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 Profile picture
Mar 15 112 tweets 14 min read
매운맛 화산... 보고싶다. 천우맹에 사술 같은거 걸렸는데, 청명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악당으로 느껴지는 그런거. 청명이야 화산파 정도면 어렵지 않게 이길순 있는데. 저것들을 다 죽일수 없잖아.
물론 살기 넘치는 수련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련이고 알아서 조절을 할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건 다르겠지. 대충 몸을 피하고 어케 된건지 알아나보자. 하고 잠시 그들을 떠나는 청명이..
뒤에서 애들이 반드시 죽여야한다. 하고 쫒아오는거 보고 사파나 마교한테나 들어본 발언 ~ 하고 걍 힐끔 한번 보고 사사삭 사라짐. 많이 컸지만 그래도 아직 애송이 들임.

화산은 신경질 적으로 청명의 흔적을 지워냈음. 문적에서 파내고 숙소도 전부 치우고...
청명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전부 지웠음. 마치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듯 언급 하는 것조차 꺼려했고, 그러다보니 천우맹은 서로 슬슬 거리를 두다가 이젠 와해 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로 연락을 끊은거임.

그리고 달포가 지남. 모두 비명을 지르며 침상에서 깨어남.
맙소사.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거지?

그들은 가장 먼저 청명이 쓰던 숙소를 찾아감. 바로 옆에 있는 애들이 이미 입구를 막아놓았던 판자를 뜯어내고 있었음. 모두가 식은땀에 흠뻑젖어서 청명의 방을 열었음. 창문에 판자를 몇겹이나 덧대어 막아놓은 탓에 방은 굉장히 어두웠고
온통 먼지 투성이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음. 맙소사. 무슨 짓을 한거지.

단체로 뭔가에 홀린것 같았음. 그러지 않고서야 그 누구도 청명을 화산에서 쫒아내라 하지 않았을거임. 장문인은 이미 쓰러지심. 내가 무슨 짓을 한거냐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의약당주가 옆에서 진맥하고 있다고 함.
현상과 현영은 다급하고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청명을 문적에 올리려 갔다 했음.

사실, 달포 동안 청명이 아예 찾아오지 않은건 아니었음. 한번 찾아왔었음. 묘하게 긴장한 얼굴로 산문 너머에 빼꼼 고개를 치켜들며 슬쩍 지켜보던 청명에게 그들은 무어라 말했던가.
이미 문적에서 파냈고 너 따위가 있을 곳이 아니라 했음. 너 같은 검귀는 화산의 명성을 바닥에 처박아 지옥으로 보낼 자라고 했지 않나. 떠나가라, 화산의 제자였던걸 인정하기도 싫지만 그래도 그간의 정도 있고 네가 해낸 일들도 있으니
조용히만 지낸다면 단전을 폐하거나 쫒아가 죽이지 않겠다 했음.그리고 청명은 진짜로 떠났고 그들은 그때 청명이 들어올까 숙소를 아예 막아놓았었음.

더 비참한건, 그때 청명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도저히 기억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음.
청명은 암향매화검조차 산문 앞에 두고 갔었음. 창고 구석에 보이지 않게 짐 속에 파묻혀있던걸 백천이 직접 꺼냈음.

화산파 뿐만이 아니라 천우맹 전체에 이 난리가 났음. 얼마나 급했는지 그들은 전보를 날리기도 전에 이미 화산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이 날아옴.
청명은 어디에 있나. 강북에 있었음. 어쩌겠음. 장문인이 그 입으로 문적에서 파냈다고 하는데. 나름 정파 도사였던만큼 청명은 그 말을 따라 절대로 화산의 검술을 쓰고있지 않았음. 평생을 써온 청명이라는 이름도 화산이 내린 도호이기도 하니까
청명이라는 이름도 쓰지 않고 초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음.

거지로 살아도 되었겠지만 화산을 떠나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청명을 받아준 객잔이 있었음. 청명은 그 객잔에서 잡일을 도와주며 밥을 얻어먹고 좁은 잠자리를 얻어낼수 있었음.
객잔 주인은 착하지만 그 탓에 여기저기 치여서 살짝 살림이 가난했기에 청명은, 어쩐지 누군가들이 생각나서 겸사 겸사 주인을 도와주고 있었음. 강북에는 사파들이 진짜 많았거든.
말도 안되는 이자를 받으러 오는 빚쟁이들 궁댕이도 발로 차서 쫒아내고, 해본적도 없는 감자도 손질해보고 뭐... 나름 신선한 생활이었음. 평생 도가를 벗어나본적이 없는데. 뭔가. 진짜 기분이 기묘했음.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함.
사실 청명이 그들을 찾아간건, 아직도 이상한 사술 같은거에 걸려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음. 그땐 좀 진짜 생사결 할 기세라서 다치게 할까봐 물러났던건데... 다시 찾아간 그들 눈에선 진심이 보였거든. 제가 사라졌으면 하는... 어디선가 많이 봤던 눈이었음.
이게 사술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더 이상 저 같은 망종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게 진실이라면?

