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Profile picture
Jan 13 21 tweets 3 min read
피에로의 눈물 #서준지우

아웃사이더 피에로의 눈물1, 2 가사에 살만 조금 붙인 썰
한적한 작은 마을에 몇해 전 아내를 잃은 한 사내가 살고 있었어. 항상 붉은색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양새의 입술을 얼굴에 그려놓고선 웃음을 팔며 살았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하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고여있었어.
흐르지도 않고 늘 맺혀있는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에 반사돼 사내의 큰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효과를 더해줬어. 사람들은 그의 노랫가락과 춤사위와 곡예를 보며 즐거워했어. 아무도 맺힌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 그도 옛날엔 눈물자욱 하나 없는 맑은 눈을 가진 자였어. 사랑하는 이와
혼인을 할때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던가.

- 지우야. 함께 살자.

가난했지만 모난 곳 하나 없는 인품에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지우는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아왔지만 매번 난감해하며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대답을 돌려줬어. 하지만 이번엔 달랐지. 그 사랑하는 이가 하는 청혼이었으니까.
- 기다렸어요. 당신의 청혼을.

자신만큼이나 가난하지만 때묻지않은 맑고 성실한 사내의 멋없는 프로포즈에 따뜻한 미소로 답하던 고운 얼굴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사내의 가슴이 벅차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대.
- 죽을때까지 변치 않을거야. 아니, 죽어서도 변치 않을게. 내게 와줘서 고마워 지우야.

그들은 소박한 혼례를 치르고 작은 집에서 사랑만큼은 크게 키워갔지. 더 바랄게 없을만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감사히 여기며 살았대.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을 하던 아내가 바늘에 손을 찔렸어.
아! 하는 소리와 여지껏 보지 못했던, 처음으로 보인 눈물. 사내는 황급히 처의 손과 얼굴을 살폈어.

- 괜찮아요.

말은 했지만 흐르는 눈물이 똑,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

- 이,이게 어떻게 된...

아내의 눈물이 다이아몬드로 변했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사내는 처의 손에 흐르는 피를 닦아줄
생각도 못한 채 눈 부실만큼 반짝이는 다이아로 변해버린 처의 눈물을 주워들었어. 불행은 그때부터였지. 아내의 눈물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다는것을 알게되자 사내는 성실함을 잃어갔고 술과 가까워졌으며 돈놀음을 하기까지. 귀가를 하는 날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어.
- 여보.. 집에는 들어오셔야죠...

아내의 걱정을 마뜩찮아 언성이 높아지곤 했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넉넉함에 사내는 눈이 돌아갔어. 돈이 다 떨어지면 그제야 집으로 들어가 착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고 그 눈물의 댓가를 주워들고 다시 집을 나왔어.
홀로남은 처의 몸에 생긴 상처보다 가슴에 더 깊은 상처를 새기는 줄도 모르고. 아니,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어. 손 안에 있는 다이아만이 사내를 웃게 했으니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부부인 것도 잊을 지경이었지만 타고나길 성심이 선한 아내는 사내가 집으로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어. 기다림에 지칠때쯤이면 오는 사내를, 와서는 자신을 학대하기만 하는 사내를, 그래도 정인이라고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던 마음을 언젠가 알아줄거라 믿으며, 방황의 끝엔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올거라 믿으며 몇년을 허송세월만 보냈어. 아이라도 있었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내가 바늘에
찔려 눈물만 보이지 않았다면 그이는 변하지 않았겠지. 지침의 마지막은 자책으로 돌아왔어. 마음에 병이 들어 쉽사리 회복할 수 있었지. 그러던 어느날 다 써버린 다이아몬드를 얻기위해 술에 취한 사내가 집으로 들어왔어. 손찌검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아내의 손에는 새빨갛고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었어. 이렇게 큰 다이아를 본 적은 처음이라 술도 다 깨는 것 같았지. 들뜬 마음에 오늘은 바로 나가지 않고 그 크고 빨간 다이아를 품은채 집에서 잠을 청했어. 그게 새빨간 다이아가 어떤의미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 ...여보.. 여,여보!!!

자고 일어났을때 아내는 바닥에
곱게 누워있었어. 양탄자의 색은 사내가 받은 마지막 선물만큼이나 빨갛게 물든채로 말이야. 결말을 정해놓은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며 슬피 울었던 결과물인 새빨간 다이아를 내동댕이치고 숨이 멎은 그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어보지만 후회해도 늦었어. 이미 차게 식은 몸. 끈적하게 굳어가는 피.
언제든 돌아오면 맞이해주던 미소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됐어.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거슬러가보면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얼마나 간절하게 한지우를 사랑했었는지, 혼인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었는지, 혼례를 치룬 날 얼마나 벅찼었는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것만 같았던
시절을 좀 더 일찍 생각했어야 했어. 뒤늦은 후회는 사내가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던 사랑을 앗아갔어.

