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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4 42 tweets 5 min read
#젠런
황떤남자 새로운 흑역사 생성

술먹고 새벽4:29분에 전공교수님한테 장문의 이메일 보냄
이번 과제 관련 질문있는데 마침 집에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와인도 쟁여둔겸 하룻밤만 자고가시라고…

문제는 졸업한지 2년 지남
하아 술을 처먹었으면 보통 사람처럼 전애인이나 연락할것이지
마지막으로 본지 2년된 교수님을 꼬시려고 하냐 이 미친놈아
아무리 벽에 머리를 퍽퍽 쳐봐도 이미 보내진 이메일은 다시 회수할수도 없고…
그때 핸드폰이 띠리링 울림
[Re: 교수 ㄴ ㅣㅁ 안 녕하새ㅇㅛ]

오랜만이네요.

읹준 학생은 이미 그 과제 제출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궁금한 점 있으면 한번 보러와요.
시발.

방 반대쪽으로 핸드폰 던져버린 읹준씨는 침대만 쾅쾅. 전남친한테 자니? 문자 보냈을때도 이만큼 수치스럽진 않았는데.
결국 진짜 뵈러 감
ㅋㅋㅋ
그래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니깐
한손엔 홍삼정 에브리타임 한박스 들고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로 잊고있던 캠퍼스를 들어서면
학생시절 생각나네…
1학년 1학기 교양 수업때 제대로 코 꿰인 이후로
교수님 강의 마다 맨앞줄에 앉고
강의 전날 빡세게 공부해가서 교수님 질문엔 꼭 손들고
교수님이 밥 사주신 날엔 진짜 세상을 다 가진것만 같았고 (물론 다른 애들도 같이 사주셨다)
매주 박카스를 들고 방문한 교수실도 모자라
그 잘난 얼굴 한번 더 보겠다고 무턱대고 학교에서 가장 사악한다는 전공으로 갈아탔다.
(하도 적성에 안 맞아서 때려칠까하다가 걍 휴지로 코 틀어막고 버텼다. 역시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미쳤지, 진짜.
무슨 콩깍지가 씌어가지고.
교수님이 뭐라고.
웃긴건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ㅈㄴ티났겠다.
아님 또라이라고 생각하셨으려나?

한땐 도서관보다 더 자주찾던 방앞에 서서 문을 똑똑 두드리면 들어오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쭈뼛쭈뼛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하던 중이셨는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면서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왔어요? 묻는 교수님.
제 맞은편 의자를 손짓하면서 반갑다고 환하게 웃으시는 교수님은…망했다. 여전히 드럽게 잘생기셨다. 그래, 저 얼굴이랑 목소리에 홀려 내가 없는 질문 쥐어짜내면서 매주 교수실을 들락거렸지.
- 잘 지냈어요?
- 네…! 교수님은요?
- 난 늘 똑같죠, 뭐. 요즘은 뭐하고 지내요?
- 이번에 취직해서 다시 이사 갔습니다
- 축하해요, 잘됐네.
- 아이고, 다 교수님 덕이죠 하하
뻘쭘해죽겠다. 얼른...말을 해야하는데...사과를...해야하는데...

- 괜찮아요? 뭐 마실래요?
- 교, 교수님...
- 응?
- 그…이메일…
- 아.
- 정말...당황하셨죠...너무 죄송해요...아휴, 진짜, 제가 정신이 없어서...
- 괜찮아요, 그럴수도 있지.
- ...
읹준은 눈만 꿈뻑꿈뻑.
교수님은 왜 그렇게 자상하신가요
왜 아직도 제 가슴을 뛰게 만드시나요
울부짖고 싶은 마음 꾹 참고 일단 가져온 박스나 건넸다

일단은 주제를 돌리려고 한거지만...4년전 박카스를 바들바들거리는손으로 건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약간 죽고 싶긴했다
- 뭘 이런걸 가져와요
- 교수님 드리려고,
- 아이구야

못말린다는듯이 웃던 교수님이 책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신다

- 나 그거 먹고 싶었는데
- 뭘요?
- 읹준씨가 타주던 커피.
- …
- 내가 아무리 해봐도 그 맛이 안 나더라
- 진짜요? 하핳, 별거 없었는데
- 그래요? 아니면 읹준씨가 타줘서 맛있었나?

