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작은 마을에 몇해 전 아내를 잃은 한 사내가 살고 있었어. 항상 붉은색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양새의 입술을 얼굴에 그려놓고선 웃음을 팔며 살았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하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고여있었어.
흐르지도 않고 늘 맺혀있는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에 반사돼 사내의 큰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효과를 더해줬어. 사람들은 그의 노랫가락과 춤사위와 곡예를 보며 즐거워했어. 아무도 맺힌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 그도 옛날엔 눈물자욱 하나 없는 맑은 눈을 가진 자였어. 사랑하는 이와
혼인을 할때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던가.
- 지우야. 함께 살자.
가난했지만 모난 곳 하나 없는 인품에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지우는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아왔지만 매번 난감해하며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대답을 돌려줬어. 하지만 이번엔 달랐지. 그 사랑하는 이가 하는 청혼이었으니까.
- 기다렸어요. 당신의 청혼을.
자신만큼이나 가난하지만 때묻지않은 맑고 성실한 사내의 멋없는 프로포즈에 따뜻한 미소로 답하던 고운 얼굴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사내의 가슴이 벅차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대.
- 죽을때까지 변치 않을거야. 아니, 죽어서도 변치 않을게. 내게 와줘서 고마워 지우야.
그들은 소박한 혼례를 치르고 작은 집에서 사랑만큼은 크게 키워갔지. 더 바랄게 없을만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감사히 여기며 살았대.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을 하던 아내가 바늘에 손을 찔렸어.
아! 하는 소리와 여지껏 보지 못했던, 처음으로 보인 눈물. 사내는 황급히 처의 손과 얼굴을 살폈어.
- 괜찮아요.
말은 했지만 흐르는 눈물이 똑,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
- 이,이게 어떻게 된...
아내의 눈물이 다이아몬드로 변했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사내는 처의 손에 흐르는 피를 닦아줄
생각도 못한 채 눈 부실만큼 반짝이는 다이아로 변해버린 처의 눈물을 주워들었어. 불행은 그때부터였지. 아내의 눈물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다는것을 알게되자 사내는 성실함을 잃어갔고 술과 가까워졌으며 돈놀음을 하기까지. 귀가를 하는 날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어.
- 여보.. 집에는 들어오셔야죠...
아내의 걱정을 마뜩찮아 언성이 높아지곤 했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넉넉함에 사내는 눈이 돌아갔어. 돈이 다 떨어지면 그제야 집으로 들어가 착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고 그 눈물의 댓가를 주워들고 다시 집을 나왔어.
홀로남은 처의 몸에 생긴 상처보다 가슴에 더 깊은 상처를 새기는 줄도 모르고. 아니,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어. 손 안에 있는 다이아만이 사내를 웃게 했으니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부부인 것도 잊을 지경이었지만 타고나길 성심이 선한 아내는 사내가 집으로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어. 기다림에 지칠때쯤이면 오는 사내를, 와서는 자신을 학대하기만 하는 사내를, 그래도 정인이라고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던 마음을 언젠가 알아줄거라 믿으며, 방황의 끝엔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올거라 믿으며 몇년을 허송세월만 보냈어. 아이라도 있었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내가 바늘에
찔려 눈물만 보이지 않았다면 그이는 변하지 않았겠지. 지침의 마지막은 자책으로 돌아왔어. 마음에 병이 들어 쉽사리 회복할 수 있었지. 그러던 어느날 다 써버린 다이아몬드를 얻기위해 술에 취한 사내가 집으로 들어왔어. 손찌검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아내의 손에는 새빨갛고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었어. 이렇게 큰 다이아를 본 적은 처음이라 술도 다 깨는 것 같았지. 들뜬 마음에 오늘은 바로 나가지 않고 그 크고 빨간 다이아를 품은채 집에서 잠을 청했어. 그게 새빨간 다이아가 어떤의미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 ...여보.. 여,여보!!!
자고 일어났을때 아내는 바닥에
곱게 누워있었어. 양탄자의 색은 사내가 받은 마지막 선물만큼이나 빨갛게 물든채로 말이야. 결말을 정해놓은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며 슬피 울었던 결과물인 새빨간 다이아를 내동댕이치고 숨이 멎은 그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어보지만 후회해도 늦었어. 이미 차게 식은 몸. 끈적하게 굳어가는 피.
언제든 돌아오면 맞이해주던 미소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됐어.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거슬러가보면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얼마나 간절하게 한지우를 사랑했었는지, 혼인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었는지, 혼례를 치룬 날 얼마나 벅찼었는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것만 같았던
시절을 좀 더 일찍 생각했어야 했어. 뒤늦은 후회는 사내가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던 사랑을 앗아갔어.
- 지우야...
후회속에 그리워하다 슬퍼하다 자괴감에 죽고싶다가도 자신을 용서받을 수 없어 정인을 따라가지도 못 했어. 매일 밤 울며 가슴을 쳐보지만 아내의 아픔을 감히 재보지도 못해.
살아돌아온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제 목숨 다 바칠 자신이 이제는 있는데.
- 제발.. 꿈에서라도 한 번만...
널 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니 꿈에서라도 나와달라고 매일 기도하지만 신은 괘씸한 사내의 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점점 아내의 미소가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져.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르겠어. 죽어서도 변치않겠다 맹세했던 그때의 마음은 어딜가고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오늘도 후회로 얼룩진 마음으로 울다 지쳐 잠들어. 어쩐일일까. 그리도 바랬던 그가 꿈에 나왔어. 그래서, 사내는 꿈에서도 울었어. 한번만이라도 다시 보고싶었던
미소짓는 지우가 아닌, 살아생전 제 눈을 멀게했던 다이아를 위해 눈물흘리던 모습이었거든. 꿈에서 빌고 또 빌었어. 날 용서하지마. 원망하고 저주해. 제발 부탁이야, 다이아따위 필요없으니까 눈물 흘리지마...
그 후로 사내는 얼굴에 분장을 하고 광대가 되어 웃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어. 이제 아내가 떠난지 벌써 십년도 넘어 사내도 몇해 전 이미 30대가 됐을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어. 하루는 건넛마을에 웃지도 울지도 않는 소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마을 찾았어. 그리고 거기서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없어보이는 소년을 만난 순간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어.
- 한번만.. 한번만 웃어볼래..?
- 즐겁지가 않은걸요? 하지만 즐거운 척 웃는 방법은 알아요.
억지로 지어낸 미소에 쏙 패이는 보조개까지 꿈에도 그리던 지우와 꼭 닮은 얼굴. 사내는 이 소년에게 꼭 웃음을 주고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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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소리가 요란할만큼 교실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더니 당연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모두에는 주해성도 포함이고.
- 따라나와.
학교에서의 단정한 주해성은 그 나름대로 날 꼴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비서형 말로는 아직 연애초창기라
내가 지금 발정이 나서 그런 거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왜냐면 주해성은 누가 봐도 존나 잘생기고 멋있고 귀엽고 꼴리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옥상으로 앞장서는 동안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저 죽일놈의 양석호가 또 착한 우리 모범생 괴롭히는 구나.
솔직히 난 관심도 없고 1도 상관없는데 주해성은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종종 간섭을 한다. 자기도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거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뭐, 어쨌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