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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 2022 267 tweets >60 min read Read on X
#채꿍

한강에서 인어를 발견한 인간의 이야기 ImageImage
그러니까… 시작을 어떻게 하냐

아무래도 균.. 고3이었으면 좋겠지
공부도 곧잘 하고 대인관계 원만한 편이고
원서 접수 얼마 안 남았고
슬슬 여름날의 초입에 스트레스.. 좀 쌓이고
고3균.. 이런 바이브
근데 학교에서는 그냥 후드티 눌러쓰고
그냥 조용히 공부만 하고
26번! 하고 이름 부르면
… 네엡, 하는 그런 스타일

조용해서 좋은 점 하나
청소 튀어도 아무도 모름 Image
그렇게 청소를 튄 고3은 뭘 하느냐
그냥 터벅터벅 하교함
사람싫어 혼자좋아의 표본인 고삼균

그날도 그냥 하교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가슴이 너무 답답한거야
곧 이제 원서내고 대학가고 할텐데
.. 좀만 지나면 자기도 어른인데
준비를 하나도 안한 기분
마침 저기 둔치에 그게 보이거든
딱 저기 한강있음

맨날 반 친구들이 시험 망하면
한강~ 갈끄니까~~ 하던게 다 이유가 있던 드립이었던 것임
균 학교랑 한강변이랑 쬐매 가까움
왜 자기가 이걸 모르고 있었지

당연하지 원래 고삼균 맨날 단어장에 코박고 다녔으니까ㅠ

사람이랑 혐생에 지쳤을 때 Chill… 하러 굳이 구석탱이 찾아다닐 필요가 이제 없을 것 같은데.. 눈에서 삐칭 빛이 나는 균
그 사람들 낚시하는 스팟 있잖아
거기 그 우툴두툴 나와있는거
무슨 깡인지.. 고삼의 깡인지
균 .. 조심조심 밟고 내려감
경사도 상당해서 헛디디면 미끄러질 각인데 게다가 올라가는 건 어떻게 할 생각인지
근데 그런거 하나도 상관없었음
약간 도망치고 싶었음
그렇게 해서 엉겁결에 마주한 한강은..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음 사람도 별로 없고

나 여기 있어도 되나 하고 누가 학생!! 거기 들어가는 거 아니야 나와! 하고 꼽줄까봐 주위 둘러봐도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고
그래도 이왕 사람들 눈에 띄면 좋을 거 별로 없다는 거 본능적으로 아는 고삼… 등 뉘이고 본격적으로 기댐

짜피 낚시꾼들은 늦저녁에나 올거고 지금은 이제 오후 다섯시 될까말까 하니까

안심한 마음에 가방도 벗어다 옆에 둠
이제 기대서 한숨 후- 하고 셔보는 거지

탁 트인게 좋다 싶다가도
이제 뭐하지? 하는거야

멍때리다 정신차려 보니까
가방 지퍼 열어서 단어장 꺼내고 있더라

에이씨
극도로 발달한 고삼은 매드 싸이언티스트와 구분할 수 없습니다의 표본

쉬려고 왔는데 여기에서도 공부할 거리 찾는게 진짜 눈물겹기까지 함

인상 팍 구기고 단어장 가방에 쳐넣는데 진짜 뭐하냐 싶더라고
이대로 가나.. 하고 무릎 감싸안고 하늘 보는데 발치에 뭐가 채이드라

돌이지

옛날 생각나 감성타는 고삼

자기 왕년에 물수제비 진짜 잘떳거든
돌 하나 집어다 수면에 휙 날리기



하더니 그냥 쑥 들어감

어랍쇼? 아무래도 오기가 생겨서
계속 몇번을 던져봄
그랬더니 이제 컨디션 회복해서

퐁 퐁 퐁 퐁 잘감
그렇게 던지다 보니까
왜인지 모르게 맘도 좀 편해진 것 같고
뭔가… 좀 좋다

일어서서 이제 가려고 하는데
가기가 싫다 나가면 현실이고
현실에서는 이제 또 내신싸움에 암기지옥에 늘어나는 스트레스에..
근데 여긴 너무 조용하지
사람이 없는 것도 맘에 들고
일어선 채로
떠나길 주저하는 상태로
어정쩡하게 멍때리던 균

저기 멀리 수면 바라보는데
뭔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에 초점이 맞춰짐

잉어가 있나? 붕어인가
근데 저 파동이 점점 자기한테 오는거야

딱봐도 자기가 던진 돌을 먹이로 알고 더 달라고 오는 붕어류가 분명했음

흥미를 가지고 그 앞에 쭈그려 앉는 균
과자라도 있으몀 뽀개서 뿌릴텐데
아쉬워하면서

파동의 정체가 쭉 하고 고개를 뽑는데

엥?
잠깐만

고개를 뽑아?
붕어가 아니라
남자.

그것도… 아주 잘생긴 남자가
실환가?

고딩 굳어버림

드디어 서~울시가 여기에 알바를 풀었나?
막 한강에 인어 알바를 뿌려서 어린이 관광객의 주의를 끌고 가족단위 관광객을 유치하고 막…(아님)

그냥 수족관 식 알바인줄 알고 어색하게 고개 꾸벅- 하는데 느낌이 이상해

사람 아닌거 같애
고개 살짝 들어서 보고 있으면

남자.. 는 아직 그자리 그대로
눈도 큼지막하고 쌍커풀도 이쁘고
코도 동그라니 높은 거 같길래
… 외국인인가? 함

인어 알바로 러시아인 일하는거 내가 릴스에서 봤어봤어 하고 뿌듯냥 상태 됐는데

헬로 몇번 시도해본 끝에..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멀뚱-하니 남자 바라봄
야 벗었나봐
물 위로 얼굴이랑 쇄골까지
그정도 빠끔하니 나와있는데
… 뭔가 상의는 안 입은 것 같아
하체는.. 알고싶지않음

여기에서 뭘 해야 하지
나 가야 하나?
근데 몸이 안 움직여져
생각보다 너무 놀라버려서
일단 슬금슬금
시선은 한강의 그 남자에게 고정시킨 채로
팔만 빼꼼히 뻗어서 가방 집어채는 균

그런 바이브 있잖아
아파트 복도 건너가야 하는데
저 앞에 바퀴벌레 보일때

한번에 샤삭 가야 하는데
그 찰나에 쟤가 나 덮치면 어떡해

그래서 오도가도 못하는 그런 분위기
그렇게 가방만 겨우 품에 안고
한강의 남자와 대치중이었던 균…

남자가 살짝 몸을 더 물 속으로 넣더니
손을 바깥으로 내놔

뭘 쥐고 있어
근데 팔에 뭐가 돋았어
애매하게 파랑초록이 돌아
뭐야 저거 비늘이야?

놀라는 사이에
남자가 손을 열고
그 안에 든 것들을 좌라락
와중에 뭐묘… 하고 보면 그거다
균이 지금까지 물수제비 뜬 돌들

한강에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건가

그래 이건 공익광고고 이건 몰래카메라다
사람들이 한강에 쓰레기를 무단투기할 때 그 앞에서 인어로 분장한 자원봉사자를 스윽 나오게 한다면 시민들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같은 그런거
고개 꾸벅.. 숙이고
일단 아 제송함다.. 하는데
남자가 그대로야
컨셉 확실하네 하면서 보는데
야 아무래도… 카메라 없는 것 같애

그럼 얘는 뭐지?

굳어가는 균의 시야가 맑아짐
남자가 손짓을 해서 부른겨
남자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떨구면
남자가 주워온 돌들
그 사이로 반짝이는 거 하나



펜던트!!
아빠가 사준건데!
균 아버지 직업상 여기저기 출장을 많이 다니시는데 그래도 균 외동이라고 많이 챙겨주심

그 문제의 펜던트는 뭐랄까
아버지가 이탈리아 다녀오셨을때 기념으로 사온 건데 왜 관광지 가면 랜드마크같은 네임드 조형물 박은 굿즈들 파는거
그러니까 이번 펜던트는.. 피에타 그런거 박혀 있는 걸로 칩시다 피에타 짱유명하잖아

어쨌든 돌 사이에 섞여있는 그 펜던트
균 거 맞지 아빠가 사주신 거지

아버지 집에 멀쩡하게 살아계시지만 균이 특별히 아끼는 그런 물건임

근데 아까 돌 던질때 같이 섞어 던졌나봐
일단 조심히 손 내려서..
바로 채가는 균

근데 강에 몸 담구고 있는 저 남자는
진짜 미동도 없고 균만 보는데
그렇다고 또 째리는 것도 아니고
하트 뿅뿅도 아님 (당연히

그냥.. 많이 흥미로워보임

근데 이 남자는 뭐지
진짜.. 인어인가
암튼 인생에 지친 고삼균
생각 회로가 단순하게 굴러가기 시작하는데

펜던트 주워줌
나한테 공격성 없음
잘생김
조용함

>> 일단 호의

가만히 쭈그려 앉아서
… 고마워요. 하는데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모르겠는데 남자가 빵긋 웃어 근데

예쁘다..?
멍하니 남자 바라보는데
무의식적으로 저기 뒤 보는데
꼬리 같은게 저기 수면 아래로
조용~ 하게 출렁여

그 순간 진짜 인정하게 되는거지
이 남자 인어구나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인어 맞구나
그렇게 정적

이 사람 인어야
근데 어쩌지? 뭐해? 찍어? 신고해? 유튜브에 올려? 저는 미지의 고대 생물학에 대한 왕성한 관심을 바탕으로 1학년 때 바이오 동아리에 드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하생략 지속적인 관심과 탐방을 한 끝에 한강에서 인어를 발견해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생기부에 되겠냐?
와중에 인어는 자꾸 자기만 바라보고
물 밑에 꼬리는 자꾸 한가로이 흔들리고
.. 어찌보면 개가 기분 좋아서 꼬리치듯이

잠시 고민하다 인어가 주워준 돌
다시 손에 쥐어보는 임군

인어 시선이 자기 손으로 쭈루루 내려가
아 설마

다시 던져달라고 가져온건가?
조심히 쥐고

돌수제비가 아니라

저기 저 머얼리
온 힘을 다해 던지는 균

인어가 바로 뒤돌아서 물속으로 사라져
사람이 접영하듯이 꼬리 일부가 보였다 사라졌다 하고

아마 다시 주워서 가져오겠지
그러나 균은 일어서서 바로 뛴다
일단 뛰어
가야 했으니까
그 경사를 어떻게 다시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아예 손으로 기어올라갔는지

어떻게 헉헉대면서 버스에 앉아서 손 보면 긁히고 피 맺혀있고 난리도 아님

근데 시계 보면 30분 남짓 지났어
평생을 거기 있었던 것 같은데

다친 손 한참 보다가 제 겨드랭 밑에 끼워넣고 창밖만 보는 고딩
… 내일도 가볼까 생각하는 중

손은 조오금 쓰라리지만
뭐 어때 성적 스트레스로 정병 먹는 것보담 낫지 그렇게 해소도 좀 해줘야만

그렇게 멋대로 애프터 박아놓고
고딩은 인어가 참치캔을 먹나 생각하는 중
그렇게 하굣길에 고양이 예뻐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한강에 들리는 고딩균

솔직히 처음으로 작정하고 갔을 때 약간 쫄았음 나 귀찮다고 생각하면 어카묘… 아니 근데 아예 없으면 어캄…
처음엔 없길래 돌이나 만지작.. 거리고 있었음 진짜 기척도 없길래 괜히 아쉬움 느끼면서 돌 퐁 하고 던졌는데

??

