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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7 62 tweets 10 min read
클리셰8 #해성석호

- 니가 이렇게 자극적인 꼬라지로 내 위에 올라타면 안 까불다가도 까불고 싶어지잖아.

느릿하게 내 손목을 놓으며 일어나려는 놈에게, "방심하지마, 새끼야." 하며 가운을 대충 움켜쥐고 팍 끌어당겨 무작정 입술을 맞댔다.
기습적인 행동에 대비하지 못해 무방비한 주해성의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아, 하는 앓는 소리만 작게 났을 뿐 주해성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열린 입술 사이로 좀 더 과감하게 혀를 밀어 넣고서야 고개를 빼려는 움직임이 느껴져 가운을 좀 더 힘주어 잡았다.
안타깝게도 나보단 주해성 팔힘이 더 세다는 게 문제지만. 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가듯 혀만 마주치고 떨어져나간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 왜 이렇게 앞 뒤 없이 직진이냐 넌.
- 잘못은 지가 해 놓고 남 탓은.
- 내가 뭐?
- 내 앞에서 섹시하지 말던가 시발 어이없네.
- 허..
어이없다는 내 말에 오히려 주해성이 더 어이없단 표정을 지으며 내 위에서 내려와 옆에누워, "또라이 새끼." 중얼댄다. 괜히 이상한 자세로 엎치락뒤치락 해서 또 나만 심장 쿵하지, 썅. 억울해.
좀 자고 일어나 해가 저물고 난 후 호텔 수영장으로 나가 선베드에 멍하니 앉았다.
- 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아무나 주는 술 받아먹지 마라.
- 왜?
- 내 친구들만 오는 거 아냐. 나도 모르는 애들이 더 많을건데 술에 뭘 탈 줄 알고.
- 걱정되면 니가 케어해주던가.
- 농담아니다. 장난질하는 새끼들 분명 있을거니까 조심하라고.

설마 술에 약을 타겠어 독극물을 타겠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동안 주해성은 하나 둘씩 모이고 있는 제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그 친구들의 다른 친구들을 소개받고 있기 바쁘다. 개미떼들마냥 계속 모이는 주해성 지인들과 지인들의 친구들까지 나이도 겉모습도 다채롭다.
평범해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누가 봐도 주해성한테 꼬리치는 여자였다. 대놓고 몸매를 과시하는 수영복 차림으로 주해성 팔을 붙들고 친한척을 하는데 그저 웃어주는 주해성이 아니꼽고 재수 없어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다가갔다.
- 야. 나 심심해.
- 니가 하루 이틀 심심하냐. 그러게 뭐한다고 여기까지 따라와선. 쯔.
- 놀아줘.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심심하면 술이나 마시란다. 그러다 제 친구들에게 날 아는 동생이라 소개하며 같이 좀 어울리라는데 순식간에 한무더기가 날 둘러싸며 한마디씩 말을 건다.
아 시발 뭐라는 거야.. 죄다 영어로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조잘대니 들릴 것도 안 들리는 거 같다. 난 주해성의 아는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쓸데없이 격한 환영을 받았고 정작 주해성은 저 먼곳에서 여자들과 놀고 자빠졌다.
다들 술잔을 건네고 말을 걸고 마치 원래 알았던 사이인양 편견도 거리낌도 없이 날 대하는데 넋이 빠지는 거 같다. 태어나서 기빨리는 느낌은 또 처음이다. 그나마 다가오는 여자들은 시큰둥한 내 반응에 금방 흥미를 잃고 떨어져 나간다.

- 물 만났구만?
말 그대로 주해성은 물 안에서 자유롭게 여자들과 놀고 있는데 친구들이라기엔 스킨십이 쓸데없이 과하다. 주해성이나 들이대는 여자들이나 띠꺼운 건 매한가진데 제일 빡치는 건 여기저기 인사치례로 입술을 내어주는 주해성의 저 싸구려 입술은 왜 나한테만 비싸냐는 거다.
화려한 여성편력을 두 눈으로 보고 있기엔 눈살이 찌푸려지고, 안 보고 나도 놀자니 신경 쓰이고..

- 해성이 친구?

영어지옥에서 들려온 한국어가 귀에 확 들어와 목소리의 주인공을 봤더니, 어라? 잘 생겼는데..?

