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가둥 Profile picture
Jun 17, 2021 251 tweets >60 min read Read on X
그냥 못하게 놔둘걸. 왜 잘하라고 했지. 시간이 지날수록 섫의 애정을 걸러낼 수 있는 거름망이 얇아지고 있었음. 그걸 뚫고 들어온 예쁜 마음들이 출발선에 서있는 뽀의 등을 건드리겠지. 툭툭. 아예 밀어버리지는 않지만 재촉을 해. 이제 가고싶지 않냐고. 제 앞에 그어진 선을 내다보는 뽀.
넘어도 될까. 나 진짜 이거 가도 되는건가. 이미 망설임의 해는 저물어서 주변은 어둑했고, 남은건 한발자국 뿐이었음. 지금 뽀를 붙들고 있는건 처음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일것 같지. 한번도 걸어본적 없는 길, 내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세상, 처음으로 동성에게 품어본 마음. 그 모든것.
그 모든걸 단숨에 지워버릴만한 확신이 필요했음. 어느새 이 줄다리기에서 줄을 놓을 선택지는 사라져버린 뽀. 이제 뽀 마음에도 결론은 같아. 그 결론이 오늘일지, 한달 후 일지만 남았을뿐. 복잡한 표정으로 손등에 얹어진 섫 손만 내려다보는 뽀. 나도 닿고 싶은데. 쌤이랑 나란히 서고 싶은데.
섫 눈에는 그 생각들이 다 보일듯. 이럴까봐 말 안하려고 한건데. 혼자 이렇게 복잡해질까봐. 섫은 고백했다가 차인 그 순간에 기대가 바닥을 쳤었음. 그래서 지금 이것도 많이 왔다고 생각해서 뽀를 굳이 재촉하고 싶지 않았음. 물론 빨리 와주면 좋겠지만, 기다림의 시간마저 사랑해버린 섫이라서.
짝사랑이 그런거잖아.
사랑하고 사랑하다,
너를 사랑하는
모든 순간을 사랑해버리는거.
내가 지금 그래.

너를 기다리는 일,
너를 바라보는 시선,
너를 담아내는 시간.
그 모든것에 마음을 써.
답을 내놓지 못하는 너를 보고도 서운함보다는 예쁘다는 생각을 해.
내가 지금 이래.
그러니까 정말 부담갖지 않아도 된다고. 그 진심을 눌러 담아 뽀 손 한번 꾹 쥐어주고 떨어지는 섫. 다시 남아있는 면 먹기 시작하는데 뽀 시선은 아직도 제 손에 머물고 있겠지. 멀어진 손길이 아쉬워서, 아까 뒤집어서 맞잡지 않은게 속상해져서. 괜히 테이블 아래로 손 숨기고 젓가락 드는 뽀.
썸타는동안 한번씩 이렇게 휘청이는 순간들이 많았을듯. 섫이 무거운 애정을 가벼운 행동으로 보여줄 때. 그 때마다 뽀는 조금씩 출발선에 가까워졌고, 그게 어느새 진짜 코앞이었음. 썸 타자고 들이 받을 때만 해도 출발선이 희미했는데. 언제 이렇게 선명해져서 제 발 앞에 그려진건지.
물을 계속 마시는데도 목이 타는 뽀. 그리고 뽀가 원샷해서 들이킬 때마다 물 새로 채워주는 섫. 진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래. 뽀는 섫이 자꾸 이러니까 감정이 치닫는데 풀리는건 없고 답답해서 좀 울고 싶어짐. 왜 자꾸 채워줘요. 나도 바닥을 봐야 숨이라도 쉴텐데, 왜 자꾸 담아주냐고.
잠겨 죽일려고 이러지.
나를 기어이 바꾸려고 이러지.
육지에서만 살던 나를
애정의 바다에 가둬놓고
결국 그 안에서 살게 만들려고 이러지.

처음엔 제 몸을 감싸는 물이 겪어본적
없는 느낌이라 무섭고 혼란스러웠음.
제가 살던 육지엔 바다가 없었어서.
그래서 도망쳤었지. 저 멀리로.
그렇게 평소처럼 육지에서 살 수 있을줄 알았는데. 자꾸 바다에 잠겨가던 섫이 떠올라서. 그 느낌이 잊혀지질 않아서. 결국 다시 제 발로 바다로 뛰어들었고, 이제 목끝까지 따뜻한 온기가 찰랑거렸음. 그 와중에 섫은 끊임없이 물을 부어주며 바다에서 숨쉬는 법을 알려줬음.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차라리 물 속으로 잡아끌지.
그럼 놀라서 도망갔을텐데.
숨쉬는 법을 알려주지나 말지.
그럼 육지에서 하듯 숨을 쉬다
물을 잔뜩 먹고 도망갔을텐데.
왜 바다에서 살던 사람이
육지에 사는 나를 좋아해서,
바짝 마른 입술을 하고도 좋다고 웃어요.
....껴안고 바다에 잠기고 싶어지잖아.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사랑을 받는다는게. 생각할 수록 섫의 마음이 너무 벅차서 울컥하는 뽀. 목이 타는데 더이상 물은 못마실듯. 이제 물통에는 물이 없었고, 여기서 또 비우면 섫은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서 새 물통을 가져올것 같아서. 그게 안되면 자기 물잔이라도 밀어줄것 같아서.
말없이 남은 쌀국수 비워내는 뽀. 섫도 그 속도에 맞춰서 조금씩 면 집어가며 먹겠지. 한참 말이 없던 둘이 다시 대화가 트인건 계산대 앞에서 였음.

"아, 이번엔 제가 낼거에요"
"왜요?"
"전시회 쌤이 예매했잖아요"
"미용실은 지엱쌤이 냈는데"
"..장난해요? 제 머리니까 당연히 제가 내죠"
"저는 2시간 동안 쌤 관람했는데요"
"..네?"
"예쁜장면 무료로 봤으니까 제가 살게요"
"어떻게 눈 한번 깜빡 안하고 이런 말을 하지"
"아무래도 진심이니까요"
"그래도 안돼요. 빌지 주세요"
"없어요"
"쌤 손에 든건 뭔데요"
"제 밥값이요"
"거기 제 밥값도 있거든요?"
"..계산해주세요"
"아니!!"
결국 먼저 카드 꺼낸 섫이 이겼음. 분한지 째려보면서 가게 빠져나오는 뽀. 섫은 가뿐하게 나와서 자연스럽게 뽀한테 손 내밀겠지. 손바닥이 위로 가게, 가볍게. 처음이 어려웠지 손잡는건 익숙해져서 섫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음.

"손 줄래요?"

여기까진 네가 허락했으니까.
나도 욕심낼거야.
섫은 뽀가 가지 않은 길까지는 절대 욕심부리지 않지만 뽀가 넘어간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듯. 뺏어가놓고 손 달라고 하는 섫이 얄미운데 또 안잡기는 싫은 뽀. 노려보다가 딱 손가락 두개만 잡음.

"이것만 잡을래요"

대충 아무렇게나 잡고 손 내리는데 섫 시선이 계속 그걸 따라감.
너는 자꾸 왜 이러지. 나 진짜 힘든데.
약지랑 중지만 꼭 붙잡고 있는 뽀 손 내려다보면서 속으로 김수한무 외우는 섫. 일부러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등이 화끈거려서 얼른 시선 떼버리는 섫. 뽀는 손 다 안줬다는 만족감에 가만히 붙잡고 있다가 점점 쥐고있는 손가락이 뜨거워져서 돌아봄.
"쌤 많이 더워.."
"....."
"보이네요"

표정은 평소랑 똑같은데 얼굴색이 전혀 다름. 목이랑 귀 빨개진거 보고 무슨일이 있었나 싶은 뽀.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모르겠음. 왜 그러냐고 묻고 싶은데 그럼 또 아까처럼 섫이 너무 잘할것 같고.
생각하느라고 버릇처럼 쥐고있는 섫 손가락 꾹꾹 누르는 뽀. 그거에 완전히 비상등 켜지는 섫. 손가락 비틀어서 빼내고 깍지껴서 잡아버림.

"뭐에요!"
"뭐가요"
"두개만 잡을건데"
"..안돼요"
"그럼 세개 잡을래요"
"..그건 더 안돼요"

안된다고 고개 젓는게 단호해보여서 입술만 삐죽이고 마는 뽀.
섫은 앞으로 조심할게 늘었다고 하나 체크하면서 열오른거 가라앉히겠지. 차까지 와서는 또 아까처럼 한바퀴 빙 돌아서 조수석에 데려다주는 섫. 뽀는 그게 또 웃겼는지 하트입 보여주면서 차에 타고, 섫도 은은하게 웃으면서 차에 오름. 이미 고정 되어있는 뽀네 집주소 찍고 출발하는 섨.
섫 혼자 엄한 생각 한거라 집가는 차 안 분위기는 평소랑 비슷할듯. 뽀가 생각나는대로 종알종알 떠들면 섫이 짧게 대답하는 정도. 섫은 평소랑 같은 뽀 목소리 들으면서 뜨거워진 마음을 미지근하게 데우겠지. 근데 이상하게 집가는 길은 늘 너무 짧기만 함. 아쉬워서 발걸음이 무거워지게.
집에 도착했는데도 가방만 딸깍이는 뽀. 섫도 집에 다 왔다는말 굳이 안함. 시동도 안 끄고 있음. 뽀가 뭐라고 할지, 어디가자고 할지 모르니까. 뭐든 바로 할 수 있게. 뽀는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고, 처음 주말에 만나는거라 좀 더 같이 있고 싶음. 잠깐 생각하다가 결국 말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어디 갈까요. 베슷킨? 카페?"
"아니 차 말고.."
"어디가려고"
"걸어서 가요"
"근처에 갈만 한데가,"
"그냥 걸어요. 편의점 가도 되니까"
"..응?"
"..손잡고 산책 하자고요"
"....."
"그래서어..가요 안가요"
"가요. 내려요"
다른 핑계 대려고 했더니 바로 막혀버려서 솔직하게 얘기하는 뽀. 그 말 듣자마자 섫 입술 시원하게 호선 그리는거 보니까 이래서 썸은 솔직해야 되는건가 싶음. 이제 가로등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에서 손잡고 마냥 걷고있는 둘. 특별한걸 하는건 아니야. 그냥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간지럽게 나누겠지.
그러다가 중간에 편의점 나오니까 잠깐 들어가자고 하는 뽀. 섫은 아이스크림이 진짜 먹고 싶나 하고 같이 들어가는데 오자마자 뽀는 자기 가게 온것마냥 손 뻗더니 웃으면서 그래.

"쌤 필요한거 다 골라요"
"..나 배부른데요"
"그럼 내일 먹고싶을거 골라요"
"....."
"3만원 이하 나오면 탈락이에요" Image
뽀 아무래도 오늘 하루종일 얻어먹은게 신경쓰였음. 뭐라도 안해주면 마음이 불편해서. 자취하면서 맨날 그 편의점만 간다고 하던 섫 말이 떠올라서 보자마자 들어와버렸음. 섫 손에 작은 바구니 쥐어주고 어깨 으쓱하는 뽀. 섫이 괜찮다고 다시 말하려고 하는데 화난 토끼 변신해서 막음.
감시라도 하는것마냥 졸졸 쫓아다니면서 섫이 집어 드는거 한번씩 다시 집어보는 뽀. 이런 빵 좋아하는구나. 다음에 먹어봐야지. 이 과자 좋아하나? 내 입맛에는 별로던데. 이런 향을 좋아하는구나. 혅정쌤 같
답다. 그렇게 따라다니는게 진짜 아기새 같아서 맥주 하나 집어들면서 웃는 섫.
"귀여워"

또 필터없이 그런말을 해. 가만히 따라오던 뽀 숨이 턱 막히게. 뽀가 놀라서 쳐다보면 맥주 살짝 흔들어 보여주면서 말하는 섫.

"맥주 사이즈 귀엽죠"

그럼 장난인줄 알면서도 괜히 서운해지는 뽀. 순간 표정 굳어지는데 섫은 그거 보고 손등에 숨어서 웃음.
그 휘어지는 눈이 그때마저도 참 다정해서 꼬박꼬박 기억에 담고있는 뽀. 섫은 웃음기 머금은채로 냉장고 닫으면서 말함.

"장난이에요"
"됐거든요"
"쌤 귀여워서 그랬어요"
"빨리 물건이나 고르세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귀여워"
"...얼마 남았어요?"

입꼬리 올라가는거봐.
너무 귀엽잖아.
그 순간에는 진짜 뽀가 선생님이 아니라 다섯살 연하처럼 보여서 마음이 헐거워진 섫. 가까이 가서 눈도 마주치고, 뽀 머리 쓰담쓰담 해주고 다른 물건 채우러 지나감. 섫은 무의식에 한거라 별 생각없는데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뽀는 순간 가까워졌던 섫만 떠올리는 중. 심장이 터질것처럼 뜀.
섫은 자유롭게 편의점을 돌아다니고, 뽀는 그 자리에 멈춰있음. 바다에 잠기기 시작한 뽀 주위를 헤엄치는것처럼. 가까이서 마주보던 섫 눈빛이 그 짧은 순간에 몇백번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뽀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찾아 움직였음.

확신.
그거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알것 같아.
섫은 고르다 보니까 너무 많은가 싶어서 몇개 빼려는데, 언제 온건지 귀신같이 눈치챈 뽀가 바구니 뺏어서 계산대로 감. 옆에 서서 포스기에 늘어나는 금액 보고있는 섫. 뽀는 그거 보고 옆구리 쿡 찌름.

"쌤 나가 있어요"
"왜요"
"10만원 나와도 제가 낼거에요"
"그건,"
"가요 빨리"
결국 쫓겨나듯이 편의점 밖으로 나오는 섫. 그러고도 유리창 밖에서 기웃거리는게 큰 강아지 같아서 웃음참는 뽀. 계산하고 묵직한 봉지 품에 안고 나옴. 금액은 보지도 않고 긁었음.

