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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 39 tweets 6 min read
클리셰25 #해성석호

- 열 받은 건 좀 풀렸냐?

학교에서 보자마자 단정히 앉아있는 주해성을 쿡 찌르며 조용히 물었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 난 너한테 거짓말은 한 적 없다.
- 어? 어, 알지.. 근데 갑자기 웬..?
-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둘 다.
뭔가 주해성답지 않은 말을 해대니까 나도 답지않게 주춤하게 된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답답하고 어딘가 막힌것 같은.. 어제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린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만큼 편하기만 했었는데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벽이 세워진 느낌.
- 과외 끝나고 집 근처로 갈테니까 얘기 좀 하자 주해성.

우리 사이에 세워진 벽이 어색해 이걸 어떻게 부숴야하나 고민이 된다. 차라리 싸워서 냉전상태였다면 2차전이라도 벌일텐데 그런것도 아니고.. 이대론 안되겠어서 원흉을 제거해야 할 것 같아 과외를 취소한채 선배와 잠시 만나기로 했다.
단순한 내가 하루종일 생각해본 결과. 주해성과 나, 우리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가 존재한다면..

-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

누가 됐든 내겐 필요없는 인물이다. 그 상대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풋사랑일지라도.
- 잠시 착각했다 내가. 선배 만난 거 반갑기도 하고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혼자 추억팔이 했었거든. 그게 내 애인 신경 거스르는 일인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내 번호 지워. 난 오는 길에 선배 번호 지웠으니까.

지금이야 선배에게 조금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지만 어쨌거나 주해성 입장에서
봤을 때 어제의 내가 꼴사나웠던건 확실하다. 녀석의 말처럼 내가 진짜 아련한 표정따위를 지었다면 더더욱 말 할 것도 없이 말이다. 이건 질투라는 단어와는 또 다른 류의 감정이다. 1차원적인 표현밖에 모르는 나이기에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그저 좆같음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주해성이 나 때문에 이런류의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는 건, 내가 더 싫다. 그래서 선배를 확실하게 끊어내기로 했는데,

‘쾅!’

- 아 깜짝이야, 뭐야..

...아, 씨발 이건 아니잖아.. 창가자리에 앉아있던 우릴 보며 밖에서 윈도우를 주먹으로 친, 주해성이 멀어지고 있었다.
- 이게 아닌, 잠깐, 나 먼저 간다.

선배에게 다급하게 간다는 말만 남기고 카페를 뛰쳐나와 뒷모습을 보며 망설임없이 뛰어갔다. 어깨를 잡은 내 손을 가볍게 쳐내는 주해성 표정이, 꾸역꾸역 화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아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 그럴리가. 어떻게봐도 니가 내 뒷통수 때린 거 같은데?
- 그게 아니라, 하.. 오해할만 한데, 일단 미안해, 근데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진짜 아니라고.
- 쟤는 아냐? 니가 만나는 놈이 또 있다는 거.

나한테 마음 없었을때도 이렇게 내 손을 쳐내고 거리를 둔 적이
없었는데, 처음보는 싸늘한 주해성이 무섭다. 그저 난 지금껏 살아온대로 너무 생각없이 굴다가 정작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오해를 심어버리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를 몰라하는 내가 상병신같다.

- 해성아, 주해성, 나 다 얘기할 수 있어. 내가 좆같이 행동한 거 맞긴한데,
다시 날 쳐낼까 무서워 금방이라도 날 두고 갈 것만 같아 옷자락 한 번 못 잡고 머저리처럼 어정쩡하게 손만 쥐었다 폈다하는 내 멱살을 잡은 주해성이 조용조용 입을 열었다.

- 과외한다며 씨발아. 과외선생이 바꼈나보다?

틀어쥔 멱살에 주해성 손이 부들거리며 떨리는데 정작 내 목은 조금도
조이진 않는, 함부로 하는 거 같지만 절대 날 다치게 하지는 않는, 그만큼 날 얼마나 아끼는 사람인지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별난 우리의 사랑방식이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와닿는다. 그래서 난 더 미안해졌다.
- 필요하다면 선배 끌고와서 설명할 수도 있,
- 내가, 그 새끼 얼굴을 또 봐야하냐?
- ...아니.

멱살을 풀고 날 밀쳐낸 주해성이 들을것도 없다는 듯 등을 돌리는데 그 뒷모습을 보는게 너무 싫어서, 나 좀 봐줬으면 좋겠어서, 주해성이 질색할 게 분명한데도 냅다 소리를 질렀다.
- 내 말 좀 들어보면 안되냐?! 나한테 그랬잖아! 니 말부터 들어보라고. 근데 왜 넌 안 듣는데. 나도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렇게 가지말고 설명이라도 해주던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하는데 주해성 시선만 내게 오질 않는다. 그저 몇걸음 떨어져 제자리에
우뚝 멈춰선 뒷모습이 괜히 서러워서 이럴줄 알았으면 절대 선배와 연락을 하지도, 만나지도 않았을텐데 후회된다.

