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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8, 2023 43 tweets 7 min read Read on X
호텔 레스토랑 한강뷰 상석에 앉아
옆자리엔 꽃다발이랑 향수 올려둔 젠이사님
음방 꽂아주고 구멍가게 엔터사 빚 갚아준 게 누군데
감히 연락이 두절 돼? #젠런 ImageImage
평생 갈 일 없을거라 여겼던 백화점 1층 플라워샵이랑 향수 코너에 발 들인 것도 어색해 죽겠는데
감히 최실장 손에 걔한테 줄 선물 손 타게 하고 싶진 않아서
황런진한테 잘 어울릴만한 향수 손목에 걸고 걔 몸만한 꽃다발 드는 것도 벅찰 정도
이 나이 먹도록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정식으로 연애해보자고 말을 건네는 것조차 처음이라
괜히 한강뷰 보면서 생수만 몇 번을 리필함
분명 좋아하는 표정이겠지
무언가 받을 때면 광대가 올라가면서 품에 안는 습관이 있으니까
분명 꽃다발을 품에 안을 텐데
걔 표정 상상하니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네
약속된 시간 한참 지나서야 최실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난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전화해본다고 핸드폰 꺼내자마자
최실장 안절부절한 얼굴로 연락 두절됐다고 함
젠이사님 마감 시간까지 비어있는 앞자리 노려보면서 옆자리에 놓인 꽃다발 꽉 쥐고있을 듯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젠이사님 뒤따라간 최실장이 이사님 선물들은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어보니
잠깐 내려보던 시선 거두고
버려
한 마디 함
젠이사님 지금 자존심 스크래치 엄청 났음
감히 전화기를 꺼놔?
단지 옆에 두고싶은 마음 뿐이어서 시작한 스폰 관계
몇 달이 지나고 나니까 걔 좋아하는 마음 깨닫게 된 거지 그래서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던 첫 관계
새벽에 술취한 황런진이 데리러 와달라 전화해서 갔더니
눈물 뚝뚝 흘리면서 이사님은 내가 스폰받아서 우습냐고 셔츠 단추부터 풀었었음
서툰 손 잡아 채고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는 말에 기어코 입술부터 붙였던 당돌함은 대체 어디로 간 건데
이렇게 되어버려서 제 인생에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연애
황런진이랑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주기적으로 만나는 수요일 저녁 식사 자리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었어서 오늘도 걔 얼굴 볼 생각에 하루종일 기분이 들떠있었는데
끝까지 올라갔던 기분만큼 아래로 추락해버림
제게는 이득도 없는 스폰 관계라
그까짓 무명 가수 안 꽂아주면 그만이야
신경쓸 일 하나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봐도 꽃다발 건네기도 전에 거부당한 사실에 너무 화가 나네
아니 화나는 걸 떠나서 배신감이 좀 드네
처음에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고민하던 게 점점 원망으로 바뀌면서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거의 애증의 형태로 바뀌었을 듯
젠이사님 일거수일투족 전부 따라다니는 최실장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한참 고민하다가 이사님한테 아셔야 할 게 있다고 하면서 건네준 전단지 하나
사방에 스카치테이프 붙어있는 다 구겨진 전단지 건네받자마자 차 몰고 출발함
이유는 단순했음
얼굴 보고 이유라도 들어보려고
변두리 외곽 그것도 도로 한 가운데 제대로 된 표지판도 없어서 찾아오는 데 한참이나 걸리는 그런 곳
젠이사님 외제차 자갈밭 위에 세우자마자 시동도 안 끄고 구둣발부터 내렸다
오는 동안 열 뻗쳐서 셔츠 팔 걷어버린 탓에 허리 짚은 손 핏줄 솟은 건 덤
제멋대로 자란 잡초에다 주변엔 죄다 논 뿐이고
장식으로 달린 풍차 날개 허물어질 것 같은 흰페인트가 칠해진 나무판자 외벽
'7080 live cafe 풍경이 있는 집'
촌구석이 따로 없네
도망가서도 노래는 하고 싶다 이건가?
감상평은 이쯤 하고
5개쯤 되는 계단 올라갈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유리창 덧대진 문 열고 가게 내부 스윽 둘러봄
겉처럼 다 쓰러져가는 폐가는 아닌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인 건가
때마침 테이블 사이에 허리 숙이고 빗자루질하던 걔 뒷모습 보인다
"아직 영업시간 아닌..."
"잘 있었어?"

