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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31 37 tweets 6 min read
클리셰24 #해성석호

- 아는척하긴 좀 그런가..? 난 그냥 반가워서.
- 난 선배랑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연락 한 번 안 하더라?
- ..알잖아, 자퇴한 이유.
- 아는데, 뭐.
- 아무렇지도 않았어?
- 어. 조금도.

기분이 이상하다. 몇 년 전 기억들이 머릿속에 사정없이 뒤엉켜서 속이 울렁거린다.
- 그때는 모든게 무섭더라. 누구한테도 연락을 못 할 만큼.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의 아는 형이었을 뿐이던 3학년 선배와 안면을 트게 됐다. 제멋대로 살아온건 지금이나 그때나 별 다를 게 없었지만, 그래도 선배 앞에서는 꽤 얌전한 편이었던 거 같다. 내가 먼저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선배 주위를 괜히 맴돌기도 했었다. 그렇게 친해질수록 깨달았다.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혼란스럽다기 보단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주해성에게 집착하고 찝쩍거리기 바빴던 것과 달리 그때는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도 괜찮다 생각했다.
그렇게 몇개월을 짝사랑 비슷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고작 열네살. 생각해보면 그때는 나도 꽤 순수했었다. 내 마음을 굳이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았고, 선배 마음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가니 처음 느껴보는 타인에 대한 낯선 관심이 새로웠고, 처음이다보니 나름
조심스러웠던 거다. 하지만 학기가 바뀌고 중간고사 시즌쯤 선배는 돌연 자퇴를 했다. 반년만 있으면 졸업인데 자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웃팅이었다.

- 그땐 친하다고 생각했던 모두가 등을 돌렸으니까..
- 어이없네. 친하다고 생각했던 모두에 나도 포함이었나본데 난 등 돌린 적 없거든?
배신감을 느꼈었던 거 같다. 전화를 해봐도 없는 번호였고, 집마저 이사를 가고 없었다. 비서형에게 부탁해서 알아보려면 얼마든지 번호도, 이사 간 집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배에게 난 친한동생도 아니었던건가 싶은 배신감에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 꽤 궁금하긴 했다.
학교도 그만두고 어디로 이사가서 어떻게 지내는건지. 걱정도 좀 했던거 같다. 괜찮은건지.

-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너도 날 이상하게 생각할 거 같았으니까.
- 그래서, 선배는 잘 지냈고?
- 어?
- 잘 지냈냐고.
- 뭐.. 잘 지내려 노력했지. 지금은 나름 극복해서 검정고시 치고 대학도 갔고.
나와 선배 사이에 감정의 교류같은 뭔가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사람이고, 선배에겐 친하게 지냈던 후배일 뿐이었다. 근데 몇 년이 지나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 괜스레 옛 생각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그때의 내가 된 듯한, 그런 착각.
- 늦었지만, 니가 불편하지만 않으면 연락해도 돼?
- 조심스럽게도 묻네. 폰 줘봐.

선배 폰을 받아들고 내 번호로 전화를 했다. 주머니에서 웅웅 울리는 진동에 전화를 끊고 돌려주며 말 했다.

- 친구들 기다리고 있는 거 같은데?

조금 떨어져있는 카운터에서 우릴 보고 있는 몇 명의 대학생들은
아마도 친구들인 거 같았고, 선배는 연락할게. 말하곤 그 무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 니가 다른 사람 걱정도 다 하네, 양석호?

퍼뜩 정신이 드는 목소리. 맞은편에 앉아 더럽게 달기만 한 아이스 초코라떼를 마시고 있는 주해성을 보며 죄지은 사람인양 병신같이 우물쭈물 거렸다.
- 뭐래, 그냥 중학교때 알던 선밴데, 어.. 그러니까, 자퇴하고 처음보는,
- 왜 변명이야?
- 변명은 아니고..
- 너랑 뭐 있었냐?
- 아무것도 없었어.
- 표정보니 뭐 있었는데, 없긴. 병신 아니랄까봐 얼굴에 존나 티남.
- 아, 뭔 헛소리야, 있긴 뭐가 있어 새끼야.
- 일어나자. 오늘 사촌형 온대서 일찍 들어가 봐야 돼.

