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가둥 Profile picture
10 Jun, 284 tweets, 53 min read
섫의 안전벨트가 스르륵 말려 올라가고, 그거 보더니 따라서 안전벨트 풀려고 하는 뽀. 근데 그 손이 버튼 누르기 직전에 섫이 잡아채서 깍지 껴버림. 섫 지금 블랙아웃 상태에서 간신히 이성이 깜빡거리는 중임. 마지막 긴급신호 마냥. 근데 뽀까지 안전벨트 풀어버리면 진짜 돌이킬 수 없을것 같음.
뽀랑 깍지낀 손 허벅지 위에 대고 길게 한숨 내쉬는 섫. 뽀는 언니 얼굴 굳어진거 보고 오토바이 때문에 많이 화났나 생각함. 안전벨트도 못풀게 하고. 혹시 많이 급한건가. 집까지 올라가는 것도 힘든가봐. 당장 하고싶은가. 섫이 뭘 참고있는지는 생각못하는 아기채소. 혼자 그렇게 결론 지어버림.
차 썬팅도 되어있잖아.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나도 쪼끔 더 하고 싶으니깐. 그 전에 연애할 때는 키스하는거 그저 그랬고, 오히려 느낌 이상한적도 있었는데 섫이랑 하는건 전혀 달랐음. 사실 우리 순딩이..하고싶은데 그 때마다 말하기 부끄러워서 참은적 많을듯. 언니랑 하는건 다 좋은 지엱이라. Image
근데 지금은 언니도 더 하고 싶어하는것 같고. 여러모로 용기를 얻은 뽀. 앞유리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섫 블라우스 살살 당김. 섫은 머리 속에서 망가진 브레이크 수리 중이었는데 뽀가 불러서 응? 하며 돌아봄. 근데 생각보다 뽀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있어서 놀람.
지금 이래저래 평소처럼 뽀 놀려줄 여유가 없는 섫. 그냥 눈만 깜빡이며 쳐다보겠지. 뽀는 한뼘까지 다가와놓고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멈춰있음. 보통 먼저 키스하는건 섫이었고, 저는 받아주기만 하면 됐는데 막상 먼저 하려고 하니까 머리가 하얘짐. 말하고 해야하나. 언니는 어떻게 했었더라.
보통 섫은 말없이 했던것 같음. 그냥 한번씩 분위기가 이상꾸리 해질 때마다 정신 차려보면 섫한테 허리가 잡혀있거나, 그 위에 포개어 앉아 있었음. 근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는 아닌것 같은데. 곧 키스할 것처럼 다가와놓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뽀. 섫은 얘가 지금 뭐하자는 건가 싶음.
자세나 뉘앙스가 키스 하자는것 같긴 한데, 눈빛에선 너무 의도가 안보여서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겠음. 얼굴에 뭐가 묻었나. 수리 중이던 브레이크는 이미 뒷전인 섫.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면서 뽀 눈코입 하나하나 뜯어봄. 아. 귀엽다. 데이트한다고 평소보다 조금 화장 진해진게 너무 귀여움. Image
이런 지엱이를 두고 취향을 따지고 있었다니. 어떻게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 새삼 과거의 제가 이해가 안되는 섫. 이미 뽀를 마음에 둔 시점부터 섫 취향 다 무너지고 거기에는 온전히 뽀만 남았음.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눈에 씌여졌던 가림막이 사라지고 나니 뽀가 마냥 예뻐 죽겠는 섫.
섫 사실 이 전까지는 연애할 때 그렇게 팔불출도 아니었고, 자존심 세우느라 작은 마음도 전부 재가면서 만났었음. 근데 뽀랑 만나면서는 물론 마음의 무게도 달랐지만 연애 스타일도 완전 바뀌었을듯. 예쁘면 예쁘다, 귀여우면 귀엽다, 좋으면 좋다. 이제 그런거 재지않고 바로 얘기함.
생각에도 유통기한이 있었음. 목소리로 나와서 상대한테 전달될 수 있는 유통기한. 그걸 지나서 뱉으면 미련이 됐고, 그걸 뱉지 않고 묵히면 속에서 상해버리는 법이었음. 섫은 항상 유통기한이 지나서 썩어버린 생각들을 마음 한구석에 쌓는게 습관이 된 사람이었겠지.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뽀를 만나고서도 곧바로 고쳐지진 않았지. 그래서 뽀를 많이 아프게 했고, 한발 늦은 미련만 줄줄 흘려야 했던 섫. 그렇게 크게 무너지고 뽀를 만나서 그런지 이제 섫은 더이상 생각을 쌓아두지 않음. 뽀가 부끄러워서 몸서리를 치더라도 생각나는 애정을 전부 보여줌. 가장 싱싱할 때. 바로 지금처럼.
"지엱아"
"..응?"
"왜 이렇게 예뻐?"
"....."
"..귀엽다"

얼굴을 훑는 시선에 다정함이 가득해서, 목소리에는 애정이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엄지발가락부터 서서히 전기가 도는 느낌인 뽀. 손이 근질거리고 입이 달싹거려서 미치겠음. 어떡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언니는 이럴 때 뭐라고 했을까. Image
뽀가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느낌이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섫. 그 와중에도 부끄럽긴 했는지 귀 빨개지는거 보니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감. 구름같은 몽실거림이 가득 차서 열기가 슬슬 식기 시작하는 섫. 그래. 지엱이가 이렇게 귀여운데 급할 필요가 뭐 있어. 천천히 하면 되지. 어차피 내껀데.
"..키스할래"