"얼마 나왔는지 물어보지 마요"

봉지 받자마자 입 열었다가 뽀 말 듣고 그대로 입술 말아무는 섫.
봉지 무거울까봐 나눠들자는데 꿋꿋하게 한손에 다 들고 나머지 한손 내미는 섫. 손 잡으려고 그러는구나. 마음 찌릿하면서 손 맞잡는 뽀. 다시 크게 빙 돌아서 집쪽으로 향하는데 뽀가 말하면서도 계속 주변을 훑어볼듯. 덩달아 뭐 있나 싶어서 시선이 쫓아다니는 섫.
그러다가 한적하고 작은 공원 입구에서 발걸음 멈추는 뽀. 가로등이 고장난 공원은 그나마 달빛이 닿아서 푸른 어둠이 깔려있었음. 꼭 빛이 잘 닿지않는 심해처럼. 섫이 숨어서 살고있던 그 바다처럼. 그 곳에 육지에서 살아왔던 뽀의 시선이 닿았고, 이내 그 안쪽으로 한걸음이 뻗어나갔음.
공원 안에서 섫을 돌아보는 뽀.

"잠깐 앉았다가 갈래요?"

그 순간 섫은 한번도 받아본적 없던 느낌이 스쳤음. 이걸 놓치면 큰일날것 같다는,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영원히 기억해야겠다는 느낌. 마른침 삼키다가 마음 속으로 녹화 버튼 누르고 고개 끄덕이는 섫. 공원에는 이제 두사람이 들어왔음.
공원에서도 안쪽에 조그만 정자. 거기에 나란히 앉아있는 둘. 섫은 뽀가 할말이 있는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고, 뽀는 하늘을 보고있음.

저 구름이 저 별까지 갔을 때 말해야지.
내 그림자가 쌤한테 닿은것처럼,
저 구름의 끝이 별의 흔적을 잡을 때.
그 때 말해줘야지.
가장 예쁜 순간에.
오늘만큼은 정말로, 이 정적과 기다림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섫. 그렇게 또 몇분이 흘렀을까. 흘러간 구름이 결국 별에 닿았고, 그 순간 뽀의 시선이 내려와 섫에게 닿았음. 전기가 흐른것처럼 심장이 찌릿거리는 둘. 뽀는 가볍게 웃어주다가 이야기를 시작하겠지.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워크샵때 기억나요?"
"...어떻게 기억이 안나요"
"고백했던거 말고요"
"뭐든 기억나요"
"제가 뭐 말할줄 알고.."
"지엱쌤 관한건 그래요"
"....."
"술을 몇잔 먹었는지도 기억나요"
"....."
"했던 말도 다 기억해"
"....."
"기억하기 싫어도 그래"

그니까 지엱아.
무슨 말이든 괜찮아.
편하게 해. Image
끝까지 망설임 하나 남지않도록 길을 터주는 섫을 보면서 못당하겠다는듯이 고개젓는 뽀. 눈 한번 꽉 감더니 다시 뜸. 그 사이에 눈빛은 조금 더 두터워져 있었음.

"지우고 싶은게 있어요"
"....."
"쌤이 그날 기억하는 저한테서 한문장만 지우고 싶어요"
"....."
그러면서 확인하고 싶은게 있고요"
섫은 그 말을 듣고 고백 거절한걸 지우고 싶은건가 했음. 그래서 결국 받아준다는건가. 나 조금 욕심내도 되나.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있었음. 근데 뽀가 편의점 봉투를 뒤적거려서 꺼내든걸 보고는 입이 벌어지겠지. 뽀가 섫이 물건 고르는동안 몰래 결제해놨던 그거.
뽀 손에 들린건 다름아닌 빼빼로였고,

'닿으면 좀 어때요, 어차피 여자끼린데'

뽀가 지우고 싶었던건 그날 본인이 그어버렸던 선이었으며,

"빼빼로 게임..한번만 다시 해봐요"

뽀가 확인하고 싶었던건, 우리가 연애라는 새로운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는 확신이었음. Image
섫도 빼빼로를 보자마자 그때 뽀가 했던 말이 떠올랐음.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팠고. 그 아픔으로 인해 뽀가 빼빼로를 꺼내든 이유가 명확해졌겠지. 근데 그 행동이 고백의 거절을 지우려고 하는것보다 섫 마음에 더 무겁게 내려앉았음. 이런 사람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가득 차버려.
사랑스럽고 예쁘고 벅차.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애정이 미친듯이 쏟아져 내려오지만 뽀의 마지막 한걸음을 위해 참는 섫. 그리고 대답하겠지.

"해요, 다시"

빼빼로 상자를 뜯고, 봉지를 뜯고.
그 안에서 빼빼로 하나를 집어든 뽀는
섫 입에 그걸 물리겠지. 그때랑은 정반대로.
가만히 빼빼로를 입에 물고있는 섫을 보면서 다짐하는 뽀. 그날보다 적게 남기면 가능한거겠지. 스쳐 지나갔던 그날보다 더 닿고 싶어지면, 이제 진짜 우리인거야. 스스로 기준을 정해놓고 반대쪽 끄트머리를 입에 무는 뽀. 손끝 하나 닿지 않았는데도 등에는 땀이 나고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짐.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거리가 좁혀질수록 심장은 터질것처럼 뜀. 근데 섫은 그때 눈을 감고 피하던 뽀와 달리 똑바로 눈을 뜨고 있을듯. 가까워지는 뽀를 눈에 담으면서, 기다리면서. 근데 가까워질수록 그게 너무 부끄러워지는 뽀. 급하게 작은 손으로 섫 눈가 덮어서 가릴듯.
이러면서 눈가리는게 귀여워서 빼빼로 입에 물고 씩 웃는 섫. 그게 시야에 다 보여서 설레 미치겠는 뽀. 어느새 코가 닿을거리가 됐고, 그 부근에서 망설이던 뽀가 이내 얼굴을 꺾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음. 윗입술이 스치고, 서로의 숨결이 섞여. 그때 워크샵에서는 딱 여기까지였음.
그 순간 뽀는 잠시 멈추고 마음의 문을 열고 들여다봄. 근데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글자들에 잠시 벙쪄버리는 뽀. 더 갈 수 있을지, 이제 진짜 시작해도 될지. 그걸 가늠하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뽀 주위에는 마음에서 쏟아진 선명한 글자들이 가득 쌓여있었음.

좋아해.
좋아해요.
닿고 싶어요.
분명히 흐릿해서 잡히지 않는 감정이었는데.
이름을 붙여주지 못해서 힘들었는데.
망설였던 시간이 우습게도 이미 애정은
너무 선명했고, 어느 순간 들어 온 섫은
제 너저분한 마음 안에서 나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음.

언제 여기까지 들어왔어요.
그렇게 빨리, 나도 모르게. Image
뽀가 마음을 깨달아가는동안 뽀 손에 갇혀있던 섫은 애가 닳고 있었음. 딱 워크샵때만큼 가까워져서 멈춰버린 뽀 때문에. 오늘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시야가 가려지니까 자꾸 안좋은 쪽으로 생각이 들어서 뽀 손목 붙잡고 내리는 섫.
바로 몇센치 앞에서 눈이 마주치고, 그 순간에 둘은 처음으로 서로의 눈에서 같은 단어를 읽었음. 좋아해. 좋아해요. 한번 통한 마음은 와르르 쏟아졌고, 둘을 애정의 바다로 잠기게 했음. 이젠 온전한 바다로 들어오게된 뽀. 섫의 눈빛을 보면서 배운대로 숨을 쉬어 봐.

아..
나 여기서 살 수 있네.
뽀에게 완벽한 확신이 생겼음. 우리가 연애라는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다는 확신. 그 눈 안에서 반짝이는 확신을 섫도 읽어냈겠지. 눈을 반쯤 감으면서 눈빛으로 물어봐.

'해도 돼요?'

그럼 뽀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고,
곧바로 둘의 입술이 맞물렸음.
빼빼로는 전혀 남지 않은채로.
처음이고 너무 긴장해서 깊게 들어가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면서 키스하는 둘. 고개가 몇번 틀어지고, 방향이 바뀌고. 그러다보면 섫의 손은 뽀 허리에 가있었고, 뽀의 손은 섫 어깨를 쥐고 있었음. 둘다 터질것 같은 심장 붙들고 있는 중이야. 스물다섯과 서른에 열아홉 같은 키스겠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입술이 떨어지고, 다른것보다 키스를 먼저 해버리고 나니 살짝 어색함이 찾아옴.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게 아니라 간질간질한 어색함. 발끝이 오므라들고 부끄러운, 노란색 어색함. 그래도 연상이라고 먼저 말을 꺼내려는 섫.
슬슬 정의 내릴 때가 된것 같아.
그 짧은 순간에 섫은 할말을 고르겠지. 좋아한다고는 몇번이나 말했고,
사귀자고 하자니 뭔가 좀 그래.
네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말이면 좋겠어.
우리의 시작을 단단하게 해줄 수 있는 말.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깊게 들여다보는 섫. 그 안에 가득찬 애정을 실감하고, 말이 저절로 튀어나갈듯.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이 흐려지고,
학교라는 테두리가 사라져.
동료라는 이름은 없어.
그저 스물다섯 김지엱을 앞에 두고선,
그저 서른인 김혅정이 고백해.

"지엱아"
"....."
"너 나 좋아해"

이제 알아. 너 거기까지 온거 알겠어.

"나 너 사랑해"

근데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 더 힘을 내줘.
태연하게 사랑을 이야기 하는 섫을 보면서 심장이 질주하는 뽀. 섫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문장의 시작부터 끝까지 확신이 가득했음. 이제야 새로운 길을 걸어보려고 출발선을 빠져 나왔는데 섫은 이미 뛸 준비까지 전부 마친 상태였음. 그럼에도 기꺼이 옆에서 속도를 맞추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어깨에 올려놨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을 고르는 뽀. 몇번째인지 모를 고백을 마치고 천천히 대답을 기다리는 섫. 뽀의 마음도, 제 마음도 확신하지만 너와 내가 우리로 시작되는건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먼저 마음의 정의까지 끝냈으니 마지막 한걸음은 뽀가 직접 걸어와주길 바라는 섫.
그리고 별에 닿았던 구름이 저 멀리 흘러가는걸 보며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다짐하는 뽀. 지우고 싶던 선은 이제 흔적도 없이 지워졌고, 이제 확인하고 싶던 질문에 대한 결과를 전해줄 차례였음. 

우리가 연애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로 시작해도 될까요.
이제는 결과가 외면할 수 없을만큼 커다랗고, 선명했음. 온전히 출발선을 넘기로 작정한 뽀는 눈빛부터 달라질것 같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눈빛에 살풋 웃어버리는 섫. 어떤 대답을 할지가 궁금해서 심장 부여잡고 기다리는데, 뽀는 역시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음. 사랑스러운 직진형.
그대로 목 둘러 안더니 입 맞추는 뽀.
아까는 확인하기 위해서,
이번엔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그냥 입술만 움직이는게 아니라 진짜 마음이 섞일만큼 진하게 키스함. 섫도 처음에는 놀라다가 이게 뽀 대답이라는거 깨닫고 눈 감아내릴듯. 능숙하게 뽀 허리 끌어 당겨서 고개 트는 섫.
한참 숨 주고 받다가 먼저 고개 빼면서 떨어지는 뽀. 금방 다시 붙을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두개의 시선이 엉켰음. 조금은 다른 온도지만 같은 색을 쏟아내기 시작한 둘의 눈빛이 주변을 데우고, 어둠 속을 밝혔음. 그 빛의 테두리 안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된 뽀의 마음이 요동치겠지.
"좋아해요"
"....."
"그니까 이제 썸 그만 타요"
"..그럼 뭘 탈까요"
"연애요"
"....."
"우리 연애 탈래요?"

나름 적지않은 고백을 받아 봤고, 먼저 고백을 해본적도 있는데 이런 멘트는 처음이었음. 썸 말고 연애를 타쟤. 또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섫은 지금 뽀가 예뻐서 죽을것 같음. Image
그리고 그걸 이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내는 섫. 입술 깨물면서 뽀 입술이랑 눈이랑 번갈아가며 쳐다 봄. 대충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어서 목에 두르고 있던 손으로 등 찰싹 때리는 뽀. 고개 살짝 뒤로 하면서 입술 삐죽이겠지. 좋아한다는 말을 눈이나 볼, 얼굴 여기저기 묻히고서는.
"대답 안해요?"
"알잖아요"
"나는 뭐 몰라서 말했나"
"..연애 같이 타요"
"당연히 같이 타야죠"
"이제 다 같이 해요"
"....."
"이것도 같이"

출발이 어려웠지 어른들의 연애는 쉽사리 불타올랐음. 뒷목 감싸서 당기는 섫과 따라서 눈 감는 뽀. 섫은 그 어느 날보다 기쁘게 웃으며 입을 맞추겠지.
지엱쌤. 지엱아. 
바다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조금 궂은 날씨엔 물결이 높아지고, 
가끔은 울렁거리기도 하겠지만. 
연애라는 파도 위에서 넘어지지 않게 할게.  
네가 실망이란 물을 먹지 않게 할게.
내가 그럴게.

