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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9 49 tweets 8 min read
클리셰22 #해성석호

게장과 피자의 조화롭지 않은 식사를 끝내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커피를 사 들고 벌써 어둑해진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아를 쪽쪽 빨아마시다가,

- 야.
- 왜.
- 그냥. 사랑한다고.

한번씩 지금처럼 밑도 끝도 없이 표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주해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 빈정 상할만큼 심심하게 대꾸한다. 하긴, 생각해보면 난 애초에 주해성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 ..어, 말고는 할 만한 대답이 없냐?
- 글쎄.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담백한 주해성 반응에 마음이 꼬깃꼬깃 구겨진다.
- 좋은데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다는 게 말이 되냐?!
- 그럼 좋다고 무조건 다 사랑하냐?
- 난 한다 왜.

귀찮다는 표정으로 날 보던 주해성은 며칠전 박살 낸 폰을 대체한 신상폰으로 게임에 접속하며 구겨진 내 얼굴에, 왜 또. 한다.

- 넌 아직도 내가 귀찮냐?
- 가끔. 근데 귀엽다니까?
뭐 맨날 할 말 없음 귀엽대지. ...근데 이새끼 눈에는 진짜 나 좀 귀여운가..?

- 야 솔직히 나랑 있으면 척 안 해도 되고 이미지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까 마음 편하고 좋지?
- 꾸밈없는 모습 보여도되니까 편하긴 하지. 매번 지랄하면서도 내 성격 바꾸려고 하지 않는것도 좋고.

난 오히려 주해성이
꾸밈없이 날 대해줘서 좋다. 종종 빡칠때가 있긴해도 솔직하고 가식없는 모습이 좋아서 바꾸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걸 주해성 입으로 듣고 있자니 괜히 뿌듯해지는 마음.

- 난 니가 숨만 쉬고 있어도 존나 사랑하는데.
- 어어, 그래서 뭐.
- 나만 그런거 억울하니까 너도 나 좀 사랑하라고.
사랑 그게 뭔데. 하는 표정이라 마시고있던 커피를 끼얹어버릴까 싶었지만 일단 설득을 해보기로 했다.

- 내가 너한테 하는 애정 표현을 예전에는 다른 사람한테 했을거라 생각해봐.

주해성의 질투를 끌어내는 건 쉽지 않다. 그나마 내가 사겼던 사람들 얘기가 나올때만 좀 꿈틀거리기에 찔러봤더니
역시나 인상을 찌푸리며, "뭐 어쩌라는건데." 짜증스레 말하는 주해성이 또 존나 사랑스러워서 달려들어 온 몸에 쪽쪽대고 싶어지지만 밖이라 참았다.

- 니가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니까 친히 머릿속에 때려박아 주는 거잖아. 내가 다른사람한테 애정표현 한다고 생각만해도 부글거리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띨빡아. 노아가 그러더라. 내가 니 첫사랑이라고. 너 빼고 다 알아. 니가 나 사랑한다는 거.

주해성은 진지하게 설득(?)중인 내 얼굴을 보더니 큭큭거리며 작게 웃는다. 왜 웃는데. 어디가 웃긴데.

- 눈치라곤 없는게 누구더러 띨빡이래.
키득거리는 주해성이 이해 안되는 내가 이상한건가? 내가 왜 눈치 없는 띨빡이냐고.

- 설마 내가 진짜 사랑을 몰라서 그랬겠냐? 책이든, 영화든, 간접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게 사랑이다, 멍청한 새끼야.
- 그래서 뭐. 간접적으로 말고 나한테 직접적으로 사랑을 느끼라니까?
- 넌 그냥 계속 병신해라.
- 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나 약 오르는 거 보려고 일부러 사랑을 아네 모르네 한 건 아니지? 장난친거면 뒤진,
- 장난친 거 맞고, 너 사랑하는 것도 맞고.

주해성의 멋대가리 없는 사랑한다는 말에, 살금살금 속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고 간만에 심장이 뇌로
옮겨갔는지 머릿속이 쿵쿵 울린다.

- 뭐라고..?
- 들어놓고 툭하면 못 들은 척은. 사랑한다고 사오정새끼야.