근데 이건 아니잖아.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별안간 뽀 입에서 나온 말 듣고 이 까드득 씹는 섫. 뽀는 아까 섫이 했던말 생각나서 그대로 돌려준거임. 그렇게 말해놓고도 먼저 하는건 어려운지 섫 옷깃 잡고 당기는 뽀. 그러면서 시선은 섫 입술만 보고있음. 아. 지엱아. 너 진짜. Image
몽실몽실 피어났던 구름에 용암이 부어졌음. 수리 중이던 브레이크도 녹였고, 섫 마음도 다 녹았음. 이성이 끊기는걸 넘어서 머리가 멍해지는 섫. 속에서는 천불이 나는데 생각이 고장난것처럼 뚝 끊어짐. 키스할래. 그 네글자가 머리 속을 돌아다니다가, 심장에 머물다, 아랫배를 간질임.
급하게 두손으로 뽀 얼굴 붙잡고 다가가는 섫. 근데 딱 입술이 맞물리기 전에 멈춤. 지금까지 키스는 많이 했지만 뽀가 이렇게 먼저 말해온건 처음임. 마음같아선 키스고 그 이상이고 다 하고 싶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는 섫.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눈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한뼘 멀어짐.
뽀는 당연히 키스할줄 알았는데 아무 느낌이 없어서 감았던 눈 뜨겠지. 반쯤 뜨여진 눈 안에는 묘하게 웃고있는 섫이 있었음. 능글능글 입꼬리. 번뜩이는 눈. 무언가 원하는게 있을 때 짓는 표정. 저를 놀리려고 할 때 나오는 얼굴. 뽀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피하려는데 섫이 허리 붙잡고 막음. Image
동굴 안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천년묵은 구미호 앞에서 총총 뛰던 아기토끼가 제대로 잡혀버렸음. 그러니까. 그렇게 뛰지 말았어야지. 눈빛으로 말하는 섫에 침만 꼴딱 삼키는 뽀. 뜨거운 시선이 얼굴부터 목까지 천천히 훑어오는데 기분이 이상함. 옷을 입고 있는데도 어쩐지 다 보여지는 느낌임.
노골적인 욕구가 그득한 섫 보면서 속옷 뭐 입었더라.. 되새겨보는 뽀. 오늘 익혀질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애기채소. 곧 하겠다 라는 느낌은 은연 중에 있었는데 그게 오늘인가 싶음. 근데 여기는 차 안인데. 차에서 그러면 불법 아닌가. 풍기문란으로 잡혀가면 어떡해. 아직 언니랑 못한게 많은데.
이미 두다리 세다리도 더 먼저 건너가버린 뽀. 벌써 혼자 일까지 다 치루고 그 이후를 걱정하고 있음. 우리 솔직한 아기채소..아직 흙도 안 털어놓고 새싹비빔밥이 맛있을까 걱정하는 중. 뽀가 엄한 생각하느라 점점 더 멀리가고 있을 즈음 섫이 입술에 쪽, 쪽 짧게 뽀뽀함. 나한테 집중하라고.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뽀. 눈 동그랗게 뜨는거 보고서야 만족스럽게 웃는 섫. 

"언니 앞에 두고 다른 생각해?"
"아니야아"
"그럼 내 앞에서 내 생각해?"
"....."
"무슨 생각 했는데?"

이건 도저히 말 못하겠음. 생각했던거 말로 다 뱉다가는 열나서 기절할것 같음. 입술 꾹 깨물고 고개 젓는 뽀. Image
섫은 뽀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던건 모르고 그냥 또 귀여운 생각 했구나 싶음. 언니 너무 좋아. 언니랑 키스하고 싶어. 그런거. 사실 뽀는 키스 그 이상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섫은 어차피 그거 듣는게 목적이 아니었음. 다른 목적이 있었거든. 계속 고개만 젓는 뽀한테 다른 미끼를 던지는 섫.
"말하기 싫어?"
"...응"
"그럼 키스해줘"

보통 키스하면 섫이 급해서 리드했고, 뽀는 맞춰서 받아주거나 살짝 움직이는 정도였음. 섫은 뽀가 아직 어색해서 그렇거나, 저만큼 애가 닳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별말 안했음. 지금도 딱히 불만이 있는건 아님. 벅차게 따라오는 뽀도 충분히 좋아.
근데 그냥. 먼저 키스하자고 얘기하는거 보니까 또 그 짖궂은 마음이 차올라서. 괴롭히고 싶어서. 제 입술 톡톡 두드리면서 말하는 섫. 뽀는 그거 듣고 멈칫하는데 섫이 아니면 무슨 생각 했는지 말해달라고 선을 그어버림.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뽀한테 응? 하고 웃으면서 1cm 더 다가오는 섫.
이제까지 봐온걸로 따지면 섫은 이렇게 나온 이상 절대 져줄 사람이 아님. 어떻게든 둘 중 하나는 받아내고 말거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뽀 무슨생각 했는지 말 못하겠음. '언니랑 그런거 하는 생각했어' 이건 진짜 안될것 같음. 결국 눈 굴리면서 고민하다가 무작정 입술부터 들이대고 보는 뽀.
닿자마자 섫 입술 호선 그리는거 느껴져서 더 부끄러움. 근데 그렇게 부딪혀놓고 그냥 진짜 입술만 대고 있는 뽀. 섫은 눈 한쪽만 뜨고 그런 뽀 구경하다가 살짝 입술 떨어트리고 말함.

"지엱아"
"...."
"뽀뽀말고"
"....."
"키스는 언제 해?"

웃으면서 말 끝내고 혀로 뽀 윗입술 핥아 올리는 섫. Image
그 자극이 온몸에 퍼져서 이번엔 진짜 욕구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뽀. 시트 쥐고있던 손으로 섫 목 끌어당겨서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 밀어넣음. 거의 매달리듯 끌어안고서 서툴게 입안을 헤집는 뽀가 사랑스러운 섫. 몸에 힘 뺀채로 뽀가 움직이는대로 다 받아줌.
그러다가 한번씩 장난치듯이 혀 툭툭 건드리면 움찔거리게 귀여워 미치겠음. 
미간까지 구겨가며 열심히 키스하는건 귀여운데, 무의식인지 어깨를 꽉 붙잡는 손길은 또 야릇함. 아. 참기 힘드네 진짜. 무서운 줄도 모르고 품에까지 안겨오는 아기토끼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천년 구미호.
그렇게 한참 받아주고 있다가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밀려오는 섫. 열심히 움직이는 뽀 턱 붙잡고서 반대로 몰아붙이기 시작함. 갑자기 밀려드는 느낌에 주춤거리면서 목만 더 쎄게 끌어안는 뽀. 섫이 일부러 입술에 틈 만들면서 움직이니까 야릇한 소리가 자꾸 들려서 등 뒤로 작은 주먹 꽉 쥠.
사람 소리 들리면 멀어졌다가, 지나가면 다시 붙어오고. 뽀가 숨 차서 밀어내도 숨 쉴 틈만 주고 다시 키스함. 섫 과감해져서 허리도 막 쓰다듬는데 버겁게 다리만 꼬고있는 뽀. 섫 그 이후 욕심은 한풀 꺾여서 쌓인거 다 키스로 풀어내는 중. 저녁 먹자고 만나서 그것보다 다른걸 먼저 먹는 둘이야.
진짜 만족할 때까지 헤집어놓고나서야 떨어지는 섫. 뽀는 몽롱해져서 숨만 몰아쉬고 있음. 키스 좀 오래했다고 정신 못차리는 뽀 보면서 열기 잠재우는 섫. 배고프냐고 물었더니 멍한 표정으로도 고개 끄덕이는 뽀가 귀여워서 웃음이 가시질 않음. 뽀랑 있으면 저녁 두번도 다시 먹을 수 있을것 같음.
여기서 더 하고 싶어지기 전에 안전벨트 매고 바로 출발해버림. 오늘은 이 정도면 됐음. 뽀가 먼저 키스까지 해줬고, 하고싶은만큼 했음. 가뿐하게 큰도로로 진입하는데 뽀는 혼자서 심각함. 방금 언니가 안전벨트 맬때 순간 아쉬웠어서. 처음으로 키스말고 다른걸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가서.
섫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음. 오늘 뽀한테서 읽어낸 욕구가 안심을 가져다줬겠지. 지엱이도 하고 싶구나. 그게 무엇이든, 나랑 하는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예감이 드니까 급하지가 않은 섫. 언제든 내가 원하는 그 날, 네가 원하는 그 날. 그런 날에 하면 되는거겠지. 당장 내일이든. 일주일 뒤든.
어느정도 정리되면 뽀한테도 솔직하게 말할것 같지. 아까 사실 집에 올라가면 못참을것 같았다고. 그 말하면서 유턴하려고 핸들 꺾는 섫. 그리고 그 꺾어지는 핸들 바라보다가, 섫 한번 바라보는 뽀. 식당 가려면 여기서 유턴하는것보다 직진하는게 더 빠른데. 그 생각과 함께 또 다른 마음이 차올라.
"언니"
"어?"
"아까 유턴 안해도 됐어"
"네비는 유턴 하라던데"

