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누나랑 너무 달달해서 이빨이 저려오는 크리스마스 로맨스 영화를 보다가 생각했어. 나도 느껴보고 싶다. 저런 사랑.
아니, 솔직히 원한다기 보단 궁금했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무슨 느낌이야? 나한테도 언젠간 죽고 못사는 사랑이 올까?
17년 인생동안 다른 누구한테 한번도 설렌적이 없다는게...말이 되나?
턱을 괴고 치킨 패티를 질겅질겅 씹다가 제 옆에서 조용히 점심을 먹는 베프에게 시선을 돌린 읹준은 좀 못된 마음이 들었어.
- 재노야.
- 응.
- 넌 섹스해봤어?
- 쿨럭-
눈이 동그래지더니 갑자기 기침소리를 내던 재노 리는 얼굴이 빨개져서 읹준을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봄
- 키스는?
- 너 뭐 잘못 먹었어?
- 나 못생겼어?
- 어…
불쑥 얼굴을 들이밀면서 말하니 얼굴이 빨개진 재노는 시선을 피함
- 좀 객관적으로 말해줘 봐.
- 너 어디 안 좋아?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입술을 삐쭉거리기 시작한 읹준에 재노는 자세를 고쳐앉음
- 그게, 내 말은,
- 그래. 내가 문제네.
- 아냐, 그런 말 한 적 없어.
- 재노야.
이때부터 재노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함
- 만약에. 지인짜 만약에. 네가 여자였다면 나랑 사귀었을 거 같애?
- …
- 아 좀.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한번 제대로 생각해봐.
- 어...뭐...
- 죽는다.
- ...
-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 아니.
- 그럼 나랑 사귀어보자.
- 싫어.
바로 0.1초만에 돌아오는 대답에 읹준은 팔짱을 꼈지.
- 그러니깐 연습. 연습하자고. 진짜 사귀는 게 아니라. 그나마 내 아는 애들 중에선 네가 경험이 제일 많잖아.
- 그런 걸 왜 연습을 해...?
- 나도 이제 연애고수가 될 거야. 그리고 내 소울메이트를 찾는거지. 어때?
- …
- 헐. 친구도 못 도와줘?
- 너 그냥 모쏠 해.
- 안될게 뭐 있냐? 우리가 진짜 게이도 아니고. 그냥 어릴 때 하던 소꿉놀이처럼 척만 하면 되잖아.
- ...진짜?
- 응.
찜찜한 표정으로 읹준을 훑는 절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읹준은 또 다른 고민이 생김.
- 그럼 보통 사귈 때 뭐하지?
- 뭐…일단 학교 끝나고 집에 데려다 주겠지.
- 그건 이미 하잖아.
- 주말마다 만나서 같이 시간 보내고...
- 그것도 이미 하고.
- 커플템? 이런거나,
- 우리 저번주에 자켓 똑같은거 샀잖아. 에어포스원도.
- …
- 또 뭐 없어?
머리를 맞대고 앉아 보통 연인들은 뭐하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머리만 쥐어뜯게 됨
아니 이니 24시간 붙어있는 둘인데,
서로의 집에서 시간 때우다 귀찮을 땐 같이 씻거나 한 침대에서 잠들어버리는 둘인데,
여친이랑 있다가도 읹준의 [froyo?] 문자 하나에 다 내팽개치고 달려가는 재노인데
뭘 어떻게 더 하냐고.
아니면 공식으로 데이트라도 해볼까?
- 우리 극장 옆에 생긴 아케이드 갈래?
- 나 어제 리암이랑 갔었어.
- …나 없이?
다 비운 플라스틱 식판을 치우던 재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 엉.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아니면 너네 집 근처 햄버거집 갈래?
- 거기 음식 별로.
- 어떻게 알아?
- 엘리랑 갔었어.
- ...허, 참.
이번엔 읹준의 눈썹이 꿈틀꿈틀. 얘도 아닌척 하면서 은근 할거 다 하고 다닌단 말이야. 우리 학교 킹카 아니랄까봐. 만약에 입밖으로 낸다면 재노가 질색할 별명을 곱씹으면서 다 비운 주스박스만 쿡쿡 찔렀지.
- 그럼 엘리랑 있을 때랑 나랑 있을 때랑 다른게 뭔데.
그말에 재노가 팔짱을 끼더니 깊은 생각에 빠짐.
...이게 그렇게 깊게 고민할 질문이야?
- 그…스킨십? 같은 것도 있지.
- 뭐. 키스같은거?
- 그건 좀.
- 아 그러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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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볼래?
생각보다 재노의 입술은 부드러웠다. 관리하나. 다 하고 립밤 뭐 쓰는지 물어봐야지.
근데.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지.
결국 점심은 별 진전없이 끝냈지.
학교가 끝나고 재노 축구 연습 끝날때까지 벤치에 누워 기다렸다가 같이 재노 집으로 가서 피자 두판 시켜먹고 재노 침대에 누워 낮잠에 잠들어버렸지. 한참을 침흘리면서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떠보면 어느새 어두워진 하루인데.
