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가둥 Profile picture
Jul 21, 2021 252 tweets >60 min read Read on X
몸 관리 시즌에는 새벽마다 운동 나가는 섫. 사람 많은거 싫어해서 진짜 일찍 나갈것 같지. 5시에 기상해서 스트레칭하고 바로 나가서 뜀. 동네만 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멀리 한강공원까지 나가서 뛰고 올듯. 아침잠 많은 콩알이는 항상 언니가 들어와서 씻었다는 톡 보낼때쯤 일어남.
운동 나갈 때, 들어올 때. 빠짐없이 연락 남겨주니까 그 아침운동에 크게 신경써본적 없는 콩알이. 365일 그러는것도 아니고 대회 직전이나 체력 기를 시즌에만 하는거니까. 근데 어느날 시즌 때 언니네서 자고 새벽에 깼는데 옆자리 휑한거 느끼고 처음으로 그 아침운동 같이 가보고 싶다고 생각함.
그 생각한 날 밤에 냅다 언니한테 전화 때리는 아기공주. 후진은 없어.

'언니! 내일도 아침에 운동해?'
'그래야지?'
'나두 갈래! 나두 데려가!'

섫 옷 입다가 놀라서 핸드폰으로 날짜 확인함. 무슨 특별한 날인가 싶어서. 뽀가 아침에는 깊게 자고 싶어해서 이때까지 오전 데이트도 잘안했었거든. Image
그래도 일단 대답은 바로 알았다고 하는 섫. 그게 뭐든 콩알이가 같이 한다고 하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음. 그럼 내일 전화해서 깨워 줄테니까 일어날 수 있으면 일어나고, 정 안되겠으면 더 자도 된다고 하겠지. 언니만의 다정한 대답이 좋아서 또 침대에 발 왕왕 구르는 콩알이.
근데 생각해보니까 전화로는 절대 못일어날것 같음. 가끔 섫이 모닝콜 해준다고 했을 때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적이 훨씬 더 많음. 웅..일어나께.. 해놓고 까무룩 더 자버린게 몇번인지 모름. 근데 내일은 언니랑 꼭 아침운동이 하고 싶은 찌여니. 핸드폰 들고 데구르르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그래.
'오늘 같이 자야겠어'
'어?'
'언니가 아침에 나 깨워서 데려가'

아침에 운동도 같이하고, 언니랑 잠도 같이 자고. 대박 마음에 든 말랑쨔물이. 얼른 옷 갈아입으려고 옷장 뒤적거리는데 대답없던 전화기 너머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넘어 옴. 티셔츠 끄집어 내다말고 멈추는 뽀.

아, 설마.
'언니?'
'응, 운동복 챙겼어. 금방 갈게'

내가 같이 자자고 했잖아.
아침운동도 내가 하자고 했잖아.
당연히 내가 가려고 했는데. 
그게 맞는건데. 
언니는 진짜.
왜 행동은 느려터졌으면서 사랑은 빨라.
배려가 몸에 배어있으면서 왜 이렇게 다정함은 자비가 없어. Image
또 버겁게 애정이 쏟아지는데 이제 이런 상황도 4년째인 콩알이. 이걸로 미안함을 느끼면서 시간을 죽이는게 얼마나 소모적인건지 이제는 알고있음. 그냥 천천히 오라는 말로 전화 끊고 냉장고로 달려감. 세개나 쟁여놓은,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이온음료. 컵에다 콸콸 쏟은 다음 얼음 5개 넣는 뽀.
그거 손에 쥐고 기다리면 얼마 안지나서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림.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바로 튀어 나가는 찌여니. 천천히 오라고 말은 했지만 언니가 분명히 뛰어올거 알고 있었음. 숨 고르면서도 저 보자마자 씨익 웃는 언니가 너무 예뻐서 죽겠는 콩알이. 달려가서 입술에 뽀뽀부터 해줘. Image
"땀 났잖아. 아까 샤워했다며"
"또 하면 되지"
"내가 가려고 했는데"
"뺏었어?"
"웅, 언니 욕심 너무 많아"

말투는 일부러 밉게 하면서 섫 이마에 맺힌 땀 닦아주고, 컵 쥐여주는 손길은 다정하기 그지없었음. 얼음 동동 띄워진 음료수 원샷하고 차가워진 입술로 콩알이 볼에 쪽, 쪽 입맞추는 섫.
차갑다고 웃으면서 버둥거리는 뽀 손목 쥐고 이마나 눈에도 입술 가져다댐. 평소엔 안그러다가 가끔 이렇게 장난스러워지는 언니가 또 싫지 않은 뽀. 꺄르르 하면서 얼굴 피하다가 힘 빠지면 반대로 섫 볼 감싸쥐고 입술 머금을듯. 차가운 입술에서는 뜨거운 애정이 줄줄 새고 있었음. Image
그런 기회는 절대 안놓치는 섫. 땀에 젖은 앞머리 거둬내면서 뽀 허리 감싸고 본격적으로 입 맞춤. 냉기와 열기가 뒤엉켜 온기를 머금은 키스가 이어지고,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당연하게 분위기가 묘해졌음. 원래 이쯤되면 내일 운동 안갈거냐고 잔소리 해야하는데 뽀는 오늘 그럴 생각없대.
같이 자겠다는 말 하나에 곧바로 달려 온 언니가 예뻐서, 사랑스러워서. 오히려 숨 차서 떨어지는 섫 목 끌어당겨서 재촉하는 뽀. 그 작은 행동 하나에도 뽀 마음 읽어낸 섫은 키스하면서 천천히 화장실로 걸음 옮길듯. 

"으응?"

화장실 문에 등 부딪히고서야 입술 머금은채로 반문하는 뽀.
그럼 섫은 살짝 떨어져서 뽀 입술만 쳐다보면서 말함. 

"같이 씻어"
"..씻기만 할건가"

그 말에는 눈 똑바로 바라보면서 웃고, 고개 젓는 섫. 동시에 문 열어서 뽀 안으로 밀어넣음. 화장실 문이 닫히고, 얼마안가 그 안은 여러가지 소리들로 시끄러워지겠지. Image
하다가 씻고, 씻다가 또 하고, 씻겨주다가 또 해서 새벽에야 침대에 눕는 둘. 품에 안긴 뽀가 너무 지친것 같아서 섫이 아침운동은 혼자 가겠다고 함. 근데 고개 저으면서 죽어도 같이 가겠다는 콩알이. 섫은 아침에 조금만 깨워보고 바로 다시 재워야겠다고 속으로만 다짐하면서 등 토닥여줌.
밤에 그렇게 무리 했는데도 알람 울리자마자 눈뜨는 섫. 바로 알람 끄고 품에 안겨있는 뽀 보는데 미동도 없이 잘자고 있음.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싫어질 정도로. 그냥 조용히 혼자 다녀올까 하다가 이따가 뽀가 알면 한소리할것 같아서 최대한 살살 어깨 흔드는 섫.
딱 세번만 깨워보고 안되면 바로 나가야지. 깨지말고 푹 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얕게 뽀뽀도 하고, 작게 이름 속삭이면서 깨움. 두번 이름 부르고 해도 반응이 없는 뽀. 섫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어깨 붙잡는데 그때 딱 뽀가 움찔하면서 일어나겠지.
"..깼어?"

뽀 힘들게 눈 뜨자마자 보이는게 난감해보이는 섫 얼굴임. 깨워달랬더니 깨워버렸다는 표정인거 보니까 또 혼자 갈 생각했구나 바로 알아채는 콩알이. 덕분에 잠이 확 깨버렸음. 요만큼 열렸던 눈 부릅 뜨고 언니 볼 짜부해버려. 좋은데 미워. 자꾸 자기 두고 갈라 그러니까.
"어딜 혼자 갈라구"
"....."
"응? 콩알 넣어두고 어딜"
"....."
"딱 기다려. 세수하고 올테니까"

그 말하고 섫 입술에 자기 볼 가져다대서 셀프뽀뽀 받는 말랑쨔물이. 그러다 화장실 가려고 몸 일으켰다가 언니한테 잡혀가지구 뽀뽀 두배로 받음. 간신히 풀려나서 얼른 준비하라고 언니 엉덩이 찰싹.
운동복으로 갈아 입으면서 입 찢어져라 하품 하다가 섫이랑 눈 마주치자마자 하압 삼키는 뽀. 하품벅방 1일차래. 괜히 민망해서 안졸리다고 뺙뺙 하는데 섫은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거림. 다녀와서 더 재워야겠다 생각은 속으로만 하고. 학교 아니니까 전에 맞췄던 커플 트레이닝복 입고 나갈듯.
뽀랑 같이 가는거니까 평소코스 말고 가볍게 동네한바퀴 할 생각임. 제 신발끈 묶고 콩알이것두 다시 제대로 꽉꽉 묶어주는 섫. 끈 묶으면서 내려다보는데 뽀 발이 작은게 또 새삼 신기함. 조용히 제 손 뻗어서 신발 옆에 대보는 섫.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크네.
발도 콩알만해.
손은 콩알 반만하고.
섫이 그러고 있으면 딱히 말리지도 않고 동그란 정수리 감상하는 뽀. 하나에 꽂히면 다른생각 안하고 몰입해서 혼자 이거저거 해보는 언니는 좀 귀엽거든. 섫이 알아서 생각 속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몸 일으키면 그 때 아무렇지 않게 출발하까? 하고 웃어주는 찌여니. Image
섫이 저기 3단지까지만 갔다오자 하는데 뽀 고개 갸웃함. 잘은 모르지만 언니 한번 운동하면 꽤 멀리까지 다녀왔던거 같거든. 근데 3단지면 바로 코앞이잖아. 이럴려고 같이 뛰자고 한게 아닌데. 뽀는 섫의 일상에 함께하고 싶었던거지 섫이 일상을 바꿔서 함께해주길 바라는게 아니었음.
좀 멀리 가도된다고 하니까 원래도 이렇게 한대. 괜찮대. 그게 거짓말은 아니야. 가끔 이 정도 거리를 뛰는날도 있었으니까. 그게 열번 중에 한번이라서 그렇지. 비오는 날이라는 조건이 붙어서 그렇지. 섫은 뽀 힘든거 싫어서 10%에 맞추려고 한거였음. 근데 우리 콩알이. 언니 다루기도 4년차거든.
"언니 어제도 운동했지?"
"요즘은 매일 해"
"어제는 어디 갔었어?"
"저기 한강공ㅇ.."
"....언니"
"..어제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섫이 눈 피하면서 말하니까 손 잡고 눈 마주보게 하는 뽀. 그리고선 흐응- 콧소리 내면서 하늘 올려다봄.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 섫은 망했다 싶어서 시선 떨굼.
"오늘도 거기까지 가는거야"
"지엱아"
"나 좀 언니 일상에 끼워주라"
"......"
"힘들면 얘기할게. 너무 빨라도 말할게. 그 때 속도 맞춰주고 손 잡아줘. 그것만 필요해. 다른거 말구"
"...알겠어"

섫은 뽀가 이렇게 단단한 얼굴을 할 때마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음. 좋아서. 소중해서. 사랑해서.
나 먼저 간다! 하고 쌩하니 달려가는 뽀 뒷모습 멍하게 보다가 뒤늦게 따라서 뛰어가는 섫. 마음만 먹으면 따라 잡는건 금방이지만 잠깐 속도 늦추면서 푸른 새벽에 뽀가 떠오르는 풍경을 눈에 담아보겠지.

좋은 날씨,
예쁜 시간,
좋아하는 달리기,
사랑하는 너.
빈틈없이 완벽한 순간.
벅차기 시작한 마음을 손에 쥐고 빠르게 달리는 섫. 그리고 우다다 뛰고있는 뽀 손 낚아채고 뒤에서 끌어안음. 바톤을 넘겨주듯 애정을 전해주고, 귓가에 흩어지는 맑은 웃음을 돌려받아.

"잡혔다!"
"..잡았네"

유독 빛이 나는 어느날의 새벽이었음. ImageImage
평화롭던 어느 여름날, 섫은 아침 일찍 연습 있어서 나갔고 뽀는 자기 집에서 딩굴대고 있음. 딱히 언니랑 데이트 약속한건 아니지만 저녁에 당연히 만날 생각 중. 맛있는거 먹는 상상 중. 둘은 어느새 우리 만나자 해서 약속을 잡는게 아니라 만남 자체가 일상이 되어 있었음.
언니랑 뭐 먹지.
저번에 못만들었던 떡볶이 할까.
그 때 할 수 있었는데.
언니가 갑자기 분위기 잡아가지구.
어이업서. 진짜.

사실 그때 한번 더 하자고 조른건 본인이면서 언니탓만 하고있는 콩알이. 에어컨 틀어놓고 이불에 들어가서 발가락만 꼼지락하고 있음.
한참 고민하다가 오늘 저녁메뉴 결정함.
갑자기 훠궈 먹고 싶어졌어.
작년 이맘때쯤 훠궈에 빠져서 일주일에 세번씩 먹자고 했었던 콩알이. 근데 두달을 암말 안하던 언니가 어느날 진지하게 그랬음.

'..훠궈 일주일에 한번만'

그렇게 말해서 그 이후로는
일주일에 한번으로 제한 걸린 아기공주.
뽀는 가리는게 별로 없는 반면 섫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만나는 동안 뽀가 섫한테
처음 먹게만든 음식이 많았음.

해산물도 그렇고,
마라탕도 그렇고,
훠궈도 그래.
자잘하게 따지면
손에 꼽을 수 없을만큼 많아.

뽀는 그 유일한 도장깨기 타이틀이 너무 좋았음.
제 입맛에 맛있다고 하면 그게 뭐든
시도해주는 언니가 좋았고,

취향이 맞으면 맞는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희미하게울렁이는 언니의 솔직함이 좋았고,

요즘은 그것도 닮아가는건지 꼭 한번씩 자기 입맛에 맞는 빵 몇개를 담아서 선물해주는 언니의 귀여움이 좋아.