- 반갑다. 난 노아.
- 어어, 난 양석호.
- 해성이랑 같이 온 거야?
노아라는 남자는 마치 주해성이 웃을 때의 순한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너무 그새끼 생각만 하고 살기 때문일까. 주해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생긴 외모와 피지컬을 가진 한국인이 반갑다. 그냥 미국에서 살까? 주해성도 노아도 한국인인데 정작 한국에는 왜 이런 놈들이 을까.
- 한국에서 해성인 어때?
- 섹시하지.
- 뭐?
- 아니, 잘 지낸다고.

주둥이 단속을 하며 다시 푹신한 선베드로 가 앉았다. 옆에 앉은 노아와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데 주해성과 어떻게 친한 사이냐 묻는다.

- 친구 아니라고. 안 친하다니까? 저 새끼 나 존나 싫어해.
- 근데 어떻게 같이 왔어?
쫓아왔다, 왜.

- 몰라도 돼.

그래도 지겨웠는데 노아덕에 그나마 말이라도 좀 하는 거 같다. 맥주캔을 한 세 개정도 비웠을 때쯤 노아는 술을 가지고 오겠다며 잠시 기다리라더니 곧 반쯤 채워진 잔 두 개를 들고 다시 왔다. 한 모금 했는데 술이 꽤 독하다. 그래도 맛은 있네.
- 노아!

홀짝이며 술을 마시는데 수영장에서 기지배들과 신나게 부비적대며 놀던 주해성이 저 멀리서 노아를 부르며 다가온다. 여태 인사도 안 했었던지 둘은 허그를 하며 반가워하는데 주해성을 보니 방금까지 노아에게서 잘생김을 느낀 내가 어이없을 만큼, 뭐랄까.. 진짜가 나타난 기분이다.
역시 찐은 주해성밖에 없는 건가.

- 제시카랑 얘기하다가 모레 선상파티 하기로 했는데 가서 술 준비할거 얘기 좀 해봐.
- 세상에 있는 술 다 대령하라는 건 아니겠지?
- 쓸어 올 수 있는 거 다 쓸어 와라?

노아는 금방 오겠다며 주해성이 얘기한 곳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고, 난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에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 노아 어때?
- 뭘 어때?
- 쟤랑 잘래?
- 뭐?

난데없이 뭔 소릴 지껄이는 거야.

- 뭔 잡소리야 갑자기.
- 노아는 남녀 안 가리거든.
- 그래서? 쟤랑 자라고?
- 니가 마음에 든다면.
- 하.. 좆같네, 시발..
기분 한 번 제대로 잡친다. 딴 년들이랑 잘 놀다가 갑자기 와서 하는 말이 뭐 이 썅놈아?

- 내가 너한테 자자고 덤빈대서 그거에 환장한 놈인 줄 아냐? 왜? 잡식성인 니 친구가 나랑 하고 싶대냐? 가서 대 주기라도 해야 되냐고 이 개새끼야.
속에서 천불이 나고, 자존심도 존나 상하고, 생각만 해도 웃음부터 나던 주해성 얼굴을 개 패듯 줘패고 싶은 기분.

- 내가 고백한거 신경은 안 써도 믿기는 한다며. 너 좋아한다는 사람한테 딴 놈이랑 잘래? 이딴 거 물어보는 건 시발 어느 나라 개매너야?!
빡쳐서 들고 있던 술잔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일어났다. 유리잔이 깨져 파편이 주해성 발등위로 꽤 많이 튄 거 같은데, 아, 속이 왜 이래.. 머리는 또 왜.. 주해성이 뭐라고 떠드는데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 목말라..

본능적으로 물부터 찾아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다. 어제 술잔을 집어 던지고 뭔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이 없다. 뭐지, 설마 내가 맥주 세 캔에 술 몇 모금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고..? 당혹스러운데 주해성까지 보이지 않아 방을 나갔더니 이건 뭐...
- ..존나 발기 찬 아침이다?

쇼파에 누워 백인여자의 목에 입술을 파묻고 있는 주해성을 보자니 안 그래도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 아파오는 거 같다. 내 목소리에 여자는 놀란 듯 보였고 주해성은,

- 일찍도 일어났다. 쓰리썸?

