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멧 갈라 하면 그거 부자들이 대충 돈 쳐 부은 할로윈 코스튬파티 같은 거 하는 거 아니냐 남자손님들은 성의없이 대충 "정장"으로 때우기 일쑤인 그것- 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거죠. 이런 종류의 자선행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나 그런 것들은 예상가능하실 테고. 올해의 드레스코드/주제는
(보셨다시피) "시간의 정원The Garden of Time". 전시 테마는 "패션의 재조명Sleeping Beauties: Reawakening Fashion"이었는데, 저는 이 조합을 보고 주최측이 아주 못된 농담 내지는 자아비판을 시도하는 것인가 했었습니다.
1. "시간의 정원"
J G 발라드(최근 번역된 한국어판들에서는 제임스 밸러드라고 쓰는 편인 것 같지만 전자가 익숙해서 이대로 쓰겠습니다)의 1962년작 동명의 단편소설에서 따왔음을 보그가 대놓고 밝혔지요. "예술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저택에서 폭도들의 침입에 맞서며 살아가는 백작 부부에 대한
그 남작가의 단편들이 상당수 그렇듯 어떤 분명한 줄거리보다는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로 읽는 것에 가까운데, 앞서 '주최측의 자아비판 시도'를 의심할 만 했던 것은 역시 지금이 2024년 5월이기 때문일 겁니다. 로드 액설 부부와 '폭도들' 사이에서 인종/계급/빈부격차 등등 온갖 문제들이
겹쳐 보이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죠, 게다가 멧 갈라 전날인가 전전날까지 콘데 나스트(*미디어 기업; 주최측 중 하나인 보그도 여기서 냅니다. 여기서 내는 다른 유명 잡지로는 GQ와 와이어드, 뉴요커 등등이 있습니다) 직원 노동조합의 처우 개선 시위도 있었다고 하고요.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들 아는데 이런 "드레스 코드"로 행사 치르겠다니 정말 그 60년대 단편소설을 현실에 괴상한 방식으로 되살려내는 것도 아니고요. "시간의 정원"이니까 대충 꽃 모티프들 쓰면 되겠지? 면 너무나 표면적인 풀이가 되어버릴 것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스토피아물을 왜 찾냐 그게 지금 여기인데 - 같은 냉소적인 태도 갖기 쉬울 이 시점에 햄 경이 멧 갈라에 가져온 "이야기"는 한 남자 정원사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시간의 정원"같은 냉소적인 주제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다른 무엇("정원사")을
가져온 것이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존 이스텀린 또는 조흔 어스팀흘린. 드물게도 제대로 생애 기록이 남아 있는 18세기 영국 웨일스의 흑인 정원사라고 하지요. 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번 멧 갈라를 준비했다 - 고 아예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고요.
좀 찾아보니, 그 '영국 최초의 흑인 정원사'는 1700년대 대서양 노예 무역 - 노예상들이 서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카리브해 쪽) 노예들을 아메리카나 유럽에다 사고팔던 - 의 희생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떤 이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일고여덟살 때쯤 웨일스 북부
의 어딘가로 팔려갔지만, 영어와 웨일스어를 배웠고 자유민으로 살며 정원사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았던 모양이에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여럿 키우며 젠트리든 보통 사람들한테든 좋은 평 받았던 모양. 이 이야기가 남아 있는 이유는 (백인 남작가긴 하지만) 웨일스 작가가 지역에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수집해 그 정원사 사후 100년쯤이 지나서 출판해서라나... BLM 거치면서 흑인 역사/노예6무역9의 과거사가 재조명되면서 이 정원사의 이야기도 다시금 언급된 것 같습니다. 1700년대 중반 사람임을 고려하면 누가 그렸는지 알려져 있지 않은 저 초상화도 의미가 크죠. 당대의 사회상을 고려할 때
'초상화'가 남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잖아요? 물론 영국이 유럽 대륙쪽에 비해서는 인물화/초상화 쪽에서는 좀 더 느슨한 편이었다고는 합니다만 사진기가 발명되기 한참 전에 특정인의 이미지가 '재현'된다는 것은 꽤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BLM 거치면서, 첼시 플라워쇼
2023년에는 이 정원사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웨일스 출신 남자 흑인 시인이 "The Gardener" 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햄 경의 이번 코트 안쪽에 인용된 게 그거.