그냥 콩알이는 언니가 너무 좋대.
언니 그릇에 매운 향신료 넣어야지.
그런 앙큼한 생각이나 하면서 섫한테
저녁 먹자고, 끝나는거 맞춰서 가겠다고
까톡 남기려던 뽀. 근데 딱 불길한
소리와 함께 자취방이 정전이 돼버림.
너무 놀라서 핸드폰 쥐고 그대로 굳어버린 뽀. 이불 속에서 방안 둘러보는데 다시 전기가 돌아올 생각을 안함.
낮이라 무섭거나 그러진 않은데 냉장고나 에어컨이 다 꺼져버려서 난감하겠지. 오늘 나갈 때까지 침대에만 있으려고 했는데. 한숨 푹 쉬면서 침대 모서리로 한바퀴 구르는 뽀. 발 한번 방방 차다가 일어나서 집주인 전화번호 찾음. 생각해보니까 작년 여름에도 전력공급 어쩌구 하면서 이랬던거 같음.
집주인은 뭐하는지 전화도 안받아.
바깥이 너무 더워서 에어컨 꺼지니까
시간 단위로 열기가 채워졌음.
울상으로 다시 전화 걸어보는데 또 안받아.
더운건 둘째치고 냉동고에 언니 줄라고 사온 아이스크림 녹을까 봐, 냉장고에 언니 줄라고 집에서 훔쳐온 반찬들 상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됨.
언니가 좋아하는 하겐댜즈 딸기맛.
집앞 편의점에 입고가 자주 안돼서
콩알이 그거 볼 때마다 다섯개씩 쟁여놓음.
어제 한줄 싹 쓸어와서
넣어놨는데. 언니 오면 먹어야 되는데.
그리고 유독 엄마가 만든 밑반찬들 잘먹는 섫. 언니 입이 짧은데 그거 있으면
밥 한그릇 다 먹어서 두통이나 훔쳐왔어.
마음 급해져서 발만 동동 구르던 뽀. 근데 다행히 10분은 넘기지 않고 다시 불이 들어왔음. 냉장고부터 달려가서 전원 켜진거 확인하는 콩알이. 반찬이랑 아이스크림 잘있는거 확인하고 에어컨도 다시 켜려고 하는데

어라? 리모컨이 안먹어
어라? 손으로 눌러봐도 안돼
......설마
절망적인 표정으로 에어컨 뺨도 찹찹 두드려보는데 정신차릴 기미가 안보임. 머리를 때려봐도 제 손바닥만 아파. 거기서 또 3분 넘게 씨름을 하고서야 에어컨 맛이 간걸 받아 들이는 뽀. 급한대로 선풍기라도 틀어 보는데 아까 쾌적하고 뽀송했던 공기랑은 전혀 달랐음.
마침 집주인이 다시 콜백을 해줘서 상황 설명해주니까 아무래도 에어컨이 고장난것 같대. 내용연수가 쌓여서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요즘 전력소모가 커지면서 갑자기 죽은것 같대. 바로 주문해도 3~4일은 걸릴거라는 집주인 말에 거의 울면서 전화끊는 콩알이.

에어컨 없이 4일? 나는 못해!! Image
근데 또 별다르게 방법이 있는건 아님. 4일 정도로 본가에 가면 그 기간동안 언니 못보니까 싫어. 섫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싶다가도 하루 놀러가서 자고 오는거랑 작정하고 4일을 짐싸들고 같이 지내는건 느낌이 좀 달랐으니까. 당당 찌여니도 무작정 쳐들어가기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기간이라.
제 앞에서는 한없이 선이 없어지는 언니지만 본래 성격 자체가 개인공간 철저한걸 알아서 더 그래. 그렇다고 에어컨 없는 이 집에서 4일동안 지내는건 절대 안될것 같음. 고민을 길게 하긴 하는데 그래도 결국 섫한테 물어보는걸 택하는 뽀. 한껏 불쌍해 보일라구 일부러 페이스톡으로 걸거래.
섫 연습루틴 이제 머리에 그려지는 수준이라 지금쯤이면 쉬는시간 이겠구나 싶었음. 역시나 몇번 울리기도 전에 화면에는 빛을 가득 받고있는 섫이 들어오겠지. 땡볕에서 뛰고 있었는지 언니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 뽀 불쌍하게 눈썹도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이제 걱정 때문에 입술 튀어나오는 중.
정작 자기도 선풍기만 탈탈 돌아가는 방에서 더운거 참고 있으면서. 끈적해지는 팔이 기분 나쁘단 생각도 못하고 언니 물은 잘 마시는지, 살은 안따가운지 묻고싶은것만 쌓이는 뽀. 섫은 반면에 너무 밝아서 화면 속 뽀가 잘 안보이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함. 보고 싶은데. 곧 다시 뛰어야 하는데.
결국 남은시간 계산하고 트랙 저 끝에 그늘을 향해서 뛰는 섫. 보고있는 뽀가 어지러울까봐 화면도 잠깐 덮어놓고 반대편으로 전력질주함. 코치가 쉴때 힘뺀다고 한소리 하는데 섫은 그거 안들림.

5분 가만히 쉬는것보다
4분 30초 뛰고,
30초 지엱이 얼굴 보는게 좋아.
나는 그게 더 힘이 나.
그리고 뽀는 갑자기 까매진 화면에 잠깐 놀라다가 넘어오는 숨소리에 섫이 뛰고 있다는걸 알았음. 왜 뛰고 있는지는 아까 마지막에 섫이 눈 찡그리면서 화면 가까이 오던거 떠올라서 알았어.

어딘지 몰라도 가는구나.
빛이 없는곳에서 나 혼자 반짝이게 하려고,
또 그렇게 망설임도 없이.
화면은 까만데 운동화 밑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나, 짙게 깔린 여름소리나, 몰아쉬는 숨소리가 들려와서 마치 같이 뛰고있는 기분이 들게 했음. 저번에 같이 했던 아침조깅이 떠오르고, 그 어느날 빗속을 혼자 질주했을 언니가 이어서 떠올라. 그때도 이렇게 간절한 소리들로 뛰었을까 싶어서.
섫 손에 이끌려 한강공원을 뛸 때의 감정,
빗속을 얼마나 뛰었는지 다음날까지 다리를
떨던 섫을 봤을 때의 감정.
여러가지가 뒤섞여서 주체가 잘 안되는 뽀.
섫이 그늘에 도착해서 화면을 다시 비췄을 때는 어느새 울망거리는 콩알이가 하나 있었음. 놀라서 두손으로 폰 붙잡고 내리는 섫.
'지엱아'
'.....'
'왜그래, 무슨일 있어?'

숨이나 다 고르고 얘기하지.
아까 뒷배경으로 보이던 학교건물이
이렇게나 멀어졌는데 언니는 숨 고를 틈에도
왜 내 걱정밖에 안해. 진짜 바보같이.
그런 생각에 울컥하는 뽀지만 이제
쉽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음.
울음은 꿀꺽 삼키고 촉촉한 애정을 말해. Image
'언니 예뻐'
'갑자기?'
'웅, 요만큼 보이는데 예뻐'
'지금 땀 엄청 났는데'
'나는?'
'.....'
'나는 요만한데 어때?'

일부러 렌즈에 얼굴 들이대면서 코 찡긋하는 뽀. 그럼 섫은 숨 다 고르면서 한손으로 허리 짚고 웃음. 한톨 굴러왔던 걱정은 사랑스러움으로 뭉친 콩알이가 굴러와서 밀어버렸어. Image
'귀여워'
'나두 땀 나는데'
'예뻐'
'나 지금 콧구멍 두배 했는데'
'응, 그래서 두배로 예뻐'

헛웃음 섞인 언니만의 다정함이 너무 좋은 콩알이. 괜히 얼굴 여기저기 구겨보다가 언니 어깨 너머로 선수들 몸 푸는거 보고 쉬는시간 얼마 안남았다는거 알겠지. 분명 먼저 안끊어주면 한소리 들을 언니라.
빨리 마무리 해야될것 같아서 전화건 이유를 어렵게 저 아래에서 끄집어내는 뽀.

'에어컨 고치려면 4일정도 걸린대'
'꽤 걸리네'
'근데 대구 다녀오긴 돈 아깝잖아'
'그치 왕복이면'
'언니 못보면 내가 슬프잖아'
'언니도 슬퍼'
'나 귀여운 잠옷도 새로 샀어'
'지엱아'
'웅'
'짐 싸서 언니네 와'
일부러 말 슬쩍 돌리는 뽀 데리고 정중앙에 데려다놓는 섫. 듣고싶던 얘기를 듣기좋은 목소리로 해주고는 자기가 더 행복하다는듯이 웃어. 그럼 뽀는 얕게 깔려있던 걱정 밀어버리고 해맑게 웅! 대답하겠지. 섫이 짐 많으면 가겠다고 하는데 손 파닥대면서 알아서 갈테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함.
언니 끝나는 시간 맞춰서 갈테니까 연락하라고 얼른 손흔드는 뽀. 뒤에서 코치가 섫 쳐다보는거 발견했거든. 느릿하게 손 따라 흔드는 언니한테 뽀뽀쪽 움뫄까지 해주고 먼저 끊겠지. 그리고 아까랑 똑같이 불쾌한 온도지만 전혀 다른 기분으로 대충 짐챙기기 시작함.
반찬이랑 아이스크림도 챙기느라 미니아이스박스도 꺼내고, 언니한테 처음 보여주려고 한번도 안입은 뽀송잠옷도 챙겨. 커플잠옷 할까 했는데 언니 요새 노랑잠옷 홀릭이라 그냥 혼자만 샀음. 어차피 그 노랑이도 콩알이가 사준거거든. 짐 이거저거 챙기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겠지. Image
이제 슬슬 끝날때 됐는데. 혹시 통화 길어져서 혼났나. 폰 들여다보면서 전화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기다리던 소리가 현관문에서 울렸음. 익숙한 키패드 소리, 안봐도 알 수 있는 첫마디. 현관문이 열리고 언제 들어도 푸둥한 목소리가 뒤따라옴

"지엱아"

이 세글자는 몇백번을 들어도 설렐것 같아.
오지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말을 안듣고.
하여튼 뽀 말이면 다 들어주는것 같아도
이럴 때는 절대 안들어주는 섫. 오늘 일부러 죽기살기로 뛰어서 기록내고 15분 일찍 마쳤음. 애초에 안갈 생각 같은건 없었어. 짐이 무겁다는건 핑계야. 그냥 내가 빨리 보고싶어서 왔어.
크로스백 대충 둘러메고 땀 뻘뻘 흘리며 서있는 섫 보면서 고개 살살 젓는 뽀.
뭐라고도 못하겠음. 저도 지금 언니한테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아이스박스에
몇번이나 넣었다 뺐다 블럭쌓기 하느라
땀이 주륵 나고 있었거든. 바보같아. 우리 둘다. 뽀가 눈 살짝 흘기면 섫은 눈썹만 살짝 들썩임.
"짐 다 챙겼어?"
"웅, 연락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찍 끝났어"
"일찍 끝낸거 아니고?"
"저녁 뭐먹을까"
"말돌려 자꾸?"
"오랜만에 그거 먹을까"
"뭐?"
"콩알이 최애"
"어떤거?"
"훠궈"
"....."
"요즘 안먹은것 같아서"

제 마음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것마냥 나오는 말에 입 열었다가 꾹 닫는 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음. 일상에서 묵직한 우리가 느껴질 때. 우리의 사랑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 뽀는 그런 생각을 했음.

나는 언니 사랑에 면역이 없고,
언니는 내 사랑에 면역이 없는것 같아.
그래서 익숙해지지가 않나 봐.
그래서 우리 사랑이 이렇게
한계없이 팽창하는 우주같나 봐.
조금 벅차긴 한데 한자락도 놓치고 싶지 않았음. 전부 소화할것처럼 숨 크게 들이마셨다가 잠깐 멈추는 뽀. 그리고 살짝 뱉어내면서 섫한테 와다다 달려감. 아직 현관문에 서있는 언니 목 끌어안고 품에 안기는 뽀. 땀나서 밀어내려다가 금방 포기하고 같이 안아주는 섫.
"훠궈 3인분 먹을래"
"1인분도 못먹으면서"
"언니가 2.2인분 먹어"
"언니 배터져"
"내가 터지지 말라고 할게"
"얘는 말 잘안들어"
"혼내주께"
"그냥 2인분 먹자"
"알게써. 대신 아이스크림 두개 먹어"

뭘 계속 주려는거 보니까 지금 뽀가 애정 포동포동 모드구나 싶은 섫. 한번 꽉 안아주고 떨어짐.
"..배고파"
"빨리가자 빨리!"
"하나 줘, 같이 들어"
"내꺼니까 내가 들거야"
"두개잖아"
"둘 다 내꺼야. 언니는 언니꺼만 들 수 있어"

짐 두손에 한가득 들고 또 억지 부리기 시작하는 콩알이. 섫이 나가면서 하나 나눠들려고 손 뻗는데 피하더니 저 앞으로 홀랑 뛰어가버림. 커다란 짐 들고 우다다.
콩알같은 뽀가 제멋대로 굴러다니는게 귀엽기만한 섫. 잠깐 뛰어서 따라 잡더니 뽀 앞으로 막아섬. 짐도 무거운데 뛰기까지 했으니 벌써 헥헥거리고 있는 찌여니. 그럼 섫은 입꼬리 올려가면서 두손으로 뽀 볼 감싸서 누름. 입술 비죽 나와서 오리입술 되도록.
"이거 들게"
"움?"
"언니꺼만 들라며"
"우움??"

얼굴이랑 입술은 눌려서 눈만 짱 커지는 뽀. 섫이 이렇게 받아칠 줄은 몰랐어서 얼굴 빨개짐. 어떻게 눈 한번 깜짝 안하고 이런말을 해. 가끔 보면 진짜 파스타 만개 먹은것 같애. 왜이래. 어이업서. 그대로 언니 어깨에 헤딩하고 또 굴러가는 콩알이.
그런소리 더 할까봐 언니 품에 아이스박스 안겨주고 먼저 걸어가버림. 저를 향한 애정이 담긴 박스를 안고 옆으로 따라 붙는 섫.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손을 잡아 쥐는 순간에, 같이 맞잡는 찰나에 망설임은 찾아볼 수 없었음. 푸르고 붉은 하늘 아래에서 어느새 색이 비슷해진 두사람이 걷고 있겠지.
"콩알"
"안끈적해. 손 안놔"
"나 아이스크림 두개 먹을게"
"진짜루? 진짜다?"
"대신 두번 할래"
".....알게써 뽀뽀 두번"
"....."
"4일에 두번"
"....."
"이따 집가서 얘기해에!"
"응, 알았어"

박스에서 뽀 애정이 굴러다니는 소리,
섫 입술에서 사랑이 흩어지는 소리,
제법 시끄러운 여름길이었음 ImageImage
그렇게 시작됐던 4일간의 동거체험은 순탄하게 흘러갔음. 애초에 둘이 집 드나들던 사이고, 이틀 정도는 자고간 적도 있어서 불편할게 없었지. 굳이 바뀐게 있다면,

언니 치약 이렇게 짜면 안된댔지.
언니 아침 또 안먹고 가?
언니 이거 해써?
언니, 언니!