오.. 말 한마디로 천냥빚도 갚는다더니,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좋은건데 시발. 왜 아무도 나한테 말 안 해줬냐 들으면 존나 좋은 말이라는거.
- 다시 말해 봐, 녹음 할 거야.
- 녹음같은 소리하네, 변태새끼.
- 너 그 말 지금까지 몇 명한테 했냐?
- 또 피곤하게 군다.
- 나한테 처음 하는거지? 나말고 사귄 사람 없었잖아. 설마 원나잇하면서 사랑한다 그러고 다닌 건 아니지?

다다다 이어지는 말에 주해성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더니,
"쓸데없이 집착 하지말라고." 한다.

- 할 건데. 존나 할 건데. 꼬우면 너도 하던가.

못마땅한 얼굴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주해성은 결국 몇 명한테 했는지 대답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기특하게도 오늘은 처음으로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기념적인 날이니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볼에 뽀뽀를 하고선 싱글싱글 쪼개며 말했다.

- 신은 날 사랑하나봐.
- 미친놈이 이제 신 마음까지 착각하네. 자의식과잉이다?
- 진짜거든?

아니고서야 이렇게 이쁜새끼를 나한테 줬을리가 없잖아.
생일을 맞이 한 토요일 낮, 노아와 만나 쇼핑이나 할까 했는데 영 의욕이 생기지 않아 카페에 들어앉아 빨대로 커피만 휘적이고 있었더니 하고싶은 거 없냐고 물어온다. 생일이랍시고 나름 케잌도 주문해준 노아가 기특하지만, 아무리 집안행사 때문에 바쁘다해도 전화 한 통 없는 주해성에게 난 살짝,
약간, 진짜 조금, 서운해하는 중이었다.

- 하고싶은 거 없으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점심때이긴 하지만 먹고싶은 게 생각날만큼 식욕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거나." 했더니 노아가 인내심을 발휘하며 하나씩 읊는다.

- 한식?
- 빼고.
- 중식?
- 중식도 좀.
- 일식?
- 며칠전에 먹어서.
- ..뷔페갈래?
- 한 접시도 제대로 못 뫅을 듯?
- ..너 진짜 피곤한 타입인거 알지?

슬슬 한계가 왔는지 이를 꽉 깨물고선, 해성인 대체 너랑 어떻게 사귄대냐?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잠시 후. 눈이 반짝 뜨일 이름이 귀에 박힌다.

- 어, 해성아.
- 야, 주해성 전화받냐?!
- 니 애인 점심 안 먹겠다고 시위중인데 뭐 먹일까?

정신없을 거 같아서 난 일부러 전화도 안 하고 참고 있었는데 시발?

- 응. 아아, 알았어. 넌 언제 끝나? 응. 그래, 알았어. 잘 하고 와.

정노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내게, "니 애인이 너 고기 먹이라는데? 어쩔래?" 묻는다.
- 주해성이? 나 고기 먹으래?
- 응.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구워주면 낼름낼름 잘 먹는다고.
- 새끼, 누가보면 지가 구워준 적 있는 줄 알겠네.

씨익 웃으며 말 했더니 노아는 떫은 표정으로 징글징글 하다는 듯, 이제야 좀 웃네. 넌 해성이가 그렇게 좋아? 묻는다.
- 어. 좋아. 그냥 좋은게 아니고 존나게 좋아.
- ..그래보인다. 응.. 그래서. 고기 먹을거야?
- 그거 먹으라잖아. 자리 옮길까?
- ..사랑의 힘이냐? 방금전까진 세상 다 귀찮아 보이더니, 갑자기 이렇게 활력이 생긴다고?

질린다는 반응따윈 주해성땜에 면역이 생겨 타격없이 휘파람을 불며 일어났다.
- 크으~ 역시 한국사람은 소주가 답인가? 양주보다 소주가 더 좋을때가 있다니까?
- 그래 소주는 답이고 넌 답이 없는 거 같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아나냐.. 해성이 예상보다는 일찍 끝날 거 같대. 일정이 뭐가 하나 취소됐다나 하던데.
- 그래서, 언제 온다고?
- 원래 11시 넘어 도착 예정이었는데 8시쯤이면 올 수 있다나봐.

