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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0, 2020 14 tweets 4 min read Read on X
미야자키 하야오 얘기 그만하려 했는데 팔로워가 배로 늘어났고 늘어난 팔로워분들은 지브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거란 생각에 오래간만에 지브리 영화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해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형적인 ‘노력하는 천재’로 초기작들을 보면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많이 따왔습니다. (독창성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뫼비우스의 <잉칼>입니다. ImageImage
이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알게 된 뫼비우스는 ‘일본에서 자기 정통성을 이은 자가 나왔다’며 환영했고, 딸의 이름을 ‘나우시카’로 지었다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쇠퇴해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도 그런 모티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마녀는 대를 이어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묘사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습니다. 키키만 해도 ‘하늘을 나는 거’ 외의 재능은 없죠. 과거와 달리 마녀의 수도 많지 않습니다. ImageImage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사실 <이웃집 토토로>가 성공이라고 하기 힘든 결과를 맞은 이후 슬럼프에 빠져 본인은 연출에서 빠지고 후계자 양성에 힘을 쓰려 했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도 신인에게 맡기려 했던 작품이고요. Image
하지만 신인이 작품 진행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맞게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제작되었습니다. 결국 등 떠밀려 만들게 되었지만 이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Image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키키에게 힘을 주는 화가의 이름은 ‘우르슬라’, 우르슬라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장 존경한다 밝힌 판타지/SF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오마주입니다. <어스시의 마법사>로 가장 유명한 작가기도 하지요. 캐릭터 디자인도 젊은 시절의 어슐러를 빼다 박았죠. ImageImageImage
<모노노케 히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코다마 하나. 이 코다마가 훗날 <토토로>가 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랜 동료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미야자키 하야오가 수용했다고 하네요. Image
사슴신이 어째서 ‘사슴’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만이 알겠지만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서기에는 ‘진나라가 사슴을 놓치자 천하가 사슴을 쫓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진시황에 대한 평이죠. 여기서 사슴은 ‘불로불사’의 은유리자 ‘권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Image
사슴신을 뒤쫓는 배후에는 사실 ‘천황’이 있습니다. 에보시가 대놓고 ‘미카도(덴노의 별칭)’를 언급하는데, 일본의 국왕이 신을 죽이고 그 신성성을 얻어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 <모노노케 히메>에 숨겨진 배후인 셈입니다. (그리고 왕은 사슴신을 죽이는데 기어코 성공하긴 합니다.)
이런 배경에는 무로마치 시대(하극상이 난무했던 시대) 이해 등이 필요합니다만... 우리는 거기까지 파고 들 필요는 없겠죠.
<모노노케 히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일본의 소수민족 ‘아이누족’의 기원 설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흰 개(늑대)가 인간에게 시집을 와서 자식을 낳으니 곧 아이누 족이 되었다는 것인데 한국으로 치면 단군 설화 쯤 되겠네요. 이걸 미야자키 하야오가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여 영화로 옮긴 것.
