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햄

얼마전부터 나에게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주를 떠돌고 있으며,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데 길을 잃었으니 교신에 응답해 방향을 알려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거절했고, 그날 지구로 오던 혜성이 궤도를 벗어나 관측이 일주일 지연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List

Day 1
Day 2
Day 3
Day 4
Day 5
Day 6
Day 7 (완결)

*유기연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
*등장인물 정신병 없음 아시발꿈 아님
*둘 다 완벽하게 제정신일 예정
*둘을 끝까지 믿어주세요
Day 1

‘목소리’ 는 자신이 우주를 헤메는 사람이라 말했다.
서른 살 생일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의 초입,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똑똑]

“방금 누가 나 불렀어?”

아니? 동료들이 고개를 젓는 걸 몇번 겪고 나니 확실해졌다.

[누구 없어요?]

“진짜 안 들린다고?”
너 병원에라도… 너무 피곤해서 쟤가 저러나, 동료들이 중얼거리고 나는 순간 이게 무슨 몰래 카메라가 아닌지 고민했다.

“아마… 어, 졸았나보다.”

니가 그럼 그렇지, 하는 동료들을 지나쳐 세수를 하겠다며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너 아직 거기 있지?

[제 말 들려요?]

그래, 너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변기 위에 앉아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처럼 관자놀이에 손을 올려놓는다.

‘아직 거기 있어?’

목소리는 조용하다.

‘갔어?’

또 침묵.

순간 애처럼 설렜던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래, 이게 뭐 꿈도 아니고.
그러나 귀에서 무슨 부스럭거림이 들리기 시작할 때, 소름이 바짝 돋았다.

누군가가 내 귀 안에서,

[거기]

[지구 맞아요?]

살아 있다.
‘지구 맞아.’

목소리는 한참 대답이 없더니 부탁이 있는데요, 비슷한 치직 소리를 냈다.

나는 듣기만 했다.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로 최대한 해석해보려 노력했을 뿐이다.

목소리는 자신이 우주를 헤메는 사람이라 말했다.
지구로 돌아가는 중인데 길을 잃었으니 아무나 교신에 응답해 방향을 알려주었으면 해서 무작위로 전파를 쏘았는데 내가 걸린 거라나.

‘뭘 원하는 건데?’

[저랑 교신을 해주세요]

‘언제까지?’

잠시 침묵.

[폰 있으면 꺼내봐요]
나는 폰을 꺼내 들었고, 본능적으로 네이버 부터 들어가 보았다. 무슨 우주 전파에 대한 속보가 뜨지나 않나 해서.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내용은 그 이상을 훨씬 웃도는 내용의 것이었다.

{외계 행성, 일정한 궤도로 지구에 접근 중… 빠르면 오늘 밤 8시 관측 예상}
‘그러니까 너는 외계인이야?’

[지구로 ‘돌아’ 가고 있다고요]

‘그럼 원래부터 지구인이었어?’

[내가 도착할 때까지 교신 해줄거예요?]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면 늦은 오후, 지친 직장인이 화장실로 도망쳐 쪽잠을 자다 꿈에서 헤메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게다가 예전부터 늘 나를 괴롭혔던 원인모를 이명에 대해 생각하면, 이 머릿속 목소리는 사실상,

‘아니. 그건 좀 곤란해.’

‘가짜’ 일 것이다.
목소리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옆에 지금 누가 있어요?]

‘아니. 화장실에 나 혼잔데. 들어가 봐야 해.’

[그런 거 말고]

‘뭔데.’

[내가 처음이예요?]
‘그게 무슨 소리,’

곰곰 생각하다 무슨 추측이 든다.

‘너 말고 다른 외계인이 나한테 접근한 적이 있냐고?’

어우, 영화같다. 얘가 사실 지구 정복을 위한 숙주를 찾아 헤메는 외계인이면 어쩌지, 이 교신이 사실 이미 뇌에 외계 회충을 넣어서 생긴 정신 착란이면 어쩌지.
아무래도 이게 다 바보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나는 곤란해. 지구를 찾으러 올 생각이면 그만두고. 여기 사람들은 뭐 딱히 더 필요한 것 없이 우리끼리 잘 살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농담조로 말이 나오고. 잠은 다 깼다. 정신은 말끔하다.
나가서 세수를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복귀하면 그만. 나는 읏차,하면서 몸을 일으킨다. 노래나 한번 쎄게 들어주면 이 환청도 사라지겠지. 웃긴 해프닝 그쯤이다.

그러나.

[진짜?]