눈을 깜빡여보면 책상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임.
- 불 안 켜?
- 너 깰 까봐.
고개도 안 돌리고 대답하는 재노에 눈을 굴렸어. 가끔 쟤가 저럴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진짜 나 생각해서 안 킨 거야, 아님 일어나기 귀찮아서 안 킨 거야.
- 야.
- ...
- 야.
- ...
- 나 심심해.
- ...
- 재노야. 넌 애인이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대놓고 유혹하고 있는데 게임이 눈에 들어오니?
대답없이 한참을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재노가 갑자기 게임을 멈추더니 헤드셋을 벗고 의자를 돌림
어라. 뭔 미친소리냐고 한마디 들을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별말없이 읹준의 옆에 풀썩 눕는다.
- 뭐야?
- 네가 오라며.
그러긴한데. 이렇게 순순히 와줄 줄은 몰랐지.
…갑자기 어색하다. 이럴날이 올 줄은 꿈에서도 몰랐는데. 옆에 정자세로 누워서 어느새 눈을 감고있는 애를 감상하다가 생각도 없이 내뱉어버림
- 해볼래?
- 뭘?
- 키스.
이재노가 눈을 뜨고 놀란 표정으로 읹준을 바라본다.
- 지금?
- 싫어?
- …
- 도와준다면서.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얜 왜 이런것도 잘해? 엘리가 울고불고 매달릴만 했네.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읹준의 허리를 감싸안고 더 깊숙히 파고들어오는 혀에 머리가 하얘졌다. 응? 눈을 슬쩍 떠보니…약간…어...눈을 감은 이재노는 진짜.
머리속에서는 메아리가 울림. 그만해야 되는데. 이쯤이면 되는데. 빨리 떼어내야 되는데. 진짜 말도 안되는데. 근데 말도 안되게 좋다. 읹준의 교정기까지 살짝살짝 건드리다 부드럽게 쓸고 가는 말캉한 혀에 온몸이 찌르르. 혀끝에서 전해지는 전율이 뒷목까지 흘러 읹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일분인지 십년인지도 모를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떼어내면 길게 이어지는 투명한 실에 읹준은 약간 죽고 싶어짐
- 어때?
읹준의 입가를 자연스레 엄지로 닦아내면서 묻는 재노에 시선을 황급하게 내렸다.
- …진짜 별로다.
- 그래?
- …
- …
- 한번만 더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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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이상하다.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섹파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매일 금요일마다 이재노의 침대에 나란히 앉아 쪽쪽 키스만 나누는 사이는 뭐라고 부르죠?
연습. 연습용. 황읹준 솔메 찾기 프로젝트. 맞아. 친구끼리 좀 도와주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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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종이 울리고 블리쳐에 앉아서 축구 훈련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두드림
- 뭐해?
- 쟤 기다리는 중.
셔츠를 펄럭이며 땡볕 아래 뛰고있는 재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면 햬찬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림
- 혹시 재노 리 연애해?
- 푸흡-
- 아 드러워 진짜,
- 쟤, 쟤가? 왜?
뭐야. 설마 알아챘나? 이햬찬 눈치백단인건 늘 적응이 안 된다.
- 쟤 엘리가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거절했대.
- 뭐어?
- 난 재결합한다에 베팅하고 있었는데. 까비.
- …
그말에 읹준이는 괜히 심술이 나서 신나서 연습경기를 감상하던 햬찬이 허리를 쿡 찌름
- 아! 아파!
- 남일엔 신경 끄고 너나 잘하세요.
- 야, 너 이리 와봐-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 학교가 떠나가라 웃던 애가 갑자기 읹준이 어깨 넘어로 시선을 둠
- 쟤 너 쳐다본다.
- 어?
- 쟤노 리.
진짜 고개를 힐끗 돌려보면 눈이 마주친다. 그러다 다시 불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무표정으로 서있던 재노가 다시 필드로 뛰어가는 모습에 눈을 굴렸어. 언제부터 보고있었지?
확실히 재노는 유단자가 맞다. 연애 유단자.
책가방 들어주기. 같이 쓰는 우산 한쪽으로 기울여주기. 수업시간 동안 눈 마주치면 눈 찡긋거리기. 괜히 낯간지러워서 뒷목만 빨개지도록 벅벅 긁었다.
그래서 다음은 뭔데?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건데? 물어보면 별거 없대.
원래 연애는 서로 좋아하면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거래. 그래도 꼬박꼬박 토요일 아침마다 지 아빠 BMW 끌고 와서는 헤이우드 비치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에이엠씨 씨네마로 데려간다. 너 전에 사귀었던 애들이랑도 이랬어? 물어보려다 관뒀다. 뭔가 짜증나서.