그래서 어떻게 보면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사의 전면 부정이기도 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야마토족이 아이누족을 토벌하면서 영토를 넓혀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야마토족에게 밀린 소수민족들의 관점’에서 일본사를 다시 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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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7, 2023
원트윗을 작성하신 분의 말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와 안노 히데아키는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른 거지, 성실하다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실함과 대비되는 진짜 라이벌(?)은 따로 있었는데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평생의 파트너인 ‘다카하타 이사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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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강머리 앤>, <반딧불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 걸출한 작품들을 남기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발전에도 엄청나게 공헌한 다카하타 이사오였지만, 그의 유일한 약점은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나머지 상당히 게을렀다는 겁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 연대표만 살펴 보아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생산성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새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없는 데다가 일단 일에 들어가면 완벽주의 경향까지 강해져서 작업 속도가 엄청 느린 편이었습니다.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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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4, 2023
오늘부터 이야기 할 작품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드립니다. 이 타래는 특성상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아직 작품을 보지 않았고 앞으로 볼 의향이 있는 분들은 타래를 뮤트해 주시기 바랍니다. Image
# 제작배경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작품에 앞서 그가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은퇴를 선언하게 된 배경을 하나 말씀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은퇴를 선언하게 된 것은 〈바람이 분다〉를 만들면서 기력을 모두 소진해버린 탓도 있지만, Image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73살이 되면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73살에 돌아가셨거든요. 이는 추측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벼랑 위의 포뇨〉를 만들 때부터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불러다 종종 불러다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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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0, 2023
(미야자키 하야오:)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하게 사는 게 목적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니. 저는 그 말이 정말 납득이 안 가요. 정말로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평소에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보통 그렇지 않나요? Image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인생에서 기분 좋은 일도 별로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런 걸 인생의 목적으로 가지며 살아간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있잖아요. 비행기의 설계자라던가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하는 일이 선이고,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시대의 풍파 안에서는 전쟁의 앞잡이가 되거든요.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상처 받는 일은 생겨요. 인생은 그 자체로 저주받은 꿈입니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꿈을 꾸지만, 절대 의도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죠. 인간의 꿈은 아름답지만 전부 저주받은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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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2, 2023
이번 주말에는 <어드벤처 타임> 일타강사를 자청하며 어드벤처 타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정확히는 어떤 에피소드, 어떤 장면에서 버블검과 마셀린이 사귀기 시작했는지를 정확하게 밝혀낼 건데요, 놀랍게도 둘이 연애를 시작한 지점은 본편에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Image
이들은 화면 밖에서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사랑을 고백한 순간은 화면 밖에서 이루어졌을 지언정,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은 어드벤처 타임의 본편 속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 주말에 뵈요! Image
[Chapter 1. 전설의 시작]

본격적으로 버블검 공주와 마셀린의 관계에 대한 타임라인을 정리하기에 앞서, 이들이 팬들 사이에서 엮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짚고 가야겠습니다. 이들이 엮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3x10 <What Was Missing>에서 시작됩니다. 정확히는 이 에피소드에 수록된 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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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7, 2022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보면서 이야기 구성의 타로의 여정을 닮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원작 게임에서 타로가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더군요. 그렇다면 이 애니메이션, 타로의 여정을 참고했을 개연성이 높겠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타로의 여정을 따르나 살펴봅시다.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첨부한 이미지는 제가 사용하는 마르세유 덱을 사용하나, 애니메이션 구성을 보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라이더 웨이트 덱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익숙한 이미지로 설명하겠지만, 라이더 웨이트 덱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세요.
1화 - 기대와 실망

0번 바보, 1번 연금술사(마술사)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인 ‘데이비드’가 등장합니다. 무언가를 상실한 ‘바보’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보는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끝마치고 ‘연금술사’로 거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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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6, 2022
배드울프 스튜디오 내 의문의 계열사 ‘후니버스1’에 줄리 가드너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줄리 가드너는 러셀 T 데이비스와 함께 2005-2009년 이끌었으며, 닥터 후 부활의 숨은 주역이기도 합니다.
이 ‘후니버스1’이 앞으로 닥터 후 전반을 컨트롤하는 스튜디오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ImageImage
제작자 ‘줄리 가드너’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다면 닥터 후 출연진들이 만든 <닥터 후>의 성공을 기념하며 제작한 축하 영상을 보시면 대강 알 수 있습니다. 닥터 후를 가족 드라마로 부활시키자며 러셀 T 데이비스를 끌어들인 장본인.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노래에서 언급되는) 줄리 가드너의 업적들은 대체로 사실이며 러셀 T 데이비스의 자서전 <Writer’s Tale>에서 확인 가능한 내용들입니다. 닥터 후에 출연할 이유가 없었던 깜짝 스타 도나 노블을 메인 컴패니언으로 데려오지 않나, 카일리 미노그마저 데려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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