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시쿨 Profile picture
Dec 13 43 tweets 7 min read
한번만6 #해성호성

- 허.. 잘도 자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내 침대에, 그것도 내 품안에 파고들어서, 천사라도 강림한 것 같은 얼굴로 온화하게 잠들어 있는 지호성을 보며 난 거의 밤을 지새웠다. 중간에 잠깐씩 졸긴 했지만 깊게 잠들지는 못 했다.
- 우웅, 해성아..

...잠꼬대로 내 이름 부르지마 이 새끼야, 새삼 기분 이상하니까. 어제 섹스 후 지호성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들었고 나도 힘이 빠져 잠시 누워 있다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냥 잠들 수가 없었다.
막말로 자위를 해도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야 하는 법인데 지꺼 내꺼 할 것 없이 뒤엉켜있는 단백질 덩어리들을 그냥 두기엔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 물 티슈로 대충 닦긴 했지만 이미 침대시트에 말라붙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고 지호성 몸도 대강 물 티슈로 닦아주다 적나라하게 흘러내려 말라버린
흔적을 보고 잠시 멍때렸다. 하룻밤을 함께 한 친구사이라는게 지속될 수 있는건가. 분명 잘못 된 관계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복잡한 심경으로 지호성 허벅지까지 다 닦아낸 후 다시 털썩 누웠다. 그래, 어차피 서로 없는 일인 셈 치기로 하고 시작한 거였으니까 한 며칠
좀 어색할수도 있지만 금방 아무렇지도 않겠지.

- 거긴 안 된다니까아..

지호성이 이딴 잠꼬대만 안 한다면 말이다. 여튼 그래서 여차저차 잠을 설치고 아침이 밝았는데 이 놈은 자꾸만 내 품으로 파고 들어오고 난 자꾸만 뒤로 슬쩍 물러나고 하다 보니 내 등은 침대 벽면에 딱 달라붙게 되었고
지호성은 그런 내게 딱 달라붙어 있다. 아.. 이 미저리같은 새끼..

- 야, 그만 자고 일어나.

지호성을 밀쳐내자 잠결에 찡찡대길래 얄미워서 꿀밤을 한대먹였다. 난 잠도 못 자고 뒤척였는데 누구는 밤새 존나 꿀잠자네 시발? 딱밤을 맞아도 낑낑대며 파고드는 놈을 피해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어제 이 시간쯤엔 꿈에 나온 지호성 때문에 돌아버릴 거 같았는데 오늘은 어젯밤 지호성 생각에 돌아버릴 것만 같다. 후우..
물줄기로 몸을 씻어내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태껏 지호성이 내게 보였던 집착. 꾸준히 말 해왔고 어젯밤에도 말 했었던, 제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다던..
- 어쩌지..?

막상 나도 남자의 본능에 굴복해버려 지호성이 일을 저지르긴 했다만 그건 또 그거대로 앞으로 문제가 될 거였다. 지호성은 처음 내게 고백 비슷한 걸 했을 때부터 말 해왔다. 이 감정이 친구로써인지 보통 남녀사이에 오가는 종류의 이성적인 감정인건지 잘 모르겠다고,
확인을 해 봐야 할 거 같다고, 성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니까 협조 좀 하라고. 섹스에 거부감을 느끼느냐 아니냐에 따라 알 수 있을 거 같다나 뭐라나 하면서.

- 근데 좋아했잖아?!

분명 지호성은 어제 온 몸을 베베 꼬다 못해 달달 떨면서까지 느낀데다 좋아 죽을 거 같다고
제 입으로도 말 했었다. 그렇다면 지호성은 진짜 게이인건가? 지호성이 게이라면 진심으로 날 좋아하는거고? 그럼 앞으로는 더 심하게 들이댈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는 좀 비약적인 결론일지도.. 왜냐면 솔직히 나 역시 거부감은 느껴지 못 했으니까 말이다. ..응? 그것도 비정상이지.
이상하잖아. 지호성은 요 근래에 줄곧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내게 어필해 왔다지만 난 백퍼 노말이라고. 근데 노말인 나도 거부감이 안 들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미쳤나 싶을만큼 흥분하기까지 했고. 그렇다고 내가 게이인 건 아니잖아? 하.. 존나 복잡하네 이거..
- 안녕, 해성아.

생각에 잠겨 한참을 씻고서야 대충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방에 들어갔더니 언제 일어났는지 지호성이 옷을 다 갖춰 입고 인사를 한다. 근데..

- ..너 지금 어디보냐?

