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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5, 2021 172 tweets 14 min read Read on X
박문대 머리 복잡할때마다 찬물에 얼굴 담구는게 습관인거 같은데.. 어느날 너무 오래 담구고 있었던거지. 애가 화장실 들어가서 안나오고 물소리만 나니까 불안해서 들어간 큰세, 큰 세면대에 물 받아놓고 머리 박은 문대 보고 기겁함
문대가 멘탈 나갈일이 뭐가 있을까...

류건우의 완전한 죽음을 알게되었다고 하자. 청우한테 알아봐달라고 한거 거의 반쯤 잊고 살았는데... 어느날 청우가 머뭇거리면서 문대를 자기 방으로 불렀음
문대 그래도 리더가 부르길래 뭐 잘못한거 있나 짚어보면서 따라 들어가는데... 한참을 뜸들이던 청우가

-문대야.. 그 저번에 류건우 소식 알아봐달라고 했잖아
-...네
-그... 이걸 전해도 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알려줘야할 것 같아서. 류건우 씨, 가 음, 장례도 다 끝난 상태래.
문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음.

-죽었, 다는거죠.
-...응
-혹시, 정확한 사안이나, 그, 왜 죽었는지는 모르는, 후, 모르는건가요.
-...자살로 추정하고 있대. 고인이 되신지 3년정도 되었어.
-아, 아..
좀처럼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던 문대가,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니 청우는 불안했음.

-문대야. 일단 여기 앉고 조금 진정하는게,
-아뇨, 저 괜찮아요.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아, 아니야. 그래 시간도 늦었는데 쉬어.
평소같으면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인사라도 했을텐데 문대 충격이 너무 커서 그대로 청우 방에서 나옴.

새벽 2시에 가까운 시각이었음. 룸메인 선아현은 1박 2일 해외스케줄이 있어서 방에는 혼자였지.
문대는 아직도 쿵쿵 뛰는 가슴을 양손으로 꾹 누르면서 침대에 기대어 앉았음. 머리가 터질 것 같았음.
죽었다고. 죽었다는거지. 그럼 이 세계에는 류건우가 없는건가. 어떻게 죽었지. 그럼 그때 본 그.. 그 장면이, 진짜라는건가. 아닌데. 나는 류건우인데, 난 살아있는데. 그럼 그 몸에는 누가 있었지. 아니, 나는 누구지? 그럼 나는 대체 무슨 기억을.

...토할 것 같아
지금 너무 흥분했다. 제정신이 아닌거야. 정신차려 류건우. 아니, 박문대? 나는 누구, 아니, 정신, 정신 차려야 해.

문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음. 그리고 큰 세면대에 가득차도록 찬물을 틀었지.
머리가 울렸음. 제가 류건우였던 시절의 기억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듯한 느낌이었음.

시끄러워, 조용히 해. 제발 좀, 조용히. 그만, 그만...
박문대는 얼음장같은 물에 얼굴을 깊게 밀어넣었음.
그 시각, 청우는 하얗게 질린 채 방에서 나가던 문대가 너무 신경 쓰였음. 아무리 먼 친척이라고 하지만, 제 또래의 부고를 전해들은 것도 꽤나 충격이었지.

...안되겠다.

청우는 이세진에게 문자를 보냈음.
문대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대화를 나눴는데, 얘가 좀 많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내가 찾아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네가 오늘 밤만 문대 곁에 있어달라는 내용이었지.

큰세는 문자를 보자마저 방에서 나왔음.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대의 방문을 두드렸음.
-문대문대, 세진이 심심한데 들어가도 돼?

....

정적.
이세진은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함에 방문을 격하게 열었음. 그리고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마음을 놨지.
문대가 씻고 있나보다.

큰세는 아현이 침대에 앉아 방금 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음.

'형 문대 방에 왔어요. 얘 씻고 있는거 같은데요?'

'아 다행이네. 오늘 밤만 문대 곁에 있어줘.'

'당연하죠! 저만 믿으세요'
'근데 혹시 무슨 일이에요?'
청우는 문대의 부탁과 안타까운 소식을 간결하게 전했음.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문대랑 그 류건우라는 분은 무슨 관계인건가요?'

'어...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문대가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서'

'문대 씻고 나오면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이세진은 아현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자수들을 구경하며 문대를 기다렸음.

그런데,

얘가 원래 이렇게 오래 씻었나..?
화장실의 물소리는 씻고 있다기엔 너무나 일정했음. 쏴아아-하는 소리만 계속 들렸지, 몸을 움직이는 소리나 샴푸를 짜는 소리같은게 하나도 안들렸음.