- 막말로 내가 손을 잡길 했냐 섹스를 했냐!!

그제야 돌아보는 주해성의 찌푸려진 이맛살. "하.. 미친놈."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는 입모양은 덤.
어둠이 내리고있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모두가 우리를 힐끔거리며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내 언행에 한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던 주해성은,

- 쪽팔리니까 그만해라.

하는데 이미 눈깔에 뵈는 것 없는 내가 그럴 수 있을리가.
- 뭘 그만해, 쪽 좀 팔면 어때서 씨발. 난 쪽팔리는 것보다 너랑 틀어지는 게 더 싫다고!
- 내가 쪽팔린다고, 병신아.

내게 걸어오며 인상을 뭣같이 구기고 있긴해도 알 수 있다. 이제는 다시 등을 보이지 않을 평소의 주해성으로 돌아왔다는 걸. 그래서 안도했다.
정말 쪽팔렸는지 사람들 눈을 벗어나기 위해 한적한 골목 깊숙이 들어가서야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빼어무는 주해성의 못마땅한 시선이 느껴진다.

- 니 짐작대로 내가 한때 그 선배한테 관심있었던 건 맞는데,
- TMI다?
- 니가 오해하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이잖아! 아무것도 모를때의 감정이었다고. 어릴때 짝꿍 좋아하는 그런 애새끼같은 감정을 지금 내가 너 좋아하는 감정이랑 동일시하면 내가 존나 억울하잖아.
- 뭘 잘 했다고 조잘대, 씹새야.
- 내가 뭘 또 그렇게 잘못했다고! 오늘 선배 만난건 다른 게 아니라!!
이마를 찰싹 때리는 주해성 손맛에 아! 하고 이마를 문질렀다. 손에도 근육있냐고, 타격감 미쳤냐 주먹으로 맞은줄.. 넌 진짜 공수돈가 뭔가 작작해라 시발...

- 확 시발 진짜 팰수도 없고. 집앞에서 딴 새끼랑 노닥거려 놓고 나한테는 집에서 씻고 있었다고 말 한 놈이, 하..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 ..야 너 그건 어떻게 알았어, 존나 무섭게. 나한테 감시라도 붙였냐..?
- 그건 너나 할 짓이고 미친새끼야.
- 그렇긴하지. 가 아니라.. 그냥 우리동네라길래 잠깐 나간거였어. 만나서도 거의 니 얘기밖에 안 했고. 잘 생기고 몸도 좋고 귀엽고 섹스도 잘 한다고.
떨떠름한 얼굴에 '어우 이 또라이.' 써있는 주해성 기분이 아까보단 많이 풀린 거 같아 숨통이 좀 트여 쪼그려 앉아 나도 담배를 하나 빼물었다.

- 니가 기분 상한 거 같길래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는 얘기하려고 만난거였는데 하필 딱 걸리냐.
빡뻑 피워대는 담배연기 사이로 주해성 손이 보이.. 아 시바, 아프다고! 아까 때렸던 이마를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나게 때린다.

- 그걸 왜 만나서 얘기해 병신아. 그리고 내가 제일 열받는건 나한테 거짓말해서란걸 생각을 못 하냐? 오늘 얘기하겠지 싶어서 기다려줬더니 끝까지 안 해?
- 그건 나도 미안하긴 한데..! 니가 너무 빡쳐보이니까 내가 더 말을 못한거잖아!
- 내 탓이다?
- 뭐.. 그건 아니지만...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담뱃불을 바닥에 지지며, "아 진짜 임자 만났네 나도. 병신같이 쫄았다 풀렸다 염병을 다 하고.." 중얼거리다 다시 떠오른 의문.
- 야, 근데 너 내가 어제 놀이터에서 선배 만난 건 어떻게 알았냐고! 진짜 감시라도 붙였냐?!
- 너같은 짓 안 한다고 했을텐데.
- 그럼 어떻게 안 건데?!
- 목소리 낮춰라 양석호.
- 어떻게 알았냐고오..
- 뭘 어떻게 알아 띨빡아, 봤으니까 알지. 좀만 더 같이 있어달라며. 사람 신경 쓰이게 보고 싶다고 카톡까지 해대놓고 정작 보러 가니까 딴 놈이랑 히히덕거리고 있던 놈이 어디서 감시니 뭐니 스토커 취급이야.
- 헐. 어제 나 보러 왔었냐?!
아, 진짜! 흐엉, 왜 이렇게 사랑스럽지이.. 쪼그려 앉았던 무릎을 쭈욱펴고 주해성을 끌어안으며, "신경 쓰였냐?" 목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 짜증나니까 떨어져 씹새야.
- 싫은데. 존나 사랑해 주해성. 차라리 어제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지랄이라도 하지 왜 병신처럼 그냥 갔어.
- 니네 선배 얼굴 씹창낼 거 같아서.
- ...잘 갔다. 응.. 잘 했네...