생각보다 일찍 올 수 있다는 말에 기분이 한단계 더 업 된다. 어릴때야 생일만 기다리며 신나했지 지금은 가지고 싶은것도 필요한것도 없어서인지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연애라는게 참 묘하다. 없던 의미도 자꾸 만들어낸다.
- 주해성 옛날 사진 없냐?
- 있지. 보내줘?
- 안 보내주려고 했냐?

폰을 뒤적거리던 노아가 사진을 몇장 전송해준다. 성장기때의 주해성을 못 본게 아쉽기도 한데 고작 4~5년전일 뿐인데도 너무 앳된 얼굴이 귀여워 발을 동동 굴릴뻔 했다.
뭘 하면 좋을까 싶어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왔는데 아까 삼겹살에 간단히 소주 한두잔하며 듣던 주해성 옛날 얘기가 영화보다 훨씬 더 재밌었던 거 같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변한다던데 나도 은근히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무나 만나고 밖으로 나돌아 다녔는데 요즘은
편하게 집에서 노는 게 더 좋다. 비서형이 양주세팅을 해주고 가서 홀짝거리며 노닥대는데,

- 밖에서 놀고 있으라니까 왜 또 집에 쳐박혀 있냐?

8시가 좀 넘자 주해성이 합류했고 볼 때마다 침나오는 수트 차림의 녀석은 옆에 앉으며, 잘 놀았냐? 묻는다.

- 니가 없는데 내가 잘 놀았겠냐?
- 와~ 웃긴놈이네? 잘 놀았잖아 양석호! 실컷 놀아줬더니 해성이 왔다 이거지? 커플 꺼져.
- 우리집이거든? 니가 꺼져.

노아와 사이좋게 가운데 손가락을 주고받은 후 주해성 안색을 살폈다. 항상 가족행사가 끝나면 하얗게 질려서 나타나던 터라 이모저모 쳐다봤다니 왜인지 오늘은 예정보다 일찍
끝났는데도 몇 배로 더 피골이 상접해 있는 것 같다.

- 뭔 일 있었냐? 얼굴이 왜 이래?
- 그냥, 좀 피곤해서.

앉자마자 숨도 안 돌리고 한 잔 들이키길래 과일을 하나 입에 넣어주며, 평소랑 좀 다른데? 했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짓을 휘휘 해댄다. 그러려니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시는 거 같은데..

- 해성이도 왔으니 난 이만 간다.

주해성 없는 동안 나랑 놀아주는 임무를 완수한 노아를 보내주고 둘만 남아 해본 적 없던 잔소리란 걸 좀 해봤다.

- 천천히 마셔 미친놈아. 아무 일 없었다면서 왜 이렇게 급하게 마시냐고.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잠시 멍하다가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좀 마셔야겠다.

술을 입에 털어넣더니 안주도 안 먹고 다시 잔을 채운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심각한 거 같지는 않은데 괜히 사람 눈치보이게 왜 이러는거냐고..
- 그냥 술이 고픈거냐?
- 응.
- 무게 잡지마 새끼야.
- 크큭, 아무 일 없다니까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냐?
-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잖아. 아까부터 계속 술만 퍼마시는데 벌써 지금 몇 잔째인 줄은 아냐?

주해성은 적당히 취할 정도로 즐기는 편이지 이렇게 급하게 술을 마시는 놈이 아니다.
취하면 평소보다 더 느릿느릿해지고 가끔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그 상태가 돼 있을 땐 내가 더 취해있었던 게 대부분이었는데, 그건 거의 대여섯시간 술자리가 이어졌을때나 그런거지 지금처럼 도착한지 한시간도 안 되서 이렇게 취기가 오르진 않았다고. 아 시바 왜 불안하냐..

- 취하고 싶은 거야?
- 응.

아무리 취하고 싶어도 그렇지 너 지금 벌써 눈꺼풀 느릿해지잖아 미친놈아.. 노아랑 둘이 반병도 채 다 안 마셨었는데 주해성이 남은걸 혼자 해치워버렸다. 본디 술이란 건 급하게 마실수록 취하는 속도도 가속이 붙기 마련이라,

- 나 잠시 방에 좀.

