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불교의 절은 살림이 가난했습니다. 70년대의 어느 가을 ‘해인사’에서 유달리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져서 스님들의 식사량이 늘었다고 해요. 보름 후 공양간에서 비명 소리가 터졌는데, 누군가 김치에 소금을 뿌리고 간 것이었습니다. 곧 범인이 밝혀지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에서 ‘전쟁’에 대한 인식이 지금까지 달랐던 탓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에서 전쟁은 명예로운 일이었으며 남성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남자가 전장에 나서지 않으면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풍조도 있었고요. (이어서)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은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전쟁에 대한 이런 인식을 근본부터 바꿔버립니다. 산업화된 대량 살상이 등장했고, 독가스, 참호전과 같은 전쟁의 새로운 양상은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전쟁은 명예롭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위 일화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과도기적 양상은 초기 영화에서도 나타난단 건데 초기 영화를 보다 보면 남자가 죽음이 두려워 전쟁에 참전을 거부하자 가족과 연인이 남자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남자답지 못하다고 꾸짖는 장면이 나와요.
〈크로니클〉의 성공으로 크로니클 제작진들은 헐리우드에서 가장 기대 받는 신예들로 성장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조쉬 트랭크는 이 작품 하나로 〈판타스틱 4〉, 〈스타워즈〉 감독직에 오르며 순식간에 메이저 감독의 반열에 올랐고, 〈판4스틱〉으로 몰락합니다. (덩달아 〈스타워즈〉도 짤렸죠.)
맥스 랜디스는 조쉬 트랭크보다는 안정적으로 업계에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에서 맥스 랜디스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2017)의 제작, 각본을 맡기는가 하면,
원트윗을 작성하신 분의 말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와 안노 히데아키는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른 거지, 성실하다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실함과 대비되는 진짜 라이벌(?)은 따로 있었는데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평생의 파트너인 ‘다카하타 이사오’입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강머리 앤>, <반딧불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 걸출한 작품들을 남기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발전에도 엄청나게 공헌한 다카하타 이사오였지만, 그의 유일한 약점은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나머지 상당히 게을렀다는 겁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 연대표만 살펴 보아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생산성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새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없는 데다가 일단 일에 들어가면 완벽주의 경향까지 강해져서 작업 속도가 엄청 느린 편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이야기 할 작품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드립니다. 이 타래는 특성상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아직 작품을 보지 않았고 앞으로 볼 의향이 있는 분들은 타래를 뮤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작배경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작품에 앞서 그가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은퇴를 선언하게 된 배경을 하나 말씀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은퇴를 선언하게 된 것은 〈바람이 분다〉를 만들면서 기력을 모두 소진해버린 탓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73살이 되면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73살에 돌아가셨거든요. 이는 추측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벼랑 위의 포뇨〉를 만들 때부터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불러다 종종 불러다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하게 사는 게 목적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니. 저는 그 말이 정말 납득이 안 가요. 정말로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평소에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보통 그렇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인생에서 기분 좋은 일도 별로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런 걸 인생의 목적으로 가지며 살아간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있잖아요. 비행기의 설계자라던가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하는 일이 선이고,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시대의 풍파 안에서는 전쟁의 앞잡이가 되거든요.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상처 받는 일은 생겨요. 인생은 그 자체로 저주받은 꿈입니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꿈을 꾸지만, 절대 의도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죠. 인간의 꿈은 아름답지만 전부 저주받은 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