부드러운 파도를 타듯,
넓은 바다를 유영하듯. 
그렇게 연애해보자, 나랑. Image
처음 입술 맞대본 풋사랑 마냥 어둠 속에서 밀회를 조금 더 즐긴 둘은 술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를 듣고서야 놀라서 떨어질것 같지. 눈 커져서 서로 쳐다보다가 동시에 웃음 터지는 둘. 뽀는 섫 어깨에 기대서, 섫은 입술 깨물면서 웃음. 덕분에 스킨십 후에 머무르는 어색한 공기는 날아가 버리겠지.
두팔 뒤로 해서 몸 기대고 하늘 올려다보는 섫. 오늘따라 별은 더 밝은것 같고, 공기는 달큰하기만 해.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이유도 없이 웃음이 새기도 함. 옆을 보니까 어느새 똑같은 자세로 하늘을 보고있는 뽀가 있음. 그 때 실감이 나기 시작하겠지. 이제 우리 진짜 사귀는거구나.
마음을 깨달았던 체육대회, 마음이 깨졌던 워크샵, 마음을 다시 돌려받은 오늘. 비록 사랑을 주고 좋아함을 돌려 받았지만 섫은 개의치 않았음. 누군가는 감정의 격차를 박탈감으로 느낄법한 상황인데도 전혀 그러지 않는 섫. 그걸로 실망하기엔 섫은 이미 바닥을 찍어봤고, 뽀가 너무 좋았음.
그리고 이제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기도 했음. 느리지만 결국 제가 있는 바다로 뛰어든 뽀니까, 언젠가 더 깊은 곳으로 함께 잠수할 수 있을거라고. 정자 짚고 있는 뽀 손이랑 손가락만 얽혀 잡는 섫. 그럼 뽀는 시선은 여전히 하늘 보면서도 더 단단히 힘 줘서 손등을 간질이겠지.
엉겨붙은 손가락에서 전류가 흘러나와 둘의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었음. 아까 그 별에 구름이 닿을 때마다 얇은 애정을 겹겹이 쌓아가는 뽀. 곧게 뻗은 뽀의 옆모습을 들여다 보며 묵직한 애정을 눌러담는 섫.
내가 열심히 눌러볼게.
천천히 쌓아서 올라와 줘.
우리가 사랑에서 만날 수 있게.
내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 따라서 쳐다보고, 내가 이렇게 바라보면 또 시선을 건네주고. 너는 그렇게만 하면 돼.
언젠가 우리가 사랑을 함께 딛고 서는 날,
그 때 더 깊이 잠수하자. 

계속 이렇게 앉아 있다보면 진짜 헤어지기 싫어질걸 예감한 섫이 잡은 손을 살살 잡아당김. Image
"슬슬 갈까요"
"몇시에요?"
"11시 넘었어요"
"벌써요??"

네, 벌써요. 우리 입술만 얼마나 붙들고 있었는데요. 그 말은 삼키고 씩 웃기만 하는 섫. 그럼 뽀는 아쉬운듯 땅만 몇번 차다가 먼저 몸 일으키겠지. 그제야 섫도 따라 일어나고, 들어왔던 공원입구로 다시 나옴.
거리로 나오니 다시 가로등이 여기저기서 반짝거렸고, 그 빛이 스며든 뽀 얼굴이 너무 예뻐서 넋 놓고 감상하다가 급하게 발걸음 멈추는 섫. 뽀 끌어다 제 몸으로 가리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입가 닦아줌. 둘의 립이 뒤섞여서 새로워진 색이 뽀 입술 위로 살짝 번져있었음.
"미안해요. 내꺼 잘 번지는건데 깜빡했다"
"....."
"키스할 줄은 몰라서"

섫 오늘 고민하다가 애인 있을 때는 잘 안쓰는 립을 발랐음. 발색이 너무 예쁜데 잘 번져서 손이 잘 안가던 립. 지속력도 그닥이었지만 뽀한테 잘보이고 싶어서 오늘 하루에만 몇번을 덧칠했는지 모름. Image
계속 그렇게 신경쓰다보니 키스 할 때까지도 입술 색이 선명했겠지. 세번이나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으니 번진게 당연하긴 했음. 키스를 옅게한것도 아니고. 꼼꼼히 뽀 입술 주변 정리해주고 다시 손 잡아쥐는 섫. 뽀는 잠깐 사이에 연달아 날아온 어택에 정신 못차리고 있음.
왜 이렇게 다정해? 왜 저렇게 예쁘게 쳐다 봐? 섫 손에 이끌려 걸어가면서도 입술에 닿았던 손길이 자꾸 생각나는 뽀. 챙겨주는게 설레고 좋은데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이 끓어 올랐음. 왜 이렇게 능숙하지. 키스하다가 립이 자주 번져봤나 봐? ...짜증나. 열받아.
한번 감정을 인정하고 나니까 그 외에 부수적인것도 거름망 없이 몰려 들었음. 원래 좋아하는 만큼 질투도 많은 뽀. 그냥 동료일 때도 섫이랑 제일 가깝고 싶어했는데 이제 연애하기로 한 이상 섫은 뽀의 바운더리 안에 쏙 갇혀버린 사람이었음. 내 애인. 내 사람. 내꺼.
그리고 혼자 꽁해있는거 절대 못하는 뽀. 바로 걸음 멈추고 섫 돌려세움. 화낼 상황은 아닌건 알고있고 그냥 투정부릴 생각이었음. 왜 이렇게 익숙하지? 립 많이 번져봤어요? 아까 키스도 잘하던데? 그런 퉁퉁거림을 내뱉고 늘 그렇듯 무던한 섫 반응을 돌려받을 작정이었지.
"쌤 왜 이렇게.."

근데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뽀 입은 그대로 닫혀버릴듯. 섫이 돌아보는 순간 가로등 빛이 제대로 얼굴에 내려 앉아서. 섫 입술 아래에 똑같은 색으로 번져버린 립을 발견해버려서. 그제야 뒤늦게 떠오르는거야. 오늘 저도 예뻐보인다고 몇번이나 립을 덧칠했다는게.
그거 보자마자 풉 웃음 터지는 뽀. 솟아올랐던 질투가 가볍게 부서지고, 가라앉았음. 이렇게 해놓고 누구를 닦아주고 있어요. 진짜 웃기고 귀엽잖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인 섫 끌어 당겨서 그림자 밑으로 데려오는 뽀. 그리고 아까 섫이 해줬던것처럼 그 앞을 막고 서. 귀여운 얼굴 아무도 못보게.
키차이가 나서 아주 살짝 까치발을 들긴 했지만. 그건 비밀로 하고. 볼 감싸쥐고 엄지 손가락으로 번진 립 살살 문질러 닦아주는 뽀. 섫처럼 능숙하진 않지만 미간까지 구겨가면서 열심히 닦아줘. 눈 커졌다가 집중한 뽀 얼굴에, 서툰 손길에 입꼬리 길게 올려 웃는 섫.
뽀는 느리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눈앞에서 보겠지. 섫은 더이상 바짝 마르지 않은, 바닷물에 적셔 촉촉한 입술로 행복하게 웃고 있었음. 다 닦아주고 나서 섫 입술 끝자락 톡톡 두드리는 뽀.  

"왜 웃어요"
"좋아서요"
"이렇게 좋아서 어떻게 참았대"
"쉽지는 않았어요"
섫은 지금 뽀가 귀여워서 다른게 눈에 잘 안들어옴. 일부러 그러는것 같기는 한데, 자꾸 제가 하는걸 어설프게 따라하는게 너무 귀여움. 다섯살 연하한테 완전 돌돌 말려버린 섫. 물론 뽀도 다섯살 연상한테 돌돌 말리려고 앞구르기를 시작한 참이었음.
가로등 아래서 서로 얼굴 몇번이나 확인하고 다시 뽀 집으로 향하는 둘. 헤어지기 싫어서 걸음도 느리게, 동네도 한바퀴 빙 돌았는데 결국 도착해버렸음. 차 앞에 서서 인사하는데 둘 다 기분이 묘할듯. 분명 아까 여기서 출발할 때만 해도 썸이었는데, 몇시간 만에 연인이 되어 돌아왔다는게.
집 앞까지 와서도 차 범퍼에 걸터 앉아서 시간을 죽이겠지. 그러다 오늘에서 내일이 되기 직전에 먼저 일어나는 뽀. 아쉽게 맞잡은 손 주물대면서 말함. 

"내일은 조카보러 간다고요?"
"응, 부모님도 오신다고 해서요"
"연락 자주 해요"
"그럴게요"
"생각 날때마다 해요"
"그럼 전화 못끊어요"
섫도 아쉬운건 마찬가지였음. 마침 내일 주말이라 첫데이트 하기에 딱 좋았는데. 미리 잡아놓은 약속이라 뺄 수도 없어서 미안한 표정으로 손등만 문지르는 섫. 여기서 더 보채면 무게가 실릴것 같아서 섫 손 허벅지 위에 살짝 놔주는 뽀. 몇번이나 손 흔들고 등 돌려서 걸어감.
그리고 딱 다섯걸음. 돌아볼까 말까 고민하던 그 타이밍. 가방 안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 꺼내든 뽀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음.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전화기 너머보다 뒤편에서 더 크게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돌아보는 뽀.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여전히 범퍼에 앉은 섫이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음. 뽀가 등 돌리자마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곧바로 전화를 걸기까지 걸린 시간이 딱 다섯걸음이었겠지. 못말리겠다는 표정인 뽀한테 얼른 가라며 손짓하는 섫. Image
뽀는 여기서 다시 돌아가면 새벽까지 같은걸 반복할것 같아서 무거운 발걸음 떼내겠지. 공동현관으로 들어와서는 엘레베이터는 등지고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오르는 뽀. 섫은 뽀가 집에 들어가는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차에 오를것 같지. 물론 섫이 집에 도착하고 한참 뒤에도 전화는 끊어지지 않았음.
'쌤 진짜 안졸려요?'
'저 완전 멀쩡한데요?'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무슨 생각해요?'
'저는 보통 지엱쌤 생각해요'
'..예고 좀 해주면 안돼요?'

새벽 2시가 저물어도,

'슬슬 잘래요?'
'왜 나 재워요? 이제 내 생각 안나나봐'
'목소리가 자고 있잖아요'
'아니거든요??'

새벽 3시가 지나갈 때까지.
그러다 결국 전화를 끊는 것보다 뽀가 까무룩 잠들어버리는게 빠르겠지. 새벽 3시 37분. 점점 느려지던 뽀 대답이 어느 순간 돌아오지 않는걸 깨닫고 소리죽여 웃는 섫. 혹시나 뽀가 깰까봐 조심히 핸드폰 틀어쥐고 사사로운 굿나잇 인사를 건네보겠지.

'잘자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 끊으려다가 핸드폰 가까이 가져다대는 섫. 아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더 다정한 진심으로. 

'잘자, 지엱아'

멀지 않은 미래에 할 수 있을 그 말을 연습이라도 하듯 미리 해보겠지. 그제야 만족하며 끊고 침대로 파고드는 섫. 근데 잠들기 직전에 머리 맡에서 진동이 울릴듯. Image
잠들기 시작하면 연락와도 잘 안깨는데 이상하게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였음. 밝기 최소한으로 줄여서 액정 확인하는데 거기엔 뽀 이름이 떠있겠지. 분명히 잠들었다고 생각한 뽀가. 놀라서 잠이 확 달아나는 섫. 혹시 아까 들었나? 아니면 나때문에 깼나? 갑자기 말 놔서 놀랐나?
걱정하면서 톡 온거 확인하는데 짧은 음성메시지가 하나 와있었음. 그거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섫. 설마. 너는 설마. 5초뿐인 음성인데도 어쩐지 엄두가 나질 않아서 한참 망설이다가 간신히 재생버튼 누름.

3초의 정적, 그리고  몰아치는 2초의 시간.

'..잘자요 언니' Image
뽀 진짜 잠들었다가 섫이 잘자요, 인사할 때 어렴풋이 깼음. 이제 끊으려나보다 하고 마음 편히 다시 잠들려고 했는데 그 뒤에 이어진 말에 잠이 다 깨버린 뽀. 잘자 지엱아. 지엱아. 아까 고백할 때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일상에 스며든 호칭은 처음이라 너무 놀랐고, 미치도록 설렜음.
못들은척 할까. 그냥 덮어둘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 뽀는 돌려주고 싶었음. 섫이 이만큼 다가왔다면, 똑같이 그만큼 다가가고 싶었음. 근데 전화로 돌려주기엔 너무 부끄러워서 음성메시지를 선택한 뽀. 그 음성 메시지 사실 세번이나 실패하고 간신히 성공해서 보낸거임.
목소리가 떨려서 실패, 정적이 10초나 길어져서 실패, 삑사리가 나서 실패. 그러다 그나마 멀쩡하게 녹음을 성공해서 보내고 바로 톡 알림 끄고 이불 속으로 도망갔음. 언니라고 했어. 어떡해. 나 방금 혅정쌤한테 언니라고 했어. 언니가 맞기는 한데. 근데. 부끄러워서 발로 이불만 퍽퍽차는 뽀.
그리고 그거 직통으로 얻어 맞은 혅정언니는 말그대로 KO 였음. 언젠가 호칭 정리를 하겠지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언니소리 들을 줄은 몰랐음. 핸드폰만 붙잡고 그 자세 그대로 1분을 굳어있던 섫. 뒤늦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애정에 말그대로 어쩔줄을 모를듯.
언니래. 혅정언니래. 얘 진짜 어떡하지. 사람이 너무 좋으면 몸이 이렇게 떨릴 수도 있구나 싶음. 나 9시에 일어나야 되는데. 이제 정말 자려고 했는데. 너는 왜 나를 한시도 가만 놔두질 않니. 끊임없이 좋아지게 만들어. 다시 전화할까 하다가 지금 뽀가 자든, 부끄럽든 받기 힘들것 같아서 관둠.
한참 떨리는 마음 진정시키다가, 뽀랑 똑같이 이불 속으로 숨어 들겠지.

'잘자요 언니'

그 짧은 음성을 몇십번이고 반복재생 하다가 잠드는 섫. 

'잘자 지엱아'

그 짧은 기억을 몇십번이고 닳도록 퍼먹다가 잠드는 뽀. 