이세진은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화장실 문을 두드렸음.
-...문대야.
-....
-박문대, 씻고 있어?
-....
-야, 박문대. 들려? 문대야. 박문대 들리면 대답해.
-....
-박문대. 야!! 박문대 대답하라고!!
-....

이세진은 엄청난 공포를 느꼈음. 잠겨있는 화장실 손잡이를 미친듯이 돌리고 당겼지.
안열려. 안열린다고. 이거 어떡하면.

-세진아!!! 무슨 일이야!???
-혀, 형. 문대가, 대답을 안해요. 안에 있는거 같은데, 대답을 안,
-세진아 비켜봐.

청우는 온 힘을 다해 문고리를 내려쳤음. 하지만 꿈쩍도 안했지.
-세진아. 여기서 기다려봐 베란다에 키가 있을거야.
-네, 네, 얼른 다녀오세요

청우가 뛰어가고 세진은 계속해서 문고리를 내려쳤지.

문대야, 문대야 제발. 제발 대답해. 문대야, 박문대. 우리 문대, 제발.
눈물이 세진의 얼굴을 타고 흘렀음. 시야가 뿌옇게 변했지만 쉬지 않고 문고리를 내려쳤지. 손이 벌겋게 변하고 이곳저곳 멍이 들기 시작할때,

와그작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빠졌음.
이세진은 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혔음.

그리고,

-박문대!!!!!
세면대에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음.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지.

그리고 그곳에는, 마른 몸이 세면대를 붙잡고, 자신의 머리를 물에 억지로 담궈놓고 있었음.
이세진은 달려가서 거칠게 문대를 잡아 빼냈음. 옅은 분홍색 머리에서 물이 후두둑, 떨어졌지.

-하, 하아, 허억, 학, 하아...

작은 기포가 문대의 입 주면에 보글보글 올라왔다 사라졌음. 이세진은 그게 마치, 언제든지 사라질 것만 같던 문대의 모습같았음.
-너 뭐하는거야!!!!!

이세진은 바닥에 넘어진 박문대의 몸을 꽉 감싸안았음. 다 젖은 몸이 혹시라도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릴까 두려운 듯이 아주 세게.
-하아, 하, 학, 아, 허억...

마음대로 호흡이 되지 않아 괴로웠음. 머리 속 생각이 너무 괴로워서, 정작 물 속에서 숨쉬지 못해 한계에 다다르는 몸을 느끼지 못했던거야.
-박문대, 숨 쉬어. 숨.. 제발, 제발.. 왜 그러는거야 진짜, 숨 쉬어, 숨, 천천히...

이세진은 차갑고 축축한 화장실 바닥에 눕다시피 한 상태로 문대를 꽉 끌어안았음. 와중에 문대가 춥지 않도록 최대한 바닥에 닿지 않게 안았지.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문대는 서서히 호흡을 되찾았음.

-하아, 학, 하아.. 하...

문대는 자신을 들어올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시야가 흐리고 가슴이 아파서 움직일수가 없었음.
큰 소란에 자고 있던 멤버들도 전부 일어났음. 다들 바닥에 넘어져 정신 못차리는 문대를 보고 기겁했지.

-바, 박문대 이게 무슨, 대체,
-형!!! [정신차려봐요. 제발, 제 목소리 들려요?]
-혀, 형님 왜, 왜 거기서 그렇게..
축 늘어진 채로 이세진에게 안겨서 나온 문대의 모습은 처참했음.

얼굴과 몸이 다 물에 젖어있었고, 찬물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입술이 파랬음. 게다가 세면대에 눌렸는지 목 부근이 빨간 줄 모양으로 부어올랐음. 얼굴은 핏기 하나 없었고, 눈은 반쯤 풀려있었지.
몸에 힘이 안들어가...

문대는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음. 멤버들은 어쩔 줄 몰라서 이불을 잔뜩 가져오고, 수건으로 문대의 머리를 감쌌지.
-일단, 문대 옷부터 벗기자.

차가운 물에 푹 적셔진 옷은 얼었는지 빳빳했음.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는 문대를 대신해 비교적 침착한 청우가 하나하나 벗겼지.
-이게, 무슨...

헉, 숨을 들이키는 소리.

세면대에 꾹 눌린 가슴은 눈에 띄게 부어올라 있었음. 이미 파랗게 멍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었지. 막내들은 울기 시작했고, 청우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새 잠옷을 입혔음.
문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음. 배세진은 장롱에서 겨울 이불을 꺼냈고, 막내들은 따뜻한 물과 핫팩을 찾아 왔음. 그리고 이세진은...

-야 너, 너 손..!!

