도 없는 객석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뛰었다.
두 사람이라서 그런지 생각했던만큼 거리가 안 나온다는 걸, 공중에 몸이 떴을 때 직감이 왔다.

최대한 힘을 줘, 선아현을 바깥으로 밀쳐냈다.
곧장 위를 다급하게 올려봤더니, 직접적인 피해는 아슬아슬하게 피할 것 같았다.

선아현이. …나는 좀 위험한데.
몸을 웅크리자마자 몸뚱아리가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밀쳐진 선아현도 따라 바닥을 구르고 조금 더, 멀리 떨어지는 걸 보고 나서야 둔중한 타격이 나를 덮쳐왔다.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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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 매니저, 무대 장비 낙상 사고로 의식불명- (기사링크)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서울콘 간 사람 정황 좀 알려줘

-(링크) 여기 들어가봐
ㄴ아ㅠ 고마워 지금 바로 읽을게
서울콘 무대장비 부실

X발 장난치냐고 티원 일 X같이 할래??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린다 X발 X끼들아

우선 나 서울콘 스탠딩 거의 앞자리였음
(콘서트 티켓 사진)
우리 애기들 무대 잘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비가 내리는 거야

근데 구조상 무대 천장이 열려 있었어.
ㄹㅇ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 끼면서 소나기가 막 미칠듯이 내리는데 애들 무대하다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는데 그래도 프로답게 계속 진행함

비 들어오고 나서 스탭이 눈치 챘는지 천장도 곧 닫히려 하더라고.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기상예보에 비 예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비 오면 샹들리에 전력 중단부터 해야하는 거 아님??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되게 밝았거든? 와 ㅋㅋㅋㅋ
갑자기 그게 물 좀 맞으니까 타닥거리다가 구라안치고 콰앙! 이 소리 내면서 터지더라; 옆에 천 장식도 있었는데 젖어도 부분부분 불붙고 난리났음 그때 막 나랑 다른 러뷰어들 비명지르고ㅠㅠ 난리였는데 애들도 그냥 멍하니 있다가 어떤 사람이 크게 소리침 도망치라고
샹들리에 막 기우뚱거리고 그제서야 정신차린 애들이 막 뛰어가는데 아현이가 무대하면서도 계속 낯빛이 안 좋았거든 중간쯤 뛰었는데 비틀거리는 거야...샹들리에 고정한 실? 다 타들어가서 떨어질락말락 하는데 하필 딱 그 아래에서 주저앉더니 그대로 쓰러짐
옆에 어떤 분 소리지르다가 울고 어떤 분은 아현이한테 가려다가 경호원한테 제지당하고... 아수라장이었음 맴버들도 앞만 보다가 뒤늦게 뒤돌아보고 잠깐 멈칫했는데 그때 매니저분이 마이크 들고 다급하게 뛰시면서 애들보고 멈추지 말고 뛰라고 소리치고 마이크 냅다 던지고 아현이한테로 감
우리는 경호원들이 뒤로 물러나라해서 멀찍이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고... 발만 동동 굴리다가 진짜 순식간에 매니저가 뛰어가는 거야 근데 또 샹들리에도 아슬아슬해ㅠ 어떤 분은 뒤 돌고 계셨고 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음
딱 아현이 끌어안으니까 샹들리에 떨어지더라 사람들 뛰라고 소리지르고 진짜 크고 높이 걸려 있어서 깔리면 바로 죽을 것 같았거든 매니저분도 위에 잠깐 보다가 떨어지는 샹들리에 보고 관객석으로 몸 날리셨어.
근데 진짜 거리가 아슬아슬한거야 그걸 뛰는 순간 판단하셨는지 아현이 관객석으로 힘껏 밀쳤음. 다행히 빗물때문에 무대에서 한참 구르고 미끄러져서 관객석에 떨어지려할 때 뛰어가고 있던 경호원이 받았고...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충격 때문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 큰 샹들리에가 떨어지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나마 가벼울 것 같은 끝부분이 매니저분 등을 덮치더라 나도 그 순간 고개 돌리고 있었는데 큰세가 박문대 부르더라?
그때 뜬금없었는데 그 이름 딱 듣고 가슴 찢기는 줄 알았어. 들뜬 마음으로 콘서트 보러왔다가 내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막 눈물나고... 아마 큰세가 충격이 컸나봐...이번에 애들이 매니저한테 유독 의지 많이 한다는 글 봤는데 이상하게 위험한 순간은 문대가 많았으니까. 겹쳐보였나봐. 어쨌든..
듣기로는 샹들리에가 V 모양이고 매니저분은 끝부분이어서 중앙부터 떨어지고 끝부분은 속도가 좀 줄었대 그래서 충격은 상대적으로 덜한데, 떨어지면서 잔류전기 때문에 쇼크가 더 크다는 거야. 화상이랑. 진짜 얼핏 들었어 그래도 경호원님이 아현이 감싸줄 수 있었고 덕분에 아현이도 무사했는데
제발 매니저분도 무사히 깨어나셨으면 좋겠다ㅠㅠ 난 아직도 이게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해 매니저분 들것에 실려서 나가는데 애들 다 따라가려다가 콘서트 때문에 공지한다고 울음 참으면서 급하게 마무리 짓고 관계자가 사과하고 여튼 나도 트라우마 생겼는데 애들은 더 할 듯...
-아니 테스타한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뭐 마같은 거 꼈나? (4일전)
ㄴ마가 아니라 좆소가 낌; X발놈들 이번은 진짜 못참는다 X새끼들아
-매니저분 의식 아직도 없으시대 (4일전)
ㄴ아.. 죽는 거 아냐??
ㄴ뭔 말을 그렇게 해;; 목숨에 지장은 없다는데
ㄴ그래? 다행이다ㅠ
-매니저 하신지 ㅂㄹ 안됐는데 그래도 애들이 의지 많이 하던데 애들 어쩌냐?? (3일전)
ㄴㄱㄴㄲ... 게다가 류청우 사촌이라매
ㄴ헐 아 진짜?? 어쩐지 종나 잘생겼더라 우월한 유전자ㅠㅠ
ㄴ넌 지금 이 상황에 그딴 말이 나오니?^^ 싸이코야??