역사적인 1일,
시작되는 교내연애.
둘은 사이좋게 서로의 꿈을 꿀것 같지. ImageImage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서 조카보러 간 섫. 아직 뽀는 자고 있을것 같아서 일어났다고 톡만 보내놓고 계속 음성메시지 반복해서 들음. 외출준비 하면서도, 차 안에서 잠깐 신호 걸린 틈에도. 잘자요 언니. 그 다섯글자가 뭐라고 오십번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았음.
아직은 뽀랑 사귄다는게 완벽하게 실감이 나진 않겠지. 짝사랑을 한 기간도 길었고, 예상치 못한 때에 만남을 시작하게 된거니까. 그래도 이 낯선 감각마저도 마냥 행복한 섫. 집가서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는 동안에도 한번씩 화장실 가서 뽀가 보내줬던 음성 듣고, 뽀 사진 들여다 보고 그럼.
그 후에 조카 생일파티 해주고, 오랜만에 다같이 점심먹을 때 뽀한테 톡이 왔음. 일어나서 잠깨고 있다길래 얼른 폰 들고 답장하는데 이상하게 돌아오는 답이 좀 짧고 무뚝뚝하겠지. 뭐지. 문장마다 점찍는거 이거 지엱쌤 화났을 때만 그러는건데. 의아함에 젓가락질도 느려지는 섫.
어제 마음 확인했고, 분명히 달달하게 통화했고, 다음날 처음 톡을 한게 지금임. 그 사이에 뭔가 기분 상할 포인트가 있었나 떠올리는데 도저히 가늠이 안됨. 밥 먹다말고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니까 결국 가족들한테도 한소리 듣겠지. 억지로 폰 내려놓고 한숟갈 뜨는데 영 마음이 불편함.
그냥 기분이 별로인걸수도 있지만 그건 그거대로 신경이 쓰였음. 결국 밥 대충 먼저 먹고 일어나서 잠깐 베란다로 나가는 섫. 가족들한테 안보이게 벽에 기대서 바로 뽀한테 전화 검. 뽀는 침대에 누워서 입술 댓발 내밀고 있다가 갑자기 전화와서 으악 하고 일어나서 앉음.
잠깐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사귄지 하루만에 이런걸로 머리쓰기 싫어서 통화버튼 누르고 받음. 뽀가 받아 놓고 입술만 깨물고 있으니까 섫이 먼저 말을 꺼내겠지.

'..잘잤어요?'

그 물음 하나에 다정함이 진득하게 묻어 나와서 부루퉁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잔잔해지는 뽀. Image
결국 일어나서부터 품고있던 작은 투정을 꺼내서 보여주겠지.

'잠은 잘잤어요..근데요'
'응?'
'제 생각이 두번만 났어요?'

뽀는 일어나서 시간 보고 섫이 가족들이랑 있겠구나 알기는 했음. 스케줄은 어제 들었으니까. 근데 톡이 온게 딱 두개밖에 없는거야. 일어났다는 톡. 도착했다는 톡. Image
분명히 어제 연락 자주하라고, 생각날 때마다 하라고 했고, 섫도 알겠다고 했는데. 숨쉬듯 연락하는건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뽀가 느끼기엔 섫의 연락이 너무 단촐했겠지. 하다못해 어제 세번이나 실패하고서 보낸 음성메시지에 대한 답장도 없었음. 뭘 바라고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섫이 오늘 그 음성메시지 다시 듣느라 닳아버린걸 뽀는 모르니까. 사귀지 않을 때도 섫이 연락에 신경을 안쓰는 편이라 서운한적 있었는데 그게 사귀는 사이가 되니까 타격이 두배였음. 원래도 연애하면 욕심도 많고, 사소한 표현에도 신경 많이 쓰는 타입인 뽀. 좋아하는만큼 애정을 받고 싶어함.
사귄지 하루 밖에 안됐는데 뭘 벌써 그러냐 싶을 수도 있지만 뽀는 이런건 초반에 맞춰나가는게 맞다고 생각했음. 당연히 다른 사람이니까 안맞는 부분이 있을거고, 그 중간지점을 잡아가는게 연애라고 여기는 뽀. 숨김없이 던진 서운함에 섫은 그제야 어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겠지.
'연락 자주 해요'
'그럴게요'
'생각 날때마다 해요'

맞다. 어제 그랬는데. 자주 하라고 했고, 생각 날 때마다 하라고 했었지. 워낙 연락에 신경쓰는 타입이 아니었어서 대답까지 해놓고 잊고 있었음.

근데 아닌데.
생각을 안한건 진짜 아닌데.
나 방금 김치찌개 보면서도 네 생각 했는데.
섫 보통 안맞는 부분을 맞춰가는 연애보단 맞는 사람을 찾아서 연애를 해왔었음. 그래서 연락 빈도수도, 개인적인 바운더리도. 비슷한 사람들을 주로 만났어서 이런 말을 듣는게 굉장히 오랜만이었음. 근데 이상하게 전혀 싫지가 않아. 서운하다고 말을 툭툭 하는 뽀가 귀엽기만 해. 간질간질해.
막지못한 웃음이 흘러버려서 뽀한테도 그 웃음의 끝이 닿았음. 기껏 얘기했더니 웃는 섫이 얄미운 뽀. 또 불퉁한 말이 나가려는데 웃음의 끝과 함께 섫의 다정함이 시작됐음. 

'미안해요.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랬어'
'.....'
'이제 자주 연락 할게요'
'..근데 왜 자꾸 웃어요?'
'좋으니까 웃죠'
또 이렇게 예고도 안하고. 다이렉트로 날아오는 고백에 결국 서운함이 맞아서 터져버리겠지. 뻣뻣하게 앉아있던 몸 침대 헤드에 기대고서 숨 길게 내쉬는 뽀. 섫이 원래 그런 성격인 것도 알아서 더 뭐라고 하는건 관두기로 했음.

이제 시작이니까 천천히 맞춰가야지.
우리 진짜 연애하는거니까.
갑자기 그 사실이 덜컹하고 마음에 떨어져서 혼자 얼굴 빨개지는 뽀. 어제 몇번이고 뒷목을 감싸며 입 맞추던 섫 모습까지 떠올라서 손으로 부채질도 함. 괜히 다른 얘기 꺼내서 화제 전환하겠지.

'그, 잠은 잘잤어요?'
'응, 누가 잘자라고 해줘서요'
'...들었어요?'
'몇번 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는 섫 목소리에 설렘과 기분좋음이 가득해서 작게 남아있던 꽁기함까지 전부 털어내는 뽀. 글자로 표현하는게 아직 어색한거라면 앞으로는 제가 한번 더 물어보고, 그 애정을 직접 가져가야 겠구나 다짐함. 같이 하는 연애니까 저도 섫한테 맞춰가고 싶었음.
'생일파티는 잘했고요?'
'나보다 선물을 더 반기더라고요'
'저녁까지 먹고 온다고 했었죠'
'응, 마트 가서 장보고 저녁은 나가서 먹을것 같아요. 지엱쌤도 밥 먹어야죠'
'시켜 먹으려고 어플 보고 있어요'
'뭐 먹을거에요?'
'글쎄요..점메추 해주세요!'
'.....'
'..점심메뉴추천이요'
줄임말 잘 못알아듣는 섫. 뒤늦게 아차해서 설명해주니까 아아, 하고 탄식 흘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상상이 돼서 입꼬리가 넘실거리는 뽀.
가라앉은 눈이 조금 커져서,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져서.
조금은 머쓱하게 눈썹을 찡그리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것 같아.
'김치찌개'
'왜 김치찌개에요?'
'점심으로 먹었어요'
'그게 뭐에요-'
'먹으면서 지엱쌤 생각 났거든요'
'.....'
'같은거 먹으면 좋을것 같아서요'

올라간 입꼬리가 멈춰서 내려올 줄 몰랐음. 직진이었던 표현이 사귀니까 돌직구가 따로 없음. 섫이 직구로 던지는 마음에 퐁퐁 맞아가며 웃는 뽀.
섫은 뽀가 대답은 안하고 다른주제를 던지길래 별로인가 했는데 갑자기 뽀가 톡을 보라고 함. 스피커로 바꿔놓고 톡 보니까 배달어플 캡쳐가 하나 와있음. 김치찌개 주문완료 된 페이지 캡쳐가. 귀여운 이모티콘이랑. 그거 보자마자 작게 소리내서 웃어버리는 섫. 뽀도 덩달아 옮아서 같이 웃어버려.
아주 재밌는 얘기를 한것도 아닌데 웃음이 자꾸 나는거. 모든 행동의 이유가 서로가 되고, 행동의 결과가 서로를 향한 애정이 되는거. 그 모든게 지금 우리가 연애를 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서 둘 다 한참 푸슬푸슬 웃어버릴것 같지. 섫 가족들이 마트 가자고 하기 전까지 통화는 계속 이어졌음.
섫이 아쉬운 목소리로 끊으면서 톡 자주 하겠다고 하는데 급하게 붙잡는 뽀. 섫은 눈으로는 분주하게 준비하는 집안 보면서 귀는 뽀한테 집중하고 있음. 뽀는 불쑥 튀어나온 생각을 말할까 말까 고민 중. 섫은 잠깐 기다려주다가 엄마가 나오라고 손짓하는거 보고 다시 말함.
'지엱쌤 내가 이따가,'
'지엱이'
'...어?'
'지엱이요'
'.....'
'그렇게 불러주면 안돼요?'
'.....'
'우리 이제 동료 선생님 아니잖아요'

표현이 돌직구인건 쏙 닮아있는 둘. 뽀는 전화하는동안 계속 지엱쌤이라고 하는게 신경 쓰였음. 섫이 언젠가 라고 생각했던 호칭 정리를 눈앞으로 끌고 와버림. Image
어제 서로 부르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호칭은 그렇게 되겠거니 생각은 했는데 뽀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머리가 하얘지는 섫. 지엱이가 지엱이라고 불러달래. 지엱이가. 지엱이라고. 그 말을 꼭꼭 씹어서 체하지 않게 소화시키겠지. 그리고 핸드폰 고쳐쥐고 작게 말해줌.
'연락할게 지엱아'
'.....'
'대답은?'
'..말 놓으라고는 안한것 같은데'
'지엱아 대답은요?'

들을 생각만 했지 말할 생각까지는 못했던 뽀. 몰아치는 반말과 호칭에 마음이 쑥대밭이 됐음. 설렘과 애정이 엉켜서 성한 곳이 없어. 깨끗하던 마음이 엉망진창이야.

..근데 나 왜 이렇게 행복하지.
뽀가 뜸 들이는 동안 엄마가 재촉하면서 다가오는거 발견한 섫. 

'진짜 끊어야 될것 같은데'

섫이 다급하게 덧붙이니까 놀라서 핸드폰 고쳐쥐는 뽀. 그리고 큼큼 목까지 가다듬고서 말함.

'..혅정언니'

섫은 방금까지 메시지로 들었던 그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게되니 심장이 터질것 같았음.
'잘 다녀와요 언니'
'..응, 다녀올게 지엱아'

어떡하니. 이렇게 좋아서.
어떡해요. 이렇게 설레서.
너 왜 또 웃고있어.
언니는 왜 또 웃고 있어요.

지엱아.
혅정언니.
우리 그거 하나 봐.
연애, 사랑.
우리 진짜 그거 하나 봐요. ImageImage
사귀고 첫번째로 맞이하는 주말의 끝.
본가도 다녀오고, 각자 볼일 보다가
일요일 저녁부터 밤까지 계속 통화중.
별 얘기는 안했어. 그렇다고 별 생각이
없었던건 아니고. 통화내용보다는 그
사실 자체가 설레이는 연애 초였으니까.
원래 10시에는 진짜 끊기로 했는데 벌써 11시 50분이래.
'이제 12시에 진짜 끊는거에요'
'알았어요 12시'
'근데요'
'응?'
언니 다시 존댓말 쓰네요'
'말 놓으라고 안했다고 하길래'
'....언니 생각보다 쫌'
'속 좁아요'
'.....'
'뒤끝도 좀 있고'

오늘 섫이 계속 카톡부터 존댓말 쓰길래 왜이러나 했던 뽀였음. 말을 놨던것 같은데. 이런 이유일 줄이야.
항상 쿨하고 무덤덤하게만 보였던 섫이 사귀는 사이 됐다고 이런 모습도 보여주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꽤 재밌기도 해. 제 한마디에 다시 휙 존댓말로 바꾼게 조금은 귀엽기도 하고. 폰 쥔채로 키키 웃다가 왜 웃냐고 또 한소리 듣는 뽀. 입꼬리 억지로 내리려고 하는데 잘 안됨. 어딘가 고장난것처럼. Image
섫에게서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 그런 욕심은 사귀기 전에도 있었음. 다른 쌤들이랑 가까이 있는게 신경쓰이고, 제가 가장 많은걸 알고 싶었음. 이제와서 보면 처음부터 마냥 동료의 관계는 아니였다는 생각이 드는 뽀. 그렇다고 후회가 들지는 않아. 어쨋든 지금 연애를 시작했으니까.
웃음 좀 잦아들고 나면 헛기침까지 하는 뽀. 옆으로 누워있던 몸 엎드리더니 핸드폰 고쳐쥐고 말함.

'재밌어요. 혅정쌤이랑 혅정언니가 달라서'
'지엱쌤이랑 지엱이도 달라요'
'아 진짜- 말 놔도 돼요'
'응, 둘이 달라'
'어떻게 달라요?'

