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버스로 청려문대 보고 싶다 BO-GO-SIP-DA

류건우는 네임이었음.
그리고 건우로어디 병원에 상담을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음.
이런 정도로 병원비를 낼 생각이 없는 게 가장 컸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 몇년에 한번, 어쩔 때는 몇달만에 네임의 위치가 바뀌곤 했던 거임.
이름은 신재현.
적어도 건우가 아는 중에 신재현은 건우 나이로 19살인가 20살 쯤 데뷔한 브이틱의 리더뿐이었음.
나이도.. 건우가 2살쯤 발현한 네임인 걸 가늠하면 나이차도 꼭 맞았지만.
뭐 설마 쟤겠어. 건우는 열심히 돈 벌고 있는 눈 앞의 청려를 보며 돈을 벌기 위한 사진을 찍어댈 뿐이었음.
그리고 문대가 되고 나서 노네임인 걸 확인하고 났을 땐 조금 아쉬워했음.

처음 있던 오른쪽 골반 위부터 왼쪽 날개뼈와 어깨 사이, 왼팔꿈치 팔 안쪽, 오른쪽 아킬레스건 아래,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옆면을 타고 흐르는 자리
하나하나 다 확인하고 건우는, 인정했음.

이제 내 몸은 없구나
어디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례적인 경우인 듯
매번 자리를 옮겨가는 건우가 가졌던 네임만의 '특별함'이 건우에게 남은 뭐라도 되었던 듯이. 그 아쉬움의 뒷맛은 썼음.

그리고 아주사 촬영에 참가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그 날.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명치부터 갈빗대로 향하는 방향에 다시.
다시 '그' 네임이 자리잡았음.

건우가 처음 네임이 자리를 이동했을 때 네임연구기관에 익명으로 문의하고 받은 답장의 글이 떠올랐음

[본 연구소는 네임을 영혼의 결속으로 보고 있으며, 영혼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기관입니다. 해외에서 심장이 멈추고 11분이 지난 반려가 다시 눈을 뜨고나니
상대방 네임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저희는 영혼이 몸을 벗어났다가 다시 몸으로 돌아온 사례로 생각하고 있습다.]

…운명은, 없다. 그런 개 같은 운명은 없다.
건우를 혼자가 되게 했고, 문대를 혼자 외롭게 죽어가게 한 운명 따위 없어야 했다.
하지만 지독히도 달았다.
캐스팅콜까지 달리고 달려온 문대가 문을 열고 들어온 청려와 눈을 마주했을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음.

왜 건우일 땐 몰랐을까. 단 둘이 있지 않았어서? 거리가 너무 멀었나?

온 내장이 녹아내리듯. 갈빗대 안에 심장만 남아 제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고동쳤음.
심장 바로 표면에 자리한 네임
역시 피부를 달구며 어서 저 이를 안으라며 외쳤음.

하지만, 이건.. '내'가 사랑을 하는 게 아니잖아. 이미 그러라고 되어있는 것 뿐이지.

영업미소로 일관되게 문대를 대하는 청려에게서도 한톨의 기색도 느낄 수 없었음.
네임을 만나고도 다른 사람과 결혼해 잘 사는 사람들도 많았음.
카메라가 꺼지고 명함을 내밀던 청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문대를 바라보았음.
🔨 ..
🔨 혹시, 죽었다 깼어요?
🐶 무슨...
🔨 네임 있어요?

상대방의 네임 여부를 묻는 건 실례라는 걸 모르기라도 하는 듯이 청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지었음.

🔨 위치가 바뀌었거든요.

'위치'?
🔨 다른 것도 바뀌긴 했는데. 그 전에 뭐였는지까진 기억이 안 나요.

이름도 바뀌었던건가? 그런데 그건 기억 못하고 있는거고?

🔨 반응을 보니 그쪽이 내 네임인가봐요?

문대는 주변 눈치를 살폈음. 이 말이 새나가서 좋을 게 없었음. 백만 안티를 등에 엎고 나가떨어져 시스템사망이나 하겠지.
🔨 아까부터 여기. ..감싸고 서있는 건 알아요?

문대는 저도 모르게 무언가 감추듯 갈빗대를 가르며 반대 팔을 쥐고 있던 오른손에 힘을 풀었음.

🔨 그쪽에 있나보네. 나는, 여기요.

청려가 제 볼을 쿡 찔렀음.
문대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르기 무섭게 청려가 먼저 답했음.

🔨 요즘 화장 기술이
좋아져서 다행이예요. 오히려 얼굴이라 컨실러를 두껍게 칠해도 아무도 의심 안 하고. 아, 쉬는 날엔 좀 번거롭네요. 그래도 없진 않은가봐요. 쉐도우 네임 패치 얼굴용 직구해서 쓰니 편하더라구요.

저 멀리서 청려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음.

🔨 연락해요. 우리, 네임이잖아요.
물론 문대는 연락하지 않았음.

데뷔가 확정되고, 숨 쉴 틈도 없이 앨범을 준비하고, 은근한 기싸움을 하고, 여론조사를 한다는 핑계로 온갖 곳에 정보를 모으며 머리를 굴리면서.