콩알이의 언니 호출 횟수가 늘어난거.
전화로는 안보여서 몰랐는데 막상 하루종일 붙어 있으니까 잔소리할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음. 그 중에서 찌여니 제일 마음에 안드는거. 언니가 아침밥 제대로 안챙겨먹는거. 나가면 하염없이 뛰기만 할텐데 괜찮다고 쉐이크 한잔 뚝딱 마시고 그냥 나가는 언니가 걱정되는 콩알이. 잘 좀 챙겨먹지.
보통 뽀가 끼니 챙기는건 점심이나 저녁이었고, 섫이 아침에 나갈때는 뽀가 거의 자고있어서 물어볼 기회가 많이 없었음. 이전에도 한번씩 아침은 쉐이크 먹었다고 할때 걱정되긴 했었는데. 마침 이번에 3일 연속 아침 훈련인데 그때마다 대충 우유 말듯이 먹고 나가는 언니 보니까 속상하구 그랬겠지.
근데 그때 뽀가 에어컨 배송이 하루 더 걸리겠다는 연락을 받게 됨. 3박이 4박이 됐어. 언니는 이번주 내내 아침훈련이었고. 섫 없는 침대에 혼자 누워있다가 이거다! 하고 파닥거리는 콩알이. 몸까지 일으켰다가 오늘 아침에 또 짧게 불붙었던 섫 때문에 맨몸인거 깨닫고 다시 이불 속으로 도망감.
아무도 없는데 괜히 민망해서 언니 베개애 화풀이 하는 콩알이.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힘빠져서 현관문까지 배웅도 못해줬거든. 지금은 언니 나가자마자 까무룩 잠들었다가 일어난거. 순간 괜히 얄미워서 생각했던거 무를까 싶은데 그러기엔 언니가 너무 좋은 찌여니라. 툴툴대면서도 옷 챙겨입어.
대충 언니 서랍에 있는 옷 아무거나 이거저거 꺼내입는 쨔물이. 섫이 나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해둔건데 왕왕 흐트리고 있어. 왜냐면 뽀는 모르거든. 섫이 원래 이런거에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는거. 모를 수 밖에 없긴 해. 섫은 뽀가 어지르는게 제 마음이든, 제 서랍이든 싫지가 않았으니까.
언니 최애 반팔티 입고 사진도 찍어 보내주는 콩알이. 일부러 짐쌀때 옷은 거의 안챙겼어. 언니 옷 훔쳐 입는게 좋아가지구.

-나 마트 가!

톡 하나 남겨놓고 장바구니 들고 뛰어나가는 뽀. 왜 갑자기 마트를 가냐면 내일 아침 해줄거거든. 콩알이표 언니 든든식사 프로젝트래. Image
메뉴는 순두부찌개랑 불고기. 언니는 빵 제일 좋아하지만 베이킹은 할줄 몰라서 패스야. 뽀가 마트에서 이거저거 언니 집에 없는거 사는동안 섫은 늦게 폰 확인하고 뽀 사진 확대해서 보는 중. 마트는 왜 갔지. 이 생각은 잠깐이고 곧바로 다른 생각만 가득 차.
또 옷 훔쳐입었네.
귀여워.
예쁘다.
그리고 가득차는 생각들을 조금만 잘라서 톡에 보내놓겠지.

-귀여워..조심히 다녀 와

다른 감정이 아까워서 그런게 아니라 이 모든걸 쏟아내려면 끝나지 않을것 같아서. 이 두마디를 서운해하지 않고 애정으로 받아들여줄 지엱이를 알아서. 폰 다시 벤치에 두고 연습하러 뛰어가는 섫.
그리고 장 다 보고 나오면서 답장 확인한 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퐁퐁 솟아나. 그 흔한 하트 하나 붙지 않은 말이지만 그게 언니의 사랑인걸 알아. 누가보면 참 무뚝뚝한 애인이다 하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걸 알아. 무뚝뚝하다는건 맞을 수도 있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 근데 그게 뭐.
쉴새없이 애정을 말해야만 사랑인가.
하트라는 테두리에만 담기는게 사랑인가.
언니는 모든 모양에
사랑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인데.
하트 이모티콘 몇백개보다 온점 하나로 더 큰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인데.

뽀에게 보여지는건 중요하지 않았어.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Image
사실 둘다 똑같지. 뽀의 막무가내에서
배려라는 사랑을 읽는 섫이나, 섫의 딱딱함에서 말랑이는 사랑을 읽는 뽀나.
지나온 4년이라는 시간이 기준을 전부 바꾼거겠지. 보편적인 생각은 부서지고,
둘은 서로만을 위한 기준으로 사랑을 했어.
남들이 아니라고 판단할 것도 둘한테는 그저 사랑이었지.
사랑이 바다라면 둘의 연애는 마치 커다란 유람선 같았음. 믿음과 확신으로 만들어진. 둘도 처음부터 이랬던건 아니야. 4년동안 파도에 치이기도 하고, 어딘가 깨져서 물이 새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서로를 놓지않고 정비해오면서 이제는 큰 파도가 너울쳐도 흔들림없이 사랑할 수 있게 자라난거지.
유람선 갑판에서는 늘 뽀가 뛰어 다녔고, 섫은 난간에 기대 서서 그런 뽀를 지켜봤음.
섫은 뽀를 보며 생기를 느끼고,
뽀는 섫을 보며 안정감을 느꼈어.
이렇게나 다른데, 그렇게나 잘맞아서.
언니 위해서 한가득 담은 장바구니 안고 걷는 뽀와, 그런 뽀를 상상하며 트랙을 달리는 섫.
뽀는 장본거 넣어놓는 김에 냉장고 정리도 하고, 그러다보니 하나씩 눈에 밟혀서 집안일도 했음. 진짜 양말 뒤집지 말라니깐.., 혼자 꿍얼거리다가도 언니 책상 한쪽에 가득 붙여진 제 사진들 보면 또 마음이 녹아. 다른거 하나 올려진게 없는데 유일하게 있잖아. 제 사진이. 우리 추억이.
회색도시에 유일한 색이 된 기분.
싱거운 사람에게 유일한 맛이 된 느낌.
아직도 만나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막 쿵쾅대는 콩알이. 당장 언니한테 뽀뽀해주고 싶어. 이따 저녁에 보면 열일곱번 해줘야지. 혼자 그렇게 다짐하면서 정리하고, 오후에는 약속 있어서 뽀도 잠깐 외출했음.
섫은 그 사이에 집 들어와서 씻고, 정리해놓은거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콩알이가 남겨두고 간 애정을 하나씩 꺼내먹었음. 난리난 서랍은 다시 제 방식대로 정리해놓고. 친구들 만났다고 인증샷 와다다 보내오는거 확인하면서 섫도 제 할일을 하겠지. 우리가 너와나가 됐을 때도 둘은 불안하지 않았음.
저녁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가 뽀가 딱 6시 30분 넘어가자마자 밥먹었냐고 연락해서 속으로 좀 찔린 섫. 이제 먹겠다고 보내놓고 진짜 그때는 일어나서 냉장고 열어봄. 뽀가 사온건지 불고기가 있길래 그거 구워먹으려고 꺼내 드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 벨소리 울리는건 공주 뿐이라 얼른 전화받는 섫.
'불고기 먹지마!'
'..어?'
'순두부도 안돼'
'너 먹으려고?'
'내가 그걸 왜 먹어어!'
'그러면,'
'언니 내일 아침 해줄거야. 그거 해줄려고 사온거야. 언니껀데 내꺼야. 그니까 다른거 먹어.'

우다닥 쏟아 내더니 두어번 확답 받고서야 전화 끊는 콩알이. 섫은 멍하게 핸드폰만 보고있음.
왜 갑자기 아침을 해준다고 하지.
그나저나 저거 아니면 먹을게 없던데.
머리만 긁적이고 있으니 얼마 안가서
공주한테 카톡이 하나왔음.
들어가보니까 복사 붙여넣기한
배달 예정 톡이야.
섫이 제일 좋아하는 브런치집이 적혀있는.

-이거 먹어! 그거 먹지마!🥺

귀여워 죽겠는 콩알소리도 같이. Image
섫은 그거 보고 저항없이 웃다가 배달오면 사진 찍어서 인증함. 음식만 찍다가 좀 그래서 어색하게나마 얼굴 나오게 찍어서 보내. 음식 잘나오게 조정한다고 표정이 애매한데 콩알이는 그거 받자마자 브런치고 뭐고 언니 얼굴만 뜯어보기 바빴음. 그래도 뭐 괜찮아. 이러나 저러나 둘다 좋으면 됐지.
따로지만 함께하는것 같은 저녁이 지나고,
3일 같이 있었다고 섫한테 돌아가는 길이 낯설지가 않은 뽀. 당연하게 언니네 집으로 귀가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또 들어. 우리 결혼한것 같아. 신혼이면 이런 기분일까. 희미하고 불투명하지만, 이제는 불안하지 않은 꿈을 꿔.

아, 언니랑 결혼하고 싶다.
아직 동거도 안해놓고 이런 생각을 하는게 웃긴건 알아. 근데 어떡해. 진짜 그렇게 하고 싶은데. 결혼이라는 제도를 가질 수는 없어도 결혼이라는 의미를 갖고 싶은걸 어떡해. 그게 어렵다는걸 알아도, 이제는 그 사실에 대한 박탈감보단 그 작디 작은 확률도 언니랑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랑이 커진 뽀.
무겁지 않은 욕심이었어. 그냥 언니랑 여행가고 싶다 정도의 마음이었지. 이젠 그 단어가 부담이 되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그때는 언니가 진짜 결혼하자고 했으니까. 당장은 힘들지만 터무니없지 않은 약속을 움켜쥐고 언니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하는 뽀.
문 열고 들어가니까 이미 씻은 말랑한 언니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음. 오늘도 역시나 노란색 잠옷 입고. 노트북 보고 있었는지 동그란 안경까지 쓰고. 그거 보니까 갑자기 분수 터지듯 애정이 차오르는 뽀. 상기된 얼굴로 보고 있다가 으으 하고 어깨 떨더니 언니 붙잡고 냅다 입술 박치기. 쪽쪽. Image
섫은 뽀가 급발진하는거 한두번 아니라서 그냥 받아주다가 끌어 안음. 조금 진정하라고. 왜 이렇게 귀여워!!! 귀에다 왁 소리 지르는것도 그냥 눈 찡그리고 듣기만 해. 사랑이 넘쳐서 주체가 안되는지 등에 콩알주먹 날리는 것도 가만히 어깨에 턱 괴고 맞아주는 섫. 어차피 아프지도 않거든.
뽀가 진정하고 나면 얼른 씻으라고 화장실로 보내는 섫. 아침부터 뽀랑 한다고 힘 빼고, 운동도 하고, 과제까지 조금 했더니 유난히 피곤했음. 길게 하품 하면서 침대 정리하고 헤드에 기대 앉아있는 섫. 뽀는 씻고 안에서 머리까지 말리고 나오다가 언니 조는거 보고 피식 웃음.
빨래통에 넣어놓고 당장 침대로 뛰어드는 뽀. 깰까봐 조심하고 그런거 없어.

"언니 콩알 두고 자?!"

그러면서 언니 허벅지 위에 앉아가지구 퉁퉁대는 아기공주. 그럼 섫은 졸린 눈 몇번 깜빡이면서 방금 말려서 따뜻한 뽀 머리 쓰다듬어줘.

"다 씻었어?"

드라이기 바람보다 따뜻한 목소리로.
사실 콩알이 방금 씻으면서 오늘 언니네서 짧은 동거하는 마지막 밤이고, 언니 오늘 너무 귀여워서 쫌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혼자 마음 먹고 나왔었음. 근데 언니 조는거 보니까 처음에는 반사적으로 웃음 나왔는데 생각할수록 좀 민망하고 열받잖아. 나만 그랬나 싶어가지구. 입술은 자꾸 튀어나와.
섫은 그런 생각이 없다기 보다 아침에도 했으니까. 졸리다는 뽀 붙잡고 한거라 당연히 오늘은 더 못할거라고 생각했음. 졸리고 피곤한것도 맞고. 근데 평소라면 이쯤돼서 달래졌어야할 뽀가 어쩐지 계속 퉁명스러워. 허벅지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그러다가 섫 시선이 머무른건 안으로 말린 작은발가락.
그게 뽀의 오랜 습관인걸 뽀만 몰랐음. 하고 싶어질 때, 할 때 꼭 나오는 버릇이었거든. 그거 발견한 섫은 느리게 뽀의 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지. 잠은 그동안 다 밀려나버리고. 괜히 볼 잡고 늘리는 손 잡아 내리더니 허리 잡고 가까이 훅 끌어 당기는 섫. 그럼 뽀는 발가락 오므린채로 합죽이.
"오늘 마지막이네"
"그래! 이제 알아써?"
"하고싶어"
"....하품했자나"
"할줄 몰라서"
"누가 한대?"
"응, 우리 한대"

그 말과 동시에 잠옷 사이로 슬금슬금 손 밀어넣는 섫. 뽀는 더 튕기려다가 바로 목에 얼굴 파묻는 언니 때문에 머리만 감싸안고 고개 젖힘.
평소에도 그렇지만 뽀가 먼저 원한 날에는 섫이 유독 더 길게 할것 같지. 뽀가 그런 날에는 허용범위가 더 넓고 길어지는걸 알거든. 결국 아침에 짧게 끝낸 아쉬움까지 더해져서 밤늦게까지 움직이는 둘. 급하게 시작하느라 불도 못꺼서 뽀는 자기 눈 가리고, 섫은 뽀 몸 하나하나 눈에 담느라 바빴음.
다 끝내고 나면 씻고, 다시 옷까지 갖춰입고 그제야 침대에 눕겠지. 언니가 마지막에 조금 부끄러운 자세 시켰다고 삐져서 등보이는 콩알이. 방금까지 아무말 안하고 순순히 뒤집어주더니 이제와서 이러는 뽀가 어이없고 귀여운 섫. 익숙하게 머리 밑에 팔 끼워놓고 뒤에서 백허그 해줌.
배 살살 토닥이는데 아직 삐져서 언니 손등 꼬집하는 뽀. 그러면서 언니가 아, 소리내면 또 놀라서 쓰다 듬어줌. 언니가 아무말 없으면 힐끔 뒤에 봤다가 손 끌고와서 꼬집은 부분에 뽀뽀해주고 다시 제 배 위에 올려놔. 그리고 토닥토닥 자기 손으로 움직여줌. 그럼 다시 웃으면서 토닥여주는 섫.
그렇게 작은 투정까지 지나가고 나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같이 잠드는 둘이겠지. 잠결에 뽀가 몸 돌려서 품에 안겨오면 몽롱하게 깼다가 다시 끌어안고 자는 섫.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뽀가 먼저 일어나서 아침 준비함. 자취하면서 익힌 요리라 후딱 만들고 그릇에 담기전에 언니 깨우기.
그럼 섫은 오랜만에 뽀가 깨워주는 알람 들으면서 기분좋게 일어나겠지. 기지개만 몇번 켜다가 콩알뽀뽀까지 받고서야 미적미적 식탁에 앉는 섫. 밥그릇에 밥은 이만큼 쌓여있고, 콩알이 표 요리에, 뽀가 집에서 훔쳐온 밑반찬까지. 그거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아침부터 이런게 행복이구나 싶어.
그리고 뽀가 앞에서 이거 먹어봐! 하고 고기 얹어주는 모습 보니까 어제 뽀가 했던 생각이 비슷하게 옮아오겠지.