애초에 한 달만에 종적 들통날 거면 튀길 왜 튀어
조막만한 한국에서
놀란 애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손목부터 잡아올림
"가야지"
"저 못 가요 ..저 여기서 일해요"
"그래 내가 잘못 얘기했다"
"....."
"위약금 물어내러 가야지"

이런 말 하면 반박 못할 걸 알았지
이 말까진 하기 싫었거든
처음 만났을 때처럼 경계심 짙은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에 괜히 나쁜 마음이 들어버려서
아무 말 없이 가게 상호명 수놓아진 앞치마 입은 채로 문으로 끌고 나가려는데 카운터 옆 오래된 발 치고 나온 중년 남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번갈아본다
"누구세요?"
"사장님! 저 일해야 한다고 말씀 좀 해주세요"
"누구신데요 경찰에 신고합니다"

겁먹은 얼굴로 수화기부터 드는 가게 사장에 실소가 절로 나와버림
그리고 그 뒤로 벽에 붙여진 오래된 손글씨가 보인다
'라이브신청은 오후 7시부터 받습니다'
한 달이나 애타게 만들었으니 이정도 장난쯤은 괜찮지 않을까

"노래 들으러 왔어요 30분만 일찍 시작해주세요"
"아 그게..."
"팁 드릴게요"

잠시만요
백이면 백 넘어오는 눈웃음 짓고 차에서 지갑 가지고 다시 돌아온 젠이사님
들어오자마자 카운터에 수표 한 장 꺼내놓자마자 사장 눈빛부터 달라짐
저기 앉아서 기다리면 되나요?
벌써 몇 번 와본 단골고객마냥 무대 제일 앞자리에 다리 꼬고 앉아서 오래된 라이브카페 둘러봄
이런 덴 딱 질색인데
황급히 메뉴판 가지고 온 사장한테 아무거나 달라고 말함
아직 해 떨어지기 전이라 불 꺼놔도 그게 그거인 카페에 무대 조명 하나 켜지고
황런진 지쳐버린 표정으로 스탠드마이크 잡았음

"신청곡 받을게요"
"제가 아는 가수 닮았어요"
"... 신청곡 받을게요 손님"
"마음에 드는데 데이트할래요? 언제 끝나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데이트하자는 말에 황런진 고개 돌려버림
때마침 안주거리 가지고 나온 사장 셔츠 주머니에 수표 한 장 더 꽂아둠

"오늘 저 직원 퇴근시키세요"
가자 좋은말로 할 때
주어 없는 말이지만 황런진은 이사 뒤를 따라나갔음
사장한테 꾸벅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고
시동 걸려진 차에 타서 비척이며 걸어오는 모습 창틀에 팔 기댄 채로 보다가
조수석 문 열고 앉은 황런진 쳐다도 안 보고 여기 온 목적
왜 떠났는지 이유를 묻기로 한다
"말해"
"...."
"왜 떠났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는데 이렇게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걸로는 부족한가 봐
정적 가득한 분위기에 답 기다리는 사람은 손등에 핏줄 솟을 정도로 꾹 눌러참고 있는데
답해야 할 사람은 입술 꼭 다물고 고개 돌려서 창문 밖에 시선 둔 채로 말할 생각 없다는 행동임
젠이사님 그 동그란 뒷통수 보면서 차 시동 거니까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 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와

"왜? 납치라도 할까봐?"
"..그러실 거예요?"
"해도 상관없지 않나? 위약금 다 물어낼 수 있어? 납치당하는 걸로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
"...."
황런진은 할 말이 없지
애초에 계약된 사이니까
무작정 계약해지 통보하고 연락 두절된 채로 도망왔으니까 마땅히 결과를 책임져야 할 게 맞는데
앞뒤 다 따져봐도 제가 백 번이나 더 잘못했잖아
차분히 생각해봐도 자신이 지불할만큼의 수준을 넘어선 거라 가만히 안전벨트 채울 듯
이사님 하고싶은대로 마음껏 하라는 뜻이기도 해서 기분 오묘해진다
분명 순순히 잡혀 들어왔는데 기만당한 기분이 들어서
고작 연예계 일이나 하며 노래부르는 이 남자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젠이사님 홧김에 차 돌려서 근처 한바퀴 돌고 다시 돌아옴
눈 질끈 감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티는 안 내도 속으로 떨고 있던 중에 도착한 곳이 출발한 바로 그 곳이어서 조금 어안이 벙벙했을 듯
다 쓰러져가는 풍차모양 건물을 눈 깜빡이며 바라보다가 고개 돌려 이사님 바라보니 처음 그때처럼 아직 숨 고르는 채로 앞만 보고 있잖아
...이사님