문대를 이불로 감싸던 배세진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음.
이세진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을 내려봤음. 망치처럼 사용한 손은, 피 범벅이었음.

왼쪽 엄지손톱이 부러져 피가 줄줄 흘렀고, 보라색으로 올라오는 멍들이 심각했음.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왼쪽 손목은 부러진 듯 했지.
-너 당장 병원..!! 유진아 구급차 좀,
-형, 저 잠시만, 잠시만요.

이세진은 눈물자국이 말라붙은 얼굴로 박문대를 내려봤음. 침대에 누워서 아직도 덜덜 떨고 있는, 저의 동료이자 가장 신뢰하는 친구를.
-너, 너 대체 왜.. 왜 그런거야
-....
-...죽으려고 했어?
-....
-세진아. 일단 문대 괜찮아지고 나서,
-괜찮아지고, 나서요?

이세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음.
-형, 박문대가 괜찮다고 했을 때, 진짜로 괜찮았던 적이 있어요? 졸도했을 때도, 납치 당했을때도, 사고 났을, 때도 다 괜찮다고 했던 놈인데. 괜찮아지고 나서요?
-....

청우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마른 세수를 했음.
이세진은 아릿한 피 냄새와, 아직도 진하게 느껴지는 물 비린내에 질식할것만 같았음.

-박문대, 대답해.
-....
-..죽고 싶었어?
-....
-이렇게, 널 학대할만큼 괴로웠어?
문대는 어느정도 선명해진 시야로 보인, 피 범벅이 된 이세진의 손을 가만히 잡았음.

-...미안,해

목소리가 다 망가졌네.

-죽으려는, 건 아니었어...
문대는 맞잡은 손이 축축해지고 있음을 느꼈음. 피.. 인가.

-...그냥 좀, 시끄러워서... 내가, 하아, 내가 견디기 조금, 힘들어서...
-....
-물 속에서는, 소리가 잘 안들리니까, 그래서, 흐으, 잠깐 정신차리,려고 그랬는데...
-미안해...
방 안은 고요했음. 이따금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지.

-원래, 나는...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 했으니까.. 얼른 정신, 차리고 다시 또, 어떻게든, 살아야 했으니까.

문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세진의 머리를 쓰다듬었음.
-물에 얼굴을, 하아, 담그고 숨을 참으면, 그래도 좀.. 괜찮아졌, 흐, 괜찮았으니까...

문대는 다시 희미해지는 정신을 잡으려고 노력했음.

-내가, 잘못했네...
-피곤하다. 조금 졸린 것, 같아...

툭,

이세진의 손을 잡고 있던 문대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음.
-

이세진은 병원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깁스된 왼팔을 바라봤음.

진정된 문대와 손목이 아작난 세진을 데리고 청우가 직접 운전해서 왔지. 세진은 가까운 정형외과로, 문대는... 정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 조금 더 큰 병원으로.
배세진과 함께 정형외과에 내려질 동안, 박문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 이세진도 마찬가지였지.

차 안에 있던 네 사람 모두 입을 열면 곯아있던 말들이 쏟아질 것 같아서, 차는 정적이었음.
왼쪽 손목에 금이 갔다고 했음. 그리고 또, 뭐라고 했더라. 새끼 손가락 골절, 타박상, 뭐 그정도.
넋 나간 이세진을 대신해 배세진이 진통제를 받으러 갔고, 이세진은... 대기실에 앉아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었음.
팔을 들지도 못할정도로 힘이 없으면서,

'병원 안 가도 괜찮아요. 조금 자면, 될거 같은데...'

이세진은 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음.
왜? 왜 치료받으려고 하지 않지? 잘못 되었으면 어쩌려고. 왜 본인을 그렇게 막 다루는거지? 대체 왜, 왜 우리한테... 말해주지 않는거야.

가슴이 너무 답답했음. 빈속이 울렁거렸지.
대답하지 않던 박문대, 열리지 않는 문, 물이 흘러넘친 세면대, 얼굴을 박고 있던... 세진은 자신이 목격한 그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음.
박문대에게 우리는, 별로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인건가.

몇 년을 붙어 살아도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아이.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면, 오늘처럼 또 확 거리감이 생기는...
-이세진, 가자.

생각에 빠져 배세진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음. 자다 깨서 머리는 산발이고, 잠옷바지에 가디건만 걸친 모습이 초췌했지.
-...청우는 문대 검사결과 다 나오면 온대. 다행히 큰 이상은 없는것 같다고 하더라.

-....

-...조금 걸을까.