이지랄을 하고 계신다. 쓰리썸은 시발, 그게 지금 상황에 나올 말이냐?
신경질적으로 손에 든 생수병을 집어 던졌는데 이 얄미운 새끼는 "나이스 캐치." 하며 가볍게 받는다. 어제의 짜증과 지금의 짜증이 합쳐져 지구를 부수고 싶은 기분에 영어가 알아서 튀어나왔다. 여자에게 온갖 쌍욕을 하며 꺼지라고 지랄을 해대니 주해성은 한숨을 쉬며 여자를 내보냈고
난 못 다한 지랄을 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 어제부터 사람 빡치게!
- 빡치는 건 나여야 할 거 같은데?
- 니가 왜 빡쳐, 시발, 방금 그 여자 내보냈다고? 왜? 너 존나 아메리칸 스타일로 미국에 friends with benefit 넘쳐나는 거 같더만! 그래, 예쁘긴 하더라, 그래서 아깝냐?!
- 넌 왜 그렇게 매사에 예민하냐? 어제 필름 끊겼지?

주해성은 내가 던진 생수병 뚜껑을 열어 몇 모금 마시더니 씩씩대고 있는 내게, "누가 너한테 노아랑 억지로 자랬냐? 둘이 잘 노닥거리고 있길래 마음이 맞은건가 싶어서 물어본거잖아 병신아." 인상을 있는대로 써가며 어제 일을 얘기한다.
- 뭘 믿고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이 주는 거 넙죽넙죽 쳐 받아 마시고 있냐? 내가 분명 아무나 주는 술 마시지 말라고 했을텐데?
- 설마 그 술,
- 그래 이 만년 생리중인 새끼야. 노아가 가져간 술 어떤놈이 장난질해둔 거였다고. 노아야 술에 뭘 탔든 그냥 마시는 놈이라 그렇다쳐도.
넌 혹시나 그거 쳐마시고 취해서 안 하고싶은데 노아랑 뒹굴까봐 물어본거라고.

허..

- 그럼 그 얘기 먼저 했어야지, 왜 쓸데없는 거 부터 물어보고 지랄이야.
- 눈 보니 이미 반은 맛이 가 있길래 얘기 다 하기도 전에 골로 갈까봐 그랬다 왜.
- 뭐.. 그래서 나 보호해주려고 했던 거였냐..?
- 보호는 지랄, 니가 Y그룹 외동아들만 아니었어도 그냥 냅뒀다.

말을 해도 꼭 이렇게 밉상으로 한다. 지가 무슨 츤데레인줄 알아 그냥 싸가지 없는 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신경 안 쓸 거 같더니.. 방금까진 짜증이 정수리를 뚫고 터질 거 같았는데 듣고보니 내가 욱할만한 일은 아닌거
같기도 하고..

- 주해성~ 속 쓰리다. 룸서비스 시킬까?
- 소름끼치니까 말꼬리 늘리지 마라 죽는다.

이새끼는 왜 나한테만 까칠하고 지랄.
룸서비스로 피자를 시킨 후 씻고 나와 쇼파에서 폰을 보고 있는 주해성에게, 방에 나도 있는데 뭔 생각으로 아침 댓바람부터 여자랑 뒹굴고 있었냐 물으니
한심한 표정으로, "댓바람같은 소리하네. 지금 저녁 열시다." 한다. 열시라니..? 어제 풀파티 할 때가 11시쯤 이었던 거 같은데 내 하루 어디 감?

- 야 근데 술에 뭐 탄거냐? 머리 존나 아파.
- 모르지 새끼야.
- 지가 쳐 먹은 거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지껄이네. 그딴 애를 친구로 뒀냐?
- 장난친 놈은 내 친구 아니고. 친구라해도 뭐 어때. 한 번 사는 인생 당장 내일 뒤질 수도 있는 건데 하고 싶은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거지. 그러다 좆되면 그것도 지 팔자니까 감수해야 하는 거고.
- 그래서 넌 내일 당장 뒤질 수도 있어서 맨날 그렇게 여자 끼고 노냐?
- 양심 없냐? 니가 맨날 쫓아다니니까 요즘 놀지도 못 하잖아 씹새야.
- 그 정도 놀면 되지 뭘 더 놀려고. 어제는 나도 자고 있겠다 신났었겠네.