차라리 이리 도망쳐서 사술이라 믿는게 나을 거 같았음. 그래서 청명은 답지 않게 도망쳤음. 이 이상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았음.
그래, 멀리서라도 화산이 건제하다는걸 알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차피 그곳은 내가 있어야할 나의 화산이 아니었잖나. 그리 생각하는게 속편했음
잠시 상념에 젖어가던 그때, 객잔 안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음. 청명은 빗자루질 하던걸 멈추고 객잔 내부로 들어갔음. 사파 새끼들 아니랄까봐 남의 영업장에서 치고박고 싸우고 있었음. 조용히 밥이나 처먹고 갈것이지 감히 어디서 깝쳐? 이를 갈며 청명이 안으로 들어감.
사파들이 날이 갈수록 객잔에 찾아오는 일이 많아짐. 아무래도 청명이, 아니, 초삼이 때문인거 같았음. 객잔 주인도 그걸 눈치 채고는 정말로 미안해하면서 저녁에 아주 적은 돈을 손에 쥐어주고는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했음.
제 객잔에 피해가 오는것도 있지만, 이러다가 초삼이가 큰일을 당할까봐 걱정되는 마음도 아예없는건 아니었음.

초삼이는 또 다시 갈곳 없는 발걸음을 옮겨야했음.
초삼은 손에 쥐어준 전낭을 만지작 거리며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음. 어디로 가야하나. 나는 이제 할줄 아는게 없는데.

그 객잔에 오검이 도착한건 시일이 좀 지나서였음. 화산에 어색하게 남아있다 소림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며 떠났던 혜연이 돌아왔을때 들은 소문을 듣고 함께 강북으로 왔던거임.
강북에 초삼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흥강자가 있는데, 객잔에서 일한다더라. 라는 소문에 의심할것도 없이 그들은 강북에 왔고. 엉망이 된 객잔을 발견함.

그 초삼이라는 새끼 어딨냐고!

아이고, 나으리-!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요! 얼마전에 봉급을 쥐어주고 쫒아냈다니까요!
이게 감히 누구 앞에서 거짓을 고해?! 잔말말고 순순히 말해라! 어따 숨겼냐!

정말입니다-! 제, 제가 목이 날아가려는데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객잔 주인이 사파한테 협박을 받는 와중이었음. 오검일권이 객잔 주인을 구해냈음. 그리고 괜찮냐고 물으며 혹시 초삼이 어디로 갔는지 물었음.
객잔 주인은 울컥했음.

저도 모릅니다! 대체 그 초삼이 뭐라고 이리 사방에서 찾는겁니까? 어떤 짓을 저지르고 다녔길래 하루 걸러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겁니까? 아이고, 그 어려보이는게 죽은 얼굴로 걸어가는 걸 보고 말 거는게 아니었는데-! 이제 장사도 못하겠습니다!
객잔에 남아나는게 없습니다. 예? 이 몰골이 보이시나요? 도장님들? 그 초삼이라는 놈이 있다가 떠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요. 아이고- 재(災)신이 있다면 그놈일겁니다!

객잔 주인은 제 가슴을 쿵쿵 내리치며 엉망이 된 객잔을 보라며 소리쳤음.
그 동안 쌓인 울분을 털어내는 듯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연신 반복했음. 그 말을 듣던 윤종이 답지 않게 큰 소리를 냈음.

이건 청명이 잘못이 아닙니다!

객잔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음. 청명이?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절로 입을 다물었음.
백천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아득 깨물고 있다가 유이설이 어깨에 손을 얹어준 덕에 겨우 숨을 내뱉었음. 그래, 지금은 청명이를 찾는게 중요했음.
초삼은 악몽을 꿈. 물론 화산에 있을때도 자주 꾸고는 했음. 되살아나고서 매일 밤 편하게 잠을 잔적이 없긴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진정이 되고는 했음. 달라지긴 했어도 화산은 화산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화산이 아님. 쫒겨날리 없다고 생각한 집에서 쫒겨나니까 안그런척 해도
충격을 받긴 했던 모양이었음. 왼팔이 떨어져 나갈듯 아프며 가슴도 아파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음. 몸을 둥글게 말고 한참을 그리 있으면 조금 나아지긴 했음.