-근데 박문대가 누구야? (1분전)
----

류건우가 의식을 잃은지 꼬박 4일. 잠깐 짧게 휴식기를 가지기로 한 맴버들은 매일마다 류건우의 병실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특히 선아현은 저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짓눌려 오며가며 마주친 류건우의 부모님 앞에서 파리하게 질린 낯으로 차마 고개를 못 들었다.
와중에 류건우의 병실에는 늦은 새벽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들른다는 소문이 간호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는데. 그 사람은,

"건우형."

....

"건우야,"
"...야, 박문대."

이세진이었다.

*****
"넌 진짜, 어쩌자고 이러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세진은 류건우가 박문대였다는 걸, 박문대가 사실 류건우였고 죽음 이후 그의 몸에 되돌왔다는 말도 안되는 사실을 맹신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세진은 강한 사람이었다. 박문대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을지언정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맨날 우리 두고 너 혼자 가니까 마음이 좀 편하냐?"

이세진은 대답없는 류건우를 앞에두고 의자에 주저앉고서 그때의 기억을 천천히 되짚었다.
박문대가 죽고나서 학창시절의 절망적인 상황과 치기에 물들어 피웠던 담배의 씁쓸하고 매케한 맛을, 새하얗게 태워 내뿜는 연기가 견딜수 없을 정도로 그리웠다. 이세진에게 담배란, 트라우마로 얼룩진 물질이었다. 한 때 커리어를 박살 내버릴 뻔 한 사건에 중요한 기여를 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게 된 이유는 담배만큼 효과 빠르게 머릿속을 비워내기 좋은 물질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도 그랬다. 저번에 잠깐 단역으로 참여한 드라마 촬영 뒷풀이에서, 시끄러운 소음에 질려 담배갑과 라이터를 슬쩍 들고 조용히 일어났었던 건
굳어버린 습관처럼 담배로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그렇게 이세진은 사람도 없고, 한적하고 어두워서 설령 사진이 찍혀도 누군지 분간하기 힘든 깊숙한 뒷골목으로 들어갔었다.