어느새 말이 짧아지는 분위기에 움찔하면

[다시 체크해봐]

차가워진 목소리가 본색을 드러내 명령한다
나는 놀라 가만히 서 있다가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누군가가 들어와 줄을 서 있는 모양이다.

황급히 폰을 꺼내 확인해보면, 뉴스 속보.

2분 전 업데이트.

{외계 행성의 정체, 혜성으로 밝혀져.. }

{갑작스러운 궤도 변경으로 인해 관측 예상에 약 일주일 정도 오류}
기사를 클릭해 훑어내리면 최근 수정 시간이 몇 초 전으로 뜬다. 새로고침을 하면 또 갱신이 된다.

{.. 한국대 천문학과 m교수는 이 혜성의 궤도 변경에 대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 라는 입장을 내놓았으며, 해당 연구실에서는 이번 바뀐 궤도로 아무 인명 피해도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신이 번쩍 들지만 환청의 일환인 줄만 알았던 목소리는 아직 그대로 살아있다.

‘너가 저거 궤도 바꿨어?’

[응]

‘그렇게 막 바꾸다 여기 사람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안 다쳤으니 된 거 아닌가?]
금새 삐딱해진 태도에 혀를 차다 만다. 수틀리면 혜성을 어떻게 조종해서 지구를 깨부실지 모른다. 테러리스트를 다루는 것 같았다.

‘… 교신이 필요하다는 거지.’

이 미친 목소리에게서 지구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응]

이 지구에 나 하나밖에 없다.
반쯤은 사명감, 반쯤은 이제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젖어 자리로 복귀한다. 세수를 아무리 해봐야 목소리는 여전하다.

일을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머릿속에는 일주일 후 이 미친놈에 의해 뭉개질지도 모르는 지구의 이미지가 재생된다.

‘이봐.’
인질범과 협상하는 형사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일상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천천히 차근차근 친해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스며들어 뉘우치게 한다.

나라고 못할 것이 뭐냐, 유기연.

‘통성명이나 하지. 나는 유기연,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
순응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목소리의 집, 그러니까 원래 있던 곳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에게 고향에 대해 물어보면 공격성을 내세우는 것이 더 이상하니까.

시스유미 435621 행성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sis - umi 435621.

응, 하면서 조용히 검색을 돌린다.
나오지 않는다.
‘시스유미 라는 이름에 뜻이 있어?’

[아니]
[별 뜻 없어]
[난 만세 계시다 랑 비슷한 정도야]

난 만세 계시다?
진짜 정신병 있는 놈 아니야?

무슨 말인지를 하나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아무 뜻이 없다고?
그러나 동요하면 안된다. 목소리 이 놈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니까. 정말 협상하는 형사마냥 조심조심 사근히.

‘뭔가 시스유미,하니까 일본어같다. 너 지구인일때는 일본인이었나?’

[한국인]

저 싸가지
[애초에 시스유미가 이,]
[별의 첫번째]
[이름이 아니야]

약간 끊기기 시작하는 목소리에 위기감을 느끼고 원래는 뭐였는데? 하면서 말을 계속 시키면

[오몬미 (omonmi)]
[라디유 (ratheu)]

이런 이름들이었단다

외계인의 옹알이 그쯤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스유미 435621 이라고 했지. 그러면 435621은 누가 붙여준 이름이야?’

[내가]

‘뜻이 있어?’

[43은]
[내가 가야 할 곳의 위도]
[56은]
[내가 가야 할 곳의 경도]

‘21은?’

[내가 지구를 잃은 나이]
듣다 보니 기가 찬다.
저 미치광이는 사실 i love earth! 티셔츠를 입고 배를 벅벅 긁으며 사람들에게 착란 전파를 쏘는 일루ㅁI나티 그쯤이 아닐까?

‘야.’

[어]

‘이 정도까지 지구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대답이 없고 나는 살짝 불안해진다.

‘저기요’
‘야.’
‘야??’

그러나 목소리는 묵묵부답. 아무리 확인을 해봐도 씻은 듯이 사라지는 치직거림에 나중에 약을 먹을 생각도 안 했다.