바빴어. 난 바빴던거야.

가끔 시위하듯 욱신거리는 어느 피부 위만 손으로 꾹 눌러버릴 뿐이었음.
(본격 날조와 적폐)

하필 데뷔곡이 브이틱과 활동기가 겹치게 됐을 때도 그저 은행 열매 밟은 느낌으로 무시하려 했지만, 설마 사람 많은 복도에서 번호 교환을 신청할 줄은 몰랐음.

🔨「내 번호만 주고 갔더니 연락을 안 하더라구요. 후배님은 네임이라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편?」
퇴근길 사진까지 야무지게 찍어주고 본격적으로 차에 시동이 걸릴 시간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이 왔음.
속이 쓰린건지 심장이 뛰는건지 피부가 홧홧한건지 알 수 없었음.

🔨 「(사진)」

류건우의 글씨체로 적힌 박문대의 이름.
유서 속 반듯하게 적혀있던 박문대의 글씨체와는 확연히 다른
약간은 동그랗고 한쪽으로 휘어진 모양새를 한 류건우의 글씨체.

운명은, 지금 그의 영혼을 박문대라고 지칭하기로 한 듯 했음.

🦌 무, 문대야..!
아현의 당황한 목소리가 퇴근길 차 안의 분위기를 깼음.
🐻 왜.. 왜, 무슨 일 있어?

시야가 흐릿했고, 청려처럼 뺨에 네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볼이 불이라도 데인 듯 뜨거웠음.
당황한 배세가 옷에 세일러 카라처럼 달려있던 장식 스카프를 풀어 문대의 뺨에 대어줌.
천조각이 젖으며 빠르게 식어가는 그 미지근함이 닿고서야 문대는 자신이 울었음을 깨달았음.

두 번 마주쳤고, 한 번의 연락을 받았음.
그리고 이렇게나 흔들렸고,
이건 문대에게. 류건우에게는 너무 위험한 일이었음.
흔들리는 건 곧 약점이고 살아남을 수 없게 하는 일이었음.
하지만 살아남아서, 그 뒤엔?
또 혼자인가?

이건 위험해.

🐶 데뷔한 게 실감이 안 났었나봐요. 갑자기 안심되서 눈물이 난 것 같아요. 걱정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건우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 살아갔음.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오늘을 희생해야 했으며, 그건 건우가 선택한 게 아님.
그러도록 정해진 길 위에서 수긍했을 뿐이었음.
다만, 그럼에도, 딱 한 가지만. 단 하나라도. 그 외엔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그 어떤 것 하나를 선택한 것이 사진이었음.
그나마도 돈이 되기에 할 수 있었고 돈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버렸을.

29살의 건우는 모든 것에서 무뎌질 수 있게 자기가 가진 날의 이를 모두 빼버리고 무딘 날이 정상인 마냥 믿었으며 그 과정도 기억도 흐리게 감춘 듯 살았음.

그리고 지금 문대는 살아야 해서 살고 있었음.
그 때도. 지금도. 난 원하지 않았어.

진짜로?

난 해야만 해서 했을 뿐이야.

진심이야?

난 혼자 어떻게든 살아야 했어.

즐겁지 않았다고 확신해?



문대는 답 할 수 없었음.

🔨「한 번만 만나주지 않을래요?」
🔨「싫으면 뭐. 방송에서라도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볼게요.」
🔨「딱히 선택권은 없어요. 이미 난 후배님으로 지정했고, 소속사랑 컨택 됐을 거예요.」
🔨「녹화 끝나고 도망가기 전에 잠깐이라도 시간 내주면 돼요.」

액정을 들여다보던 시야가 깜빡이고
[ 진실 확인! ]
홀린 듯 그 버튼을 눌렀다.

뛰어내리는 그.
귓가에 그의 첫마디가 맴돌았다.

「혹시, 죽었다 깼어요?」

그랬나.
확신을 얻을 시간이다.

촬영 날 확인한 그의 상태창 "교정"

네가 죽을 때마다 네임 위치가 바뀌었나. 너도 다시 살아갈 때마다 네임 위치가 바뀌었던건가.
이제 내가 다시 살아가기 때문에 네임이 또 다른 곳에 나타난거고.
그리고, 너는.
네임을 가졌다는 사람이,
네임을 두고
그렇게
죽어갔나.

배신감이 들었음.
무슨 낯짝으로 내게 네임이냐며 다가왔지? 무슨 자신감으로 연락을 해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

내 이름도 기억 못 하 면 서
청려는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매니저를 향해 가는 문대를 빠르게 뒤쫓았음.

이럴 줄 알았지.

주머니에 든 것을 만지작거리고 매니저가 닫으려던 대기실 문을 꽉 잡고 웃었음.
어느새 손에 들어올린 클렌징 티슈로 볼을 쓸며 매니저를 바라보았음.

🔨 제가 문대씨랑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문대는 눈 앞에 청려를 똑바로 바라봤음.