…증발할뻔.
그때 한창유행하던 맥심 황금비율 교수님한테도 꼭 마셔보시라고 강의 시간 전 몰래 교탁에 두고 나왔던 적이 있는데,

- ...당장 커피 사오겠습니다
- 농담이에요. 이거 잘 먹을게요.
어떻게 아셨지.
궁금해할 틈도 없이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 미안해요. 잠깐만.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 교수님을 쳐다보다 의자에 푹 앉아버린 읹준씨. 생각나버렸다. 교수님이랑 황읹준이 절대로 이어질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 응 다혜야. 알았어. 너도 꼭 챙겨먹어. 응.
- ...

교수님은 이미 애인이 있다.
- 미안해요, 갑자기 전화가 왔네.
- 아, 아닙니다.

순간 확 내려앉은 기분에 이제 가봐야겠다고 꾸벅 목례하는데 교수님이 같이 일어서신다

- 와인 아직도 있어요?
- 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 쟁여놨다면서.
교수님이 그 특유의 짓궂은 표정을 지으시면서 교수실 문을 열어주신다.

- 이사 간 겸 집들이도 한번 해야지.
- ...
---

황읹준은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생각했다.

내가 살다살다 어쩌다 (전)교수님이랑 술약속을 잡게 됐지.
그것도 내 집에서.
----

드디어 그 날이 왔다.

- 아이구, 이 귀한곳에 누추한, 아아니 이 누추한곳에 귀하신 분이-

미친미친미친. 현재 금요일 오후 7:34분 이교수님이 황읹준 자취방에 꽃다발을 든 채 서있다. 연예인 접한 기분.
- 코, 코트 주세요…
- 집이 예뻐요.
- 감사합니다...!
- 이거.
- ?
- 읹준씨 생일이었다면서요.
- 아…!

케이크라면서 다른손에 들고있던 하얀상자를 건네는 교수님에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이 시대 최고의 다정남이 틀림없다. 이 보잘것없고 배은망덕한 옛제자 생일까지 챙겨주시고.
그런 읹준을 쳐다보던 교수님이 입꼬리를 올리신다.

- 많이 불편해요?
- 아뇨, 아뇨! 그럴리가요!
- 편하게 대해요.
- 넵!

아뿔사. 저도 모르게 구십도 인사를 해버렸지만 교수님은 이 상황이 웃긴지 계속 눈웃음만 뿅뿅. 이거...이거 쪼옴 위험한데....
암튼 이미 저녁은 드시고 오셨다는 교수님에 고급와인이랑 디저트 열몇가지만 펼쳐놓고 (상다리 부러지겠네...라고 중얼거리는 교수님에 약간 민망할뻔했다)
식탁에 마주앉아 지난 이년간 서로 뭐했는지 조곤조곤 얘기나누면 시간은 훌쩍.
- 술 좋아하나 봐요?
- 제가요? 아뇨? 저 완전 알쓰예요 알쓰!
- 그럼 저건 연습하려고 모아둔건가?

교수님의 시선을 따라가면 거실 스피커 및 잔뜩 쌓여있는 소주병들이 보인다. 씹.
턱을 괴고 재밌다는듯이 눈썹을 들썩이던 교수님은 술 잘하는 남자 멋있죠. 라는 멘트나 치신다. 아 놀리지 말라구요…
아니, 저렇게 다정하게, 너그럽게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절 바라보시면. 몸둘바를 모르겠잖아요. 새벽이메일보다 더한짓도 저지르고 싶잖아요 교수님...
와인도 까고 치즈도 자르고 폭풍 수다떨던 읹준은 기진맥진. 정신이 없어 아직 술 한모금도 못 마셨는데 왜 이렇게 취한 것처럼 몽롱하냐.
솔직히 꿈만 같다. 몇년이나 황읹준의 마음을 시리게 했던 장본인이 저를 저 진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게. 식탁 밑으로 손을 뻗어 슬그머니 잡아온다는게…
우당탕탕.

의자가 뒤로 넘어질만큼 벌떡 일어난 읹준에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는 교수님.

- 교교교수님!
- 응?
- 그그그-
의자를 세우며 부엌시계를 최대한 오바하면서 쳐다보면 교수님도 고개를 돌리신다.