네비도 모르는 길이 있어.
가끔 더 빠른 길이 있기도 해.
그니까.
우리의 역사도 똑같은데.
언니가 보는 네비가 어떨지는 몰라도,
아까 유턴 안해도 됐어.
직진하면 빨랐을거야.
..난 하고싶은데.

그 날부터 둘의 동상이몽이 시작됨. ImageImage
그 날부터 섫은 마음이 급하지 않아서 분위기가 잡히는 날 자연스럽게 해야지 하고 있을듯. 반대로 뽀는 한번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까 계속 궁금하고 그렇겠지. 경험 없는거 아니지만 그래도 언니랑 하는건 처음이니까. 섫도 그런 생각이 밥먹듯이 들긴 하는데 억지로 그걸 위해서 구색을 만들진 않음.
아무래도 전에 가볍게 사람 만나고 했던걸 뽀가 다 알고있으니 그게 신경 쓰이기도 하는 섫. 너무 그런걸로 급한거 티내면 뽀가 혹시라도, 작은 의심이나 불안을 가질까 봐. 뽀가 스킨십 좋아하는 것도 알지만 그거랑 이건 엄연히 다른거고, 일단 제가 일전에 잘못한게 있어서 찔리는 것도 맞음.
일전과 다르다는걸, 전혀 다른 소중함이라는걸 보여주고 싶어서 완벽한 날을 기다리는 섫. 그러다보니 신경쓸게 꽤 많았음. 둘 다 주기를 피해야 하고, 꼭 1박 2일이어야 하고. 섫 그 전에는 그냥 하고싶으면 시간의 틈에서라도 했는데, 뽀랑은 그러기 싫음. 끝나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잠들고 싶음.
그렇게 섫이 길일을 기다리는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뽀는 속으로 슬슬 애가 탐. 키스는 이전보다 더 자주 하는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는 진도가 안나가니까. 분명히 눈빛이나, 가끔 입술 물고 참는거 보면 언니도 하고 싶은것 같은데. 왜 참지. 뭐 때문에 참는거지. 혼자 고민에 빠지는 뽀.
만난 이후로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는 섫을 보면서 스킨십에 애정을 담아내는 사람이라는건 알고 있었음. 언니의 과거 연애? 아기채소 그런거 크게 신경안씀. 언니 키스 잘하는 것도 좋고, 제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주는것도 좋음. 맨날 그걸로 놀려먹기는 하지만.
누가 과거를 쥐고 눈앞에 흔들거나, 섫이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이상 뽀 스스로 형태가 없는 과거를 떠올리면서 힘들어하는 스타일 아님.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 그 경계가 남들보다는 명확한 편이겠지. 그래서 더 이해가 안가. 스킨십도 좋아하는 사람이, 안참아도 되는 상황에 왜 참고 있는지.
혼자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는데 답이 나올리가 있나. 섫도 매일같이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서 "그 날" 을 기다리고 있는데. 분명 목적지는 같지만 둘이 보고있는 방향이 너무나도 달랐음. S라는 침대에 같이 누워서 섫은 E를 보고 있었고, 뽀는 X를 보고 있었음. 둘이 마주보면 모든게 해결될텐데.
근데 섫은 얘기 꺼내는것 자체가 뽀한테 어떤 재촉이 될까봐 말 안하고, 뽀는 먼저 말하는게 좀 부끄러워서 얘기 안함. 그렇게 겉으로 티 안내고 평소처럼 데이트 하겠지. 그러다가 키스가 좀 더 잦아지고 깊어지면서 섫이 캘린더를 들여다볼 즈음, 뽀도 애가 닳았을 즈음. 결국 일이 한번 날것 같지.
뽀가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저녁에 약속이 있던 날. 섫이랑 사귄 뒤로 거의 매일같이 데이트 하느라 친구들 잘 못만났음. 사귄다고 말만 던지고 그 이후 얘기는 안해줘서 친구들이 벼르고 벼르다가 통지한 날이었을듯. 안나오면 죽을줄 알라고. 결국 낮에 언니 만나서 한참 쪽쪽대다가 약속가는 뽀.
낮에 드라이브하고 와서 약속장소까지 섫이 태워다줌. 내리기 전까지 뽀 손잡고 있는 섫.

"술 마셔?"
"아마? 많이는 말구"
"이따 데리러 올까?"
"으응, 괜찮아. 집 갈때 카톡할게"
"카톡말고 전화"
"전화?"
"목소리 듣고 싶어"
"....."
"영통이면 더 좋고"
"....."
"얼굴 또 빨개지네"
"..나 갈게에" Image
사귄지 꽤 됐는데도 이런말에 다 반응하는게 너무 귀엽잖아. 손 놓고 가려는 뽀 차문 잠궈서 못가게 하는 섫. 텅빈 주차장 훑어보고 말함.