-...네
둘은 병원을 나와 근처 공원으로 향했음. 급하게 나오느라 슬리퍼만 신은 맨발이 그제서야 조금 허전했지. 둘은 한동안 말없이 가로등 켜진 길을 걸었음.
-술은 한동안 자제하래. 뭐, 넌 원래 잘 안마시긴 했지만. 박문대가 문제였지...

-...

-...너,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 알아?

-...아니요.
-..그렇겠지.

-....

-...우리 중에 박문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
새벽의 가을 공기는 차가웠음. 이세진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벤치에 주저앉았지.

-힘들면 택시 부를게.

-아뇨, 형. 형도 잠시만 앉아주세요.

-...왜.
이세진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음.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문대 괜찮겠죠.
-...갠 너보다 괜찮대. 멍도... 금방 빠질거라 했고, 차가운 물에 오래 있어서 조금 놀랐을뿐 다른 상처는 없다고 했어.

-...만약, 제가 발견하지 못했으면,
문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초록색 깁스를 한 팔이 조금 떨렸음. 그 말을 내뱉는 목소리도.
-...놀랐겠네.

-....

-...너랑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배세진은 이세진 옆에 앉았음. 새벽 이슬에 벤치가 축축했지.
-...나보다 네가 문대랑 더 친하겠지만. 그렇다고 네가 문대를 더 잘 안다고 할수는... 없을거야.

-....

-문대는, 항상... 좀 버거워 보였다고 해야하나. 음, 그러니까..

-...어디론가, 떠날 것 같은.

-...맞아.
또다시 정적.

깜박거리던 가로등 불빛이 결국 수명을 다해 꺼졌음.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세진이 다시 조용히 속삭였지.
-...정말 죽으려던 건, 만약 죽으려고 했던거라면,

-안 죽어.

-...

-문대 거짓말 못하잖아.

배세진은 가디건을 좀 더 꼼꼼하게 여몄음.
-...그건 아닐걸요.

-아니, 맞아.

-...

-..적어도 우리한테는, 거짓말 못해.
배세진은 어색하게 말을 이었음.

-...난 사람을 좀, 관찰하는 버릇이 있거든.
-문대는 사실이 아닌걸 말해야할 때,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려. 아마 진짜로 죽을 작정이었다면... 아까 네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을거야.

-....
귀뚜라미 소리가 울린다.

배세진은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보이는 이세진의 등을 어색하게 쓸었음. 내가 얘랑 이러고 있다니....
-정말 그랬으면, 걔는 왜, 아니 애초에 그냥...

-...문대한테 궁금한게 많지.

-...네

-그럼 그냥 물어봐.
이세진은 충혈된 눈으로 배세진은 바라봤음.

-...대답, 해줄까요.

-그건 모르지.

배세진은 작게 기침을 하더니, 안되겠다면서 일어났음.
-그래도, 혼자 우울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

-그런걸 물어본다고 멀어질 사이는 아니잖아.

-...그런가요.

-문대가 그나마 너를 가장 편하게 여기던데, 그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거 아닌가.
-...

-춥다, 얼른 들어가자.
둘은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 이세진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지. 희미한 빛이 꺼진 가로등을 밝히기 시작했음.

...동이 트고 있구나.
-

문대는 이것저것 검사를 받으며 몽롱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음.
...그리고 제가 했던 말들과 행동이 다시 떠올랐지.

와, 개쪽팔려.
거기서 왜 머리를 쓰다듬냐...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하질 않나. 이 나이 먹고 새벽에 애들 다 깨우고.. 잘하는 짓이다 정말.

약간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은 문대는 흉부 엑스레이를 찍는 기계를 무기력하게 끌어안았음.
나 지금 완전 멀쩡한데...

그러다 불현듯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큰세진에게 들려나오던 제 모습이 생각났지.

...멀쩡하진 않으려나. 그래도 뭐 지금은 괜찮은데. 뭐 가슴이 좀 눌렸으니 아픈건 당연한거고.
정신이 들고 나니, 방금 전 숙소에서의 소동이 점점 선명하게 떠올랐음.

...애들 많이 울던데. 큰세진 걔는 손도 많이 다친 것 같았고.

문대는 대기실에 앉아서 웃옷을 살짝 들춰봤음. 보라색 멍이 크게 들었고, 그 장소가...
수술 흉터네.

박문대는 벽에 머리를 살짝 박았음. 안 그래도 교통사고의 트라우마가 깊게 박힌 애들인데, 그 흉터 위에 또다른 상처가 생긴걸 보면 멘탈이 온전할 수가 없었겠지.

-아, 진짜...
뭐라고 설명하냐...