초삼은 그냥 산에서 지내고 있었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빈 동굴을 찾거나 나무 밑에 굴을 파서 낙옆을 덮고 잤음.
전쟁때는 시체를 위에 두고 잠시 눈을 붙인 적도 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음.

그냥 눈을 뜨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거나 배고프면 나무 뿌리를 씹어먹고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고 있었음. 죽지 못해 살지만 그렇다고 의욕적으로 뭔갈 하고 싶지 않았음. 청명에게 화산은 전부였으니까.
그들은 일단 흩어져서 청명이를 찾기로 함. 누구든 마주치면 붙잡아놓거나 데려 오기로 하고 흩어졌는데, 백천에게 붙어있던 백아가 고개를 들었음. 어느 산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키익 키익 소리를 내었음. 백천은 얼른 백아를 따라갔음.
마을에서 조금 많이 떨어진 산에서 백천은 지저분하고, 조금 마른 청명을 마주하게 됌. 한참을 숨을 고르던 백천이 입을 열었음.

그 비루먹은 꼴은 뭐냐. 우리보고 죄책감이라도 가지라고 일부러 그딴 꼴로 다니는거냐?

아닌데,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닌데. 하지만 백천의 입은 멋대로 움직임
네가 있던 객잔이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아는거냐? 조용히 죽은듯이 살라고 했는데도 왜 죄없는 양민에게 피해를 입히는거지? 대체 얼마나 더 주변에 피해를 입혀야 만족할거냐.

그만, 그만 떠들어. 백천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계속해서 주인의 의지를 듣지 않았음.
백천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감.

아, 만족할줄 모르지? 이 재앙 같은 자식.

청명은 백천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음.
아니야, 이건 내 진심이 아니다. 제발, 청명아. 제발 기다려줘. 백천이 속으로 절규하는 동안 청명은 사라지고 있었음. 백아는 낑낑거리다가 백천에게서 벗어나서 청명에게로 향했음. 키익킥, 소리를 내며 백아마저 사라지고 주변에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을때가 되서야
백천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음. 이게 대체 어찌 된일인지. 만약 이것이 누군가가 건 사술이라면 너무 지독해서 죽고 싶었음. 아니, 이 사술을 건 작자를 반드시 찾아내어 그 대가를 치루게 만들것임. 백천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소리 죽여 오열했음.
청명이는 청명이 나름대로 당혹스러움.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길래 도망가려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잠시 있던거거든. 나를 데리러 온걸까. 만약 사술이 풀려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면 못이기는 척 화산에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이 말끔하게 날아갔음.
뭐야, 갑자기 찾아와서 가만히 있는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지… 청명은 씁쓸하게 다른 외진 산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음. 그런데 뒤에서 토도돗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백아가 폴짝 뛰어오름. 백아는 청명의 어깨에 올라 목을 감싸고 뺨을 부볐음. 그 부드러운 털과 따뜻한 체온.
애교섞인 몸짓에 청명은, 백아의 목덜미를 잡아채지 않고 턱을 긁어줌. 그래, 너라도 내 곁에 있어줄테냐. 초삼은 피식 웃으며 더 깊은 산속으로 향했음. 후손들이 원한다는데, 마지막으로 해줄수 있는게 이것뿐이라면 그리 해야지.
백천은 뒤늦게 합류지점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던 애들에게 상황을 말해주었음, 청명이를 봤고, 만나자마자 몸이 통제가 안되는 것을 느꼈다고...모두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주먹을 꽉 쥐었음. 대체 어떤 새끼가 우리들에게 이런 사술을 걸었는지.
우리가 받은 고통보다 청명이가 받았을 고통이 더 아프게 다가와서 괴로웠음. 청명을 당장에라도 찾아가고 싶은데 백천과 같은 꼴이 날까봐 두려웠음. 이 근처에 있었다는건 아니까, 그래도...청명이가 어디서 있는지는 멀리서라도 따라가는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 했음.
청명은 깊은 산속에 들어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음. 일종의 습관이었음. 이젠 도사도 아닌데, 명상 따위를 해서 뭐 어쩌잔건지.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굳어버린 습관을 고칠수도 없고, 나름 마음의 안정을 쉬이 취하게 도와주고 있었기에 자주 명상을 했음. 잡 생각은 버리고 현 상황을 받아들이자. 내 감정따윈 하등 쓸모없지 않나.