아, 지엱이랑 결혼하고 싶다.

그 작은 욕심이 비슷하게 마음에 자리하는 섫. 웃음 못감추고 고기 그대로 집어서 뽀 입에 먹여주겠지.

"우리 부부같다"

큰 사랑도 같이 한입.
그럼 뽀는 어제 제가 했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섫을 보고 또 행복해져. 역시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는건 아니구나 싶어서. 유독 달달하게 느껴지는 불고기 먹으면서 해사하게 웃는 콩알이.

"웅, 나두 그렇게 생각해"
"맛있어?"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하지! 빨리 언니두 먹어봐봐"
아침밥 먹으면서는 결혼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는 둘. 대부분 뽀가 얘기를 하겠지. 언니 나중에 결혼식하면 야외에서 하자. 나 드레스도 좋은데 턱시도도 입어보고 시퍼. 사회는 소졍언니한테 해달라고 하까?. 축가는 언니가 불러줘. 나 우는거 싫으니까 너무 감동적인거 말구. 알게찌. 어? 알겠냐구우. Image
그게 언제 이뤄질지는 몰라.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될지 모르겠어. 그래도 어느순간 그게 가능한 날이 온다면, 그걸 함께하는건 서로일거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있는 둘이겠지. 더이상 결혼이라는 파도는 유람선 같은 두사람의 불안이 되지 못했고, 그저 행복한 상상의 일부가 되어줬음.
한참 뽀가 떠들고, 섫이 받아주던 대화가 지나가고. 언니 의견도 궁금해진 뽀가 물었음.

"언니는 어떤 결혼 하고싶어?"

그 질문 듣고도 한참을 밥 먹으면서 고민하는 섫. 뽀는 그게 언니가 무시한게 아니라 깊게 생각중인거 알아서 혼자 씩씩하게 언니가 가져간 고기 뺏어먹고 있음.
뽀가 고기 뺏어가면 다시 그릇에서 집어오고,
또 뺏어가면 다시 밥에 얹어두고. 그거 반복하면서도 생각에 잠겨있는 섫. 나는 어떤 결혼이 하고 싶지. 마냥 상상만 해봤지 그게 현실로 와닿지는 않아서 구체적으로 떠올려본적은 없었음. 현실에서 지엱이랑 함께하는 매일이 충분히 행복한것도 있었고.
뽀가 물어본거니까 답을 돌려주기 위해서 몇번이고 문장을 털고, 뒤집어 살펴보는 섫. 근데도 명확하게 그림이 떠오르지는 않을듯. 야외가 좋은가. 실내가 괜찮을까. 드레스는 롱이 좋은가. 미니가 예쁠까. 정말 다 괜찮은데.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유일하게 또렷한 윤곽을 발견하고 탄식 흘리는 섫.
나는 아직 그런 미래를 자세하게 떠올려보진 못했어. 확신하지만 내가 많이 느려서 그래. 앞으로 더 생각해볼게. 근데 지금 당장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나한테 어떤 결혼이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지엱아 나는"
"....."
"너랑 하는 결혼을 하고싶어"

알잖아.
내 확신은 너 하나인거. Image
드레스를 입어도 좋아.
턱시도를 입어도 좋아.
야외면 햇빛을 받은 네가 예쁠테고,
실내면 환한 조명을 받은 네가 예쁘겠지.
사회를 누가 보는게 중요한가.
축가를 무슨 노래를 하는게 중요한가.
당장은 잘 모르겠어.
우리는 어차피 서로를 보느라 바쁠텐데.
내가 한소절만 불러도 너 울것 같은데.
자세한 꿈을 꾸는 네가 이상한게 아니야.
너의 그 견고한 다정을 사랑해.
우리의 미래를 다져주는 네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범람할 수 있는거야.
너의 섬세함이 마음을 쏟아지게 해.

"너랑 하는 결혼이 좋아"

이런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듣지 않을 너를 알아.
섫은 뽀가 이 말에 담아낸 마음을 알거라 확신했고, 그 확신은 사실이 됐음. 담담하게 건넨 고백에 휩쓸려서 같이 범람하기 시작한 뽀. 가볍게 이어가던 대화에 무거운 사랑이 내려앉고, 뽀는 울지 않기 위해 밥만 꼭꼭 삼키지만 결국 식탁에 눈물 뚝 흘리면서 울기 시작할듯.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언니가 미워. 자꾸 이렇게 울게 만드는 언니가 미워. 근데 그 손에 쥔 사랑이 너무 따뜻하고 행복해서. 미운 감정은 단숨에 집어 삼킬만큼 벅차버려서. 밥 먹다 말고 울기 시작하는 뽀 때문에 난감한건 섫이야. 울리려던건 아니었는데.
밥먹던거 내려놓고 뽀 앞에 가서 무릎 굽혀 앉는 섫. 식탁 향해 있던 몸 제쪽으로 돌려서 두손 꼭 붙잡고 올려다 봐. 슬퍼서 우는게 아닌건 알지만 우는건 역시 마음 아파. 손 올려서 눈물 닦아주는 섫. 울지 말라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안해. 진심이고 진심인 마음이라 돌아가도 안할 자신은 없어서.
그저 그렇게 섫은 뽀가 스스로 울음 멈출 때까지 기다려줬음. 뽀는 울만큼 다 울고서 좀 진정되면 안아달라고 팔 뻗겠지. 그럼 그때 일어나서 허리 굽히고 뽀 꽉 안아주는 섫. 뽀는 아직도 훌쩍이면서 언니 어깨에 얼굴 파묻고 그래. 아까 듣자마자 돌려주고 싶었던 말, 그 자세한 미래의 바탕인 말.
"언니랑 결혼할래"

뽀가 품에 부비적 하면서 하는 말에 심장이 찌르르한 섫. 머리 감싸서 끌어당기고 대답해줌.

"응, 그러자"
"...진짜 맨날 울려"

두번째로 내뱉은 약속, 더 깊어진 감정.
그 어느날 지켜질 약속이기를.
상상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를.
언젠가.
언젠가는 말이야.
꼭 결혼하자, 우리. ImageImage
"..나 운동 해야게써"

낮에 침대에 같이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눈맞아서 한바탕 하고 난 후. 그대로 섫 가슴팍에 쓰러져서 한참 숨고르던 콩알이. 별안간 파드득 일어나서 언니 배에 다시 앉더니 굳게 다짐한 얼굴로 말함. 섫은 이불 끌어다가 뽀 허리에 둘러주면서 왜? 다정하게 되묻겠지.
왜냐고 묻는 말에는 대답 안하고 손바닥으로 언니 배만 꾹꾹 누르는 공주. 입술 일자된거 보니까 말하기 싫어하는것 같아서 두번은 안물어보는 섫. 뽀는 사실 민망한거야. 갑자기 운동 얘기 꺼낸 이유가 요즘 할때마다 체력 떨어진거 실감해서 그런거거든. 언니는 갈수록 쌩쌩해지는것 같은데.
한번씩 섫이 더 하고 싶은데 뽀 체력이 못따라가서 멈출 때가 있었음. 그때마다 섫은 곧바로 멈춰줬지만 뽀는 마음이 쓰였거든. 섫이 뽀를 사랑하니까 욕심을 제어할 수 있듯이 뽀도 그만큼 언니를 많이 사랑해서 욕심을 다 받아주고 싶었음. 그리고 갈수록 이 격차는 늘면 늘었지 줄것 같진 않아서.
언니가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한 체력은 유지될테고 저는 나중에 취업하면 체력이 더 떨어질게 뻔했음. 그냥 운동하는 언니 구경이 아니라 진짜 운동을 해야겠구나 싶은 뽀. 꾹꾹이하는것처럼 섫 배만 누르다가 다시 위에 엎드려서 쫑알쫑알해. 섫은 익숙하게 이불 더 끌어다 어깨 위로 덮어주고.
"운동할래"
"아침에 같이 나갈까?"
"...그건 이제 안할래"
"그럼 무슨 운동?"
"무슨 운동이 있지?"
"방금한 것도 운동이야"
"변태야!"

방금까지는 위에서 잘 움직여놓고선 그 한마디 했다고 우당탕 옆으로 굴러가버리는 콩알이. 그 옆에 느긋하게 따라 붙어서 다시 품에 끌어 당기는 섫. Image
바둥거리는 뽀 허리에 손 두르더니 금방 진정시키고, 목 밑에 팔 끼워넣어서 베개도 만들어줌. 또 콩알이가 어디로 튀어버리기 전에 다른주제 꺼내버리겠지.

"헬스장?"
"나 혼자?!"
"소졍이 다니는곳 있대"
"콩알 혼자?!"
"언니 없을땐 운동 안할꺼야?"
"...훙"
"일단 구겅만 해보자. 내일 같이 가"
마음 같아선 매일 데리고 다니고 싶지만 이미 운동량이 정해져있는 섫. 그래도 운동이랑 담 쌓아놓고 사는 뽀를 알아서 처음엔 같이 해줘야겠다 싶겠지. 같이 가보자니까 그새 신나서 몸 돌리더니 고개 빼꼼 올리는 뽀.

운동 알려줄꺼야? 진짜루? 언니 내가 저번에 준거 입구가. 바람막이. 알아찌?
뽀가 최근에 용돈 모아서 선물해준 바람막이. 사실 운동하는 사람이고 취향이 넓지 않아서 선물이 운동복, 운동화가 많았음. 이번에 가을 오는겸 해서 사줬는데 언니가 거의 교복처럼 입고다녀서 콩알이 기분 째져. 섫은 말안해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민둥하게 웃으면서 재촉하는 뽀가 사랑스럽기만 해. Image
"너는 뭐 입을건데?"
"언니 옷"
"내 옷?"
"웅, 언니꺼 훔칠꺼야"

이렇게 말하는거보니 오늘도 여기서 자고갈 생각이구나 싶은 섫. 지엱이한테 맞는 운동복이 있으려나 생각하는데 뽀는 벌써부터 들떠서 언니 품에 질문 폭격 중. 처음에 뭐부터 해야 되냐고 왜 벌써 물어보는지. 진짜 웃기고 귀엽게.
생각난김에 추한테 연락해봐야겠다 싶은 섫. 옆에 놔뒀던 핸드폰 찾는다고 잠깐 안고있던 팔 풀어내는데 허전해진 그 3초가 못내 아쉬운 콩알이. 입술 비죽 내밀고 옆에 더 붙는데 언니가 핸드폰이 잘 안보이는지 자꾸 뜸 들여. 빨리 다시 안아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물어볼거 37개 남았는데.
유독 관계가 끝난 후에 온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뽀. 결국 못참고 반대편으로 뻗은 섫 팔 잡아서 제쪽 보게 만들겠지.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품에 파고 들면서 울상으로 말해.

"안아줘"
"....."
"빨리-"

뽀는 정말 따뜻하게 안아달라는 뜻이었는데 섫한테 닿은 의미는 조금 달라져있었음. Image
겉으로 보기엔 표정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섫의 미묘한 차이를 바로 알아채는 콩알이. 당황스러워하다가 문득 제가 했던말 되새기고는 숨 삼키겠지. 헙. 망해따. 그리고 그 반응 하나에 섫 눈빛에 옅게 깔려있던 욕구의 온도가 높아졌음. 혀로 입술 한번 축이더니 슬금슬금 다시 뽀 위로 올라가는 섫.
이거 몇시간 전에 본것 같은데.
우리 몇시간 동안 한것 같은데.
뽀가 흔들리는 눈으로 보니까 위로
올라타서 뭘 더 하지는 않는 섫. 그냥
눈으로 물어보겠지. 더 할 수 있겠느냐고.
근데 또 잠깐 쉬었다고 한번 정도는
더 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해. 언니한테
이런 쪽으로 거짓말은 절대 못하는 찌여니.
근데 또 괜히 순순하게 들어주기는 싫어.
꼭 한번 퉁퉁대고 싶어. 그런 생각할수록
입술 삐죽 나오는데 그거 내려다보면서
당장 어떻게 히고 싶은거 꾹 참는 섫.
손가락으로만 입술 한번 꾹 누르고 허락 기다린다는듯이 바로 위에서 빤히 쳐다 봐.
나른한 욕구가 가득한 언니 눈 보니까 목이 타는 뽀.
어느새 좀 길어진 섫 머리카락 귀 뒤로 모아서 넘겨주더니 섫이 했던것처럼 손가락으로 입술 꾹 누르는 뽀. 그리고 목 뒤로 손 감아서 깍지끼더니 그래.

