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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6 21 tweets 4 min read
#서준지우

이 시간에 울리는 전화의 발신자를 보아하니.. 또 술 마셨구만? 아니나 다를까. "나 좀 데리러 와." 분명 내가 술 취해서 전화하지 말라고, 앞으로는 데리러가지 않겠다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지. 그래, 니가 무슨 죄가 있겠냐. 짝사랑하는 내가 죄지. 다~ 내 죄다 내 죄야.
- 어딘데.
[ 여기 우리 고딩때 자주가던 돈까스집. ]
- 하.. 가까우니까 데리러가긴 하는데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다.
[ 히힛. 빨리와 강서준. ]

군대도 같이 가 준 나한테 (물론 내가 맞춰서 간 거지만) 이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복학하고나서 무슨 약속이 그렇게 많은지 나랑은 잘 놀아주지도 않는게
딴사람들이랑은 잘도 마시고 놀다가 꼭 취하면 데리러 오라고 한다. 이젠 내가 한지우 친군지 한지우 전용 운전기산지 알 수가 없다.

- 얼마나 퍼마신거냐..

이 추운 날 입 돌아가고 싶은건지 불 꺼진 식당앞에 꼬깃꼬깃 몸을 접어 앉아 졸고있는 꼴을보니 내일 또 숙취로 헤롱거릴게 눈에 선하다.
- 일어나.
- 와써어?

술 취해도 한지우답게 말을 또박또박 잘하는 편인데 말꼬리 늘어지는거 보니 필름도 끊길게 분명하고.

- 무거우니까 힘 줘서 걸어 쫌.
- 힘이가 안 들어간다아..

키도 나보다 큰게 흐느적거리는 몸을 온전히 내게 맡긴채 매달려있어 코앞에 있는 차까지 데려가는것도 쉽지않다.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다.

- 벨트매고. 야, 벨트 매라고.

눈을 뜬건지 감은건지 모를만큼 풀려있는 놈한테 내가 뭘 바라냐.. 안전벨트를 채워주며, 내가 니 기사냐? 핀잔을 줬더니 취했어도 대답은 또 잘 해요.

- 차 있는 친구가 너밖에 없단 마리야..
집에 태워다주면 안 들어간다고 버틸거 뻔히 알기에 말하지 않아도 우리집으로 가고있는 내가 호구지 뭐. 차로 십분밖에 안 걸리는 내 자취방에는 이미 한지우 옷이며 칫솔이며 속옷까지 없는 게 없다. 학교 근처에 있는 제 자취방은 작은 원룸이라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정돈 잘 하고 사는 한지우여도
좁은 방을 넓게 쓸 수 있는 방법따윈 없었다. 반면 정리정돈과 거리가 멀어 너저분하게 대충 살고있어서 좁아보일 뿐이지 실상 우리집은 혼자 살기엔 넉넉한 편이다. 그래서 한지우는 우리집에 올 때마다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 이렇게 좋은데 살면 감사합니다 하고 좀 치우고 살아.
지가 같이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잔소리는..

- 잠이나 자.
- 우리 딱 한잔만 더 하까?
- 아니. 너 이미 만취상태거든?

입으로는 반항해보지만 내 몸은 이미 냉장고를 뒤적이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안줏거리를 스캔중이다. 아오 강서준 호구새끼..
황도 캔을 따서 가져가려다 잔소리 듣기 싫어 접시에 곱게 옮겨담고 소주와 맥주를 챙겨 거실테이블에 올려놓으니, 언제 게슴츠레 했냐는듯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한지우가 또 얼마나 술에 잡아먹힐지 심히 염려스럽다.

- 꼴 보니 내일 숙취로 하루를 통째로 날리시겠네.
- 나 아직 멀쩡해.
어디가 멀쩡한데. 정신머리는 이미 잠든 거 같은데.

- 분명히 말하는데 이제 다시는 뒤치닥거리 안 해준다. 취했으면 곱게 택시타고 알아서 집에 가. 말해봤자 내일이면 기억도 못할거 같지만.
- 이런 날 혼자 집에 있기 싫으니까 너 부른건데.
- 이런 날이 어떤 날인데.
- 속상한 날?
- 왜? 여친이랑 싸웠냐?
- 응.

갑자기 내가 술이 땡기네...? 허구헌날 싸우고 위장에 알콜을 퍼부을거면 왜 사귀냐고, 보는 사람 짜증나게.

- 왜 싸웠는데.
- 몰라, 그냥 매번 사소한걸로 싸우는거지 뭐.

한지우는 내가 황금비율로 말아놓은 소맥을 마시더니 황도를 우물우물 뇸뇸거리며 물었다.
- 넌 오늘 또 고백 받았다며? 필현이가 예쁘다고 난리치던 애라던데.
- 우리학교는 왜 이렇게 소문이 빠르냐.

대수롭지않게 말하며 술을 삼키는데 오늘따라 달지도 쓰지도 않아 밍밍한게 딱 좋지도 싫지도 않은 지금 내 기분같다.