새벽이지만 대형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음. 분명 누군가는 박문대를 알아보고 이미 소식을 전파하고 있을게 분명했지. 그런 기사들과 팬들의 반응도 걱정됐지만,
가장 걱정되는건 멤버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문제였지.

심지어 류청우에게 류건우의 소식을 들은 후에 있었던 일이라, 분명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었음.

-하...

문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고 한숨을 내쉬었음.
-...힘들어?

놀래라.

언제왔는지, 류청우는 문대의 소지품을 챙긴 채 문밖에 서있었음.

-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좀 답답해서...
-...집에 가자.

-...네

집..에 가야지. 분명 막내들도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있을게 분명했음.

아침을 맛있는걸로 만들어줘야겠네.

테스타가 들으면 속터질 생각을 하며, 문대는 청우를 따라나갔지.
문대가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막내들이 현관까지 달려나왔음. 별 이상이 없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둘 다 걱정돼서 내내 울었는지 코맹맹이 소리에 눈까지 빨간 상태였지.

-혀, 형 제가 신발 벗겨드릴...
-됐다..

그정도는 좀...
그래도 잠도 많은 애들이 제 걱정에 잠도 못잤다고 하니 괜히 미안하고 기특해서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주었음. 문대가 아플까봐 살짝 끌어안은 폼이 강아지 같았지.

-나 괜찮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사과 안해도 okay해요.
-그, 그래도 다음에는 안... 그러실거죠...?
-...그래
물에 머리 박는거 말하는거겠지.

그걸 들킬줄은 몰랐음. 사실 그렇게 오래.. 처넣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문대는 하필이면 제일 상태가 별로일때를 발견했다며 속으로 혀를 찼지.
-벌써 5시다. 얼른 들어가서 자, 너네는 일찍자면 키 더 클 수 있어.
-그, 그래도...!
-알겠어요! 대신 문대형도 꼭 쉬어야 해요! 김래빈 가자.

막내들이 방으로 들어가자, 거실은 순식간에 어색한 침묵이 멤돌았음.
-...저도, 좀 잘게요

-...그래

-그, 큰세랑 세진이 형은

-오고 있대.

-...네, 오늘 감사했어요.
청우는 복잡한 표정이었음. 청우는 할 말이 많아보였으나, 문대는 아직 류건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었음.

그래서 먼저 자리를 피하고 밤새 좀 이 사태에 대해 생각해볼 생각이었지.
다행히 지금은 대화보다는 휴식이 먼저라고 생각했는지, 류청우가 순순히 가서 자라고 허락해줬음.

-...후

문대는 방에 들어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음.
-악,

가슴에 든 멍이 눌러서 조금 아프,

-문대야 괜찮아???

...어떻게 들었냐.
조그맣게 신음했는데도 류청우가 놀라서 문을 열고 들어왔음. 약간 멀뚱하게 누워있는 문대를 보고 좀 민망해하긴 했지만.

-...아프면 꼭 말하고

-그럴게요

-...

-진짜 그럴게요

-...그래
문이 닫히고, 발자국 소리가 좀 들리더니 문 닫히는 소리가 났음. 문대는 그제야 침대에 늘어져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지.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안와?

조금 후에 온다던 큰세와 배세가 아직도 올 기미가 안보였음. 도어락 소리가 들리면 자려고 했는데,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지.
뭐... 길을 잃은, 아니 그건 말도 안되고. 사고가 났나? 이세진 생각보다 손 많이 다친거 아니야? 그래서 치료가 오래걸리는거면, 아니면 오다가 혹시 또 무슨 일이...

안되겠다.
문대는 몸을 일으키고 겉옷을 챙겼음.

숙소 앞까지 마중나가는것 정도는 괜찮겠지. 30분 지나도 안오면 그때 한번 연락해보자.

한 시간 정도 지난 상황이라, 숙소에 있는 멤버들은 전부 자고 있을게 분명했음. 문대는 그들을 깨우지 않게 아주 조용히 밖으로 나왔지.
...오늘 날씨 괜찮네.

선선하니 딱 가을 날씨라고 생각하며, 문대는 숙소 공원을 천천히 걸었음. 택시를 타고 올테니 입구 쪽에 있을 생각이었지.
-...류건우,

입구 벤치에 앉아 조용히 입밖으로 그 세글자를 내뱉어봤음. 분명 '박문대'보다 오래 사용한 이름인데도.. 좀 어색한 기분이었음.
류건우는 정말 죽었을까. 죽었다면...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무연고자, 일텐데. 자살이면 누가 발견했을까. 박문대랑 류건우 둘 다 죽은 사람인데, 왜 류건우의 영혼과 박문대의 몸을 살려둔거지. 왜...