그러니까 지금 저 백인-기득권-상류층-망해가는 구세계-etc를 다룬 이야기를 주제로 제시했는데 거기에 흑인-노예였지만 자유인이 된-신분따위 무관한-나아지는새로운세계를 이야기해야만 하게끔 한 셈이 됩니다. 출제 의도에 맞는 답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답안의 퀄리티가 이쯤 되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레벨이 된다는 느낌도 약간은 있어요. 왜냐하면 디테일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더 흥미로워지기 때문에.
3. 공예와 예술로써의 패션
결국 옷은 입는 건데 뭘 그렇게까지, 라고는 하나 어떤 자리에서의 옷은 자기-표현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움직임을 제한하는 옷들은
아무리 보기에 아름다워도 사탕껍데기같이 포장지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그걸 입은 사람을 위한 옷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이번 멧 갈라에서도 그런 6옷9 좀 있었죠.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는 수준이라니 그게 사람 입으라고 만든 거냐...). 어쨌든 갈라 디너같은 자리는 '일상'은 아니니까. 이런
"잘 차려입어야 할 자리"를 위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공을 들일 것인지-도 또다른 포인트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햄 경과 스타일리스트 에릭 맥닐, 버버리의 디자이너 다니엘 리를 비롯한 이번 햄 멧 갈라 팀(...)은 사전조사뿐 아니라 답안 작성 문제에서도 꽤나 공을 들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디테일!!!!! 말입니다!!!!!!!!! 이런 건 원래 잘 챙기는 편이잖아 전문가들하고 협업하는 거고- 라고는 하나 그래도 정말 이렇게까지 챙길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햄 경이시다.
버버리의 치프 크리에이티브 오피서이기도 한 다니엘 리가 밝히기를 20명으로 구성된 팀이 2주간 손으로 작업하고 마지막 마무리는 주말 동안 뉴욕에서 했다는데 흑인 역사 속 꽃의 언어를 활용했다고 밝힌 점이 재미있었어요. wwd.com/fashion-news/d…
#인용 "embroidered with periwinkles for endurance, yucca for eternity and protecting restless spirits, daffodils known as ‘pass-along’ flowers for their hardiness, and cedar branches for everlasting life"
페리윙클, 유카, 수선화, 백향목(cedar라고 불리는 게 맞지만 저 의미라면 cedar of lebanon일 듯).
그리고 이제 기가막힌 보석류 선택이 더해지는데... 저 '가시 덩굴' 모티프에서 수난-상징을 읽어내는 것은 비-크리스트교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도 쉽습니다. 직관적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걸 금빛으로 풀되 머리장식이 아니라 목걸이인 거죠. 복합적으로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부분이기도.
6노예 무역9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어요 가시-모티프를 그래서 당사자도 강조했다고 봐. 하지만 그 "정원사"도 평생 노예로 산 게 아니잖아요? 그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역경을 딛고 승리를 거둔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건 아마도 진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선택과 배치. 제가 과잉-해석을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고대 왕들이 가지고 있던, (철 성분 많은 운석에서 얻은)'별에서 온 철'로 만든 검이 생각난다고. 그런데 이제 진주의 우아함을 더하는거죠. 하지만 반대쪽 손목에는 가시 모티프의 팔찌가 있다. 그 대비.