그거 듣고 고민하다가 뽀랑 똑같이 엎드려서 눕는 섫.
그 상태로 조금 뒤척이니까 이불 사부작거리는 소리 넘어오고, 뽀는 그거 듣고 있으니까 왠지 섫이 옆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음. 괜히 옆자리 쳐다봤다가 뚫어져라 쳐다보던 섫 얼굴 떠올라서 그대로 뜨거운 얼굴 베개에 푹 파묻는 뽀. 섫은 그런줄은 모르고 질문에 대한 답만 고민하다가 얘기함.
'더 예뻐'
'..에?'
'지엱쌤도 귀여웠는데, 지엱이는 더 그래'
'.....'
'그래서 더 좋아'

평소 말투나 표정들 생각하면 절대 안그럴것 같은데 섫은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음. 예쁘다고, 귀엽다고. 좋다고. 굳이 따지면 성격 자체로 표현이 많은 쪽은 뽀였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조금 달라지겠지.
섫도 사실 전의 연애에서 이만큼 직진이었던 적은 없었음. 근데 이런 형태의, 깊이의 사랑은 또 처음이라 섫의 사랑방식 자체도 달라진거겠지. 첫사랑은 아니지만 첫사랑 같은거야. 고요하고 잔잔했던 사랑이 저물고, 파도가 울렁이는 사랑은 뽀가 처음이었으니까. 그 사랑에 맞춰 조금씩 변해온 섫.
안되는걸 알면서도 거리두지 못했던 시간,
술기운에 욱해서 내뱉었던 고백,
차여놓고도 놓질 못해서 서성이던 순간.
그 모든게 제가 서른까지 딛고있던 사랑의
범주에는 없던 일이었음. 전부
지엱이였으니까. 그래서 무모할 수 있지 않았을까. 뽀는 그 말 듣고 얼굴 새빨개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음.
아 진짜. 왜이러지. 이 언니 연애 별로 안해봤다더니 그거 다 거짓말 아니야?

설레고 벅차면서도 그게 묘하게 억울해서 울상으로 이불만 북북 잡아당기는 뽀. 근데 그 소리가 핸드폰 너머까지 들려서 섫은 혼자 고개 돌려서 웃음참음.

아 진짜. 왜이러지. 귀여워 죽겠네. 얘 일부러 이러는거 아니야? ImageImage
각자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속마음이 가득 차버리는 둘. 먼저 정신차린 뽀가 흐트러진 머리 정리하면서 말함.

'..11시 58분이에요'
'2분 남았네'
'언니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아니야, 아까 갈아입고 누웠어'
'..통화 중에?'
'..안돼?'
'아니..아니에요. 영통도 아닌데. 그쵸. 아니지. 아니야."
놀라서 되물었다가 오히려 더 당황해서 물어오는 섫에 횡설수설하는 뽀. 갑자기 그 질문이 왜 튀어갔나 싶음. 통화하는데 갈아 입을 수도 있지. 눈앞에 있는것도 아닌데. 지엱아. 너 진짜 왜그래. 연애 처음 해보니. 아니. 여자랑 하는건 처음 맞긴한데. 아악. 혼자 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부딪히는 뽀.
연애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고, 성별 하나 바뀐것 뿐인데 뽀는 연애든 사랑이든 처음 하는것 같았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말이 튀어나가고, 혼자 생각했다 져무는 것들이 많아지고. 연애 오래 쉬었지만 나름 알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첫사랑을 앓는 그 시절 어린 김지엱이 된 기분이겠지.
방금도 그래. 갈아 입었다는 한마디에 도대체 한순간 생각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모르겠음. 제가 떠올린 생각을 한번 들춰봤다가 기함해서 눈 감아버리는 뽀. 미쳤나봐. 사귄지 이제 3일째인데. 너무 제 예상을 벗어나는 마음이라 덜컥 무섭기까지 하겠지. 섫은 뽀 말 듣고 볼만 긁적이는 중.
섫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음. 뽀가 갈아 입었다는 말에 너무 놀라니까. 이제 내 사람이 아니라는 제어도 없으니 당연히 생각이 좀 더 나아가서 걸려 버렸겠지. 사실 생각 자체는 섫이 노골적이었음. 그러고보니 우리 사귀자마자 키스했는데. 다음은 어쩌지. 언제지. 그런 생각을 서슴없이 담는 섫.
뽀는 그 생각을 아주 흐릿하게 해놓고도 파드득 놀란데 비해 섫은 오히려 태연할것 같지. 계속 여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다섯살 연상이라는게 이런 곳에서 티가 났음. 섫이 사랑을 몸짓에 녹이는 행위를 싫어하는 편이 아니기도 했고. 그에 비해 뽀는 아직은 마냥 부끄럽고 민망하겠지.
그런게 다 티나서 조금 놀려줄까 하다가 시간도 늦었고, 지금은 진짜 당황한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주제 바꿔주는 섫.

'내일 30분 정도 빨리 나올 수 있어?'
'내일? 왜요?'
'간단하게 아침 먹을까 해서'
'언니 아침 안먹잖아요'
'그 핑계로 30분 일찍 볼까 해서'
'..알겠어요 그럼 30분'
'데리러 갈게'
같이 출근하는게 몇달째인데 새삼 애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같이 한다니까 기분이 묘해지는 둘. 제대로 시간까지 정하고 나니까 어느새 시간이 12시를 지나있었음. 원래 잠이 더 많은 섫이라 소리 죽여서 하품하는데 그거 다 캐치하고 웃는 뽀. 슬슬 자자고 하면 섫도 푸스스 웃으면서 그럴까, 하겠지.
잘자라는 인사도 하고, 섫이 먼저 끊으라고 하니까 이불 뒤척이면서 고민하는 뽀. 그러다가 이건 제 방식대로 가자 싶어서 결국 말하기로 함.

'언니'
'응?'
'..오늘도 좋아해요'

뽀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루의 가장 이른 시간에 애정을 말하고 싶어했음. 가장 싱싱한 애정을 전해주고 싶어서. Image
아직 많이 서툴고, 당황스러운게 많은 연애지만 애정을 전할때만큼은 거침없는 뽀. 섫이 귀엽다, 예쁘다 같은 부수적인 표현이 많은데 비해 숨쉬듯 사랑을 말하는 편은 아니었음. 반대로 뽀는 부수적인 표현들은 부끄러워서 자주 못해도 애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는 망설임이 없겠지.
전화 끊기 전에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고,
하루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충전하듯 사랑을 말해주고 싶고, 연락을 자주 하고 싶고, 관심 주고 싶고. 그게 스물다섯 김지엱의 연애였음.

'..언니도 말해줘요'

그리고 그걸 똑같이 받고 싶어하는 솔직한 뽀의 사랑공식에 섫이 낼 수 있는 답은 하나였지.
'지엱아'
'네에'

나 이런거 싫어했는데.
대답해달라고 독촉하면 답답했는데.
지금 왜 하나도 안싫지. 왜 좋지.

'오늘도 사랑해'

너는 좋아고 나는 사랑인데.
그 무게 차이도 안느껴질만큼.
그게 전혀 개의치 않을만큼.
나 네가 진짜 좋나봐.

'오늘 보자'
'응, 이따 봐요'

나 너 많이 사랑하나봐.
그렇게 새로운 애정을 가득 충전한 둘은 전화 끊고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들것 같지. 다음날 개운하게 일어나서 준비하고, 괜히 거울도 평소보다 더 유심히 보고. 섫은 안늦으려고 신경쓰다가 결국 15분이나 일찍 뽀 집에 도착했음. 뽀도 약속시간 5분전에 나왔는데 섫 차가 떡하니 있어서 놀람.
대체 몇시에 온거야?. 놀라서 얼른 조수석 타보니까 화장 수정 중이었는지 급하게 파우치 닫는게 방금 온것 같진 않았음. 안전벨트 길게 늘리면서 살짝 눈 흘기는 뽀.

"몇시에 왔어요?"
"..10분전쯤?"
"약속시간 몇시였는데요"
"너도 빨리 와놓고 그래"
"저는 집앞이니까..!"
"배고프지. 얼른 가자"
뽀가 더 말하기 전에 얼른 차 출발시키는 섫. 뽀는 오늘은 괜찮은데 매일같이 이럴까봐 그게 좀 걱정임.

"내일부터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차가 있는데 뭐하러 그래"
"그럼 시간 맞춰서 와요"
"아침부터 혼나네"
"혅정언니"
"....."
"언니 자꾸 말돌릴거에요?"
"....."
"...왜 귀가 빨개져요?"
제대로 도장 찍어둘려고 열심히 얘기하는데 운전하는 섫 귀가 빨개져있음. 순간 제가 무슨 말실수 했나 싶은데 차 타서 몇마디 한게 다임. 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니까 섫은 큰 사거리에 신호 걸리고서야 숨 길게 뱉으면서 말하겠지.

"실제로 들으니까 또 달라서"
"네?"
"그 언니.."
본인이 말하면서도 어색한지 손톱 탁탁대는 섫. 통화할때는 마냥 좋기만 했는데 바로 옆에 앉아서 언니, 언니 하니까 심장을 얻어맞은 느낌이었음. 뽀는 오히려 주말동안 계속 언니라고 했더니 입에 붙어서 별 생각 없었는데. 계속 여유로워 보이던 섫이 언니 한마디에 뚝딱이는게 재밌기만 한 뽀.
"언니 소리 좋아하는구나"
"아니 그 단어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럼 싫어요?"
"..좋아. 좋은데,"
"좋아요 언니?"
"....."
"혅정언니-"

당할땐 속수무책이지만 틈만 보이면 금방 뛰어오르는 뽀. 섫이 주춤대니까 더 신나서 언니언니 난리가 남. 덕분에 섫은 이마 짚으면서도 헛웃음 터트릴듯.
진짜 어쩌다 다섯살 연하한테 감겨서. 언니 소리에 흐물흐물 녹고 있는지. 계속 이러면 진짜 출근이고 뭐고 얘 데리고 어디로든 떠날것 같아서 간신히 자제시키는 섫. 아침 뭐 먹을까 하다가 간단하게 샌드위치 먹자고 해서 자주 가는 별다방 dt로 들어감. 계산은 벼르고 있던 덕분에 뽀가 했음.
내려서 먹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시간 너무 잡아 먹을것 같아서 학교 근처 한적한 골목에 잠깐 파킹하고 샌드위치 먹는 둘. 섫은 여유로운 브런치 생각하고 일부러 일찍 나오게 한건데 차에서 불편하게 먹고 있으니 조금 미안해짐. 두손에 샌드위치 들고 와앙 먹는 뽀 머리 쓰다듬고 말하는 섫.
"차에서 먹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왜요. 완전 좋은데요?"
"여유있을 줄 알았어. 역시 아침은 무리인가 봐"
"여유있는건 주말에 하면 되죠"
"..응, 그러자"
"그리고 차에서 먹는게 왜요. 언니 차도 이렇게 넓은데. 둘만 있을 수 있고"
"너 괜찮으면 됐어"
"차에서 운전만 하라는 법 없잖아요?"
신경쓰이던걸 한순간에 턱턱 덮어준 뽀 덕분에 섫도 조금 마음 편하게 샌드위치 먹기 시작함. 뽀는 솔직히 진짜 괜찮았거든. 어디서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시간을 보내느냐가 훨씬 중요한거니까. 그래도 섫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돼서 그거 없애주겠다고 쫑알쫑알 말 더 이어가는 뽀.
"차에서 영화도 볼 수 있고, 요즘은 그 뭐야. 캠핑도 하잖아요"
"캠핑 좋아해?"
"음, 관심은 있는데 아직 안해봤어요"
"다음에 같이 한번 갈까?"
"헐 좋아요. 저 친구가 완전 캠핑광이거든요. 얘기만 많이 들었는데!"
"나도 한번도 안가봤어"
"자리만 잘잡으면 진짜 재밌대요"
한마디에 신나서 와다다 얘기하는 뽀가 귀여운 섫. 몸 아예 틀어서 하는 얘기에 적당히 맞장구만 쳐줌. 뽀는 친구한테 들은 캠핑 재밌는 이야기 다 전해주는 중.

"아 근데 차박가면 별일이 다 있더라고요"
"왜?"
"친구 옆에 차가 커플이었는데 일출시간부터 얼마나 그러는지 차가 막 들썩...아,"
항상 섫한테 주변이야기 들려주는걸 좋아했던 뽀. 늘 그랬던것처럼 얘기를 했는데 문제는 둘 사이가 달라졌다는거. 재밌는 썰처럼 지나갈 이야기가 이제는 둘한테 해프닝이 아니었음. 그러니까. 굳이 따지면 더이상 둘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거란 보장이 없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그런 이야기였지.
그걸 뽀도 아니까 말을 뚝 멈춘거였음. 특히나 지금 우리도 아침에. 차 안에 있는데. 나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됐나보다. 차마 섫 쳐다보지도 못하고 앞만 쳐다보다가 조심히 샌드위치 내려놓더니 섫한테 등보이고 구석에 쪼그라드는 뽀. 창문에 머리 콩 기대고 터질것 같은 얼굴은 밑으로 숨겨버림.
그냥 먼저 가버릴까. 그러면 뭐해. 옆자리인데. 점심도 같이 먹을텐데. 사귀는 사이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피할 구멍이 없어서 절망하는 섫. 음료까지 뒤에 조심히 내려두고 두손으로 얼굴 감싸더니 거의 우는소리 내면서 다시 쪼그라듬. 섫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말뜻 알아채고 입술 꽉 깨물겠지.
지엱아.
너 진짜 왜그래.
나 그렇게 급하게 할 생각도 없고,
여유롭게 가고 싶었는데.
너 왜 자꾸 이렇게 건드려.
끝이 어딘줄 알고 자꾸 긁어.

사귀는것 만으로도 몇달의 욕심이 채워져서 진도에 대해서 급한 마음 없었는데 뽀가 이러니까 불이 붙는 기분인 섫. 출근전에 이러면 일을 어떻게 하라고. Image
그렇다고 마냥 애닿기엔 뽀가 말실수한걸 너무 잘아는 섫. 저도 아마 뽀랑 이런 사이가 아니었으면 저런 말 들어도 아무생각 없었을거임. 당장 아랫배가 뒤엉키긴 하지만 그것보단 지금 웅크린 뽀를 풀어놓지 않으면 하루종일 부끄럽다고 제 눈도 못마주칠것 같음. 음료 다 내려놓고 뽀 어깨 잡는 섫.
"저기"
"그!!..아무말도 안하면 안될까요"
"우리 출근해야해"
"..언니 먼저 갈래요?"
"같이 갈래"
"지금 죽을것 같아서 그래요"
"나 봐봐"
"싫어요"
"지엱아"
"제바알"
"언니 봐봐"

다정한 목소리에 웅크렸던 몸 풀고 딱 반만큼만 도는 뽀. 섫은 그게 귀여워서 웃다가 팔에 힘줘서 아예 뒤돌게 함.
이거 봐. 눈도 못마주치고. 눈 밑으로 내리깐채로 손톱으로 손등만 누르고 있는 뽀. 섫은 지금 무슨말을 해도 안들릴거란 확신이 들어서 조금 작전을 바꾸기로 했음. 익숙해지는걸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지.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놀라지 않는 상황을 조만간 만드는 수 밖에.
속으로 어떠한 다짐을 끝내고 뽀 턱 잡아서 들어올리는 섫. 다가가서 살짝만 얕게 머금고 키스하겠지. 그러다 금방 떨어지고 뽀 손에다 음료 다시 쥐어줌.