음, 생각이 잘 안되네.
류건우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했고, 이후에 멤버들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도 생각해야 했음.

그런데... 자꾸, 쓰러진 박문대를 보고 정신없이 울던 애들이랑, 눈물자국 남은 얼굴로 죽으려고 했냐고 물어보던 놈이 생각나서...
이제 좀 익숙해졌다는 건가.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빨리 그 얼굴이 보고 싶었음.
-

청우는 머릿속이 복잡했음. 류건우의 부고를 듣더니 냉수에 머리를 담고 자해하던 박문대.

왜? 류건우는 그냥 아는 형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 이상의 존재인가?
류청우는 죽었다는 그 먼 친척에 대해 아는게 정말 하나도 없었음. 으레 대가족이 그렇듯 좋은 일이 생겼을때만 연락하고 나쁜일은 공유하지 않았으니, 대충 나쁜 일을 겪은 사람인가 짐작할 뿐이었지.

...그게 이렇게까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음.
내가 좀 더 잘 알아봤다면. 박문대한테 중요한 사람이라는걸 눈치채서 더 조심스럽게 전했다면...

물이라도 마셔야겠다.
류청우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음.

세진이들이 아직 안왔네. 문자나 한번 해볼,

어라
내가 문대 방 문을 열어놨던가.

심장이 쿵, 떨어졌음. 청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대의 방문을 열었지. 그리고 그곳엔,

-문대가 없어.
침대, 화장실, 옷장을 미친듯이 뒤졌음. 문대가 없어. 없어. 없어. 없어.. 청우는 문대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었음. 받아라받아라받아라...

띠리리리링
침대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음.

피가 차게 식는 느낌. 청우는 몇번이나 헛손질을 하며 이세진에게 전화를 걸었음.
-어 형, 저 거의 도착,

-세진, 세진아. 문대가 없어. 아까 방에 들어갔는데 지금 없어. 숙소에 없어. 얘 어디간,

-...그게 무슨소리,

-핸드폰은 있는데 신발이 없어. 나간거 같아. 세진아 빨리와. 내가 일단 옥상에 먼저 가볼게 너네는 숙소 주변에서 찾아봐. 방금 나갔을테니 멀리 안갔을거야.
뚝,

청우는 할말을 쏟아내고선 끊었음.
큰세는 그대로 굳었음. 통화를 들은 배세진이 하얗게 질려서는 택시 기사님께 빨리 가달라고 말하는 소리가 하나도 안들렸지.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음. 박문대가, 문대가, 없다는게, 그게 무슨, 왜, 왜 또, 왜,

-이세진 정신차려!!!
배세진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있었음.

-우리가 먼저 찾으면 돼. 넋 놓고 있지마. 우리가 먼저 찾으면, 먼저 문대 찾으면 돼. 괜찮아, 괜찮아...

이세진은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음.
박문대, 제발.
이세진은 택시가 멈추기도 전에 뛰쳐나갔음.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제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지.

-이세진 기다려!!

배세진이 택시를 보내고 헐레벌떡 따라왔음. 그리고 줄줄 울며 덤불을 뒤지고 있는 이세진의 양 손목을 세게 잡았음.
-야 이세진 정신 차리라고!! 거기 있겠어? 지금 우리가 찾으면 돼. 청우가 옥상 다 확인했대. 문대 거기에 없어.

탁, 힘이 풀렸음.

아, 아아... 그래, 최악의 상황은 아니구나.
-...내가 뒷문쪽 확인하고 있을게. 넌 앞문에서 찾아봐. 문대 괜찮을거야.

-...알겠어요.

이세진은 뒷문 쪽으로 뛰어가는 배세진을 바라보며 거칠게 눈가를 닦았음. 눈물이 안 멈춘다. 심장소리가 너무 커.

이세진은 이를 악물고 달렸음.
-박문대!!!!! 박문대!!!!!!!!

'여기 주변에는 기자도 많고 사생도 많아서 이름부를때 조용히 불러야한대. 너네도 다 조심해'

언제였더라, 박문대가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당부하던 말이 떠올랐음.
미안해 문대야. 지금은 좀 봐주라.
이세진은 문대의 이름을 목이 터저라 외치며 주변을 샅샅이 뒤졌음.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지. 차가운 공기가 무색하게 땀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음.

