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하라 쿠니히코가 산케베츠 불곰 사건을 가져온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잔혹동화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이야기임을 분명하게 못을 박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산케베츠 불곰 사건의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의 근대화 • 제국주의화에 따른 '개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의 이미지는 유리쿠마 아라시를 지배하고 있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유리쿠마의 배경 레이어에는 항상 '개발'이 존재합니다. 이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개발' 즉 근대화가 만들어낸 산물이 바로…
'학교'와 그 학교를 지배하는 시스템인 '투명한 폭풍'입니다. 학교는 근대화의 상징이며 교육을 통해 내면을 만들어내는 기관입니다. (과장해서 나아간다면 '군국주의'와도 연결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지배하는 시스템 '투명한 폭풍'은 근대화 • 제국주의화의 결과물입니다.
'학교'는 '문명'을 명분으로 문명과 자연을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자연' 즉 야만(=곰)을 배제하고 문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투명한 폭풍'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하지만 이 투명한 폭풍이 주도하는 학급 재판이라는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동물 재해 사건인 '산케베츠 불곰 사건'보다도 야만적입니다. 산케베츠 불곰 사건의 본질에 '개발'이 있었듯, 투명한 폭풍도 '개발'이 만들어낸 결과요, 그 결과란 재난입니다.
'투명한 폭풍'이라는 시스템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일본의 공기 문화입니다. 개성을 가진 채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악'으로 간주되어 '심판'됩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하나, 이 시스템이 향하는 곳은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야만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