사람이 인사를 할 땐 얼굴을 보며 해야지 넌 왜 내 허리 아래를 쳐다보며 인사하는 건데. 뭐 보는 건데, 뭐.
- 믿기지가 않아서. 걔가 내 몸에 들어왔었다는게.

하자고 덤벼들었던 너도 믿기지 않는데 난 오죽하겠냐?

- 온 몸이 힘든 거 보면 꿈은 아니었나봐. 넌 어때? 너도 남자랑은 처음 해 봤을텐데 몸 괜찮아? 여자랑 할 때랑 똑같아?

와.. 진짜 최근의 지호성은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신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렇게 뻔뻔하고 따지고보면 밝히기까지 하는 놈한테 뭐 이딴 얼굴을 준 거냐고 안 어울리게. 그동안 내가 순해빠져 보이는 이 얼굴에 속은거잖아. 지호성의 변태수준은 이미 만렙을 찍었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르는 애 같은 놈이라 치부하게 만든 얼굴 때문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성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해선 안 될 것 같은 금기사항인양, 다른 친구들이랑은 잘만 하던 섹드립도 이 새끼 앞에선 안 했었다고.

- 몸은 존나 괜찮은데 엉아가 지금 정신이 온전치 못 하거든? 어제 얘긴 꺼내지도 마라.
- 근데 난 니가 내 몸 만질때,
- 어제 얘기 꺼내지 말라니까. 하기 전에 분명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기로 했잖아.
- 막상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처럼 하긴 좀 힘든 거 같아.

복잡한 내 머릿속은 언제나 안중에도 없는 맑은 지호성은 오늘도 내 염장을 박박 긁어댄다.
- 너도 행동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 했잖아. 정말 싫으면 차라리 한 대 치라니까?

아 시발 암만 그래도! ..자고로 나보다 약한 상대는 때리는 거 아닌데..

- 못 때리겠지? 것 봐, 너도 분명 나한테 어쩔 수 없는 뭔가가 있다니까?

생각해보니 존나 약았다 지호성은.
내가 분명 지 못 때릴 거 아니까 저번부터 자꾸만 겁 없이 까부는 거잖아. 가만 보면 이거 완전 말간 얼굴로 사람 존나 가지고 노는 거 같단 말이야.

- 뭐, 좋아. 사실 나도 길게 얘기 할 생각은 없어. 나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한 사람이니까.

제발 혼자만의 시간 좀 길게 가져줘라.
- 한.. 1시 반쯤? 다시 올게. 아구구, 허리야..

지금 시간이 오전 11신데 1시 반쯤.. 뻔뻔한 새끼, 누가 보면 한 며칠이나 있다가 올 사람인 줄 알겠네.

- 이따가 얘기 좀 해. 나도 생각정리 좀 해야 할 거 같으니까. 너도 나 올때까지 생각 할 거 있으면 좀 하고있어. 그럼 나 간다.
지호성 말대로 나름 생각을 좀 많이 했다. 그래봐야 답은 없고 했던 생각들만 빙글빙글 맴돌았지만. 솔직히 생각의 반 이상은.. 아니, 한 90%는 어젯밤 지호성의 모습이었다. 고작 10%정도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잠깐씩 생각해볼 뿐 대부분은 영화감상하듯 머릿속에 플레이 되는
어젯밤의 일들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미치겠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꾸역꾸역 머릿속에 들어오는, 내 밑에서 헐떡이던 지호성이 사라지지 않고 색스러운 숨소리도, 솔직하게 느껴지던 신음소리도, 흥분해서 제 손으로 아랫도리를 잡고 흔들던 모습도, 도저히, 도무지,
어떻게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 돌겠네..

손에 느껴지던 보들보들하면서도 촉촉하기도 한 피부결도, 볼록한 엉덩이가 여자 가슴보다 만질때의 느낌이 더 좋았던 것도, 더불어 머리가 어지러울만큼 흥분해서 박아댄 내 모습까지..

- 미친 척 할까, 그냥..
지호성이 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 처음엔 부지런히 움직였다. 침대시트를 걷어 세탁기에 쳐박아 넣고 씨리얼과 우유를 꺼내어 먹기도 하고 티비도 틀어보고. 근데 몸만 움직일 뿐 뭣같게도 머릿속은 온통 지호성 투성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계를 보며 몇 시쯤 됐는지 확인하고, 또 머릿속에 어제일이
생각나면 내 소중이는 겸손함을 모른채 거만하게도 우뚝 서서 사그라들 줄을 모르는데, 솔직히!