어느새 그 돌 주워들고 제 앞으로 스르르 다가온 인어에 눈 똥그래짐

그게 둘의 두번째 시작
인어가 균이 오지 않을 때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지 잘 모르겠음

쭉 한강에서 살았던 건가?

맨들맨들한 돌 굴리다가 인어가 다가오면 던지고 그러면 인어는 그거 줏으러 가고

그러면서 멍하니 생각해보는 균
조금 익숙해져서
인어가 자기가 올 때 똑같이 와준다는 걸 확신한 다음부터는 참치캔을 사갔음

근데 인어가 가까이 오질 않아

손 뻗으면 아슬하게 안 닿을 거리
딱 거기까지만 유지해
경계심이 많은가봐
할수없이 참치캔 까놓고
멀찍이 물러서면 그제서야 와보는 인어

손가락(와 손가락이 있네) 으로 쿡 찌르고
빨아보는데 (사람같기도 해)

마음에 별로 안 들었나봐
누가봐도 으 하는 표정 지어
아 미안; 하면 알아듣긴 한건지
그렇게 기분이 나빠보이지도 않는 인어

근데 그럼 저 캔 어떻게 처리하냐 하는데
인어가 그 캔 들고 물속으로 사라져

뭐묘 하면 좀 있다 다시 나오는데

세상에
참치캔 설거지 되어있음
너 뭐야?? 하는 표정으로 보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딱 버티고 서서 손가락 넣어서 야무지게 잔여물들 훑어주는데

아 그거 조심해야 하는데..! 하고 말하기도 전에 일을 침 캔 그 뚜껑 절단면에 베였어
인어 피 색깔은 처음보는데
그래도 빨갛긴 하다?

멍하니 보다가 일로 와봐; 하고 손짓하는 고딩… 근데 생각해보니 밴드를 붙여준들 저긴 쌩판 물이라 쓸모가 없고.. 쟤는 자기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어정쩡하게 지 손가락 제 입에 무는 균
? 표정으로 보는 인어가 제 말을 알아듣든 말든 일단 설명은 해… 엄연히 말하면 자기가 가져온 캔에 베여서 다친 건 맞으니까

그럴땐 물어
입에 넣어서 감싸
너 아픈 부분을
입에 넣을 수 있으면

아픈 부분을 입에 넣어
안 아플 때까지

말하면서도 ㅅㅂ 이게 뭔.. 싶음
근데 인어가 자기 보더니 자기 따라서 자기 베인 그 손가락 제 입에 넣잖아

그거 보니까 기분이 이상해
얘랑 진짜 말이 통하는 거 같기도 하고

… 너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야?

물어도 대답은 없고

나 오늘은 가볼까? 해도 대답이 없어
이제 슬슬 루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학교 끝나고 (한참 입시 스트레스로 갈리고) 바로 한강으로 고딩이 튀어오면 수면은 잔잔

그래도 물수제비 몇번 뜨면 저기에서 뭐가 일렁이기 시작해

곧 앞에 나타나서 제가 던진 돌을 주르륵 쏟아놓는 인어

이게 둘만의 약속
프레스비 던지면 물어오는 강아지처럼

왜 그런거 귀엽잖아

제 앞의 이 생명체는 강아지도 아니고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남자에 가깝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이 가
해주고 싶어

하루에 30분 - 1시간을 거기에만 있어
학교에서 멍때릴 때마다 인어 생각해
자기 빼고 아무도 모르는 인어

아니 모를 수가 있나? 싶지만
뭐 상관없어

균도 인어 남들한테 자랑할 생각 없음
얘는 나 없을 때 뭐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는 위치 센서 구해서 방수 처리 해주고 인어에 달아볼 생각도 한 균… 솔직히 생기부에 찌든 고딩이라 구상하면서 한강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고 (편의상) 연어의 귀소본능을 알아보기 위해 위치 센서를… 하면서 쓰는 생각

딱 한번은 했다 양심고백
근데 인어가 좀체 자기가 걔 만지게 해주지도 않고 어떻게든 인어한테 시선이 쏠리게 하기는 싫어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한다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데도 그냥 한강 가서 한시간 두시간 붙어있는거야

걔 눈을 마주보면 세상에 둘밖에 없는 기분이 들어 바로 뒤 다리 위에는 차들이 지나다니는데
이상하다

그렇게 차들이 많은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도 인어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아

오직 고딩만 아는거지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아
한강의 인어는 어느새 제 인어가 된거야

말 못하는 그의 눈을 보면
괴상하게 안정이 돼
누구도 모르는 제 보물이라
내 보물 내 진주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지

균만 보이면 제 손가락 입에 집어넣고 빤히.. 보는 인어

잘생긴 애가 그러니까 꼭.. 아양떠는 것 같음 이 생각 해놓고 균 셀프 싸대기때림

인어한테 아양이 뭔말임
또 그것도 있다

인어가 그때 주워준 피에타 팬던트

그거 줄로 달아서 목걸이로 만든 균

그런 형식을 로켓이라 부르거든요
앞으로는 로켓이라 할거임

그거 만든 날 균풍당당하게 인어한테 첫개시 했더니 눈 땡그랗게 뜨는게 또 귀여움
인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나한테만 보이는 것 같잖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근데 한 두달을 그러고 있는데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인어를 보니까
그냥 얘가 평생 여기 있을 것 같은거야
나쁘지 않아

매일매일 여기로 나오면 되잖아 자긴

학생때도 대학을 가도
취직을 해도 결혼을 해도
아이가 생기면 데려와서
아빠인 자신이 한 것처럼 비밀친구를 만들어주고
중년이 된 후에도 노년이 된 후에도
그렇게 손자도

그렇게 70년 후까지 상상으로 쫙 그어버림
하하! 뭔가 웃음이 나와
꼭 웬디의 아이에게 네버랜드를 보여주고
그 아이의 아이에게 네버랜드를 보여주던 피터팬의 원작을 생각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인어를 평생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서 그런 건지는 자기도 몰라

그래서 뭘 하기 시작하냐면
앵무새를 가르치듯 자기 앞에 고개 빼꼼 내밀고 있는 인어 보면서

자기 이름은 임챵균이라고 발음해보라고 집요하게 말거는 임군 근데 그게 될리가

자기 목만 몇번 쓸면서 소리도 안냄

그래 시작이라 치자 괜찮아
고딩균에게 인어는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되고
하굣길의 참치캔 고양이도
던진 것을 줏어오는 강아지도
사람만큼 똑똑하다는 앵무새도 되고
들어주는 친구도 될 수 있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고

어쩌면

마음을 빼앗기는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아슴아슴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을 키워가던 고딩균

곧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말자 다짐함

학교 고양이 예뻐하는 그런 축
그런 마음이겠지 함
짜피 인어 사람 아니잖아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밖에서 터진다
그날도 인어와의 루틴을 마치고
자기 말 알아듣는지도 모를 인어한테
오늘은 담탱이가 그지같앳구 어쩌구저쩌구.. 함서 세상사 한탄했을 고딩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집에 들어가는데
엄마 눈치가 이상해

균아

이사를 가야 한대
아버지 직업 특성상 외국 자주 나가고 여기저기 출장 다니고 하는건 알았는데

이번에는 장기간이라 맞춰주려면 이사를 한번은 해야 할 것 같대

굳어지는 고딩 표정 보고 안아주면서 고삼인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어머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데
균 머릿속은 아무도 모를 것들로 가득
이사하고 친구들 새로 사귀고
환경 바뀌고
그런건 알 바 아니지

인어 못 보잖아 이제
어떡하지
금붕어면 어항에 넣어 가는데
몰래 데리고 갈 사이즈도 아니고

그날 밤 내내 고민한다 균
제가 바보같았다
끝이 있다는 걸 왜 모르고만 있었지
어머니한테 들은 말로는
이사는 정식으로 일주일 후

사실 한 달 전부터 계획하긴 했는데
바로 알려주면 고딩 안그래도 스트레스 많을 때인데 더 스트레스 받을까봐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 얘기한게 어제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까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마지막으로 약속 잡고 놀기라도 하래
밤을 꼴딱 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가 미안하다 아버지 일이니까 이해해달라 토닥이는 거

아침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고개만 꾸닥임

학교에 가서도 머리가 텅 빈 것 같아
어쩌지 진짜 방법이 안 보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은 챵균이 컨디션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보건실 가보지 않겠냐고 그날따라 친절을 부려주고

아니 사실은 아는 듯 하다
아무 것도 모를 리가 없지

자기 빼고 다 아는 것 같아
자기만 몰랐어

나는 진짜 인어 빼고 아무것도 모르나?
침대에 누워서 창문 열어놓고 바람 맞는 균

상체 조금만 들어서 보면 저기 바로 한강인데 그만큼 가까운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홀린 듯 한강 응시하다 초점이 깨진다
저거 파동인가?

