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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1 57 tweets 9 min read
클리셰14 #해성석호

지가 마시려고 주문했다는 말에 골이 나서 주절주절 틱틱댔다.

- 존나 단거만 마시더니 왜 갑자기 아아를 쳐마신다고,
- 자, 자, 마셔라 애새끼야.

픽 웃던 주해성은 아아를 밀어주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 진짜 짜증나게 왜 자꾸 츤데레인 척 하고 지랄이야. 존나 좋게.
- 자꾸 비싼 척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내 앞으로 밀어 준 깔끔하고 시원한 아아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다 던진말에 주해성은 다시금 속 터질 만큼의 느릿함으로 눈만 깜박깜박 하더니 비싼 입을연다.

- 속 시원하게 니 마음 말해보라고.
- 비싼 척 한 적도 없고, 솔직하지 않았던 적도 없었는데?
주해성이 너무 당당하게 반응해서 뭐라 대차게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웬만한 일에는 워낙 흥분하지 않고 덤덤한 모습을 보이는데다 평소에도 느긋하기 짝이 없는 성격인 주해성이기에 그동안 있지도 않은 벽에 나 혼자 헤딩을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호들갑을 떠는것만이 진심은 아니겠지만 주해성은 늘 지나치게 무던해서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진다.

- 넌 내가 너 좋다고 이렇게 쌩 난리를 치는데 그게 그냥 웃기냐?
- 어.
- 사람 존나 할 말 없게 만드네.
- 사탕 하나에 희노애락을 다 느끼는 애새끼 같아서 한 번씩 귀엽다니까. 사탕줄까?

이건 무슨, 내가 진짜 애새낀줄 아냐고! ..내 심장 임마 아직 아니야, 나 아직 죽을 때 안 됐으니까 움직여라...

- 큭, 귀 빨개지고 지랄. 좋냐?
- 어 시발, 개 좋아.
큭큭거리고 웃는 주해성한테만 마치 반사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하얗고 반들반들한 얼굴을 보는데 가슴이 간질거리는 거 같아 커피에 고개를 쳐박고 웅얼거렸다.

- 야, 그렇게 설레게 웃지 말라고.
- 뭐래, 옹알이 하냐?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주해성은 내 말을 듣지 못한듯 했다. 아니 왜 그렇게 귀엽다는듯이 보면서 웃는건데. 지금껏 겪어보고도 모르겠냐고. 이러면 나 또 착각 한바가지하잖아 멍청한 새끼야.
- 두 도련님들, 데이트는 잘 했고?

주해성님께서 무려 과외가 있으시기에 진짜 딱 각자 음료로 목만 축이고 한시간만에 나온 우리를 태운 비서형이 친절히도 내 속을 긁어주신다.

- 시계 볼 줄 몰라? 카페 들어간지 한시간만에 나온 거 안 보이냐고, 데이트는 쪄 죽을.
조금 더 짜증이 나있던 이유는 주해성과 나의 과외 시간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였다. 난 화요일과 목요일에 몰아서 빡세게 하는데, 주해성은 월요일과 수요일에 몰아서 빡세게 한단다. 처음 알게 된 좆같은 사실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다 피 토할 뻔 하면서 같은 날로 맞추자고 조르고 조르고 졸랐지만
시큰둥한 주해성을 보며 뒤늦게나마 마음을 바꿨다. 응, 내가 그 요일로 맞출게 씨발놈아.

- 근데 이거 뭔 소리야?
- 아, 강아지.

탈때부터 끼잉끼잉 하는 소리가 간혹 들렸지만 워낙 작은 소리라 차 외부에서 들리겠거니 했는데, 비서형 말에 보조석 앞을 보니 케이지가 있었고 그 안에서 작은
생명 하나가 낑낑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 뭐야, 웬 강아지? 나 줘봐.

신호덕에 잠시 차가 멈춘 사이, 오늘 분양받았다며 케이지에서 강아지를 꺼내주는데 절로 욕이 나올 정도의 귀여움을 장착한 생명체였다.