- 지우야...

후회속에 그리워하다 슬퍼하다 자괴감에 죽고싶다가도 자신을 용서받을 수 없어 정인을 따라가지도 못 했어. 매일 밤 울며 가슴을 쳐보지만 아내의 아픔을 감히 재보지도 못해.
살아돌아온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제 목숨 다 바칠 자신이 이제는 있는데.

- 제발.. 꿈에서라도 한 번만...

널 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니 꿈에서라도 나와달라고 매일 기도하지만 신은 괘씸한 사내의 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점점 아내의 미소가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져.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르겠어. 죽어서도 변치않겠다 맹세했던 그때의 마음은 어딜가고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오늘도 후회로 얼룩진 마음으로 울다 지쳐 잠들어. 어쩐일일까. 그리도 바랬던 그가 꿈에 나왔어. 그래서, 사내는 꿈에서도 울었어. 한번만이라도 다시 보고싶었던
미소짓는 지우가 아닌, 살아생전 제 눈을 멀게했던 다이아를 위해 눈물흘리던 모습이었거든. 꿈에서 빌고 또 빌었어. 날 용서하지마. 원망하고 저주해. 제발 부탁이야, 다이아따위 필요없으니까 눈물 흘리지마...

그 후로 사내는 얼굴에 분장을 하고 광대가 되어 웃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어. 이제 아내가 떠난지 벌써 십년도 넘어 사내도 몇해 전 이미 30대가 됐을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어. 하루는 건넛마을에 웃지도 울지도 않는 소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마을 찾았어. 그리고 거기서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없어보이는 소년을 만난 순간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어.
- 한번만.. 한번만 웃어볼래..?
- 즐겁지가 않은걸요? 하지만 즐거운 척 웃는 방법은 알아요.

억지로 지어낸 미소에 쏙 패이는 보조개까지 꿈에도 그리던 지우와 꼭 닮은 얼굴. 사내는 이 소년에게 꼭 웃음을 주고싶어졌어.

• • •

Missing some Tweet in this thread? You can try to force a refresh
 

Keep Current with

쥬 Profile picture

Stay in touch and get notified when new unrolls are available from this author!

Read all threads

This Thread may be Removed Anytime!

PDF

Twitter may remove this content at anytime! Save it as PDF for later use!

Try unrolling a thread yourself!

how to unroll video
  1. Follow @ThreadReaderApp to mention us!

  2. From a Twitter thread mention us with a keyword "unroll"
@threadreaderapp unroll

Practice here first or read more on our help page!

More from @jouju8998

Jan 12
클리셰21 #해성석호

- 야 씨발 주해성!

쾅! 소리가 요란할만큼 교실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더니 당연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모두에는 주해성도 포함이고.

- 따라나와.

학교에서의 단정한 주해성은 그 나름대로 날 꼴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비서형 말로는 아직 연애초창기라
내가 지금 발정이 나서 그런 거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왜냐면 주해성은 누가 봐도 존나 잘생기고 멋있고 귀엽고 꼴리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옥상으로 앞장서는 동안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저 죽일놈의 양석호가 또 착한 우리 모범생 괴롭히는 구나.
솔직히 난 관심도 없고 1도 상관없는데 주해성은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종종 간섭을 한다. 자기도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거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뭐, 어쨌거나.

- 왜 또?
Read 50 tweets
Jan 3
불완전4 #서준지우

방금전까지 서준을 먼저 유혹해 안겨놓고선 가느다란 목소리로 끝을 선언한 지우를 이대로 보낼수가 없어 옷을 챙겨입고 가려는 앞을 막아선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래도 안 떠나? 이래도 날 안 놔? 이래도 버틴다고?' 마치 서준의 한계를 확인하려는 듯 상처를 주면서도
그만보자는 말은 했던적이 없었으니까.

- 갑자기 내가 싫어진 건 아닐거잖아..
- 그동안 나때문에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속으론 즐겼어.
- 뭐..?
- 무섭지 않아? 네 고통이 날 웃게한다는거.

지우 손목을 잡고있던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아프단 소리 한번을 하지 않는다. 늘 그랬다.
한지우 입에서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는 말은 허락되지 않은 금기어라도 되는 양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감각이 한지우를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완벽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비정상적인 정서.

- 그런 말 듣고싶어서 묻는 게 아니잖아..
Read 21 tweets
Dec 31, 2022
클리셰19 #해성석호

거실 테이블에 앉아 비서형에게 전화해 양주와 안주 좀 조달해달라 했더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딴 걸 요구하냐고 짜증을 내던 형은 5분만에 뭔가가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손에 들고 우리집으로 왔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 온 비서형도, 형을 본 노아도 서로 물음표 상태로
날 쳐다봤고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다.

