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요근래에 쓴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라 계속 다시 보고 있다. 내가 썼지만 "'제멋대로 하는 자유'는 노예가 되고자 하는 자유"라고 일갈한 건 잘한 것 같다. 아래의 인용문 중alook.so/posts/eVtr2jo
마지막 문단의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플라톤이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18일>의 내용을 선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강조한 것과 달리 플라톤은 '인정투쟁'이라고 해도 될지 의문스럽지만 '욕망의 평등성'에 기초한 '불만'이 참주의 출현을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조정훈의 개소리를 보고 격분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글을 적었습니다. 다소 길지만 꼭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조정훈의 개소리가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정의당의
강은미 의원이 했던 비판들이 "대안없는 비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모든 개소리에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가부장제 자체를 전복하거나 바꿀 생각이 없이 적극적으로 가사노동의 외주화를 통해 저개발국 여성을 착취하겠다는 조정훈의 주장을 극복하려면 유입되는 저개발국 노동력을
Jun 12, 2023 • 5 tweets • 1 min read
왕후이가 뛰어난 사상가인 이유를 나는 "동시대화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월러스틴의 일갈처럼 "모든" 국가들이 동시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고 나아가려고 한다. 그 위계화된 질서 속에서 모든 국가, 민족들이 경주를 한다.
그들 국가들의 성적표는 1인당 GDP, 경제성장률, 산업별 비중 등의 수치로 매년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발전단계론과 다른 의미에서 발전단계론인데 이 지표들로 보면 중국공산당은 아직도 한참 후순위에 놓여 있다. 선진자본주의를 추적하기에는 앞으로도 수십,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Jun 11, 2023 • 4 tweets • 1 min read
한국에서 정치를 하든 시민사회운동을 하든 무언가 하겠다는 이들에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너희가 진정으로 큰뜻을 품었다면 선택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공자조차도 선택받지 못하고 천하를 유랑했는데 너희가 뭐라고 반드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는 말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사賜야, 훌륭한 농부가 비록 씨뿌리기에 능하다 하여 반드시 거두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고, 좋은 장인이 비록 정교한 솜씨를 가졌을지라도 반드시 쓰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도를 닦아 기강을 세우고 잘 통리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Jun 4, 2023 • 8 tweets • 2 min read
부동산 돌아다니면서도 많이 느끼지만 성장하지 않는 사회한테 남는 건 분배투쟁밖에 없다. 사실 나는 이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핵심 논지라 생각하는데 자본주의는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공황으로 터져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괴리가 극복되어 잘 성장하더라도 결국 이윤율 저하 때문에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자본론 1권의 마지막 분에서 묘사한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 아닌가.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가 끊임없이 감소되어감에 따라 빈곤, 억압, 예속, 타락, 그리고 착취의 정도는 오히려 증대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팽창하는, 그리고 자본주의적
페친이신 논형 출판사 사장님께서 덕분에 책이 좀 나간 것 같다고 연락을 주셔서 좀더 팔렸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적었는데 야스마루 요시오의 저작전집도 한번 좀 번역해서 내보고 싶고 그렇다. 예전에 20대가 끝나기 전에
출판사를 차려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업준비도 했었는데..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라서 그만뒀다. 공부하는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작업이었다. 백낙청 선생을 약간 존경하게 되었던 경험인데..
아무튼 내가 박현채 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근현대 사상사를 파악하려고 하는
Jun 3, 2023 • 10 tweets • 2 min read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이번에 처음 집을 구매해보고 싶어서 계속 돌아다니는데 참 재밌는 경험 많이 한다. 동네의 어떤 분위기랄까, 역동성이랄까 그런 걸 보여주는 지표가 부동산업자들의 태도이다. 예를 들어서 신도시권을 보면 거기는 사람들 자체가 그 지역을 발판으로 삼아서 서울로
진출하겠다, 아니면 더 큰 사이즈의 집으로 가겠다 이런 의지가 충만하다. 이런 사람들은 집을 함부로 쓰지도 않는다. 자기도 나갈 때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집들 보면 신혼부부들이 참 예쁘게도 잘 꾸며놓고 짐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쓰는 경우 많다. 이 지역에서 평생을 살고, 그런 건 없다.