-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미쳤다고 벽에 머리를 박아봐도, 애국가 완창을 열 번도 더 넘게 불러 봐도, 갈수록 더 욕구만 심해져간다. 그래 어차피 막장으로 치닫은 친구관계인데 계속 막장으로?!
하는 생각도 수십번. 그러다 뭔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고 자괴감에 머리칼을 쥐어뜯다 어느새, 지호성 탓이지 내 탓이 아니잖아! 큰 소리 한 번 내고 1분만에 다시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미친놈 니 탓이고 내 탓이고간에 이딴 생각을 왜 하고 있냐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또 다시 벌떡 일어나 이미 지호성도 미쳤고 나도 지금 제정신 아닌데 그냥 받아줘버려?! 이지랄을 어지간히도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지호성이 예고하고 갔던 1시 반. 웃기지도 않게 그 놈 웃는 얼굴이 둥실둥실 허공에 떠다니며 심장이 쿵쿵쿵쿵.
그렇게 몸에 이상반응이 일어나길 30분이 넘도록 지호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2시. 3시. 4시.

- 다섯시.

시발? 이른 오후에 온다며, 한시 반에 온다며, 약속 존나 안 지키네 지호성?!

- 야, 너 어디냐?
결국 '지호성 윈이다 새끼야.' 중얼대다 전화를 걸었다.

- 너희 집 앞.
- 한시 반에 온다더니, 지금이 한시 반이냐?
- 한시 반에 오긴 했었어. 안 들어가고 있었을 뿐이지.
- 왜?

현관문을 열자 쪼그리고 앉아있는 지호성이 물끄러미 날 올려다보더니,
- 막상 너 보니까 확신할 수 있을 거 같아. 음, 좋아.

하고선 일어난다. 뭐래. 뭐가 좋아.

- 들어가서 얘기하자.

현관으로 딱 한 걸음 내딛고 다시 풀썩 주저앉을 뻔한 지호성을 잽싸게 붙들었다.

- 계속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쥐 났나봐. 부축해줘.
역시 가지가지 하는 판타스틱 베이비답게 남들 안 하는 지랄만 골라서 한다.

- 넌 언젠간 똘끼 때문에 뭔 일이 나도 나지 싶다.

구박을 하며 부축을 해 쇼파에 던져놨더니 주물러달라며 탁자위에 다리를 턱 하니 얹인다.
- 니 다리는 니가 주무르시고요. 뭐 한다고 무식하게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지 들어나보자.
- 너한테 얘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고 있었지.
- 무슨 얘기?
- 내 진심.

올 것이 온 건가.

- 긴가민가 했었는데 어제 우리 거사도 치뤘으니까 담판을 지어야 할 거 같아.
쓸데없이 또 심장이 쿵쿵쿵쿵.

-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너 자유지만..

...그냥 눈 딱 감고 받아줄까..? 에라이 모르겠다. 받아주자. 인생 뭐 있나 싶기도 하고, 이미 섹스까지 해 본 마당에 사귀는 거? 그게 뭐라고.

- 나도 이제 무슨 얘기든 다 들을 준비 됐으니까 편하게 말해.
그래, 까짓 거 내가 사겨준-

- 사랑이 아니었나봐.
- 뭐?

...뭐라고요? 방금 지호성이 뭐라고 한거죠..?

- 휴우.. 솔직히 너한테 처음 고백한 날까지만 해도 좀 긴가민가 하다가 점점 사랑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 좀 심란해.
...야 이 씨..ㅂ.. 소개팅까지 시켜줘도 당당하게 내가 이상형이라더니 와, 이거 존나 웃긴 놈이네? 남자가 시발 한 입으로 두 말을 해?!

- 그렇게 들이대더니 왜?

아니, 내가 그렇게 못 했냐?! 아니잖아, 너 어제 존나 느꼈잖아, 근데 왜?! 뭐가 문제야! 후우, 워워. 주해성 흥분하지 마.
침착하자. 난 아무렇지도 않다. 난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조금도 아무렇..다! 존나 아무렇다 시발! 왜냐고 왜! 속된 말로 먹고 버리는 것도 아니고, 갖고노냐?!

- 사랑이라는건 내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다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

뭐야, 갑자기 웬 소녀감성이야.
- 근데 난 감수 못 하겠어.
- ?

왜 내 바지춤을 쳐다보는건데..?

- 아파. 물론 나중엔 너무 좋았는데 좋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험난해. 사랑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감당해야 하는건데 무서워. 도저히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아픔이 아니야...
시무룩한 얼굴로 아련하게 내 바지춤을 쳐다보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지호성을 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저어대며, 아 또라이.. 중얼댔다.

- 휴우..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고 싱숭생숭하고 따끔따끔 한 거지..
- 야, 잘 생각해봐. 그, 뭐,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이든 다 감당하지는 않거든?
- 아니야, 다 감당할 수 있어야 사랑이지.