- 시, 시시간이 많이 늦어졌네요...!
- 그렇네요.
- ...
- ...
- 아니 애인도 있으신 분이…이렇게 늦게까지 남에 집에 있어도 되나요? 아무리 학생이라지만 하하
- 읹준씨 이제 학생 아니잖아요.
- 아 그쵸! 이제 어엿한 회사원이죠…가 아니라…
- 그리고 내가 애인이 있어요?
- 네? 그걸 왜 저한테…
- 오늘 처음 알았네.
호랑이도 제말하면. 그 순간 익숙한 컬러링이 울려퍼진다. 발신자 다혜.

- ...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읹준을 알아챈 교수님이 옆으로 고개를 트신다.

- 아. 다혜?
- …
- 내 동생.
- 예...?
- ...
- 어…아니 평소에도 동생 이름을…그렇게 각별하게 불러요? 책상에 그 사진은…아 아니 그럼 그 반지는...
- 나이차이가 꽤 나거든요. 그리고 다혜 이번에 입원했어요.
- 왜요...?
- 출산 예정일 얼마 안 남아서.
- 예에?
- 결혼한지 3년 된 애예요.
- ...
- 반지는 아버님 예물.
- ...
- 이제 됐나?
와인잔을 느릿한 손길로 쓸어내리던 교수님이랑 눈이 마주친다.
결국 읹준씨는 앞에 따라놓은 술잔을 원샷할수밖에. 맨정신으로는 못해먹겠다.

- 죄송해요, 멋대로 오해해서.
- 괜찮아요.
- ...
-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
- 교수님은…교수님이 진짜 다정한거 아세요?
- 내가 그래요?
- 네…진짜…헷갈릴정도로…
- 어떻게 헷갈렸는데.
- 그…그래서 제가 엄청 좋아했잖아요….진짜 학교생활 내내 교수님만 봤는데…아 이미 아셨으려나? 아우, 심장 뛰어. 잠깐만요 이거 단추좀 풀고…아 아니 안 도와주셔도 돼요…암튼 오랜만에 찾아뵈던 날 혹시 성격이 나빠졌거나
머리라도 벗겨져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갔거든요? 근데 아직도…망할. 아 죄송해요. 이쁜말. 아직도 너무 잘생기고 자상해요. 1학년때로 돌아간것같애. 너무 횡설수설 했죠 아무튼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어..그게, 아까부터 묻고싶었는데…왜 계속 그런…그런 눈빛으로 저를 보세요?
- 어떤 눈빛으로?
- 딱 지금! 지금 같이…그 그윽한 눈빛..아 진짜 저 죽어요 그러지 마세요 교수님 저 오해해요...어? 교수님 어디가섰지? 갑자기 사라지셨 아 식탁 밑에 계셨군요 근데 왜 거기…어 제 다리..거기 만지면…왜 지퍼를 갑자기 풀고, 네? 아 뭐 묻었어요? 아, 감사해요 교수님 근데, 억-
읹준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 저 소주병 하나 원샷했나? 아니면 지금 꿈꾸는 건가? 몽정으로 나올법만한 장면이 바로 식탁 밑에서, 황읹준의 고간 사이에서 편쳐진다.

- 아흑,
식탁 아래는 차마 볼 엄두도 안나서 방금 전까지 교수님이 앉아계셨던 맞은편 자리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10살 애새끼마냥 숨을 헐떡헐떡. 결국은 배은망덕한 제자답게 교수님의 풍성한 머리채도 잡아버린 순간엔 진짜 기절할 뻔.
곧이어 참고참던 황홀감을 울컥 뱉어내고 황급히 내려다보면 제일 먼저 보이는 얼룩얼룩한 교수님의 안경. 바로 받아들고 계주 끝내는 육상선수마냥 화장실로 뛰어갔다.
죄인마냥 쭈뼛쭈뼛 돌아와보면 아무일 없었다는듯 도로 자리에 앉아 와인을 홀짝이는 교수님. 혹시 환각은 아니었는지 골똘히 머리를 굴려봤다.

...안 굴려진다.

- 남대문.
- 네?
- 남대문 열렸어요, 학생.
그 와중에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교수님에 또 흐물흐물 녹고 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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