"늦겠다. 슬슬 가자"
"...커피맛 나요"
"응, 너는 블랙티맛"

오고가는 농담에 그제야 긴장이 좀 풀리는지 먼저 웃어보이는 뽀.
금방 학교 도착해서 내리기 직전에 섫이 먼저 물었음.

"비밀인거지?"
"뭐가요?"
"우리 사귀는거"
"...일단은요"
"학교에서는 혅정쌤 해야겠네요"
"저도 지엱쌤 할게요"
"그럼 지엱이는 퇴근하고 봐"
"언니도 이따 저녁에 봐요"

연애모드 off. 비밀연애모드 on.
진짜 시작되는, 그들의 교내연애. ImageImage
"뭐지?"
"왜요?"
"둘이 뭐지?"

점심 먹고 다같이 운동장에서 초밥하러 가는 길. 섫긍뽀추 순으로 나란히 가는데 긍이 갑자기 팔짱을 끼면서 중얼거렸음. 그러더니 한발자국 물러서서 끝에 있던 추 팔을 잡고 뒤로 당겼음. 앞에서는 섫뽀가 애매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고, 긍은 둘을 번갈아 쳐다봄.
섫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한데 뽀는 긴장한 티가 확 났음. 어색하게 입꼬리 올리는데 그게 더 어색해보여. 그거 캐치한 긍은 눈썹을 한번 구겼음. 추는 뭔지 몰라서 긍만 쳐다보고 있고. 긍이 스읍 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다시 말함.

"둘이 뭐.."
"네?"
"싸웠어요?"

속으로 안도의 한숨 쉬는 섫.
뽀는 그걸로도 충분히 어버버했지만 섫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음. 사귀냐고 물어봐도 할말 없었을것 같거든. 사귀고 꼬박 일주일이 흘렀고, 그 시간동안 둘의 행동을 보면 정말 이상한게 많았음. 이유는 비밀연애가 처음인 뽀 때문이었지. 학교에서는 눈도 제대로 못보는 연하 때문에.
섫은 계속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비밀이라는게 익숙했지만 뽀는 그렇지를 못했지. 연애 경험도 별로 없는데 그 와중에 비밀로 하려고 하니까 하루에도 몇번씩 뚝딱거렸음. 섫이 옆자리에서 말이라도 걸면 어깨부터 움찔하고, 급식 먹을 때도 묘하게 대각선 자리를 고집하고. 아무튼 뚝딱뚝딱.
섫이 아무리 자연스럽게 하려고 해도 뽀가 에러가 나니 주변에서 눈치채는것도 당연했음. 특히나 눈치가 빠른 긍이었으니. 대충 별거 아닌 식으로 넘겨야 겠다고 생각하는 섫. 비슷한 상황 겪은적 있었고, 수습할 자신은 있었음. 뽀한테 좀 더 주의를 줘야 겠다고만 생각하겠지.
저는 괜찮지만 계속 이러면 뽀가 더 불편해질게 뻔했음. 앓아온 시간만큼 오래가고 싶었고, 그걸 위해선 첫단추가 중요했으니까. 늘 해왔던 비밀연애처럼 만들어야겠다 다짐하는 섫. 근데 섫보다 먼저 입을 연건 뽀였음. 애매하게 떨어진 거리를 좁히고, 섫 소매 끝을 꼭 붙잡고 서서.
"싸운거 아니에요.."

부끄러워 죽겠다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해. 당장 우리 사귀어요 라는 말이 나올것 같은 얼굴로 해명을 해. 섫이 놀래서 쳐다보니까 뽀는 입술을 한번 꾹 물었다가 다시 이어서 말했음.

"안싸워요"

그러면서 소매를 잡던 손이 내려와서 섫 손바닥과 손목 사이를 잡았음. Image
일주일동안 뽀는 그게 참 어려웠음. 비밀연애 처음이라 적응도 안되고, 어디까지 가까워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이미 연인이 된 후라 전에 어떤 관계로 지내고 말했었는지가 희미해져서. 그 적당한 거리를 찾고 있었음. 섫은 첫날부터 포지션 확실하게 사무적인 태도와 무던한 행동을 취했지만 뭐랄까.
저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음. 더 깊이 파고들면 그렇게까지 하고싶지 않은게 맞아. 섫은 짝사랑에 눈이 돌았을 때보다는 연애라는 안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니 좀 더 쉽게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뽀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음. 섫이 부르면 놀라거나 눈을 못보고 삐걱댄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어.
비밀이라는 이유로 느껴지는 간극. 그게 적응이 안됐을것 같지. 학교 밖이나 둘이 있을 때 지엱아, 불러주는 목소리와 학교에서 지엱쌤,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달랐거든. 바깥에서는 제가 뭘해도 더운 시선을 보내면서 옆자리만 앉으면 무신경해지는듯한 표정도 계속 신경이 쓰였음. ImageImage
저렇게 버튼 누른것처럼 바뀌나.
저게 되나. 저게 된다고.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데 자꾸 그래.
저렇게 숨겨지는 크기인가 싶고.
비밀연애가 능숙해보이는 것도 싫고.
솔직히 그래. 서운했음.
근데 말은 안했겠지. 연애 초기인데다 섫처럼 굴어야 완벽한 비밀연애가 된다는건 저도 알았으니까.
일주일동안 나름 감정을 덜어내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연습을 하고있던 뽀. 조금씩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 마음을 쏟느라 주변까지 시야가 넓지 않았던게 문제였음. 긍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니까 뇌가 멈춰버렸고, 뒤늦게 질문을 이해하고 나니 다른것보다 억울함이 제일 먼저 들었음.
어젯밤에도 2시간을 통화했는데.
저번 주말 내내 자는시간 빼고 계속
만나서 데이트를 했는데.
오늘 아침까지도 같이 출근했는데.
우리가 싸워? 싸웠냐고?

비밀연애에 익숙해지는 것도 버거운데
그 과정에서 현실과 다른 의심을 받게되니 갑자기 마음이 치닫았음.
근데 섫 표정을 보니 그 와중에도 무표정해. 당장 입을 열면 '우리가 왜 싸워요' 하며 그럴 사이도 아니라는듯 선을 그을것 같았음. 그게 싫어서. 비밀연애를 위해서는 이러면 안되는다는거 아는데 그어지는 선이 자꾸 마음 위를 지나다녀서. 결국 사무적으로 쌓던 벽돌을 내려놓고 섫을 붙잡았음.
잠깐 풀어진 틈으로 설렘 가득 묻은 감정이 쏟아졌고, 제가 느끼기에도 목소리에 봄바람이 불었음. 뱉어놓고 어쩌지 싶었지만 후회는 안해. 이제 사귄지 일주일 만에 싸웠다는 오해를 남기기 싫었고, 너무 완벽한 비밀을 지키는 섫에게 은근하게 느끼던 서운함도 슬슬 한계치였음.
뽀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섫은 당황함. 제가 생각하는 비밀연애는 이런게 아니었거든. 학교에서 지엱쌤이 아닌 지엱이가 옆에 서있는것 같았음. 지금까지 섫에게 비밀연애는 감정을 제외시키는 단어였음. 특히나 현실이 겁나서 숨기는 경우라면 더더욱. 항상 조심하고 티내지 않으려고 했음.
제가 두렵지 않다 해도 뽀가 아직 세상 밖이 겁난다고 하면 비밀을 지켜야 했음. 그래서 일주일동안 출근길에 감정을 잠궈놓고 퇴근길에 풀어내며 살았음. 그게 쉬웠던건 아니야. 당연히 어려웠지. 그렇게나 사랑하고 원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사무적으로만 대한다는게 어떻게 쉽겠어.
그래도 경험이라는건 사람을 발전시키는 법이었지. 비밀연애를 해본게 자랑은 아니지만 덕분에 감정을 숨기는 것에 있어 익숙해지기는 했음. 뽀를 위해서 더 칼같이 감정을 숨겼던건데 뽀가 먼저 눈이나 손길에 감정을 쏟아내니까 당황스러웠음.

이러면 안되는데.
너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긍이나 추가 그럴것 같지 않지만 혹시나 알게되면 안좋은 일이 생길까 봐. 말 한마디라도 날이 설까 봐. 그게 뽀는 전혀 익숙하지 않을거고, 혹시나 그 작은 균열이 관계에 영향을 줄까 봐. 정말 작은 걱정이 순식간에 커져서 머리가 복잡해진 섫. 긍이 보기전에 잡혀있는 손목 살짝 뒤로 빼버림.
섫도 전 연애할때 이정도로 조심을 했던건 아니었음. 근데 뽀가 여자와 만나는 것도 처음이고, 그게 제 짝사랑의 걸림돌이었다는걸 알아서 더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거겠지. 결국은 이제 피어 오르기 시작한 뽀의 감정이 긁힐까 봐 그게 무서운거야. 섫도 이만큼 놓치기 싫은 사람과 사랑은 처음이라서.
뽀가 빠져나가는 손목에 조금 상처받은 얼굴로 쳐다보는데 애써 못본척 긍만 쳐다보고 있는 섫. 정말 혹시나 의심을 하거나 하면 수습할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음. 근데 긍이 오히려 팔짱을 풀더니 그래. 웃으면서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그쵸? 둘이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아니 요즘 혅정쌤도 좀 냉랭하고 그러길래 혹시나 싸웠나 했죠"
"둘이 그랬었나?"
"그랬다니까요. 소졍쌤은 눈치 좀 키워야 돼요"

긍이 둘을 이상하게 생각한건 뽀 때문만은 아니었음. 뽀가 뚝딱거린 탓도 있지만 섫이 너무 사무적으로 뽀한테 얘기하는게 이상했거든. 원래 그런적이 없었으니까.
섫은 뽀를 좋아한다고 자각하기 전부터 남들과 뽀를 대하는게 달랐음. 그 어느날엔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었을지라도. 늘 뽀한테는 조금 흐물거리곤 했는데 섫이 비밀연애라는 타이틀에 너무 집중하느라 감정을 아예 지워버렸고, 남들과 똑같이 뽀를 대하니 오히려 그게 이상하게 보였던거겠지.
뽀가 조금 감정을 내비추니까 그게 더 긍한테는 자연스러워 보였고, 의심은 쉽게 거둬졌음. 그럼 둘이 평소처럼 오붓하게 시간 보내라며 긍이 추를 끌고 먼저 가버리고, 매점으로 가는 둘을 바라보던 섫은 조금 멍해졌음. 제가 해왔던 비밀연애라는 단어가 전부 낯설게만 느껴졌음.
사고회로가 너무 단순했던거지. 사랑에 급해지면 부수적인 생각들이 사라지니까. 이전의 비밀연애와는 분명 상황도, 감정도 다른데 그 예전 정의대로 움직이려고 하니 삐걱이는게 당연했음. 같은 교무실에, 이렇게 깊게 생활이 엮인 사람과 연애하는건 섫도 처음이었어서.
우리에겐 애정이 있는게 당연한거구나. 내가 사랑을 조금 섞어도, 그렇게 벽을 치지 않아도. 우리를 연인이라 정의하는건 쉽지 않겠구나. 그때서야 정리가 된 섫. 머리가 맑아져서 옆을 보는데 뽀가 입술을 깨물고 있어. 뿌리쳤던 손목이 떠올라. 아차 싶지. 급하게 뽀 손목이 아닌 손을 꼭 잡아 봐.
뽀는 내쳐진 손길이 속상해서 당장 이 손도 뿌리치고 가버리고 싶은데 꾹 참고있음. 원래라면 그랬을텐데 뽀도 섫에게 향한 감정이 꽤 진지했으니까. 아직 사귄지 얼마 안됐는데 그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고, 그럴 상황까지는 아니라는것도 알아. 그리고 일단 섫 눈이 다시 더워져서 마음이 녹았음.
그래도 먼저 말꺼내긴 싫어서 쳐다보기만 하니까 한참 누그러진 섫이 말을 건넴.

"..휴게실 갈래요?"

하루에 한번 정도 찾던 곳.
학교 안에서 유일하게 선생님이 아닌
혅정언니와 지엱이가 되는 곳.
섫은 지금 연인으로 대화를 하자는 뜻이었고, 뽀도 그게 필요할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임.
잡았던 손은 살짝 내려놓고 같이 휴게실로 향하는 둘. 복도에 사람 없는거 확인하고 문도 꼭꼭 잠구고. 구석에 있는 소파에 나란히 앉음. 무릎 위에 있는 손만 만지작대는 뽀 보다가 그 위로 손 얹어놓고 말하는 섫.

"지엱아"

다정해진 목소리에 입술이 삐죽거리는 뽀. Image
실수를 했지만 상황을 크게 벌리고 싶지 않았음. 싸웠냐는 오해를 싸웠다는 사실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는 섫. 평소의 여유롭고 느긋한 연상으로 돌아왔음.

"손 뿌리친거 미안해"

일절 변명도 없는 깔끔한 사과. 그리고 이어지는 투명한 불안과 걱정들. 섫은 숨기는거 없이 전부 말해줄것 같지.
어쩌다 손을 뿌리쳤는지, 왜 비밀연애에 더 철저하게 굴었는지, 어떤게 걱정이었는지.