주해성은 짜증이 담긴 한숨을 쉬곤 날 곁눈질로 대충 쳐다보며, "말을 말자." 한다. 왜. 뭔데 말을 말아. 룸서비스가 도착해 피자 한 조각을 들고 베어
물며 얘기하라고 툭툭 쳤다.
어제 기절한 거 노아랑 같이 들쳐매고 올라와서 눕혀놨더니 내가 손을 붙잡고 안 놔줬단다. 뭔데. 그런다고 주해성이 친절하게 얌전히 잡혀 있어주진 않았을 테고.

- 그래서?
- 나가지도 못 하고 있었지 또라이야.
- 그럴리가.
- 미친놈이?
- 근데 너 발..

아깐 눈에 뵈지도 않던 주해성 왼쪽 발등에 붉게 베인 자국들이 꽤 여럿 보여서 어제 내가 한 짓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씨, 그때 잔은 왜 던져선.. 주해성에게 약 발랐냐고 슬쩍 물었는데 별 다른 말없이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챙긴다. 어제 오늘 꼬박꼬박 대답 잘 해준다
싶더니 또 씹네 이게.

- 약 발랐냐니까? 어디 가려고 또?
- 안 발랐고, 놀러 가려고. 됐냐?
- 놀러 어디? 나는?
- 나도 욕구불만은 좀 풀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좀 얌전히 짜져있자?

그 욕구불만 나한테 좀 풀라고, 비싼 새끼야.
자비 없이 나간 주해성 대신 피자를 대차게 씹어대며 티비 속 미국시트콤이나 보고 있자니 식어가는 피자는 맛이 없고, 너무 많이 자서 잠도 오지 않고, 주해성 씹는것도 더 이상은 할 욕이 없을 만큼 했고.. 오늘 들어오긴 하려나? 난 밤새 뭐하지.

- 누구지?
벨이 울리기에 의아했다. 룸서비스는 진작에 왔고, 주해성이 바로 들어올 리도 없고.. 문을 열었더니 주해성 친구다.

- 노아?
- 해성이는?
- 나갔는데.

연락도 안 하고 온 듯해 보이길래, [노안지 노안인지 니 친구 옴.] 주해성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심심한김에 노가리나 까자 싶어 안으로 들렀다.
- 어제 분위기 씹창나서 놀아주러 왔더니.

이 놈 말로는 어제 주해성과 실랑이 하다가 쓰러진 날 선베드에 눕히고 무슨일인가 싶어 몰려든 사람들 중 한명한테 주먹을 날렸단다.

- 왜?
- 술에 뭐 탔다던데? 해성이 원래 그런거 봐도 못 본척 신경 안 쓰는데 어제는 미친놈인 줄.
..? 왜? 이런 얘기에 동요하고 있는 내가 존나 찌질한 거 알겠는데, 주해성이 날 찌질한 놈으로 만든다.

- 혹시 주해성도 약같은 거 하냐? 그새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얘기 하더라.
- 안해. 놀다가 분위기에 한두모금 빨아본 게 다일껄?

미국에서 별 짓 다 하고 살았다더니 무슨 짓거리까지 하고
다닌 거야.

- 그쪽으로는 관심없어. 걔가 원래 뭐든 할 때는 화끈하게 하지만 아닐땐 또 선 확실하게 긋잖냐.

와중에도 맺고 끊는 주해성을 겪어본 적 없다는게 좀 짜증난다. 어느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은 거 같다.
- 어제 내가 마신 술 때문에 주먹질했다는 거 진짜야? 나때문인 거 맞아?
- 응. 너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귀한 집 아들이라며?

에라이 그럼 그렇지. 주해성은 한결같이 날 Y그룹 아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생각해왔는데 왜 자꾸 쓸데없는 기대를 해서 실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언제 왔냐?

삐익- 하는 현관의 카드 소리가 들리더니 뜬근없이 등장한 주해성은 노아를 데리고 나간다. 뭐야 왜 오렇게 빨리왔지? 곧 언짢은 얼굴로 혼자 들어오길래 의아하게 쳐다봤다.