"언니 키스 한번만"
"아까 했잖아"
"하기싫어?"
"...그게 아니구"
"이리 와. 한번만 더 해"

그렇게 또 한참 붙잡혀서 키스하다가 결국 약속 5분 늦는 뽀.
이리저리 뽀 입술에 번진 제 립스틱까지 깔끔하게 닦아주고 올려보낸 섫. 거기서 차 출발안하고 친구한테 연락함. 잠깐 나오라고. 섫 애초에 집에 갈 생각 없었고, 뽀 데리고 들어갈거였음. 일부러 얘기 안했어. 그렇게 기다린다고 하면 미안해할게 뻔해서. 운전해야 되니까 친구 카페로 부르는 섫.
그렇게 각자 같은 건물 1층과 3층에서 친구 만나는 둘. 근데 주제는 똑같을것 같지. 그래서 요즘 그 사람이랑 연애 하니까 좋으냐고. 얼굴이 아주 폈다고. 그럼 아메리카노 마시면서 태연하게 턱괴고 고개 끄덕이는 섫. 소주잔 만지작거리다가 아까 키스한거 생각나서 살짝 고개만 끄덕이는 뽀. ImageImage
그럼 친구들은 질색하면서도 신기해할듯. 뽀 친구들은 뽀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랑 연애하는거 처음봐서, 섫 친구는 다른의미로 섫이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랑 연애하는거 처음봐서. 상대방에 대한 질문도 쏟아지는데 섫은 거를건 거르고, 뽀는 대부분 다 대답해줌.
얼마나 좋아? 이런 질문에는 죽을것 같은데? 이딴말로 대답해서 친구 염장 지르더니 그 흔한 예쁘니, 귀엽니 같은 질문에는 네가 알아서 뭐하냐고 선긋는 섫. 프로필에 같이 올린 투샷 말고는 사진도 안보여줌. 닳을까봐 보여주기 싫다는 뻔뻔한 말로 기어이 친구 입에서 욕나오게 만드는 섫. Image
뽀는 딱 반대일것 같지. 언니가 너무 예쁘고 좋으니까 여기저기 막 자랑하고 싶음. 근데 언니한테 꼭꼭 허락은 맡아.

-언니 나이 얘기해도 대?
-직업도 물어보는데🥺
-사진 보여줘도 대?
-예쁜걸로 보여주께!

그럼 친구랑 얘기하다 말고 톡 올때마다 입꼬리 올리면서 답장하는 섫.
-지엱이 하고싶은대로 해

대답은 항상 똑같지. 뽀가 제 사진을 10장 보여주든 말든 상관없고 당장 답장으로 온 하트토끼 이모티콘이 귀여워 죽겠는 섫이라서. 폰 들고 웃는게 소름끼친다고 앞에서 친구가 휴지 던지는데 그거 그냥 맞고만 있는 섫. 이것도 소름돋아. 원래 같으면 욕했을거면서.
항상 모든 일에 기본이 예민함이었던 섫. 친구들한테도 다를게 없었는데 뽀랑 만나고는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했음. 그래도 아까 전처럼 장난친다고 잠은 잤니~? 물어봤다가 싸해져서 쳐다보던거 생각하면 성깔은 그대로 같은데. 이제 진짜 안정된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조금 들겠지.
휴지를 뽑아쓰듯 그때그때 하는 연애가 아니라 진짜 연애를 하는구나. 먼 미래는 몰라도 적어도 한번 쓰고 버릴 일은 없는, 실수로 조금 더러워져도 세탁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는구나. 친구가 좀 대견하단 눈빛으로 보니까 그건 또 귀신같이 알고 너 우리 엄마 아니라고 눈 흐리는 섫.
엄마의 눈으로 보는건 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음. 연애 하는걸 보긴 했는데 그때는 뽀가 그냥 만나자니까 만난다 느낌이었음. 근데 이번에는 짝사랑 시절도 알고, 뽀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훤히 보일 지경이라 뿌듯하면서도 걱정이 들겠지. 왜냐면 친구들도 섫을 알거든. 소문이 좋지 않은 그 선배.
그리고 만나기 전에 뽀 힘들게 했던것도 아니까 더 걱정이 됨. 순둥이가 혼자 상처받으면 어쩌나, 혹시나 놀아나는거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대놓고는 못물어보고 어떻게 지내냐, 어디가 좋냐 이런 식으로 돌려서 떠봄. 친구들은 그 때마다 가감없이 나오는 뽀 대답을 들으면서 불안함을 지워내겠지.
그렇게 친구들도 마음을 좀 편하게 먹을 무렵, 술 겨우 두잔 먹고 취기 대신 용기를 얻은 뽀. 혼자 뭘 골똘히 생각하는것 같더니 갑자기 또렷한 눈으로 대형폭탄을 던짐.

"얘들아"
"왜왜"
"나 언니랑 자고싶어"

그 말 듣자마자 앞에서 술 뿜는 친구..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친구는 입 틀어막음. Image
뽀가 한번씩 뜬금없이 폭탄던지는건 일상이었지만 이건 정말 생각외라 친구들 한동안 아무말도 못함. 얘가 지금 무슨 잠을 얘기하는거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잠이 맞나. 아니, 만난지 꽤 됐지 않나. 그 언니가 가만히 있었나. 얘 지금 그니까. 하고 싶다는거 맞지. 친구 둘이서만 눈빛으로 얘기함.
아직 안잤어? 이것도 이상해.
왜 자고 싶은데? 이건 더 이상함.
뭐라고 말해줘야 될지 모르겠어서 친구들 망설이는 사이에 뽀는 이미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음. 오늘 친구들한테 얘기하다보니 또 이해가 안됐거든. 언니는 나 이만큼 좋아해주고, 나도 그만큼 좋아하는데.
우리는 왜 안자는거지??
전혀 취하진 않았는데 그냥 친구들 앞에 있으니 묵혀놨던 생각이 튀어나온거임.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지. 결론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왜 안할까? 그런 이야기를 TMI 섞어서 쏟아내는 뽀. 친구들은 조용히 들어주다가 혹시 언니가 하기싫은가? 소리에만 고개 저어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닐것 같음. 뽀도 잠깐 생각하더니 아닐거라고 고개 끄덕임. 친구들은 일단 아직 안잤다는것도 의외고, 뽀가 이렇게 앓고 있는것도 의외임. 얘 그 언니 진짜 많이 좋아하나보네. 걱정반 대견함반 섞어서 얘기는 나름 진지하게 들어줌. 가끔 좀 염장이라 귀 막고 싶긴 했지만.
뽀가 얘기하는거 들어주던 친구들은 짧게 대답해줌. 돌려서 한번 말해보라고. 언니 눈치 빠르면 대충 알지 않겠느냐고. 뽀가 워낙 직구 타입인건 알지만 그렇다고 당장 하자고 밀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친구들 얘기 진지하게 들으면서 고개 끄덕이는 뽀. 다짐과 함께 소주 한잔만 더 마심.
그러더니 갑자기 가야겠다면서 짐 챙기는 뽀. 친구들이 놀라서 말리는데 뽀 한번 결심하면 직진형임. 혹시 취했나 싶어서 얼굴 들여다보는데 멀쩡함. 눈빛도 평소랑 똑같음. 얘 맨정신이구나. 맨정신에 미친짓을 하려고 하네. 근데 뽀가 맘먹으면 안물러나는거 알아서 친구들도 못말릴것 같지.
뽀가 아무리 순딩해도 이 정도로 확신하는데는 이유가 있을거거든. 마냥 호구같은 애는 아니니까. 그 언니가 소문만큼 이상한 사람 같지도 않고. 그냥 반쯤 미친 연애를 하는구나 싶어서 친구들도 자리정리 시작함. 뽀는 영통걸까 하다가 옆에 친구들 있어서 전화거는 중. 섫 3초만에 받음.
열심히 말하는 친구한테 손바닥 보이더니 바로 통화하는 섫.