평소같으면 그냥 욕지꺼리나 하면서
왜 이러냐고 닦달했을텐데 그러기엔 뭔가 심란해보이고, 진지하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엔 또 그렇게 심각한 거 같지는 않고.. 좀 걱정되는 마음에 방으로 들어가 노아에게 전화를 했다.

- 저 새끼 왜 저러지? 술을 존나 급하게 혼자 계속 쳐마신다니까? 취하고 싶대. 근데 기분이 나빠보이진 않거든?
[ 야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취하면 그냥 재워. ]
- 자랜다고 자겠다. 내 말 들을 놈이냐? 근데 왜 재워야 되는데?
[ 걔가 평소엔 주사가 없긴한데, 만취하면 좀... ]
- ..왜, 만취하면 뭐?

노아는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갈팡질팡 하더니 의문스런 대답을 내놓는다.
[ 좀 많이 달라져. ]
- 어떤데?
[ 야, 근데 내가 이 얘기한 건 해성이한테 비밀이다. ]
- 아 뭔데 그래. 속 터지게 하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 왜? 주사가 우는건 아닐테고. 혹시 시비걸고 폭력적이고 그래?
[ 그렇..진 않은데.. 필름 끊길만큼 만취한 거 두 번 밖에 못 봐서 나도 확신은 없는데
두 번 다 그랬던 거 보면 주사가 맞는 거 같거든..? ]

노아 얘기를 다 들은 후 더 의문스러워졌다. 평소보다 더 취하는 거 같다 싶으면 술 뺏고 재우라는데 전화를 끊고서도 좀 멍하다. 경고치곤 상상도 안 될 뿐더러 고약한 주사도 아닌 거 같고, 주해성이 정줄 놓을만큼 취하긴 하나 싶기도 하고..
- 이건 또 언제 퍼 마신..

다시 거실로 나갔을 땐 이미 다른 양주를 까서 혼자 병나발이라도 불었는지, 정노아랑 통화한 그 짧은 시간동안 반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주해성은 쇼파에 앉은 자세 그대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황당해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래도 생일인데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이 새끼가 진짜...

- 야, 괜찮냐? 일어나봐. 침대에서 자.

흔들흔들 깨우자 눈꺼풀이 천근만근 떠지더니 느릿느릿 꿈뻑꿈뻑 몇 번 깜박이다,

- 석꼬다아..

? 님 혀가 반토막이 난 거 같은데요.

- ...정줄 놨냐?
방금 전 통화에서 노아가 한 말이 머릿속을 빙빙 떠돈다.

- 서코야아~

만취하면.. 순수해져. 어린애처럼. 그냥 진짜 애가 되더라고.

- 나 졸려.. 안아죠오..

...이게 뭐죠..? 정장까지 갖춰입은 존나 섹시한 몰골로 웅얼대는 이거 뭔데. 이 생명체 뭔데.

- 안 안아죠..?
두 팔을 쫙 벌리며 내가 안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주해성 덕에 사고가 정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뻐끔해대며 꼼짝도 못 하고 있었더니,

- 팔 아파..

눈썹끝이 축 늘어져 시무룩하게 날 쳐다보기에 엉거주춤 안겼더니 꼬옥 끌어안고, 양서코 나 조아? 묻는다. 아니 시발 이게 지금
조온나 까리하고 섹시하게 수트 빼 입은 주해성이 하는 말이 맞긴 한 거냐..? 혹시 이새끼가 취한게 아니라 내가 취했나? 망상인가? 나 뭐 어떻게 해야 하는건데..?

- 나 안 조아?

야 너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평소라면 내가 엉겨붙고 주해성은 귀찮단 표정으로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꾸욱
밀어내며, 그만하고 좀 떨어져. 했을텐데 캐붕도 이런 캐붕이 없다.

- ...안 조아?
- 어? 어, 그러니까..