"내일 운동 잘 가르쳐줘야대"
"알았어"
"딱 한번만이야! 한번 반도 안돼!"
"응"
"...이번엔 나 위에 안갈거야. 힘들어"
"언니가 다 할게"
뽀의 할말이 닳으면서 섫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음. 어느새 이런 속도까지 닮아버린 둘이라. 뽀가 손끝에 힘을 주면서 섫은 팔에 힘을 풀어 밑으로 내려왔고, 본게임이 지나간 서브게임이 시작됐음. 결국 한번도 아니고, 한번 반도 아니고, 두번 반을 더 하고서 끝이 났을것 같지. ImageImage
다음날 오후. 콩알이가 선물해준 바람막이 입은 섫과 언니 바람막이 훔쳐입은 콩알이. 각자 어울리는 모자도 하나씩 썼어. 현관문고리 잡았다가 턱에 뾰루지 나서 마스크까지 쓴 콩알이 가만 내려다보는 섫. 옷이 뽀한테는 많이 커가지구 댕그란 눈만 뜨고 껌뻑하는게 평소보다 더 귀여워보여. ImageImage
왜 안가냐고 언니 옷 붙잡고 와다다 흔드는 뽀. 옷 소재 때문에 사부작 소리 나는데 그게 재밌다구 더 함. 제 바람막이가 구겨지든 말든 그런건 관심없는 섫. 마스크 밑으로 살짝 잡아 내리더니 다가가서 뽀뽀함. 모자 챙 때문에 고개 꺾어서 들어갔는데 놀란 콩알이 귀여워서 못멈추고 키스까지 해.
흔들던 옷자락만 손에 쥐고 으응.. 소리 내는 뽀. 빨리 가자구 언니 어깨 콩콩 때리는데 고개는 습관처럼 움직이고 있겠지. 더 하면 헬스장은 집어치우고 다른 운동 하게될까봐 적당히 끊고 떨어지는 섫. 숨 살짝 몰아쉬는 뽀 입술 닦아주고 마스크 다시 씌워줌. 그리고 그제야 만족해서 출발할듯.
"아 빨간불!"
"여기 신호 길었지"
"언니 때문이야. 아까 막..그랬자나"
"오래 안했는데"
"아무튼 언니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그러면 안되지!"
"그럼 콩알이 때문인가"
"그건 아니지!"
"네가 귀여워서 그래"
"그건 맞지!"

신호등 앞에서 바람막이 지퍼 올리는 섫이랑 그 팔에 대롱거리는 콩알이. ImageImage
그 신호 기다리는 몇분 사이에도 섫은 그대로 서있는 반면에 뽀는 언니 어깨에 턱 올렸다가 배 만졌다가 난리였음. 근데 또 상대한테 시선이 더 머무는건 섫이야. 뽀가 무슨 말을 해도 놓치지 않고 눈으로, 목소리로 대답해주겠지. 그리고 그런 빈틈 없는 언니의 리액션을 사랑하는 콩알이.
신호가 바뀔때마다 늘 먼저 움직이는건 뽀일것 같지. 섫은 보통 멍하게 뽀만 보고 있다가 걸어가는걸 보고 신호가 바뀌었구나를 알았음.

섫한테 뽀는 늘 그런 존재였겠지. 한템포 느린 일상에 신호를 주는 존재. 인생에 초록불 같은 사람. 그게 무엇이든 항상 섫을 움직이게 만드는건 뽀였음. Image
초록불 아래로 걸어가는 뒤통수가 새삼스레 든든하고 벅차게 느껴지는 섫. 감정이든, 일상이든 느린거 투성이라 신호가 바뀐줄도 모르고 놓치는게 많았던 제 삶에 뽀는 절대 오차가 없는 초록불 같았음.

너는 그래. 내 감정을 출발하게 만들고, 사랑이 멈추지 않게 해. 365일 초록불만 반짝이게 해.
10초 남짓 남은 신호를 보다가 뒤쳐졌던 걸음을 재촉해서 뽀 옆에 붙어걷는 섫. 뽀는 역시나 잠깐 느려졌던 섫의 걸음을 탓하지 않고 팔에 매달려서 또 쫑알대기 시작하겠지. 나 근데 벌써 배구파. 하다가 쓰러지면 어떡해? 언니가 인공호흡 해줘.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말도 안되게 귀엽게 하는 콩알이.
"인공호흡?"
"웅 그때는 밖에서 뽀뽀해도 봐주께"
"지금은?"
"안돼"
"저 앞에서는?"
"뭐래!"

언니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굴 때마다 너무 웃긴 뽀. 꺄르르 하면서 웃는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반달처럼 접혀 있겠지. 모자 때문에 그늘 졌는데도 그 눈이 너무 해사해서 마음이 울렁이는 섫.
진짜 달 같아. 어두운데 이렇게나 잘보여. 섫이 손가락으로 눈가 톡톡 두드리니까 똑같이 손가락 들어서 언니 코 톡톡 두드리는 콩알이. 섫이 피식 웃으면서 볼 한번 찌르면 이번엔 두손으로 언니 볼 쨔부하는 찌여니. 그리고 습관처럼 뽀뽀하려고 다가왔다가 자기가 더 놀래서 악! 하고 도망가버림. Image
졸지에 길 한복판에 남겨진 섫. 콩알이는 이미 저기 헬스장으로 뛰어가는 중.

"으아 도망가야게따!"

어렴풋 뺙뺙대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귀여워 죽겠음. 건물 안까지 사라졌다가 3초도 안지나서 다시 나와가지구 손 파닥이는 공주. 그럼 천천히 걷던 언니는 발목 한번 돌리고 바로 뛰어감.
추가 단골이라 미리 얘기해놔서 둘이 들어가서 추 이름 대자마자 하루 체험 오셨냐고 안내해줌. 편하게 둘러보시고 기구사용법 모르는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는 한냄 말은 듣는둥 마는둥 고개 끄덕이는 둘. 섫도 대학 와서는 체력단련실이 따로 있어서 헬스장 오는건 정말 간만이었음.
신기한 눈으로 이리저리 구경하는 뽀 기다려주다가 뭐하면 되냐고 먼저 물어보면 손잡고 런닝머신 위로 데려감.

"15분만 하자"
"뛰어??"
"몸 푸는거니까 걸어도 돼"

스타트 버튼까지 눌러주고 그제야 자기꺼 설정해서 걷기 시작하는 섫. 뽀도 하면 제대로 하는 성격이라 마스크도 빼고 열심히 할듯.
몸도 풀고, 기구 사용법 간단하게 설명해주면서 같이 운동하다가 뽀가 너무 더워해서 잠깐 물 가지러 가는 섫. 와중에도 낑낑거리면서 열심히 하던 뽀가 떠올라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니질 않음. 맨날 같이오고 싶어지면 어쩌지. 안되는데. 그런 생각만 굴리면서 돌아오던 섫.
뽀 옆에 남자 하나가 서있는거보고 표정이 굳을듯. 웬만하면 이런거 신경 안쓰는데 추가 트레이너 중에 처음보는 여자만 보면 치근덕 거리는 놈이 하나 있으니까 대충 무시하랬거든. 생김새 보니까 그 놈인것 같아서. 성큼성큼 다가가서 남자는 무시하고 뽀 손에 텀블러 쥐여주는 섫. Image
"고마워 언니-"

뽀가 해맑게 말하는거보니까 아직 별일은 없었구나 싶어서 속으로 안도하겠지. 근데 이 남자 눈치가 꽤 없어. 섫이 눈길도 안주고 대놓고 어깨로 반쯤 가렸는데도 굳이 옆으로 비켜서서 말 붙여올듯.

"두분 같이 오신거에요?"
"...네"
"아 요즘 자매끼리도 많이 오시더라고요"
그 남자 한마디에 물 마시던 뽀도 표정이 굳어지겠지. 자매라고 한적 한번도 없는데 왜 멋대로 판단하고 규정을 하지. 언니 표정도 안좋은거 보니까 이쯤하고 가줬으면 좋겠는 뽀. 목소리 냉랭해져서 말함.

"자매 아니에요"
"아, 그쵸? 너무 안닮으셨다 했어요. 친구셨구나."

친구.
그것도 아닌데. Image
언니라는 말에 사랑 이외에 감정을 담아본적 없는데.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사랑이 물들어 있는데. 그게 누군가에겐 전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속이 갑갑해지는 뽀. 억울하기도 했어. 이 순간 지나가는 1초에도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신하는데 전부 무시 당한것 같아서.
근데 더 화나는건 이 상황에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는거.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다는거. 이제는 연애에 확신이 생겨서 그 현실이 관계 자체를 비틀지는 못했지만 비참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음.

우리 사랑이 우정이라는데.
우리가 자매라는데.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지금이 좀 아프다, 언니. Image
이미 한계단 주저 앉았는데 남자는 눈치도 없는지 자세 알려준다고 왔던걸 이어가려고 해. 그게 너무 허탈해서 손바닥 펴서 멈추는 뽀. 지금 이 사람 옆에 둬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을것 같아서 보내야겠다 싶겠지. 이게 우리 사이에 큰 균열을 일으키진 못하겠지만 우리에게 분명 상처가 났으니까.
"괜찮아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아, 그러세요?"

대놓고 거부의사를 표현하고서야 남자는 머쓱하게 뒷머리 긁적이겠지. 그래도 혹시 하다가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보셔도 된다고 구구절절 이어가는데 뽀는 마지막 인내심으로 주먹 쥐고 참고있고. 섫은 살짝 떨리는 뽀 손만 내려다보고 있을듯.
섫도 괜찮지는 않아. 견고하기만 한 우리 사랑이 고작 우정으로 포장되는 현실이 싫어. 언니라는 말에 사랑이 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 건조함이 숨막혀. 근데 섫은 다른 부분에서 더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음.

해사하던 네 눈이 가라앉은거,
네가 비참함을 삼키고 있는거.
..조금 아프다, 지엱아.
늘 제 인생에 초록불이던 뽀가 현실에 부딪혀 노란빛을 보이고 빨갛게 져물어가는걸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울컥하는 섫. 남자의 생각이 뭐라고 우리가 이래야 되나 싶고. 현실이 뭐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입을 다물어야 되나 싶어. 입술 꽉 깨물다가 머쓱하게 돌아서는 남자 돌아보는 섫. Image
남자가 한발자국 떼는거 지켜보다가 기구에 앉아서 울컥한거 참는 뽀에게 시선 돌리겠지. 평소보다 훨씬 작아보이는 몸을 보니까 고장난것처럼 감정이 쏟아져버리는 섫. 어느새 바닥만 보고있는 뽀에게 손을 내밀고, 올려다보는 뽀와 눈을 맞추고서.

"..괜찮아"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말을 해봐.
그리고 섫의 그 한마디에 불안으로 내려 앉던 마음에 제동이 걸리는 뽀. 똑같이 상처받고 있지만 섫은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뽀보다 한걸음 앞서는 사람이었음.

"집에 가자"

그 네글자가 왜 그렇게 안심이 되는지. 눈물 가득 차오르는거 간신히 참고 고개 끄덕이는 뽀. 섫 손 붙잡고 일어나겠지.
뽀만 신호등이었던게 아니야. 둘 사이에 뽀가 일상의 초록불이었다면 섫은 불안의 빨간불이 되어줬음. 아픈거 알아. 불안한거 알아. 하지만 그건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섫은 뽀의 불안이 깊어지기 전에 빨간불을 켰고, 그럼 뽀는 방향을 틀어 사랑을 향해 초록불을 켰음.
오늘도 마찬가지야. 섫이 먼저 아픔을 딛고 손을 내밀었고, 뽀는 그 손짓 하나를 붙잡고서 몸을 일으켰음. 물기 어린 눈으로 섫 바라보면서 조금은 웃어보이는 뽀.

"우리집 가자"

그리고 다시 밝아지기 시작한 달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걸 보고 심장 끝이 저려오는 섫. 뽀 손 잡고서 작게 속삭임. Image
"지엱아"
"응?"
"지엱아"
"응, 듣고있어"
"괜찮다고 해줘"
"....."
"괜찮을거라고"

섫이 이런 경우가 흔치 않았음. 무언가 대답을 바라는건 거의 없었는데. 뭔가 결심한 듯한 얼굴로 말하는 섫에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고개 끄덕이는 뽀.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
언니면 뭐든 괜찮아.
그리고 그 한마디에 결심을 한건지 그대로 카운터 쪽으로 향하는 섫. 손에 이끌리듯 가다가 섫이 아까 그 남자한테 가는거 보고 그때 이제 뽀도 눈치챌것 같지. 언니가 뭘 하려고 하는지. 뭘 하고 싶어하는지. 뽀 손을 깍지껴 붙잡은 섫은 남자 앞을 가로막고 서서 말했음.

"친구 아니에요" Image
지금 이 순간도 걱정이 돼.
나중에 소졍이가 곤란하면 어쩌지.
괜히 말했다가 더 상처받으면 어쩌지.
근데 오늘만큼은. 딱 오늘 하루는.
네 초록빛이 아직 희미한게 너무 아파서.
오늘은 내가 먼저 건널게.
이걸 건너야 우리가
더 멀리 갈 수 있을것 같아.

지엱아.
지금은 내가 할게, 초록불.
"가족도 아니에요"
"...네?"
"가족이 되고싶은 사이에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거,
우리가 나누는거,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거.
멋대로 지우고 다른이름 붙이지마.

"애인이에요. 여자친구에요"

그거 전부 다 사랑이니까. Image
벙찐 남자 가만히 노려보다가 뽀 데리고 헬스장 나오는 섫. 그대로 말없이 아까 건넜던 큰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멈추는 둘. 빨갛게 물든 신호 바라보던 섫이 먼저 입을 열겠지. 깍지낀 손을 꼭 붙든채로.