지금 인어 있는거야?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거리인데도

자기가 본 것은 인어의 파동이 아니라
제가 어제 밤을 꼬박 샌 탓에 본 모자이크 환각일 가능성이 더 높은데

모든 걸 다 걸고 싶어지니 문제인 거다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챵균
반으로 가게? 하는 보건쌤한테 대충 꾸벅 해 보이고 고딩은 조용히 1층까지 내려간다

웬일로 교문에 수위 아저씨도 없다

갈까?
진짜 갈까?

이건 청소를 튀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데
숨을 죽이고 생각하는 고딩

내가 본 게 인어가 맞나?
아직 만나는 시간이 아닌데도 거기 있을까?

아니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할 수 밖에 없다
너도 나를 얼마간 기다렸다면
내가 너와 만나는 시간을 기대한 만큼
교문으로 천천히 다가가면서 고딩은 한강의 다리와 지금 그 밑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어를 생각해

다리 밑 아무도 모르는 제 아지트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제 인어

힘껏 내달아 뛰어

이것은 건너야 할 또다른 다리
신발의 끝이 교문과 밖의 경계를 넘어가

가슴에서는 하트 모양 로켓이 날뛴다
지금은 오전 열 한시

한산한 평일의 오전
한강의 그 다리 밑은 더욱 그러겠지

그래서 가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래서 막연한 희망이 무서운거다
받침대를 줘서 더 높이 올라가게 만들고
그걸 빼 더 깊이 떨어지게 하잖아

욱신거리는 통증에 내려다보면
제 손가락에 피가 흘러
언제 베였지?
나는 왜 너를 봤다고 생각했지?
왜 네가 나를 기다릴거라 생각했지?

이유조차 모를 모든 것들에 의욕을 잃고 주저앉아 건조한 눈가를 몇번 훔쳐보는 고딩

뭔가 그렇게라도 울어줘야 할 것 같은데 눈물도 안 나와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그런가

아니면

저기 저 파동이 익숙해서 그런가
홀린 듯이 돌을 집어 푹 하고 던지면
그제서야 촤촤촤 제게 다가오는 물살에
몸에 힘이 풀려 축 늘어지는 고딩

물 속에서 솟아오르는 반가운 얼굴이 너무 좋다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 핑 돌기 시작함
인어가 자기 빤하게 보는 거 알면서
걔가 자기 앞에 놓아두는 돌 보면서
그대로 쭈그러앉아서 눈물 훔치기 시작하는 고딩… 너무 서럽고 무서움

인어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인어는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고딩이 다 울고 자기한테 이유를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주고

한참 훌쩍인 후에 고딩이 하는 말

.. 나 기다린 거야?

그게 아니면 왜 우리 만나기 다섯시간 전인 이 시간에도 이 다리 밑에 있는지
인어는 사람 말 모른다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기 앞으로 조금 더 다가오는 인어를 보기 전까지는

인어의 시선은 제 피가 흐르는 손가락에 쏠렸어 고딩도 그 시선을 의식하고 인어를 보자 인어가 제 손가락을 제 입에 문다 너도 얼른 하라는 것처럼
아프다고 생각하는 걸 입에 넣으라고 엉망진창으로 인어한테 설명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고딩은

걔가 입맛에도 안 맞는 참치캔 설거지해주겠다고 빡빡 닦다가 기어코 살 베일 때

그리고 돌도 주워주고 자기 얘기 들어주던 인어도 떠오르고

이거 다 여기 놓고 가겠네
뭐 할 새도 없이 또 눈물만 뚝뚝
고딩이 계속 그렇게만 우니까
인어가 처음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원래 손 닿는 사정거리에는 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냐

뭔가 큰 맘이라도 먹은 것처럼
이제 손 뻗으면 만질 거리에
만져도 되는 건가?
알쏭달쏭하게 바라보는 고딩
일단 자기도 앞으로 조금 움직이는데
인어는 뒤로 안 물러서

근데 자기가 본 인어의 표정은 신뢰야
허용과는 다르다

네가 만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니까 다가와주는 거라는 그런 감정을 고딩은 읽었어
여기 오기 전에 고딩이 무슨 생각까지 했냐면 인어한테 이사갈 집 주소 알려줄까 했음

그렇게라도 찾아오게 해서 만나게

의외로 똑똑한 애니까
어떻게든 ..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나 따라올래? 하고 물으려고도 했음
그리고 아까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정말 그러려고 했었음
근데 읽은 표정이 그게 아니잖아

쟤는 나를 믿는거지 욕심내는게 아니야

아무리 다가온들 만지는 것까지는 안된다는 거잖아 어떻게 해도 선이 있다는 게 무서워

질문을 해도 대답을 못 듣는 건 당연한데
그 표정에서 거절을 읽을까봐 두려워서

그냥 입 꾹 다무는 고딩
고딩이 뭔가 말하려다 입술만 달싹이고 포기하는 거 보는 인어 표정이 오묘해

더 다가오라는 뜻인지 방파제의 끝을 톡톡 두드리는 인어의 손 끝이 푸르스름한 살빛으로 빛나

이제 손가락 한 마디 사이 거리에서 마주보는 둘
인어가 돌을 들어 올려 제 눈 밑가에 천천히 가져다 대

강에서 건져온 돌이 아니라 햇빛에 따듯하게 잘 마른 돌인 걸 보니까 아무래도 휴지 대용인듯 하지 울지 말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거야
물 속의 인어가 어떻게 잘 마른 깨끗한 돌을 가지고 있지 생각하는 고딩

어디에서 바로 급조해서 주운 돌도 아니고 간직하고 있던 것처럼 저렇게 깨끗한 돌을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나?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너도 슬픔을 느껴?

너도 내가 없으면 내가 너를 잃어버린 만큼 슬퍼할까?

너도 친구가 떠나면 슬퍼?

너는 나를 뭘로 인식해?

던지지 못한 질문들이 수면에서 일렁이고

인어 얼굴 한참 보다 툭 던진 짭짤하게 젖은 질문 하나

너는 내가 있으면 좋아?
인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반응해줄 방법을 모르겠다는 듯 큰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기만 하는 모습에

너는 나를 기다려?

어디 망한 영작 문장같은 질문을 던지면

천천히 활짝 인어가 미소를 지어
너도 나를 기다려?

너는 나를 기억해?

너는 나를 구별할 수 있어?

너는 내가 몇 번째 사람이야?

이제 그런 질문 하나 쓸모가 없다
제 눈 앞에서 인어가 미소를 짓는데

자신을 특별히 여겨줬다 반응을 하는데
손가락 한 마디 사이의 거리

끝과 끝에서 닿은 시선

서로에게 특별한 하나로 기억될 둘

불어오는 바람

아득히 먼 사람들의 소리

있잖아, 나,

사실 떠나. 라는 말을 목구멍에 담아두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수면을 보는데
일렁이는 수면을 한참 보다

나, 떠나. 이제 못 와. 하고 내뱉어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듯
마음에 담은 말을 하기 시작해

나는 너 되게 아꼈거든
너라면 뭐든지 말할 수 있었고
너 하나만이 내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었고

너도 비슷했다고 생각하고 싶어
너 계속 여기에 있을 거야?

아니면 곧 떠나?
떠난다면 내가 가서 떠나는 거야?

너 집은 어디야?

나는 하나도 모른다 그치

문득 얼굴이 일그러질 것 같길래
이게 울음이구나 싶은 고딩

꿋꿋이 참고 말한다
진짜 전학가기 전에 교탁 앞에 서서 친구들한테 눈물 짜는 말 하듯이
그래 친구 보내고 또 떠나듯이

고딩에게 인어는 친구였으니까

근데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제 숨소리는 발발 떨려

.. 그러니까 너도 이제 너 집 돌아가
놀아줘서 고마웠어

나는 너 평생 기억할건데

너는 나 까먹고 그냥 집에서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고마웠다고 재밌었다고

짜내듯이 가짜 진심 떨어뜨리는데
진짜배기 눈물은 자꾸 떨어져서

겸연쩍게 소매로 몇번 훔치다
그러니까 아무튼! 하고 고개 돌리면서

떠난다고 말 한 후로 처음
인어랑 눈이 마주치는데

그렇게 가까이에서
슬픔의 감정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사람에게서든 아니든
옛 그리스의 조각가가 깎은 조각에서든
이렇게까지 통렬한 슬픔의 동요가

다른 이름으로는 한강의 물결이
인어의 눈에 그대로 담겨
사납게 일렁이며 파도쳐

홀린듯 마주보는 균

마음 속에서 뭔가가 고개를 쳐들어

어쩌면
정말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 한 마디 거리의 인어에게 쏟아지는 균

목 언저리에 팔을 두르고 껴안아
차가운 인어의 얼굴에 제 볼이 닿는 걸 느껴

성적이라거나 성애적으로 봐 온 잠재의식을 이렇게 분출하는 게 아니야

그 상황에서 하고자 했던 표현의 최대치가 그쯤이었을 뿐인 것을
제게 안긴 인어의 얼굴이 일그러져

균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납게 몸부림을 치는데 균이 놔주질 않아 얘도 굳음

처음 닿아봤다는 것에 자기도 멍해

인어는 떨어지기 위해 몸을 뒤로 빼고 어찌할 틈도 없이 인어를 안은 채 체중이 앞으로 쏠리는 균

같이 한강에 빠져버린다
임챵균 수영 못해

바닥에 발이 안 닿아

빠진다
이제 다시는 못 나오겠다

이렇게 깊을 줄 몰랐어

한강의 바닥도 제 마음도
이대로 물 먹고 죽는건가 생각하는 챵균

인어의 팔이 제 몸에 닿아
덜덜 떨리는 손이 잠시 주저하더니
온 힘을 다해서 균을 잡고 위로 밀어올려
물을 토해내고 제 인어를 바라보는 균

처음으로 보는 아가미와 푸른 눈
그리고 제가 팔을 둘렀던 인어의 목에

벌겋게 올라온 화상 자국

그래서
그 전에도 자기 손이 안 닿는 곳에 있었구나
균의 시선을 느끼고 쑥스럽다는 듯 제 아가미를 만지는 인어의 손바닥도 벌겋게 데였어 아까 챵균을 끌어 올리느라 듬뿍 쥔 결과물이지

얘는 나를 구하려다 해만 입는구나 싶어

근데 얘는 정말 왜 여기 있지

뭘 위해서 여기 있는거지
미안해, 하고 속삭이는데 뭐가 미안한지 챵균 자신도 몰라

인어가 천천히 제 데인 손가락 일부를 제 입에 넣어 너는 지금 거기가 아프구나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잘 들어 내 이름은 임챵균이야

이제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고 싶어?