그렇게까지 지구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뿐인데 목소리는 사라졌다. 첫번째 날이 끝나 잠에 들 때까지.
#댕햄

Day 1 - 27타래

오랜만에 sf류로 복귀하게 되었네요!
날짜가 거듭됨에 따라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병 결말 없이 이게 어떻게 완결이 날지 🤭🤭

내일 day 2로 뵙겠습니다!
Day 2

목소리에 대해 알아낸 것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까지는.
목소리가 사라진 후 솔직히 잠을 자지 못했다. 언제라도 갑자기 자는데 소리라도 질러서 잠을 깨울까봐 (거절 좀 했다고 혜성 궤도 틀어버린 그 성질머리로는 무슨 짓인들 못할까 싶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했다.
아침이 되고 출근해야 하는 입장에서 내가 어제 무슨 짓을 해버린 건지 조느라 지하철 역내를 두 번이나 헤메고 나서야 깨달았다. 진짜 병원 가봐야 하나? 아침 불지하철은 자리도 하나 없다. 좋은 점 딱 하나,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잠깐 눈이라도 붙일 수 있는 것.
밤새고 출근하는 것은 못할 짓이다. 이렇게 졸려 죽겠는데. 커피라도 하나 사가야겠다 생각하면서 입을 벌린 채 졸고 있는데,

[어디야?]

어제 그 목소리.

[들을 수 있어?]
너 이새끼, 하고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지금 다시 접신한 놈을 놓아줘서는 안될 것 같았다.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져 줄이어폰을 찾는다. 요새 누가 버즈 쓰지 줄이어폰 쓰냐고 했던 과거의 내 자신에게 호두턱을 한번 쏴주고, 누군가와 전화하는 것처럼.

‘어.’
솔직히 아직도 믿을 수는 없다. 내가 정상이라 쳐도 저 목소리의 주인은 일루ㅁl나티나 외계인, 혹은 정말 어느 유튜버의 몰래카메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주위를 둘러봐도 카메라 따위는 없다.

[왜 그렇게 시끄러워?]
‘나 혼자 있는게 아니니까 그러지.’

[그럼 너는 뭐하는데?]

‘맞춰봐.’

[내가 편해?]

나는 금새 움찔한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어디에서 삔또가 상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직도 가늠이 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차분하게 상납해준다.

‘출근해, 일 가.’

[어디로?]

‘xx구. 근데 말하면 아나?’

목소리는 대답이 없다. 한참 조용하다 한다는 말이,

[무슨 일 해?]
‘출판업.’

[매일매일 이래?]

‘매일 이러고 출근하냐고?’

뭔가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외계인(내 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에게서 지구를 구해낼 유일한 사람이다. 대화의 주도권은 내가 잡아야 했다.

‘아 근데 잠깐만.’
‘너 그 궤도.’
‘내가 거절해서 바꾼거야?’
[원하는 날이 따로 있어]

‘언젠데?’

[신호가 너무 미약해]
[없어지기 전에는 꼭 가야 해.]

‘그게 일주일 후야?’

나도 시간을 가늠해본다.

‘잘됐네. 나도 딱 일주일이야.’
[뭐?]

나는 분명히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니 또 성질을 부려서 궤도를 바꾸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도로 장난스럽게 말한 건데, 갑자기 굳어지는 목소리에 내가 더 놀란다.

‘나 외국 가는데….’
[왜?]

주도권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어물어물 털어놓고 있었다. 적당히 넘길 수도 있었으나 왜인지 상처받은 듯한 목소리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유학 비슷하게. 근데 거의 이민.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목소리는 한참 답이 없다가,

[그래서 다시 안 와?]

‘응. 한국 다시 안 들어와.’

[왜?]

이번만큼은 내가 침묵을 지킨다.
목소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왜? 왜? 왜? 를 반복한다. 나는 집에 걸어둔 내 교복을 생각한다. 그렇다고 교복을 저 외계인한테 설명을 해줄 수는 없잖아.

‘… 딱히 여기 살 이유가 없더라고.’

[언제 떠나?]

뭔가 목소리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난다.
‘5일 후 오후 8시 비행기.’

[내가 도착하기 전이잖아.]

‘나한테 무작정 온 거 너거든.’

[아니야]
뭐가 아니야?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고개를 길게 빼서 원하는 역에 도착했는지 확인해 볼 정신도 없다.

[나는 교신을.. 교신을..]

‘야, 정신 차려봐.’

[분명히 또 다른 우주에서.. ]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네가 정해진 대로만 맞춰서 오면 되잖아.’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도와줄 테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달래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게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건가.
‘그러니까 그냥 더 궤도 틀지 말고.’
‘야 시스유미.’
‘야.’
‘듣고 있냐?’

또 싸가지없이 잠수를 타려는 놈에게 짜증이 맺힌다. 너 때문에 내가 어제,

‘너 이번에도 또 가려고?’

귓가에서 부스럭거림이 멈춘다.
[나,]

안 간다, 비슷한 항변을 하려 멈춘 줄 알았으나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한 모양이다.

[난 만세 계시다, 라고 알아?]

알 리가 있겠냐고, 문법에 뜻도 하나 안 맞는걸.

‘일단 스스로한테 높임말은 안돼.’