얘는 1도 순진하지 않으면서 왜 쓸데없이 사랑 운운하는 건 순수하고 난리야.

- 니 감정은 사랑이 맞아, 멍청아.
- 나도 그런 줄 알았지.
- 너 내가 이상형이라며.
- 응.
- 내가 머리 쓰다듬어주면 두근거리고 내가 기분 안 좋아보이면 덩달아 안 좋아진다며?
- 응.
- 근데 사랑이 아니라고?
- 응.
- 왜?
- 아휴, 주해성 넌 항상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못 알아먹더라. 그래서 나중에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래?
누가 누굴 걱정해 병신아. 말은 지금 니가 못 알아먹고 있잖아.

- 얘기 했잖아, 사랑하면 모든 걸 감당할 수,
- 소설을 써라. 소나기 찍냐?
- 헐. 그럼 넌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것을 다 받아들이지는 못한다는거야? 발랑 까져가지고 순수함이 없어, 순수함이. 어쨌든 난 아니라고 결론지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니 거시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거든.

그래, 난 발랑 까져서 순수함이 없다 치자. 그러는 넌 존나 순수해서 내 거시기부터 생각하냐? 얘는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닌데 사고방식이 왜 이따위야.

- 되지도 않는 결론 집어치워, 니 감정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대체.
- 몰라, 오늘은 생각을 너무 많이 했으니까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게. 지금은 아무래도 차분하게 그림을 좀 그려야 할 거 같아.

차분하게 내 누드따위 좀 그리지 말아줄래..?

- 야, 지호,
- 할 거 없으면 옷 벗고 포즈나 좀 취해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이 새끼는 사람이기까지 하면서 왜 맨날 내 말을 안 들어쳐먹을까..

• • •

Missing some Tweet in this thread? You can try to force a refresh
 

Keep Current with 쥬시쿨

쥬시쿨 Profile picture

Stay in touch and get notified when new unrolls are available from this author!

Read all threads

This Thread may be Removed Anytime!

PDF

Twitter may remove this content at anytime! Save it as PDF for later use!

Try unrolling a thread yourself!

how to unroll video
  1. Follow @ThreadReaderApp to mention us!

  2. From a Twitter thread mention us with a keyword "unroll"
@threadreaderapp unroll

Practice here first or read more on our help page!

More from @wbtlznf7

Dec 12
불완전1 #서준지우

- 지우씨. 일 조금만 도와줄래요?
- 네.
- 다른 분들은 퇴근해보세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서준팀장은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실제로 좋은 사람인것도 맞다. 하지만 6개월전쯤부턴가 조금씩,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강팀장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부서 사람들은 "요즘 팀장님 너무 어두워지지 않았어요?" 소근소근 걱정할 정도.

- ...지우야.
- 네, 팀장님.
- 둘만 있을때 그렇게 부르지마..
- 회사잖아요.
- 하아.. 그래. 그럼 나가자.
내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건 대부분 핑계다. 다른 이들이 퇴근을 하면 우리도 곧장 일어나니까.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자연스럽게 강팀장 차에 올라타 앉았다. 뭐가 그리도 심란한지 핸들에 팔을 얹고 이마를 댄 채 한숨을 쉬던 강팀장, 아니 강서준은 그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Read 41 tweets
Dec 12
클리셰12 #해성석호

딱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라 만화카페에 들어가 만화책이나 보면서 시간을 떼웠다. 수업은 시작했을 테고 주해성은 3주만에 단정한 모범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반듯하게 앉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할 시간이었다.

- 아, 배고파..
라면을 시켜놓고 다음권을 보기 위해 만화책을 들었다가 무심코 폰을 먼저 들여다봤다. 앨범에 들어가 유일하게 하나 있는, 몰래 찍은 주해성 사진을 들여다보며, "폰에서 좀 나와봐 새끼야." 중얼거리다, "안 나올거면 됐다." 하고 그냥 사진을 삭제했다. 배터리도 별로 없네..
깜박하고 충전을 안 했더니 20%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배터리를 충전시킬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내버려뒀다. 오랜만에 일탈이 하고 싶어지는 날이라 저녁엔 게이바 가서 실컷 놀아야겠다 생각하며 만화책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 오후엔 갈아입을 옷을 사기위해 쇼핑을 했고, 저녁이 됐을 땐,
Read 43 tweets
Dec 11
셔틀 #서준지우
(유치+오글 주의)

지우는 오늘도 고단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어. 학교 친구들이 부탁을 했거든.

- 피자빵이랑 콜라랑, 또..