그렇게 한 대 태우고 담배꽁초를 짓밟아 불씨를 끄고 있을 때.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이름이 들려온 순간,
이세진은 본능적으로 인기척을 지우고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박문대는 죽었어."]

처음 듣는 낯선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와 어투가, 박문대와 닮았다는 생각은 지나친 망상일거라 생각하며, 이세진은 목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메인 보컬 자리가 비어... ...농담이고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반갑네요."]

들리는 신청려의 목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이세진은 휴대폰을 들어, 동영상을 켰다. 그냥. 혹시 나중에 쓸모라도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너도 잘 지내냐?"]

["후배님이 없어서 그닥. 꽤 슬펐는데.]

신청려는 웃는 얼굴로 슬픔을 내비췄다가, 순식간에 드리운 그늘을 지워냈다.

["같은 맴버들 소식은 궁금하지 않아요?"]

같은 맴버들이라 함은.

'말도 안되지만.'

...우리인가?
이세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신청려와 저 남자의 정신나간 소리에 흔들리는 본인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네가 없는 일이 나에게 당연하고, 난 박문대 네 죽음을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잘 지내겠지."]

한참 뜸들인 남자의 말은 어쩐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 끝이 흐렸다.
깊이 그늘진 모자 밑의 얼굴이 박문대와 닮았으면. 그리고 일그러져있길 바라는 건, 저와는 상관없다는 어투에 심장이 차갑게 식어서 밑으로 떨어지는 건.

네가 어떻게든 살아있다고.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내 절박한 심정이 저런 개소리라도 간절히 붙들게 만들었다는 것이겠지.
["후배님답지 않네요. 외면하고 잊으려고 안달난 사람같이. 예민하게 굴고 있어요."]

이어지는 신청려의 말이 저 남자의 행동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난 아직 너를 놓아줄 준비가 안됐나보다.
잠시동안 말이 없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뚜렷한 목소리가 이세진의 귀에 박혔고,

["신재현. 나는 류건우의 삶에 만족해. 박문대였던 나는 죽었어.]

["너도 네 삶을 살아. 신경쓰지말고.]

별 미친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세진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상하게,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박문대의 목소리와 겹쳐 보여서. 꼭 제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난 너 없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목에 걸려 목구멍을 꽉 틀어막았다.

["....메인 보컬 자리. 반쯤은 진심이니까."]
["박문대랑은 다르게 몸이 바뀌어서. 할 생각도 없고."]

남자는 귀찮다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한번만 들려주면 안돼요? 오랜만에 듣고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청려가 재차 요청하자, 내키지 않는 다는 듯 부르는 노래는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파란 꿈을 꿔"]

마법소년. 세월 속에서 흐려져가는 박문대의 노랫소리가 단번에 뚜렷해졌다. 목소리는 분명 다른데... 딱 저렇게 불렀었지.

이세진은 순간 떨어뜨린 휴대폰을 가까스로 허공에서 붙잡았다.

저 남자는 대체 정체가 뭐길래.
동요로 얼룩진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남자가 가고나서, 이세진은 천천히 뒷골목에서 나와 신청려 앞에 섰다.
진득한 시선이 이세진에게 따라 붙었다.

"아, 세진씨도 있었네요. 건물 그림자 때문에 안보였어요."

-"이게 무슨소리에요?"
이세진은 동영상을 끄고 제 앞에 선 남자의 웃는 낯짝을 쳐다봤다. 신재현을 찾으러 나온 그의 매니저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완전히 발걸음을 돌리자, 그제서야 신청려는 입을 열었다.

"하하, 어디까지 들었어요?"
-"무슨 소리냐고. 저 사람이 박문대야?"

이성적으로, 아닌 걸 알면서도. 치덕치덕 들러붙은 감정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그렇다고 하면. 믿을 건가요?"

신청려의 시선이 이세진이 쥐고 있는 휴대폰으로 내려갔다.

...
잠깐의 대치 끝에 손을 뻗은 신청려보다 뒤로 빠진 이세진이 한 발 더 빨랐다.

