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하도 지호성이랑 옥신각신 하느라 늦게 잠이 들었는데, 잠이 들던 순간마저도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더랬다. "안고만 자자 안고만." 개소리 좀 작작해..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하도 예민한 상태다보니 수시로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난 단잠에
빠졌고 더 감사하게도 꿈에서는 듣도 보도 못 한 절세미인의 쭉쭉빵빵한 몸매를 실컷 감상하기 까지 한 데다 그 쭉빵녀가 야살스럽게 웃으며 내 아랫도리를 지분거리더니 서서히 드로즈를 내리고선 입으로.. 꿈이라지만 이렇게 생생하면서도 짜릿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있을까 싶어
언제 깰지 모를 이 꿈을 한참 즐기고 있는데,
- ...와.. 크다...
네..? 방금 누님의 목소리가 마치 19세 남성 지호성 목소리와 매우 흡사하게 들렸다면 내가 미친걸까?
- 딱 봐도 안 들어갈 거 같애.
이때부터 이상했다. 자꾸만 쭝얼쭝얼 지호성 목소리가 들려서 무심코 눈을 떴는데,
- .........
- ...깼네?
누가 지금이 꿈이라고 좀 말해주실 분..?
- ...뭐 하냐?
- 일찍 깼는데 너 텐트치고 있길래 구경하다가,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지호성 말은 이랬다. 어제 지멋대로 날 끌어안고 잠들었다가 일찍 깼는데 모닝텐트를 친 내 모습을 보고 남자를 사랑하는 게 맞는건지에
대한 제 성향파악에 도움이 좀 되어 보고자 속옷을 끌어내려 입에 넣고 빨아봤단다. 일단은 별 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아서 스스로 나 진짜 게이일수도 있겠다 생각하다가 순간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 얘기가 떠올랐다는데..
- 발기한 상태에서 두루마리 휴지 롤에 안 들어가면 크기가 평균 이상이라길래 넣어보고 있었어.
- .........
- 근데 너 안 들어가. 평균 이상인가보다 해성아.
- ..나와줄래?
평균 이상이고, 휴지 롤이고 간에 다 집어치우고 내 다리 위에서 꺼지라고 변태새끼야.. 난 왜 이렇게 홀딱 벗고 있는건데.
- 그러게 왜 자면서 훌렁훌렁 벗고 그래. 그렇게 열이 많은 놈이 많이도 껴입고 잔다 싶더니.
그건 너 때문이잖아. 니가 계속 음흉하게 쳐다보니까.
- 야한거 보면 되게 맛있는 거 먹듯이 빨던데 솔직히 난 맛은 없더라.
아 제발 좀 닥쳐. 니가 내꺼 빨아 본 소감에 대해선 안물안궁이라고 새끼야.
- 아무맛도 안 나고 그냥 다른 피부 핥는거랑 비슷하길래 좀 실망했어.
그것 참 미안하게 됐다, 실망을 안겨줘서.. 차려입을 것도 없어 속옷만 다시 제대로 입고선,
- 앞으로 내 몸에 절대 터치금지다 지호성.
엄포를 놓으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느긋한 척 했을 뿐 화장실에 들어가선 다급하게 문을 잠그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게끔 물을 세게 틀어야만 했다. 하아.. 좀만 더 건드리면 바로 쌀 거 같았다고 시발...
- 주해성, 샤워해? 같이하자!
틈만 나면 들이대는 지호성이기에 틈을 주지 않으려 더 강력하게 철벽을 쳐야만 할 거 같다 생각했지만,
- 섹스할 땐 청결이 중요하다잖아!
누가 너랑 그딴짓 하려고 씻는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지호성의 들이댐이랄지 변태성향이랄지, 그런것들 때문에 빠르게 폰 주소록을 검색해봤다. 여자. 여자를 소개해줘야 돼. 본인도 어제 소개받겠다고 대답했으니 이것만이 답이다.
- 어, 내 친구 진짜 잘 생겼다니까? 성격? 숫기가 없어서 그렇지 좀 친해지면 그런것도 없음.
