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죽습니다.
누군가는 살아야하죠.
너무나 잔인한 말입니다.
허나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선택해야만 합니다.
살 환자를 선별해야하죠.
여기서 의료진은 한 병에 걸립니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입니다.
이를 <도덕적 부상>이라 부릅니다.
트리아지란 것이 있습니다.
중증도 분류라고도 하는데,
재난 시, 중증도에 따라 응급처치와 환자이송의 우선순위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METTAG법에 따라
환자는 색상과 함께 4단계로 분류됩니다.
녹색(비응급), 황색(응급), 적색(긴급),
그리고 흑색(사망,생존불능)입니다.
재난 구역은
직접적으로 재난이 발생하여 위험과 오염이 상존하는 Hot zone(위험 지역),
잠재적 위험이 존재하는 Warm zone(준위험 지역)
안전한 구역으로 구조와 구호가 이루어지고 인원이 조직화되는 Cold zone(안정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Hot zone에선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환자의 처치는 제한되죠.
때문에 MASS 중증도 분류를 사용합니다.
Move : 사람을 이동시키고,
Assess : 남은 환자에게 접근하여
Sort : ID-ME 분류로 환자를 분류한 뒤,
Send : 긴급환자부터 이송을 시작합니다.
ID-ME에는 Dead가 포함되어있죠.
Warm zone에선 환자는 START 중증도 분류법이 SALT 다중손상 분류법에 따라 환자를 분류합니다.
SALT법은 동시에 다수의 환자를 분류하는 방법입니다.
확성기를 사용하기도 하죠.
START법은 8살 이상의 부상자를 알고리즘을 통해 평가하는 것입니다.
8살 이하의 부상자는 JumpSTART법을 사용하죠.
재난 상황 등을 묘사한 매체에서
구급대원이 환자에게 '걸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트리아지에 의한 행동입니다.
이 과정은 알고리즘에 의거해 '30초에서 60초' 이내에 이루어져야합니다.
SALT 다중손상 분류법과 START 중증도 분류법으로 분류된 환자에겐 녹색에서 흑색의 태그가 부착됩니다.
Cold zone에선 SAVE 분류법이 사용됩니다.
여기서 2차 평가와 재분류를 통해 환자의 이송 우선순위를 정하게 됩니다.
응급 환자가 집중되어 치료가 지연될 때 사용되는 분류법으로
GCS 척도, ISS 척도, AVQU 척도, TBSA 등의 여러 의료 지표를 종합하여 환자를 진단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재난의료지원팀(DMAT)이나 특수구조대, 응급구조사 등의 요원들은 판단을 해야합니다.
'이 환자는 기대 환자인가?'를 말이죠.
ID-ME 분류법의 E는
지연(Expectant)입니다.
지연은 사망자만을 가려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 직전, 혹은 생존 가능성이 없는 사람도 포합됩니다.
이후 응급 의료센터에서 3차 중증도 분류가 시행되며,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입구에서 4차 중증도 분류가 시행됩니다.
응급 상황에서 환자는 2회에서 4회의 중증도 분류 후
이송, 유도됩니다.
누군가는 병원 로비, 누군가는 응급실이죠.
그리고 생존 가능성이 없는 지연 환자는 죽습니다.
여기서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소생거부DNR를 요청을 하면,
의료진은 또다시 선택의 가로에 놓입니다.
DNR을 요청하면 의료진은 환자를 살릴 수 없게됩니다.
심폐소생술 금지,
말 그대로 아무런 응급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환자는 회생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이죠.
부상이 너무 심해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은 오히려 고통이 됩니다.
심정지 후 시간이 오래 경과되었다면 심폐소생술 제공은 의미가 없죠.
하지만 심폐소생을 거부한 사람은 생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치료를 거부한 것이죠.
그렇담 의사의 눈 앞에서 환자가 죽는 것이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어윈 웨이드 기술병장은 기관총에 피격당한 뒤,
스스로 모르핀 투여를 부탁합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얼핏보면 죽음을 선택하는 권리처럼 보입니다.
숭고함이 느껴질 지 모르죠.
허나 의료진 입장에선 살 수 있는 환자를 포기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2005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뉴올리언스의 호수 제방이 붕괴되면서,
메모리얼 병원은 고립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 1층은 아예 물에 잠겨버렸죠.
홍수가 잦아들고 생존자가 모두 구조된 후,
메모리얼 병원에 진입한 구조대가 예배당의 문을 열자
그곳엔 45구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이 시신들의 가슴엔 모두 3이란 숫자가 적혀있었습니다.
부검 이후,
시신에선 치사량의 모르핀과 미다졸람이 발견됩니다.
환자들은 모두 안락사된 것이었죠.
