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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 79 tweets 11 min read
<Zombies and Keys> 게임 디자인 이야기 타래 #zombiesandkeys Image
[챕터 1] 범위 규칙
약 15개월 전, 이 프로토타입을 첫 상업용 프로젝트로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무기를 추가할까? 좀비 종류는? 보스전은? 실험해보고 갈아엎기를 1~2달 정도 반복했다.
이런 걸 Scope Creep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게임의 범위를 정하지 못하고 아이디어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하게 되는…
이대로 가다간 또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말겠어. 라는 생각에 범위(Scope)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규칙 0. 양보다 질을 추구하자. 게임이 볼륨이 작더라도, 모든 게임 속 모든 상호작용이 유니크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유니크하게 만들 자신이 없다면 포기하자.
규칙 1. 무기 타입 추가 없음. 맨손과 표지판 외의 무기는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칼이나 창, 같은 것들을 넣을 수 있겠지만, 기존 무기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아트적으로도, 게임 디자인적으로 신경쓸 게 상당히 많아 보였다.
규칙 2. 좀비 타입 추가 없음. 좀비들의 겉모습과 파라매터는 다를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이나 골격 형태, 패턴, 공격 종류가 근본적으로 다른 좀비는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규칙 3. 코어 게임플레이 외에는 모두 미니멀리즘으로 구현하자. 대사나 컷씬을 넣거나, 메뉴를 멋지게 꾸미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리소스를 코어 게임플레이를 재밌게 만드는 데에 쓰자.
이어지는 내용은 이 [범위 규칙]이 게임 디자인을 어떻게 이끌어 나갔는지에 대한 짤막한 단편들로 이루어진다.
[챕터2] 죽지 않는 좀비
규칙 안에서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뭘까? 고민하다 “죽지 않는 좀비”라는 컨셉을 생각해냈다. 주먹과 표지판이 모두 치명적인 무기는 아니다 보니, 좀비가 죽지 않고 계속 일어난다는 컨셉.
하지만 플레이테스트 과정에서 “이 게임에서 좀비는 죽지 않고 계속 일어나요”를 플레이어들에게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더 고민해봤지만, 도저히 이를 가르칠 방법이 없었다. “좀비는. 죽는다. 땅땅땅.”
쓰러졌다 일어난다는 컨셉을 구현하기 위해 다운 애니메이션, 다운 중 기상하는 애니메이션 등, 타이밍을 맞추고, 이것저것 코딩 작업을 많이 썼는데 이걸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라고 고민했다. 그 결과 다음 두 가지 좀비 패턴을 얻었다.
패턴1. 죽은 척하다가 근처에 오면 다시 일어나는 좀비
패턴 2. 한 번 죽여도 다시 일어나는 좀비
이들은 좀비 유형을 새로 추가 하지 않고도 짧은 플레이타임 중에 게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핵심 메커니즘이 되었다.
[챕터3] 너도 세 방, 나도 세 방
초기 테스트 버전에는, 체력 표시 UI가 화면을 엄청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시각적으로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코어 게임플레이를 제외한 것들을 미니멀리즘으로 유지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일단 아예 없애면 가장 깔끔할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그러면 플레이어가 좀비를 얼마나 때려야 죽는지 알 방법이 없다.
모든 좀비의 체력이 3으로 고정되면 어떨까? 그전까지는 좀비 체력이 1부터 시작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구조였다.
이 아이디어는 성공이었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이 게임의 규칙을 빠르게 학습하는걸 볼 수 있었다. 더구나 파워 인플레 영향도 적어서, 초반에 나왔던 좀비들을 후반에 섞어서 배치해도 시시하지 않았다.
[챕터4] 스테이지 방식, 체크포인트 없음
코어 게임플레이 외에는 미니멀리즘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니, 월드 맵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모두 고려사항에 없었다. 클래식한 스테이지 방식이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화두는 “체크포인트를 만들 것인가”였다.
“체크포인트”를 단순히 구현하는 것은 쉬워 보였다. 하지만 정작 “잘” 만들려고 보면 단순하지 않다.
이유 1. 체크포인트를 지나면 플레이어가 체크포인트 이전으로 돌아갈 일이 없도록,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크포인트는 더 불편하게 만드는 편의 기능이 돼버리게 된다.
