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호성한테 끌려온 영화관에서 뭐 볼까 계속 물어보길래 심신이 지쳐 손을 휘적휘적 거리며 알아서 끊어와, 했던 결과가 이거다. 돈 주고 보기엔 아까운 삼류 에로작 느낌이랄까.
주인공이고 주변 인물들이고 살색이 만연한 영화를 지호성은 스크린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집중해서 보고 있다가도 간간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다시 영화를 보... 야, 씨발 그러고보니까 너 왜 자꾸 기분 나쁘게 나 보면서 입맛 다시는데.
- 저런거 너랑 같이 집중해서 보고 있으니까 기분 되게 야릇해. 그러니까 키스 한번만. 나 오늘 못 하면 몸져누울거 같아.
난 지금 몸져눕겠다 새끼야.
- 심야라서 그런지 사람도 없어서 꼭 우리 둘이 전세낸 거 같고, 뭐라도 해야할 거 같고, 아무것도 안 하고 나가면 삶의 의욕을 잃을것만 같고,
고만 나불대. 심야라서 사람이 없는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돈 주고 보기 아까운 저급한 영화인 거라고 푼수야.
- 지금까지 너한테 이렇게 졸라본 적 없었잖아. 혀만 넣어보자, 딱 한번만. 응? 으응?
안 그래도 이런 영화를 사내새끼랑 나란히 앉아서 보고 있단 것부터 끔찍한데,
몸은 참 정직해서 일부러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아봐도 청각을 촉촉하게 파고드는 사운드가 참 사람 힘들게 만들거늘,
- 너랑 키스하고 내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거잖아.
- ..?
- 싫거나 거부감이 들면 너 귀찮게 할 일도 없고, 나도 내 감정이 사랑이 아니구나 인정할 수 있을 거 아냐.
사람이 없어도 영화관이긴 하니까 지호성이 꽤나 속닥속닥 얘기를 하는데, 귓가가 간질간질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몇 안 되는 커플들은 이미 영화의 후속작을 찍기라도 할 듯 입을 맞추며 서로를 주물러대고 있어서 어디로 눈을 둬도 19금 딱지를 붙여줘야 할 것만 같다. 그러고보니..
이거 성인물이잖아, 티켓은 어떻게 끊은 거지?
- 표 어떻게 샀냐?
- 여기 원래 심야에는 신분증 확인 거의 안 한대. 그래서 일부러 이 영화관 온 건데?
와, 이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새끼. 이 가슴 속 답답함은 도대체 누가 알아주랴..
고개를 돌렸더니 귓가에 속닥대느라 가까워진 지호성 얼굴이 눈에 꽉 차게 담기는데 까만 눈동자 아래로 쭉 뻗어있는 코, 그 아래로 달싹이는 입술이,
- ...딱 한 번만이다.
19세의 끓는 피는 분위기에 따라 있어서도 안되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경험을 제멋대로 허락해버리기도 하나보다.
야시꾸리한 이 기분을 달래듯, 눈을 감고 꿈에 나왔던 쭉빵누님을 상상하며 지호성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는 미친짓을 해버렸다.
아니, 근데.. 분위기도 한 몫 한데다 지호성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거 치고는 너무.. 기분이 묘하잖아, 젠장?!
영화 분위기와 지호성 찡찡거림의 콜라보로 눈부터 질끈 감고 입술을 맞댔는데 그 순간 아무리 머릿속으로 쭉빵누님을 소환시켜도 머릿속 이미지보다는 입술에 닿은 감촉이 더 신경을 찌릿찌릿 찔러대서 당장은 상대가 지호성인 것조차 잊을 것만 같았다.
근데 어이없게도 당황스럽다는 생각보다 그 묘하고 찌릿한 감각에 더 도취되어 나도 모르게 입술에 살며시 닿아있는 말랑하고 폭신한 입술을 빨았는데 그렇게나 키스하자고 노래를 부르던 지호성은 막상 현실이 되고나니 놀랐는지 고개를 조금 뒤로 뺐고, 딱 그만큼 내가 다가가자 뻣뻣하게 굳은 채
내 어깨를 붙잡고 바들바들 떤다. 분명 딱 여기까지가 지호성 정신 차리게 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는데,
- 해성ㅇ...
녀석이 입을 여는 순간 무슨 영문인지 나도 모르게 혀를 집어넣고 입술만큼 말랑하고 촉촉한 지호성 혀를 휘감고 안쪽의 연한 잇몸을 흝어냈다.