"미안해. 멋대로 얘기해버려서"
"..괜찮다고 했잖아"
"그건 내가 물어봐서,"
"고마워"
욱해서 지르긴 했지만 뽀한테 부담이 갈까 신경이 쓰였던 섫. 고맙다는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서 시선 돌렸다가 숨까지 막히는것 같겠지. 곧 울것 같은 얼굴로 올려다보는 뽀 때문에. 그 눈빛에 사랑이 뚝뚝 떨어져서. 덩달아서 눈가가 뜨거워지는 섫. 뽀는 젖은 눈으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음.
"알려줘서 고마워"
"....."
"우리 지켜줘서 고마워"

가끔은 사랑한다는 말에도 담아낼 수 없는 감정이 있었음.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숙한 곳에 들어오는 고맙다는 말에 먼저 눈물 보이는건 섫이겠지. 섫이 그러니까 뽀는 오히려 눈 부릅뜨면서 언니 얼굴 쓰다듬고 눈물 거둬줄듯.
분위기가 쳐지는게 싫었던 뽀가 일부러 히- 웃으니까 섫도 더 깊어지기 전에 감정 컨트롤 하겠지. 오늘은 진짜 반대네. 내가 초록불을 켜니까 네가 빨간불을 반짝이고. 섫이 눈물 다 닦아내고 나면 빤히 쳐다보던 콩알이가 품에 와락 안겨들듯. 꽉막힌놈 집갈때 넘어져라.., 뒤늦게 중얼거리면서.
너무 콩알이 다운 반응이라 작게 웃음 터트리는 섫. 뽀는 언니가 다시 웃는게 좋아서 허리 끌어안은채로 고개만 죽 빼더니 웃는 얼굴 구경해. 응? 다정하게 되묻는 언니가 너무 좋아. 마음이 솜사탕 같아. 애정이 바다같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우리는 이렇게 매순간 사랑인데. Image
현실이라는 파도가 또 밀려왔지만 유람선은 굳건했고, 둘의 연애는 상처를 남기지 않고 한겹 더 단단해졌음. 불안함이 빠져 나가자 그 공간만큼 사랑이 더해지고, 갑자기 사랑이 막 뻥튀기 되는 찌여니. 으아아 하고 언니 꽉 끌어 안더니 발 동동 하면서 모자 챙끼리 뽀뽀시켜버려.
사람 많이 지나다니니까 입술에는 못하고 모자끼리 뽀뽀. 언니 손도 들게 해서 손바닥끼리 뽀뽀. 천하의 사랑둥이로 돌아온 뽀 덕분에 섫은 눈 질끈 감고 헛웃음 터트리겠지.

"뭐해 지엱아"
"뽀뽀"
"..언니 인공호흡 필요해"
"헐? 집가서 해주께"

진짜 숨을 못쉬겠어.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대로는 안되겠어서 한번 안기라도 하려는데, 뽀가 신난 얼굴로 앞을 가리켰음.

"초록불!"

그리고 여느때처럼 먼저 움직이는 뽀와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섫. 횡단보도에는 둘의 웃음소리가 얽혀들겠지.

수많은 신호가 오가는 세상에,
둘의 사랑 초록불은 꺼지지 않았음.
아마 앞으로도. 평생을. ImageImage
날씨가 좋은 주말. 딱히 데이트 약속을 잡아 놓은건 아니었는데 점심부터 너무 심심하다고 언니 집 쳐들어온 콩알이. 언니 과제 중이라 끝날 때까지 못놀아준대서 시무룩했지만 그래도 얌전히 기다리는 중. 침대에 작은상 펴고 앉아있는 언니 팔이랑 어깨에 널브러져서 바깥 구경 하고 있음.
한쪽에만 무게가 실려서 불편할 법도 한데 한번씩 동그란 정수리 흘깃 보고 가라는 말은 하지 않는 섫. 섫이 절대 뽀에게 쉽게 하지 않는 많은 말들이 있었음. 저리 가. 비켜. 불편해. 하지마. 내뱉기는 쉽지만 절대 쉽지 않은 말들. 섫은 제 공간이 조금 구겨져도 뽀가 옆에 있는게 좋았음.
제 어깨에 부비적대느라 망가진 머리도 좋았고, 갑자기 파드득 몸 돌려서 볼에 뽀뽀해주는것도 좋았고, 꾹꾹 참다가 언제쯤 끝나? 조심스럽게 묻는것도 좋았음. 언제나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이 중요한 섫이지만 뽀에게만큼은 그 모든 울타리가 의미없었지. 뽀가 닿지못할 부분은 이만큼도 없어서.
콩알이는 아직도 다리 모으고 앉아서 창밖 구경해. 날씨가 너무 좋잖아. 파랗고, 하얗고. 섫은 너무 맑다고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뽀가 사랑하는 날씨였음.

산책가자고 할까.
저녁 나가서 먹자고 할까.
언니 언제쯤 끝날까.
헐, 뽀뽀 하구 싶다.
뽀뽀해야지.

의식의 흐름대로 뒤돌아서 또 쪽쪽. Image
섫이 딱히 대단한 반응을 보여주진 않았음. 그냥 타자치던 손가락만 멈추고 뽀한테 얼굴 맡기는 정도. 어깨 붙잡고 볼 여기저기 뽀뽀하는거 받아주다가 마지막에는 고개 돌려서 뒷목 잡고 잠깐 입술 머금는 정도.

"언니 10분만"

짧게 입술에 키스해주고 말하면 이제 10분동안은 안건드리는 공주.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섫. 집중해서 과제 마무리하고, 끝나면 곧장 몸 돌려서 뽀 끌어 안겠지. 동그랗게 말려있던 몸 뒤로 다 기대놓고 언니 손 허리에 두르는 찌여니. 그리고 그 손 얽혀서 잡고 돌아보면서 그래.

"날씨 대박이지"
"응, 맑네"

언니는 진짜 웃겨.
하늘을 보고 말해야지.
내가 아니라. Image
언니가 그러는게 웃겨서 턱 잡아다가 창밖으로 돌려주는 뽀.

"제대로 보구 말해"
"..날씨 좋네"
"산책할래?"
"산책?"
"언니 힘들면 말고. 진짜루. 과제 한다고 늦게 잤자나. 같이 낮잠자두 대"
"여기 앞에만 돌고 오자"
"....."
"무리하는거 아니야"

조금 피곤한건 맞는데.
너 웃는거 보고싶어.
제대로 한번 풀긴 했지만 여전히 언니가 무리하는것에 민감하게 구는 뽀. 괜찮다는 말에도 세모눈 만들고 계속 쳐다봐. 섫은 자기가 가자고 해놓고 또 이렇게 의심하는 뽀가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결국 안고있던 몸 빙글 돌려서 제대로 얼굴 마주보겠지. 부스스해진 뒷머리 쓰다듬어주면서.
"피곤한건 맞아"
"거 봐!"
"그러니까 앞에만 잠깐 다녀오자"
"나 진짜 안가두 돼"
"언니가 가고 싶어"
"....."
"대신 오늘 저녁은 네가 해줘"
"...치킨 먹을라구 했는데"
"그럼 네가 사줘"
"진짜?"
"응, 진짜"

그 말까지 듣고서야 환하게 웃는 콩알이. 신나서 옷 갈아입는다고 언니 옷장 열어 재껴.
이미 외출복이면서 언니옷 입겠다고 냅다 옷장 뒤지는 뽀. 섫은 잠옷 차림이라 그 뒤에 서서 눈으로 보고있음. 작은 손으로 와다닥 뒤지더니 셔츠랑 청바지 꺼내서 언니 품에 안겨주는 콩알이.

"이거 입어!"

그럼 옷은 보지도 않고 고개 끄덕이는 섫. 뽀가 자기 입을거 고르는 동안 혼자 갈아입음.
둘다 갈아입고 나가려다가 날씨가 너무 좋길래 필름카메라도 챙겨나가는 섫. 얼마전에 샀는데 연습도 할겸. 적당히 해가 넘어가고 있어서 햇빛도 덜 따갑고, 가을이라 공기가 선선해서 섫도 나오니까 피곤한건 가시는 느낌이었음. 큰길가 반대편으로 사람없는 골목을 손잡고 산책하는 둘.
가끔 산책하다가 오는 큰 공터까지 왔는데 가을이 진짜 오긴 했는지 여기저기 꽃이 피어있었음. 섫이 좋아하는 코스모스야. 피곤이 조금 젖어있던 언니 눈이 코스모스 보자마자 생기도는거 보고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콩알이. 일부러 빙 돌아서 코스모스 많은 쪽으로만 걸어. 언니 기분 좋아지라고.
"사진 찍을까"

그리고 중간쯤 가다가 걸음 멈추고 얘기하는 섫. 보통 언니가 이런말 잘 안하거든. 특히나 사진은 찍자고 하는게 드물어서 너무 기분좋은 뽀. 당장 고개 끄덕이고 핸드폰 꺼내드는데 섫은 그때 한발자국 물러나더니 카메라를 들어. 작은 시야에 뽀를 가두고, 찰나를 담고서. 찰칵. Image
그 소리에 눈 크게 뜨고 돌아보는 뽀. 언니 또 이랬어. 맨날 말도 안해주고 사진 찍어. 뺏으려고 달려드는데 그거 다 쉽게 막으면서도 떨어트려 놓지는 않는 섫. 어깨 쾅쾅 미는거 받아주다가 끌어안아버려.

"말하고 찍으랬지!"
"미안 미안"
"하나도 안미안하지!"
"진짜 미안"
"웃으면서 말하지!"
네가 자꾸 웃게 만들잖아. 웃음이 나는걸 어떡해. 뽀 풀어질 때까지 안고 달래주다가 자기도 찍을거니까 가만 있으라는 말에 놔주는 섫. 근데 뽀가 진짜 작정하고 핸드폰 들고 찍어대는 덕분에 어색해서 하늘만 멍하게 보고 있을듯. 그리고 그거 영상까지 남겨놓고서야 옆에 와서 쪼르르 붙는 뽀.
둘이 꽃배경으로 셀카 남기고, 섫도 핸드폰으로 뽀 찍어주고. 그렇게 한동안 걷다가 사진찍고, 또 걷고. 예쁜곳 있으면 멈춰서 사진찍고. 그렇게 크게 한바퀴 돌고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옴. 멀리 안가기로 해서 섫은 이쯤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뽀가 갑자기 손에 들린 카메라 가져가더니 말함.
"저기 뒤에 서봐"
"그걸로 찍게?"
"어떻게 찍는지 알려줘"

핸드폰으로 찍어주긴 했지만 왠지 오늘의 언니를, 이 온도와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음. 간단하게 조작법 알려주는거 열심히 경청하는 뽀. 옆에서 어깨 내리고 설명해주는 언니 옆모습이 너무 예뻐서 뽀뽀하고 싶은거 간신히 참았어. Image
이따 집가면 뽀뽀해줘야지. 10번 할거야. 그렇게 다짐하고 제일 예쁜 자리 찾아서 언니 세워두는 뽀. 작정하고 자리 잡아서 카메라 들이대니까 어색해지는 섫. 뚝딱거리니까 자연스럽게 하라고 콩알소리 내는 뽀.

"꽃이 나라구 생각해!"

그 소리가 귀여워서 그때부터 어색함이 좀 가시는 섫이었음.
큰배경을 담아서 몇장 찍다가 점점 거리 좁혀오는 뽀. 카메라 안에 언니가 너무 예뻐서, 더 가까이 담고 싶어서. 웃으면서 한발한발 걸어오는데 그걸 보고있는 섫은 심장이 울렁거렸음. 뽀를 보다가 다시 코스모스에 시선을 돌리는데 아까만큼 예쁘게 보이지가 않아. 꽃보다 더 화사한 너 덕분에. Image
너무 가까이 온다고 부담스러워할 법도 한데 섫은 묵묵히 꽃을 바라보고 포즈를 취했음. 절대 지엱이에게 저리가, 가까이 오지마 라고 하지 않는 언니라서. 어차피 네가 찍어주는 사진은 너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에 들테니까.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어. 그 마음이 은은한 얼굴에 다 묻어 나오겠지.
이번에 그걸로 마음이 울렁이는건 뽀였음. 프레임 안에 담긴 코스모스와 언니가 너무 예뻐서. 작년 가을, 딱 오늘같은 날씨였던 날. 술취한 언니를 데리러 갔던 어느날이 떠올라서.

'코스모스 피었다'
'언니 코스모스 좋아하지-'
'응..예뻐..'

그날은 섫이 평소보다 조금 많이 취한 날이었음.
담벼락에 핀 코스모스 앞에 우뚝 서서 바라보던 섫. 뽀는 그날따라 더 취해서 풀어진 언니가 귀여워서 계속 웃고 있었음. 꽃을 쳐다보고, 살짝 만져보고. 그러다가 담벼락 위에 떨어진 꽃잎을 집어 들더니 뽀 손바닥 위에 놓아주던 섫이었음. 그리고 조심조심 손가락을 접어서 그걸 쥐게 만들었음.
확인이라도 하듯이 작은 주먹을 두손으로 꼭 쥐고 섫이 했던 말. 뽀가 1년이 지나고서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그 말.

'얘 꽃말이 뭔지 알아?'
'뭔데?'
'순정이래'
'.....'
'이거 너 줄게'
'.....'
'지엱아'
'.....'
'언니꺼 다 줄게, 이거'

취해서 횡설수설 했던 말,
잔뜩 풀어져서 웃던 얼굴. Image
그렇게 취한 와중에도 한다는 말이 제 순정을 전부 주겠다는 고백인 섫을 보면서 뽀는 생각했었음.

절대 안놓칠거야.
흘리지 않을거야.
언니의 순정을 쥐고서,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할거야.

그날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뽀는 그 꽃잎을 놓지 않았고, 작은 꽃잎이 시들기라도 할까 코팅까지 해놨음.
그 꽃잎은 1년이 지난 지금 뽀가 행복한 기억을 모아놓은 상자에 놓여있었음. 섫은 여전히도 모든 순정을 뽀에게 주고 있었고, 뽀는 그걸 한틈도 놓치지 않고 행복하고 있었지. 새삼 그 날의 기억부터 1년간의 시간이 사랑이라는 필름으로 재생이 돼서. 울컥한 마음을 카메라 밑으로 가려보는 뽀.
그걸 추스리느라고 찍는게 늦어졌지만 섫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음. 숙인 허리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그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는건지. 여전히 예쁘게 웃는 섫을 프레임으로 바라보다가 간신히 한두장 찍어보는 뽀. 오늘 이 사진을 돌아보면 그게 언제든 눈물이 날것 같다고 생각을 해. Image
그래도 울지 않고 울렁임을 견뎌낸 뽀는 카메라를 내려 놓자마자 섫한테 뛰어가서 안길것 같지. 갑자기 달려들었는데도 놀라지 않고 같이 끌어 안아주는 섫. 뽀는 품에 가득 안고 있음에도 마음이 벅차고 벅차서 더 팔에 힘을 주겠지.