많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하거나, 좀비가 올까 봐 길을 막고 지나간다는 식의 연출로 이 부분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물론 이런 것들도 코어 게임플레이로 보기 힘든, 피하고 싶은 비용이었다.
이유 2. 체크포인트 도달 시점의 체력이나 자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살아날 때 체력을 가득 채워주는 게임들이 있다. 이 방식에 불만인 것은, 체크포인트를 지난 뒤 체력이 없으면 한 번 “자살”한 뒤, 체력을 꽉 채워 플레이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이다.
체크포인트에 화톳불 같은 것을 배치하는 경우가 요즘 많다. 이 경우, “휴식 시에 레벨 배치가 리셋된다.”는 메커니즘이 핵심이다. 그렇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진행하다 체력이 다 닳으면 다시 돌아와서 체력을 회복하고 계속 진행하고, 이 플레이를 반복할 테니까.
이 모든 것을 구현하고, 시스템을 플레이어에게 잘 가르치는 일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겠다고 판단해서 체크포인트는 넣지 않기로 했다.
체크포인트 없이 재밌는 게임은 없을까? 나는 컵헤드를 떠올렸다. Image
컵헤드는 나 같은 보통 사람이 초회차로 플레이할 경우 모든 스테이지가 2~3분 내외로 깰 수 있도록 분량이 조절되어있다. 2~3분 정도라면, 플레이 상황을 전부 잃어도 참아줄 만하면서 적당히 도전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체크포인트 없이 3분 내외의 분량으로 스테이지를 디자인하자. 이렇게 결론 내렸다.
하지만 역시나, 테스트 버전 피드백 중에 “체크포인트 만들어주세요”라는 피드백이 많았다.
이때 체크포인트를 만들까 다시 고려해보기도 했지만, 이건 레벨 디자인의 실패지, 시스템 디자인의 실패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해당 레벨의 후반부를 더 쉽게 만들고, 인카운트를 밸런싱 하는 식으로 만졌다.
많진 않지만, 지금 좀비키 리뷰에서 가장 극찬받는 부분은 레벨 디자인이다. 적당한 길이가 적당히 도전적이었다는 피드백도 많다.
[챕터5] 탐험의 재미를 찾아서
초기엔 밋밋한 평지에 야외를 뛰어다니기만 하는 스테이지밖에 없었다. 탐험플레이는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Death Road to Canada라는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이 게임은 좀비가 창궐한 미국에서 차를 타고 캐나다를 탈출하는 게임인데, 중간중간 버려진 상점가 같은 곳에 들러서 보급품을 챙겨와야 한다.
이 게임은 “실내”를 탐색하는 것이 재밌었다. 좀비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떤 보급품이 있을까? 불확실성의 세계에 들어가는 그 순간. 좀비 세계 탐험의 핵심은 “실내”를 들어가는 경험에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실내”를 구현하는 프로토타이핑을 해봤다. 기존에 사용하던 에셋 팩 건물들은 실내가 구현되어 있지 않아 손이 많이 갔다. 각종 코드 작업도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실험해보니 확실히 탐험이 재밌어지고 있었다.
아이소메트릭 게임에선 단층 구조가 흔해서 별로 생각이 없었던 높낮이 개념을 넣기로 한 것도 탐험의 재미를 고민하던 이 시기다.
각종 플랫포밍과 더불어 “낙사”라는 개념도 추가할 수 있겠다 싶었다. 좀비를 한 방에 죽일 수 있으면서, 플레이어가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긴장감 있는 플레이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실내”와 “높낮이”는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게임에 나오는 모든 건물은 엄청나게 손을 많이 봐야 했고, 각종 코드도 많이 필요했다. 높낮이를 위해 게임의 물리 코드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하지만 다채로운 재미를 주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두 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챕터6] 두 종류의 표지판, 두 종류의 함정
좀비키의 유일한 무기 타입인 표지판은 공격 속도가 주먹보다 느린 대신 넓은 범위의 적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다. 파라매터와 겉모습이 다른 두 종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빨간 표지판은 3방 때려야 하는 좀비를 한 방에 해치울 수 있지만, 내구도가 낮다. 직관적이고, 아이디어 발상이나 구현도 쉬웠다.