백아는 종종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해옴 작은 새부터 제법 큰 토끼까지 잡아와서 굳이 끌고와 청명의 앞에 둠
너나 먹어라- 하고 말해도 백아는 꿋꿋했음. 영물은 영물인지 아니면 담비가 다 그런건지. 멧돼지를 잡아올때도 있었음. 지 몸집보다 몇배는 큰 멧돼지를 물고 질질 끌고 오는걸 보고 청명은 한숨을 쉼.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불을 피워 구워먹게 되었음.
당가고 녹림이고 새외고 남궁이고 다 난리가 났음. 화산에 모인 수뇌부들은 장문인 처소에서 긴 침묵을 이어가다가 이게 대체 어찌 된 사태인지 파악해야한다 했음. 마교의 짓인가요? 하고 묻는 말에 청명이에게 들었던게 있던 화산은 바로 마교의 짓은 아닌 것 같다고 했음.
마교는 이런 번거로운 일따위 하지 않으니 아마도 사파쪽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심이 든다고는 했음. 그런데 그러면 뭐해.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고 청명은 이미 떠났는데.
현종은 깊은 한숨과 함께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음. 그 애를 쫒아낸 것은 자신이었다며, 직접 문적에서 파버리기까지 했다고 많이 자책을 하고 있었음. 그들은 위로해줄수가 없었음. 청명이 화산에서 쫒겨날 때 그들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청명을 비호하지 않았음.
이곳의 모두는 청명에게 도움을 받았음. 비록 청명은 자신의, 화산의 이득을 위해서 그리했다하지만 정말로 그들을 친우로 대하게 된것도 청명의 덕임. 청명에게 빼앗긴 것은 그들이 얻은거에 비해선 정말 별거 아니었거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건, 우정이라는건 천금을 주어서도 살수 없는 아주 귀한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저버린건 그들이었음. 아무리 사술에 걸렸다하더라도. 그래서는 안되는건데. 그깟거 하나 이겨내지 못하다니...
하지만 진짜 자책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음. 바로 이게 사술이다 라는걸 청명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들이 청명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지 않았나 하는것이었음. 만약 청명이 그런 상태였다면, 그들은 청명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가정을 해봤자 무슨 소용인지. 정작 청명이가 그들 앞에서 사라졌는데.
본의 아니게 동굴에서 은거기인되어 있는 청명에게 손님이 찾아왔음.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기척에 청명은 명상을 그만두고 눈을 떴고, 백아는 귀를 쫑끗거리다가 빠르게 청명의 품에 파고 들었음. 그리고 캬아악 소리를 내며 경계했고,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냄.
이런, 화산검협. 이런 누추한 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거지?

장일소였음. 장일소는 웃으며 동굴 내부로 성큼 들어왔고 청명의 눈매는 가늘어졌음.
장일소는 청명을 보며 웃음. 사파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다 났단다. 네가 화산에서 파문당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닌다는 말을 말이야. 그토록이나 아끼던 그 문파에서 쫒겨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여 와봤단다. 하고 웃는 모습에 청명이 입을 열었음.

구경 다 했으면 내 인내심이 바닥 나기전에 꺼져.
오? 이제 문파라는 걸림돌이 없는데도 이 패군의 목을 가져가려 하지 않는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네 목은 치는건 내가 결정하는게 아니야.

장일소는. 잠시 멈췄다가 후후, 하고 웃음을 흘리더니 큰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어깨를 들썩이며 광소를 터트렸음.
그 꼴이 되고서도 아직 화산의 제자라는거냐? 참으로 가엽고 딱하구나. 내 자비를 배풀어 사패련에 들어오라 권하러 왔지만, 받아줄 것 같지는 않구나.

이걸 어쩐다...그리 중얼거리며 장일소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반지끼리 부딫혀 끼긱거리는 소음이 동굴 내부에 울려퍼졌음.
버릴수도 없고, 가질수도 없다면, 남에게 빼앗기기 전에 망가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터... 하지만 장일소는 청명에게 달려들지 않았음. 지금 천우맹이 청명을 찾고 있고, 또 이상한 사술에 대한 정보도 넘어왔기 때문임. 정말 재밌지 않은가? 이런 경극이라면
조금 정도는 시간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겠지. 그래서 장일소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음.

그래, 다음에 또 보자꾸나. 화산검협. 아, 화산에서 쫒겨났으니 그냥 검협이겠구나.

네 모가지를 뜯어버리기 전에 꺼져.