증거를 없애길 실패한 신재현은 의외로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순순히 빼앗길 관두고 말을 이었다.

"세진씨가 아는 후배님은 애초에 박문대가 아니었어요. 빙의 알아요?"
막상 말로 들으니 생각보다 더 현실감이 없어서,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게 말이 된다고..."

"안 믿을 거면 믿지 말아요. 후배님이랑 지내면서 이상한 느낌 못 받으셨나봐요?"

...했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던 적은 있었지. 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것 하며
기억상실증이라고 했으면서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들. 말하는 것마다 묘하게 밀리는 년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처럼 쫓기듯 성과에 집착했던 것하며 심증은 꽤나 있었다.

"원래는 류건우라는 사람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박문대의 몸에 들어온 거죠.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저번 박문대의 죽음 이후에 원래 몸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이세진은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걸 똑같이 읊으면 정신병원으로 처박힐 정도로 비현실적인 단어가, 문장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반쯤은 믿기고, 나머지 절반은 믿기지 않았다.
박문대의 생존 소식에 설레다가도 살아있었다면, 왜 진작 저를 찾아오지 않았는지. 그동안 그의 죽음으로 쓰린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자신의 과거에, 원망스럽고 화가 나다가도 다시 그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환희했다.
이세진은 눈을 감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일전의 대화를 되새겨본다면, 분명 박문대는... 박문대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자신은 모를 그의 고충이 있겠지. 그래도. ...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이세진의 표정에 신청려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마 곧 연락이 올 것 같은데. 걱정 말아요. 조만간 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남기고 신청려는 이세진을 남겨두고서 먼저 들어갔고. 그 이후, 정말 며칠이 지나지 않아 류건우가 매니저로 들어왔다. 박문대는 죽었다며 제 입으로 말하던 류건우였다.
이세진은 처음, 그와의 악수에서 고의적으로 붙잡은 손을 쥐어짜냈다. 다시 왜 돌아왔냐며 따지고 싶었다가도 뒤늦게나마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그가 말한다면 믿기지 않은 나머지 절반을 오롯이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류건우가 박문대라면 분명 본인이 박문대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터라고 이세진은 확신했다. 그렇게 류건우가 말하길만을 기다렸다.

그러길 며칠. 절반쯤 믿고 있던, [사실 박문대가 류건우]라는 명제는 뜻하지 않게 이세진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전혀 원하지 않던 형태로.
성격이 박문대와 닮았다는 것부터가 별로 감출 생각이 없어보였지. 짧은 시간에 맴버들 모두가 류건우에게 마음을 열었던 건, 그가 오로지 박문대의 성격을 지녔고 모든 부분에서 박문대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세진은 여기서부터 80프로 정도 넘어갔었다.
마치 박문대가 살아돌아온 것 같아서. 맴버들도 무의식적으로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건우형이라 다들 그렇게 불러도, 속으로는 박문대를 떠올리며 지독하리만큼 밀려오는 향수에. 그리움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다 열어버렸겠지. 불가항력이었다.
어쭙잖게 그를 따라했다면 도리어 차갑게 내쳤을 맴버들이지만, 사실 그대로 류건우는 박문대 그 자체였음으로. 이세진은 류건우가 선아현을 구한다고 뛰쳐들어갈 때 비로소 확신이 섰다. 저건, 박문대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뛰쳐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상대와 안면식을 튼지 한달도 넘기지 않았다면. 무심코 부른 박문대의 이름에 당연하다는 듯 뒤를 돌아본 너는. 가만히 있으라 했지. 난 류건우를 부른 적이 없는데. 말이 안된다며 거부하던 일말의 이성이 박문대의 의식과 함께 흐려졌다. 이세진은 그 자리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돌아온 박문대는 또 다시 죽음과 가까워져서. 가장 두려웠던 모습으로. 지긋지긋한 새하얀 병원에, 침실에 누워서 맞이했다. 이세진은 이번에야말로 박문대를 잃으면 정신이 무너질 것 같은 아득함을 느꼈다.
“제발 좀 빨리 일어나.”

나 너한테 할 말이 많단 말이야.