없지, 없어. 나한테 하는 것 좀 봐, 숫기가 다 뭐냐고. 경험도 거의 없는 주제에 막무가내로 밝히긴 존나 밝히잖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진심 나니까 참아주는 거지
다른사람한테 그랬으면 지호성 지금쯤 세상이랑 하직인사 한 지 오래 됐을 거라고.
- 너 오늘 잘 되면 나한테 큰절이라도 올려라 지호성.
끄덕끄덕 대답은 잘 해요. 아직 오지 않은 여사친을 기다리며 음료수를 쪽쪽 빨아마시고 있는데 막상 여자를 소개시켜 주려니 기분이 좀 묘하긴 하다.
내가 이새끼 소개팅을 시켜주고 있을 줄이야. 생긴건 누구보다 멀쩡하니까 일단 여사친은 지호성을 마음에 들어 한 눈치고, 지호성은...
- 무슨 영화 볼 건데?
내가 소개해주는 여자를 만나는 대신 조건을 붙였다. 두 번째 만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첫 만남은 끝까지 같이 있어달라는 것과
심야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는 것. 친구가 정상적인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려면 난 무조건 콜 해야만 했다. 그깟게 뭐 대수겠는가. 적어도 지호성이 여자를 만나면 호시탐탐 날 덮칠 기회를 노리지는 않겠지. 근데 왜 굳이 소개팅녀 앞에 두고 나한테 말을 거냐고 연애고자야.
- 영화는 나중 일이고, 내 친구 어때? 예쁘지?
힐끔 맞은편에 앉은 여사친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래 예쁘네." 누가 봐도 성의없는 대답을 던지고 내내 시큰둥한 태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같은 내 여사친은 생글생글 웃으며 지호성에게 호감을 표하고 말을
걸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애잔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친구야...
- 좋아하는 스타일이 어떻게 돼?
여사친의 물음에 지호성은 큰 고민 없이 대답했다.
- 쫌 귀여운데 귀염성이라곤 없는 사람?
- ? 그게 무슨소리야?
예측하지 못 한 대답을 내 놓은 지호성을 보며 갸우뚱하는 여사친따위 아랑곳하지 않던 지호성은 계속해서 술술 이상형을 나열한다.
- 몸매 관리 하려고 운동 하는데도 먹을 땐 식단 신경 안 쓰고 잘 먹는 사람. 음.. 또, 날 되게 귀찮아 하는 척 하는데 사실은 안 귀찮아하는 사람.
생긴 건 멀쩡한데 약간 또라인가? 생각하는 듯한 여사친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없다. 와중에 지호성은 한술 더 떠,
- 어? 근데 말 하고 보니까 다 주해성인 듯?
내 이름까지 친히 입에 올리시는데 왓 더 퍽이다 새끼야.
- 내 이상형이 너야? 아니면 너가 그냥 내 이상형이 된 거야?
그딴 걸 왜 나한테 물어 븅신아. 니가 물어봐야 하는 건 내 여사친에 대한 관심어린 질문이었어야 했다고. 망했다, 망했어...
시원하게 소개팅을 말아먹은 지호성은 여사친이 자리를 뜨고나니 아이스티를 쪼로록 마시고선, 우리도 이만 일어날까? 하며 싱글벙글이다.
- 기껏 신경써 준 소개팅 병맛 만들어놓고 뭐가 좋아서 웃냐?
- 너랑 심야영화는 처음 보는거잖아.
헿 하고 웃는 지호성은 참으로 해맑은데 난 왜 이렇게 먹구름이 낀 것만 같냐..
- 야 지호성.
- 영화보고 밖에서 야식도 먹고 들어가자.
- 아니 니 할 말만 하지말고 새끼야. 너 솔직하게 말해봐. 갑자기 내가 왜 좋은데?
지금까지 그놈의 스킨십타령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선 완전히 묻혀버린 것만 같았다. 형제같던 놈이 고백을 한 것 부터가 충격이기도 한데 그런 놈이 무작정 섹스부터 하자고 달려드니까 당연히 후자쪽의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었고 이 정도까지 오고나니 이제서야 문제의 뿌리인
근본부터 짚고 넘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갑자기는 아니고 한 몇 달 긴가민가 했었지. 근데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확신이 안 들어서 내 성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얘기했잖아, 너랑 한 번 자보면 알 수 있을 거 같다고.