눈으로 대답을 미루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학생 괜찮아??
인어 들키면 안되잖아
일단 오늘은 보내야 해
다음 주에 가니까 괜찮아

인어한테 내일 할 말 있어 내일 만나 지금은 가 내일 봐 여기 기다리고 있어

다급히 말하는 고딩

그러나 안 간다

당연히 인간의 말을 모를테니까
마음이 급해
할 수 없이 주위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던져

나뭇가지 모래

차마 돌은 못 던지겠다
던질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늘 심장같이 걸고 다니던 하트모양 로켓도 목에서 끌러 던진다
결국 물 속으로 사라지는 인어
근데 너무 늦었어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남들에게 임챵균은 괴생명체에게 겁을 먹고 이것저것 집어던지던 불쌍한 첫번째 목격자

한강에 괴생명체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물에 빠졌었다는 충격인지 인어한테 뭘 던졌다는 죄책감인지 챵균은 그 날 이후로 3일을 앓는다

자신이 정신을 차린 날이 무려 사흘이 지난 후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한강으로 달려가는 고딩 분명 그때 내일 오겠다고 내일 보자고 약속했는데 하면서
이미 그 주위에 테이프가 쳐저 있고
사람이 그의 접근을 막어

한강에 반인반어가 있었대 SP 바이오틱스가 엊그제 잡아갔대

엊그제는 챵균이 기다리라고 한 날이지

평생 잃어버린거야
자길 기다리다 잡혀간 제 인어


고딩은 방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영문을 모르는 부모님은 속이 바짝바짝

근데도 뭐 어떡해
입을 열어도 목소리가 안 나와
실어증이고 폐인이고
갑자기 변한 아들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온갖 것들을 다 가져다 붙여도
고딩이 입을 다무는 한 아무도 모르지

그래서 끝까지 입 다물거야
인어는 자기만 알아야 해
남들이 알아서 끌려간 거니까
이제부터라도 나만..
이제부터..

그게 이제 무슨 상관인지..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한 사흘을 틀어박혀 숨만 쉬던 아들이 처음으로 하는 말

물가에 살고 싶어요

수영이 하고 싶은 건가?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갑자기 바다일까
아무튼 뭔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거니까

수영을 한번 배워보라 함

물살을 가르다 보면 뭔지 모를 스트레스도 풀리겠지 하면서

수영센터 등록했다고 등 떠밀어서 보냈는데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

물에 들어가려고 하질 않는대
다른 회원들 수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닌데 물에 아예 닿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네

그래도 가까이 있는 참관석에 앉아있는 건 좋아한대 수영보다는 그냥 물 그 자체를 정말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초급반에 보냈는데도 저러는 거면 답이 없지 결국 이 방법이 아닌가 고민하는 부모님
그럼 고딩은 무슨 생각인가

물에 머리를 담궈서 눈을 뜨면
어딘가에 제 인어가 나타나서
자기를 안아 끌고 들어갈 것 같아

근데 없잖아
그래서 수영 안하려는 거야

그래도 물가에 살면
언젠가는 또 언젠가는
탈출한 걔를 만날 수 있기라도 할까봐
결국 바닷가로 이사하는 균의 가족

이삿짐을 싸다가 뭔가 허전해

목이 좀 가볍다

더듬더듬 해보니까 휑해

늘 목에 걸고 다니던 로켓이 없지
왜 없지



그때 인어한테 던졌구나
쫓아보내려고 빨리 가라고

휑한 목만 몇번 만져보는 고딩

제법 소중하게 걸고 다녔는데 잃어버린거 이제야 알았어
깨닫는다

사실 인어가 그걸 주워주던 첫날부터
그 펜던트 중요할 것도 없었다고

그러니까 그걸로 물수제비 뜨는데도 몰랐지

그러나 그걸 줄까지 달아서 심장의 위치에 걸고 다녔던 것은 순전히

인어 때문에

걔가 주워 줘서
인어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거야
꼭 그 피에타 펜던트 얘기만이 아니지

멍하니 밖 창문 바라보는 고딩
이제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아
아득바득 공부해 명문대 입시 성공해서
군~대까지 다녀와 차석으로 졸업 마친 고딩

벌써 6년이 흘렀다

이제 고딩이 아니지
여러개가 바뀌었어
말을 거의 안한다

누가 말을 시켜도
교수님 앞 프레젠테이션이나
면접 이런 필수적인 상황이 아니면

고개 끄덕 아니면 도리도리
그리고 목에는 헤드폰이 걸렸다
근데 음악은 나오지 않아
그냥 사람들 목소리 듣는게 피곤해
헤드폰을 끼면 거의 차단되니까

헤드폰으로 청각을 차단하고
입은 닫고 목표에만 집중하면서
6년동안 고딩이 바라봤던 목표 하나

SP 바이오틱스 입사
이 갈고 쌓아올린 우수한 학점을 바탕으로
SP 바이오틱스 신입 연구원으로 입사하게 된 고딩

여전히 입은 굳게 닫혔고
이제 말하는 법도 잊은 것 같지만
앞에 걸어가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선배 연구원의 말에 끄덕이는 건 한다
… 그러니까 이건 정부에서 우리랑 결연을 맺고 하는 프로젝트 비슷한 거라고, 6년 전에 한강에서 괴생명체가 출몰했다는 얘기 들어봤냐고, 결국 찌라시 취급 받았지만 그거 사실 정말이라고, 하는 말 들으면서 다 큰 고딩은 속으로 헛웃음친다

당연하지 내가 거기 있었는데
그래도 겉으로 반응이 없으니 균 흘끗 바라보고 놀라지나 말라고 으쓱대는 선배

바닥 보고 걸어오다가
고개 들라고 하면 그때 보라는 말에
이게 무슨 어린애 장난인가 싶지만

기대하면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옛날 로켓을 걸던 때처럼 가슴께가 묵직해지고
이제 봐, 말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뿌듯하게 배어 있는 짠내도 원래는 사실 제 것이어야 했는데 생각하며 6년 동안 너무나도 커버린 고딩이 고개를 들면

거기 인어 있다

예전보다 더 사람의 형상을 한 채로 거대한 수조 안에 둥둥 떠있는 6년 전의 제 인어 Image
예상은 했는데도 생각보다..
생각보다..
생각보다 뭐?

그냥 굳어버린다

6년 동안 자기도 많이 컸고 준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저 인어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6년이 지나도 인어 앞에서 자기는 그대로
벙찐 고딩을 옆에 두고 선배가 하는 말

인어를 인간으로 전환하는 연구를 하는 중이래 지금 어쨌든 진행중이고

인어가 사람되면 사람도 인어되겠지
무슨 생체 자료나 전쟁무기용으로 연구하는 듯
지금 얼마나 되고 있냐고 했더니 그게 잘 안된대 쉽지 않대 인어가 엄청 사나워서

수조에 누가 들어갈라 치면 섬뜩하게 돌진해서 손으로 콱 잡아 밀고 성질부리고 심지어는 물기도 하는지 입질도 장난이 아니라

6년 동안 수조에 들어가본 사람이 아무도 없대
너도 그냥 적당히 일지 쓰다가 가

하는 선배 곁눈질로 바라보면
균 쪽 쳐다보지도 않고 말해

어차피 여기 인어 길들일 사람 없어
그냥 실험이나 성공하면 다행인거지

어딜 보나 했더니 수조 안에 눈 감고 둥둥 떠있는 인어에 시선 고정이다
그래도 자진해서 인어 맡는 신입 균

선배가 말리는데 그래도 하겠다고 해

자기는 인어를 꼭 다시 만나야겠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균의 과거를 모르니까
군기 빠짝! 든 신입의 패기 정도로만 봐
신입은 뭐부터 하냐면

인어가 들어있는 거대 수조를 맴돌다가
좋은 생각이 든다

매일 밤 남아서 거대 수조 자기가 뒷정리 하고 퇴근하겠다고 못을 박는데

주변 사람들이 균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돼;; 하는거 싹 무시하고 무대뽀 진행
신입이 무슨 사고라도 칠까 걱정이 되는지 쉽게 퇴근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선배

선배 가셔도 돼요
아니 나는 그게 걱정이라;
ㅎㅎ 괜찮습니다

이러고 보내놓고 아무도 없고 불 켜진 거대 수조 앞에 두고 숨 들이켜는 균
이 수조가 얼마나 크냐면 무려 이 층 높이의 수조임 넓이는 대충.. 표현이 애매하군

농구 코트 하나 정도..

아무튼 어마어마함

이게 인어 하나 담으려고 있는 거고

바닥에 문이 있음
바다 통해서 인어 빠르게 수송하고 싶을때 또는 누가 테러했을 때 인어부터 빼돌려야 할 때 쓰는 용도로
그게 유일한 통로라는 건데

인어가 그 문을 잡아 뜯을까봐 (얼마나 힘자랑 성질자랑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차로 보안을 걸어놓았다

1차는 밖의 컴퓨터에서 직원 권한으로 입력
2차는 직원의 SD 카드를 바닥 문에 >직접< 가져다 인식해야 함

어렵지.. 못 나가 인어 혼자
나선 계단을 돌아서 일단 올라가는 균

수면 위는 잠잠해

인어는 그래도 이 안에 무조건 있지

.. 야

오랜만에 낸 목소리에 지가 움찔하는 균

.. 있어?
출렁이는 표면은 보이는데
인어가 올라오질 않는다

균도 쑥스러워

이렇게 자기 목소리 듣는게 익숙하지도 않고 이게 울려 퍼지는데 계속 말하긴 좀 그렇고

근데 갑자기 저 뒤에 문에서 덜컹 소리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면 선배 있음
아 선배님 놀랐잖아요
후배님 혼자 무서울까봐 ㅎㅎ 확인차 왔지

한잔 하까? 하면서 진짜 걱정해서 온 건지 편의점 맥주 든 봉투 들고 있다

자기 아까 한 말이 쑥스럽기도 하고 뭔가 들키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침 뚝 떼고 선배랑 같이 퇴근하는 균
그 다음날

인어 담당 정식 업무 시작한다

선배는 균보다 6년을 더 인어를 다뤘으니까 균은 선배 뒤 졸졸 따라다니면서 인수인계부터 밟기 시작하는데

어째 인어가… 균을 완벽히 무시깜
???