'어 지엱아'
'나 이제 가려구'
'벌써 다 마셨어?'
'웅, 자리 정리하고 있어'
'알겠어 잠깐만'

그리고 통화 중에 친구 폰 뺏어서 먼저 간다고 텍스트 보여줌. 벙찐 친구 어깨 한번 두드리고, 계산하고 휙 나가버리는 섫.
열심히 주차장으로 나오더니 영통으로 전환함. 그거 모르고 계속 얘기하는 뽀한테 화면 보라고 알려주는 섫. 아무생각없이 화면 봤다가 아까 제가 들어온 건물 입구 보이는거 보고 어? 하는 뽀. 화면 반대로 전환되고, 차 범퍼에 앉아서 폰 높게 들고 웃고있는 섫 보여서 언니! 하고 웃는 뽀. ImageImage
왜 여기 있는지, 지금까지 기다린건지. 물음이 떠오르긴 하는데 당장 작은 화면 속에 언니가 너무 예쁘고 반가워서. 그 자리에서 폰 붙잡고 히히 웃는 뽀. 섫도 똑같아. 그 화면 가득한 뽀가 너무 예뻐. 가볍게 웃으면서 말 덧붙이는 섫.

'보고싶어. 빨리 내려와'
'집에 가자'
그럼 알겠다고 끊고 얼른 일어나는 뽀. 친구들한테 빨리 가자고 재촉함. 친구들 거의 등떠밀리듯이 자리 벗어나고, 마음 급해서 계산도 먼저 해버리는 뽀. 엘레베이터 타서도 계속 가방끈 쥐고 웃기만 함. 그러다가 결국 한마디 듣겠지. 그렇게 좋아? 라고. 그럼 더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 끄덕이는 뽀.
1층 같이 온김에 얼굴보고 인사라도 할겸 주차장까지 같이 나갈듯. 어둑한 주차장에서도 섫은 존재감이 확실했음. 차 범퍼에 걸터앉아 있다가 뽀 보자마자 웃으면서 걸어오는데 아우라가 좀 다름. 덩달아 뛰어온 뽀 한번 안아주고 손잡는 섫. 그제야 뒷편으로 시선이 넘어와서 친구들 발견함. Image
"아 지엱이 친구분들이구나"

적당히 정중하고, 적당히 편한 인사였음. 뽀 손 쥐고서 목례로 인사하는 섫. 친구들은 둘이 붙어서 어정쩡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겠지. 뽀는 신나서 제일 친한 친구들이라고 옆에서 쫑알쫑알 얘기하는 중. 섫 그거 듣더니 한발자국 더 다가와서 말함.
"다음에 다같이 밥 한번 먹어요"
"네네 좋아요"
"술도 괜찮고요"

뽀가 보여준 사진보다 훨씬 어른미 넘치는 모습에 친구들 기가 살짝 죽었음. 그런게 다 보여서 일부러 더 순하게 얘기하는 섫. 진심으로 집에 태워다줄까 해서 권했는데 친구들은 이미 뽀가 다짐하는거 봐서 한사코 거절하겠지.
결국 둘이 차타서 집으로 가는데 살짝 시무룩해져서 말하는 섫.

"나 좀 무섭게 생겼나?"
"으응?"
"친구들이 나 무서워하는것 같아"

친구들은 뽀 다짐 이뤄주려고 필사적이었던건데 그게 섫한테는 조금 다르게 보였겠지. 지엱이 친구들한테는 그렇게 보이기 싫은데. 좀 속상하고 그래.
답지않게 눈썹 축쳐진 섫 옆모습 보다가 다시 찬찬히 얼굴 훑어보는 뽀. 첫만남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사귀는 와중에 보니까 전혀 그렇게 안보임. 오늘은 그냥 귀여운데. 눈꼬리 이렇게 내려간거 처음 봐. 또 애정이 퐁퐁 방울져서 올라오는 뽀. 잠깐 신호걸린 사이에 볼에 뽀뽀해버림.
"안무서워"
"....."
"그냥 예뻐"

거침없이 날아온 돌직구에 운전하다가 삐끗할뻔한 섫. 또 귀끝이 뜨거워짐. 옆에 슬쩍 보면 기분 좋은지 웃고있는 뽀가 있음. 거기다가 아까 볼에 닿았던 입술 감촉까지. 아랫배가 살살 당기는 섫.

...지엱아.
너는 날 좀 무서워해야 될것 같은데.
빠르게 캘린더 머리 속에 떠올리고 내일 일정 생각하는 섫. 나도 내일은 카페 안열어도 되고, 지엱이도 과제 다 끝냈댔지. 오늘이 "그 날" 인가. 심장이 기분좋게 쿵쿵거리는 섫. 일단 뽀가 하루종일 밖에 있었고, 술도 마셨으니 도착해서 분위기 좀 봐야겠다 싶음. 뽀는 열심히 돌려말할 생각중.
뽀 자취방에 도착하고,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몸이 조금 닳아서 뽀 손 붙들고 다가가는 섫. 어느날부터 데이트 끝나면 차에서 키스하고 헤어지는게 암묵적인 룰이 됐음. 뽀도 다가오는거 막지 않고 받아주겠지. 자연스럽게 키스하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마음 먹은 섫. 평소보다 좀 더 진득하게 움직임.
뽀도 그게 느껴지니까 움찔하겠지. 묘하게 허리도 더 껴안는것 같고, 뒷목도 만지는것 같고. 입안 다 헤집어놓는 움직임에 점점 이성이 흐릿해지는 뽀. 오늘 이미 다짐을 했고, 언니한테서 풍겨지는게 평소와 달라서. 지금이 딱 그때인것 같아서. 돌려 말하자. 그것만 열심히 되새기고 있는 뽀.
말할 기회만 보고 있는데 섫은 뽀가 그거에 집중하느라 움직임 느려진게 또 마음에 안듦. 나랑 키스하면서 자꾸 딴생각 하네. 허리 감싸고 있던 손으로 등골 살살 쓰다듬는 섫. 그 상태로 더 거칠게 헤집으니까 뽀 집중하고 있던 글자들이 전부 흐려져버림. 입술 틈으로 진심만 뚝 떨어져 나오겠지.
"자고싶어"

그리고 다시 맞물리려다가 그 말 듣고 멈추는 섫. 뽀 입술까지 내려갔던 시선이 반쯤 올라오더니 눈을 쳐다봄. 진심이야? 내가 생각하는 그 말이 맞아? 눈빛이 그렇게 묻고 있었음. 뽀 시트 더듬어서 안전벨트 풀더니 말함.