공예와 미술/예술의 경계 상당히 모호하고, 산업화/대량생산 이후에는 "디자인"으로 분화되면서 더 애매해진 감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공예"의 영역은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당장에 패션계에서 그렇게 쳐 주는 오트 쿠튀르 - 문자 그대로 "고급 의상" - 도 사실 솜씨 좋은 사람들의 솜씨 없이는 성립
4. "더 알아보기"
그간 해밀튼이 F1의 유일한 흑인 남자 드라이버로서 해 온 것들이 있고, (특히 2019 이후로)말해 온 것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당사자에게도 쉬운 결정들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인용한 트윗에 언급된 팟캐스트에서 좀 자세하게 그때 얘길 해요.
알아보기 쉬우라고 아예 제목까지 달아 놓는 정도의 배려 아닌 배려 ... 이거 미국 영화 [뉴 잭 시티](1991)의 한 장면이라는데요. 제가 흥미롭게 여긴 지점은 이거 마약범죄물;인 모양이라서임. 몇 년 전에 새클러 집안 기부금 문제로 instagram.com/p/C6rE7PcRHtA/…
유수의 박물관들 둘러싸고 좀 시끄러웠었거든요. 메트로폴리탄도 포함이었음. 퍼듀 파마의 오피오이드 스캔들이라 하면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흑인 문화의 재현 etc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백인들 불편할 수 있을 이야기도 직/간접적으로 꺼내오는 셈이지 않은지.yna.co.kr/view/AKR201905…
메이플소프는 시대적 금기/차별/섹슈얼리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남자 사진작가였는데, 죽은 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도 종종 논란이 될 정도의 '센' 작업들로도 유명함. 그남이 사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던 큰 계기 중 하나가 당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로 있던 사람한테서 받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였어서 메츠랑 연관이 있다면 있지요. 특히 1970년대 이후 그남 사진들 두고 디오니소스이면서 아폴론적인 특성을 동시에 다 구현하는 작업같다 썼던 게 누구였더라 단토였나. 생전 마지막 전시명도 'The Perfect Moment' 였나 그랬을걸요.ropac.net/ko/artists/59-
5. 마무리
사실 제가 더 덧붙일 것도 없이 Rashi 선생님께서 이미 잘 정리해주셨기는 합니다. 다시한번 인용을. 패션 쪽에 조예가 깊으신 분답게 그 시각에서 살핀 의견.
그러니까 햄 경이 자신의 영향력을 가지고 풀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메시지를 가장 크고 가장 또렷하게 표현하는 모습과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남이 가장 잘 하는 것은 레이싱이고, 저는 - 그리고 아마 이 긴 타래를 여기까지 읽으셨을 당신도 - 그남이 앞으로도 놀라운 순간들을
서킷에서 보여 줄 거라 생각하지만. 그 놀라움을 서킷 안으로 한정짓지 않는 점이 흥미로워요. 종종 제가 하는 이야기, "큰 드라이버가 되셨군요"는 아주 농담만은 아닌 것. 이 하룻밤의 행사에 참여하며 준비하고 보여준 것들 중 일부만으로도 이만큼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만큼의,
도대체 저게 뭐야? 왜 저렇게 한 것임? 무슨 뜻인데? 이런 걸 알아서들 찾아보게 하고 해석해보게 하고 사람들이 이야기해보고 싶어지게 하는 점을 주목하게 됩니다. 꿈꿀 수 있는 가장 큰 꿈들을 꾸고 그것들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보라는 이야기가 그냥 PR용 입에 발린 말같진 않단 말이에요?
설령 그렇더라도, 그 안에서 진심이 느껴진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고 그 재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점은 호평할 만합니다.
시간의 정원에 다시한번 새로운 꽃을 피게 만들 정원사가 등장했는지도 모르죠. 기존의 저택은 폐허가 되든 말든. 이제껏 '폭도들'이라
여겨졌던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 '높으신 분들'이 더 문제였다는 것도 다시 꽃이 피고 지금 심은 묘목이 큰 나무가 되었을 즈음엔 알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답니다.