- 왜 이렇게 작아, 존나 귀여워..
- 태어난지 한달 반 밖에 안 됐어.
솜뭉치처럼 새하얀 강아지는 품에 안아보니 더 작아보였다. 와 시발 이게 뭐야, 미쳤나봐 주해성보다 더 귀여워.

- 이름은 뭔데?
- 아직 안 지었어.
- 내 이름 어때, 석호. 석호야~ 주해성 개새끼 해봐. 우쭈쭈~

너무 작아 품에서 꼼질거리기만 해도 귀여워보이는 이 생명체에겐 사실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냐 생각하며 옆에 앉아있는 주해성을 쳐다봤는데..

- ..뭐냐, 그 표정.

살짝 미소가 띄워진 얼굴과 사랑스럽다는 듯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강아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하는 모습이라니. 저기요, 처음보는 그런 표정을 보여주면 내가 또 반하는데요.
- 안아볼래?

조심스레 강아지를 전해주려는 내 몸짓에 주해성은 급 정색을 하며 싫다는 의사를 표했다. 안으면 바스라질 거 같다나 뭐라나 하면서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살피는데, 그런 주해성이 너무 낯설어서 약간은 충격을 받았다. 노아한테 병아리 얘기 들었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상조차
되지 않던 그 모습을 실제로 보고 있자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숨만 쉬어도 이뻐 죽겠다는 듯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는 주해성이 내가 아는 주해성이 맞는건가.

- 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그렇게 이쁘면 안아봐 병신아.

무턱대고 주해성 품에 강아지를 안겨줬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 못 하고 쩔쩔 매고 있는 모습에 2차 충격을 받았다. 뭐야, 이 새끼.. 난 그렇게나 하찮게 보면서 왜 강아지한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거 같은 표정인데, 존나 귀엽게..

- 하.. 귀여워 죽겠네..
- 어.. 아.. 와.. 귀엽다..
- 아니, 강아지 말고 니가 귀엽다고 눈치 없는 새끼야.
내 말은 알아서 필터처리 하더니 내릴때까지 숨도 편히 못 쉬고 강아지만 살피던 주해성이 난 참 귀여우면서도 짜증났다.

매일 학교, 과외, 학교, 집, 학교, 카페, 등등- 하교를 하고나면 길지 않은 시간 덕에 데이트 다운 데이트도 못 하고 조금은 심심하게 보내다 드디어 주말이 되어 주해성을 끌고
게이바를 갔다. 맞은편이 아닌 옆에 나란히 앉는 날 향해 뭐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주해성이 속 터졌지만 그래도 고이 끌려와 줬으니 참았다.

-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뭐겠냐 돌대가리야. 이렇게 나란히 앉아도 우리를 이상하게 볼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난 손도 잡고 싶고, 안고도 싶고, 키스도 하고 싶고, 그 이상의 것도(체력이 좀 딸리긴 하지만) 하고 싶은데 주해성은 망부석이니 아무런 시선 신경 안쓰고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

- 화장실 가서 옷이나 닦아.

들어오기 전 출출해서 핫도그를 하나씩 먹었는데 옷 끄트머리에
소스를 떨어뜨렸는지 얼룩이 져있길래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씨 주해성은 존나 간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나왔는데 난 왜 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냐, 짜증나게.

- 맥주나 좀 시키고 있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아 시발 왜 하필 또 흰 옷을 입어가지고 존나 티 나고 염병이냐.. 세면대에서 물을 묻혀가며 얼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톡톡치며 아는체를 한다.

- 방황 끝났다며?

염천커플이다. 지우형과는 한번씩 안부도 묻고 연락하며 지내는데 내 근황을 아는거보면 둘은
오만얘기를 다 공유하고 사는 거 같다. 존나 부럽네...

- 형도 여기 있었어? 지우형은?
- 아직 레스토랑 마감 안 해서.
- 같이 오지 왜 형만 왔대? 아 시발, 더럽게 안 지워지네..