아, 모르겠다.. 기분이 왜 이렇게 싱숭생숭한지..

- 야. 나랑 좀만 더 있어주면 안 되냐?
- 어.
- 개새끼, 존나 냉정해.

주해성이 어쩐히 묘하게 짜증스러워 보이는 건 내 착각인지, 아니면..

- 혹시나해서 묻는건데, 질투하냐?
가운데손가락으로 대답하는 걸 보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해성은 내가 뭔가를 물어볼 때 언제나 솔직하게 대답하는 편이니까. 어쩐지 허한 마음에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주회장님 부름이었으니 주해성을 보낼수밖에 없었다. 집에 왔을 때쯤 선배에게 톡이 왔다.
중학교때 애들과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오랜만에 나 보니까 옛날 생각난다고.

- 지랄, 연락 한 번 없었던 주제에.

이해는 된다. 당시에 내가 배신감을 느꼈던 건 맞지만, 아웃팅이라는 게 얼마나 정신적인 타격이 큰지 클럽에서도 많이 들어왔기에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으니까.
모두가 날 부정하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는데 누가 제정신일 수 있을까.

' 극복은 다 됐고? 멀쩡해 보이긴 하더만. '
' 나름 잘 이겨낸 거 같아. 고맙다. 적어도 넌 날 이상하게 보는 거 같진 않네. '
' 고마울 거 없어. 나도 남자 좋아하니까. '

놀랐는지 1이 없어졌는데도 바로 답이 오지 않았다.
괜히 더 주해성이 생각나, ‘보고싶다 주해성~ 응답하라 주해성~’ 톡을 보내놓고 폰을 던져놨는데 금방 카톡음이 들려온다. 주해성인가 싶어 얼른 확인해 봤지만 선배다.

' 어.. 놀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괜한 조바심일수도 있지만 같은 성향이어도 다른 사람한테는 쉽게 말하지마.
내가 그런일을 겪어선지 좀 걱정 되서. '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다시 폰을 던져뒀다. 풋사랑이 뭐라고 내가 지금 옛 감정에 젖어들고 있는건지.. 티비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선배에게 전화가 온다.

[ 친구들이랑 파하고 집에 가려는데 옛날에 너 좋아하던 만두집 보이길래 생각나서. ]
- 집 근처라 자주 사 먹었더니 이제 질렸어.
[ 집이 이 근처야? 너 전에 다른동네 살았잖아. ]
- 그땐 본가. 지금은 자취.
[ 그래? 괜찮으면 잠깐 나올래? ]
- ..귀찮아.
[ 내가 갈게. 집이 어디쯤인데? ]

지금은 당연히 선배에게 조금도 마음이 없고, 관심도 딱히 없는데 왜 쉽게 거절하지
못 했는지 모르겠다. 자꾸만 과거에 사로잡히는 기분이다.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잠시 만나기로 하고 나갔는데,

- 자주 먹어서 질렸다니까.
- 오랜만에 내가 먹고 싶어서.

만두까지 사 온 선배는 벤치에 앉아 만두를 우물거리며 넌 어떻게 지냈냐며 평범한 안부를 묻는다.
- 잘 지냈고, 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지낼 계획이고. 선배는 어느 대학 갔는데?

딱히 재밌지도 않은 대화를 하며 우린 그냥저냥 얘기를 이어갔다. 중학교때 얘기도 하고, 현재 얘기도 하면서.