병원은 고립되어 전기와 수도, 통신마저 끊긴 상황이었고,
의약품과 식량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비상발전기 전원이 나가죠.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아 병원 내부 온도는 40도 이상으로 치오르기도 했고,
의료기기는 멈췄습니다.
병원엔 수백명의 사람이 있었고요.
결국 의료진들은 트리아지를 시행한 뒤,
소생가능성이 없다 판단되는 34명의 중환자들에게 약물을 투여합니다.
<재난, 그 이후>에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죠.
허리케인 이후 메모리얼 병원에선 몇번의 구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가 광범위하고, 병원의 구조 상 전원을 구조할 순 없었습니다.
1차 구조에선 DNR을 요청한 사람 이외 임산부나 중환자가 우선 구조됩니다.
허나
라이프케어라는 외부업체가 운영하던 7층의 중환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2차 구조가 이어질 때까지
의식이 없는 중환자와 DNR 요청자를 3급 환자에겐 모르핀과 미다졸람이 투여되었습니다.
산발적으로 구조작업 와중에도 무더위와 비위생적인 상황에 상태는 악화되고 있었고,
중환자들의 생존가능성은 지속적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7층에서 안락사를 시행했죠.
이는 안락사 논쟁의 재점화와 함께
의료진들에 대한 비난과 논란을 불러옵니다.
2급 살인죄로 기소된 의료진은 2007년 안락사가 불가피했다고 판단하여 사건은 기각됩니다.
허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집단 안락사 사건은 중증도 분류의 존재의의를 적나라할 정도로 잘 보여줍니다.
이미 사망한 사람을 옮기는 건 무의미했을 겁니다.
살아있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옮겨야겠죠.
때문에 1차 구조에서 헬리콥터는 신생아 중환자, 임산부, 중환자를 우선으로 구조했습니다.
이 과정에도 트리아지는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2차 구조가 도달하기까지 또다시 중증도 분류를 하였죠.
메모리얼 병원에서 이루어진 안락사를 고백한 건
해당 병원의 의사였던 브라이언트 킹 박사였습니다.
이는 트리아지가 단순히 효율과 생존자를 늘리는 것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브라이언트 킹 박사는 안락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양심 고백을 한 것이었습니다.
응급 상황에서 환자에게 검은 태그를 부착하는 건,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DNR을 요청한 환자를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이런 상황에서 의료진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르거나,
이에 반하는 행동을 막지 못한 것에 도덕적 부상을 겪습니다.
코로나 초기,
응급 서비스 포화로 병원이 환자로 가득 찼을 때 의료진은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어느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어느 환자에게 산소호흡기를 줄지를 말입니다.
이를 '가장 두려운 일'이라 말한 간호사도 있었죠.
트리아지는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도덕적 부상을 입었죠.
이들은 죽음을 보는 것에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응급상황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을 포기하게끔 만듭니다.
최고의 의료 기기가 병원에 있고,
최고의 명의가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사람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직접 사망자를 정해야했습니다.
도덕적 부상은 개인의 윤리관을 파괴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응급상황은 의료진의 육체적, 정신적 휴식마저 앗아가죠.
결국 몸도 마음도 병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비단 이런 일은 재난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응급치료 우선순위는 KTAS라고하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도구를 통해 책정됩니다.
환자가 몰려들게되면,
먼저 온 환자,
그 중 경증의 환자는 우선순위가 미루어집니다.
그리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환자가 결국 사망하는 일도 존재합니다.
이에 의사는 트라우마를 호소합니다.
10년도 넘은 인턴시절, 응급실에서 떠나보낸 환자를 기억하며 고통받는 의사들도 존재하죠.
의료진은 비난받습니다.
살릴 수 있던 이를 살리지 않은 사신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자신을 파괴합니다.
살릴 수 있던 사람을 살리지 못한 무능력자라고 말입니다.
때문에 트리아지와 이들의 상처를 알아야합니다.
살리는 것을 업으로 한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정해야만하는 고통을 말이죠.
<헬로우 블랙잭>이란 의료 만화의 소와과 편엔
한 의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 의사를 악당이라 생각합니다.
응급환자를 거부하기 때문이죠.
허나 그는 말합니다.
그 아이를 받아줘서,
주인공은 살릴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받기를 거부한 아이가 사망했단 소식에 주인공이 묻습니다.
어째서 소아과를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답하죠.
자신이 아니면 누가하겠냐고요.
이상에 가득 찬 의사는 사람을 죽인다고 말합니다.
모든 이상을 포기하고 눈 앞의 환자만을 묵묵히 진료해나가죠.
그 시간에도 누군간 죽습니다.
세상엔
그런 아이러니한 삶과 그 삶을 사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동정심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사람과
동정심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생명을 놓아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고통 받을 겁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처럼 말이죠.
그리고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품을 준비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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