꿈인가

아니 그렇다고 선배를 받아주는 건 아닌데
그냥 눈 앞의 두 인간을 완벽히 무시함

선배 얼굴 보니까 원래 그러긴 했나본데
아니니가그래도나한테그러면좀

균.. 약간 오기가 돋아
선배가 자리 비웠을 때 수조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서 모처럼 수면 위로 나온 인어 보면서 나라고, 해도 먹금당함

나 임챵균, 한번 더 말하니까 가까이 오길래 야 너 역시.. 하고 찡하려고 했는데 기억을 잃기라도 한건지 손 대차게 깨물림
아 씨! 하면서 이빨 자국 난 손 빼서 흔들다 못해서 제일 심하게 통증 올라오는 손가락 지 입안에 넣고 일단 압박하는 균

뭐야! 하고 달려오는 선배
손가락 입에 넣고 빨면서 괘안아여 언배님 하는 균

그리고 그걸 보면서 서서히 가라앉는 인어
인어 아무래도 나 기억하는 것 같지
근데 왜 이렇게 날부터 세우는지
이해는 되는데 아니 안돼
너 구할 사람 나밖에 없잖아

인어한테 물려서 욱신거리는 손 대충 붕대로 둘둘 감고도 기어이 저녁에 남아버리는 균

선배 간 거 확인하고 문도 잠금
아무튼 여기 잔여 작업 하는 목적은 인어가 든 거대 수조 테두리 청소<< 가 맞으니까 일단 청소부터 하는데

낑낑대면서 바닥 수건으로 닦고
이제 바다랑 비슷한 염도 맞추겠다고 개량한 소금 살살 넣고 물에 뜨는 돌로 염도 측정하고 난리를 치는데도 수면은 조용
너 구하러 왔다고 말할 기회가 필요해서 단둘이 있으려고 야밤에 인어 담긴 거대 수조 자진해서 쌔빠지게 청소하는 거란 말이야

근데 깨물려서 손은 쑤시고 인어는 미쳐가지고 코빼기도 안 보이고 짜증이 나니까 염도 측정용 돌 집어다 수면에 던져버리는 균
어 근데 옛날 바이브 나왔다고

퐁 퐁 퐁 가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거 홀린듯 바라보는 균

근데 잘 가던 돌이 쑥 하고 가라앉아

뭐묘… 하고 보면 뭐가 다시 나오는데

그거 돌 말고 인어
걔가 다시 자기한테 다가와
뭘 손에 들고 제 앞에 놓아

또 던졌던 돌인가
이번에는 진짜 자기 수조 안에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꼽주는 건가 내려다보면

절그럭 소리가 나는데
절대 돌에서 날 소리가 아니지

줄 달려있는 그거
로켓
피에타 펜던트에 줄 단거

그날 고딩이 인어 쫓아보내겠다고 던진거
6년 전 건데 너는 그걸
실험을 당하면서도 그걸

그래서 6년 내내 제 수조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그렇게 날을 세웠구나

눈물 주룩 나는 고딩
다시 보게 되면 얘기를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그때 이런저런 고민 상담 많이 했거든 자기 말 알아듣는지도 모를 인어 앞에 놓고 나는 이런 대학의 이런 과가 가고찌픈뎅 여기는 전형이 어떻고~ 하던 입시 상담이나 겨우 하던 잼민이 고딩이 명문대 나와서 씩씩하게 군머도 갔다 왔다고 나 많이 컸냐고
나 이제 강하다 힘이 생겼으니 약속도 지킬 수 있어서 널 이제 도와주러 왔다고

나 많이 큰거 너도 볼 수 있냐고
이런 내가 자랑스럽냐고

그런 거라도 말하려고 했는데
언제나 인어 앞에서는
그 시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다

스물 여섯에 다시 교복을 입고 고딩이 된다
“큐우-“

하고 인어가 말을 하는데

임챵균의 균을 어눌하게 발음한다
이름 중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

그거 6년 전에 애 한마디도 못했는데

일부러 그때 말을 안 한 거거나
아니면

혼자 있으면서 지겹게 연습했거나
나 어떡해
너 앞에서 이렇게 부족하기만 해서 어쩌지

입 꾹 다물고 간신히 울음이나 참는 고딩 앞으로 인어가 다가와

그때 그 날처럼
고딩이 참지 못하고 인어를 안았던 날처럼

거의 가깝게 어쩌면 동일하게

인어 앞에서는 고딩 그때가 반복이라
지금 스물 여섯에게 매달리는 인어도 반복인가
인어가 고딩의 목에 제 팔을 둘러
어찌할 새도 없이 수조 가장자리에 걸쳐 있던 몸이 앞으로 쏠리고

인어의 품으로 빠지자 물이 그를 반긴다
평생 물을 무서워해왔지만

제 입에 말려드는 짠 유사바닷물 이전에
그 날 자기 위로 밀어 올리다가
제 살에 닿아 벌겋게 화상 입었던 인어
고딩은 그것부터 생각한다

동시에 제 목에 팔 두르고 끌어당긴 인어
팔이 데였겠지 목은 더 뜨거우니까
인어는 고딩을 계속 아래로 끌어당기고

물에 먹히기 직전 고딩이 외친 말이
이 공기에서 마지막으로 어지러이 진동해

너 데이잖아!

물에 빠져드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괜찮아, 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다
온 몸을 인어에게 의지한 채로 인어가 안는 대로 물 속에서 안겨 있는 고딩

와중에 제 맨살이 인어 맨몸에 닿으면 걔 화상입을까봐 제대로 매달려있지도 못해

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둘만 알지
조금 있다 온 몸에 물을 뚝뚝 흘리면서 수조 밖으로 기어나오는 고딩

목에는 인어가 돌려준 제 로켓이 걸려 있고 인어가 그걸 수조 안에서 바라본다

비틀대는 고딩
고개를 푹 떨군 채로 나가

인어를 마주보지도 않고
조용히 불을 끄고 나가
-

아까 수조 안에서 있던 일을 떠올리는 균

물 속에 빠져 안기다 보니 숨이 딸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니 무서워
저절로 공기를 찾아 움직여
다리를 버둥이며 올라가려고 하는데
손이 제 목 뒤를 부드럽게 감싸

인어가 바로 제 앞에 있다는게 느껴지고
뭘 어쩔 새도 없이 입술에 뭐가 닿는걸
입을 맞췄다

눈을 뜰 수 없어도 그건 괜찮아

뽀뽀도 상관 없고 키스라 해도 상관없어
근데 입이 벌려지는데
그 사이로 물이 들어오는 거야

그게 겁이 났던 거지
나는 인간이니까
나는 물을 먹어 질식해 죽을 수 있으니까
인어를 밀쳐
그와중에 인어 자기 체온에 데일까봐 팔꿈치로 밀친다

호흡이 딸려
위로 올라가야
올라가야

올라가야하는데

너는 나를 따라 나올 건가?
일단 몸을 비틀자 인어가 놓아줘
균은 올라가
인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그래도 적어도 끌어내리진 않아

근데 몸에 힘이 풀린다
너무 오래 있었어
원래 수영도 못 했단 말이야
네 품을 벗어나면 추락이다

어렴풋이 생각하면서
코로 빠져나가는 숨방울들 느끼면
뒤에서 인어가 제 허리 잡고
아래에서 힘을 줘 밀어 올린다

보고 있었구나
혼자서 할 수 있을만큼 큰 거 맞는지
뭐 그런 모종의 이유들로
수조 테두리로 기어 올라가서 물 뱉어내면서 콜록콜록 하는 균

뒤에서 지켜보던 인어랑 눈 마주쳐

이번에도 또 끌어올려줬지
6년 전 그날처럼
인어 손이 벌겋다
균의 맨몸 만져서 데여버린 거야

그걸 균은 물 뚝뚝 흘리면서 멍하니 본다

그렇게 다치게 하기 싫어 조심했지만
보란듯이 남은 상처

한낱 인간이 인어를 재단하려 한 결과다
이것은 네 오만이다 외치는 듯한 상처

그거 보면서 균은 생각한다
6년 전이랑 반복이라고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와버렸지

인어를 도와주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결국 자기는 걔 앞에서는 영원히 고딩이고
늘 부족하고 늘 허우적거리니까

현타가 와
나는 반복하려고 여기에 왔나 해서

그 다음날.. 태도가 바뀐다
계속 인어 보겠다고 수조 가장자리에 앉아서 고개 빼꼼이던 신입이 풀이 죽었음

혼자 잔업하다 지쳤거나
혼자 남은 신입에게 인어가 승질을 부렸나

아무도 몰라서 추측만 하는 사람들

그러거나 말거나… 인어랑 데면데면한 균
균 어제 인어랑 키스하고
현타 얻어서 그냥 집에 바로 가느라

몸에서 물 뚝뚝 떨어지는거
닦을 정신도 없었거든

그래서 바닥 한구석에 물 고여있는거
선배가 이거 뭐묘… 해도
신입은 그냥 ㅎㅎ.. 웃고 힘없이 돌아다녀
머릿속에 든 생각이 너무 무거운지
갈수록 고개는 숙이고 다니고
들어서 뭘 보는 법이 없고
너무 조용해서 잔업은 요즘 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정도

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면
이제 무슨 정신으로 인어를 마주하면서 근무해야 할지 모르겠음
그날도 생각에 가득 차서
고개를 숙이고 수조를 지나가는데

텅, 하는 소리가 들려
놀라 고개를 들어보면
인어가 수조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자기를 보고 있어

홀린 듯 시선을 피하지 못하는 고딩
선배는 인어가 저렇게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거의 처음이라고 흥분해서 사람들 부르고 자기가 맨 앞에서 말을 걸면서 이것저것 기록해

자연스럽게 연차가 낮은 챵균은 뒤에 섞여서 저 앞에서 선배가 인어한테 말을 거는 걸 지켜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인어를 보는데
눈이 마주쳐

줄곧 자기만 응시하고 있던 것처럼

눈이 마주치자
제 심장 부근을 움켜쥐는 인어
지금 제게 로켓이 있었다면 걸렸을 자리

뭐가 일렁인다
뭐가 일렁인다고
그 물결이 제 가슴에서 시작하는듯해

자기도 모르게 제가 걸고 있는 로켓을 마주 움켜잡는 고딩

인어가 고개를 끄덕여

하필 위치도 자기 심장이라
그제야 자각한다

6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고르고 골라 이 곳에 입사한 이유

이 인어를 찾아온 이유는

정도 아니고 속죄도 아니고
그 이전에 더 깊은 무언가

사랑
이게 고대의 주술에 홀린 결과라도 좋다

어린 시절 멋 모르고 만졌던 인어의 몸에 묻은 바이러스가 6년의 잠복기를 거쳐 이제야 제 뇌를 갉아먹어 정상적인 사고를 망가뜨리는 경우라도 좋다

과학의 0부터 무한을 따져봐도
결국에는 전부 찾지 못해도

사랑해

속삭이는 인간
입모양으로 뻐끔대는 인간

물이었다면 이 말을 하는 즉시 물이 입 안으로 들어와서 익사했겠지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말은

땅 위에서만 할 수 있는 말
사랑해

인어는 고개를 끄덕여

알아들어?