이런, 이런, 내 목을 간수하려면 이만 빠져야겠구나.
장일소는 성큼 걸음을 옮겼음. 그리고 옆에 있는 이에게 무어라 지시를 하며 연신 웃음 소리를 흘렸음. 이 경극이 비극으로 끝날지 아니면 그저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조금 먼 곳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바라보는 것도 유흥이 되겠지.
기분 나쁜 만남이 끝나고 청명은 한숨을 내쉬었음. 당장 살심이 드는걸 다스리긴 했는데, 쫒겨난 김에 걍 모가지를 따버릴걸 그랬나, 약간의 후회가 되긴 했음. 하지만 쫒겨났어도 마음만은 아직 화산에 남아있는 모양인지.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음. 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구나.
정말 도사랑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청명은 자리에서 일어났음. 장일소 같은 새끼가 또 찾아오지 않으란 보장은 없으니 자리를 옮기는게 현명할 것 같아서였음.
그리고 그 해에 마교가 발효했다.
두번은 잃을 수 없었던 청명은 산속에서 나와서 마교 사이를 누비고 있었음. 섬서로 가는 길목에 서서 마교보다 더 악귀 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도륙하는 이가 화산검협이었던 자라는 소문은 온 사방으로 퍼졌음.

청명은 그때마다 손에 잡히는 검으로 마교도를 베어나갔음.
아직 매화검존의 무위도 되찾지 못한 시점에서, 홀로 마교도와 싸우는 일은 무척이나 버거웠음.

청명은 마주친 마교도를 전부 죽이고 잠시 서서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결심하여 걸음을 옮겼음. 그리웠던 화산으로.

화산에 오자 사람들은 눈이 떨렸음. 그러나 입에서는 모진 말들이 쏟아져내렸음.
후안무치한 녀석, 파문 당한 주제에 감히 화산의 검을 펼쳐? 왜 기어 들어온거야? 하는 소리가 수근수근 들려왔지만. 청명은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장문인 앞에 무릎을 꿇었음.

파문 당한 제자가 감히 화산의 검술을 쓴 죄는 마교를 처리 한 후에 받겠습니다.
그래, 원래대로라면 사지근맥을 자르고 단전을 폐해야하지만 지금은 마교가 더 시급하니 그 일은 뒤로 미루도록 하마.

딱딱하게 말하는 현종의 앞에 청명은 감사하다는 듯 깊게 고개를 숙였음.
제가 보기 싫으시겠지만 이번만 견뎌내시면 그 뒤로는 보지않아도 된다 하며 청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자리를 잡았음.

현종은 피눈물이 흐를것 같았음. 아니다, 아니다 청명아, 내 어찌 너에게 그런 잔혹한 짓을 하겠느냐. 청명아, 제발. 제발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거라.
어? 너만이라도 살아 남아다오. 우리 같은 이들을 위해 스스로 사지로 걸어들어가지 말거라. 제발... 빌고 또 빌어도 이 말이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음. 현종은 차라리 제가 혼절하기를 바랬음. 가슴이 갈기 갈기 찢어지다 못해 짓이겨진것 같았음.

청명과 천우맹은 함께 움직였음.
하지만 싸울때만 협력하고 그외의 잠깐 숨을 돌리는 순간이 오면 청명은 철저히 혼자였음. 누구도 청명의 상처를 돌봐주지도 않았고 배급을 신경쓰지도 않고 말을 걸지도 않았음.

청명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들은 전부 속으로는 괴로워하고 있었음.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고 배불리 먹여주고 싶고 목을 축이게 해주고 싶었으며. 아주 잠깐이라도 편하게 잠들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아. 누군가가 그들을 고문하기 위해서 이런 사술을 건게 아닐까 싶었음.
청명은 마교가 뭔가 다르다는걸 느꼈음. 이상해. 원래 이렇게... 수가 적었나? 그리고 너무 급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그 의문은 얼마 못가서 풀렸음.

마교 내부에 분란이 일어난 것임.
과거의 천마를 따랐던 본래의 마교와 새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어린 녀석들이 주교로 오르며 의견차가 생겼는지 마교 내에서도 파벌이 생긴 것임.

정말 황당한건. 새주교들이 천마의 환생이라며 어떤 아해를 모시고 있다는 것인데... 진짜 천마라면 이리 조용할 리가 없었음.
분명 어디를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죽여나갔을텐데.

얼마지나지 않아서 청명은 그들이 모시고 있는 천마를 만나게 되었음. 신 마교의 본거지 아주 깊숙한 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청명은 제 앞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았음.
아직 어린 아해였음. 이제 충년이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고급진 비단을 입고 앉아있었음.

겁에 잔뜩 질려선 덜덜 떨며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청명은 얼굴이 찌푸려졌음. 이게 뭐야. 입술을 악물며 중얼거리자 아이가 더욱 겁에 질리며 몸을 덜덜 떨었음.