- 노아는?
- 갔어.
- 여자는?
오늘 안 들어올줄 알았는데 금방 왔길래 혹시 데리고 온건가 싶어 뒤를 힐끔 쳐다봐도 따라 들어오는 여자가 없다.

- 안 들어올 거처럼 하고 나가더니?
- 너 때문에 파토나서 짜증나니까 말 걸지마라.

하.. 이렇게 또 여지를 준다 이 나쁜 새끼가. 분명 실망할 게 뻔한데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기대감을 만든다. 왜 나 때문인데.

- 기대하게 만들지마 새끼야. 철벽 칠거면 여지 남기지 말고 확실하게 치라고.

주해성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침대에 누워 담배를 입에 물기에 나도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 좆같아서 하는 말인데, 사람 좀 그만 귀찮게 해라. 영상 풀고 싶으면 실컷 풀고, 아니다 그냥 아예 전국민이 다 볼 수 있게 인터넷에 올려라. 니가 Y그룹 외동아들이라고 신경 써 주는 거 피곤해서 못 해먹겠다.
- ..진심이네, 주해성.
- 어.

역시. 기대는 실망으로 추락한다.
그 어느때보다 진심으로 보이는 주해성 말이 오늘따라 타격이 크다. 그래도 조금의 정이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주해성이 내가 Y그룹 아들만 아니었어도 그냥 놔뒀을 거라 말 해 왔다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주해성이 남자인 나한테
마음은 없을 지언정 그래도 친구 비슷한 정도로는 받아들이고 있을 거라고.
담배가 꽁초까지 다 타들어가고, 또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일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주해성은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그 내용은 주어가 나오지 않아도 내 얘기인 거 같아 또 한 번 입은 타격.
집안만 아니었어도 아는 체도 안 했을 거라고, 솔직히 얼굴만 봐도 역겹고 토나온다고, 이용가치가 있어서 그냥저냥 봐주고 있었는데 도를 넘어서니까 이제 한계라고.
더 들을 것도 없었고 듣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주해성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도 않을 만큼 비참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본 참담함에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고 눈물까지 비집고 올라와 기가 막혔다. 아주 어릴때 빼고 울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내가 지금 운다고? 캐리어를 열어 짐을 챙겼다. 더 이상 이 곳에 주해성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 ...야, 너 뭐 하냐?
짐을 다 챙겨 캐리어를 끌고 방을 나서려는 내 어깨를 붙잡는 주해성에게 귀찮게해서 미안하게 됐다며 시원하게 한 대 패주고 나가기라도 할까 싶은 찰나, 어깨를 돌려세워 내 얼굴을 본 주해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우냐?" 묻는다. 들으란듯 앞담화를 해 놓고선, 하.. 어이가 없네 진짜..
이를 꽉 깨물고 한마디, 한마디 꾹꾹 눌러 담아 눈물에 묵직해진 목 사이로 힘겹게 뱉어냈다.

-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니가 뭔데 날 울려, 이 개자식아.
- 뭐?
- 니까짓게 뭐 그렇게 잘 나서 날 비참하게 만드냐고.

그래, 따지고 보면 주해성은 애초부터 나한테 1도 관심이 없었고,
대놓고 학교와 집에서 내 이름을 팔아 날 이용하기도 했다. 근데.. 왜, 시발, 그거밖에 하지 않았냐고. 왜 얼굴만 봐도 역겹고 토 나올 거 같다는 말은 안 했냐고. 애초에 그렇게 말 했으면 내 마음이 이렇게 되기 전에 나도 너한테 정이란 거 더 생기지도 않았을텐데.
- 내가 지금까지 대체 무슨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다 병신같이. 그렇게 역겹고 토나올 거 같은 얼굴 치워 줄 테니까 니가 좋아죽는 여자들이랑 실컷 놀아라 새끼야.
- 후우.. 이건 또 뭔 지랄이야. 하루라도 좀 평범해질 순 없냐? 무슨 매 초마다 감정이 춤을 추고 염병이야.
그렇게도 싫어하는 얼굴 치워주겠다는데 굳이 어깨를 힘 있게 붙잡고 안 놔주는 주해성은 다른 손으로 폰을 몇 번 터치하더니 사진을 하나 내 얼굴 앞에 들이민다.
- 제시카. 요트업 어마어마하게 크게 하는 집 딸래미고, 보다시피 얼굴은 요다 저리가라고, 그 요다가 나한테 존나 들러붙고, 내일은 이 요다집 소유 요트에서 선상파티를 할 계획이고,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난 이 요다가 들이대도 참아주고 있는 상태고, 불행히도 난 얼굴을 존나 따지다
못 해 밝히는 놈이고. 설명 됐냐? 더 구구절절 해줘?
- ......
- 그만 좀 피곤하게 해라?