🔨 네임 같은 거 안 믿어요?
청려는 마치 포식자라도 된 듯함 기분이 썩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눈 앞에 떨고 있는 게 사냥감이 아니라 제 네임이라는 걸 인지한 심장 가슴 한 켠이 아릿하게 울려왔다.
🐶 안 믿어.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청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대를 바라봤음.

🔨 그럼 제가 첫 눈에 반했다고 하면. 그건 믿어줄래요?

문대는 청려와 한 공간에 남은 뒤부터 요동치던 심장이 싸늘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음.

🐶 그 전엔 뭐였어.
🔨 네?
🐶 위치만 바뀐 거 아니라며.
🔨 음.. 기억 안 나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문대는 차갑게 식은 눈을 돌렸다가 대기실에 있는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음.
몸이 바뀌고 나서 한참이 지났는데, 오늘따라 유독 낯선 얼굴.

너는 좋겠다. 내 네임이 널 보고 첫 눈에 반했대. 내가 뺏어버렸구나.

🐶 첫 눈에 반했단 건 믿어줄게.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맞췄음.
🐶 네임 같은 건 안 믿어.
🔨 왜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바라보는 청려의 눈동자 속에 문대가 보였음.

🐶 그냥. 그러라고 설계 되어 있는 거잖아요. 어쩔 수 없어서 해야만 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서요.

🔨 역시, 후배님도 회귀했어요? 언제까지 알고 있어요? 우리가 진짜 운명인가봐요.
방긋 웃으며 당겨진 볼근육에 새겨진 박문대라는 이름이 비틀어졌음.

🐶 회귀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 왜 갑자기 존댓말해요? 방금까지 반말 잘 했으면서.

발걸음을 떼어 문대 쪽으로 다가왔음.

🐶 제가 흥분해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너무 딱딱하게 굴지마요.
뉴스에 나오는 네임만 믿고 자기 네임한테 막 대하는 그런 사람 아니예요. 그냥 운명이면서, 만나보니 첫 눈에 반했고, 회귀한 것처럼 말하니까 완벽한 한쌍이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정도.

청려가 문대의 손에 제 손을 얽어올렸음. 피부가 맞닿자 네임이 새겨진 위치로 심장이 옮겨간 듯
거세게 뛰었음. 청려가 문대의 손을 네임이 새겨진 볼 위로 얹고 제 손으로 감싸 고정시켰음.

다 늘어진 구시대 문물 속 늘어진 테이프처럼 자글자글하다 느꼈던 '현재'를 찢어발긴 듯, 우습게도 온 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깊은 만족감이 차올랐음.

🔨 미안하지만.. 아니 미안하지 않지만.
🔨 네임이 여기 있는 이상, 내가 갑이예요.

문대가 움찔 제 손을 당겼지만 청려의 손에 잡혀 쉽게 빠지지 않았음. 빼려면 뺄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 볼에 상처라도 난다면.. 병원이라도 간다면. 일이 복잡했음.

🔨 봐요. 손 뺄 수 있으면서 상처날까봐 그래요? 고마워요. 네임이 걱정해주니까 좋다.
🐶 미친 놈.

청려가 문대에게 가까이 섰음.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다가갈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음.

- 재현씨, 이동 하셔야 하는데 혹시 대화가 길어지실까요?

청려가 아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음.
아니, 거슬린다는 듯이.

🔨 금방 나가요. 잠깐이면 돼요.

문대의 손을 가두고 있는
손의 반대 팔로 문대의 허리를 감고 확 잡아당겼음.
청려가 문대의 오른쪽 뺨에 입을 맞추었음.
문대의 이름이 새겨진 청려의 오른쪽 뺨에서 두 사람의 손을 떼어 낸 청려가 문대 허리를 감싼 팔을 더 강하게 당겨안았음.

🔨 연락할게요. 이번엔 받아요.
문대가 어금니를 꽉 깨무는 소리가 들렸음.
🔨 이 다 상해요. 연락, 받아야 할 거예요.

🐶 네임이라고 막 대하는 사람 아니시라고 하시더니, 저 아직 허락한 적 없습니다.
🔨 음..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문대는 청려 눈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것과 마주했음.
씁쓸함, 공허함.
어떤.. 원하지 않은 것들을 강제로 해야만 할 때 미쳐간.
🔨 봐요.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요. 흔들리고 있는 건 후배님인데.

청려가 먹이를 앞에 두고 왜 주지 않냐고 주인에게 보채는 새끼 짐승처럼 제 볼과 문대의 볼을 맞댔음.
청려의 볼을 타고 흐르는 물기가 박문대 이름 세 글자를 적셨음.

- 재현씨! 저희 진짜 가야해요!!

🔨 이런..
반쯤 넋이 나간 듯 보이는 문대에게서 몸을 떼고 문쪽으로 걸어가던 청려가 흘끗 뒤를 돌아봤음.

🔨 이리 와봐요.

문대가 홀린 듯 다가오자 청려가 입술을 겹쳤음.
그제야 숨이 트인 듯 혈색이 돌아오던 문대가 정신을 차리고 청려를 밀어냈음.