- 나 선배 좋아했었는데.
- 뭐?
- 놀라긴. 아~ 진짜 순수했었지, 그때의 양석호. 근데 딱 순수했던 때여서 좋아했던 거 같다. 풋사랑 같은거.
- 놀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 하네..
-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그때는 선배가 내 첫사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보니까 아니더라고.
- 왜, 제대로 된 첫사랑이 나타났었나봐?
- 현재진행중. 잘 생기고, 몸도 좋고, 섹스도 잘 하고, 가끔 귀엽기도 하고.
- 콩깍지가 어마어마한데?ㅋㅋㅋ
- 차라리 콩깍지였으면 좋겠다. 그럼 벗겨지기라도 할텐데 진짜 그런 놈이라고.
- 되게 좋아하나보다. 너 지금 엄청 실실 웃고 있는 거 알아?
- 그새끼가 그렇다니까? 생각만해도 사람 실실 쪼개게 만드는 놈이라고 걔가. 다른 거 다 떠나서 찐으로 걔 아니면 안 될 거 같은 절실함? 그런 걸 처음 느껴본 거 같다. 그 놈은 이런 내 마음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몰라.

화제가 연애로 바뀌고 나선 오히려 좀 더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는 거 같다.
선배는 선배대로, 난 나대로, 서로의 애인 얘기를 하며 자랑도 하고 욕도 좀 하면서 말이다. 맘 같아선 '아까 카페에서 맞은편에 앉아있던 놈이 내 애인이야.' 자랑하고 싶었지만 주해성은 게이도 아니고 평범한 집안 아들도 아니니까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갑자기 마주하게 된 풋사랑을
우연히 본 터라 싱숭생숭 했었는데, 그 풋사랑에게 주해성 얘기를 하며 떠들다보니 '나의 첫.'이었기에 잠시나마 사로잡혀있었던 과거에서 오히려 완전히 해방 된 기분이다. 아, 또 보고싶네 주해성.

- 애인이랑 같이 산다고? 와, 존나 부럽다. 나도 같이 살고 싶은데 대학가면 가능성이 좀 열리려나.
- 다음에 넷이 같이 한 번 볼래?
- 그건 좀 힘들 거 같은데.. 나랑 사귀고는 있지만 내 애인은 노멀이라. 얼굴 팔리고 다녀서 좋을 게 없는 놈이기도 하고.
- 노멀이라고?!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던데 난 한 백번은 찍은 거 같다. 존나 빡센 놈이야.
- 대단하다 너도. 무섭지도 않았어? 소문나면 어쩌려고.
- 떠벌리고 다닐 성격은 아니어서.
- 어떤 사람인지 되게 궁금한데 아쉽네.
- 시간 맞을 때 형 애인이나 소개시켜줘. 다른 커플들은 얼마나 달달하게 사귀나 구경 좀 하게.

팔불출처럼 서로의 애인얘기나 떠들어대다 조만간 셋이 한 번
보자는 인사로 헤어졌다. 집으로 올라와 깜박하고 놔두고 간 폰을 확인했는데,

- 아 씨발, 전화했었네. 들고 나갈걸.

어쩐일로 주해성이 친히 전화를 한 건지, 10분전쯤 와 있던 부재중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 웬일이냐, 먼저 전화를 다 하시고?
[ 보고싶다며. ]
- 응?
[ 뭐가 응? 이야. 붕어냐 아님 닭대가리인거냐. ]

아, 맞다. 아까 보고싶으니까 응답하라고 톡을 보냈던 게 생각나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 그래서 목소리라도 들려주려고 전화 한 거냐?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제 이쁜짓도 알아서 잘하네?
[ 뭐하고 있었냐? ]
- 어? 뭐, 그냥. 씻고 있었지.
잠깐 집앞에서 선배 만나고 왔다고 하면 될 걸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첨부터 얘기했어야 했는데 타이밍 놓치고나니 바람핀 것도 아닌데 괜히 찜찜하고 찔릴 것도 없는데 왜 거짓말을 한 건지 스스로가 어이없어서 사실대로 말하려다가 그게 더 이상해 보일까봐 결국 입을 다물었다.
[ 일찍 자라. 내일 보자. ]
- 야. 있잖아.. 넌 나 말고 좋아했던 사람 진짜 한 명도 없었냐..?
[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
- 그냥. 궁금하잖아.
[ 없어. ]

찜찜한 와중에도 베시시 웃음이 난다.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해주는 주해성이 난 조온나 좋으니까.
[ 있었다 해도 말 안해 줄 거고. ]

개새끼가. 또 뒷통수 때리는 소리하네.