"언니 숨막힌다"
"시러 안떨어질래"
"떨어지라고 안했어"
한참 섫 품에 안겨있던 뽀는 어떤 말이든 하고 싶어서 입안이 간지러웠음.

행복이 자꾸만 여기저기서 돋아나. 이게 익숙해질법도 한데 아직도 언니가 주는 사랑이 새롭고 벅차. 늘 새로운 모양으로 행복이 싹을 터서 간지러워. 말하지 않고는 못참겠어. 펑 하고 터져버릴것 같아.
품에서 얼굴만 쏙 빼놓고 다정한 섫과 마주하는 뽀. 순정을 전부 준다던 언니지만 제 사랑도 그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음. 나도 그래. 나한테도, 언니가 그래. 주변에 가득 피어난 코스모스를 훑어보다가 다시 그 중앙에 우뚝 선 섫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뽀. 천천히 눈을 맞추고 말해.
"언니"
"..응"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만지면 사랑이 묻어날 눈을 하고.

다정하게 올라가는 섫 입꼬리를 바라보던 뽀는 품 안에서 손을 들고 섫 턱밑으로 두손바닥을 가져다댔음. 마치 꽃받침을 하는것처럼. 그리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
"언니가 내 코스모스해"

언니가 내 순정이야. 사랑이야. 그렇게 말을 마친 뽀는 꽃받침 했던 두손으로 섫 볼을 잡고 다가와서 살짝 입을 맞췄음. 주변에 누가 있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 지금 당장 제 앞에 누구보다 예쁜 코스모스가 있었으니까.

"많이 순정해"

이렇게 사랑해. 이렇게나. Image
1년전 고백에 1년의 사랑을 더해서 돌려준 뽀. 그 말을 들은 섫은 그때의 뽀처럼 벅찼고, 기뻤고, 행복했음.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눈을 질끈 감은 섫은 당장 입맞추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귓가에 나도, 나도.. 속삭였음. 한숨에 애정을 담고, 행복에 앓으면서. 제 순정과도 같은 지엱이를 안고서.
"키스 하고싶어"
"여기서?!"
"..몰라"
"안돼! 집가서 해"
"...하고싶어"
"그건 치킨먹구 해. 나 배구파"
"사랑해"
"내가 더!"
"그건 아니야"
"내가 더!!"
"아니야"

섫 목 끌어안고서 소리지르는 뽀. 섫은 웃으면서 뽀 끌어안고 뒤뚱뒤뚱 입구로 움직이겠지. 또 한겹의 애정을 덧칠한 주말이었음. ImageImage
가을의 초입, 일교차가 치솟는 요즘. 서로 겉옷 챙겨주는게 보고싶어.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놀러나간 콩알이. 편한 자리라 낮에 후드 하나 입고 쫄래쫄래 나갔는데 밥먹고 술마시는 동안 온도가 팍팍 떨어져. 찬바람도 많이 불고. 뽀는 실내에 있어서 잘 모르는데 섫은 혼자 입술 물고 창밖 보는 중.
창문 여니까 찬바람이 드세. 출발할 때 보내준 셀카가 후드 차림이던 뽀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온도였음.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카톡방에 하트 남발하는게 안그래도 조금 취한것 같아서 걱정이 태산인 섫. 커튼 쥐고 바깥만 쳐다보다가 결국 트레이닝복 위로 후드집업 챙겨입음.
원래 놀러나가면 서로 언제 오냐는둥, 어디냐는둥 터치 잘 안하는데 특수한 경우였으니까. 토끼가 하트 들고 뛰어다니는 카톡방에 단정한 물음을 남겨놓는 섫.

-아직 2차?

2차 장소는 아니까 모자 뒤집어쓰면서 기다리는데 5분도 안지나서 답이 왔음.

-20차!!😆

...왜이렇게 신났지. 귀여워.
맨날 신나면 말할 때 오버하는게 습관인 아기공주. 안그래도 기분 좋은데 언니한테 연락와서 어깨춤 추는 중.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짧고 간결하게 언니. 하고 입 싹 닫음. 친구들은 얘가 친언니가 있었나 싶은데 뽀가 말 돌려서 더 안물어봄. 언니 앞에 생략된 수많은 사랑은 쨔물이만 알아.
섫은 그 오버 속에 숨은 뜻을 단번에 알아채고 신발을 구겨신었음. 한손에는 또 다른 후드집업을 하나 챙겨들고서. 간다고 하면 괜히 신경써서 먼저 나올까봐 이따 끝나면 연락달라고 남기고 뽀가 있는 곳으로 데리러 감. 나오니까 생각보다 더 바람이 쎄서 편의점 핫팩도 두어개 샀어.
시내 도착해서는 뽀가 나올 때까지 근처 카페갈 생각으로 가까운 곳 찾는 섫. 그거 찾으면서 뽀가 있는 술집도 지나치는데 괜히 안쪽 한번 훑어보게 됨. 그래도 걸리면 안되니까 볼캡 눌러 쓰고 금방 지나가려는데 창문 너머 모퉁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여.

창문에 이마 기대서 쳐다보고 있는 콩알이. Image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복도 같은데서 그러고 있는 뽀 때문에 너무 놀란 섫. 걷다가 멈춰서 멍하게 보는데 눈 부릅뜨고 안에서 쳐다보던 뽀가 눈꼬리 휘어가며 웃는게 보여. 입모양으로 언니! 하면서. 그게 와중에도 너무 귀엽잖아. 놀란건 놀란거고 발이 저절로 유리창 앞으로 향하는 섫이었음.
창문 하나 두고 마주하게 된 둘. 뽀가 신나서 뭐라고 하는데 유리 때문에 잘 안들려. 입모양 읽으려고 하다가 잘 안돼서 뽀랑 눈맞추면서 주머니 뒤적이는 섫. 그대로 뽀한테 전화 걸고 화면 보여주니까 더 웃으면서 받는 뽀. 누가 보면 우스운 광경이었지. 유리창을 두고 전화를 한다는게.
'언니!'
'거기서 뭐해'
'언니 구경!'
'친구들은?'
'쩌어어기 안에'

그럼 뭐 어때. 눈앞에 제 사람이 이렇게나 예쁜데. 눌러썼던 볼캡 뽀한테 얼굴 잘보이게 고쳐쓰는 섫. 거의 유리 뚫고 나올 기세로 보는게 웃겨. 괜히 손가락으로 눌린 이마 유리 위로 톡톡 하면 아픈척 하는건 귀엽고
사실 콩알이는 5분 전에 미리 여기 나와있었음. 이미 친구들이랑 빠빠이도 했어. 언니가 올거 이미 알았거든. 처음 연락 했을 때부터 알았음. 이런거 물을 사람이 아닌데 묻는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으니까. 그때부터 슬슬 간다고 밑밥 깔았고, 끝나면 연락 달라는 말 보고나서는 곧장 시간을 쟀음.
저 말 하자마자 나왔을거고. 언니네 집에서 여기까지 이 정도. 혼자 그렇게 정해놓고 시간 되자마자 친구들한테 인사하고 나왔음. 원래 계획은 언니가 오는 길 따라서 천천히 가고 있을까 했는데 바깥 바람 쐬자마자 알았음. 이래서 데리러 오는구나. 그래서 가게 구석에서 이마 문대고 언니 기다림.
5분 정도 오차가 있긴 했지만 딱 그 정도. 제가 생각했던 방향에서, 예상한 이유로 걸어오는 섫을 보고 뽀는 마음이 흐물흐물 했음. 일부러 안부르고 쳐다만 봤는데 바로 발견해준 것도 좋고, 오자마자 얼굴 보이게 모자 고쳐쓴 것도 좋고, 전화 해준 다정함도 좋아. 그냥 언니가 너무 좋은 아기공주.
전화하고 있다가 갑자기 급발진 해서 출구로 와다다 달려가는데 전화는 안끊고 천천히 그거 따라 움직여서 출구 앞에서 기다리는 섫. 뽀가 문을 열자마자 섫이 보였고, 섫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음.

"지엱아"

도저히 안기지 않고는 못배기겠는 뽀. 몸통 박치기 발사.
그럼 섫은 익숙하게 받아주고, 뽀가 먼저 끊을 때까지 통화를 그냥 놔뒀음. 섫한테 좋아서 안겼다가 찬바람 부니까 이제 춥다고 안떨어지는 뽀. 섫은 그게 귀엽긴 한데 감기 걸릴까봐 걱정이라 잠깐 콩알이 떼어놓고 후드집업을 펼쳤음. 입혀주려고 뒤돌라고 하는데 가만히 섫만 보고있는 뽀.
눈이 조금 잠긴거 보니 취한것 같아. 그냥 돌려 입혀주자 싶어서 후드집업 둘러주려는데 언니 손목 딱 잡는 콩알이. 그러더니 펼쳐놓은 후드집업에 반대로 팔 쑥쑥 끼워넣더니 그대로 껴안아버림. 지퍼가 등에 간 우스운 꼴인데 나는 왜, 너도 왜. 바보같이 웃고있지. 추워 죽겠는데도.
제대로 입자니까 싫대. 잠깐 떨어져보자니까 그건 더 싫대. 결국 포기하고 같이 안아주는 섫. 그렇게 한참 양옆으로 부둥대다가 집에 가는데 뽀가 취해서 집업 제대로 입을 생각이 없음. 괜히 장난 친다고 후드모자 얼굴에 스윽 했다가 팔에 콩알펀치 맞는 섫. 웃다가 뒤에 반만큼 자크 채워주겠지.
한명은 후드집업 제대로 입고, 한명은 후드집업 반대로 입고 집에 가는 둘. 핫팩 콩알이한테 몰아서 다 주려다가 딱 걸린 섫. 뽀가 난리치는 바람에 결국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갖고 감. 섫은 가는동안 뽀에게 왜 나와있었냐고 묻지 않았음. 그 또한 말안해도 알것 같아서. 네가 알고 있었던걸 알아서.
설명이 필요 없어진 사이. 4년이 만들어준 깊이. 가끔 둘의 대화는 많은게 생략되고, 흐름이 끊기는것처럼 보일때가 있었음. 근데 그 바탕에는 둘만 알고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겠지. 섫이 아무말없이 있다가 눈을 빤히 들여다보면 뽀가 아침에도 했잖아! 어제두! 하고 대뜸 거절부터 한다든가,
뽀가 전화해놓고 혅정언니, 네글자로 부르는 순간 섫이 어떤 말보다 지금 갈게 라는 대답을 건넨다든가. 다른사람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흐름과 패턴이 둘에게는 있었고, 그게 쌓여갈 수록 대화가 생략되는 순간들이 많아졌음. 그게 전혀 이상하거나 불편하진 않아. 사랑이 이유라는걸 알았으니까.
걸으면서 얘기 나누다보니까 어느새 뽀네 집이야. 거의 반동거긴 했지만 엄연히 아직은 따로 살고있어서 섫은 오늘 데려다 주려고 온거임. 1층에서 얼른 들어가라고 하는데 뽀는 아쉬워. 술도 먹었고, 언니 너무 좋고, 아무튼 자고 갔으면 좋겠어. 머뭇거리다가 언니랑 마주잡은 손 끌어당기는 말랑이.
"언니 나 자크 풀어줘야대"
"아, 그렇지"
"지금은 근데 춥자나. 안에서 풀어줘야지"
"....."
"근데 안에 들어가면 너무 추워서 다시 나오기 싫겠다아"
"지엱아"
"웅"
"언니 자고갈게"
"그래!!"

그러자고 하면 고민도 안하고 들어줄텐데. 늘상 이렇게 빙빙 돌리는 뽀가 마냥 귀여운 섫이였음.
굳이 누구네 집에서 잔다 하면 섫 집이 많았음. 뽀가 더 잘 쳐들어오기도 하고, 좀 더 넓기도 해서. 그래도 자주 오는 집이라 편하게 모자 벗어서 내려놓고 있으니 옆에 쪼르르 와서 등 내보이는 뽀. 자크 내려달라고 그러고 있는게 귀여워서 장난끼가 돋은 섫. 반만 올라가 있던 자크 쭉 올려버림.
"아 언니!"

그럼 또 파닥대면서 뒤로 확 돌아보는 뽀. 언니 어깨 콩콩 때리더니 자기가 어떻게 해보겠다구 등뒤로 두손 뻗어봄. 어렵게 끙끙대고 있는데 이상한 곳에서 버튼이 눌린 섫. 술기운에 얼굴 빨개져서 미간 찌푸리고 있으니까 약간 좀. 금방 표정 묘해지더니 뽀한테 성큼 다가감. Image
등뒤로 뻗은 뽀 팔 따라서 쓰다듬더니 작은손 붙잡고 뒷짐지어 고정하는 섫. 눈앞까지 다가온 언니 얼굴에 어느새 불길이 읽혀서 어버버하는 뽀. 버릇처럼 어제도 했잖아! 하려는데 안했음. 생각해보니까 이번주에 안했음. 할말 없어진 콩알이. 합죽이 하고 있으니까 언니가 나직하게 그래.
"풀어줄게"
"....."
"추우니까 안에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고개 숙여서 입 맞추는 섫. 결국 춥다는 이유로 후드집업은 방 안에서, 다른건 이불 안에서 열심히 풀어줬을것 같지. 추운게 생각이 안날만큼. 시끄럽게. 뜨겁게.