누가 들어도 기운 빠진 목소리로 시무룩하게 물어오는 주해성 품에서 빠져나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얼굴을 빤히 쳐다봤더니 눈을 내리깔며, 서코는 나 싫나봐.. 하고 뾰로통해지는데 심장이
다 아프다. 존나 귀여워 시발..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만 처음 보는 주해성의 귀염뽀짝모드에 장난기가 올라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져서 퉁명스레 대꾸했다.

- 난 너 별로 안 좋아.
- ..........
- ..........

...이게 아닌가..?

- 대써. 나도 너 미워..
아니 상처받지마.. 울먹거리지 말라고 미친아. 난 지금껏 어린애를 다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멘붕이 와 장난기고 뭐고 싹 사라져 버려 어쩔줄을 모르겠다. 어,어쩌지..?

- 그게 아니라, 그, 방금 그거 농담인데, 저기, 야 난 너 사랑한다니까?!
- 사랑해?
- 어어..
- 그럼 나도 서코 사랑해!
언제 울먹거렸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머리위로 동그라민지 하튼지 구분이 불분명한 모양을 만들어가며 평소에 더럽게도 듣기 힘든 사랑한단 말을 남발하는데 와 시발 돌겠네. 근데 일단 멘붕은 멘붕이고 이걸 그냥 쌩눈으로만 보고 말기엔 내 본능이 소리친다. '이건 찍어야 돼.' 폰을
주섬주섬 집어들어 카메라를 켰다.

- 다시 한 번 해봐.
- 사랑해애 양서코!

술 때문에 볼은 불그스름해 가지고 눈은 이쁘게도 접어 웃으며 동그라민지 하튼지 모를 모양새를 유지하고 잔뜩 새는 발음으로 날 보며 사랑한다 말하는 주해성은 솔직히, 존나 소름끼칠 만큼 귀엽다. 다만 너무 낯설어서
진짜 정노아 말대로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아 적응이 조금은 필요했고, 이런 저런 이쁜짓 하는 걸 영상으로 몇 개나 남기고서야 문득 든 생각. 얘 지금 지가 몇 살인 줄 아는 거지? 노아 말로는 주해성이 마지막으로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던게 6살이었다고, 그래서 만취하면 그때쯤으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싶어 좀 짠하기도 했다는데 진짜 6살인줄 아나..?

- 야, 주해성. 너 몇 살이냐?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손가락까지 동원해, 여섯쌀! 이지랄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았다. 와씨 존나 심장에 해로운 새끼.. 여섯살이라니.. 아니야 너 임마 열아홉이야 졸귀샛기야..
그나저나 도대체 여섯살은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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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3
피에로의 눈물 #서준지우

아웃사이더 피에로의 눈물1, 2 가사에 살만 조금 붙인 썰
한적한 작은 마을에 몇해 전 아내를 잃은 한 사내가 살고 있었어. 항상 붉은색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양새의 입술을 얼굴에 그려놓고선 웃음을 팔며 살았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하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고여있었어.
흐르지도 않고 늘 맺혀있는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에 반사돼 사내의 큰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효과를 더해줬어. 사람들은 그의 노랫가락과 춤사위와 곡예를 보며 즐거워했어. 아무도 맺힌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 그도 옛날엔 눈물자욱 하나 없는 맑은 눈을 가진 자였어. 사랑하는 이와
Read 21 tweets
Jan 12
클리셰21 #해성석호

- 야 씨발 주해성!

쾅! 소리가 요란할만큼 교실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더니 당연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모두에는 주해성도 포함이고.

- 따라나와.

학교에서의 단정한 주해성은 그 나름대로 날 꼴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비서형 말로는 아직 연애초창기라
내가 지금 발정이 나서 그런 거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왜냐면 주해성은 누가 봐도 존나 잘생기고 멋있고 귀엽고 꼴리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옥상으로 앞장서는 동안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저 죽일놈의 양석호가 또 착한 우리 모범생 괴롭히는 구나.
솔직히 난 관심도 없고 1도 상관없는데 주해성은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종종 간섭을 한다. 자기도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거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뭐, 어쨌거나.