"혼자 좋아한게 길어서 조금 불안했나 봐"
"...언니 저는,"
"알아. 그런걸로 감정 안바뀌는거"
"....."
"잠깐 잊었던거야"
"....."
"미안해, 이제 안까먹을게"

모든 이유가 사랑임을 말해주는 눈빛과 목소리.
그 얘기를 다 듣고나니 뽀도 어느정도 이해가 됐음.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짝사랑을 해온 섫이었고, 분명 그 시간이 남기고간 잔해가 있었을테니까. 그런 이유로 불안해하는건 속상하지만 이것도 결국 시간이 약인 문제라 뽀도 더 쳐지지 않고 일어나기로 했음. 이제 제 마음을 들려줄 차례.
무릎에 있던 시선을 올려서 섫을 보고 하나하나 말을 하는 뽀. 그렇게까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느냐고, 갑자기 그러니까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그런 말을 나열하다가 잠시 멈추고, 마음을 꽁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를 꺼내 봐.

"안좋아하는것 같은 언니 보는게 좀.."
"....."
"싫어요. 서운했어요."
진지하게 듣다가 그 말에 피식 웃어버리는 섫. 눈치보면서 한다는 말이 너무 귀엽잖아. 긴장했던게 풀려서 등받이에 기대 너털웃음 짓겠지. 그럼 이제 또 줄줄이 말 이어가는 뽀. 몸까지 옆으로 돌려서 쇼파이 기대서는 쫑알쫑알.

"언니 안좋아하는척 너무 잘해요"
"....."
"..그게 숨겨지나 봐"
서운함의 밑바닥까지 탈탈 털어서 보여주는 뽀. 섫은 그게 사랑스러워서 하아.. 하면서 손으로 눈가를 덮었음. 당장 어디로든 데려가고 싶어졌음. 심장이 멋대로 앞으로 뛰었다가 옆으로 드러 눕는것 같았음. 입술까지 깨물고 참는데 팔까지 잡아오는 뽀. 덕분에 섫은 손가락 틈으로 뽀를 보게 됐고.
"저는 막 웃음도 못참겠던데.."
"....."
"언니는 왜 잘 참냐구요"

서운함 그득한 뽀 얼굴과 목소리에 이성이 쿠궁 하고 내려앉는 섫. 손가락 틈이 벌어지고, 손이 쇼파로 툭 떨어지고, 깨물었던 입술에 힘이 풀려. 그대로 몸 일으키더니 뽀 어깨 잡아서 등받이에 붙이는 섫. 그대로 어깨 옆을 짚고서. Image
두팔 안에 갇힌 뽀를 말없이 내려다 보는 섫. 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밀려 와.

지엱아.
너는 내가 뭘 참고있는지 모르지.
너는 내가 어디까지 참고있는지 모르지.
네가 웃음 하나 참을 때,
내가 몇가지를 참는지 모르지.

이걸 전부 전해줄 수 있을만한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음.
말보다 솔직한건 행동이겠지.
지금 감정을 알려줄 수 있는거.
그건 아무래도.

"지엱아"
"..네?"
"눈 감아"

알려줄게. 내가 뭘 참는지, 어디까지 참고 있는지.

"키스할거니까 눈 감아"
"....."
"싫으면 뜨고 있고"

곧바로 감기는 네 눈을 보면,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될것 같아. ImageImage
빼빼로 데이를 이틀 앞둔 날. 연애도 오랜만이라 세포가 날뛰는데 안그래도 무슨데이에 진심이었던 뽀. 근데 심지어 다른것도 아니고 빼빼로잖아. 우리의 첫뽀뽀, 첫키스까지 함께 했던 빼빼로. 괜히 애틋해져서 뽀는 일주일 전부터 설레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주문했음. 직접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부러 섫한테는 빼빼로 얘기도 안꺼내고 있었음. 서프라이즈로 주면 더 좋아하겠지 싶었거든. 근데 이제 재료들까지 완벽하게 준비됐던 이틀전 밤. 저녁먹고 헤어지기 싫어서 동네 산책 하는동안 물티슈 사야한다는 섫 덕에 편의점에 들리게 됐음. 진열대는 빼빼로데이 행사상품이 가득 차있었지.
뽀는 하나씩 보면서 내가 더 맛있게 만들어줄거라고 다짐했고, 섫도 계산하면서 가득 쌓여있는 빼빼로를 봤음. 그리고 별말없이 지켜보다가 편의점 나오면서 말했음.

"곧 빼빼로데이였구나"

그런 말을 무심한 표정으로 해.
추워진 날씨에 혹시나 뽀가 손 시릴까봐
같이 사온 손난로를 쥐여주면서.
행동은 난로처럼 다정한데 하는 말은 무드가 없어.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온갖 빼빼로 준비물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뽀. 섫 표정보니까 진짜 몰랐던것 같아. 나 혼자 오버한건가 싶어. 빼빼로데이가 우리한테 나름 큰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섫이 생각도 안하고 있던 표정이라 조금 시무룩해지는 뽀.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데 또 서늘해진 손 위로 난로를 덮어주고 데워주는건 애정이 넘쳐 흘렀음. 제 손 따뜻하게 해주느라 정작 빨개져 있는 자기 손등은 모르는 섫을 보니 투정이 나오지 않겠지. 마음을 의심하기엔 이미 사랑받고 있고, 세심함을 탓하기엔 섫이 다른 부분에서는 너무나 섬세해서.
그리고 지금 불쑥 서운함을 토해내고 이틀 뒤에 빼빼로를 받아도 별로 기쁠것 같지가 않았음. 엎드려 절받는거나 다름없잖아. 연애라는게 정답이 없는거라 무슨데이를 다 챙겨야만 맞는거라고 할 수도 없는거고. 솔직히 기념일도 아니고. 근데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해소 안되기는 해.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뽀가 말 없어지니까 걷다가 말고 멈춰서 허리 숙여 들여다보는 섫. 뽀는 앞만 보고 갔다가 옆에서 슥 다가오는거 보고 눈 크게 뜨는데 섫은 와중에도 그게 귀여워. 잡은손 옆으로 살살 당기면서 그래.

"응?"
"네?"
"왜그래"

다정함이 가을 같아.
높고 청명한 하늘 같고. Image
걱정이랑 애정이 뒤섞인 섫을 보니 마음이 녹는것 같은 뽀. 완벽히 서운한게 사라진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섫을 보니까 서운함 느끼는것 자체가 미안해지겠지. 주는만큼 똑같이 받을 수 없는게 연애인건데. 몇개월을 받는거 하나없이 짝사랑을 해왔던 섫인데 이걸로 더 꽁해있기 싫었음.
괜찮은척은 적성에 안맞는 뽀. 진짜 괜찮아지니까 그제야 웃으면서 고개 젓고 섫 팔에 붙어서 머리 기댐. 섫은 궁금하긴 한데 뽀 얼굴에 군더더기가 없어 보여서 머리만 살짝 쓰다듬어 주고 말겠지. 둘이 또 헤어지기 싫어서 동네를 네바퀴나 산책하고, 집가서 준비물을 마주한 뽀는 고민을 했음.
너무 부담스러우려나?

섫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제 빼빼로를 바리바리 만들어 주면 혹시나 부담스러워 할게 걱정됐음. 섫한테 받을 욕심은 사라졌는데 주려고 사놓은게 있잖아. 어쨋든 여전히 기념하고 싶은것도 맞고. 고민하다가 이제와서 무르는건 또 아닌것 같아서 그냥 만들기로 함.
다음날 저녁 데이트까지 약속 핑계대고 미뤄버린 뽀. 집앞에 도착해서도 아쉬움 가득하게 바라보는 섫 때문에 마음 약해질뻔 했지만 이리저리 눈치보다가 뽀뽀 한번 해주고 얼른 도망갔음. 섫한테는 친구 만났다고 하고 초콜릿이랑 막대 만나러 가는 뽀. 식탁 다 어지르면서 우당탕 열심히 할것 같지.
섫이 은근 단거 귀신인거 알아서 다양하게 만드는 뽀. 만드는데 몇시간이 걸리고, 끝나고 보니 양이 무슨 한봉지가 나옴. 이거저거 다 먹이고 싶은 욕심에 생각보다 많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다 만들고나니 뿌듯함. 사진도 여러개 찍고, 셀카도 같이 찍어서 습관처럼 섫한테 보내려다가 놀래서 폰 던짐.
연애초 답게 서로 옆에 없을때는 뭐 한다면서 사진 보내주는게 습관이라 스포할뻔한 뽀. 혹시 실수할까봐 사진도 드라이브에 옮겨놓고 갤러리에서 지워버림. 사귀고서 나름 처음하는 이벤트 아닌 이벤트인데 성공하고 싶었거든. 포장까지 예쁘게 해서 쇼핑백에 고이 넣어놓고 잠드는 뽀.
근데 몇시간을 신경써서 요리하느라 무리를 했나. 또 새벽까지 통화를 한게 실수였나. 다음날 알람 하나 못듣고 늦잠 자버린 뽀. 눈 떠보니 섫한테 곧 출발한다는 톡이 와있었고, 그대로 스프링처럼 일어나서 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감. 섫이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는거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각이었음.
시간은 없는데 섫한테 차에서 급하게 화장하는 모습 보여주기는 싫은 뽀. 1초까지 쪼개가며 간신히 시간 맞춰 준비 끝낼것 같지. 섫이 조금 기다리긴 했지만 다행히 지각은 면할 수 있었음. 안심하면서 섫이랑 학교 들어가는데 갑자기 섫네 반 학생이 와다다 뛰어와서 섫 앞을 가로 막았음.
"해피 빼빼로데이!!"

평소에도 섫한테 무슨데이마다 챙겨주는 학생이었음. 얼떨결에 그거 받아든 섫은 고맙다며 빼빼로를 흔들었고, 옆에서 보던 뽀는 선생님껀 없냐고 괜히 장난쳐.

"쌤은 혅정쌤한테 받으세요"

괜히 삐죽하고 도망가는 학생 귀엽다는듯이 쳐다보는 둘.
뽀도 거기 딱히 질투는 안해. 학생이기도 하고, 그거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그리고 제가 더 맛있는 빼빼로를 줄거니까. 그렇게 흐뭇해하면서 계단 올라가는데 등골이 오싹해. 제 손이 너무 가벼워. 놀라서 내려다보면 한손에는 핸드백 뿐이야. 뽀 얼굴 이 하얗게 질려갔음.

어제 만든 빼빼로가 없어.
차에 두고 왔나. 어디 떨어트렸나. 머리 굴려보는데 기억이 닿는 곳은 아침에 봤던 식탁 위. 분명 까먹지 말라고 그 위에 떡하니 놔뒀는데 아침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놓고 와버렸음.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데. 오늘 진짜 주고 싶었는데. 갑자기 허무함이 와르륵 쏟아지는 뽀.
순식간에 표정 굳어지는데 바로 조례를 가야했음. 연애에서 멘탈 깨진걸 사회는 봐주지 않았으니까. 일단 마음 추스리고 섫이랑 둘만 아는 눈인사 주고받고 김지엱 선생님으로 눈빛 변하는 뽀. 아무렇지 않게 조례하고, 애들한테 빼빼로 폭탄 받고 하는데 그때마다 속으로는 놓고온 빼빼로 생각이 남.
안그래도 인기 많은 선생님들이라 1교시 끝날 때마다 각자 책상에 빼빼로 쌓여가는 둘. 다른 사람들은 누가 더 많이 받냐 이런걸로 내기 중인데 둘은 오전에 내내 수업이라 신경쓸 시간도 없었음. 쉬는시간에도 받은 빼빼로 가져다 놓고, 찾아오는 빼빼로들 받느라고 쉬지도 못하겠지.
섫은 솔직히 진짜 빼빼로데이에 별 생각 없었음. 빼빼로 자체가 우리 사이에 큰 역할과 의미가 있는건 맞지만 그렇다고 빼빼로데이가 기념일인건 아니니까. 빼빼로의 의미가 가벼운게 아니라 무슨데이를 기념보단 상술로 여기는 마음이 컸음. 성격이고 성향인거지. 뽀와 다른거지 틀린건 아니니까.
근데 쉬는시간마다 뽀 앞에 쌓여가는 빼빼로를 보며 문득 생각하는 섫. 저 많고 많은 애정들 속에 내것이 하나도 없다는게 이상하지 않나. 마음으로 따지면 내가 제일 클텐데. 한번도 누군가를 보고 이런 유치한 생각이 든적 없었는데 뽀 주변에 쌓여가는 빼빼로와 쪽지를 보니 기분이 좀 그래.
정작 제 책상에도 빼빼로가 쌓여가는데 거기 뽀가 준 마음이 없는건 신경쓰지 않는 섫. 뽀가 저를 누구보다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으니까. 물론 뽀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테지만 괜히 한번 더 알려주고 싶었음. 오늘따라 왠지 더 바빠 보이는 뽀한테 깜짝 선물을 주고 싶기도 했고.
결국 점심시간 직전에 수업 없는 틈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섫. 워크샵 때도, 처음 사귄 날도 함께 먹었던 빼빼로를 사서 돌아옴. 그리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종 울리기 직전에 작은 쪽지 하나 써서 붙여놓겠지. 뽀는 4교시 꽉 채워서 수업하느라 진이 빠진 얼굴로 교무실로 들어왔음.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서 빠져 나가고, 뽀는 한아름 받아온 빼빼로 내려 놓으면서 섫한테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함. 그럼 그 말에 대답은 안하고 들고있던 빼빼로 뽀 앞에 놔주는 섫. 뽀는 이게 뭔가 싶어서 들었다가 붙어있는 쪽지를 발견함.

-빼빼로 게임 할래요?

그 뒤로 보이는 장난스러운 얼굴. Image
근데 뽀는 내용 보고도 이걸 섫이 줬다고 생각 못할것 같지. 섫이 너무 빼빼로데이에 관심없어 보이기도 했고, 아침에 따로 빼빼로 챙겨오는걸 못봤으니까. 선택지가 좁아지니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버림. 어떤 학생이 이런 진심성 장난을 쳤나 싶어서 입술이 툭 튀어나와.