진작 말할 걸. 물어볼 걸. 나는 또 시간을 놓쳐서. 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면.

섬뜩한 기억이 이세진의 뇌리를 스쳤다. 그 날 새하얀 안식보에 가려져 있던 네 모습. 그 밑으로 비죽 튀어나온 발. 장례식때 굳게 감긴 눈.
돌아온 건, 단 한줌의 재.
심장이 찢기는 것 같은 아픔에 숨을 급하게 들이쉬었다. 이세진은 손을 뻗어 류건우, 박문대의 손등을 쓸었다가 꽉 붙잡았다. 맞닿은 손이 세진의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서도 안심하지 못한 이세진은 기어코 류건우의 가슴께에 귀를 가져다댔다
[두근, 두근]
일정하게 울리는 박동소리를 듣고서야 파리하게 질렸던 안색에 피가 돌았다. 어두운 새벽은 길었고 그 긴긴 시간동안 이세진은 류건우의 심장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 그제서야 며칠간 못잤던 잠이 밀려왔다.
-----
류건우가 의식을 잃은지 7일.
이세진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테스타하면 나오던 연관 검색어 박문대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검색창에 손수 박문대를 쳐봐도 뜨는 건 죄다 삭제된 게시물. 위튜브에 아주사 1위를 쳐봤더니 나오는 건, 차유진이 1위하는 영상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차유진이 1위를 한 것이며 박문대를 언급한 모든 게시물은 지워지고 있는지. 사고가 더디게 흘러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뚜렷이 떠오르는 결론은,

이 세상에서 박문대가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그대로 이세진은 의자를 박차고 방밖을 나와 다짜고짜 가장 가까이 있던 류청우를 붙잡았다.

-"형, 문대 기억해요? 이,이상해요, 지금 문대가 사라지고 있어요."

류청우는 당황스런 눈으로 이세진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열었다.
"세진아, 그게 무슨 소리야. 문대를 내가 어떻게 잊어. 너 왜 그래?"

작은 소란에 주변을 서성이던 김래빈과 배세진이 류청우와 이세진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래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이세진은 대답없이 떨리는 손으로 검색창에 박문대를 검색했다. 세쌍의 눈이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

분명히 차고 넘칠 게시물들이 삭제됐다는 글이 줄줄이 뜨더니 곧, 삭제됐다는 글마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게...무슨, 오류 아냐?"

배세진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마침 방문을 열고 차유진이 나오자, 이세진은 곧장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들 왜 같이있어요?"

자다깨서 멍한 표정으로 이세진을 바라보던 차유진은, 마주보이는 굳은 표정과 경직된 분위기에 괜히 침을 삼켰다.

"유진아"

"네?"
"네가 아주사, 몇등했지?"

별 걸 묻냐는 듯 당연한 표정으로 입을 떼려던 차유진은,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안개에 잠긴 것 같이 흐릿했기 때문이다.

"... wait ... 나 2등, 아니, 1등... 2등 했어요?"
굳은 표정으로 있던 차유진이 별안간 눈시울을 붉혔다. 머릿속에 희게 피어오른 연기가 잊지 말아야할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차유진은 답지않게 너무나도 서러운 기분을 느꼈고. 아린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나 기억이 안 나요. 1등이 누구였어요?"
차유진의 반응을 지켜보던 넷은 단숨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머지 않아, 곧. 박문대를 잊게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이닥쳤다.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린 차유진이 이세진의 옷끝을 붙잡았다.

"세진 형 알아요? 가르쳐줘요. 나 기억해요. 우리 그 사람이랑 같이 데뷔했어요."
이세진도 덩달에 흐릿해지려는 이름 세 글자를, 한참 되짚다가 겨우 떠올려 입밖으로 내뱉었다.

"...박문대. 문대잖아. ...기억나?"

그제서야 기억을 떠올렸는지 코를 훌쩍이며 차유진은 당황스러운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문대형 기억이 안 났어요. ...갑자기 그랬어요."
그 모습에 상황파악을 하고 있던 류청우가 위튜브로 아주사 1위를 검색했다가, 싸그리 사라진 박문대의 공백에 휴대폰을 끄고 이세진을 바라봤다.