말하면서도 정말 도움 안된다 싶었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시스유미 435621 에서 왔다는 이 외계인의 엉망인 문법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나 갈때까진 도와줄 테니까.’

[왜 한국이 싫어?]
나도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한다.

‘이 나라가 싫은 게 아니야.’
‘이 나라의 기억이 싫어.’

목소리는 답이 없다.

‘스물 한 살에 지구를 잃었다고 했지.’

시스유미 435621의 21은 지구를 잃은 나이라고 했으니까.

‘나는 너보다 훨씬 어릴 때 뭔가를 잃었어.’
‘그래서 떠나는 거야.’

목소리는 답이 없다.

‘고민 진짜 많이 했거든.’

[아,]

아, 소리가 들리더니 곧 조용해진다. 이번에도 또 사라진 것이다. 나는 줄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것도 까먹은 채 주위를 돌아본다.

목소리가 다시 사라졌다.
Day 3

1. [목소리] 는 ‘지구’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목소리가 사라진 후 나는 (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밤을 샜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어차피 이틀 후면 일을 그만두니 별로 할 것도 없다.
이것저것 웹서핑을 해보니 일반인도 접속하면 관측 자료를 볼 수 있게 공개해주는 웹사이트들이 몇 개 있었다.

카페 면을 클릭해보니 벌써 새로운 혜성에 열광하는 우주광들이 만든 네이버 카페가 있길래 가입도 해봤다.
근 몇십년 만에 관측되는 혜성을 직접 맞이하게 생긴 그들의 열광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무엇을 직접 해보기도 전에 각자 공개되는 데이터를 모아 와서 실제 우주 모형에 띄우는 프로그램까지 구축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녹아들었다.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카페 채팅창을 읽으며, 옛날에 공부했던 기억을 살려서 우주 좌표 읽는 법도 대충대충 알아듣고,… 하다보니 재미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스유미라고 아세요? 하고 카페 전체 채팅을 날리려다 멈칫했다.

나는 목소리 때문에 여기 들어왔었지.
그러고 보니 그 목소리, 내가 한국을 떠날 예정이라 하니까 사라졌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그 놈 길은 잘 찾았나?
새 숙주 찾으러 떠났나?

그래서 이제 안 오나?
그러나 속보

잠시 한산했던 카페 채팅창이 촤르륵 올라간다.
지구를 향해 오던 그 혜성

방금 전에 우주 암석 하나와 세게 충돌해서 3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그 충격파가 지구에서 세운 전파 송•수신기에 일정한 규칙으로 잡히길래 지구 공용어인 영어의 알파벳으로 치환을 했더니 그럴싸한 이름이 나왔다더라.
omonmi

ratheu

오몬미와 라디유.

나는 분명히 이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때 목소리가 말하던, 자기 살던 곳의 원래 이름들 중 하나.

그렇다면

3개의 조각 중 나머지 하나는?
[시스유미 (sis-umi) ]

내가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눈만 멍하니 비볐다. 모든 것이 다 들어맞는 것을 보고 생각한다.

시스유미 435621 에서 왔다던 그 목소리. 목소리가 사는 곳이 사실 지금 온다는 그 혜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 혜성이 부서졌다는 것은,

‘목소리’ 가 심하게 다쳤다는 것일수도.
Day 4

2. ‘목소리’ 는 ‘지구’를 잃은 적이 있다.
나는 지하철에서 줄이어폰을 끼고 내내 여보세요, 소리만 반복한다. 몇번이고 ‘외계인’ 에게 교신을 보내면서대답이 들리기를 기다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실제 입에서 입으로 소통하는 것도 아니면서 줄이어폰의 스피커 부분을 손으로 집어 입에 가져다 대느라 손이 시렵다. 겨울이라서. 조금 있으면 11월이다.

‘생일….’

정말 춥다. 우주도 인간이 나가면 얼어버린다던데, ‘목소리’는 괜찮을까
애초에 네가 인간일까?
여전히 대답이 없는 목소리에게 내내 여보세요, 하고 말을 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앞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출근길에 멀쑥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계속 여보세요만 반복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괜찮다.

이상한 사람 취급은 익숙하다.
이미 두 번은 받아봤으니까.

11년 전에 한번

9년 전에 한번.
일을 그만두기 하루 전이라 내 자리는 한산하다. 적당히 자리나 채우다 내일 전송을 받으면서 가면 그만이다.

조용히 짐을 미리 싸두기로 했다.
이게 다 끝나면 내일 사무실 동료들에게 나누어 줄 배달용 선물 세트나 알아봐야지. 나는 서랍을 연다.
서른살 출판부 유기혅의 서랍 안에는

봉투가 있고 처방전이 있다.
몇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노란 봉투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폰에서 진동이 울려 다시 의자에 앉아 열어보면 김 선생님에게서 온 문자다.

