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지금 제가 밤샘과 카페인 각성으로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작성되고 있는 타래라는 걸 미리 밝히고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현재 저는 타이핑을 하고 있는 손가락에 감각이 없습니다.)
2005년, 『닥터 후』가 가장 의식했던 작품은 『해리 포터』였습니다. 이는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직접 밝힌 것인데, 『해리 포터』의 시대에 누가 『닥터 후』 같은 작품에 관심을 가지겠느냐며 닥터 후의 작가가 되는 걸 고사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닥터 후(2005~)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프로덕션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타이틀을 가진 다른 드라마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 시기 모두 <닥터 후>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요. 닥터 후 내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Same Software, Different Hardware!”입니다.
(1) 러셀 후 (2005-2009)
닥터 후를 부활시키고 영국 드라마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는 시기입니다. 쇼러너 러셀 T 데이비스는 이례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던 작가였는데, 그는 영국 중산층의 억눌린 퀴어적 욕망을 다루는 작품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SF 드라마를 발표해 온 작가였습니다.
영국 드라마의 부흥과 쇠퇴에 관한 제 생각과 맞닿아있는 글. 타래에서 셜록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사실 이 진단의 연장선상으로 충분히 논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영국 드라마는 미국적 스케일을 욕망하기 시작하는 순간 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셜록이 그랬거든요.
"아무리 스케일을 키워봤자 영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자그맣고 하찮은 이야기"라는 자각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 저항이 <셜록> 후기 시즌에서 벌어진 일. <셜록>을 <브레이킹 배드>처럼 만들고자 했고, 개인의 이야기가 곧 시대의 이야기가 되는, 그 미국적 자신감을 흉내 내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셜록>의 성공은 미국적 스케일이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셜록은 본질적으로 영국적 소시민성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위대한 건 세계를 구해서가 아니라 지역(주로 런던)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문이 돌고 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좀 멉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터미네이터2>로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헐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하나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미 90년대 시점에서 더 얻을 명성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아진 상태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심해 잠수함 탐험을 좋아했고, 영화를 명분으로 심해 잠수함 탐험을 하기 위해 <타이타닉>을 찍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영화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론의 평소 영화 장르와는 동떨어진 로맨스 영화인 데다, 소재도 관심이 생기지 않는 작품이었거든요.
게다가 <워터월드>라는 영화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한 직후였기 때문에 ‘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폭망한다’는 인식이 생겨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타이타닉도 워터월드처럼 참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