계속 홀린 듯 사랑한다 뻐끔이는 인간
호흡하는 입은 어떻게 보면 아가미니까

알아듣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제 인어를 봐
소음들은 사라지고 고요해
일부러 헤드폰을 쓰고 다니던 6년처럼

인어를 마주보는 순간 여기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물 속이라는 기분이 들어

지금 내가 밟고 선 땅이 사실은 물거품이라 죄 흩어진다 해도

앞으로 억겁을 허우적거린다 해도

사랑해 그러나

땅에서 익사한다면 이런 기분이리라
매일 밤마다 남아서 수조 청소 등등 잔업 다시 도맡게 되는 신입

그럴 때마다 인어는 6년 전처럼 수면 위로 나와서 일하는 인간을 빤히 봐
인간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가죽 장갑을 꼈어 손에 딱 붙는거
자기가 인어를 만져도 인어가 제 체온에 데여 화상을 입지 않도록
인어는 인간이 손에 낀 다른 가죽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인간이 그거 껴서 자기 마음껏 만지고 예뻐해주는 건 좋아해서 크게 불만 없는듯함

인간이 무릎 정도만 물에 담그면 인어는 올라와서 그 무릎에 얼굴 기대는게 요즘의 루틴
인간이 한쪽 손으로는 염도 맞추려고 소금 아슴아슴 수조 안에 뿌리면서 다른 손으로 인어 머리 조심히 쓸어주면 좋다고 꼬리로 수면을 부드럽게 철썩이는데

고딩 눈에는 그게 보인다
거듭된 실험으로 인해 너덜해진 꼬리 끝
게다가 인어를 인간으로 전환하는 실험이 진행됨에 따라 인어의 하체를 감싼 비늘 아래 모아진 두 다리의 굴곡이 점점 보이고

돌려보내줘야지

인어는 인어니까
그린란드에 비영리단체가 있어

바다 생물들 연구하는 곳인데
거기로 인어를 보내주면 자연으로의 방사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답신을 얼마 전에 균은 받았다
안그래도 SP 바이오틱스가 인어 처음에 한강에서 포획해서 여기로 끌고 왔을 때 그린란드에서 온 듀공 뭐 그런 걸로 알았다는 얘기를 선배한테 들었거든

연구자료로 필요하다 웅엥 이런저런 핑계 대서 그린란드 바닷물 요청도 함
아무도 없는 또 다른 밤

제 무릎에 머리를 놓고 어리광을 부리는 인어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하는 인간

옆에는 그린란드의 바닷물을 소분해 담은 컵을 놓고
그린란드에 친환경적 생물 연구소가 있대
여기에서 나가게 해줄게
거기로 가
거기에서 몸 찾고 회복해서 집으로 가

근데 그냥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인어

너 내 말 알아듣는 거 다 알아

이러면 갑자기 휙 몸 돌려서 물로 튐
개삐졌나봐 물수제비 오백만개 던져도 안나옴
결국 구명조끼 줏어입고 “스스로” 수조로 들어가는 인간 원래는 수영 스스로 죽어도 안했는데

균 들어오니까 바로 수면 위로 따라 올라오는 인어

그게 또 어이가 아리마셍임
내가 널 버릴 줄 알았어?

아무 반응도 없음
<< 그것때문에 삐진 거 맞음

봐 나 이제 너가 안 구해줘도 물에 있을 수 있어
강해져서 너 구하러 온거야

하는데 못 믿겠다는 눈빛

당연하지 진짜로 강해진 건 아니니까
우기기엔 구명조끼가 너무 형광임
한참 답이 없는 인어 설득하려고 물에만 있는데 인어 갑자기 다른 쪽으로 물살 촤촤촤 헤치면서 가잖아 구명조끼 입은 상태로 따라잡질 못하니 그냥 구명조끼 벗어버리는 인간
보내준다고 할 때는 반응도 없는 놈이 자기가 또 위함하려고 하니까 그제서야 슬금 다가와서 자기 안아서 수조 가장자리로 올려주는 꼴이 애틋하고도 얄미워서 연구자료로 받은 그린란드의 그 바닷물

한 모금 머금고 입으로 넘겨줌

삼킬 때까지 안 놔줘 이 맛 기억해 꼭 기억해
입술을 떼니까 약간 벌겋게 부은 인어 입술
가죽 장갑 손으로 눌러주면서 .. 미안해라고 하는 고딩 마치 6년 전처럼

그렇지만 사랑해서 그러는거야,

하고 말하니까 인어 입술이 번개보다 빠르게 제 볼에 닿았다 떨어져

환하게 웃는 인어

첫 만남의 그 날처럼
홀린 듯 다시 물에 들어가는 인간
인어한테 온 몸을 맡겨
그때처럼 입이 벌려져

본능적으로 익사가 두려워 움찔거리는 인간에 결국 입가에 입만 맞추는 인어

머릿속에 [무서워하지 마] 하는 소리가 들려

근데 뭐를?
인어를?
물을?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이별을?
그렇게 인어랑 시간을 보내는 인간

매일매일 밤마다 남아서 문 걸어잠그고
성실하게 수조 청소하다가

바닷물 키스 한번 볼뽀뽀 한번씩
이제 익숙해져서 고딩이 가죽 장갑 낀 손 어색하게 바르작대면서 인어 얼굴 잡으면 바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입술이 마중나와

얘가 고딩이 입으로 먹여주는 그린란드의 바닷물을 과연.. 잘 받아먹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키스할 때마다 다 삼키긴 함
낮에는 출근해서 선배랑 같이 인어 관찰하랴 늦은 밤까지 잔업 핑계삼아서 인어랑 시간 보내랴 집에 돌아오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뭐 계속 검색하고 입력하랴…

균이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체력이 딸려 아침에 가끔씩 졸기도 해
탈의실에서 연구용 가운 입기 전에 자리에 쭈그려서 꾸벅 조는 임 보던 선배… 힘들어? 하고 물음

오늘은 잔업하지 말구 퇴근해
아 아니예여…
오늘은 그냥 퇴근해서 쉬어

하도 강경하길래 알겠다 하면
음료수 내미는 선배

먹고 해

신경 쓰이니까..
감사하게 음료수 받아먹는 신입

금방 원샷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먼저 인어 있는 수조 쪽으로 가는 문 열고 나가는 신입

잠깐 생각이 많은 듯 보다 따라나가는 선배
쌓은 시간의 절대량이 많아질수록
인어도 이제 낮에도 자기한테 아는 척을 조금 함 원래는 인간이라면 나오지도 않고 지랄지랄을 했다던 동료 말 듣고 그야 너네는 실험만 했으니까… 속으로 말하던 임

인어랑 친해진다는 게 무슨 의미냐면
낮에도 이제 곧잘 수면 위로 나오는 인어

암짓도 안하고
업무 보느라 빨빨 돌아다니는 임에게만 시선고정임

근데 이게 은근 지우개똥 먹는 것도 아닌데 주위 사람들 신경쓰이게 하는게 있어서

아예 수조 쪽으로 붙어있게 배정되는 임
인어는 자기만 보고… 선배나 동료들은 자기한테 일 잘 안주지..(인어가 자꾸 야림) 이 시간을 어떻게 버리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센터에 도움이 되는 식으로 이끌까 생각하던 임

생각한 방법이

🐈‍⬛ 이것 봐봐
🧜
🐈‍⬛ 한글 알아?
인어한테 한글을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글쎄..

그러나 센터에서는 반응이 꽤괜임
어차피 그들 실험의 내용도 인어의 인간화였으니까 글 미리 좀 알면 좋지

그렇게 한글 가르치기에 돌입하는 신입
애기들이나 쓰는 한글놀이 자판들 있잖아 그런거 들고 가서 이건 기억 이건 니은 하는 신입… 진짜 눈물의 똥꼬쇼를 하는데

인어가 못 알아듣는다
그래 이해해 얘는 애초에 사람도 아니니까

상형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함
이게 하루이틀 프로젝트는 아니지
그냥 오랜 시간을 들여 인내심을 가지고
심심풀이(그렇지만 사심을 곁들인)로 하는 그런 시간들이니까

쉬는 날에도 꼬박꼬박 나가는 신입
예를 들어 오늘같은 추석에도
수조 든 연구실 문 열고 들어오는 신입

아무도 없네?

고딩 되는거지 뭐

너 이거 먹어? 하면서 들어올린건 송편
인어는 그런 인간 보는게 신기해
가운 입고 차트에 코 박고 있는 낮이나
가죽 장갑 끼고 물 무서워해서 발발 떨면서도 자기한테 매달려서 입으로 바닷물 넘겨주는 밤이나

아무도 없을 때 처음처럼 저러는 모양이나

다 낯선데 또 익숙해서 그냥 바라보는데
고딩은 그걸 또 뭘로 해석하는지
인어 근데 그러고 보니까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때 참치캔도 그렇고

수조 6년 청소 안해도 괜찮았던 이유가 먹지도 않고 싸지도 않아서 그런건가 해

암튼 명절은 명절이지
송편 우물대면서 수조로 올라가서
나름..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고딩
상형적으로 한글 가르치기

세종대왕님도 그랬어~ 가획 상형 창제원리

제일 지랄맞은 국어 선생 내신때나 달달 외웠던 게 이제 먹히는 거 같아서 고딩도 기분이 신기해

🐈‍⬛ 이거 함 봐봐

하면서 꺼낸 건 ㄴ 조각 두 개
🐈‍⬛ 요거

ㄴ 하나

🐈‍⬛ 그리고 요거

ㄴ 두개

🐈‍⬛ .. 대답 안해?