내 어깨에 올려져있던 오른손이 의지할 곳 없는 양 힘이 빠지는지 자꾸만 축축 늘어지다 결국 또 이것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것처럼 파르르 떨며 내 어깨를 잡아보는데, 영화관 특성상 여주의 신음소리가 엄청난 사운드로 귀에 팍팍 꽂히는 이 공간에선 지호성의 그런 작은 손짓하나도 끈적이게
느껴진다.. 가 아니라, 미친, 씨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지호성에게 옮았나보다. 하도 세뇌를 당해서 동성간의 키스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게 무뎌진 걸까. 아무리 영화는 뒷전인 채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커플들만 몇 명 있다지만 그래도 영화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여자친구도 아닌 익숙하고 또 익숙한, 지호성이랑 이렇게 진한 키스를 할 수가 있는 건가? 아니, 해도 되는 건가?!
- ㅎ,잠,
심지어 지호성은 잠시만 혹은 잠깐만 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내가 오히려 그 짧은 단어조차 내뱉을 틈을 주지 않은 채 계속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혀끝부터 핥아가며 더듬듯, 만지듯, 그렇다고 너무 조급하진 않은 듯, 그렇게 입 안을 휘저었다.
지호성은 키스 후 정줄을 놓았는지 계속 멍한 상태였고 난 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저질러버려놓고 막상 하고나니 이성이 확 돌아온다. 와중에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이 아쉽기까지 했고 지랄.
그 후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둘 다 말을 잃었다. 야식까지 먹고 들어가자던 지호성은 넋이 빠져있고 나도 이성을 되찾다보니 더 없이 민망하고 어색해져서 둘 다 조용히 집 방향으로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나란히 걷지만 남인 양 각자 다른 곳을 보며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게 다 요즘 미쳐버린 듯 한 지호성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떠넘기다가, 암만 그래도 나까지 동조하면 어쩌냐고 자책을 하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건지 의문도 품어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얼굴로 봐야 하며, 혹여나 지호성이 키스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 등등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
단 둘이 있는 게 어색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비록 요 며칠간 지호성이 나한테 존나 집착하는 바람에 당황하고 피곤해 하긴 했으나 어색해지지는 않았는데.. 아 근데 얘는 왜 또 이렇게 조용해 적응 안 되게. 그렇게나 하자고 졸라대더니 이제와서
후회하는 중인가..? 하긴, 생각해 보면 나한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당당히 하던 지호성도 그 며칠간 생각이 많았을 거 같다. 날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혼란스럽진 않았을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무작정 들이대고 봤는데 막상 그렇게 하자고 노래를
부르다 키스를 해보고 나니 이건 아니구나 싶어 후회도 되고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후회되냐? 하고 물어보는 것도 웃기고.. 모르겠다, 어차피 서로 그 일에 대해 말 하고 싶지 않은 거 같으니 없었던 일처럼 그렇게 묻어버리면 그만이겠지.
- 들어가라.
한마디도 않다가 집 앞까지 와서야 겨우 한 마디 하고선 돌아서려는데,
- 해성아.
내 손목을 움켜쥐는 손.
- 오늘 니 덕분에 많은 걸 깨달은 거 같다.
그렇게나 얼이 빠져 있더니. 차분한 목소리가, '나 이제 정신 돌아 왔어요. 멀쩡해요.' 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 역시 차분한 얼굴로 지호성을 마주봤다. 난 이미 니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노라 싶어 편하게 말 할 수 있도록 마저 얘기해 보라는 제스쳐도 취해줬다.
- 혀를 함부로 놀리면 안된다는 말이 있잖아. 그 말이 맞나봐.
그래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내게 했던 고백이나, 한번만 하자고
세뇌하듯 쫑알대던 게 민망하기도 하겠지. 근데 뭐, 분위기에 넘어 간 내 잘못도 있으니 퉁치자고 말 하려는데,
- 앞으로는 함부로 혀 놀리지마 주해성.
...나? 니가 아니라 나??
- 난 솔직히 사람들이 키스에 의미부여 하는 게 이해가 잘 안 됐거든? 그냥 혀 좀 섞이는 거 그게 뭐라고. 드라마나
영화 볼 때 키스씬이 나와도 뭘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미화시킬까 싶었는데 너랑 해보니까 이해가 돼.
네?
- 역시 뭐든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거 같아.
네??
- 나 또 하고 싶어.
네?!
- 키스라는게 뭐 대단한 행위도 아닌 거 같은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더라. 간질간질하고 힘도 빠지고 몽롱해지고 이상야릇하고 막, 순간적으로 혼이 빠지는 거 같더라고. 근데 나 예전에 누나랑 했을땐 아무 느낌 없었거든? 니가 잘 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원래 그런건데 누나랑 내가 좀 안 맞았던거야?
너도 나처럼 그랬어?
이젠 화도 안 난다. 난 나름 진지하게 지호성을 걱정했었다. 누나와 사귈때도 스킨십에는 관심없던 놈이 어쩌자고 뒤늦게 성에 씹변태가 되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지호성은 칠렐레 팔렐레 '난 그런 거 모름 그냥 너랑 하기만 하면 됨' 하곤 달려들었고 나도 어쩌다보니 휘말려서
키스까지 해버렸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오는 내내 속으로 걱정했는데 지호성은 어떻게 끝까지 진지하질 않냐..