존나 비이성적인데 이성적인 놈이잖아..? 안고있던 팔을 풀고선 코 앞에 있는 얼굴에 뽀쪽뽀쪽 하며 뜯어보고 있자니, 골목길 조명빨때문인가..?
- 내가 너 잘 생긴건 알고 있었는데..

학교에서야 최대한 단정하고 사근사근한 인상이지만 평소엔 꽤 차갑고 냉하게 생겨서 좋았었는데 가만보면 또 얼굴선도 얇고 곱상한게..
- 원래 이렇게 예쁘게 생겼었나..?
- 뭐래 미친새끼야.

콩깍지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콩깍지 맞나? 아님 그냥 주해성 생김새가 날 이렇게 얼빠로 만들 수 밖에 없이 생긴건가...
풋사랑 때문에 아주 잠깐 티격대긴 했어도 그덕에 질투하는 모습도 봤으니 우린 찐사랑이라 생각하며 며칠이 지나고 폰 날짜를 보아하니 주해성과 사귄지도 벌써 3개월이다.

- 시간 존나 빠르다, 그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우리에겐 나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거 같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잊을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추억. 다른 커플들처럼 깨 볶으며 꽁냥대진 않았어도 나름 우리 방식으로 알콩달콩 잘 지내온 거 같다. 자잘한 우리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웃음도 난다. 근데 나와 달리 주해성은 벌써 3개월이 됐다는 내 말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손가락을 토독토독 테이블에 부딪히기만 할 뿐, 조용하다.

- 무슨 생각해?

별 뜻 없이 물었는데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날 보며 입을 열었다.

-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에 흥분하지 말고 일단은 조용히 들어줬으면 좋겠다.
- 난 너 무게잡는 거 존나 불편하고 싫거든? 뭔진 몰라도 벌써부터 듣기 싫은데?

방금전까진 아무런 불안함도 없었는데 니가 그런 말을 하면 긴장되잖아. 뭔데 분위기 잡아 이 새끼야.. 평소라면 기분 좋게 뛰었을 심장이, 불안함에 요동친다.
- 니 말대로 내일이면 사귀기로 한 마지막 날인데, 우리 그냥 하루 일찍 헤어질까?

...뭐래는 거야. 잘못 들은 얘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혹시나 내가 제대로 들은거라면 평소처럼 내 반응이 재밌어 장난친거라 생각하고 싶다. 근데 주해성이 너무 진지하다 못해 진중해보이기까지 해서 사고가
멈춰버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앞으로는 그냥 연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가끔은 형 동생처럼, 우리가 조금 더 나이를 먹고나선 사업 파트너로, 그렇게 지내고 싶은데 난.

뭔 개잡소리야 이게..? 지난 3개월동안 우린 헤어져야할
만큼의 문제가 있었다거나 마음이 식었다거나 한 적이 없었다. 수없이 싸웠지만 언제나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풀어왔고, 그러한 과정에서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더 견고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너무 연인이 되어버린 우리여서 난 이제 친구나 동생으로 곁에 있고 싶은 생각은 단 1도 없고,
당연히 주해성도 같은 마음일거라 생각했는데..

- 친구니 동생이니, 그게 뭔 좆같은 소리야..?
-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 그 타이틀이 나한테는 꼭 필요한 거라면?
- ........
- 왜 대답 안 해.
- .......
- 왜 대답 못 하는데, 개새끼야.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런 이별 얘기도, 선뜻 대답하지 못 하는 주해성도 당혹스럽기만 하다. 속이 타들어가서인지.. 갑자기 등떠밀려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지는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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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31
클리셰24 #해성석호

- 아는척하긴 좀 그런가..? 난 그냥 반가워서.
- 난 선배랑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연락 한 번 안 하더라?
- ..알잖아, 자퇴한 이유.
- 아는데, 뭐.
- 아무렇지도 않았어?
- 어. 조금도.