- 아래층에 사는 경호하는 형. 얘는 주해성 친구 정노아.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한 후 비서형은, "갈수록 도련님이 늘어난다..? 적당히 좀 마셔 양석호." 하면서도 주방으로 가 챙겨온 것을 늘어뜨리며 안주거리를 챙긴다.
말려봐야 어차피 의미없는 걸 아니까 속이라도 좀 덜 상하게 하려는 형의 걱정을 알기에, "많이 안 마셔." 누가봐도 믿지않을 거짓말을 던졌다.

- 참, 해성이 넌 일본 안 가?
- 일본을 왜 가.
- 리조트 세우던 거 완공되서 내일 너희 가족 다 행사 참석한다는 거 같던데. 넌 아직 학생이라 그런가?
Read 28 tweets
Dec 31, 2022
클리셰18 #해성석호

아직 질투작전을 시작해보지도 못한데다 주해성은 절대 쉽게 마음을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 한 시점에 너무도 빨리, 그것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얼떨떨하다.

- 수전증이냐? 손 존나 떠네.
-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이게 방금 고백 한 사람의 태도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주해성은 그저 주해성답다. 제 마음을 고백한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난 왜 이 모양이지.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심장마사지를 하며 후하후하 호흡했다.

- 주접떨지 말고 일어나. 가자 좀.
팔을 잡고 날 일으켜 세우는 녀석에게 매달리며, 몸에 힘 다 풀렸어어.. 했더니, 손 많이 가는 새끼. 하며 날 질질끌고 테이블로 간다. 실감이 나질 않지만 그럼에도 주해성의 인정은 어쨌거나 내 기분을 구름보다도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 손 씻고 올게.
Read 53 tweets
Dec 30, 2022
클리셰17 #해성석호

우리는 예정대로 피자집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서야 제대로된 안부를 물었다.

- 내일 도착한다더니?
- 실장이 날짜를 잘못 말해 줬더라고. 근데 너희 되게 친한가보다. 불금에도 만나?
- 아주 각별하지 우리는.

따끈한 피자를 한 조각씩 들며 대화하다 주해성에게 넌시지 물었다.
- 노아한테 말해도 되냐?

뭘? 하는 질문 대신 표정으로 묻는 주해성에게 눈짓으로, '너랑 나.' 했더니 피자를 베어 문다.

- 나한테 할 얘기 있어?
- 주해성이 괜찮다고 하면.
- 니가 언제부터 나한테 의견같은 걸 물었냐?
- 그럼 말 한다?

이제 주해성의 방식이랄지 성격이랄지,
어렴풋이 알게 된 나로썬 꽤나 만족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우리가 사귄다는 얘길 노아에게 해도 되는 걸까 나름 생각도 해 보고 '주해성이 질색 하겠지?' 로 혼자 결론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 나 주해성이랑 연애해.
- 컥, 뭐,뭘 한다고? What? 둘이 뭘 한다고?!
- 연애.
Read 54 tweets
Dec 28, 2022
클리셰16 #해성석호

내 성질이 스스로도 감당이 안돼 눈앞마저 핑 도는 것 같다. 주해성은 고개를 갸웃하고 잠깐 생각하는 듯 하다 금방 입을 열었다. "아, 대충 감이 오네. 알겠으니까 차근차근 얘기해봐." 하는데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담담히 말하는게 너무 좆같아서 다가가 주먹을 날렸다.
- ..다 때렸냐?

맞은 주해성은 여전히 차분한데 난 주먹에서 느껴진 타격감에 놀라 얼어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해성이라 당연히 피할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 했었는데 주먹이 얼굴을 치기도 전에 이미 눈을 감았던 것으로 보아 그냥 맞아 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오히려 놀란 건 나였고
눈물조차 멈췄다. 손도 조금 떨리는 거 같다.

- 미,미쳤어? 왜 안 피하고 있어, 또라이새끼야!

입술이 터져 피가 맺히는데 주해성은 그저 볼 안쪽을 혀로 쓸어보다, "좀 가라앉았냐?" 묻더니 자박자박 걸어 쇼파에 앉아 날 쳐다본다.
Read 41 tweets

Did Thread Reader help you today?

Support us! We are indie developers!


This site is made by just two indie developers on a laptop doing marketing, support and development! Read more about the story.

Become a Premium Member ($3/month or $30/year) and get exclusive features!

Become Premium

Don't want to be a Premium member but still want to support us?

Make a small donation by buying us coffee ($5) or help with server cost ($10)

Donate via Paypal

Or Donate anonymously using crypto!

Ethereum

0xfe58350B80634f60Fa6Dc149a72b4DFbc17D341E copy

Bitcoin

3ATGMxNzCUFzxpMCHL5sWSt4DVtS8UqXpi copy

Thank you for your support!

Follow Us on Twi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