🔨 생명의 키스는 운명의 상대가 해주는거니까요.
문대는 달칵 소리를 내며 닫힌 문 앞에 잠시 서있다가, 쓰러지듯 주저앉았음.

무슨 정신으로 숙소로 돌아왔는지.
매니저가 이끄는대로 차를 탔고, 숙소로 떠밀리듯 입장해 익숙한 목소리가 반겨주는 틈 새로 순서가 되자 기계처럼 몸을 닦으러 들어갔음.

맨 몸 위로 새겨진 신재현 세글자가 보였음.
X발.

서서히 돌아오는 정신이 한발 늦은, 아니 한참은 늦은 경보를 울렸음.
멈춰있던 사고가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듯 생각이 물밀려들듯 치밀어올랐음.

그의 눈 안에 비춘 어떤 것들.
절망이나 포기, 체념? 그래, 그 위를 감싼 지독한 권태와 지루함.
퇴색된 열정. 열정으로 포장된 집착.
거울을 맞댄듯.
너무도 익숙한.
운명이 29년을 켜켜이 쌓아 만든 건우의 눈과도 같았음.

문대는 거울 속 네임을 빤히 바라보며 제 피부 위 네임을 쓸었음.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음.

그가 그토록 침전케 된 이야기를 알고 싶었음. 그가 잃은 것들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
씻고 나온 문대는 번호를 삭제하고 차단했음.
한 번도 답장하지 않고 쌓이기만 한 메세지들은 가만히 내려다보다 그냥 두기로 했음.

괜찮겠어?

머릿 속을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했음.
박문대로 듣는 류건우의 목소리는 높은 피치로 곧게 퍼지는 중음이었음.
낮게 울리는 미성의 청려와 대비되는.
네임버스로 청려문대 보고 싶다 BO-GO-SIP-DA 2

연락을 받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차단해서 볼 수 없었던거지만, 사실은 어떤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순간들마다 차단을 풀고 마지막 연락만 미리보기로 흘끗 바라보긴 했다.

여전히 사건사고들이 터져주며 간간히 잊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던 건
다행이기도 했다.

간혹 노네임들 중에 네이머에게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최원길도 그러했다. (원길아 미안)

'난 안 올라가는 음인데 저 사람은 해냈어
난 떨어졌는데 저 사람은 붙었어
난 미움받는데 저 사람은 사랑받아'

거기다 아주사 때 팀끼리 같은 방을 쓸 당시
옷을 갈아입을 때 네이머인 것을 보기라도 했는지
당시에는 언급하지 않던 것을 굳이굳이 으슥한 계단에서 한탄하며 말했던 게 짜집기된 녹음본에 담겨 일이 커지고 말았다.

'그리고 형은 네이머잖아요. 팬들 아니어도 사랑해줄 사람 있는 거잖아요..'

- ㅋㅋㅋㅋㅋ 최원길 지금 네이머한테 열폭함?
- 네이머 콕 찝어서 말하는 거 봐 저것도 폭력임
ㄴ갓기 때 네이머 폭로당한 적 있는데 PTSD 온다 좆기들이 옷 벗기려고 난리였는데 ㅅㅂ
ㄴㄴ222 네이머인 거 밝혀지면 존나 성X롱 당하잖아 아 ㅅㅂ 왜 저 단어만 필터링이야? 사이트 X같네
- 네이머인 건 어케 앎? 몰래 훔쳐보기라도 했대?
ㄴ헐
- 곰머 유사 먹던 ㄴ들 다 떨어져나가겠네 덕질개꿀
ㄴㅋㅋㅋㅋㅋ ㄱㄴㄲ
ㄴㄴㅡㅡㅡㅡㅂㅁㄱㅡㅡㅡㅡ
- 곰머가 유사 빼고 코어 있긴 함? ㅋㅋㅋㅋ 아 강아지로 포지셔닝하는데 멍청해보이는 와꾸 센터에서 좀 꺼졌으면
ㄴ너 끠뎁 ㅅㄱ
ㄴㄴㅋㅋㅋㅋㅋ보내봐라 이게 어디가 법에 걸리나 응 수고~
개판이었다.

머리를 써서 골드1과 작업을 쳤지만

- 그래서 곰머 네임 누구?
- (공지)문댕 네임 갓반인이시래. 언급 자제.
- (사진) 야 이거 커뮤에 떠도는건데. 곰머 네임이라고 올라온 거 찐 같냐?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욕할대로 욕 한 최원길이 아니라, 박문대의 네임에게 쏠려있었다.
어디서 타투라도 하고 나타나면 어떡하지 싶다가도, 볼 한짝에 대놓고 이름이 박힌 사람이 있으니 그 때 도와달라고..
X발 할 수 있을리가.
그럼 서로가 네임이라고 온 세상에 공표하는 것과 같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해낸 팬덤 내 분위기 환기를 위한 예능 출연을 결정하고 당일 날,
눈 앞에 브이틱 둘을 보고선..
문대는 탄식했다.

걍 은퇴하고 죽을까. 개같아서 못해먹겠네.

"청려형이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래요. 보통 반대 아닌가?ㅋㅋㅋㅋ"
"뭐라고 그랬지? 자기가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댔나?"