가끔은 너무 다정하게 구는 놈에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물어보면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어깨를 으쓱이며 차문을 열어주는 재노 리에 몸을 부르르 떨며 오글거린다는듯 고개를 저었지만...사실 좀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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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모처럼 데이트(?)를 안 하는 날이 옴. 연애연습도 어지간히 힘들다. 오늘은 걍 집에서 쉬자- 는 읹준이 말에 넷플만 4시간째 눈빠지게 보면서 뒹굴거리다가 늦은 오후에 둘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커피 픽업하기로 함
같이 주문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버린 읹준이는 먼저 밖에 나가있었음. 이따 집에 오는 길에 우유 사오라는 엄마말에 대충 대답하면서 유리창 넘어 보이는 재노를 기다리는데 커피를 건네주던 알바생이 뭐라 말을 자꾸 거는게 보임. 너무 멀어서 말은 안 들리지만…
음. 번호 따이는 장면 같은데.
저 알바생...어디서 본 거 같은데...아. 우리 학교 아니야? 맞아. 쟤 소포모어잖아? 아이구.
알바생이랑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페문을 열고 나온 재노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유심히 지켜봄.
- 뭐야?
- 뭐가?
- 또 번호 따였냐?
- 응?
- 아, 잠깐만, 여기 있어봐. 나 빨대 가져올게.
다시 들어가려는 읹준의 소매를 갑자기 꽉 잡은 재노에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니 자기가 가져온다고 다급하게 얼버무린다. 뭐야.
대답도 안 듣네. 근데 나와서도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애가 몹시 수상하다.
- 맞아, 아니야?
- 어? 뭐가?
- 번호 따인 거.
- …어. 맞아.
- 역시. 밖에서 봐도 딱 그래보이더라. 그래서. 줬어?
- 아니.
- 왜? 귀엽던데?
- …내 취향 아니야.
마키아또를 빨던 읹준은 문득 생각이 났어.
- 아니면 혹시 엘리 때문이야?
- 뭐?
- 걔가 다시 만나자고 했다면서.
- …
읹준의 옆에서 나란히 걷던 재노가 우뚝 멈춰선다.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다시 사귈거야?
- 아니.
- 왜?
- 난 한번 헤어지면 끝이야.
- 와우. 완전 단칼이네.
- ...
대답없이 다시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는 재노의 뒷모습을 보던 읹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만약에, 재노야. 우리도 헤어진다면. 이런 소꿉놀이를 끝낸다면.
너랑 나랑도 끝인거야?
어느덧 이 짓을 시작한지 세달이나 흘렀다. 그래서 나름 웃겨보겠다고 100일 선물도 샀다. 재노가 원하던 게임 키보드로.
- 어때?
- ...
...어. 좋아할줄 알았는데. 포장지를 뜯어본 재노는 수상쩍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번엔 무슨 꿍꿍이냐는 듯이. 이건 또 뭐야?
- 우리 100일이잖아.
- ...
- 아 알았어, 농담이야.
- 뭔데, 그럼.
- 이때까지 도와준거 고맙다고. 너도 귀찮았을거 아니야, 같이 장단 맞춰주느라.
- 안 받을래.
- 뭐?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다시 선물을 건네는 놈에 순간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 왜? 너 이거 아마존 위시 리스트에 둔 거 다 봤는데?
- 필요없어.
...그게 다야? 뭐지? 왜 갑자기 너답지 않게 굴어? 어이가 없어서 얄미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놈은 이제 숙제해야한다고 얼른 나가보란다.
나 너한테 뭐 잘못한거 있어? 그런거 없대.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없대. 그럼 뭔데?
- 이제, 그만하자는 거지?
- 응?
- 고맙다고 선물 주는 거.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거지?
뭘? 뭘 그만해? 고개를 천천히 올려다보면 차가운 표정으로 문 손잡이를 잡고있는 모습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 ...아니, 뭐. 네가 보기에 내가...어...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음...굳이? 계속 이어나갈 필요는 없으니깐-
- 그래.
- ...
- 충분히 연습했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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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항상 헬이다.
비몽사몽 락커에서 노트를 꺼내고 있는데 왠 익숙한 여자애가 보이네. 어? 쟤…맞다. 카페 알바생.
읹준이랑 같은 로 들어가는 여자애에 또 어리둥절. 원래 이 수업 들었나? 마침 앞자리에 앉은 애랑 눈을 마주치면 여자애는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음
- 안녕하세요?
- …나?
날 혹시 아나?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애에 인사를 받아줬더니 선생님 눈치를 보다 몸을 돌리고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여자애임
군인 황읹준이 보고싶어요
머리 박박 깍은지 꽤 돼서 약간 자란 머리
어색해서 뒤통수 벅벅 문지르는 버릇있음
휴가라도 새벽에 깨서 옷통 까고 군번줄 하나 딸랑이면서 운동장 몇번 돌고 기분좋게 땀 뻘뻘흘리면서 들어올듯
집에서도 맨날 옷통까고 다니면 어떡해
헐렁한 회츄바지 하나 걸치고
커피 머신 켜지는 소리에 잠깬 애인
물 끓이는 살색 뒷모습 멀뚱멀뚱 한참 쳐다보다가
그러다가 데이면 어카냐면서 뒤에서 껴안아올듯
후 민간인 된지 얼마 안돼서 다나까 못버리고 있다가
침대에서도 적용되는 말투에 은근슬쩍 분홍빛으로 물드는 애인 귀 보고 피식피식 웃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