진짜 지가 선생 된 것 마냥.. 표독스럽게 장난도 치는 고딩

그러면 인어는

🧜 … (🫧🫧🫧)
자 이거 봐봐 하면서 고딩은

🐈‍⬛ 이건 니은인데
🐈‍⬛ 이거랑
🐈‍⬛ 이거를
🐈‍⬛ 위 아래로!


ㄴ 모양으로 붙여

🐈‍⬛ ㅁ이랑 비슷하지!

🐈‍⬛ 봐봐 ㄴ이랑 ㄴ 더하면 ㅁ 모양 된다 신기하지
자기 좀 똑똑하게 잘 맞춰서 설명해준 것 같아서 하하..하면서 수조 유리벽에 기대는 고딩

🐈‍⬛ 나 많이 컸지 않냐…
🧜 …
🐈‍⬛ 이런 것도 가르쳐주러 오고…

뒤에서 고딩 뒷머리 기댄 부분에 뭘 가늠하기라도 하는지 손 펼쳐서 대보는 인어

뒤 돈 고딩은 평생 모르겠지
그럼 다시 한번 알려준 거 알아듣나 하고 자!! 파이팅스럽게 외치는 고딩

🐈‍⬛ 이 ㄴ이랑
🐈‍⬛ 이 ㄴ을
🐈‍⬛ 더하면~?

엥 근데 인어 무반응
암것도 모른다는 듯 눈이나 깜빡여
결국… 한글 가르치는 거 대차게 실패한듯
회상과 하하 짜식! 씬 하나를 남기고..

상형적으로 접근해서 ㄴ + ㄴ = ㅁ
고딩이 백날 부르짖어도
그럴때만 애가 난 물짐승이오 하고 고굽척하길래 분통이 터짐 니 똑똑한 거 내가 잘 알거든
그렇지만 어쩐 식으로 발전하냐면

이제 단둘이 있는 밤 말고 대낮에도 신입이 자기 상태 확인하러 오면 걔 끌어내서 물에 빠뜨리는 인어의 거친 생각과

… 빠지기 직전 인간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동료들
야 너 뭐야 야ㅑㅏ야ㅑㅇ얒야야

첨벙!

🫧🫧🫧🫧🫧

이 상황이 하루이틀이 아님

처음에 동료들 개놀라서 인어가 연구원을 죽이는구나 하고 몰려들었다가
그러나 곧 다친 곳 없이 멀쩡히 (쿨럭거리며) 수조 가장자리로 인어가 올려주는 대로 올라오는 신입 보고 다들 느리게 안심..

곧 이 해프닝에 익숙해진 연구실 사람들.. 대낮에 입수당하는 신입을 보는 것도 벨루가가 공 가지고 노는 것쯤으로 본다 (왜 저거에 맛들렸는지는 모름
딱 하나 계속 반응해주는 사람은 선배

괜찮아?

물 먹어서 쿨럭대는 신입 등 두드려주면서

네 괜찮아요

그래도 계속 두드려 주면서

수영 못하잖아.. 그냥 막 빠지던데..

하는 선배
그 정도는 아니예요 ㅎ 하고 넘기려는데

빠지던데?

돌아오는 대답의 느낌이

… 어라?

이게 맞나 싶어서 다시 선배를 올려다보면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얼굴 그러나

빠지던데?

왜 뭐가 일렁이지
그날도 어김없이 물에 끌려들어갔다 수면 위로 방출된 신입… 이젠 익숙함

물에서 숨 참을 수 있는 시간도 는 것 같음 인어가 무슨 생각인지 좀체 모르겠음

얼마나 이런 일들이 많았는지 아예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온 균.. 흠뻑 젖은 채로 옷 꺼내는데 옆에 스윽 오는 선배
물 무섭다고 하지 않았어?
아 이제 괜찮습니다
그래?

… 네

대답은 하는데 잠깐만

여기 사람들한테 물 무섭다고 한 적 없는데
물에 끌려들어갈때 발작하긴 했지
근데 그건 남들도 다 그럴걸

물 무섭다고 말한 적 없어
그러면 괜히 인어랑 다른 업무류로 배정당할까봐 입 꼭 닫고 아무 말도 한 적 없었는데

왜 자기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걸
선배가 알지?
안 무섭다고?
네 진짜 저 괜찮습니다

아 하긴 그렇겠다?

하면서 태블릿 만지는 선배
그건 또 언제 가지고 들어왔는지

이젠 안 무섭겠네
이젠?

불안한 느낌에 뒷걸음질치면 사물함에 몸이 부딪혀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느낌에
신입이 옴싹달싹 못하면

그 눈 앞에 디밀어지는 태블릿 안에는

“너는 이미 예전에 해봤을 테니까.”

6년 전 그 날 자신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흐릿해 정말 흐릿해
아마도 설치하고 예산 문제로 버려진 cctv 중 하나겠지 근데 저게 왜

왜?

선배 손 안에?

놀라 올려다보면 웃는 선배 연구원

“왜 여기 들어왔어?”
아, 그, 저는,

자기한테 내내 친절했던 그간 선배 모습 떠올려 항상 진심으로 염려해주는 듯한

잔업하는 거 걱정해주고 데리러 와주고 음료수도 주고 일찍 퇴근하라 해주고 인어한테 상처받지 말고 일지만 써도 된다 말해주고

..어쩌면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선배 제가 사실은 6년 전에, 하면서 고개를 들려던 순간

눈이 마주친다

선배와

그런데

선배 눈이 돌았어
사람 눈이 아닌 것 같아

저 안에 보여지는 건 뭐지
불안?
뭐가 일렁이는 거지

질투?
질투다
저건 질투가 맞아

사람들이랑 입으로 말을 안 하니까
대신 표정 읽는 건 도가 터왔던 챵균

장담할 수 있어 질투로 눈이 돌았어

잔업하는 거 걱정하던게 아니야
자기보다 더 오래 인어랑 붙어 있던 걸 견제하던 거야
데리러 오던 것은 자기가 모르는 둘만의 비밀이 생길까봐 감시하러 왔다 들킨 거고

음료수도 준 건 변덕이거나 또 다른 상술이겠지 일찍 퇴근하라 한 것 역시 인어와 떨어뜨리려고 밑밥을 깔던 거고

충격적인 수면 아래의 감정에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해보면
선배가 눈 앞에 사라져있고
문은 열려 있어

들켰다 다 들켰다

선배가 뭘 하든말든 지금 당장 챵균한테는 중요한게 아니야

언젠가 이런 비슷한 순간을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이른걸 준비도 아직 충분치 않고

그래도 일단은

챵균 역시 뛰어나가
genie.co.kr/Z61KR6

꼭!! 들어주세요
자기 전용 컴퓨터로 뛰어가는 신입
선배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자기 관리자 권한도 그대로인거 확인하는 신입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최대 속도로 움직여

인어한테 해코지를 하나 그쪽 카메라 화면을 보지만 아무도 없다 제 뒤에도 없고
마우스가 다급하게 딸깍거려

오른마우스고 왼마우스고 떨리니까 지 멋대로 눌려서 심호흡도 여러번 해야 했어

손에 땀이 나서 벌써 미끄러워

무슨 무슨 문서와 기록 몇개를 오려서 USB에 넣어 복사하는 챵균

틈틈이 수조와 제 뒤의 카메라를 확인하지만 선배는 보이지 않아
완료 표시가 뜨자마자 USB를 빼내 비닐백에 넣고 그것도 모자라서 구석으로 가 기계에 넣고 진공포장까지 하는 챵균의 손이 덜덜 떨려

아직 연습을 안한 상황이란 말이야
선배는 어디갔지?
사람들을 부르러 갔나?

그러나 주요 통로엔 보이지 않아
인어가 든 수조도 잠잠해

모르겠다 알 바 아니야

옆 자리에 선배의 컴퓨터로 같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선배의 권한으로 인어의 수조와 바다를 연결하는 1차 철문을 개방해
1차 문은 열었어

그러나 2차 개방은
직접 그 수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자기 목에 걸린 SD 카드를 인식해야만 열려

진공 포장해서 최대한 크기를 압축한 USB 팩을 들고 인어가 든 거대한 수조로 뛰어가는 챵균
챵균이 헉헉대며 계단을 뛰어오르자
아무것도 모르는지 인어가 고개를 디밀어

그 앞에 꿇어앉아 숨을 몰아쉬는 고딩

이리 와봐

인어가 올 때까지 가죽 장갑을 서둘러 끼는 손이 부들거려
피에타 팬던트에 줄을 달아 만든 목걸이
인어가 6년 동안 간직했고
챵균이 내내 자기 심장이 오는 곳에 걸고 다니던 그 로켓

딸깍하고 열면 빈 공간이 있지
거기에 USB 팩 집어넣고 다시 닫는 고딩

그리고 인어의 목에 로켓을 걸어줘
인어가 고딩을 빤히 바라봐
고딩도 인어를 봐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1차 망이 열릴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
그러니까 그때까지
인어야

로켓 안에 USB 가 들었어

영어로 한 부
그린란드어로 한 부

너한테 한 모든 실험의 결과와 경과 네 자료

그린란드의 연구소로 가
그들이 너를 도와줄거야

바다 맛 기억하지



꼭 가

돌아가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인어
그렇다고 걸어준 목걸이를 벗진 않아
6년 전 그때같다
그때도 지금처럼
인어를 보내야 했는데

그때는 인어를 쫓느라 목걸이를 던졌지
이번에는 얌전히 보내줬어

이건 자기 의지의 차이라고 인간은 생각해

너를 볼 때마다 자기는 아직 그날 그대로의 고등학생 같지만

“나는 스물 여섯이고 이름은 임챵균이야.”
2차 망을 열려면
여기 내 SD카드가 있어 이거 줄테니까
너가 직접 저 아래로 내려가서
센서에 이거 문질러 그럼 열려

그럼 너 갈 수 있어
바닷물 따라서 꼭 거기로 가
도중에 집 찾으면 그냥 아예 가고

응?