응. 못미더워보이긴 했다.
순진하고 말 잘들을 것 같은 멤버들로 잘 골랐네..
내가 답장을 한 적이 없는데 지 답장이 늦을 게 뭐가 있다고.
설마.

"문대 후배 물 무서워해요, 혹시?"
"절대로 물에 닿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던데요!"

"모야 문대문대~ 그런 게 있었음 세지니한테도 말해줬어야징. 물 무서워했어?"

젠장.
주어진 게임용 팀복 티셔츠 두께를 확인했다.
비치려나? 지금은 안 비치는데 물에 젖으면 확 얇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퍼뜩 오한이 들었다.

"혹시 그거 다른 분께도 말씀드렸나요?"

"응? 우리 묶음서비스로 딸려나온거라~ 발언권이 없어요. 힝."
"그래서 선배님한테 말씀드려서! PD님이랑 MC도 알고 있을거예요!"

아…
이 프로그램은 MC가 PD랑 친해 출연자들 속 박박 긁어놓기로 유명했다. 방송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자기 맘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하필 둘의 합이 잘 맞아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해 방송에 내보낼만큼 다듬어내기로 유명했다.

문대가 물 무서워하는 꼴 보려고 난리를 칠 것이 확실했다.
브이틱 매니저의 부름에 둘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큰세를 붙잡았다.

🐶 물이 무서운 게 아니고. 네임.
🐻 뭐? 아… 야 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어떻게, 흰티라도 겹쳐입어야하는 거 아냐?
🐶아까 피디가 남자 출연진들 무조건 방송용 티셔츠 한겹만 입으랬던 거 기억 안나?
🐻어쩐지… 노렸구나.
이쪽으로 사전고지된 벌칙에는 물과 관련된 건 없었는데
어디부터 잘못 전달된건지 문대가 엄지 손가락 마디로 이마를 통통 쳤다.

🐻살색 마이크 테이프라도 붙여볼까..?
🐶네임은 그런 걸로 안 가려져. 전용 패치가 있어야돼.

잠깐 답장.. 늦어서 미안하다고?

문대가 다급히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신오랑 채율이 서로 네임이예요. 네임 패치 하나 달라고 해서 써요.」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내 네임께서는 이제 차단을 좀 풀어주려나?」

하…
미친 놈.

🐻 야, 뭔데. 뭐 도와줄 사람 있어?
🐶 어. 나 잠깐 다녀온다.

브이틱 멤버들에게 받아든 패치는 쉐도우 네임 패치 얼굴용이었다.
"아 그거 재현이형이 엄청 많이 직구로 사더니 나눠준건데, 확실히 얼굴용이라 순하더라구요!"
"이거 받으러 온 거 보니까 화 풀렸나보네!!"

🐶 네?

"아니 둘이 싸웠다구 그래서요"
"저 막 재현이형 그런 얼굴 첨 봤어요. 진짜 좋아하나봐요..!"

🐶 그게 무슨..

"힝 저희가 보려던 건 아니예요.."
"아무래도 얼굴에 있다보니까.. 그 저번에 제가 기지개를 피다가 형 화장이 지워졌거든요.
"저희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근데 테스타도 멤버끼리 아는지 몰라서 아까는 모른 척 한 거예요."

문대는 아연한 얼굴로 쏟아지는 말들을 들으며 다만 손에 쥔 패치만 꽉 붙들었다.
거기다 '그런 얼굴'이라니..?

오늘 절대 젖지 않게 해주겠다며 호언장담하는 둘에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지으려 노력하는 문대였다.

🔨「드디어 읽었네요. 애들한테 패치 잘 받았어요?」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어때요?」

🐶「감사합니다.」

걱정하는 큰세를 잠깐 내보내고 패치를 붙였다.
나름 치열했던 방송 녹화가 끝나고 문대는 어지러운 머리 속을 정리했다.
피부 위에서 홧홧히 달아오르던 네임이 이번엔 머릿 속으로 이동했는지 이젠 골이 달아오르다 못해 거의 흔들리는 것 같은 두통이 일었다.

새벽까지 안무 연습이 있는 날이었는데 축 처진 몸을 일으키는 게 쉽지 않았다.
🔨「나 다른 도움도 줄 수 있는데」

머리가 멍했다.

🔨「곡 줄까요? 얘기 좀 하죠.」
🐶「지난 얘기들만 하시는 거라면 듣고 싶습니다.」
🔨「그러세요.」

연습이 끝나고 이른 아침이나 될 쯤 녹음실로 찾아갔다.

지금 브이틱이 밤을 새면서까지 작업할 게 있나 개인 앨범 내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교정을 통해 회귀하면서 곡을 가로챘네 어쩌네..

영혼의 결속으로 묶인 사이라기엔 지극히 건조하고 사무적이면서 아주 계산적인 대화였다.

소득없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새 추측할 수 있는 건 청려의 회귀 차수가 건우가 기억하는 네임이 옮겨간 횟수가 비슷했다는 것과,
지금 제 네임의 정신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는 것.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거리를 두는 게 맞긴 했다.