"이거 누가 줬어요?"
학생한테 이런 마음 드는 제가 우스운데 좀 그렇잖아. 아무리 그래도 빼빼로게임이 뭐야. 그건 제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더 예민해지는 뽀. 마음에 안든다고 써붙인 얼굴로 쳐다보니까 섫은 당황함. 그러다 뽀가 몇반이에요? 누구? 물어보고서야 오해하고 있다는걸 깨달았음.
섫은 웃음이 나. 무슨 오해를 한건지부터 그에 대한 반응까지 어느 하나 귀엽지 않은게 없었음. 다섯살 연하라고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싶어. 섫이 입술 깨물고 웃음 참으니까 뽀는 그게 또 마음에 안들지. 장난치는거 아니고 진지한데. 스물다섯 먹고 학생한테 질투하는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삐딱하게 팔짱 끼고서 추궁하는데 섫 대답이 더 열 오르게 해.

"우리 반이에요"
"허? 쌤 반 누군데요"
"쌤도 아는 사람"
"그러니까 1번부터 29번 중에 누구냐고요"

어느정도 비밀연애 익숙해졌다고 서로한테만 들리게 대화 주고 받는 둘.
뽀는 섫네 반이라니까 눈에서 불 나오고 난리났음.
그것도 그냥 희미하게 웃으면서 보고있던 섫. 끼익 하면서 의자에 바로 앉더니 아까 그 포스트잇 세장 뜯어서 뭔가 끄적임.
그리고 느릿하게 일어나더니 뽀가 앞에 내밀고 있는 빼빼로 끝을 잡더니 그 위로 포스트잇을 하나씩 붙여줬음.

'여자친구 글씨도 모르고'

아주 작게 말을 속삭이면서.
그럼 그제야 원래 있던 포스트잇 보는데 글씨체가 익숙해. 자기 성격 닮아서 얇고 다정한 글자들. 혅정쌤이 쓴건가? 그런 생각이 뒤늦게 들때쯤 그 위로 포스트잇이 붙여졌음.

-김혅정이
-김지엱에게

두번째까지 연달아 붙여놓고 한템포 쉬더니 마지막 포스트잇을 붙이는 섫.

-빼빼로게임 할래? Image
원래 있던 포스트잇 위를 덮은 마지막 글자에 얼굴이 화르륵 불타는 뽀. 예전 생각이 또 파도처럼 밀려와. 질투도 다 가라앉아 버리고 가만히 침만 삼키고 있으니까 섫이 다시 손가락으로 포스트잇을 가리키겠지.

"응?"

그럼 뽀는 섫 손끝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음.

"..저 배 안고파요" Image
결국 점심도 고르고 여자휴게실로 향하는 둘. 문까지 착실히 잠궈놓고 안쪽 쇼파에 앉아서 밥은 무슨 서로 입술 탐하느라 바빠. 한번은 뽀가 물었다가, 한번은 섫이 물었다가. 하나도 남기는법 없이 키스로 넘어가고. 뽀는 잠시 놓고 온 빼빼로도 잊고 섫과 나누는 시간에 집중함.
둘다 소파에 옆으로 기대 앉아서 하다가 자세가 불편했는지 먼저 등받이에 몸 기댄 섫이 허벅지를 두드렸음. 올라와서 앉으라는 소리인거 알아 들었는데 민망해서 입술 감춰물고 고개 젓는 뽀. 근데 섫이 허리 안고있던 팔에 살짝 힘주면서 괜찮다고 달래니까 결국 살짝 포개어서 앉게 됨.
그 상태로 섫이 다시 고개 꺾어 들어오는데 그때 딱 놓고온 빼빼로 생각이 나버린 뽀. 순간 멈칫하는데 바로 캐치하고 뒤로 물러나는 섫. 놀랄법도 한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뽀 허리 두드리면서 말함.

"그만할까?"

그 말 자체가 저를 향한 배려인게 느껴져서 빼빼로 두고온게 더 속상해지는 뽀.
진짜 미리 말로 해주는거 싫은데. 서프라이즈 하고 싶은데. 근데 섫이 오해하는건 더 싫어. 결국 섫 어깨에 있는 손 꼼지락대면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뽀. 일주일 전부터 시작해서 이틀전에 있었던 일, 언니가 준비할지 전혀 몰랐다는 말, 지금 그거 놓고온게 너무 속상해서 그랬다는 진실.
뽀가 민망하지만 또박또박 자기 마음을 전하는 동안 섫은 속에서 뭔가 우드득 부서지고 있었음. 이성이라 불리우고, 자제력이라는 이름의 그 어떤것. 사귄 이후로 자주 입을 맞췄고, 성인의 연애라 당연스럽게 그 후를 생각한적 있었지만 이렇게 날것의 감정은 또 처음이었음.
괜히 무릎 위에 앉혀놨나. 밀착된 상태로 저를 위해서 빼빼로를 만들었고, 그걸 놓고와서 속상하다는 말을 들으니까 자제가 안됨. 학교 휴게실이라 망정이지 집이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안감. 섫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뽀는 다 말하고 나니 후련하다며 웃었고, 마무리 폭탄을 던졌음.
"우리 첫뽀뽀도 빼빼로 덕분에 했고"
"....."
"첫키스도 그랬잖아요"
"....."
"그냥 기념하고 싶었어요"

첫뽀뽀, 첫키스. 분명 뽀는 거기까지 말했는데 뽀의 사랑스러움이 한도초과 된 섫은 생각이 넘어가고 있었음. 뽀가 말 끝낼때까지 속이 뻐근하게 아프도록 참다가 급하게 허리 붙잡아 당기는 섫. Image
미치겠다는 중얼거림 끝에 찾아든 입술에 잠깐 놀랐다가 받아 들이는 뽀. 말도 다 전했고, 닿아오는 감정이 애정이 전부라 평소보다 급하게 파고드는걸 벅차하면서도 목에 팔 두르고 받아줌. 가끔 키스가 진해지는 경우가 있긴 해도 학교에서는 보통 잔잔하게 했는데 지금은 숨 쉴 틈을 안주는 섫.
어느새 빼빼로는 뒷전이고 서로 머리나 어깨 쓰다듬고 키스하기 바쁜 둘. 뽀도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이 옮겨올 무렵에 입술을 떼어낸 섫이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고르더니 눈을 마주하고 말했음.

"빼빼로 집에 두고 온거지"
"네, 식탁에.."

그 눈에 일렁이는 욕구를 읽어낸 뽀는 심장이 쿵쿵 뛰었음.
그 눈에는 아주 선명한 이름의 욕구가 있었고,

"빼빼로 먹으러 가도 돼?"

그 말에 의미는 분명 하나가 아니었으며,

"기념하고 싶어"

섫이 기념하고 싶은건 첫뽀뽀도, 첫키스도 아닌 또 다른 처음이었음.

"..엄청 많이 만들었는데"

그리고,
뽀도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음. Image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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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4, 2022
인스타 섫뽀 그 잡채,,
이거 찍어준 거 매니저 김혅정인 상상,,
신인상 받을 때는 대판 싸웠었고
이후로도 크고 작은 싸움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제 헤어지지 않고 잘 사귀는 중,,
상 받고 헤어질뻔 했던지라 김본아
시상식마다 불안해하는데 김혅정 그거 알고
덤덤하게 먼저 찍어 준다 했을것 같어 Image
신인상 받은 연말에 싸우고 화해하느라
그때 사진을 한장도 못찍어줬었거든,,
거의 모든 스케줄마다 사진이
다 있었는데 유일한 공백이 그때였음
김본아는 몰랐지만 김혅정은 그게 항상 미안했어서,,
더이상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바쁜 김본아 데리고 나와서 핸드폰 부터 들이 밀었을 김혅정
김본아는 인터뷰 한다고 오는 카메라 때문에 정신 없다가 김혅정 앵글에 담기고서야 편하게 숨 쉴것 같지,,
모든게 공유되는 삶을 사는 김본아가 유일하게 편하게 느껴지는 카메라 렌즈가 딱 언니 핸드폰 뿐이라서,,
억지로 더 환하게 웃던 김본아는 사라지고
장난스러운 얼굴의 김지엱이 돌아와
Read 52 tweets
Sep 16, 2022
뽀도 오늘의 결과를 알고 있었음. 워낙 회사 내에서 유명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담당 매니저가 관련 업무도 같이 하고 있어서 원치 않아도 알 수 밖에 없었음. 녹화 날인 거 알아서 일부러 신경 끄고 있었는데 매니저가 굳이 눈 앞에 보여준 덕에 모른 척 할 수도 없었지.
정리 된 명단에서 어쩔 수 없이 섫 이름을 먼저 찾았고, 당연히 상위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름이 18위에 적힌 거 보고 심장이 덜컹했음. 그러다 투표 순위와 한줄 평가까지 확인한 뒤에는 마음 속에서 뭔가 뚝 끊어졌겠지. 이걸 보고 섫이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너무 뻔했거든.
뽀는 섫을 잘 알았음. 얼마나 데뷔가 간절한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음. 왜 꼭 언니한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꼭 우리여야 했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늘게 몸을 떨던 섫이 떠오르고, 뽀는 우리에게만 너무나 가혹한 운명을 원망했음. Image
Read 35 tweets
Jul 12, 2022
이렇게 생겨서 부끄러움 없는 연상
이렇게 생겨서 최고유교걸인 연하
이 둘이 연애하는거 보고싶어
Image
Image
둘이 CC였으면 좋겠다. 섫은 공간연출과 졸업반이고 뽀는 연극영화과 2학년. 섫이 중간에 휴학 오래 했고, 뽀도 재수하고 들어 온거라 나이는 세살차이. 스물다섯 스물둘. 과는 달라도 학부가 같아서 술자리 몇번 같이 한게 인연이 돼서 만나게 됐음.
둘이 처음에 서로 좋아하게 된건 솔직히 외적인 요소가 컸을 것 같지. 섫은 뽀의 우아한 분위기(그리고 얼굴)가 좋았고, 뽀는 섫의 하얗고 말랑한 분위기(그리고 얼굴)가 좋았음. 처음에는 서로 얼굴이 너무 완식이라 성격이나 성향 이런거 돌아볼 틈도 없었음. 그저 눈호강 데이트 레전드.
Read 32 tweets
Jun 29, 2022
머드 축제가서 처음 만나는 섫뽀,,
김혅정 하필 그날 렌즈가 빠져가지고
계속 인상 찡그리고 다니다가
화장실에서 허리 숙여서 손씻고 있는
흑발 긴머 뒷모습 보구
당연히 일행인 긍서인줄 안 김혅정,,
말끔한 등에 진흙 손바닥 자국 야앗!
했는데 알고보니 무대하러 온 아이돌 김본아여라ㅜ
무대 의상이라 뒤에 훤히 드러내고 있었는데
거따가 손바닥 두개 챱 남겨버린 김혅정,,
대박 개빡치고 놀라서 돌아보는 얼굴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 손대고 굳어뻐려,,

"근더기가....어..."

근데 더 놀라운 사실,,
둘이 아는 사이였음 좋겠어,,
정확히 말하면 김본아가 좋아했던ㅜ
학생때 첫사랑이고 김혅정도 좋아했는데
아이돌 준비하는 김지엱한테 버려질까바
걍 먼저 놔버렸었음,,
공부하느라 바빠졌다는 핑계루,,
(근데 그 직후 모의고사 개망쳐서
한달동안 김지엱 피해다님ㅜ)
그리고는 그냥저냥 묻어두고 살았고
티비 나오면 멍때리고 보는 정도였는디,,
Read 17 tweets
Jun 16, 2022
결혼했으면 좋겠어 ImageImage
그냥 평범한 연애, 그리고 결혼. 운명적인 첫만남이라든가 소설처럼 온 세상이 뒤틀리는 경험은 없었지만 잔잔하고 여유로운 그런 사랑. 처음 만난 것도 둘이 잘 어울릴것 같다~ 라는 겹지인 추소졍의 오지랖으로 주선 된 소개팅. 둘 다 기대없이 편하게 나왔고, 서로의 완벽한 이상형도 아니었음.
예쁘다. 성격도 괜찮네. 근데 나랑 잘 되기는 힘들겠다. 저녁 먹고 나오는 길에 둘 다 같은 생각을 했음. 사람이 안좋은건 아닌데 일단 생활패턴도 너무 다르고, 연애적으로 시너지가 좋을것 같지는 않다고 할까. 둘은 그날 웃으면서 가게를 나왔지만 그후 애프터는 없이 깔끔하게 헤어졌음.
Read 12 tweets
May 16, 2022
캠퍼스 설뽀,,
같은 무리에서 사이 애매한 사이,,
단체로 있을 때는 잘 노는데
둘만 놔두면 눈 깜빡 손 꼼지락 사이,,
왠지 기류가 묘해서 너네 이상하다??
소리 삼천번 듣는 사이,,
그러다가 1~2년 뒤에는
친구들한테 대놓고 너네 진짜 사겨?
소리 듣는 사이,,
그때마다 뭐래~ 함서 술잔 내미는 김지엱,,
안주로 나온 강냉이 반 쪼개는 김혅정,,
그러다 졸업하고 나면 단체 모임
빼고는 얼굴 볼일 없는 사이,,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도 n년,,
각자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자리도 잡은 상태,,
누구 결혼한대서 모인 자리,,
술 마시면 나오는건 과거 이야기,,
한창 다같이 재밌던 에피소드 얘기하다가
오랜만에 꺼내지는 설뽀의 묘한 사이,,
너네 진짜 이상했다고,
친한건지 어색한건지
왜 그랬냐고 한마디씩 거들면,,
나이 좀 먹었다고 능글 맞아져서
어후 야 기억도 안나~ 그러는 김지엱,,
나이 좀 먹었다고 강냉이 대신
와인 쪼개 마시는 김혅정,,
Read 16 twe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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