인어 눈이 까맣다 꼭 사람같이
자, 여기, 하고 카드를 주려고 손을 내미는 찰나

탕!

공포탄 소리가 저 아래에서 들리고
챵균은 굳어버려
동작 그만

선배가 챵균에게 총을 겨누고 수조로 올라오는 이중 나선 계단을 천천히 올라와

아직 카드를 주지 못한 채로 챵균의 몸이 굳어 진짜 총이야?

말했잖아 예상했던 순간보다 너무 빨리 들켰고 이런 순간이 올지도 잘은 몰랐다고

진짜 총이라고?
그 와중에 드는 생각

인어를 쏘면 어떡하지

굳어있던 몸이 풀려
벌떡 일어나서 두 팔을 크게 벌리는 챵균

곁눈질해보면 인어는 어느새 사라져서 보이질 않아 수면 아래에 있긴 한데
선배님

하고 부르면 선배도 대답해

챵균씨

선배님 저 용서 못 받을 건 아는데
인어한테 못할짓 너무 오래 해왔잖아요

선배는 가만히 챵균을 봐
총은 계속 겨눈채로
인어도 지능을 가진 생명이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이게 미디어에 노출이나 되면요

챵균씨

네?

챵균씨는 저 인어가 얼마나 소중해?

아니면 질문을 바꿔보자

저 인어를 얼마나 사랑해?
사랑?

수조 너머로 인어한테 사랑한다 뻐끔이던 때가 생각나 사랑해는 땅 위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아가미가 없는 인간은 물 속에서 말할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 정도를 얼만큼으로 표현해야 하지 하는 찰나 선배가 하는 말

나는 6년 내내 저 인어만 맴돌았는데
저 인어는 사람을 홀려
대신 기막히게 차갑더라고

6년 내내 마음을 얻으려고 애를 썼는데
꼭 실험을 쉽게 하려고 마음을 얻으려고 한 게 아닌데도
나한테는 한 줌 관심도 안 주는 그런 인어
그리고 거기에 차갑게 식어가는 나까지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챵균씨
인어가 지능이 있다고?
그래 있지 고등한 생명체니까

그래도 인간이랑 인어랑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뭔지 알아 챵균씨?

인간은 은혜를 안다는 거야

선배 눈이 멍한데
진짜 멍한데
그 응축점에는 피가 흐르는 것 같아
선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챵균이 말해

두 팔을 허수아비처럼 쫙 벌린 채로

목소리는 일부러 단단하게 내지만
카드를 주지 못하고 굳어버린 손 끝이 마비된 것 같아 가죽장갑째로 굳어버린듯

저는 6년간 찾아 헤멨어요
선배는 가만히 오기만 기다렸잖아요

나는 내 얘기도 해주고
매일매일 찾아가고
네가 뭘 좋아할까 고민도 하고

교감이랑 구애는 또 달라요
선배 그건 그 감정이 아니예요
지금 잘못된 말 하고 계세요
정신 차리세요

그렇게 자극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선배가 피식 웃어

뭐 만화처럼 박장대소를 하지도 않고
시끄럽다며 고함을 지르지도 않는데
거기에 챵균은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리 예측해도 이 상황의 끝은
딱 한 가지 방향으로밖에 흘러갈 수가

“그 카드 내놔.”
챵균의 손에 든 SD 카드

그거 없으면 인어 못 나가
근데 그걸 선배가 달래

그러면 끝이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텐데
이제는 처음도 없지 자기 역시 잡힐텐데
챵균은 자기한테 겨눠진 총알을 봐

이건 현실이다
장난이 아니라고

그래도 눈을 질끈 감아

인어가 여기 끌려온 건 자기를 기다리다 온 거니까
가는 길은 자기가 꼭 책임져야지
챵균의 손 끝이 점점 수조로 향해

챵균씨 내가 장난같아?

선배가 총을 철컥거려

못할 것 같아?

챵균은 선배의 얼굴을 봐
6년 동안 지겹게 읽어온 사람들의 표정
얼굴을 보면 표정이 읽히고 그건 길이지
보여
어떻게 될지 너무 잘 알겠어

그래도
너무 무서워하지 말자

카드를 수조 안으로 힘껏 던지는 챵균

동시에

탕!
챵균의 몸이 뒤로 크게 휘청여

저절로 비명에 찬 신음소리가 나오고
왼쪽 어깨를 더듬는 오른팔

어깨가 꿰뚫렸다

그래도 겪어보니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해낸건가

카드는 무사히 전해진 건가
선배가 몸을 덜덜 떨어

내가
내가 이러지 말자고 했잖아

처음부터 알려줬잖아
경고했잖아
똑똑하니 알아들어줄 줄 알았단 말이야

인어는 내 거라고
내가 더 오래 있었다고
챵균은 어깨를 강하게 압박해
머리가 멍하다
어깨 조금 뚫렸다고 사람이 죽을 수 있나?

초점을 겨우 맞춰 선배의 낯을 쳐다봐
당연히 쏠 줄 알았어
나도 이정도 희생은 해야지

“선배.”

힘없이 웃어

“인어는 누구의 것도 아니예요.”
선배가 눈을 크게 떠
감기지 않는 눈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주륵 떨어져

저 표정….

아까랑 너무 잘 연결되는 저 표정

“일지만 쓰다 가라고 내가 말했잖아!!!”

그리고 저 울부짖음

다치지 않을 수 있었잖아!!!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은
저 선배의 표정

뭐가 그렇게 억울할까
적어도 당신은 잃을 건 없었지

나는
6년 전부터
매일
한순간도
처절히 또 통렬히

내가 잃은 것을 되새겨야 했는데
챵균은 제 어깨를 주물러

아까랑 똑같은 생각이 반복되는 듯 하다
어깨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
왼쪽 팔 못 쓸 것 같다
머리가 정상적으로 안 돌아가
어깨 좀 뚫렸다고 사람이 죽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날렸던 질문

이제야 답이 보인다
자신에게 덜덜 떨며 겨눠지는 검은 통로
저 안에서 나오는 것은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말했잖아

챵균은 웃어

죽음이구나!
총신의 검은 통로는 죽음이라고

살아서 나가는 길 따위는 없었구나

왼쪽 어깨를 압박하던 손을 내려놓아

천천히
6년 전
한강에서 빠지던 자신을 살렸던 인어
그 날 잡혀간 인어

생명을 얻고 심장을 잃었던 그날

오늘 그 반대가 된들 무엇이 그리 슬프리

심장을 보내고 생명을 잃는다 해도

인어가 가기만 하면 좋다 생각하던 순간

챵균의 오른쪽 어깨마저 꿰뚫는 불
챵균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중심을 잃은 몸이 뒤로 쓰러져
천천히 수조로 미끄러져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챵균의 몸

그걸 멍하니 바라보는 선배
총을 떨궈

일지만… 일지만 쓰다 가라고 했잖아…
초점을 잃은 눈으로 더듬더듬 반복하다

삐입! 하는 경고음이 들려 움찔해
2차 잠금까지 해제되었다는 소리야
인어가 챵균의 SD 카드를 무사히 받은 모양

수조 밑까지 내려가 인식을 성공했나봐

그 소리를 들으며 미소짓는 챵균
거꾸로 된 몸에 벌써 눈부터 잠겨
그래
그거면 된거야

인어는 가고
사람들이 2차 경고음에 놀라서 여기로 오면 자기는 목숨이라도 살겠지

인어를 멋대로 내보낸 책임은 지겠지만
그러나 너무 늦게 오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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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1, 2022
#댕햄

얼마전부터 나에게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주를 떠돌고 있으며,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데 길을 잃었으니 교신에 응답해 방향을 알려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거절했고, 그날 지구로 오던 혜성이 궤도를 벗어나 관측이 일주일 지연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List

Day 1
Day 2
Day 3
Day 4
Day 5
Day 6
Day 7 (완결)

*유기연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
*등장인물 정신병 없음 아시발꿈 아님
*둘 다 완벽하게 제정신일 예정
*둘을 끝까지 믿어주세요
Day 1

‘목소리’ 는 자신이 우주를 헤메는 사람이라 말했다.
Read 81 tweets
Jun 10, 2022
#댕햄 #채꿍

치과의사공 스핀오프 외전 what if?

아니 내가 어떻게 친구랑
친구가 게이라는 걸 알고 흥분해버리면,
흥분해버리는 내가 진짜

챔피언…! (속닥)

챔피언.. 아니 기연아 제발 좀!!!
당신을 보니까 제 심장이
요동을 치는 것 같군요

요동을.. 친다고요?
드디어 북벌이 시작되는 건가…

(사진 순서에 의미는 없습니다)
본 연성은 댕햄 채꿍 치과의사공의 모든 설정을 역으로 씌운 스핀오프 what if? 외전이며 본편을 읽지 않으셔도 무방한 심심풀이 땅콩용 외전입니다!
Read 84 tweets
May 10, 2022
#댕햄

좁은 7ㅔ이판에서 만인의 완식 이군.. 얼마전에 남자 하나에 코꿰여서 지금 별명

품절남 벤츠공 치과의사공

왜 치과의사공이냐

🐶 기여나 할 때 아프면 오른손 들어줘야대 알겟지
🐹 세이프워드를 정하는게 더
🐶 아니아니ㅎㅎ
🐹
🐶 말 못할 수도 있자나

할때 아프면 오른손 들라고 해서 ImageImage
얘네 어떻게 만났다하지

7ㅔ이 어플에서 만났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런쪽 이태원 클럽에서 만났다 해야하나

이번건 아무래도 빌드업용 연성이 아니라 그냥 재미용 연성이라 짧게 가자면

아마도.. 클럽에서 만났다 해야하나
바 섞인 좀 점잖은 쪽에서
탑티어를 달리는 이민역군
그 세계에서 닉네임 정직하게 ‘댕’
예쁘장- 한 외모와는 다르게
침대 들어가선 180도 변한다는 소문 때문에 내로라하는 바텀황들이 도장깨기마냥 댕 노렸던 전적 있음 재밌을듯
Read 1254 twe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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