Jun 2, 2023 • 7 tweets • 1 min read
자본제 사회에서 개인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서 사회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노조 등의 이해관계 단체도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이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행하는 활동들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즉 보편성을
창출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국가가 무제한적으로 확장되게 된다. 예를 들어서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건설사들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부실공사를 하거나 이런 문제를 일으켰을 때 현장에서 견제가 안되니까 검찰
Jun 2, 2023 • 6 tweets • 1 min read
민족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으면 도대체 어떤 공동체에 기초해서 보편성을 창출하고 도달하려고 하는지 의문이 많이 든다. 요즘에는 좀 무뎌지기는 해서 민족주의자, 근대주의자 등의 비난을 들어도 그래, 그렇게 말할줄 알았다 이러고 넘기는 편이기는 한데 자신의 주장이 어떠한 장場을 매개로 하여
보편성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 좀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나는 나한테 저런 비난을 가하는 인간들이 선거 때가 되면 민주당 찍는다는 사실이 매번 존나 황당한데.. 변증법적 사고의 핵심은 '과정', 달리 표현하자면 "운동" 그 자체이다. 헤겔이 칸트를 '추상적'이라 비웃는 이유이기도 한데, 예를
Jun 2, 2023 • 5 tweets • 1 min read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나는 '해석의 차이' 같은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텍스트'의 범위가 정해져 있을 때 그것에 대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한 가지로 수렴하게 된다고 본다. '틀린 해석'과 '옳은 해석'이 적어도 자료의 제한이 가해져 있을 때 분명하게 존재하며, 정답이라 부를
수 있는 해석은 오직 한 개밖에 없다고 본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무수한 논쟁을 거쳐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만약에 정말로 끝까지 논의를 했는데도 애매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저자가 텍스트를 잘못 쓴 경우밖에 없다. 내가 맥락을 몰라 도출된 '잘못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May 30, 2023 • 5 tweets • 1 min read
다른 이들의 주장을 "이게 되겠니?"라는 차원에서 비판을 많이 했는데 정작 내가 이제 대안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되니 정말로 많이 걱정된다. 이미 한 지인은 원고를 읽고 대안적인 부분에 가서 다소 나이브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였다. 지인은 그것이 맑엥의 나이브함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을 재구성한 사람이 나라서 나의 나이브함이 되어버린다. 최대한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정도의 나이브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나의 '사회적 공화정'이라는 대안은 엄밀하게 말해서 "방향성"의 제시에 가깝다. 자본제
May 30, 2023 • 13 tweets • 2 min read
가만 보면 이제는 개나소나 민주노총 비판하면 자기가 무슨 대단히 노동문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거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정규직 이기주의", "비정규직을 방기하는 지도부", "상위 20% 이상의 기득권" 등의 말을 늘어놓기만 한다. 진보 진영에 속한 이가
그렇게 말하면 더 대단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황당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느니 어쩌니. 아무 쓸데없는 소리들이다. 중요한 건 이들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분석하여 인식하고 그 연장에서 무엇을 이뤄낼 것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파악할지가 잡혀야 어떻게
May 29, 2023 • 11 tweets • 2 min read
파시즘 연구사를 살펴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수많은 연구들이 파시즘 세력이 그 자체로 집권하기보다는 기존이 보수세력, 즉 보수주의-권위주의 성향의 세력과의 '연정'을 통해서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파시즘 체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뿐만 아니라 "위로부터의
혁명"도 함께 해야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파시즘 국가는 아무리 급진적일지라도 보수주의-권위주의 세력과의 연대로 인한 한계가 그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국가 관료제의 합리성을 모두 제거하지 못한다. 팩스턴 등이 말하는 '이중국가론'의 핵심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May 29, 2023 • 7 tweets • 2 min read
이해찬 “우크라이나, 우리가 신세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
"그는 “제가 총리할 때 거기(우크라이나)에 공식 방문을 한 번 해봤는데, 우리가 신세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주로 농사나 많이 짓고 땅은 아주 비옥하다. 우리나라 물건을 오히려 사가야 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전쟁
에 끌려들어가서 우리가 얻을 게 뭐가 있는가. 이렇게 무분별하니까 외교도 안보도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보다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우크라이나에 도움을 줘봤자 얻을 게 없는 데 왜 지원하느냐는 취지로 해석됐다."
“안티조선 운동이 그랬어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는데 꼭 그랬어야 했나 싶어요. 조선일보 ‘밤의 주필’을 자처하며 매일매일 조독마(조선일보 독자 마당)에 보수를 비판하는 칼럼을 올리던 때는 유쾌했는데, 그런 일들이 오히려 지금의 정치 양극화를 가속화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
-안티조선 운동을 돌아본다면.
“우리가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나가고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네프콘에 연재를 시작한 일본과 중국의 근현대 사상사에
관한 내 나름의 공부노트를 좀더 확장해서 한 권의 책 형태로 만들려고 한다. 책으로 낼지는 모르겠지만 가라타니 고진을 중심으로 일본 내셔널리즘을, 왕후이를 중심으로 중국 내셔널리즘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분석 작업을 시작했다. 링크를 건 2개의 글은 그 첫 시작인데 일단은
얼룩소에 조성주, 장혜영, 류호정 등이 포함된 정의당 내의 새로운 그룹 '세 번째 권력'을 비판하는 글을 4개 썼는데 내 생각 이상의
Jan 24, 2023 • 8 tweets • 2 min read
엘리자베스 워런의 <맞벌이의 함정>은 미국 중산층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사치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한쪽의 소득이 사라지면 급속하게 몰락하는지를 분석한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현대의 미국 중산층 가정은 1970년대에 비해 75% 이상의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안정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왜 그럴까?
그에 따르면 이것의 궁극적인 원인은 비싼 주택가격이다.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등의 지출이 더 늘어났기에 아무리 소득이 늘어났어도 되려 재정안정성은 떨어진다. 주택가격이 높은 이유는 자녀들의 안전, 더 나은 교육환경 등의 요인 때문이고 이런 비용을 고려할
Jan 24, 2023 • 5 tweets • 1 min read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그리고 제3세력이 나오려면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인데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지역구'라는 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인데 아무래도 전근대사를 거치며 지역공동체가 근대국가의 형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았다보니 딱히 그런 문제의식 자체를 갖기 어려운 환경인 듯하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서구 지성사나 역사학에서 이 문제는 나름 중요한데.. 헌법학에서 지역구 논의들은 대부분 최대한 인구격차를 축소하여 균질한 지역구를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나 조원용처럼 아예 지역구가
Jan 23, 2023 • 9 tweets • 2 min read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덕분에 상대적으로 쉽게(?) '전제주의'라는 개념으로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정치비평(?) 연재를 할 수 있어 약간 기분이 묘하다. 대체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모두 윤석열 비판으로만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한국의 역대 정권들을 비판하는
내 기준점은 행정부 수반의 보나파르트화와 국가의 전제화였다. 대부분 자신은 앞선 정권과 다를 것이라고 자부하며 시작했다가 끝에 가서는 비슷한 평가와 비판을 받으며 쇠락하였다.
문제는 이런 반복 와중에 점차로 전제주의 운동이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며 오히려 진보와 보수 양측이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