기분이 이상하다. 몇 년 전 기억들이 머릿속에 사정없이 뒤엉켜서 속이 울렁거린다.
- 그때는 모든게 무섭더라. 누구한테도 연락을 못 할 만큼.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의 아는 형이었을 뿐이던 3학년 선배와 안면을 트게 됐다. 제멋대로 살아온건 지금이나 그때나 별 다를 게 없었지만, 그래도 선배 앞에서는 꽤 얌전한 편이었던 거 같다. 내가 먼저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선배 주위를 괜히 맴돌기도 했었다. 그렇게 친해질수록 깨달았다.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혼란스럽다기 보단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주해성에게 집착하고 찝쩍거리기 바빴던 것과 달리 그때는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도 괜찮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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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6
클리셰23 #해성석호

- 우주 사조야 하는데..

평소에도 느릿한데 훨씬 더 느릿느릿하고 어눌한 말투로 우주타령을 하는 여섯 살 주해성은 귀엽고도 어렵다.

- 갑자기 뭔 우주야.
- 우주 갖고싶다고 했잖아.. 커서 돈 마니 벌면 꼭 사주께. 아라찌?
- 알긴 뭘 알아, 내가 언제 우주 갖고 싶..다고 했었구나.

‘ 우주 사줘. ’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
‘ 나도 알아 병신아. ’

며칠 전 지나가듯 했던 대화가 생각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대화는 기억하면서 여섯살이라고?

- 내가 우주 사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 몰라. 근데 우주 갖고싶댔어..
허허. 지금의 주해성에겐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기억에 없고 그저 내가 우주를 가지고 싶어하는 놈일 뿐인 거 같다.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지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해줬더니, 마치 산타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만큼의 충격과 공포인 양 눈빛이 흔들리는데, 존나 귀여워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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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2
정치가X청부살인업자 #문기화진

☆숙제 털기. 엔딩에 대해선 다들 아무 말 않기로해😉
타고나길 머리가 좋았다. 학창시절 반장일을 도맡아했고 비상한 머리덕에 직업군의 선택지도 다양하다 못해 널려있었지만 좋은 직업을 선택하진 않았다. 착한척이라면 학생때 지겹도록 해왔으니 탁월한 재능으로 오히려 나쁜 직업을 선택했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일. 나는, 소시오패스다.
- 법조인이라..

어둠의 루트로 들어오는 청부의뢰를 받은지도 5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점점 재미가 떨어지던 참이다. 애초 살인에 흥미를 느꼈던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의뢰인들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도덕심과 죄책감따위를 느낄수 없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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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9
클리셰22 #해성석호

게장과 피자의 조화롭지 않은 식사를 끝내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커피를 사 들고 벌써 어둑해진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아를 쪽쪽 빨아마시다가,

- 야.
- 왜.
- 그냥. 사랑한다고.

한번씩 지금처럼 밑도 끝도 없이 표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주해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 빈정 상할만큼 심심하게 대꾸한다. 하긴, 생각해보면 난 애초에 주해성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 ..어, 말고는 할 만한 대답이 없냐?
- 글쎄.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담백한 주해성 반응에 마음이 꼬깃꼬깃 구겨진다.
- 좋은데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다는 게 말이 되냐?!
- 그럼 좋다고 무조건 다 사랑하냐?
- 난 한다 왜.

귀찮다는 표정으로 날 보던 주해성은 며칠전 박살 낸 폰을 대체한 신상폰으로 게임에 접속하며 구겨진 내 얼굴에, 왜 또. 한다.

- 넌 아직도 내가 귀찮냐?
- 가끔. 근데 귀엽다니까?
Read 49 tweets
Jan 13
피에로의 눈물 #서준지우

아웃사이더 피에로의 눈물1, 2 가사에 살만 조금 붙인 썰
한적한 작은 마을에 몇해 전 아내를 잃은 한 사내가 살고 있었어. 항상 붉은색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양새의 입술을 얼굴에 그려놓고선 웃음을 팔며 살았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하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고여있었어.
흐르지도 않고 늘 맺혀있는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에 반사돼 사내의 큰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효과를 더해줬어. 사람들은 그의 노랫가락과 춤사위와 곡예를 보며 즐거워했어. 아무도 맺힌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 그도 옛날엔 눈물자욱 하나 없는 맑은 눈을 가진 자였어. 사랑하는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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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2
클리셰21 #해성석호

- 야 씨발 주해성!

쾅! 소리가 요란할만큼 교실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더니 당연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모두에는 주해성도 포함이고.

- 따라나와.

학교에서의 단정한 주해성은 그 나름대로 날 꼴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비서형 말로는 아직 연애초창기라
내가 지금 발정이 나서 그런 거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왜냐면 주해성은 누가 봐도 존나 잘생기고 멋있고 귀엽고 꼴리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옥상으로 앞장서는 동안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저 죽일놈의 양석호가 또 착한 우리 모범생 괴롭히는 구나.
솔직히 난 관심도 없고 1도 상관없는데 주해성은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종종 간섭을 한다. 자기도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거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뭐, 어쨌거나.

- 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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