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이야기로 콜라의 발명 계기 중 하나는 모르핀 중독이었습니다. 발명가 존 스미스 펨버튼은 남북전쟁 참전 군인 출신으로 이 전쟁에서 모르핀에 중독됐는데 이를 대체할 약을 찾다 코카인 성분이 함유된 콜라(의 전신)를 개발합니다. 결과적으로, 둘 다 중독된 바람이 됐습니다.
이는 펨버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까지만 하더라도 코카인이 모르핀, 아편 중독의 치료 수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도 코카인을 모르핀, 아편 중독 치료제로 보았습니다.) 펨버튼은 모르핀 중독을 감당하느라 경제적으로 파산, 이 음료의 레시피와 권리를 판매하게 됩니다.
슬픈 후일담이 있는데, 아들 찰리 펨버튼입니다. 사실 존 펨버튼은 이 음료가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이 음료를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당장의 현금을 원했고, 존 펨버튼은 아들에게 현금을 주기 위해 레시피와 권리를 팔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코카콜라’란 이름의-
(※ 일단 지금 제가 밤샘과 카페인 각성으로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작성되고 있는 타래라는 걸 미리 밝히고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현재 저는 타이핑을 하고 있는 손가락에 감각이 없습니다.)
2005년, 『닥터 후』가 가장 의식했던 작품은 『해리 포터』였습니다. 이는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직접 밝힌 것인데, 『해리 포터』의 시대에 누가 『닥터 후』 같은 작품에 관심을 가지겠느냐며 닥터 후의 작가가 되는 걸 고사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닥터 후(2005~)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프로덕션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타이틀을 가진 다른 드라마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 시기 모두 <닥터 후>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요. 닥터 후 내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Same Software, Different Hardware!”입니다.
(1) 러셀 후 (2005-2009)
닥터 후를 부활시키고 영국 드라마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는 시기입니다. 쇼러너 러셀 T 데이비스는 이례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던 작가였는데, 그는 영국 중산층의 억눌린 퀴어적 욕망을 다루는 작품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SF 드라마를 발표해 온 작가였습니다.
영국 드라마의 부흥과 쇠퇴에 관한 제 생각과 맞닿아있는 글. 타래에서 셜록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사실 이 진단의 연장선상으로 충분히 논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영국 드라마는 미국적 스케일을 욕망하기 시작하는 순간 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셜록이 그랬거든요.
"아무리 스케일을 키워봤자 영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자그맣고 하찮은 이야기"라는 자각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 저항이 <셜록> 후기 시즌에서 벌어진 일. <셜록>을 <브레이킹 배드>처럼 만들고자 했고, 개인의 이야기가 곧 시대의 이야기가 되는, 그 미국적 자신감을 흉내 내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셜록>의 성공은 미국적 스케일이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셜록은 본질적으로 영국적 소시민성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위대한 건 세계를 구해서가 아니라 지역(주로 런던)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