맞아, 사실 부탁이 아니라 그냥 명령이야. 시키기만 하면 다행이지 돈도 안주고 사오래 나쁜놈들이.
일명 셔틀이라고 불리는 직함을 가지게 된 것도 벌써 반년째야.

- 서준아 초코빵?

지우는 한번도 셔틀이 될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사람 또한 상상으로도 해 본 적 없었어. 항상 그 중심에 있는 강서준.
초딩때부터 단짝이었고 무사히 중학교도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어. 아니 그건 그냥 서준의 일방적인 멀어짐이었지. 평범하게만 살아 온 단짝친구는 점점 일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탈선이란 이런것이다 보여주려는 듯 나쁜짓은 빠지지않고 앞장섰어.
Read 15 tweets
Dec 11
첫사랑 (완) #서준지우

잠에서 깨 눈을 떴지만 방의 창문을 덮고있는 암막커튼 덕에 고요하고 어둡다. 머리맡에 둔 폰을 확인해보니 오전 10시. 어젯밤 제딴엔 용을 썼는지 아직 곤히 잠들어있는 얼굴을 보며 비실비실 웃다가 문득 지우 몸이 걱정됐다.
오랜만이었는데다 무리했을텐데 몸살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어 약이라도 사와야겠다 생각하고 조심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기라도 할까봐 조용조용 옷을 걸치고 나왔다. 이상하게 얼굴에 자꾸 웃음이 걸쳐진다.
기분이 좋은것과 행복한 것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 휘파람이나 콧노래가 나오고 웃음도 새어나오는데 그저 기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나 지금 행복한거구나 느껴진다.

- 몸살 약 같은 것도 하나 주세요.
- 감기몸살 약 드리면 돼요?
- 감기는 아니고 운동을 좀 격하게 해서요.
Read 33 tweets
Dec 9
살인마 X 목격자 #서준지우

퇴근시간인데도 지우는 나재수과장이 부탁한 업무로 인해 퇴근을 못하는 중. 말이 부탁이지 자기가 해야 할 일 지우한테 떠넘긴건데 말단회사원인 지우가 무슨 힘이 있겠어. 까라면 까야지.
홀로 남아 있는데 빗소리가 창문을 계속 때려. 오후부터 비가 계속 쏟아졌는데 밤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까지 온다는거야.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일을 대충하는 법이 없는, 요령없는 지우는 속으로 나과장을 씹어대고 한숨을 쉬면서도 끝끝내 일을 마무리 짓고 퇴근해.
- 오늘 날씨 참 험상궂죠?

피곤해서 조용히 가고싶은데 택시아저씨는 자꾸 말을 걸어. 아 네. 대충 대답하며 창밖을 보는데 뒷차가 택시를 콩 들이받아. 덜컹 몸이 앞으로 꼬꾸라져 놀라긴 했지만 크게 박은게 아니라 지우는 또 짜증이나.
Read 27 tweets
Dec 9
클리셰11 #해성석호

주해성은 선상파티 이후로 몇 번 혼자서 호텔밖을 나가 놀다 들어왔는데 여자와 데이트를 했는지 잤는지 의외로 건전하게 놀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일이 쫓아다니기엔 나도 무리가 있다보니 주해성이 모르는 여자를 안는다던가 하는 애꿎은 상상력만 늘어난데다,
한 번 자봤다고 그놈이 섹시해 보일때마다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자주 들어 힘든 것만 빼고는 그래도 꽤 수확이 큰 미국행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일주일을 붙어있는동안 알게 모르게 주해성과 많이 가까워진 거 같다. 그 전에는 한정적인 모습밖에 볼 수 없었는데
일주일간 조금 더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기도 했고 전보다 대화도 확실히 늘었다. 싸가지야 일관성 있게 없다지만 그래도 이제 말 걸면 대답도 그럭저럭 잘 해주고,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제 비웃음이긴 해도 피식 피식 잘 웃기도 한다.
Read 32 tweets

Did Thread Reader help you today?

Support us! We are indie developers!


This site is made by just two indie developers on a laptop doing marketing, support and development! Read more about the story.

Become a Premium Member ($3/month or $30/year) and get exclusive features!

Become Premium

Don't want to be a Premium member but still want to support us?

Make a small donation by buying us coffee ($5) or help with server cost ($10)

Donate via Paypal

Or Donate anonymously using crypto!

Ethereum

0xfe58350B80634f60Fa6Dc149a72b4DFbc17D341E copy

Bitcoin

3ATGMxNzCUFzxpMCHL5sWSt4DVtS8UqXpi copy

Thank you for your support!

Follow Us on Twi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