🔨 다시 할 때마다 네임이 옮겨가긴 했는데.

청려의 시선이 문대가 가진 네임 쪽을 가르켰다.

🔨 그 전엔 어디 있었어요?

홀린 듯 네임이 위치했던 자리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엔 어디… 허리와 엉덩이 어드메던가.
🐶 글쎄요. 계속 옮겨가니 나중에는 신경 안 쓰게 됐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네임이니 뭐니 운명 같은 건 믿지 않기도 하니까요.

🔨 아쉽네요. 나는 다 기억하는데.

불편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 저는 알고 있는 거 많이 없습니다. 오늘 대화로
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충 던져놓은 후드를 집어올렸다. 피곤함까지 겹쳐 더 지끈거려오는 두통이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었고,

🔨 잠깐만요.

다가오는 손을 보지 못하게 했다.

🔨 똑똑해보였는데 말이예요.

네임의 온기가 꽤나 달았는지 곧 시야가 툭 끊겼다.
*
반라로 후드만 덮은 문대가 눈을 떴다.

🔨 금방 일어났네요? 많이 아파보여서 좀 오래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매니저한테 연락했어요. 이제 곧 도착한대요.

🐶 이게 무슨...?

🔨 미션한테 고마워해야겠어요. 그거 아니었음 운명 같은 거 믿지 않는 네임을 난 만나보지도 못했을 거 아니예요.
🔨 내 이름이 새겨진 사람이라니. 이런 기분은 오랜만인 것 같아요. 다 끝났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맨살에 닿은 공기 온도가 급박하게 떨어지기라도 한 듯 오한이 일었다.

🔨 능력이 사라진 게 아쉽네요. 다시 돌아가면 그 땐 우리 둘이 같이 데뷔할 수 있을텐데.
🔨 나도 몰랐는데 내가 신오랑 채율이를 부러워했었나 봐요.

분명 기이한 시선이었다.
그럼에도 마주하고 있는 문대에겐 부드럽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이 기시감은 궁극적으로 운명 따위를 역겹게 할 뿐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신이 없던 새로 손길을 탄 네임만이 오한을 뚫고 타오르고 있었다.
🔨 왔나봐요.

청려가 일어나며 볼에 붙은 네임패치를 떼어냈다.
얇고 투명한 막이 떼어지자 선명하게 박힌 이름이 보였다.

🔨 들어오세요.

문대는 그제서야 이 풍경에 제 볼을 꽉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데뷔 8년차 아이돌 녹음실에 데뷔 만 1년도 되지 않은 아이돌이 반라로 있다?
하필 또 이 새벽에 끌려나온 게 막내 매니저였나보다.
대가리들의 끄나풀이나, 한 건 잡아보려는 양아치나 뭣도 모르는 막내나 다 똑같이 신뢰라곤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당황한 눈빛으로 청려의 볼과 반라의 문대를 흘끗 바라본 매니저가 엉거주춤 문대를 부축하러
다가왔다.
그나마 나잇대도 비슷하고 순진하니 포섭하기 쉬워보이는 막내 매니저였고,
또 어디다 네임이니 뭐니 폭로하기에는 사이버 매장당하기 좋을테니 알아서 다물어주길 바랄 수 밖에.

두 사람의 시선이 제 가슴께에 머무는 것을 느끼며 문대는 상의를 입었다.
몸을 움직이자 여전히 아릿한
두통이 일어 미간을 찌푸리기 무섭게 청려가 다가온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걱정스런 표정으로 문대의 볼에 제 손을 대고, 어느새 바닥으로 흘러내린 후드를 집어 문대에게 입혔다.

청려의 체향이 다가오자 안개가 걷어진 듯 맑아진 시야가 도리어 사고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마주하기 전에 휩싸이던 모든 생각들을 통증이라는 방패막으로 외면하던 건 제 자신이었음을.

🔨 연락해요.

그 눈에 비친 문대가 보였다.

🔨 못데려다줘서 미안해요.

저건 나인가?

차 안에서 귀가 터질 듯 빨개진 막내 매니저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문대는 아픈 척 눈을 감았다.
[진실 확인!]
같은 팀인데도 함께 있는 게 불편했다.
마음이 힘들자 몸 속 세포도 하나하나 비명을 지르며 늘어졌다.
탓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원망을 뒤집어 씌우고 싶기도 했다.
미워할 사람이 아니라 기댈 사람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아니면, 핑계가 필요했을지도.

핸드폰은 조용했다.
상담을 통해 얻은 성과로는 곤두선 신경이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자랐다.
단순히 몇마디 말이 아니라, 답이 정해진 온기를 필요로 했다.

내가수에 출연하며 청혼-이별-구애-집착 서사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이가 부르는 누군가의 사랑은
무뎌진 줄 알았던 감정 하나하나를 아우성치게 만들었다.

화제성이 생기자 그를 업고 솔로무새 어그로가 생겼다.
예상했던대로 일을 이끌어 가고 해결되어갔지만, 모든 것에서 원하던대로만 일이 진행될 수는 없었다.

🔨 오랜만이네요?