희미해진 얼룩을 보며 물기를 쥐어짜고 주름진 옷을 팡팡 치고 있는데,
- 좀 있으면 올 거야. 것보다 너 좋아하는 애랑 사귄다며? 이성애자라더니?

나란히 화장실을 나서며 뿌듯하게 말 했다.

- 이성애자긴 한데 내가 귀엽대. 저~기 혼자 앉아있는 저 놈이 내 애인.

서준이형은 내가 가르킨 방향을 보며 한동안 헐, 와, 따위의 감탄사를 연발하다 자기 어릴때 보는 거
같다며, "너 눈 높다?ㅋㅋㅋㅋ" 하는데 자기애 쩌네.

- 저 정도면 여자들이 가만히 안 놔두겠는데? 게이도 아닌데 잘도 꼬셨네.

아직도 볼 때마다 입틀막하게 되는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낸 주해성의 깐머리와 날티나지만 고급스러움이 폴폴 풍기는 내 취향의 사복간지는 비단 내 눈에만 멋있는 게
아닌가보다. 여느때와 같이 무심하기 짝이 없는 건방진 자세로 앉아 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주해성을 보더니 내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이는 서준이형 반응에 우쭐해진다.

- 냉미남이네ㅋㅋ
- 저래봬도 저 새끼가 웃는 얼굴은 존나 귀여워. 비웃을 때 빼고.
- 말만 하지 말고 인사라도 시켜주던가.
- 어.. 그건 좀..

..주해성 개정색할 거 같은데.

- 왜, 낯가려?
- 그렇다기보단 승질머리가..
- 성격이 나빠?
- 좋다고 하긴 뭐하지만 나쁘다고 하기도 뭐한데 것보단, 음..

날 귀찮아하는 주해성을 다른사람에게 보이긴 내 입장이 좀 우스워질 거 같아서 꺼름칙했지만,

- 가자. 인사시켜 줄게.
순간의 기분에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서준이형은 내가 저 놈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도 알고 있는데 뭐 좀 우스워 보이면 어때. 저렇게 생겨먹은 놈이 내 애인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거지. 테이블로 가서 앉았더니 주해성은 눈썹이 살짝 일그러지며 뭐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 강서준이라고 얼마전에 알게 된 형인데 우연히 마주쳐서. 이쪽은 내 애인, 주해성.

내막을 모르는 주해성은 예상대로 띠꺼운 표정으로 건방지게 고개만 까딱했고 서준이형은 기분도 안 나쁜지 오히려 '귀엽다 귀여워.' 하는 표정으로 실실 웃는다.
- 맥주 안 시켰냐?
- 혹시 다른 거 마시고 싶을까 해서.
- ? 누가?
- 니가.

? 뭔데.

- 주문할까? 맥주면 돼?
- 어어, 뭐, 아무거나..
- 그럼 수제맥주 마시자. 안주는 뭐 시킬까?

...그러니까, 뭐냐고 지금.

- 어어..? 글쎄, 뭐, 아무거나..?
- 텐더?
- 어, 뭐, 그러던가..
갑자기 온화한 표정으로. 자상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말투로! 내 의견을 하나하나 묻더니! 알바에게 주문을 하고있는 지금 이 주해성은 뭐냐고. 좋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갑작스러운 주해성의 친절은 날 석고상마냥 굳게 만들었다. 누구냐, 너..?

- 되게 다정하네.
키득거리는 서준이형 말에,

- 워낙 애기 같아서요.

주해성은 퉁명스런 말투로 대꾸했지만 그 퉁명스런 대꾸의 내용은 누가 들어도 닭살 돋는 애정어린 연인의 말이기에 나도 모르게 주해성을 쳐다보며 넋 빠진 표정을 지었다.
- 애기는 우리 지우가 애긴데. 그나저나 석호 너 혼자 짝사랑했다더니 아닌거 같은데?