일교차가 커진 가을의 초입,
한낮의 여름같은 밤이 지나가고 있었음. ImageImage
겨울이라고 옷정리 하기로 한 둘. 사실 콩알이는 찬바람 불기 시작할때 진작 정리 다 했고 늦장 부리던 언니 옷장만 뒤엎기로 했음. 뽀가 몇번 하라고 잔소리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같이 하기로 했어. 그날 대청소 하겠다고 으름장 놓더니만 아침 일찍부터 달려 온 콩알이.
원래 점심먹고 온다고 했는데 아침에 눈이 떠져서 그냥 왔음. 나 지금 갈꺼야! 톡 하나만 남겨놓고 출발했을것 같지. 섫은 뽀가 점심 이후에 온다길래 그때 알람 맞춰놓고 자고 있었음. 그러든 말든 냅다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는 뽀. 신발 벗자마자 침대로 달려가기.
다른사람한테는 적당히 예의도, 거리도 지키는 뽀가 유일하게 제멋대로 구는게 섫이었음. 처음부터 이런건 아니었는데 쌓아온 세월이 만들어낸 결과였지. 뽀는 섫이 제게 허용해주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이상은 욕심내지 않았음. 대신 그 바운더리 안에서는 맘껏 뒹굴고 뛰어 놀았음.
타인이 얼굴 만지는거 싫어하는 섫이지만 뽀가 볼을 쪼물딱 대는건 피하지 않았고, 잠에 예민한 언니가 콩알이가 깨우는건 그게 새벽이든 어떤 이유든 괜찮았음. 이건 일부분이고, 헤아리는것 자체가 의미 없을만큼 섫이 뽀에게만 열어주는 공간이 많았겠지. 뽀 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말이 맞아.
섫이 건네주는 유일함을 사랑했기에 그 공간이 망가지지 않게 잘 조절하는 뽀. 나름 언니 눈치도 보고 불편한것 같으면 안해. 물론 섫이 불편한 기색을 비추는건 이만큼도 안되긴 하지만. 오늘 아침에 말없이 찾아온건 분명 섫이 허용하는 범위 안이었음.
잠에 약한 언니라 당연히 자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뽀. 그리고 역시나 아직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섫. 뽀는 언니 얼굴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분 좋아서 문 앞에 서가지구 발가락으로 피아노 쳐. 도시라솔. 파레미시. 엉망진창 꼼지락 연주. 조용한 방 안에 시끄러운 애정이 흐르겠지. Image
불 켤까 하다가 언니 깨자마자 눈 부실까봐 무작정 침대로 올라가는 콩알이. 이불 안 걷어내고 그냥 슬쩍 들어서 같이 덮어버려. 그때까지도 뒤척이기만 하고 안깨는 섫. 그럼 뽀는 잠깐 같이 누워서 언니 얼굴 구경하겠지. 볼도 콕 찔러 봐. 하얗고 말랑말랑.
그럼 살짝 얼굴 찡그리기 시작하는 섫. 뽀는 가끔 이렇게 자는 언니 구경하는거 좋아함. 평소에 제 앞에서 보여주지 않는 예민한 얼굴을 볼 수 있거든. 짜증섞인 얼굴이다가 제 존재를 인식 하자마자 하얗게 풀어지는 것도 좋아. 선물처럼 저를 반겨주는 것도 좋아.
이제 감상은 끝났고 언니만의 알람을 울려줄 시간. 예쁘게 입꼬리 말아올려 웃던 뽀가 섫 어깨 밀어내더니 위로 올라탔음. 두손으로 얼굴 옆을 짚고서 내려다보는 뽀. 전방에 콩알 함성 발사.

"언니! 나 와써!"

꿈쩍도 안하던 섫은 목소리 하나에 느리게 눈을 떴음.
잠 덜 깨서 비몽사몽 하는 와중에도 뽀라는걸 알아채는 섫. 사실 목소리를 안 들어도 알아. 눈을 안떠도 알아. 제 인생에 이럴 수 있는 사람은 지엱이 하나니까. 눈도 안뜬채로 팔 휘젓다가 뽀 허리 안고 끌어당기는 섫. 그럼 얌전히 잡혀서 품에 안기는 뽀.
위에서 힘 다 빼고 늘어지는데 섫은 오히려 그게 더 좋대. 얕게 바깥냄새 풍겨가며 제 품을 덮은 무게가 반갑고 행복해서. 점심에 온다더니 왜 벌써 왔지. 혹시 벌써 점심인가. 그런 의문이 들어서 다 갈라진 목소리로 몇시.., 그러면 또 쌩쌩한 목소리가 돌아 와.
"8시!"

약속보다 턱없이 빠른 시간에 헛웃음 터트리는 섫. 아직 눈도 못뜨고 힘없이 웃으면 뽀는 언니 어깨에 기대서 행복하게 웃어. 제멋대로 빨리 왔는데 질책보다 애정 담은 웃음을 먼저 돌려주는 언니가 너무 좋아서. 못참고 볼에 뽀뽀 네번 남겨주는 아기공주.
그리고 얼굴 여기저기 쪽쪽거리는거 받으면서 눈만 깜빡이는 섫. 늦게 잠들어서 그런지 잠을 깨기가 평소보다 힘들었음. 보통은 뽀가 이러면 잠 털어내고 일어났는데 오늘은 그게 잘 안돼. 딱 두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것 같아. 그러려면 일단 이 콩알이부터 진정 시켜야겠지.
"왜 나는 뽀뽀 안해주지?"

콩알같은 소리 하면서 제 입술에 볼 가져다 붙이는 뽀가 귀여워 죽겠는 섫. 눈 질끈 감다가 뽀 끌어안고 옆으로 휙 눕혀버림. 그것도 일상인것처럼 잠깐 아이구 하다가 품에 파고드는 뽀. 아직 못채웠는지 다시 셀프 뽀뽀 작렬. Image
계속 그러는게 귀여워서 순순히 해주다가 뽀 볼 감싸안는 섫. 그대로 입술에 찐하게 뽀뽀해주고 머리 당겨안겠지. 품에 얌전히 안겨서도 이마로 어깨 콩콩 때려가며 일어나라고 알람 울리는 뽀. 언니도 일어나고 싶은데 오늘은 도저히 안되겠대. 턱으로 머리 꾹 누르고 팔에 힘주면서 콩알 알람 종료.
그럼 섫은 눈 반쯤 뜬채로 쳐다보겠지. 싫다고 일어나자고 하면 당장 일어날것 같은 얼굴로. 하지만 섫이 뽀를 사랑해서 공간을 전부 열어준 것처럼, 뽀도 그랬음. 섫을 많이도 사랑했으니까. 같이 놀고 싶지만, 뽀뽀도 더 받고 싶지만. 뽀한테는 섫의 피로가 훨씬 중요했음.
팔 한쪽 길게 뻗더니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콩알이.

"내가 재워주께"

꽤나 다부진 말에 섫은 흐물흐물 웃어버렸음. 팔베게 해주겠다고 그러는걸 보니 어떻게 웃음이 안나.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언뜻 예전에 팔베개 실패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기꺼이 품에 안겨드는 섫. Image
그때는 자세가 이상해서 팔이 저렸는데 이번엔 베개랑 딱 맞게 자리잡았음. 뽀도 그때 생각이 나서 잠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편안한 팔 덕분에 웃으면서 섫 끌어 안고 토닥이겠지.

"..두시간만이야"

콩알이답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는 빼놓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언니는 사랑 같았기에.
늘 잠들던 자세와 정반대인데도 둘 다 어색해하지 않았음. 섫은 작게만 보이던 뽀의 품이 생각보다 따뜻하고 아늑해서 좋았고, 뽀는 늘상 크고 단단해 보이던 언니가 제 품에 안겨있는게 귀여워서 좋았음. 평소와 조금 달라도 낯설지가 않은거. 그게 둘만의 사랑일것 같지.
좀 다르면 어때. 늘상 같을 필요는 없잖아.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거, 그게 일상인데.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둘이었음. 섫은 뒤척일 틈 없이 잠에 빠졌고, 끝까지 등을 토닥이던 뽀도 섫에게 졸음이 옮아서 어느새 같이 잠들어 버리겠지.

아주 평범한,
어느 겨울날의 아침이었음. Image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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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4, 2022
인스타 섫뽀 그 잡채,,
이거 찍어준 거 매니저 김혅정인 상상,,
신인상 받을 때는 대판 싸웠었고
이후로도 크고 작은 싸움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제 헤어지지 않고 잘 사귀는 중,,
상 받고 헤어질뻔 했던지라 김본아
시상식마다 불안해하는데 김혅정 그거 알고
덤덤하게 먼저 찍어 준다 했을것 같어 Image
신인상 받은 연말에 싸우고 화해하느라
그때 사진을 한장도 못찍어줬었거든,,
거의 모든 스케줄마다 사진이
다 있었는데 유일한 공백이 그때였음
김본아는 몰랐지만 김혅정은 그게 항상 미안했어서,,
더이상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바쁜 김본아 데리고 나와서 핸드폰 부터 들이 밀었을 김혅정
김본아는 인터뷰 한다고 오는 카메라 때문에 정신 없다가 김혅정 앵글에 담기고서야 편하게 숨 쉴것 같지,,
모든게 공유되는 삶을 사는 김본아가 유일하게 편하게 느껴지는 카메라 렌즈가 딱 언니 핸드폰 뿐이라서,,
억지로 더 환하게 웃던 김본아는 사라지고
장난스러운 얼굴의 김지엱이 돌아와
Read 52 tweets
Sep 16, 2022
뽀도 오늘의 결과를 알고 있었음. 워낙 회사 내에서 유명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담당 매니저가 관련 업무도 같이 하고 있어서 원치 않아도 알 수 밖에 없었음. 녹화 날인 거 알아서 일부러 신경 끄고 있었는데 매니저가 굳이 눈 앞에 보여준 덕에 모른 척 할 수도 없었지.
정리 된 명단에서 어쩔 수 없이 섫 이름을 먼저 찾았고, 당연히 상위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름이 18위에 적힌 거 보고 심장이 덜컹했음. 그러다 투표 순위와 한줄 평가까지 확인한 뒤에는 마음 속에서 뭔가 뚝 끊어졌겠지. 이걸 보고 섫이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너무 뻔했거든.
뽀는 섫을 잘 알았음. 얼마나 데뷔가 간절한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음. 왜 꼭 언니한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꼭 우리여야 했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늘게 몸을 떨던 섫이 떠오르고, 뽀는 우리에게만 너무나 가혹한 운명을 원망했음. Image
Read 35 tweets
Jul 12, 2022
이렇게 생겨서 부끄러움 없는 연상
이렇게 생겨서 최고유교걸인 연하
이 둘이 연애하는거 보고싶어
Image
Image
둘이 CC였으면 좋겠다. 섫은 공간연출과 졸업반이고 뽀는 연극영화과 2학년. 섫이 중간에 휴학 오래 했고, 뽀도 재수하고 들어 온거라 나이는 세살차이. 스물다섯 스물둘. 과는 달라도 학부가 같아서 술자리 몇번 같이 한게 인연이 돼서 만나게 됐음.
둘이 처음에 서로 좋아하게 된건 솔직히 외적인 요소가 컸을 것 같지. 섫은 뽀의 우아한 분위기(그리고 얼굴)가 좋았고, 뽀는 섫의 하얗고 말랑한 분위기(그리고 얼굴)가 좋았음. 처음에는 서로 얼굴이 너무 완식이라 성격이나 성향 이런거 돌아볼 틈도 없었음. 그저 눈호강 데이트 레전드.
Read 32 tweets
Jun 29, 2022
머드 축제가서 처음 만나는 섫뽀,,
김혅정 하필 그날 렌즈가 빠져가지고
계속 인상 찡그리고 다니다가
화장실에서 허리 숙여서 손씻고 있는
흑발 긴머 뒷모습 보구
당연히 일행인 긍서인줄 안 김혅정,,
말끔한 등에 진흙 손바닥 자국 야앗!
했는데 알고보니 무대하러 온 아이돌 김본아여라ㅜ
무대 의상이라 뒤에 훤히 드러내고 있었는데
거따가 손바닥 두개 챱 남겨버린 김혅정,,
대박 개빡치고 놀라서 돌아보는 얼굴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 손대고 굳어뻐려,,

"근더기가....어..."

근데 더 놀라운 사실,,
둘이 아는 사이였음 좋겠어,,
정확히 말하면 김본아가 좋아했던ㅜ
학생때 첫사랑이고 김혅정도 좋아했는데
아이돌 준비하는 김지엱한테 버려질까바
걍 먼저 놔버렸었음,,
공부하느라 바빠졌다는 핑계루,,
(근데 그 직후 모의고사 개망쳐서
한달동안 김지엱 피해다님ㅜ)
그리고는 그냥저냥 묻어두고 살았고
티비 나오면 멍때리고 보는 정도였는디,,
Read 17 tweets
Jun 16, 2022
결혼했으면 좋겠어 ImageImage
그냥 평범한 연애, 그리고 결혼. 운명적인 첫만남이라든가 소설처럼 온 세상이 뒤틀리는 경험은 없었지만 잔잔하고 여유로운 그런 사랑. 처음 만난 것도 둘이 잘 어울릴것 같다~ 라는 겹지인 추소졍의 오지랖으로 주선 된 소개팅. 둘 다 기대없이 편하게 나왔고, 서로의 완벽한 이상형도 아니었음.
예쁘다. 성격도 괜찮네. 근데 나랑 잘 되기는 힘들겠다. 저녁 먹고 나오는 길에 둘 다 같은 생각을 했음. 사람이 안좋은건 아닌데 일단 생활패턴도 너무 다르고, 연애적으로 시너지가 좋을것 같지는 않다고 할까. 둘은 그날 웃으면서 가게를 나왔지만 그후 애프터는 없이 깔끔하게 헤어졌음.
Read 12 tweets
May 16, 2022
캠퍼스 설뽀,,
같은 무리에서 사이 애매한 사이,,
단체로 있을 때는 잘 노는데
둘만 놔두면 눈 깜빡 손 꼼지락 사이,,
왠지 기류가 묘해서 너네 이상하다??
소리 삼천번 듣는 사이,,
그러다가 1~2년 뒤에는
친구들한테 대놓고 너네 진짜 사겨?
소리 듣는 사이,,
그때마다 뭐래~ 함서 술잔 내미는 김지엱,,
안주로 나온 강냉이 반 쪼개는 김혅정,,
그러다 졸업하고 나면 단체 모임
빼고는 얼굴 볼일 없는 사이,,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도 n년,,
각자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자리도 잡은 상태,,
누구 결혼한대서 모인 자리,,
술 마시면 나오는건 과거 이야기,,
한창 다같이 재밌던 에피소드 얘기하다가
오랜만에 꺼내지는 설뽀의 묘한 사이,,
너네 진짜 이상했다고,
친한건지 어색한건지
왜 그랬냐고 한마디씩 거들면,,
나이 좀 먹었다고 능글 맞아져서
어후 야 기억도 안나~ 그러는 김지엱,,
나이 좀 먹었다고 강냉이 대신
와인 쪼개 마시는 김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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