막내 매니저가 칭찬을 바라는 눈으로 어깨를 쫙 피고 섰다.
따끈하고 부드러운 강아지들과, 무엇보다도 제 네임.
문대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마음을 다시 날세우기 위해 눈에라도 힘을 줬다.
광고 촬영 중 나눈 몇마디 대화로 알았다. 날이 잔뜩 서있게만 보였던 청려는 이가 다 빠져 너덜너덜한 칼이었다.
왜 점점 미쳐갔는지 그 순간마다 옆에 있어주지 못한
제 탓이었던가 마음이 울렁거렸다.

건우로 살던 29년은 멈춰있던 시계추였던양
제 네임을 만나고 몇개월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생각없이 그저 사람을 좋아해 안겨드는 작은 것들이 품에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 문대는 제 꼴을 생각했다.
텅 비어 돌아버린 제 네임의 눈 속을 보면서
저 안을 채울 자신이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네임은 핑계다.
저 사람에겐, 처음부터 자신은 예비용 회귀 포인터일 뿐이었다.

문대는 익숙하게 젖어오는 비참함을 능숙하게 숨길 줄 알았다.
광고 속 문대는 사랑받아 반짝이는 강아지보다 더 빛났다.
그는 스스로를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고 여겨왔다.

류건우로 살던 시절 가졌던 몇번의 연애는 모두 건우가 갖는 '젠틀함'을 이유로 끝이 났었다.

상대가 바라는 건 그 순간의 질투나 어떤 순간의 미소가 주는 따뜻함. 가끔은 당장의 해결책을 의논할 든든함이었음에도
건우는 그저 젠틀하게 관망했다.
어쩌면 몸 한구석을 기어다니는 네임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음 한 구석으로 온 힘을 다해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리라.

하지만 결국 네임을 만났고, 네임에게서도 꾸준히 연락이 왔다.
박문대는, 류건우처럼 젠틀하고 예의있게 선배를 대했다.

은근히 떠보거나 의도를 모르겠는 연락에도
그저 '네' 한글자라도 남기는 수고를 보였다.

그래서 휴가를 받아 숙소에 혼자 남은 날 방송이라는 전화를 받고 외출을 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절대 반가움 따위가 아니었다.

🐶 이게 무슨..

쎄한 느낌에 차가워진 머리로 주변을 살폈지만 이미 한 발 늦어 정신을 잃을 때까지도,
피부 위 새겨진 네임은 마치 존재를 감춘 듯 잠잠했기에.

단단히 묶인 몸과 패닉에 빠진 청려, 팽팽 돌아가는 머릿 속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막연히 그러리라고 느낀 것을 몸소 증명하는 제 네임의 꼴이 역겨웠다.

저 볼에 들러붙은 제 이름을 뜯어내버리고 싶었다.

바쿠스의 반동으로 열이 오르고
머릿 속으로 몇번이고 되내인 반격을 성공시키면서도
역전된 상황에서 진심으로 그 낯을 찢을까 고민했다.

네임이 있는 피부가 찢긴 사람은 많지 않을테고, 화상을 입은 네이머들은 좀 있지 않나?
녹음 어플을 미리 켜놓은 채로 검색했다.

그 정도로는 영혼의 결속을 끊기 어렵더라는 후기가 몇개.
청려가 눈을 떴다.

세상엔 참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았다. 청려와 문대도 그 중 하나였다.

"못 돌아간다고. 나는."
류건우라는 이름 세글자조차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

"너, 위치만 바뀐 건 아니라며. 이름 바뀐 건 기억 안 나냐? 웃기는 새끼네, 이거."

문대는 청려의 표정이 맘에 든다고 여겼다.
지금 피어오르는 감정은 불쾌함이 아니라 만족감이라고 자위했다.

납득했는지 마는지 따위.

알아서 풀어두라며 내버려두곤 숙소로 돌아왔다.
끓어오르는 열기는 바쿠스 반동인지 다친 상처 때문인지. 어디에?

모르지.

어쩌면 화라도 난 것일지도. 어디에?

모르지. 그건.

정말?
골 속까지 울려대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도, 119는 안되지.
마지막 이성에게 칭찬하며 문대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네임버스로 청려문대 보고 싶다 BO-GO-SIP-DA 3

개운하고 청량하게 일어난 문대의 주위로 마치 조폭 영화 한 장면처럼 선 인영들이 보였다.
그리고 갓 정신차린 사람임이 무색하게 염좌며 실금 간 뼈의 위치, 타박상 상태를 읊는 눈과 입의 닦달을 받았다.
그 상태를 보고도 병원에 가지 않았을리가
없었다고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에 헛웃음을 냈다.
거기다 전문인들은 누가봐도 폭력에 의한 상흔이 가득한 몰골을 보고도 정황을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열기에 들떴던 탓일테지. 그 열기가 어떤 의미였든지간에.

의사를 부른다고 류청우가 먼저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 신고하자.
뭘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 네임이라고 막 폭력을 휘두르거나..
🐶 스토커 입장에선 네임이 거슬렸을..

🐹 어?
🐶 예?