- 왜 또?
Read 50 tweets
Jan 3
불완전4 #서준지우

방금전까지 서준을 먼저 유혹해 안겨놓고선 가느다란 목소리로 끝을 선언한 지우를 이대로 보낼수가 없어 옷을 챙겨입고 가려는 앞을 막아선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래도 안 떠나? 이래도 날 안 놔? 이래도 버틴다고?' 마치 서준의 한계를 확인하려는 듯 상처를 주면서도
그만보자는 말은 했던적이 없었으니까.

- 갑자기 내가 싫어진 건 아닐거잖아..
- 그동안 나때문에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속으론 즐겼어.
- 뭐..?
- 무섭지 않아? 네 고통이 날 웃게한다는거.

지우 손목을 잡고있던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아프단 소리 한번을 하지 않는다. 늘 그랬다.
한지우 입에서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는 말은 허락되지 않은 금기어라도 되는 양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감각이 한지우를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완벽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비정상적인 정서.

- 그런 말 듣고싶어서 묻는 게 아니잖아..
Read 21 tweets
Dec 31, 2022
클리셰19 #해성석호

거실 테이블에 앉아 비서형에게 전화해 양주와 안주 좀 조달해달라 했더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딴 걸 요구하냐고 짜증을 내던 형은 5분만에 뭔가가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손에 들고 우리집으로 왔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 온 비서형도, 형을 본 노아도 서로 물음표 상태로
날 쳐다봤고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다.

- 아래층에 사는 경호하는 형. 얘는 주해성 친구 정노아.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한 후 비서형은, "갈수록 도련님이 늘어난다..? 적당히 좀 마셔 양석호." 하면서도 주방으로 가 챙겨온 것을 늘어뜨리며 안주거리를 챙긴다.
말려봐야 어차피 의미없는 걸 아니까 속이라도 좀 덜 상하게 하려는 형의 걱정을 알기에, "많이 안 마셔." 누가봐도 믿지않을 거짓말을 던졌다.

- 참, 해성이 넌 일본 안 가?
- 일본을 왜 가.
- 리조트 세우던 거 완공되서 내일 너희 가족 다 행사 참석한다는 거 같던데. 넌 아직 학생이라 그런가?
Read 28 tweets
Dec 31, 2022
클리셰18 #해성석호

아직 질투작전을 시작해보지도 못한데다 주해성은 절대 쉽게 마음을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 한 시점에 너무도 빨리, 그것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얼떨떨하다.

- 수전증이냐? 손 존나 떠네.
-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이게 방금 고백 한 사람의 태도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주해성은 그저 주해성답다. 제 마음을 고백한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난 왜 이 모양이지.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심장마사지를 하며 후하후하 호흡했다.

- 주접떨지 말고 일어나. 가자 좀.
팔을 잡고 날 일으켜 세우는 녀석에게 매달리며, 몸에 힘 다 풀렸어어.. 했더니, 손 많이 가는 새끼. 하며 날 질질끌고 테이블로 간다. 실감이 나질 않지만 그럼에도 주해성의 인정은 어쨌거나 내 기분을 구름보다도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 손 씻고 올게.
Read 53 tweets
Dec 30, 2022
클리셰17 #해성석호

우리는 예정대로 피자집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서야 제대로된 안부를 물었다.

- 내일 도착한다더니?
- 실장이 날짜를 잘못 말해 줬더라고. 근데 너희 되게 친한가보다. 불금에도 만나?
- 아주 각별하지 우리는.

따끈한 피자를 한 조각씩 들며 대화하다 주해성에게 넌시지 물었다.
- 노아한테 말해도 되냐?

뭘? 하는 질문 대신 표정으로 묻는 주해성에게 눈짓으로, '너랑 나.' 했더니 피자를 베어 문다.

- 나한테 할 얘기 있어?
- 주해성이 괜찮다고 하면.
- 니가 언제부터 나한테 의견같은 걸 물었냐?
- 그럼 말 한다?

이제 주해성의 방식이랄지 성격이랄지,
어렴풋이 알게 된 나로썬 꽤나 만족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우리가 사귄다는 얘길 노아에게 해도 되는 걸까 나름 생각도 해 보고 '주해성이 질색 하겠지?' 로 혼자 결론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 나 주해성이랑 연애해.
- 컥, 뭐,뭘 한다고? What? 둘이 뭘 한다고?!
-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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