이게 대체 뭐냐고!
청명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음. 천마라면서. 왜, 왜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건데. 대체 어째서? 청명은 헛웃음을 흘림. 설마, 아직 자신이 천마인지 모르는건가? 아니면 멍청한 마교새끼들이 엉뚱한 양민 아이를 데려다 놓고 자신의 신으로 모시고 있던 것인가.
청명은 알수 없었지만, 선택해야했음.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이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야하는지. 아니면 살려야할지… 속이 다 울렁거리는 기분이었음. 무엇 때문에 자신이 검을 들었는지. 미친놈들이라는건 진작에 알고는 있었지만... 하도 마교를 상대한 탓일까. 이젠 본인이 미쳐가는게 아닐까
오검일권이 도착했을땐, 그곳에 살아 있는건 오직 청명뿐이었음.

마교가 잠잠해졌음. 어찌된일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지고 있었음. 물론 잔당들 몇이 남아서 그들을 공격했지만 백년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소수였던 마교가 밀리고 있었음.
청명은 두 눈을 감고 앉아 있었음. 사지는 당가에서 특수 제작된 금속줄로 묶여 있었음. 청명을 묶어서 가둬놓은건 다름아닌 화산이었음. 빛하나 들지 않는 참회동 안에서 청명은 그저 명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음.
동굴이 열림.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가 치워지고 들어온 청자배 몇이 청명을 끌고 갔음. 연무장 한 가운데서 다시 무릎이 꿇린 청명은 제 앞에 서있는 현종을 바라보았고 주변을 둘러보았음. 화산의 대부분 이들이 살아있었음. 하나 하나 얼굴을 바라본 후에야 청명은 다시금 현종을 바라보았음
...죄인에게 묻겠다.

하문하십시오.

네가 마교를 막은 것은 알겠다. 네가 없었다면 확실히 힘들었겠지. 그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하나, 어찌하여 아직 어리고 힘없는 아해를 죽였느냐.

청명은 두 눈을 감았음. 그리고 고개를 들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음.

그리 해야만 했습니다.
죄 없는 아해를 죽이는 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장문인의 뜻대로 하소서.

청명은 해명도 하지 않았음. 그리고 그런 청명을 보며 그들의 속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지. 사실 알고 있었음. 청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죽일 사람이 아니라는건 알면서도
이건 그저 트집 잡는 것에 불과했음. 분명 그 아해가 천마였겠지. 어떠한 연유에선지는 몰라도 완벽한 천마는 아니었던거겠지. 현종은 당장 청명을 풀어주고 일으킨 다음에 꼭 끌어안고 너무도 수고 많았다고, 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많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음. 하지만 지독한 사술은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현종의 입이 또 멋대로 움직였음.

당장 이 죄인의 사지근맥을 자르고 단전을 폐한 후에 산문 밖으로 던져버려라!

안돼. 모두가 똑같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음. 청명아 제발 도망가라,
너라면 우리 전부를 따돌리고 떠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느냐. 제발, 제발 청명아- 닿지 않는 애원을 하며 운검의 몸이 서서히 움직였음. 스르릉, 매화검이 검집에서 뽑혀져 나옴, 청명이 만들어준거나 다름없는 검으로 운검은 청명을 겨누었음.
검이 올라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의 모습에 모두가 눈을 때지 못함. 운검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음. 그러나 청명은 제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한번 눈을 깜박인 후에 다시금 감았음. 준비 되었다는 듯한 그 모습에 운검은 차라리 제가 혼절하길 바랬음.

검이 아래로 내려쳐졌음.
청명은 제게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지만,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음. 카앙! 하는 맑은 금속음에 감았던 눈을 뜨자 제 앞에 누군가의 등이 보였음.

백천이었음.
백천은 제 검을 꽈악 쥐고서 운검의 검을 밀어내었음. 온몸이 덜덜 떨리고 벌레가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지만 마음만큼은 편해졌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백천은 오로지 의지만으로 사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것임.
모두는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음. 사술을 억지로 거부해서인지 백천의 코에서 육혈이 흘러내리고 있었음.

영문을 모르는건 청명뿐이었음. 갑자기 백천이 사숙조의 검을 처낸다? 그것도 장문인이 명한 일을 하고 있는 사숙조를 방해한거임. 오히려 청명이 얼굴을 굳히며 백천의 다리를 꾹꾹 밀어냄
대체 뭐하는 짓이야?

그리 말하는 청명에게 백천은 보란듯이 웃어주고 싶었음. 보이냐, 망할 사질새끼야. 이까짓 사술쯤이야 이겨낼수 있다고. 널 지켜낼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무언가 잘못된걸까. 눈 앞이 아득해지는가 싶더니 백천의 다리가 휘청이며 그대로 혼절하여 바닥에 쓰러졌음.
머리가 부딪히기 전에 청명이 얼른 제 품쪽으로 끌어들여서 다행히 머리는 부딪히지 않았음.