배세진이 입술을 무는 게 보였다.
🐹 ...봤어
🐻 응급조치 때 옷 벗기니까. 청우형은 접수하고 있느라 못 봤고 우리만 얼핏 본 거야. 의료진 분들이랑.
머리를 팽팽 굴렸다. 이 상황이 모두 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왜 네임한테 당한 폭력일거라고 생각하세요? 스토커였습니다. 제가 네이머라는 게 알려지고나서 버튼이라도 눌렸나 보죠. 네임을 확인하려고 옷부터 벗기려고 들었으니까요.

🐹 ...우리 부모님도 네이머라 나도 알아.
이건 예상치 못 한 말이었다.

🐹 원하지 않으면 글씨가 붓고 외곽선이 번져서 흐려져.
🐻 그리고 너는 네 몸이어서 못 봤을수도 있는데...

지독한 소유욕을 가진 사람처럼 이름 주변으로 잇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이미 네임에 의한 폭력사건과 비슷하다고 언질을
하고 간 뒤였다.
류건우일 적부터 네임의 위치가 바뀌는 것만 신경쌌지 그 외에 네임 상식에 대해선 관심을 둔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네임이 주는 운명 자체에 반감을 가진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었다. 거기다 보통의 네이머들의 연애관 상식선에 들어가는 일도 아니었다.
문대의 상태를 보고 드믈게 표정 관리를 실패한 류청우의 눈치를 보던 동명이인 두 사람이 자신들이 본 네임 석 자까지 전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대였고 여전히 어리고 젊은 나이에 아이돌로 데뷔하며 세상 풍파를 많이 겪었을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치기 어린
나이였고, 화를 낼 때 물리적인 무언가를 행사할만큼의 무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온건한 편인- 적어도 머리 싸움이 끝나기 전까진- 이 두 사람에게 들킨 건 다행인 일이었다.
문대는 그러니 회유해서 제 편으로 만들어야함을 느꼈다.

자칫 또 휩쓸릴 때 옆에서 잡아줄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문대는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아니고, 방어흔도 절대 아니며 그저 반격하는 도중에 생긴 상처이니 불리할 수 있다고 반복해 말했다.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주삿바늘을 타고 들어간 약물은 분명 몸을 좋게하는 역할이었을텐데 그 것이 과했는지 자꾸 웃음이 비져나왔다.
청려쪽을 방어해줄 요량으로 포섭하려 했는데 말하면서 보니 집착도 걱정도 처음 받아보는 거였다.

그게 지긋지긋한 운명에 비롯된 것이어도 꽤나 달가웠는지도 모른다고.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보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진통제가 잘 들어 꺾여 부어오른 발목의 통증이 가라앉은 곳 그
자리부터 진창에 잠기는 기분이었음에도 웃었다.

'오늘 샤워하시면 안됩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들어간 욕실에서는 샤워기 물소리에 울음소리가 먹혀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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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4, 2021
나른한 오후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
같이 죽을래요?
그러다 회귀해서 또 해야되면 어떡하냐
또 하면 되죠
난 못 할 거 같다
잘 할거면서
그냥 1년 즐기다가 죽지 뭐
그럼 나랑 같이 여행 다녀요
뭐래 난 너 안 찾아갈건데
그럼 제가 찾아갈게요
어떻게 찾는다고 그래
찾을 수 있어요 분명히
나 못찾거나
찾는다니까요
내가 먼저 죽어도 넌 그냥 살아
찾을거예요
혹시 나만 돌아가더라도 너는 그냥 살아
저도 돌아갈거예요
누가 데리고 가준대?
많이 해봤으니까, 나는 더 잘할 수 있어요
너는 계속 살아야지
내가 필요할 거예요
너 없이도 잘 할 수 있어
내가 필요할 거예요
괜찮다니까
내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내가 없으면 잠도 못 자잖아요

내가 없으면 날 찾을 거잖아요

만약 내가 기억 못하더라도 날 찾아가요
…왜
난 다시 사랑할거니까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데도?
문대씨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니까요
…4시간 남았어
사랑한다고 만번은 말 할 수 있겠네요

사랑해요
Read 4 tweets
Sep 21, 2021
아 자야되는데

병약수가 아니면 죽음을!
상태이상 발생으로 피토하는 문대 보고 놀라서 방울방울 울음 터진 청려로
내일 청려문대 할 것
[돌발!]

상태이상 : '병약수가 아니면 죽음을' 발생!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사람들이 병약수로 인지하게 됩니다.
•병약수 이미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피를 흘립니다! (디톡스 효과)

기간 동안 병약수로서 공에게 돌봄 받지 못 할 시 사망!

#청려문대
X발.
니가 정해놓은 공이 날 병약수로 안 본다는 것도 써놨어야지.

##
눈 앞에 뜬 상태창에 문대가 어이없단 듯이 웃었음.
세수하다가 뭔 개ㄱ.. 후....
일단 상태창을 끄고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쓸며 나서는데

🐹 문대야..!!
🐶 예?

코피부터 시작인가. 지랄났다. 개지랄 났어.
Read 21 twe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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