- 너도 나랑 같은걸 느꼈든 아니든, 난 그랬으니까 앞으로 함부로 혀 놀리고 다니지마. 여럿 기절 시키겠어.
말을 사용함에 앞서 뜻부터 제대로 인지하고 써라 새끼야.. 그 말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등신아.
- 그리고 또 하나를 깨달았지. 앞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너 꼬셔봐야겠다는 거.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건지 얼어붙어서 아무런 대꾸도 못 하는 날 보며 고개를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하더니, "주해성, 자?" 하며 내 눈 앞에 제 손을 휘휘 저어본다.
- 야.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러냐..
- 내가 이러는 거 싫어?
- 어, 싫어. 너도 정신 돌아오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하이킥 할 테니까 이쯤에서 멈추고, 서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방학동안 만이라도 보지 말자. 어때?
- 음.. 그건 곤란한데. 부모님이 또 너한테만 얘기 안 하셨구나? 내일부터 며칠간 우리집에 집안 어르신들 오시거든. 내 방 내줘야 해서 내일부터 나 너희집에 있어야 돼.
이건 또 무슨 날벼락..?
- 표정 보니까 진짜 몰랐나보네. 그러게 부모님이 말씀 하실 땐 귀 담아 들으라고 했잖아. 니가 오죽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이제 너한테 그런 말씀도 안 해주시냐 이 불효자야.
아아.. 불효자는 웁니다.. 진짜 내일부턴 이 자식이 우리집에 머문다고? 밑도 끝도 없이 들이 댈 지호성을
내가 무슨 수로 감당하냐고.
- 너희 부모님 내일부터 휴가여서 오붓한 여행 떠나신대.
엎친데 덮친 꼴이라더니 이 청천벽력은 또 뭐죠?
- 너 안 들어오거나 밤 늦게 나가면 바로 전화하라셨어. 일탈의 조짐이 보일때마다 용돈 깔거래. 그러니까 꿈 깨 주해성. 따박따박 용돈 받아야 할 거 아냐.
..이 새끼 사람 혈압 올리는데 상당한 재주가 있네?
- 용돈 같은 거 당분간 땡전 한 푼 못 받아도 집에 안 들어 갈 테니까 마음대로 해.
- 당분간이 아니라 평생, 네버엔딩 못 받을 거 같던데?
아 시발.
- ...좀 봐주라.
용돈 앞에 비굴해질 수밖에 없는 신분인 난 한 풀 꺾이고 말았는데,
지호성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너 하는 거 봐서. 한다. 뭐? 나 하는 거 봐서? 인간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하는 걸 봤으면 넌 입 닥치고 날 내버려 둬야 하거든?! 아 나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배신감 드네. 진지하게 고민하고 걱정한 내가 병신 오브 병신이다.
- 정 떨어질 거 같다.
- 이렇게 떨어질 정이었으면 진작 떨어졌을 거 같은데. 너도 혹하고 있는 건 맞잖아.
- 망상 좀 그만하라고.
- 그렇게 내가 진절머리나면 차라리 한 대 쳐. 왜 맨날 입으로만 욕 하면서 싫다 싫다 하는 건데? 너 주먹질 잘 하잖아. 정말 싫으면 쥐어패고 쌩까. 그러면 나도 미련 버릴게.
그 말에 힘입어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 주해성 너도 행동이 잘못 됐어. 난 너한테 좋아하는 거 같다고 고백까지 했잖아. 왜 입으로만 질색을 하고 행동은 그냥저냥 받아주고 있는 건데?
- 그게 내가 원해서 그런 거냐?! 우리 부모님이랑 너희 부모님이 워낙 친하시,
- 핑계 좀 대지마. 정말 싫었으면 부모님께도 얘기했을 거야. 어차피 너한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테니까. 근데 너 안 그랬잖아. 혹시나 나한테 피해가 생길까봐, 상처 받게 될까봐, 부모님 얼굴도 제대로 못 뵐까봐 그런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못 한 거 아냐?
존나 허당인 새끼가 이럴 땐 똘똘한 척 잘도 말 한다.
- 난 내일부터 더 열심히 들이댈 거야. 싫으면 언제든지 한 대 갈겨. 그럼 나도 알아먹을게.
지호성은 헷- 웃고선 순식간에 벙쪄있는 내 입술에 쪽 뽀뽀하더니,
- 내일 봐. 내 꿈 꿔!
마지막까지 알차게 주접을 떨고 들어가 버렸다.
..아니 시발 때려도 된다길래 주먹까지 쥐었는데 왜 니 말만 하고 토끼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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