사숙! 사형! 백천아! 사방에서 백천을 부르며 다가왔음. 누군가는 청명을 밀쳐냈음. 청명은 힘없이 밀리며 뒤로 물러났음.

아무리 불러도 백천이 눈을 뜨지 않아.
대체 무슨일이냐며 소소가 직접 진맥을 짚어도 짐작 가는 것이 없어. 다들 백천을 걱정하고 있을 무렵에, 청명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을 때, 누군가가 손을 처냈음.

어떤 사특한 짓을 한거냐?! 무슨 짓을 했길래 사숙이 쓰러진거지?

사숙을 죽일 생각이었냐?
너 같은 녀석을 사형제로 두었다니 정말 끔찍하다!

어째서 죽지 않고 꾸역 꾸역 살아 돌아온거냐! 마교에게 죽임 당했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도, 사숙이 쓰러지는 일도 없었을텐데!

그들이 속으로 이건 거짓이라 외쳐도 듣지 못한 청명에게는 비수보다 날카로운 말들이
심장에 정확히 꽂혀 들어오는 듯 했음. 청명은. 바닥에 떨어진 매화검을 바라보았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기에 손을 뻗어 손잡이를 움켜쥐었음.

굳이 손을 더럽히실 필요는 없습니다.

검날이 거꾸로 돌려져 청명의 목을 노렸음. 날카로운 칼 끝이 야윈 목에 닿았음.
낡은 마룻바닥에 고운 비단신을 신은 발이 닿았음. 끼익 울리는 기분 나쁜 소음이 텅빈 건물 내부에 울렸음. 패군, 장일소는 제 앞에 있는 사내의 목을 직접 움켜 잡고 있었음. 사내는 버둥거리며 그 강인한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소용 없는 일임. 장일소는 쯧쯧쯧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음
나도 굳이 이러고 싶진 않았단다. 하지만 그 화산검협에게 빚을 졌다는게 여간 기분 나쁜게 아니라서 말이야.

마교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약했지만, 청명이 없었다면 그들도 사라졌을 거라는 건 장일소도 알고 있었음. 그러니 사파는 물론 중원 전체가, 더 나아가 장일소가
청명에게 한번 목숨을 빚진거나 다름 없었음. 장일소는 후환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이리 찝찝한 상태로 둔다면 간혹 거슬릴 것 같았음. 그래, 아무리 없애도 또 생기는 손톱 거스러미 같은 일말의 찝찝함 같은게 말임.
그렇기에 장일소는 답지 않은 짓을 딱 한번 하기로 한것임.

두 번은 없단다. 그리 중얼거리며 장일소는 그자의 목을 부러트린 후에 바닥에 던져놓았음. 뒤에서 기다리던 호가명에게 장일소는 돌아서며 이 집을 전부 불태우라 말했지.
청명의 목을 향해 검이 찔려들어감. 하지만 그 전에 사방에서 손이 날아들어 맨손으로 칼날을 잡았음. 피가 베어나오건, 손바닥이, 손가락이 베이던 상관없는 그 손들은 검을 강하게 붙들더니 옆으로 내던졌음. 그리고 그들은 청명을 와락 끌어안았음.
청명아--! 청명을 부르는 소리가 울음소리 같았음.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뛰어와서 청명이를 끌어 안았음.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목놓아 우는 이들도 있었고 운자배와 현자배들도 비틀거리며 다가와서는 욘석아, 이 녀석아-! 왜 도망가지 않았던 것이냐! 하고 울기 시작했음.
이제야 드디어 자유로워진거야. 그걸 깨달은 화산파는 엉엉 울었음. 드디어, 드디어 청명이에게 사죄할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울었음. 갑자기 울음바다가 된 상황에서 약간 고장났던 청명은
제 몸을 살피며 왜 이리 야윈거냐며 하루에 다섯끼는 보양식으로 먹으라고 하면서 다친 곳을 치료 해주겠다고 엉망인 목소리로 우는 그들을 보며 현실감이 떨어진 표정으로 두 눈을 꿈벅거렸음.
백천은 눈을 떴음. 잠시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백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변을 돌아보았음. 옆에는 백상이 있었음. 백상이 드디어 깨어났냐고 묻기도 전에 백천은 백상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물었음.

청,청명은 어찌 되었느냐!

청명은 무사합니다.
백상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백천은 무너지듯 몸을 숙였음. 다행이다. 아주 다행이었음. 그나마 최악의 사태까지는 가지 않은 모양이었음. 그리고 백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명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백상은 몇가지를 챙겨들며 말함.