예쁘단 얘기도 깜빡했더라 제스처라든지 말투라든지 이런 미디어-대하기 태도들도 트랙사이드에서 보이는 것과 살짝 다른데,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의 햄 경 버릇들😅에서 나오는 차이임을 팀엘에이치 여러분들께서는 알아보셨으리라 생각하고... 뭐 그렇습니다.
이 타래 다 보시고도 여기까지 보시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실 이야기같긴 한데 (....) 햄 경은 부계가 흑인, 모계는 백인. 라스트네임은 카리브해 서인도제의 노예농장주에게서 유래했다고. 거슬러올라가면 저 라스트네임도 대서양 노예6무역9이 남긴 흔적인 셈이죠.
부계 쪽 할아버지가 그레나다 출신이고 영국 이민자(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사시다가 햄 경 5챔하던 그 주말에 돌아가심 ) 아버지(앤서니 씨)가 영국 이민 1.5세대쯤. 이 맥락에서 멧 갈라 2024 드레스코드와 John Ystumllyn이란 정원사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theguardian.com/sport/2018/oct…
저 자리에서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정치적인 선언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올해 GQ가 그남에게 붙인 "F1-transcending powerhouse" 란 호칭(?) 꽤 어울리지 않는지. gq.com/gallery/gq-glo…
제가 맥라렌이라는 팀을 응원하지만 드라이버 개인으로 두면 해밀튼이란 드라이버에 마음 꽤 쓰고 있고(=우리 집 밤톨이었는데, 도 물론 작용한다) 그 두 팩터와 별개로 또 메르세데스를 좋게 보는 편임은 제 트윗 좀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거고. 그리고 외양간헤이터고요.
이 쿠션아닌 쿠션을 대고 두드리는 소수의견: 저는 올해 메르세데스가 러셀에 우선권 두고 운영 중이라고 해도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임. 충분히 그럴 수 있음. 이 시점엔 서로의경쟁을보장함 운운이 의미가 없음. 일단 챔피언십 1위 경쟁중이 아닌데다가. <떠날 사람> 챙기는 집은 없습니다. 기본임.
이건 브래클리 팀 - 그러니까 현 메르세데스 - 에 관심 두고 지켜봐오신 분들이라면 바로 아실 거 같은데 그전에 제가 봐 온 엪1의 일반론적 경향을 보면 0)팀메이트는 동료이자 최악의 적이며 1)모든 팀 프린시펄은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2)팀 프린시펄의 이익과 팀의 이익, 드라이버의 이익이
나도 사람이라 최근 일이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오고 그래서 지금 메르세데스 헤매는 게 약간 당황스럽기는 한데, 예상 못 한 바는 아니거든? 대규모 규정 변화 시즌이니까. 2009시즌 초반 맥라렌이나 페라리 기록들 보시면 많은 생각이 드실 것.
그런데 왜 내가 파파야 어쩌고라면서 브래클리 광인들을 그렇게 신뢰하냐: 지난해의 세꼭지별을 봤기 때문입니다. 규정 변화(2020/2021은 명백한 메르세데스 타게팅이었음) 직빵으로 뚜드려맞아 프리시즌테스팅을 조지고 시즌 초반 1/3 이상을 밀리면서도 기어이 뒤집어서 컨챔을 땄다. 그걸
개발 토큰 안 쓰고 메이저 업데이트는 실버스톤 한 번(엔진 포함해도 브라질 한 번 추가)으로 했다고. 어떻게든 하는 드라이버가 있다면 어떻게든 하는 팀도 있구나, 를 보았다고 생각. 그러니 올해도 어떻게든 하겠죠. 테스팅 때 데이터 확보 못 한 것도 아니고.
2021시즌 중반에 여엉 잘 안 풀릴 적이 출근 룩은 끝내줬지 다 비쳐보이는 상의에다가(...). 후반에선 터키 때의 치마 두르고 왔을 때가 제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출근길 패독의 공작새도 멧 갈라에서는 톤 앤 매너 맞추어 오히려 단정하게 입었던 게 뿜김 +25%. 뭐 그것도 사실 단정했냐 하면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