- 넌 잘 나가다가 꼭~ 사람 빡치게 하더라? 왜 말 안 해주는데?
[ 말 하면 또 죽일거네 어쨌네 지랄 할 거잖아. ]
- 응. 죽일거야. 아 그래서 있단거야, 없단거야 시발. 진짜 있었냐?!
[ 없었어, 씹새야. 니가 있었겠지. ]
- 내가?
[ 티를 낼 거면 아예 내던가, 숨길거면 제대로 숨기던가. 어설프게 숨기면서 티내고 지랄. ]
- 뭐가..
[ 아까 카페에서 본 놈. 좋아했었던 거 티 났다고. ]

아니.. 선배 본인도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주해성이 눈치 챈 건데..?

-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해?
[ 존나 아련한 표정이었으면서 걔랑 뭐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있는대로 당황타고 변명하고. ]
- 그건 너무 오랜만에 본 거라,
[ 하나만 해라? 솔직하던가, 솔직하기 싫으면 완벽하게 숨기던가. ]
- 너 지금 열 받은 거?
[ 어. ]
- 헐..?
[ 내가 지금 빡쳐있단 게 더 좆같아서 또 빡치니까 잠이나 쳐자라. ]
- 야야, 그 사람은 진짜 그냥 학교 선배였,
[ 됐으니까 자라고. ]

끊어진 전화에 멍하니 폰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 이럴땐 어떻게 해야되지..?

난 분명 주해성이 질투하는 게 좋아서 가끔 일부러 전 애인 얘기를 꺼내면
신경질적으로 받아치는 모습을 즐기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뭔가 다르다. 마치 내가 크게 뭘 잘못해서 주해성이 화가 난 것처럼, 좀.. 안절부절 못하겠고 심장이 쿡쿡 찔리는 것만 같다.

-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반대로 생각을 좀 해 보자. 만약 주해성에게 미국에서 좋아했던 풋사랑이 있었고,
금시초문이던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 개빡치네, 시발?

풋사랑이 있었다는 가정 하나만으로도 아파트 다 부술 수 있을거 같다. 주해성도 아까 나와 선배를 보며 이런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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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
클리셰25 #해성석호

- 열 받은 건 좀 풀렸냐?

학교에서 보자마자 단정히 앉아있는 주해성을 쿡 찌르며 조용히 물었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 난 너한테 거짓말은 한 적 없다.
- 어? 어, 알지.. 근데 갑자기 웬..?
-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둘 다.
뭔가 주해성답지 않은 말을 해대니까 나도 답지않게 주춤하게 된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답답하고 어딘가 막힌것 같은.. 어제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린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만큼 편하기만 했었는데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벽이 세워진 느낌.
- 과외 끝나고 집 근처로 갈테니까 얘기 좀 하자 주해성.

우리 사이에 세워진 벽이 어색해 이걸 어떻게 부숴야하나 고민이 된다. 차라리 싸워서 냉전상태였다면 2차전이라도 벌일텐데 그런것도 아니고.. 이대론 안되겠어서 원흉을 제거해야 할 것 같아 과외를 취소한채 선배와 잠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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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6
클리셰23 #해성석호

- 우주 사조야 하는데..

평소에도 느릿한데 훨씬 더 느릿느릿하고 어눌한 말투로 우주타령을 하는 여섯 살 주해성은 귀엽고도 어렵다.

- 갑자기 뭔 우주야.
- 우주 갖고싶다고 했잖아.. 커서 돈 마니 벌면 꼭 사주께. 아라찌?
- 알긴 뭘 알아, 내가 언제 우주 갖고 싶..다고 했었구나.