숙소에 잘 있습니다. 저도 여기 약좀 가지러 온거고요.
청명은 모심 당하고 있었음. 숙소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게 앉혀진 청명의 주변엔 천우맹 전체에서 보낸 선물들이 가득했음. 나중에 찾아온 천우맹 맹도들이 그 앞에서 눈물로 장강을 이룬건 말하기에도 입이 아플 정도임. 심지어 당군악도 울고 갔음! 청명의 숙소에는 식지 않는 음식들이
매번 채워지고 술도 새걸로 계속 들어오고 의원들이 매번 번갈아가면서 한시진에 한번씩 진맥할 정도임.

정말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수 없음. 청명은 이 상황 자체가 어색하고.... 답지 않게 청명이 조용히 있는 일이 많이 있으려니 그들은 아예 머리를 바닥에 박아버리고 싶어하는 모양이었음.
현자배들은 아예 번갈아가며 청명의 숙소에 오갔고 운검은 청명을 끌어안아주며 한참을 울고 갔었음. 그래서는 아니되었다며 이겨내지 못한 자신이 약한거라고, 잘못된거라며 말하고는 수련을 하러 갔고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음. 본의 아니게 화산엔 수련 열풍이 불었음.
청명이 지내는 숙소 앞에서 백천은 혜연과 마주쳤음. 혜연은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음. 누가봐도 오열한 꼴이라서 백천은 씁쓸하게 웃었음. 아마 저것이 제 미래겠지...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음.
청명의 숙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청명의 모습과 따스한 온기, 사람 사는 흔적이 가득한 방을 보며 백천은 속절없이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음.

이 양반들은 왜 나만 보면 울어재끼는지.
청명은 피곤해하면서도 손을 까딱였고 백천은 그 옆에 다가가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트렸음. 어째 청명보다 이들이 더 마음 고생한게 보여서 청명은 이제 서운하지도 않았음.
백천은 훌쩍이면서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음.

청명아.

어, 왜.

앞으로...우리가 헛소리를 하거든, 반드시 대가리를 깨부셔버려라.

진심이라며 백천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고. 청명은 결국 옅게 웃어버렸음.
오냐. 소원이라면야 못들어줄 이유는없지.

반드시 그리 해야한다... 반드시 차라리 우리 대가리를 깨부셔라.

다시는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겠다 다짐하며 백천은 청명의 손을 바라봄, 차라리 이 손으로 제 머리를 부셔버리길 얼마나 바랬던가. 백천은 기도하듯 청명의 두 손을 꼭 잡음
청명은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겠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때의 일을 품고 살아갈 터임. 살짝 벌어진 마음의 틈을 좁히는 일은 전적으로 천우맹 전체에게 달려 있었음. 만일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는 청명이 우리가 절대로 이러지 않으리라 믿게 되기를, 그리 만들기로 결심했음.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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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3
@Rainflower___ 님이 갑자기 당보가 있는 당가 일상을 보고싶다고 하셔서 짧게 써보기로함.

당보가 있는 시대의 당가는 어땠을까? 아무래도 당보가 어릴땐 이놈이 커서 우리 당가를 더 발전 시키게 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키웠는데, 다 키우고보니 독에 내성이란 내성은 다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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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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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괴들이나 하는거 아니었냐고 화산파 애들이 말하는 와중에 청명이는 짤막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현실자각시간을 가짐. 이제 좀 팔다리 좀 길어져서 좋았는데... 어째서 두 번씩이나 작은 몸을... 속으로만 중얼거리다 한숨을 푹 내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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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
솔직한 욕망을 말해야만 나가는 방에 갇힌 오검일권 보고싶다. 다들 첨엔 나가려고 발악하다가 결국 써있는 대로 해보기로 하는데

조걸이 스타트로 환우제일무적검황 같은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걸 시작으로 다들 하나 둘씩 말하기 시작함.
존경받는 장문인이 되고싶다. 더 화려하고 살아있는 매화를 피우고 싶다. 힘없는 어린 거지들이 없을 정도로 규휼 하고싶다. 사고랑 계속 수련하고 싶다. 술을 실컷 마시고 싶다 등등 말하고 다들 그게 뭐냐고 깔깔 거리다가 청명이를 바라봄.
솔직히 정말 내키는데로 마음껏 살고있는 청명이의 욕망이 어떤건지 진짜 궁금하긴 했음. 부자가 되고 싶다던가, 술이나 실컷 마시고 싶다던가. 원래 그랬지만 그래도 더 도사답지 않은 생각이나 하려나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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