"세진아, 너 뭘 알고 있는거야? 래빈아 너는 가서 아현이 불러와."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긴급소집이 떨어졌다.
----
이세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뱉어내기로 결심했다. 박문대, 류건우의 비밀을 들추려는 무례를 무릅쓰고서라도 박문대라는 사람은 저에게 있어서, 그리고 맴버들에게 있어서 잊혀져서는 안될 존재였다.
물론 박문대를 잊게 된다면 그를 잃었던 아픔도 같이 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팠던 고통은 결국 박문대가 준 추억과, 유대. 그리고 사랑, 우정. 모두 그러한 것들에서 비롯되었고 감히 여태 받았던 고통으로는 퉁칠 수 없는 모든 것들이었다. 그를 잊는다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박문대에게 있어서, 이세진, 그리고 테스타에게 있어서도.

망각 끝에 남는 건 단지 공허. 박문대가 없는 이세진과 테스타는 깊은 구덩이가 음푹 패인 길에 얇은 종이를 얹은 것과 같았다. 잘못 디디면 분명 나락으로 떨어질. 박문대와, 그에 관한 기억들 모두를 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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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8, 2021
선아현 난 무표정이면 차갑고 아름다운 남자일 거라고 생각함. 아현이 흑화시키고 싶은데 감히 선아현을?? 흑화해도 12세 이상의 나쁜 언어는 절대 안 쓸 것 같음 그래서 거따가 류건우 집어넣어보고 싶음((??
브이틱 류건우로 해서 어느날 테스타 선아현과 몸이 바뀐 둘.
진짜 들어가고 눈 뜨자마자 들통날 듯ㅋㅋ 류건우 어쩐지 포근하고 처연하고 아름다운 가녀린 나에 아기 종달새 엘프같은 표정이랑 분위기 풀풀 풍기고 선아현 이쪽은 존나 이쁜데 냉철하고 만만찮을 것 같고 까탈스러운 미인광공st 로 순식간에 변하는 거 생각만 해도 침 오톤질질처흘림
류건우 일러 없을 때 하는 적폐인데 몸 되게 탄탄하고 허리는 얄쌍한데 흔히 한국인들이 말하는 짐승돌st라고 밀고 있는데... 왜냐면 류청우랑 사촌이니까... 가슴도 크다고 밀래...난 그게 좋아 쨌든 박문대는 우리 강강쥐는 무대를 찢어. 하면
Read 28 tweets
Nov 29, 2021
청려문대 캐붕⚠️

부부싸움으로 개싸우다가 박문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처돌아버릴 것 같은 거. 그래서

"아~ 할아버지는 모르시죠? 엊그제도, 그 전에도. 사귀기 전에도. 제가 그러지 말라고 말했는데. 어쩌겠습니까. 뇌가 늙으면 자주 깜빡하실 텐데. 제가 감안해야죠."

이렇게 비아냥 대는 거.
이래서 신청려 하던 말도 잊고 충격 받아서 멍하니 박문대 쳐다볼듯

"그거..말이 너무 심한 것,"

"뭐래...영감탱이가..."

신청려 말끊고 박문대 크리티컬로 또 중얼거림. 회귀 나이 삼백년 이상 신청려는 할 말을 잃었다가 진짜 밀려오는 설움에 입을 꾹 다뭄.
박문대 그거보고 코웃음 치는데 신청려 꾹 다문 입술 밑에 턱이 호두턱 되는 거. 신재현 저거 찌푸린 눈썹도, 그 끝이 점점 쳐짐. 어라? 싶은데 신청려 뿌앵ㅠㅠ 이런 말이 어울리게 울어버리는 거.

"...후배님 진짜 나빠요. ...너무해요..."
Read 19 tweets
Nov 24, 2021
숭하긴하지만 류청우가 부끄러워 하는 게 보고싶어서. 취미겸 작은 스케이트 보드를 산 박문대. 이세진과 덥앱 중이었음. 마침 오늘 스케이트 보드 배송이 와서 러뷰어분들께 보여준다고 주섬주섬 뜯었는데, 지나가던 류청우도 차유진 핫초코 타주고 커피잔 든 채로
옆에와서 조용히 구경했음. 화면에는 보이는데, 얼굴은 잘림. 의자가 없어서 문대 옆에 그냥 서있었음. [이세진 박문대 류청우] 이렇게.