- 그러니까 긴가민가 하게 된 계기, 이유, 그런 게 뭐냐고.
- 몇 달 전부터 나도 모르게 외모에도 신경 쓰이고 너가 기분 안 좋아보이면 나도 덩달아 안 좋아지고 가끔씩 너가 내 머리 쓰다듬어 줄 때 좀 두근거리는 거 같고..
하.. 진지한 건 또 진지한 거 대로 답이 없구나..
지호성이 키스하자고 달려들 땐 기겁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건 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간 존나 상처주는 사람 될 것만 같아서 함부로 말도 못 하겠고..
- 너 나오는 꿈이야 옛날부터 자주 꾸긴 했지만 언제부턴가 자꾸 니가 만지고, 옷도 벗기고,
- OK, 거기까지.
- 넌 내 몸 더듬고 그랬으면서 왜 난 못 하게 해?
셔럽, 아 윌 킬 유! 아니, 난 정말 성심성의껏 니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데 왜 진지함은 1분도 넘기지 못 한 채 개소리를 왈왈 짖어대냐고.
- 변태같은 니 꿈 얘긴 듣고 싶지도 않고, 그건 꿈이지 내가 실제로 니 몸을 만진건 아니잖아. 너도 니 꿈에서 내 몸을 더듬든 뭘 하든 맘대로 해, 실제로 할 생각하지 말고.
- 꿈에서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니가 꼼짝도 못 하게 내 손을 묶었거든.
- 크흡, 컥,
목이 타서 마신 음료가 제대로 걸려 콜록대는 내게 지호성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날 보며 말을 이었다.
- 너랑 야한짓하는 꿈 꾸면 꿈에선 내가 항상 좋아하거든? 실제로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
아, 이 위험한 새끼..
꿈이랑 현실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이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 올망졸망 티 없이 맑은 눈동자가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라 그냥 눈을 피해 다른 곳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짓을 했길래 이런 업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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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창피한줄도 모른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떠났을때 내 심정이 어땠었는지, 널 잊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꾸만 보고싶고 생각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외로움에 못 이겨 도망쳐놓고도 남아있는 미련에 붙잡고
싶어지던 마음을 얼마나 참았었는지, 떠나기 전에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으면서 왜 헤어지고 나서야 이렇게 내게 진심인건지...
- 사는 게 참 힘들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요.
얼마나 서럽게 울었으면 택시기사님이 날 다 위로하고 있을까.
헤어진 후 매일밤을 기도했다. 넌 내가 떠났어도 아무렇지 않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그렇게 잘 살고 있겠지? 꼭, 너같은 사람 만나길.. 그렇지 않는 한 죽었다 깨어나도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할 테니까 너와 똑같은 사람 만나서 너도 나처럼 힘들어하고 아파하길 수도 없이 바랬다.
-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고, 확실하게 얘기를 끝냈어야 했던건데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자꾸 피하려고만 했던 내 잘못도 있는거 같다.
- 이해해. 그래서 나도 지금은 섣부르게 섹스부터 하자고는 안 하잖아.
이해하긴 뭘 이해해. 내 말의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 정신나간 새끼야.
- 생각이라는 걸 좀 해보자고. 나랑 진짜 자고싶냐?
- 응. 너랑 자보는 게 내 새로운 꿈이야. 만약 거부감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널 향한 내 마음은 단지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특별한 거지 내 성정체성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거고, 만약 거부감이 안 들고 좋으면 난 널 사랑하는 게 맞는 거잖아.
뭐지 이 흑백논리는.
- 너 전에 사귀던 누나랑 해봤잖아. 그땐 징징대더만.
- 그땐 몸 안 좋다고 안 된다고 했는데 누나가 막 그랬던거고. 기억도 잘 안나고 억울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내가 하고싶어서. 나 야동도 많이 봤어, 너랑 하려고.
- 야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