나를 담당해오신 선생님이다.
9년 전부터.

내 경우에 흥미를 느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까지 발전한 분이다. 그것도 결국 그때 한순간이지만.
[기혅아. @@병원 김@@ 선생님이다.]

로 시작하는 그 메세지는 내가 사흘 후면 한국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는 것을 내 어머니나 누구에게 전해 들은 모양인지,

[귀는 어떠니? 아직도 이명이 들려?]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핵심을 쿡 찌른다.
[연락이 없어 문자한다.]

[‘그’ 이후로 9년이 지났는데 여즉 괜찮니? 시간이 될 때 한번 내원해보렴]

한참 턱을 괴며 고민하다 입력 창에 몇 자를 쳐본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그러나 결국 보내지 않았다. 나도 이유는 몰랐다. 내일 사무실로 배달될 간단한 선물 세트까지 알아보고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며 퇴근길 지옥철에 오를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이름 모를 힘이 답장을 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그 목소리가 혜성의 궤도도 바꾸고 말투도 바꾸고 제 일상도 바꿨어요.
앞으로 뭘 더 바꾸려고 들지 모르겠어요.

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곧 다 지워버린다. 곧이곧대로 말하면 약을 줘서 목소리를 없애버릴 것만 같아서.
‘문제 없어요. 건강히 잘 지내세요. 그간 감사했습니다.’ 하고 전송한다.

집에 비틀거리며 돌아간다. 카페에 접속을 해보면 우주광들의 프로그램 안에서 시스유미는 변함없이 움직인다.

‘지구’ 를 향해서.
목소리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너는 정말 괜찮은 거야?
다른 숙주를 찾았어?

여보세요, 하고 속삭여봐도 끝까지 대답이 없는 목소리의 존재와 읽음 표시가 뜬 내 마지막 문자를 본다.

내가 서랍을 뒤져 꺼내든 것은 수면제.
잠에 깊이 들 만큼의 정량을 계산해 입에 털어놓고 침대에 눕는다. 혹시 모르니 스탠드는 켜놓는다.

자자고 하는 짓에 언제든지 깰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다니 이건 정말 뭘 하는 짓인가 싶다.
그러나 정말 깊이 잠들고 싶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도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로.

사실은 아니다.

작은 소리 하나만 들려도 목소리로 착각해 괜히 날밤을 새지 않을 정도로.

기다리게 된거야
서서히 노곤해지는 잠에 빠져들면서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나는 왜 ‘목소리’를 기다리는가?

그야, 나밖에 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지구’를 구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정말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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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0
#댕햄 #채꿍

치과의사공 스핀오프 외전 what if?

아니 내가 어떻게 친구랑
친구가 게이라는 걸 알고 흥분해버리면,
흥분해버리는 내가 진짜

챔피언…! (속닥)

챔피언.. 아니 기연아 제발 좀!!!
당신을 보니까 제 심장이
요동을 치는 것 같군요

요동을.. 친다고요?
드디어 북벌이 시작되는 건가…

(사진 순서에 의미는 없습니다)
본 연성은 댕햄 채꿍 치과의사공의 모든 설정을 역으로 씌운 스핀오프 what if? 외전이며 본편을 읽지 않으셔도 무방한 심심풀이 땅콩용 외전입니다!
Read 84 tweets
May 10
#댕햄

좁은 7ㅔ이판에서 만인의 완식 이군.. 얼마전에 남자 하나에 코꿰여서 지금 별명

품절남 벤츠공 치과의사공

왜 치과의사공이냐

🐶 기여나 할 때 아프면 오른손 들어줘야대 알겟지
🐹 세이프워드를 정하는게 더
🐶 아니아니ㅎㅎ
🐹
🐶 말 못할 수도 있자나

할때 아프면 오른손 들라고 해서 ImageImage
얘네 어떻게 만났다하지

7ㅔ이 어플에서 만났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런쪽 이태원 클럽에서 만났다 해야하나

이번건 아무래도 빌드업용 연성이 아니라 그냥 재미용 연성이라 짧게 가자면

아마도.. 클럽에서 만났다 해야하나
바 섞인 좀 점잖은 쪽에서
탑티어를 달리는 이민역군
그 세계에서 닉네임 정직하게 ‘댕’
예쁘장- 한 외모와는 다르게
침대 들어가선 180도 변한다는 소문 때문에 내로라하는 바텀황들이 도장깨기마냥 댕 노렸던 전적 있음 재밌을듯
Read 1254 twe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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