- 넌 고백도 많이 받으면서 왜 연애를 안 해?
- 여친이랑 심심하면 싸우는 너 보니까 하기 싫어서.
- 와.. 내 탓 하기 있냐?

니 탓이 맞긴하니까 부정하진 않았다. 그저 밍밍하게 느껴지는 술만 꼴깍꼴깍 목으로 넘기고 잔을 내려놓는데 한지우가 덥썩 내 손을잡고서 검지 끝을 살핀다.

- 다쳤어?
- 살짝 베인거.
- 어쩌다가?
- 택배박스 뜯다가.
- 넌 왜 이렇게 부주의하냐?!
- 누가보면 내가 너 다치게 한 줄 알겠다. 내 부주의로 내 손가락 다친건데 니가 왜 급발진이야.

사심없는 터치가 얼마나 사람 돌게 하는지도 모르고 옆에 앉아 내 손을 쪼물딱대는 해로운 놈. 평소엔 내 체온이 더 높은데 술만 마시면 늘 서늘하던 한지우 손이 나보다
더 뜨거워진다. 만질거면 사심이라도 가지고 만지던가, 쓸데없이 쪼물대고 난리야. 덩달아 열이 오른 손을 거둬와 맥주잔에 가만히 대고 식혔다.

- 여친이랑 화해나 빨리해. 괜히 술마시고 나 귀찮게 하지말고.
- 아~ 싸우는것도 지겹다. 그냥 헤어질까..
- 그러던가.
꽁냥대고 있는 꼴은 보기 싫을거 같아서 일부러 같이 만날 일은 피해왔지만 헤어진다고 해서 한지우가 나한테 올 것도 아닌데 둘이 헤어지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니가 남자를 좋아할 날은 오지 않을테고, 기적적으로 그런 날이 온다해도 절친인 날 좋아하게 될 일은 더더욱 없을텐데 난 왜
아직도 널 좋아하고 있는건지 스스로가 개탄스럽다.

- 나 사실 지금 취했거든?
- 뒷구르기 하면서 봐도 취한거 알아.
- 분명 필름끊겨서 내일 기억도 못 할 거야.
- 내가 더 잘 안다고. 그러니까 그만 마시고 자던가.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술만 취하면 니가 보고싶다?
아씨 황도 먹다가 기도막할 뻔. 사심없는 스킨십 뿐 아니라 사심없는 말도 얼마나 사람 미치게 하는지 모르는 놈. 그러다 벌 받아 한지우.

- 차 태워 줄 놈이 나밖에 없다며.
- 그건 핑계고.

술에 먹힌후의 한지우는 항상 날 힘들게 한다. 여친도 있는 놈이 자꾸 날 찾고, 사심없는 터치로
날 꼬시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도 못 하면서 헷갈리게 만든다.

- 가끔.. 네가 여자도 아닌데 손을 잡고 싶어져.

좋겠다. 넌 손만 잡고 싶어서.

- 취한김에 좀 더 심한 주정부려도 돼?
- 안돼.
- 진짜 안돼?
- ...돼.

늘 또박또박 말은 잘 하면서 풀린 눈을 한 채 흐느적거리는
몸을 내게 기대오는 취한 한지우는 오늘도 내 어깨에 머리를 잠시 묻었다 살짝 떼고선 따끈한 손을 내 목에 얹으며 입술을 맞댄다. 호구같은 난 거절하지 못하지만 내일이면 한지우는 분명 그럴것이다.

- 나 어제 실수한 거 없어?
있다고 하면, "무서우니까 안 들으래. 우리 사이에 주사정도는 눈 감아주라.. 넌 하나밖에 없는 내 절친이잖아." 하며 속 안 좋으니 해장하자고 찡얼대며 내 침대위에서 꼼지락대고 있겠지. 헷갈리는것도, 기대하는 것도, 나 혼자인 걸 안다. 우린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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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4
못생김라이팅 당하는 호성이 어때? #해성호성

어릴때부터 해성이한테 맨날 못생겼단 소리 듣고 살아서 스물이 될때까지 지가 진짜 못생긴 줄 아는 지호성이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땐 유치원때야. 다른 친구랑 잘 놀고있는데 해성이가 오더니 괜히 둘 사이 방해하면서 한 말.

- 못생긴게.
- 내가ㅇㅅㅇ?
- 응. 니가.

맨날 집에서 예쁘다 잘생겼다 귀엽다 부둥부둥 사랑받고 사는 유딩이 듣기엔 너무 충격적인거야.