"보다시피 내가 무척 기분이 더럽거든"
"...."
"선택지는 두 개야
내가 다시 잡으러 올까 아니면 순순히 잡힐래"
"..제가 이사님 있는 곳으로 갈게요"
시선 한 번 안 마주치고 내리라 하는 이사님 말에 고개 꾸벅 숙이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체 없이 떠나는 차 실루엣 사라질 때까지 보다가
가게로 들어서니 안에서 다 지켜보고 있던 사장이 대체 무슨 일이냐며 캐묻네
사장님 저 내일 못 나올 것 같아요
이미 한달치 매출 몇분만에 받아버린 사장으로서는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볼일 보고 오라며 선심 쓰듯이 보내놓고 저 손님 또 언제 오냐고 물어봄
황런진 그냥 기운없는 웃음으로 대답해주곤 짐 챙겨서 방으로 돌아옴
조막만한 방 침대에 앉아서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해보기로 함
한 달 사이 엔터사는 ㅇㅇ그룹 계열사에 인수되었다는 기사를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어봄
..사장님은 어떻게 되셨을까
갑자기 계약 해지해버려서 회사 운영을 못하게 된 걸까?
지난 한달 동안 계속 그랬지만 현실을 맞이하고 보니 애써 외면했던 죄책감이 또 몰려들어왔음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난 뒤 새벽 고속버스 타고 한달만에 다시 서울 올라와서 도착한 곳은 딱 한 번 와봤던 로비
처음 스폰받을 때 인사차 사장이 데리고 갔던 그곳에 다시 발 붙여보는 거라 속이 좀 울렁거릴만도 하겠지
제 발로 찾아온 황런진은 이사님 호출로 왔다고 프론트에 전달하니
가드 몇 명이서 뒷문으로 안내했음
처음과 똑같이 외부에는 발설되면 안 되는 상황은 하나도 안 바뀌었는데 제 감정 하나만 바뀌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때와 똑같이 응접실에서 마시지도 않는 차 앞에 두고 이사님 기다리는 것도 변한 게 없음
친절한 얼굴로 안내하는 비서를 통해 두터운 나무 문을 열고
몇달 전과 지금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무감한 표정을 한 이사님을 조우하게 되자마자 꾹꾹 숨겨왔던 감정이 터져버렸을 듯

"...이사님
제가 다 갚을게요 그런데 이사님 얼굴은 못 보겠어요"
꼭꼭 숨겨야만 하는 마음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잖아
조금이라도 얼굴을 마주보면 같은 공간에 있으면 금방 들켜버릴 게 뻔해서
왜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많이 자책도 해보았겠지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감정 섞인 말은 하지 말자 후회할 말은 하지 말자고
수백번은 더 다짐해버렸으면서
감정은 섞이지 않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보다 더할 표정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황런진 말에 이사님 속 또 끓어오르는 거 모르고
기껏 신사적으로 대해줬더니 기어오르네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젠이사님 푹 숙인 동그란 머리 내려다 보면서
어떻게 해야 순순히 반항 안 할지 계산하고 있잖아
넌 착하게 대해주면 안 되겠구나 하고 결론 내린다

"어떻게 갚을 건데?"
"...."
"말을 해 봐 몸으로 갚을 거야?"
"그렇게 하면 한번에 얼마 깎아주실 거예요?"
"웃기네"
이제는 제법 당돌하게 눈 하나 안 피하고 올려다보는 게 많이 고까워보이겠지
넌 내가 스폰한다 했을 때 오로지 몸만 보고 스폰한다 하는 줄 알았겠구나
그래서 술취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먼저 입술 붙여놓고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도망가버렸던 거구나
남들처럼 되기는 싫어서
그저 기회가 없던 황런진에게 기회만 주고 싶었을 뿐인 마음이 더럽혀졌다 생각할 듯
이미 첫관계를 가졌던 것에서부터 목적이 흐려졌지만 연인이 되면 불건전한 관계쯤이야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가졌었음
한 때는
그렇게 몸이 좋아?
그렇게 안기고 싶어 안달이 나?
그럼 뜻대로 해줄게
이미 어긋난 마음을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돌아와버려서
지지 않고 노려보는 눈빛을 감당하기엔 젠이사님 조금은 많이 진심이었잖아
배려없이 책상 위에 눕혀버리고 바르작거리는 어깨 양 손으로 지긋이 눌러낸 이사님
떨어진 필기구나 서류더미들은 관심에도 없지
로지 빨개진 볼로 억울해 죽겠는 얼굴을 하고 있는 황런진을 함락시키고 싶을 뿐인데

"억울해?"
"아니요"
"그럼 표정 풀어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 같잖아"
"..상관 없잖아요"
"소리 안 내는 게 좋을 거야 한 번으로 끝내고 싶으면"
그 말에 제 셔츠 말아올리며 소리 안 나가게 이로 물어버릴 듯
하세요
끝까지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알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다시는 그런 말 못 꺼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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