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의 주장을 "이게 되겠니?"라는 차원에서 비판을 많이 했는데 정작 내가 이제 대안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되니 정말로 많이 걱정된다. 이미 한 지인은 원고를 읽고 대안적인 부분에 가서 다소 나이브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였다. 지인은 그것이 맑엥의 나이브함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을 재구성한 사람이 나라서 나의 나이브함이 되어버린다. 최대한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정도의 나이브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나의 '사회적 공화정'이라는 대안은 엄밀하게 말해서 "방향성"의 제시에 가깝다. 자본제
사회 내에 존재하는 특정한 경향성을 좀더 강하게, 가속화하는 방향으로서의 사회적 공화정으로의 이행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근대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고 대안적 성격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걱정이 많이 되지만, 아예 무시당할 수도 있다.
학술적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근대 자본제 사회에 내재해 있는 특정한 경향성, 해방의 계기가 자본과 사적 소유라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 제한되는 지점을 드러내어 체제전환이 그것을 어떻게 해체하고
특정 경향성을 강화 혹은 가속화하는지를 말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정도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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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이제는 개나소나 민주노총 비판하면 자기가 무슨 대단히 노동문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거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정규직 이기주의", "비정규직을 방기하는 지도부", "상위 20% 이상의 기득권" 등의 말을 늘어놓기만 한다. 진보 진영에 속한 이가
그렇게 말하면 더 대단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황당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느니 어쩌니. 아무 쓸데없는 소리들이다. 중요한 건 이들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분석하여 인식하고 그 연장에서 무엇을 이뤄낼 것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파악할지가 잡혀야 어떻게
묶어낼지도 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와 별개로 같은 배달기사라고 해도 배민라이더에 속해 있는 사람과 대리기사는 엄연히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론적인 분석을 하자면 유통과정에서 종속된 '생산자=노동자'와 생산과정에서 종속된
파시즘 연구사를 살펴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수많은 연구들이 파시즘 세력이 그 자체로 집권하기보다는 기존이 보수세력, 즉 보수주의-권위주의 성향의 세력과의 '연정'을 통해서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파시즘 체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뿐만 아니라 "위로부터의
혁명"도 함께 해야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파시즘 국가는 아무리 급진적일지라도 보수주의-권위주의 세력과의 연대로 인한 한계가 그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국가 관료제의 합리성을 모두 제거하지 못한다. 팩스턴 등이 말하는 '이중국가론'의 핵심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법원, 법령, 행정기관 등으로 나타나는 '법적 질서'로서의 '정상국가'가, 다른 한편에서는 그 어떠한 법적 체계에 의해서도 견제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특권국가'가 나타난다. 파시즘 국가가 '이중국가화' 되는 원인은 바로 앞서 말했듯이 운동으로서의 파시즘(=아래로부터의
그런지 이제는 특정 진영의 정치적 리더들이 아무 말이나 해도 전 인민의 30~40%가 지지하는 지경이 되었다. 상대 진영의 흠만을 지적하고 자기 진영의 아무말도 다 옹호하는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이럴수록 정치적 리더들이 더 말조심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함부로 말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걸까?
“안티조선 운동이 그랬어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는데 꼭 그랬어야 했나 싶어요. 조선일보 ‘밤의 주필’을 자처하며 매일매일 조독마(조선일보 독자 마당)에 보수를 비판하는 칼럼을 올리던 때는 유쾌했는데, 그런 일들이 오히려 지금의 정치 양극화를 가속화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
-안티조선 운동을 돌아본다면.
“우리가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나가고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나는 이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읽고 너무 화가 났다. 사람들이 왜 담배를 피는지 좀 이해가 됐다. 나는 그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으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파시즘에 대한 그의 이해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번 페이스북에서도 그에 관해 적었지만, 적어도 진중권이 이렇게 말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이문열의 '홍위병' 발언에 대해 지금의 그라면 이문열한테 사과할지도
관한 내 나름의 공부노트를 좀더 확장해서 한 권의 책 형태로 만들려고 한다. 책으로 낼지는 모르겠지만 가라타니 고진을 중심으로 일본 내셔널리즘을, 왕후이를 중심으로 중국 내셔널리즘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분석 작업을 시작했다. 링크를 건 2개의 글은 그 첫 시작인데 일단은
써놓으려고 한다. 아직 완벽하게 초점을 맞춘 건 아니고 쓰다보니 가라타니 고진을 '일본 내셔널리즘'의 분석가이자 비판가로 독해하는 방식과, 일본 사상사라는 맥락을 강조하는 방식 간의 충돌이 이뤄지고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좀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얼룩소에 조성주, 장혜영, 류호정 등이 포함된 정의당 내의 새로운 그룹 '세 번째 권력'을 비판하는 글을 4개 썼는데 내 생각 이상의
반응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메인에 오르지도, 그렇다고 뜨는 글에 오른 것도 아니지만 알음알음 SNS를 매개로 퍼지면서 내 글을 보기 위해 얼룩소에 가입했다는 사람도 생기는 걸 보면 글이라는 것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한다. 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 사람들 말하는 걸 보면 화딱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