- 물만두처럼 생겼어 지호성.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만두라니.. 내가 물만두라니...
충격에 휩쌓인 호성인 뿌앵 울음을 터트렸지만 해성인 "흥." 하고 가버려. 꺼이꺼이 우는 호성이 달래는 건 선생님이었지. 해성인 그냥 다른 친구랑 더 친해보이는 게 싫어서 심통부린 거였지만 호성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해성이가 제일 좋아하는게 물만두인것도 몰랐지.
Read 14 tweets
Feb 4
클리셰26 #해성석호

- 넌 나랑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냐..? 그냥 형, 동생이 되냐?! 난 죽어도 못해, 이제와서 내가 너랑 어떻게 그딴 걸 해! 사업 파트너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런 어정쩡한 관계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
- 일방적인것도 알고, 흥분하지 말고 들어달라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근데, 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 밖에 없잖아 우린.
- 왜 니 맘대로 끝을 정해 새끼야. 오지도 않은 끝을 니가 뭔데 정해!

언성이 높아지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줄곧 탁자만 보고 있던 주해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생각해왔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혼자 결정을 내린 후 내게 통보를한 녀석의 미동없는,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이 날 더 미치게 한다.

- 양석호. 하나만 묻자.
- 넌 지금 나한테 묻고싶은게 하나밖에 없냐? 백개 물어봐, 다 대답할테니까.
- 니가 지금 게이라고 해서 결혼도 안 할 거냐?
Read 44 tweets
Feb 1
클리셰25 #해성석호

- 열 받은 건 좀 풀렸냐?

학교에서 보자마자 단정히 앉아있는 주해성을 쿡 찌르며 조용히 물었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 난 너한테 거짓말은 한 적 없다.
- 어? 어, 알지.. 근데 갑자기 웬..?
-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둘 다.
뭔가 주해성답지 않은 말을 해대니까 나도 답지않게 주춤하게 된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답답하고 어딘가 막힌것 같은.. 어제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린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만큼 편하기만 했었는데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벽이 세워진 느낌.
- 과외 끝나고 집 근처로 갈테니까 얘기 좀 하자 주해성.

우리 사이에 세워진 벽이 어색해 이걸 어떻게 부숴야하나 고민이 된다. 차라리 싸워서 냉전상태였다면 2차전이라도 벌일텐데 그런것도 아니고.. 이대론 안되겠어서 원흉을 제거해야 할 것 같아 과외를 취소한채 선배와 잠시 만나기로 했다.
Read 39 tweets
Jan 31
클리셰24 #해성석호

- 아는척하긴 좀 그런가..? 난 그냥 반가워서.
- 난 선배랑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연락 한 번 안 하더라?
- ..알잖아, 자퇴한 이유.
- 아는데, 뭐.
- 아무렇지도 않았어?
- 어. 조금도.

기분이 이상하다. 몇 년 전 기억들이 머릿속에 사정없이 뒤엉켜서 속이 울렁거린다.
- 그때는 모든게 무섭더라. 누구한테도 연락을 못 할 만큼.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의 아는 형이었을 뿐이던 3학년 선배와 안면을 트게 됐다. 제멋대로 살아온건 지금이나 그때나 별 다를 게 없었지만, 그래도 선배 앞에서는 꽤 얌전한 편이었던 거 같다. 내가 먼저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선배 주위를 괜히 맴돌기도 했었다. 그렇게 친해질수록 깨달았다.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혼란스럽다기 보단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주해성에게 집착하고 찝쩍거리기 바빴던 것과 달리 그때는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도 괜찮다 생각했다.
Read 37 tweets
Jan 26
클리셰23 #해성석호

- 우주 사조야 하는데..

평소에도 느릿한데 훨씬 더 느릿느릿하고 어눌한 말투로 우주타령을 하는 여섯 살 주해성은 귀엽고도 어렵다.

- 갑자기 뭔 우주야.
- 우주 갖고싶다고 했잖아.. 커서 돈 마니 벌면 꼭 사주께. 아라찌?
- 알긴 뭘 알아, 내가 언제 우주 갖고 싶..다고 했었구나.

‘ 우주 사줘. ’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
‘ 나도 알아 병신아. ’

며칠 전 지나가듯 했던 대화가 생각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대화는 기억하면서 여섯살이라고?

- 내가 우주 사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 몰라. 근데 우주 갖고싶댔어..
허허. 지금의 주해성에겐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기억에 없고 그저 내가 우주를 가지고 싶어하는 놈일 뿐인 거 같다.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지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해줬더니, 마치 산타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만큼의 충격과 공포인 양 눈빛이 흔들리는데, 존나 귀여워 시발,
Read 53 tweets
Jan 22
정치가X청부살인업자 #문기화진

☆숙제 털기. 엔딩에 대해선 다들 아무 말 않기로해😉
타고나길 머리가 좋았다. 학창시절 반장일을 도맡아했고 비상한 머리덕에 직업군의 선택지도 다양하다 못해 널려있었지만 좋은 직업을 선택하진 않았다. 착한척이라면 학생때 지겹도록 해왔으니 탁월한 재능으로 오히려 나쁜 직업을 선택했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일. 나는, 소시오패스다.
- 법조인이라..

어둠의 루트로 들어오는 청부의뢰를 받은지도 5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점점 재미가 떨어지던 참이다. 애초 살인에 흥미를 느꼈던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의뢰인들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도덕심과 죄책감따위를 느낄수 없는 내가
Read 50 twe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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