주해성은 뻔뻔스런 얼굴로, "짝사랑이래요? 서운하네. 내가 더 아끼는데." 하며 흡사 얼마 전 강아지를 볼 때의 표정이 생각날 만큼 따뜻한 눈빛을 내게 보내는데 심정 같아선 그냥 기절 하고 싶다.
시발, 무서워. 이 새끼 왜 이래, 주해성 어디갔어...

- 맥주만 마시지말고 안주도 좀 먹어.

적응 안 되는 당황스러움에 맥주가 오자마자 들이켰더니 안주를 집어 입에 넣어주기까지 하는데, 아니 나 지금 소름 돋는다고... 혹시 꿈인가..? 나 지금 자고 있는건가?
- ..야, 나 텐더 말고 저거.

손가락으로 해쉬브라운을 가리키자 방금 얼떨결에 한 입 베어먹은 텐더를 내려놓고 해쉬브라운을 집어주는 젓가락질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응, 이게 현실일리 없으니까 나 지금 자고 있는 거구나. 하하하 심지어 자각몽인 듯?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시발.
- 야. 뽀뽀해줘.

젓가락을 내려놓다가 잠시 멈칫하던 주해성은 손으로 내 턱을 살며시 들더니, 촉 가볍에 입을 맞추는데 닭살이 오소소 돋는 거 같아서 벌떡 일어났다. 말이 돼?! 꿈이라기엔 말랑말랑, 촉촉, 부드러운 입술의 느낌이 너무 현실적이잖아.
- 뭐지, 내가 미친거냐, 니가 미친거냐..?

어리둥절하게 날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혼돈의 카오스를 느끼고 있는데, 왜 그래 갑자기? 하며 다시 날 앉힌다.

- 야. 뽀뽀말고 키스해줘.
- 다른 사람도 있는데 왜 그래. 뭐 또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 저 형 없었으면 해줬겠다?
- 안 해 줄 이유가 없잖아.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주해성 때문에 결국 너갱이가 나가서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데 정작 이 놈은 능청스럽고 뻔뻔하게도 걱정스러운 얼굴따위를 하며 "괜찮은 거야?" 묻는다. 안 괜찮아 미친놈아 나한테 왜 이러냐고...
- 지우 레스토랑 마감 늦어질 거 같대. 도와주러 가야겠다. 다음에 또 봐요, 리틀 강서준ㅋㅋㅋ

서준이형이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내기에 배웅해준답시고 입구로 따라나갔다.

- 저 친구 사진 한장만 보내줘봐. 지우한테 보여주게.

이렇게 생긴애들은 취향도 똑같은가보다며 본인들과 닮은 우리를
신기해하는 서준이형에게 몰래찍었던 사진 한장 있었는데 그것도 삭제해서 없다고 했더니 사귀는 사이에 사진 한장 없는게 말이 되냐고 한다. 그러게. 말 안되잖아? 오늘 사진 백장 찍는다 내가.

- 짝사랑했다더니 온풍기가 따로 없던데?
- 형 눈에도 그렇게 보였지?
- 까칠한데 내 사람한테만 다정한 남자, 그런 판타지적인 인물인가?

아닌데, 딴 사람들한테는 다정하고(학교에서) 나한테만 존나 까칠한 게 주해성인데.. 꿈도 현실도 아닌 거 같은 이 기묘함에 급히 인사를 건넸다.
-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확인 좀 해봐야겠다. 담에 지우형이랑 넷이 한 번 보자 형. 먼저 들어간다.
- 그래. 데이트 잘 해라 쪼꼬미들ㅋㅋㅋ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주해성에게 걸어가 폰게임에 접속중인 녀석의 옆에 털푸덕 앉아, "나한테 왜 그래?" 물었더니 시선도 주지않고 폰만 보며,
"뭐." 한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주해성을 보니 아까 그건 환상이었나 싶고 뭐에 홀린것 같고..

- 아까 그 행동들 다 뭐냐고. 왜 다정한데?!
- 아는 형이라며. 아는 사람 앞에서 내가 너 평소처럼 대하면 니 꼴이 얼마나 우습겠냐.
- 내 이미지 생각해서 그런거라고?
- 그럼 무슨 이유가 더 있어야 하는데.