-박문대!!!!! 박문대 어딨어!!!!!! 박문대!!!!!
왼팔의 통증도 잊었음. 목에서 피 맛이 났지.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숨이 막혔음. 구석에 있는 골목을 들어가려는 순간,

-...이세진? 너 뭐하는,

아,
놀란 표정의 박문대가 보였음. 울고 있는 모습에 당황했는지 제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지. 아, 아...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이세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음.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얼굴에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야 너 왜, 왜 이렇게 울어,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너, 하, 너야말로 대체 왜,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오다가 무슨 일 생겼어?
박문대는 땀에 흠뻑 젖은 옷과 깁스한 팔로 길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이세진을 조심스럽게 일으켰음.

-문대야, 문대야... 박문대...

제 이름을 중얼거리며 안겨오는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음. 문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그냥 마주 안아주었지.
-...왜 불러. 나 여기 있잖아.

-...없어진줄 알았어, 네가, 네가 우리를 떠난줄 알았어. 너무 무서워서 진짜...

-...

-핸드폰은 왜 두고 간거야... 문대야 진짜 나 심장 떨어지는줄 알았어...

-...네가 너무 안오길래... 마중이라도 나올까 했던건데
그 말에 이세진은 문대를 더 세게 안았지. 문대는 어깨가 서서히 젖어가는 느낌이 들었음.

-내가 조금 늦는건 걱정하면서, 연락 없이 새벽에 나간 너를 걱정할 우리는 왜 생각을 못해...

-...아,

-...핸드폰도 두고 나갔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이세진은 눈물 젖은 얼굴로 문대를 바라봤음.

-청우 형이, 너 없어진거 발견하고 제일 먼저 옥상으로, 갔어...

-...
-우리가, 늦었으면 어떡하지

-...

-네가 이미 떠났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문대는 불안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눈빛을 마주했음. 옥상으로 올라갔다는 말의 의미를, 모를수가 없었지.

-문대야

-...

-...난 네가 아플때마다 없어질때마다, 마음이 부서지는것, 같아...

-....미안,
-아니야, 찾았으니까 다 됐어. 우리가 먼저 찾았으니까 괜찮아.

-...

-....집에 가자 문대야.

-...그래
이세진은 아직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멤버들에게 메세지를 보냈음. 문대 찾았어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
-

숙소에 돌아온 문대는 멤버들의 폭풍같은 잔소리와 걱정, 눈물을 한시간동안 견뎌야 했음.

어디 갈때는 무조건 핸드폰을 들고 갈 것이며, 누가 자고 있든 어떻든 상관없이 무조건 몇시에 어디를 갈것이라 연락을 남겨야 하며... 거의 유치원생급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
선아현도 이 소식을 듣고 촬영을 5시간이나 일찍 마치고 가장 빠른 비행기로 오고 있다고 했음.

문대는 조금 유난이 아닌가, 싶었지만,
'내가 조금 늦는건 걱정하면서, 연락 없이 새벽에 나간 너를 걱정할 우리는 왜 생각을 못해...'

그 말이 자꾸 떠올라서... 얌전히 그 걱정들을 다 받아주었지. 그리고 사실, 별로 나쁘지 않기도 했고.
겨우겨우 멤버들에게서 벗어난 문대는 잔소리 폭탄에 약간 얼빠진 상태로 방에 들어왔음.

....방문을 닫자마자 바로 이세진에 의해 열렸지만.
-...너 혼자 못두겠어.

-...알겠어, 들어와.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서 꼴이 웃겼지만, 차마 웃을수는 없었음. 화장실에서 먼저 발견한 것도, 제가 없어진 줄 알고 찾아다니다 발견한 것도 이세진이라서...

차마 그 얼굴이 웃기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지.
박문대가 침대에 앉자 자연스럽게 이세진이 그 옆을 파고들었음. 평소같으면 밀쳐냈겠지만... 오늘은 그럴수가 없어서.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음. 서로 속에 정리해둔 말을 언제 꺼내야 할지, 눈치를 보는 듯했지.
결국 이세진이 입을 열었음. 많이 울고 소리질러서 다 쉬어버린 상태였음.

-...문대야, 우리한테 할말 없어?

-...물어보고 싶은게 뭔데.
문대는 조금 긴장한 채 세진을 바라봤음. 류건우에 대해서 물어보려나? 물에 머리 처넣는 습관? 아직 할말이 정리가 안됐는데.

하지만 이세진의 답변은 예상밖이었음.
-우리가 아직... 너한테 별로 안 중요해?

-...뭐?

이세진은 박문대의 눈을 피해 천장을 바라봤음.
-우리가... 너의 마음에 차지하는 자리가 어느정도인지, 모르겠어.

-...