"..언니랑 하고싶어" ImageImage
거기서 끊어진 키스는 집으로 올라와서, 현관문을 닫자마자 다시 이어졌음. 신발도 제대로 안벗은 상태에서 뽀 문에 밀어넣고 입 맞추는 섫. 지금까지 했던 키스는 다 장난이었다는것처럼 쏟아붓는게 버거우면서도 기대감이 넘실거리는 뽀. 벽에 몰아붙여놓고도 부족한지 쉬지않고 숨이 오고감.
뽀 스스로가 안전벨트를 풀었음. 섫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뽀가 먼저 그래왔다는게, 뽀 입에서 그런말이 나왔다는게 섫을 미치게 함. 당장 만지고 싶어. 그냥 집어 삼키고 싶어. 울리고 싶어. 온갖 밑바닥에 욕구가 한꺼번에 치밀어서 자제가 안되는 섫. 그래도 간신히 이성의 끝을 붙잡고서 얘기함.
"..씻고 와"
"....."
"응? 최대한 빨리"
"....."
"언니 급해"

숨 몰아쉬면서 거의 애원하듯이 나오는 목소리에 뒷목에 소름이 돋는 뽀. 고개 끄덕이면 섫이 허리 끌어당겨서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고, 뽀 바로 옷 챙겨서 씻고 나옴. 빨리, 꼼꼼히. 뽀 나오자마자 섫도 들어가서 씻고 나오겠지. Image
머리 말릴 틈도 없이 시작된 둘의 역사는 느릿하게 시작됐음. 평소 스타일대로 하면 뽀가 버거울까봐 일단 참고 뭐든 부드럽게 움직였던 섫. 정적이고 다정하기만 했던 역사의 한페이지가 끝난 직후, 거칠어지는거 참느라 잇자국까지 나버린 섫 입술 발견한 뽀. 숨 몰아쉬면서도 거기에 살짝 입 맞춤.
"..참지마"

섫이 왜 그랬는지 대충 눈치챈 뽀. 이미 여기서 안끝날건 알고있고, 저도 지금은 더 하고싶고 해줬으면 좋겠음. 끝을 모르고 쌓여있는 섫의 욕망을 전부 받아내고 싶음.

"나 좋아하는거 참지마"

그 말이 섫의 마지막 이성을 뚝 끊어버렸음.
그때부터 섫 진짜 안참음. 만지고 싶은대로 만지고, 입술을 댈 수 있는 곳에는 다 가져다 대고, 움직이고 싶은만큼 움직임. 뭐 하나 바뀔 때마다 뽀 상태 살피긴 하는데 진짜 힘들어보이는거 아니면 안멈춰줌. 뽀는 예상했던것보다 더 안쉬고 몰아붙이는 섫 때문에 베개든 섫 등이든 꽉 잡고만 있겠지.
그러다가 중간에는 자세 확 바꿔서 밑으로 누워버리는 섫. 그러더니 천년 구미호같은 표정으로 뽀 손 쥐고 제 몸 위로 올려놓겠지. 당황해서 가만히 섫 몸만 내려다 보고있는 뽀. 그럼 섫이 뽀 손 다시 잡아다가 가슴께에 올려둠.

"해볼래?"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 듣고 얼굴 빨개지는 뽀.
방금까지 다 보여줘놓고 이거 한마디에 부끄러워하는 뽀가 또 예뻐죽겠는 섫. 싫다는 기색은 아니라서 뽀 손 이끌면서 가르쳐주겠지. 차근차근 따라오더니 어느새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뽀에 만족스럽게 미간 찌푸리는 섫. 한번씩 뽀가 멈칫 할때마다 귀에 대고 속삭여줌.
"언니가 어떻게 했을때 좋았어?"
"그것처럼 해봐"

그럼 뽀는 착실하게 기억대로 움직이고, 그렇게 역사의 반대편 한페이지도 마무리가 됨. 긴장했었는지 섫 몸 위에 넘어져서 숨 고르는 뽀. 같이 숨고르다가 먼저 진정된 섫이 뽀 등 토닥여주고, 머리 쓰다듬어줌. 칭찬받는 느낌이라 부끄러워지는 뽀.
"힘이 한개두 없어"
"....."
"끝나서 긴장이 풀렸나"

하얀 섫 몸에 부비적대면서 종알거리는 뽀. 그 작은 정수리며, 높은 콧대 내려다보던 섫은 눈을 한바퀴 굴림. 큰일났네. 그리고 다시 한바퀴 굴려서 시간을 확인하는 섫. 이번에는 몸을 한바퀴 굴려서 자세를 뒤집지.
곧바로 들어차는 감각에 잠이 다 깨버리는 뽀. 놀라서 손목 붙드는데 섫은 씩 웃더니 그 손 시트 위로 잡아 누를듯. 그리고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함. 능글능글 웃으면서.

"누가 끝났다고 했어 지엱아?"

사랑스러운 토끼야.
구미호를 그렇게 놀렸으면 책임은 져야지. ImageImage
그 후로 구미호와 토끼의 연애는 별탈없이 이어지고 있었음. 중간에 어떤 미친놈이 섫 과거로 지랄해서 뽀가 울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것도 애정으로 믿음으로 이겨내고 나름 불타는 연애를 이어가는 둘. 한번 선을 넘은 섫은 참지않고 애정을 쏟았고, 뽀도 가끔 벅찰때가 있지만 내심 싫지는 않았음.
평일에는 보통 뽀가 더 바빠서 여유로운 섫이 학교 앞에 데리러 가고, 저녁 먹으면서 데이트 할것 같지. 반대로 주말은 섫이 카페 가야하니까 뽀도 가끔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언니랑 같이 오픈한대. 섫이 카운터 보는동안 혼자 지정석 앉아서 과제하거나, 섫 훔쳐보다가 귀 빨개지는 뽀.
그럼 곁눈질로 그거 다 보고있던 섫은 못본척 주문 받다가, 조금 한산해지면 케이크랑 마카롱 잔뜩 담은거 앞에 놔주면서 그래.

"언니 뚫어지겠다"
"..아, 방해되는거면"
"아니. 더 봐줘. 언니 뚫리게"

그럼 포크 입에 물고서 고개 끄덕이는 뽀.
섫은 앞에서 그거 꿀떨어지게 보느라고 바쁨. Image
처음엔 이런거 공짜로 주지 말라고 난색하더니 이제 별말없이 잘 먹는것도 귀엽고, 에어컨 바람도 잘 안드는데 내 얼굴 본다고 이 자리만 고집하는 것도 귀엽고, 아직도 그렇게 좋아죽겠다는 얼굴하는 것도 귀여워.