귀찮다는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이 생각지도 못 했던 감동아닌 감동을 안겨줘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주해성을 꽉 끌어안고, "내가 존나 좋아해 새끼야, 알지? 근데 아까 그 모습은 너무 갑작스러워서인지 좀 무섭더라. 지금의 니가 좋아. 존나 좋아. 근데 사실
다정한 것도 좋긴 했거든?" 하며 횡설수설 주절주절 고백했다.

- 놔. 게임 좀 하자.
- ..썅놈의 새끼. 하여튼 틈을 안 주지. 니가 이러니까 맨날 내가 욕 박는거잖아. 누가 연애고자 아니랄까봐 로맨스라곤 토끼 눈꼽만큼도 없고 지랄.

물론 연애고자라기엔 맘 먹고 잘해주면 천상의 여자도
꼬실 수 있을 거 같긴 했다. 주해성은 잘생긴 이마를 찌푸리며, "다른 사람한테까지 짝사랑하네 뭐네 잘도 떠벌리고 다녔네." 하며 날 쳐다보는데 말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입술만 보여 나도 모르게 쪽 뽀뽀했다.

- ..........
- ..........
- ..아깐 너무 놀라기 바빠서 제대로 못 느꼈단 말이야.
그래서 다시 해보고 싶어서.
- 어휴, 별...
-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 나 존나 좋아하는구나?!
- 또 무슨 기적의 논리를 펼치려고.

뚫린게 입이니 실컷 떠들어라, 나는 게임이나 하련다. 라는 의미가 낭낭한 목소리의 주해성은 조금씩 게임에 집중을 하고 있고, 난 아까의 기억에 집중을 했다.
- 형 앞에서 쪽팔릴까봐 내 생각해서 평소에 하지도 않는 짓까지 서슴치 않고 하는 거, 이게 좋아하는 거 아니면 뭐야? 뭔데? 뭐냐고.
- 의리, 씹새야.
- ..우리한테 그런게 있었냐..?
- 없으면 말고.
***
연애..라고 해야하나? 여튼 그딴 걸 시작한지 한달 쯤 된 거 같은데, 양석호의 헛소리와 주접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나름 무탈하게 지랄병 안 돋고 얌전한 편이었다. 과외시간을 바꿨다며 좀 더 귀찮게 굴기는 했지만 말이다.

- 담배피우고 올게.

얼마 전, "너도 한 대 할래? 내가 억지로 데리고
갔다 그러면 되잖아." 하길래 단번에 거절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얼만데 학교에서 담배를 피워.

- 다음주에 온다고?

노아에게 전화가 와서 담주 한국 놀러올거라는 얘기를 던지며 진짜 오랜만에 가는 거 같다고 이제 한국이 어색하겠지? 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살게되어 어린
나이에 같이 커가며 인종차별을 당하는 게 빡쳐서 몹쓸 짓을 많이도 함께하며 자랐던 날들이 떠오른다.

- 너처럼 아예 한국에서 살까?
- 비추.
- ㅋㅋㅋ 석호는 잘 지내?
- 요즘 조증인지 하루가 다르게 기분이 업 되고 있어서 피곤할 정도로 잘 지내신다.
- 걔도 성깔 보통 아니던데 같이 잘 다니고 있는 거 보니 의외로 죽이 잘 맞나봐?