-너는 항상 비밀이 많고, 좀처럼 속내를 잘 안드러내니까... 다른 멤버들처럼 짐작할 수 있는것도 없고
이세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음.
아까, 박문대가 사라진줄 알았을때.... 문대를 찾으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했다. 만약 정말 우리를 떠났다면, 사라졌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너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사라질만한 이유도, 너의 과거도, 아픔도, 지금의 고민, 상처, 널 괴롭히는 생각들, 전부 단 하나도 모르고 있어서.
이세진은 눈물 젖은 얼굴로 박문대를 바라봤음.

'그런걸 물어본다고 멀어질 사이는 아니잖아.'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내가 속에 쌓인 질문들을 꺼낸다고 사이가 어색해지진 않을 것이다. 박문대는 눈치가 빠르고, 이 바닥이 돌아가는 방식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냥 내가 조금,
두려워서.

네가 대답해주지 않을까봐. 적당한 거짓말로 무마하고 회피할까봐. 성급한 내 질문이 너를 또 상처입힐까봐. 내 눈을 피하고 입을 닫을까봐. 그러다 영영 너를 잃게된다면, 내가 감당해야할 그 감정들이 두려워서.
나는 오늘도 질문들을 속으로 삼킨다.
-나는 그냥, 문대가 나랑 약속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약속?

이세진은 붕대가 감긴 문대의 목을 가만히 바라보았음.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 문대야. 네 마음의 이 정도 자리만 우리에게 내어줄 수 없을까. 그것도 어려울까.
이세진은 속으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말들을 내뱉었음.

-...힘든 일 있으면 말하기

-...

-혼자 괴로워하지 않기

-...
-그리고, 우리... 떠나지 말기.
방 안은 고요했음. 마주한 두 눈에 언듯 불안함이 스쳤지.

-...노력할게.

이세진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음.
-...그래

-그리고 나, 너네 중요해.

-...

박문대의 밝은 눈동자가 이세진을 마주했음. 어딘가 결연해보이기까지 한 눈빛이었지.
진심이었다. 나는 류건우의 죽음을 듣고도 너희의 표정과 눈물부터 떠올렸다. 온전히 내것이 아닌 이 애정과 관심에 익숙해져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새 너희들은... 내 마음에 멋대로 들어와 멋대로 색을 칠하고 있었다.

...그게 무섭도록 달콤해서.
내 현실을 다 외면하고 그저 그 따뜻한 색채에 파묻히고 싶었다.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해해주지 않을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는데. 나도 아직 나를 다 알지 못하지만,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쩌면 그냥 나도, 이 달콤함에 온전히 녹아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안돼.

문대는 몇 번을 머뭇거리더니, 결국 입을 열었음.
-이번 일은... 사실대로 못말해줄거 같아.

-...이것도 문대문대의 비밀 중 하나야?

-...응
-그럼 알겠어. 대신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힘들면 꼭 우리한테 기대는걸로.

-알겠어.

-그래, 우린 그거면 돼.
박문대는 이세진의 왼팔을 들어 조심스럽게 고정시켰음. 살짝 들린 윗옷 안으로 붕대를 감은 가슴이 보였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세진이 입을 열었음.

-...그리고 앞으로 화장실 갈 때 문 열어두고 가

-야 그건 좀,

-이건 부탁이야.

-...알겠어.
이세진은 씩 웃으며 문대를 꼭 껴안았음.

-우리 문대문대, 잘 자.

-지금 6시인데 뭘 자...

-밤 샜잖아. 하룻밤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피곤할거 아니야.

-...너도 자.
-문대 자면 잘게.

-..어후 진짜

문대는 이세진은 등지고 돌아누었음. 이세진은 그 동그랗고 작은 뒤통수를 조용히 바라보았지.
...배세진 형님 말이 맞았네.

문대, 우리한테 거짓말 못하는구나.
곧 피곤했는지 색색거리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음. 이세진은 문대의 마른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었지.
어딘가 우울하고 어두웠던 첫만남의 박문대. 일주일 밤을 새워 연습하던, 눈을 반짝이며 무대하던, 1위해도 안울던, 그러나 첫 콘서트에서는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던,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팬들한테도 잘하는 우리 문대.
무뚝뚝한 표정으로 다정한 위로를 건네고,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한다며 요리를 해주고, 멤버들의 장난을 받아주고 점차 우리의 손길에도 익숙해진, 냉정한 척하며 결국 남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우리 문대...
...가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잔뜩 가라앉은 눈을 하고, 혼자 아프고,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버텨내는 우리 문대.
이세진은 박문대의 숨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모았음. 그리고 믿지도 않던 신에게 기도를 올렸지.

언젠가 문대가 완전히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더 이상 슬프지 않기를.
끝!!!
여러 버전을 생각해봤지만, 이게 가장 마음에 드는 마무리라고 생각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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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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