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얘기 그만하려 했는데 팔로워가 배로 늘어났고 늘어난 팔로워분들은 지브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거란 생각에 오래간만에 지브리 영화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해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형적인 ‘노력하는 천재’로 초기작들을 보면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많이 따왔습니다. (독창성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뫼비우스의 <잉칼>입니다.
이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알게 된 뫼비우스는 ‘일본에서 자기 정통성을 이은 자가 나왔다’며 환영했고, 딸의 이름을 ‘나우시카’로 지었다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쇠퇴해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도 그런 모티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마녀는 대를 이어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묘사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습니다. 키키만 해도 ‘하늘을 나는 거’ 외의 재능은 없죠. 과거와 달리 마녀의 수도 많지 않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사실 <이웃집 토토로>가 성공이라고 하기 힘든 결과를 맞은 이후 슬럼프에 빠져 본인은 연출에서 빠지고 후계자 양성에 힘을 쓰려 했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도 신인에게 맡기려 했던 작품이고요.
하지만 신인이 작품 진행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맞게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제작되었습니다. 결국 등 떠밀려 만들게 되었지만 이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키키에게 힘을 주는 화가의 이름은 ‘우르슬라’, 우르슬라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장 존경한다 밝힌 판타지/SF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오마주입니다. <어스시의 마법사>로 가장 유명한 작가기도 하지요. 캐릭터 디자인도 젊은 시절의 어슐러를 빼다 박았죠.
<모노노케 히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코다마 하나. 이 코다마가 훗날 <토토로>가 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랜 동료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미야자키 하야오가 수용했다고 하네요.
사슴신이 어째서 ‘사슴’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만이 알겠지만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서기에는 ‘진나라가 사슴을 놓치자 천하가 사슴을 쫓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진시황에 대한 평이죠. 여기서 사슴은 ‘불로불사’의 은유리자 ‘권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슴신을 뒤쫓는 배후에는 사실 ‘천황’이 있습니다. 에보시가 대놓고 ‘미카도(덴노의 별칭)’를 언급하는데, 일본의 국왕이 신을 죽이고 그 신성성을 얻어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 <모노노케 히메>에 숨겨진 배후인 셈입니다. (그리고 왕은 사슴신을 죽이는데 기어코 성공하긴 합니다.)
이런 배경에는 무로마치 시대(하극상이 난무했던 시대) 이해 등이 필요합니다만... 우리는 거기까지 파고 들 필요는 없겠죠.
<모노노케 히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일본의 소수민족 ‘아이누족’의 기원 설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흰 개(늑대)가 인간에게 시집을 와서 자식을 낳으니 곧 아이누 족이 되었다는 것인데 한국으로 치면 단군 설화 쯤 되겠네요. 이걸 미야자키 하야오가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여 영화로 옮긴 것.
그래서 어떻게 보면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사의 전면 부정이기도 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야마토족이 아이누족을 토벌하면서 영토를 넓혀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야마토족에게 밀린 소수민족들의 관점’에서 일본사를 다시 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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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지금 제가 밤샘과 카페인 각성으로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작성되고 있는 타래라는 걸 미리 밝히고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현재 저는 타이핑을 하고 있는 손가락에 감각이 없습니다.)
2005년, 『닥터 후』가 가장 의식했던 작품은 『해리 포터』였습니다. 이는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직접 밝힌 것인데, 『해리 포터』의 시대에 누가 『닥터 후』 같은 작품에 관심을 가지겠느냐며 닥터 후의 작가가 되는 걸 고사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닥터 후(2005~)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프로덕션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타이틀을 가진 다른 드라마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 시기 모두 <닥터 후>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요. 닥터 후 내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Same Software, Different Hardware!”입니다.
(1) 러셀 후 (2005-2009)
닥터 후를 부활시키고 영국 드라마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는 시기입니다. 쇼러너 러셀 T 데이비스는 이례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던 작가였는데, 그는 영국 중산층의 억눌린 퀴어적 욕망을 다루는 작품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SF 드라마를 발표해 온 작가였습니다.
영국 드라마의 부흥과 쇠퇴에 관한 제 생각과 맞닿아있는 글. 타래에서 셜록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사실 이 진단의 연장선상으로 충분히 논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영국 드라마는 미국적 스케일을 욕망하기 시작하는 순간 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셜록이 그랬거든요.
"아무리 스케일을 키워봤자 영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자그맣고 하찮은 이야기"라는 자각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 저항이 <셜록> 후기 시즌에서 벌어진 일. <셜록>을 <브레이킹 배드>처럼 만들고자 했고, 개인의 이야기가 곧 시대의 이야기가 되는, 그 미국적 자신감을 흉내 내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셜록>의 성공은 미국적 스케일이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셜록은 본질적으로 영국적 소시민성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위대한 건 세계를 구해서가 아니라 지역(주로 런던)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문이 돌고 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좀 멉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터미네이터2>로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헐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하나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미 90년대 시점에서 더 얻을 명성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아진 상태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심해 잠수함 탐험을 좋아했고, 영화를 명분으로 심해 잠수함 탐험을 하기 위해 <타이타닉>을 찍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영화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론의 평소 영화 장르와는 동떨어진 로맨스 영화인 데다, 소재도 관심이 생기지 않는 작품이었거든요.
게다가 <워터월드>라는 영화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한 직후였기 때문에 ‘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폭망한다’는 인식이 생겨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타이타닉도 워터월드처럼 참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