케이크 한입 작게 잘라서 뽀 입에 넣어주는 섫.

아. 잘 받아먹는 것도 귀엽네.
잘먹는게 귀여워서 마카롱도 한입 주고, 또 케이크도 다시 한입 먹이고. 턱 괴고 웃으면서 그러는데 언니 얼굴이 마냥 행복해보여서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아기토깽이..근데 그렇게 받아먹다가 갑자기 합! 하더니 고개 뒤로 내뺄듯. 그리고 그 포크 뺏어서 언니한테 내밀겠지. 얼떨결에 받아먹는 섫.
"왜그래, 맛이 없어?"
"아니 언니네 케이크 제일 맛있어"
"그럼 왜? 배불러?"
"...것 같아"
"응?"
"..요즘 살찐것 같아"

뽀 요즘 고민 중에 하나였음. 맨날 맛있는거 먹여주고, 데이트도 대부분 차타고 다니니까 몸이 좀 무거워진 느낌이었거든.
근데 그 말 들은 섫은 당췌 이해가 안되는 중. 섫이 보기에 뽀는 저에 비해 굉장히 규칙적이고, 건강식에, 생활운동을 많이 하고 있었음. 살찔 걱정이라면 빵으로 떼우는 내가 해야 될것 같은데. 입 짧아서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내가 말실수 한거있나. 혹시 몰라 되짚어보는데 딱히 걸리는게 없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뽀는 섫의 시선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니었거든. 그냥 몸 무거워지는 그 느낌이 싫어서. 그렇다고 또 섫이 아예 신경이 안쓰이는건 아니야. 거의 2~3일에 한번 꼴로 불타는것 같은데 그 때마다 몸 구석구석 다 만져대는 언니라서. 겸사겸사 디저트만 좀 줄여야지 했던 뽀.
"혹시 내가 저번에 말랑하다고 해서?"
"응?"
"나 진짜 좋아서 그런건데.."

뽀는 별생각 없어서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섫이 혼자 생각이 이상한 곳으로 튀었음. 뽀는 아예 기억에서도 잊고 있다가 섫이 말 하고나서야 기억났음. 저번주였나. 같이 씻다가 또 눈맞아서 하는 중에 그랬던것 같은데..
답지 않게 걱정 가득한 섫 보니까 마음이 안좋은 뽀. 트레이에 가득 담긴 디저트처럼 그 눈빛에 가득 담긴 애정들 꼭꼭 소화하면서 손 마주잡겠지.

"그냥 건강. 다른의미 없구"
"그럼 이제 디저트 안먹어?"
"..하루에 한개만?"
"오늘은?"
"오늘은.."

말흐리면서 이미 가져온 디저트들 내려다보는 뽀.
그럼 그 순간 절대 안놓치고 바로 분위기 뒤집는 섫. 축 쳐졌던 입꼬리 끌어 올리고, 손가락 사이로 파고 들어서 뽀 손바닥 살살 긁어. 아기채소 푹 익어버리게.

"오늘은 먹고 운동할까?"

섫이 지금 말하는 운동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걸 몇달간의 연애로 다 깨우쳐버린 뽀였음. Image
거절할 생각은 안들어. 오늘 어차피 언니네서 자고가기로 했으니까. 뽀도 다 준비는 하고 있었거든. 근데 꼭 이렇게 선전포고마냥 던진 날에는 유독 짖궂게 구는 언니라서. 살짝 아득해져서 대답 망설이고 있으면 그새를 못참고 손바닥 지나서 손목까지 살살 쓰다듬는 섫.

"응? 언니랑 운동하자"
기어이 뽀 허락까지 받고서야 만족하며 웃는 섫. 다시 뽀 입에 케이크 넣어주겠지. 마감 다 되어갈 시간이라 그 이후로는 손님이 오지 않았고, 문닫고 퇴근하는 둘. 가끔 이렇게 출근부터 퇴근까지 같이 하면 더 신나고 행복하겠지. 약간 신혼부부 같다. 그 생각하고 자기가 더 놀라서 고장나는 뽀.
그럼 섫은 차타고 출발하려다가 뽀 굳어있는거 보고 다시 기어 파킹으로 바꿈. 그거 보고 걸렸구나 싶어서 사이드 미러만 죽어라고 노려보는 뽀. 필사적으로 시선 피하는데 섫 이미 먹잇감 눈앞에 둔 구미호가 되어있었음. 조수석 시트 붙잡고 가까이 와서 부르는 섫. 힐끔 곁눈질 했다가 놀라는 뽀.
"지엱아"
"어?"
"김지엱"
"빨리 가자, 응?"
"무슨 생각 했어?"
"빨리이.."
"또 말 안해줘?"

능글맞게 웃으면서 글로브박스에 손 가져다대는 섫. 그럼 뽀 머리에 당연하게 스치는 기억이 있었음. 그 날. 한냄이 학교까지 찾아왔던 날. 제가 솔직해질때까지 몇번이고 주먹을 쥐어야 했던 날.
그거 떠오르자마자 눈 마주쳐오는 뽀. 섫은 여유롭게 글로브 박스 버튼에 손가락 가져다대고 있음. 토끼를 궁지로 몰아놓고 웃고있는 구미호마냥. 그리고 도망칠 구멍을 잃어버린 토끼처럼 섫 손목 붙잡고 고개 젓는 뽀.

"그냥 출퇴근 같이 하니까.."
"응, 하니까?"
"약간 그..신혼부부 같아서"
아, 얘 진짜 귀여워서 어떡하지.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이런 앙큼한 대답을 해. 섫 조금 다른 의미로 글로브 박스로 향하는 손 간신히 참을듯. 말하는게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손목에 닿는 뽀 두손이 뜨겁고 축축했음. 입술 잘근잘근 물다가 주변 확인하고 입술부터 들이대는 섫.
나 말도 했는데? 여기서 하는건가? 여기는 아직 길거린데? 온갖 당황스러움이 밀려들어서 뻣뻣하게 굳어지는 뽀. 그럼 섫도 그거 느끼고 꾹 한번 참으면서 입술 잠깐 떨어트림.