주해성 설명에 괜히 더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쪽팔리게.

- ..어쨌든 나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잖아.
- 싫어하면 내가 너 그렇게 기어오르는데 봐주고 있겠냐 병신아?
- 내가 Y그룹 아들이라서 신경 써 주는 거 더 이상 못 해 먹겠다며.
- 니가 이런 지랄병만 안 떨면 봐줄 테니까 '적당히 좀' 하라고 지금까지 몇 번을 말 하냐. 내 말이 어려워? 너야말로 눈치는 한국에 파묻어 두고 왔냐?

도저히 주해성 마음을 모르겠다. 어디선가 봤는데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들여다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진짜 그런가보다.

- 놔 시발. 세수하고 올 거야.

주해성 앞에서 운 것도 쪽팔리고, 금세 마음이 풀리는 이 감정도 짜증나고,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말에 안도감을 느꼈다는 사실도 열 받는다. 솔직히 초반에는 주해성이 그 요다같은 여자를
향한 심정을 나에게 느꼈다 해도 난 신경을 안 썼을 거다. 오히려 '그렇다면 토나올 때까지 비춰줘야겠네.' 하며 얼굴을 들이밀고 골려먹을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얼마전까지 그렇게 해오기도 했고. 근데 왜 지금은 그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찬물로 얼굴을 씻고선 거울 속 얼굴을 바라봤다. 눈이 발갛게 충혈 되어 있는데 헛웃음이 난다. 내가 점점 내가 아닌것만 같다. 감정이 억제 되지도 않고 평소 울 일도 없지만 원래도 눈물이 없었던 내가 주해성 몇 마디에 눈물까지 뚝뚝 흘리고..
지금까진 그냥 좋으니까 생각 없이 좋은대로 지냈는데 조금은 무서워졌다. 처음 느껴보는 이 낯선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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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2
한번만3 #해성호성

밤에 하도 지호성이랑 옥신각신 하느라 늦게 잠이 들었는데, 잠이 들던 순간마저도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더랬다. "안고만 자자 안고만." 개소리 좀 작작해..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하도 예민한 상태다보니 수시로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난 단잠에
빠졌고 더 감사하게도 꿈에서는 듣도 보도 못 한 절세미인의 쭉쭉빵빵한 몸매를 실컷 감상하기 까지 한 데다 그 쭉빵녀가 야살스럽게 웃으며 내 아랫도리를 지분거리더니 서서히 드로즈를 내리고선 입으로.. 꿈이라지만 이렇게 생생하면서도 짜릿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있을까 싶어
언제 깰지 모를 이 꿈을 한참 즐기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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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안 들어갈 거 같애.

이때부터 이상했다. 자꾸만 쭝얼쭝얼 지호성 목소리가 들려서 무심코 눈을 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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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1
금사빠 #서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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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사달라더니 또 차이고 왔나보다. 그렁그렁한 눈에서 결국 뚝뚝 떨어지는 눈물만 보면 비련의 남주인공이 따로 없다.

- 금방 잊을거면서 또 울어?
- 형이 뭘 알아. 난 항상 진심이란 말이야.🤧
한지우는 금사빠다. 누가보면 세기의 사랑이라도 하고 헤어진 거 같겠지만 만난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놈이었다. 이쯤되니 슬슬 궁금해진다. 도대체 한지우의 눈은 어디에 달려있는 것일까.

- 눈 좀 높이면 안되겠냐? 만나려면 좀 그럴듯한 놈을 만나. 허접쓰레기 좀 그만 만나고.
- 내가 만난 사람들 욕하지마!

맨날 앵무새처럼, "형이 뭘 알아!" 뿌에엥 거리는데 알만큼 안다. 적어도 한지우 본인보다는 더.

- 좋다고 할 땐 언제고.. 내가 그렇게 질리는 타입이야?