‘ 우주 사줘. ’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
‘ 나도 알아 병신아. ’

며칠 전 지나가듯 했던 대화가 생각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대화는 기억하면서 여섯살이라고?

- 내가 우주 사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 몰라. 근데 우주 갖고싶댔어..
허허. 지금의 주해성에겐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기억에 없고 그저 내가 우주를 가지고 싶어하는 놈일 뿐인 거 같다.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지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해줬더니, 마치 산타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만큼의 충격과 공포인 양 눈빛이 흔들리는데, 존나 귀여워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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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2
정치가X청부살인업자 #문기화진

☆숙제 털기. 엔딩에 대해선 다들 아무 말 않기로해😉
타고나길 머리가 좋았다. 학창시절 반장일을 도맡아했고 비상한 머리덕에 직업군의 선택지도 다양하다 못해 널려있었지만 좋은 직업을 선택하진 않았다. 착한척이라면 학생때 지겹도록 해왔으니 탁월한 재능으로 오히려 나쁜 직업을 선택했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일. 나는, 소시오패스다.
- 법조인이라..

어둠의 루트로 들어오는 청부의뢰를 받은지도 5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점점 재미가 떨어지던 참이다. 애초 살인에 흥미를 느꼈던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의뢰인들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도덕심과 죄책감따위를 느낄수 없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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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9
클리셰22 #해성석호

게장과 피자의 조화롭지 않은 식사를 끝내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커피를 사 들고 벌써 어둑해진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아를 쪽쪽 빨아마시다가,

- 야.
- 왜.
- 그냥. 사랑한다고.

한번씩 지금처럼 밑도 끝도 없이 표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주해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 빈정 상할만큼 심심하게 대꾸한다. 하긴, 생각해보면 난 애초에 주해성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 ..어, 말고는 할 만한 대답이 없냐?
- 글쎄.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담백한 주해성 반응에 마음이 꼬깃꼬깃 구겨진다.
- 좋은데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다는 게 말이 되냐?!
- 그럼 좋다고 무조건 다 사랑하냐?
- 난 한다 왜.

귀찮다는 표정으로 날 보던 주해성은 며칠전 박살 낸 폰을 대체한 신상폰으로 게임에 접속하며 구겨진 내 얼굴에, 왜 또. 한다.

- 넌 아직도 내가 귀찮냐?
- 가끔. 근데 귀엽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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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3
피에로의 눈물 #서준지우

아웃사이더 피에로의 눈물1, 2 가사에 살만 조금 붙인 썰
한적한 작은 마을에 몇해 전 아내를 잃은 한 사내가 살고 있었어. 항상 붉은색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양새의 입술을 얼굴에 그려놓고선 웃음을 팔며 살았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하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고여있었어.
흐르지도 않고 늘 맺혀있는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에 반사돼 사내의 큰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효과를 더해줬어. 사람들은 그의 노랫가락과 춤사위와 곡예를 보며 즐거워했어. 아무도 맺힌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 그도 옛날엔 눈물자욱 하나 없는 맑은 눈을 가진 자였어. 사랑하는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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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2
클리셰21 #해성석호

- 야 씨발 주해성!

쾅! 소리가 요란할만큼 교실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더니 당연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모두에는 주해성도 포함이고.

- 따라나와.

학교에서의 단정한 주해성은 그 나름대로 날 꼴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비서형 말로는 아직 연애초창기라
내가 지금 발정이 나서 그런 거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왜냐면 주해성은 누가 봐도 존나 잘생기고 멋있고 귀엽고 꼴리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옥상으로 앞장서는 동안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저 죽일놈의 양석호가 또 착한 우리 모범생 괴롭히는 구나.
솔직히 난 관심도 없고 1도 상관없는데 주해성은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종종 간섭을 한다. 자기도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거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뭐, 어쨌거나.

- 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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