🐶스케이트보드를 샀는데요, 심심풀이로 산 거라. 작고 싼 걸 일단 사봤어요.

깜찍한 강아지가 그려진 스케이트 보드를 꺼냈는데,
🐻문대문대~ 그거 애기들 거 아냐?

좀 사이즈가 작았음.

한참 들고 만지작거리던 박문대, 설명서 보다가 일단은 한번만 올라가 보기로 함.
그렇게 의자를 저쪽 구석으로 밀어두고 스케이트보드를 마룻바닥에 내려놨음.
Read 21 tweets
Nov 1, 2021
[띠링]

Wlive
-안녕 러뷰어. 저는 문대🐶

am3:00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정된 화면에는 검은 후드티의 박문대가 방에 혼자 있었음.

"안녕하세요. 새벽에 알림 갔겠네요. 죄송해요. ...제가 깨웠나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던 박문대가 주저하는 것 같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툭, 툭, 툭. 간헐적으로 손톱이 책상 위를 치는 소리가 났음. 그리고 허공 어딘가를 유심히 보더니 입술을 뗌.

"오늘은 이야기가 무거울 수도 있어요."
"네. 제가 새벽 감성에 차서. ...최근, 주변 사람 중에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문대 옆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키보드로 치기 시작함. 마우스도 딸깍거리고, 그러면서 말은 계속 이었음.
Read 73 tweets
Oct 26, 2021
왜 흔한 클리셰... 동물 주웠더니 갑자기 사람으로 변했다!? 이거 원래 동물 맞았는데 갑자기 인간으로 변한 테슽 친구들.

차이는 이거지 박문대는 변하자마자 자기 손 내려다보고 손가락 다섯개.. 주인이랑 같은 신체군. 하면서 옷 껴입고 이족보행에다 내가 오면 청소에 밥까지 싹 해놓고 소파에서
폰만지면서 나 마중 나올 것 같고 차유진은 그냥 빤쓰도 못 입고 네발로 기어다닐 것 같은... 야옹야옹 거리는 거 한달은 가르쳐야 겨우 하는 말 응애일 것 같음ㅋㅋㅋㅋㅋㅋ
눈치껏 옷 다 입는 애들 : 이세진 박문대
간신히 바지만 : 류청우 배세진
상의만 : 김래빈(할머니가 쪼마난 니트 래빈토끼한테 입혀줬던 거 길들여져서)
옷 안 입을 것 같은 애 : 차유진

나중에 부끄러워 할 친구 : 김래빈

그건 모르겠고 다른 인간들보다 거기 크다고 자랑할 친구 : 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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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4, 2021
한 나라의 명장이었던 류건우... 근데 이제 환생해서 전생 기억 그대로인데 박문대로 아이돌함.

-우리 집안이 좀 그래. 울엄마 신내림 받았고 다른 동생들은 괜찮은데 나만 약간 그런 기운 있거든. 저번에 박문대 실제로 봤는데 기운 진짜 장난아니더라 그 뒤에 뭐 장군? 있었는데...
ㄴ구라같지만 좀 흥미 돋는다 더 말해줘 어케 생겼음?
ㄴ박문대랑 완전 반대야. 류청우랑 오히려 더 비슷할 것 같은데 키도 엄청 크고 좀 피곤해보이는 냉철한퇴폐미남... 아이돌해도 될 것 같음
ㄴ야 무슨 장군이 그렇게 생겨 구라진짜 오지네
ㄴ러뷰어 망상질이죠?
ㄴ진짜라니까?ㅠ 다시 생각하니 장군 맞는듯 박문대 조상 중에 장군있나? 화살 맞고 죽은 건지 심장 부근에 화살 꽂혔던데 화살맞고 죽은...
ㄴ응 없음

신기 있는 러뷰어 좀 억울했지만 그냥저냥 묻힘. 그러다 사극에 단역으로 박문대 출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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