한국 가면 같이 한 번 보자며 전화를 끊고 다음 과목 교과서를 꺼내던 때에 담배냄새를 달고 들어 온 양석호는 왜인지 간만에 저기압인 표정으로 옆자리에 앉는다. 십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기분나쁜 일이
있어봐야 무슨 일이 있었겠냐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만년 생리 중인 양석호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크게 신경을 안 썼다. 자려는건지 뭔지 책상에 엎드린 녀석은 수업이 끝날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다음 시간이 체육이라 툭툭 치며 깨웠더니 인상을 쓰며 일어난다.
- 체육복도 안 입고 어디가려고? 혹시 어디 아프냐?
- 아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는 양석호 손목을 잡고 물었더니 휙 뿌리치는데 조금 짜증이 났다. 학교라 차마 욕도 못 하겠고 욱하는걸 속으로 참아누르며 무슨 일 있었냐 했더니,
- 아 씨발 말 할 기분 아니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다짜고짜 큰소리를 내는데 순간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내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작게 나기 시작했고, 교실문을 향해 걸어가던 양석호는 웅성대는 뒤쪽 어디선가 들려 온 작은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 세상 참 편하게 멋대로 살아서 좋겠다, 쟤는.

큰소리는 아니었지만 웅성대던 소리가 우연히 줄어든 타이밍이어서 유독 튀게 들리긴 했다. 작게 한숨을 쉬는 듯 보이던 양석호는 곧 방향을 틀어 내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움찔하던 애들 중 한명의 어깨를 왼손으로 팍 밀친다. 덕분에 휘청하는
애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순식간에 아수라장.

- 세상 편하게 산다고 했던 놈 누구야, 나와.

간만에 보는 양석호의 양아치기질에 왜 내가 피곤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만 일단은 학교에서의 내 직책이 평화주의 학생회인만큼 말려야만 했기에 나서려 한 순간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친 양석호는,
- 나설 생각 하지마, 범생이 새끼야.

하더니 스트레스라도 풀듯 닥치는 대로 주위 애들을 족치며 날뛰었다.

- 세상 편하게 사는 놈이 왜 편하게 사는지 보여줄게, 시발. 억울하면 신고를 하든 고소를 하든 해봐, 피 말려 죽여 줄 테니까.

하.. 만년 생리중인 새끼 발작버튼은 대체 어디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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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7
한번만#7 해성호성

- 야. 그림 집어치우고 좀.

날 보지도 않고 신명나게 내 누드를 잘도 그리고 있는 지호성의 스케치북을 뺏으며 노려봤다.

- 눈꼽 꼈어.

힘껏 야리고 있는 내 기분 따윈 관심도 없이 대수롭지 않게 슥 눈꼽을 떼어주는 이 천진난한만 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 눈꼽이고 뭐고 정리를 좀 해보자.
- 무슨 정리?
- 몰라서 묻냐?

고개를 갸우뚱하는 얼굴은 순도 백프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있다.

- 넌 사랑이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게 뒤집어지냐? 그게 그렇게 한 순간에 돌변할 수도 있는 거냐고.
- 그런 건 아닌데,
- 아닌데 뭐. 어제까지만 해도 나 좋다고 졸졸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더니. 거, 조금 아팠다고 순식간에 사랑이 아니었다? 너 그거 먹튀야, 나쁜새끼야.
- 조금 아팠던 거 아니고 많이 아팠는데..

...뭐, 어쨌든.
Read 66 tweets
Dec 15
클리셰13 #해성석호

영상 때문에 처음 엮이게 됐을 땐 양석호를 쳐 죽이고 싶었다. 그 후에는 그냥저냥 이상한 놈이려니 했다.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딱히 위협적인 짓도 안 하고, 뭣보다 계속 보다보니 그냥 양석호라는 놈이 좀 익숙해졌다. 이제는 미친 소리를 해도,
미친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고 보면 볼수록 희한한 놈이라 솔직히 심심하진 않았다. 그래서 까불어도 봐주고 기어올라도 봐주고 말 한마디에 혼자 실실 쪼갰다가 빡쳐 했다가 약 올라했다가 부들부들 하는 게 웃기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매 초마다 오르락내리락 욹그락붉그락
파르르 변하는 감정의 변덕이었는데, 방학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도 그렇게 그냥 변덕을 부렸다.
내 침대에 누워 이제는 재미가 없다는 말을 툭 던지는 양석호에게 흘러가듯, 다행이네. 대답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이 짓도 그만해야겠다고 중얼대던 녀석은 집으로 돌아갔다.
Read 60 tweets
Dec 13
한번만6 #해성호성

- 허.. 잘도 자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내 침대에, 그것도 내 품안에 파고들어서, 천사라도 강림한 것 같은 얼굴로 온화하게 잠들어 있는 지호성을 보며 난 거의 밤을 지새웠다. 중간에 잠깐씩 졸긴 했지만 깊게 잠들지는 못 했다.
- 우웅, 해성아..