파란 표지판은 어떻게 빨간 표지판과 차별화할 수 있을까? 하다 나온 아이디어가 넉백이다. 높낮이를 추가하면서 “넉백”이라는 개념이 생겼으니, 이걸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게임에선 이런 식으로 활용하게 된다.
낙사만 가지고는 다채로운 면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함정”이다.
함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어떤 걸 만들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곰덫이다.
파란 표지판과 접목하면 재밌는 게임플레이가 나온다.
두 번째는 줄폭탄. 똑같이 넉백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서, 굴러서 피할 수 있다는 차별화를 주었다.
이렇게 하면 내가 굴러서 통과한 줄폭탄을 쫓아오는 좀비가 트리거하게 되는 재밌는 플레이를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의사결정들이 서로 재밌는 시너지를 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탐험의 재미를 위해 높낮이 개념을 넣고 → 여기서 “낙사”라는 게임 메카닉이 파생되고 → 이걸 활용하기 위해 넉백 전용 무기가 생기고 → 다시 이걸 더 활용시키기 위해 함정 메카닉이 생겼다.
[챕터7] 좀비키가 되고 싶었던 게임
베타 테스트 때까지 스태미나 시스템이 있었다. 공격, 구르기, 달리기 시에 모두 스태미나 소모. 이 덕분에 게임은 무척 빡빡하고 어려웠다. 당시 소울류 전투시스템에 심취해있던 터라 개발 초기부터 넣었던 시스템이었다.
베타테스트에 스태미나 관련 피드백을 엄청 많이 받았다. 스태미나 무제한 옵션을 넣어달라는 의견부터, 달릴 때 스태미나가 너무 빨리 소모된다. 비전투 중에라도 달릴 땐 스태미나 소모를 없애달라. 스태미나 때문에 액션이 발동되지 않는 것을 인지하기 힘들다, 등.
처음엔 그냥 스태미나 소모 값을 적당히 밸런싱하고, 스태미나 HUD 효과를 좀 더 눈에 잘 띄게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GMTK 영상, Should Designers Listen to Negative Feedback? 을 보게 됐다.
이 영상의 핵심 골자는 Identify Problems, not Solutions이다. 플레이너는 보통 자기가 겪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개발자인 우리는 그 문제를 봐야지 그 제시된 해결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
이 영상을 보고 스태미나 관련 피드백을 다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문제가 하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또 다른 GMTK 영상, The Games That Designed Themselves를 보게 됐다.
“게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게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게임이 뭐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말한다.”. 이게 와닿았다. 좀비키는 뭐가 되고 싶은 거지?
그러던 중 다시 피드백을 봤다. “얼핏 보면 핵앤슬래쉬같은 게임인 줄 알았다.” “스태미나 관리를 요구하지만 전투가 전략적이지 않다.” “연속으로 사방에 펀치를 날려 박자감 있게 해치우는 맛이 좋다.” 등.
이때까지 마음속으로 좀비키는 “소울류식 스태미나 관리 전투를 가미한 액션 어드벤처”였다. 하지만 처음 정한 범위 규칙 때문에 게임 요소는 단순하고, 전투의 양상이 전략적으로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스태미나는 플레이어를 불편하게 만들 뿐인 재미없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좀비키는 핵앤슬래시, 혹은 비뎀업 게임이 되고 싶은 것 아닐까?
결국, 오랫동안 다듬고 다듬어온 스태미나 HUD를 비롯해, 모든 시스템을 제거하기로 했다.
이 타래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예전 버전을 다시 플레이해보니, 어쩜 이렇게 불편하고 답답한지, 이걸 그 당시엔 스스로 재밌다고 느낀 나 자신에 다시 한번 놀랐다.
[정리]
게임이 너무 커지지 않게 범위 규칙을 정한 것은 게임을 완성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그뿐만아니라 이 규칙이 게임에서 뭐가 중요한지 의사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피드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면에 있는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 주효했다.
다양한 게임을 많이 해보고, 좋았던 점과 별로였던 점들을 잘 기록해두니 의사 결정할 때 도움이 많이 됐다. 게임 개발을 시작한 뒤부터 적기 시작한 게임 리뷰 목록이 꽤 많이 쌓였다. Image
긴 타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Zombies and Keys 찜하기도 부탁드립니다!
store.steampowered.com/app/1167150/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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