이것봐. 본인에 대해 이렇게 무지하다 한지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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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0
첫사랑10 #서준지우

결국 한숨도 못 자고 출근했다. 엉망인 내 얼굴에 놀란 김형기는 왜 이렇게 퉁퉁 부었냐고 묻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다. 어제 라디오를 찾아듣지만 않았어도 이정도는 아니었을텐데, 내 별이 돼주겠다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심이 너무 버거웠다. 몸살도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온 몸이 저릿하게 경련할만큼 오열했으니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 어제 TB엔터 대표 말하는 뉘앙스도 그렇고, 넌 마감도 안 하고 가더니 오늘 출근한 몰골도 그렇고.. 대충 서준이형이랑 관련있겠다 싶긴한데 물어봤자 대답 안 해줄 거 뻔하니까 굳이 안 묻겠다만, 동업자로써 말 할게.
- 뭘.
- 집에 가.
- ?
- 일하다 괜히 쓰러져서 더 힘들게 하지말고 가서 쉬어. 너 책임감 있고 고집스러운 거 아는데 이 꼴로 일하는 건 더 책임감없는 짓이야.

손님 많이 안 받으면 된다고 보내려는데 마음같아선 괜찮다고 고집부리고 싶지만 자꾸만 힘이 빠지는 내 몸은 고집을 부릴 수 없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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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9
거짓말 #서준지우

얼마전 길에서 나와 닮은 사람과 무어라 대화중이던 널 보며 대수롭지 않게 다가가 "누구야?" 물었을때.

- 아, 길을 물어보길래.. 저쪽으로 쭉 가시면 돼요.

상대방에게 길을 설명해주던 널 보며 눈치를 챘다. 거짓말 하는구나 한지우.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줬지만 내가 화나는 이유는 '거짓말' 그거 하나로도 충분했다. 내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에 사람을 붙여봤다.

- 오늘도 길을 물어보는 중이신가?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게 우연일리가. 장문기. 한지우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은 재벌가 비서로 일하는 중. 한때 연인관계였던 두 사람.

- 오늘 뭐했어?
- 집에 있었지 뭐.
- 집에만 있었어? 나간 적 없고?
- 응.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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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8
클리셰7 #해성석호

꽤 자주 들렀더니 이제는 주해성네 집도 편해졌다. 문제는 정작 집에 주해성이 없다는 거 하나 정도?

- 외출한지 얼마 안 됐는데 해성이한테 전화도 안 해 보고 온 거야?

해 봤죠. 안 받아서 그렇지, 싸가지없는 새끼가.
- 어디 갔어요?
- 쇼핑한다구 나갔어. 해성이 내일 친구들 만난다고 미국 가잖아.
- ..네?
- 몰랐어?

주해성 어머니는 별일이라고 웃으시며, "너희는 매일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대화는 안 하니?" 장난스레 말씀하시는데 괘씸하면서도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운하게 나한텐 말도 안 하고.
- 석호가 이해 좀 해 줘. 우리 해성이가 워낙 무뚝뚝하잖니. 집에서도 어쩜 그렇게 말이 없는지.

내 핑계대고 방학 보충수업도 패스했으면서 정작 내가 없는 곳에서 노시겠다? 내가 푸켓으로 여행가자고 그렇게 질척대도 꿈쩍도 않더니 미국으로 놀러를 가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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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7
첫사랑9 #서준지우

길거리에서 창피한줄도 모른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떠났을때 내 심정이 어땠었는지, 널 잊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꾸만 보고싶고 생각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외로움에 못 이겨 도망쳐놓고도 남아있는 미련에 붙잡고
싶어지던 마음을 얼마나 참았었는지, 떠나기 전에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으면서 왜 헤어지고 나서야 이렇게 내게 진심인건지...

- 사는 게 참 힘들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요.

얼마나 서럽게 울었으면 택시기사님이 날 다 위로하고 있을까.
헤어진 후 매일밤을 기도했다. 넌 내가 떠났어도 아무렇지 않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그렇게 잘 살고 있겠지? 꼭, 너같은 사람 만나길.. 그렇지 않는 한 죽었다 깨어나도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할 테니까 너와 똑같은 사람 만나서 너도 나처럼 힘들어하고 아파하길 수도 없이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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