...잠꼬대로 내 이름 부르지마 이 새끼야, 새삼 기분 이상하니까. 어제 섹스 후 지호성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들었고 나도 힘이 빠져 잠시 누워 있다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냥 잠들 수가 없었다.
막말로 자위를 해도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야 하는 법인데 지꺼 내꺼 할 것 없이 뒤엉켜있는 단백질 덩어리들을 그냥 두기엔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 물 티슈로 대충 닦긴 했지만 이미 침대시트에 말라붙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고 지호성 몸도 대강 물 티슈로 닦아주다 적나라하게 흘러내려 말라버린
Read 43 tweets
Dec 12
불완전1 #서준지우

- 지우씨. 일 조금만 도와줄래요?
- 네.
- 다른 분들은 퇴근해보세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서준팀장은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실제로 좋은 사람인것도 맞다. 하지만 6개월전쯤부턴가 조금씩,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강팀장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부서 사람들은 "요즘 팀장님 너무 어두워지지 않았어요?" 소근소근 걱정할 정도.

- ...지우야.
- 네, 팀장님.
- 둘만 있을때 그렇게 부르지마..
- 회사잖아요.
- 하아.. 그래. 그럼 나가자.
내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건 대부분 핑계다. 다른 이들이 퇴근을 하면 우리도 곧장 일어나니까.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자연스럽게 강팀장 차에 올라타 앉았다. 뭐가 그리도 심란한지 핸들에 팔을 얹고 이마를 댄 채 한숨을 쉬던 강팀장, 아니 강서준은 그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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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2
클리셰12 #해성석호

딱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라 만화카페에 들어가 만화책이나 보면서 시간을 떼웠다. 수업은 시작했을 테고 주해성은 3주만에 단정한 모범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반듯하게 앉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할 시간이었다.

- 아, 배고파..
라면을 시켜놓고 다음권을 보기 위해 만화책을 들었다가 무심코 폰을 먼저 들여다봤다. 앨범에 들어가 유일하게 하나 있는, 몰래 찍은 주해성 사진을 들여다보며, "폰에서 좀 나와봐 새끼야." 중얼거리다, "안 나올거면 됐다." 하고 그냥 사진을 삭제했다. 배터리도 별로 없네..
깜박하고 충전을 안 했더니 20%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배터리를 충전시킬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내버려뒀다. 오랜만에 일탈이 하고 싶어지는 날이라 저녁엔 게이바 가서 실컷 놀아야겠다 생각하며 만화책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 오후엔 갈아입을 옷을 사기위해 쇼핑을 했고, 저녁이 됐을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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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1
셔틀 #서준지우
(유치+오글 주의)

지우는 오늘도 고단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어. 학교 친구들이 부탁을 했거든.

- 피자빵이랑 콜라랑, 또..

맞아, 사실 부탁이 아니라 그냥 명령이야. 시키기만 하면 다행이지 돈도 안주고 사오래 나쁜놈들이.
일명 셔틀이라고 불리는 직함을 가지게 된 것도 벌써 반년째야.

- 서준아 초코빵?

지우는 한번도 셔틀이 될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사람 또한 상상으로도 해 본 적 없었어. 항상 그 중심에 있는 강서준.
초딩때부터 단짝이었고 무사히 중학교도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어. 아니 그건 그냥 서준의 일방적인 멀어짐이었지. 평범하게만 살아 온 단짝친구는 점점 일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탈선이란 이런것이다 보여주려는 듯 나쁜짓은 빠지지않고 앞장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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