"키스만. 1분만"

입술이랑 눈 번갈아 쳐다보면서 동의를 구하는 섫. 그럼 뽀도 안심하고 목 끌어당김.
1분 한다는거 2분 넘게 하다가 간신히 먼저 떨어지는 섫. 그대로 바로 차 출발시킴. 이렇게 되면 보통 섫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달려들었음. 같이 씻으면서 시작되면 언제 끝날지도 모름. 근데 어제 오늘 뭐할지 얘기하면서 정해놓은게 떠오른 뽀. 운전대 잡고 진정하고 있는 섫한테 말함.
"앨범 보여주기로 했어"
"응?"
"오늘 졸업앨범"
"...내일 보면 안되겠지"
"언니 씻는동안 볼게"

어제 전화하면서 학창시절 얘기를 했었음. 그러다가 오늘 집에 간다니까 섫이 먼저 보여줄까? 그랬고. 뽀도 지금 쫌 하고 싶긴한데 어제부터 보고싶던거라 양보 못해주겠음.
딴딴채소된 뽀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는걸 알고있는 섫. 조금 시무룩하게 있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개 끄덕임.

"나두 하고싶어, 그니까..알지?"

그 말 듣고는 시무룩했던 표정도 지우고 피식 웃어버렸지만. 가끔 보면 토끼가 아니라 여우 같다니까. 아, 지금 손잡으려고 꼬물거리는건 토끼 맞는데.
그래도 뽀랑 이런저런 대화 하다보니까 끓던 욕구 좀 잠재운 섫. 집에 들어와서도 나름 얌전하게 씻을 준비하겠지. 샤워하러 가기전에 중학교랑 고등학교 졸업앨범 꺼내서 뽀 품에 안겨주는 섫. 기대감 가득한게 귀여워서 뽀뽀 몇번 해주고 씻으러 들어감. 뽀는 바로 소파에 앉아서 졸업앨범 펼쳐봄.
순서대로 보고싶어서 중학교 앨범부터 여는 뽀. 아까 언니가 말해준 반 페이지 펼치자마자 섨 발견했음. 악. 이 때는 볼 통통한거봐. 너무 귀엽다. 언니도 젖살이 있는 편이었구나. 개인사진도, 단체컷 속 작은조각도 빠짐없이 눈에 담는 뽀.
그리고 연달아 고등학교 졸업앨범 펼쳐봐. 확실히 어른의 문턱이라고 중학교때보다는 훨씬 어른스럽고, 지금보다는 훨씬 풋풋한 모습이었음. 이때나 지금이나 자신감 있게 웃는건 여전하네. 예쁘다. 괜히 엄지손가락 들어서 사진 쓰다듬어보는 뽀. 사진 찍어두고 싶은데 그건 허락 받고 하기로 했대.
고등학교때 사진이 좀 더 마음에 드는 뽀. 지금 섫이랑 더 비슷하기도 하고, 교복도 너무 예쁘게 잘어울려서. 본 사진 또 보고, 또 보고 있겠지. 학창시절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하고. 둘 다 교복입고 연애하는 상상도 하고. 그러다 보면 섫이 금방 씻고 가운 입고 나오겠지.
"바로 씻을래?"
"응. 언니 앨범 다 봤어"
"나 귀여워?"
"너무너무. 내일 사진 찍어도 돼?"
"응, 지엱이 하고싶은대로"
"언니 교복 입은거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더라"
"몇년 안지났잖아"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학교다닐 때 언니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기두 하구"
교복입은 뽀 상상했다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 섫.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 뽀 뒷목에 살살 감더니 훅 끌어당겨서 눈맞추고 그래.

"어땠을것 같아?"
"..으응?"
"그때도 나 좋아했을거 같아?"
"....."
"응? 스물일곱 김혅정 말고 열아홉 김혅정도 좋아했을거야?" Image
뽀 당연히 그랬을거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괜히 눈앞에서 웃고있는 섫 보니까 한번 튕겨주고 싶음. 이것도 연애 몇달째되니까 뽀도 편해져서 그런거. 그냥 섫 입술에 뽀뽀 해주고 '만나봐야 알죠' 말만 남기고 씻으로 도망감. 그럼 젖은 수건만 손에 쥐고 있다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섫.
뽀 가끔 저렇게 얄밉게 굴때 일부러 존대할것 같지. 그거에 섫이 더 불붙는것도 모르고. 뽀가 씻는 사이에 머리 굴리다가 아,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섫. 뽀는 이제 나가자마자 언니가 달려들거 예상해서 열심히 씻고 나오겠지. 근데 웬걸. 나왔는데 방에 언니가 없음. 방문은 닫혀있고. 거실에 있나.
그런 생각하면서 거실로 나가려는 순간에 방문이 벌컥 열렸음. 그리고 섫이 걸어들어오는데 너무 놀라서 쥐고있던 수건 떨어트리는 뽀. 눈앞에는 아까 졸업앨범에서 봤던 열아홉 김혅정의 교복을 입은 스물일곱의 섫이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음.

"지엱언니 다 씻었어요?"
이게 무슨 일인지 좀처럼 감이 안잡히는 뽀. 당연히 커플가운 입은 섫이 허리부터 감싸올줄 알았는데 갑자기 멀끔한 교복차림의 섫이 나타나니까 혼란스러움. 근데 그 와중에도 여전히 핏이 잘 맞는 교복이 너무 잘어울려서 눈은 못떼고 있겠지. 그거 다 지켜보면서 능글맞게 웃고있는 섫.
"만나봐야 알겠다면서요"
"..어?"
"좀 열아홉 김혅정 같나?"
"....."
"지엱언니, 저 어때요?"

한번 튕겨본다고 한말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음. 뒷짐지고 허리 굽히고서 생글생글 웃는데 분명히 세살 연상인 섫인거 아는데도 자꾸 졸업앨범 속에 섫이 겹쳐보이겠지. 덕분에 아무말도 못하는 뽀. Image
섫이 한걸음 다가오면 한걸음 뒤로 가고, 얼굴 가까이 하면 도망가고. 그럴 이유가 없는데 뽀는 괜히 마음이 이상해서 몸을 피하고 있었음. 덕분에 구미호는 제대로 구미가 당겨버렸고. 옷장에 부딪혀서 멈출 때까지 다가온 섫. 가지런히 걸려진 가운 한번 만지작거리더니 뽀 옆에 팔 짚고서 내려다봄.
"저 별로에요?"
"...언니 장난치지 말고.."
"언니 아니잖아요. 나 열아홉인데?"
"....."
"혅정이라고 해야죠"

처음 만났을때 써주던 존대와도 느낌이 달랐음. 당장 키스할것 같은 눈으로 언니,언니 하는 섫 때문에 죽겠는 뽀. 이 와중에도 착실하게 몸이 반응한다는게 배덕감을 몰고오겠지.
지금 제 앞에서 금방 달려들것 같은 섫은 분명 스물일곱인데 교복을 입고 지엱언니, 하니까. 그런 상황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이상하고 오싹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울컥 두려움인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 치닫는 뽀. 눈가 촉촉해져서 와이셔츠 붙잡는데 그게 너무 교복재질이라 더 이상해.
금방 잡았던 셔츠도 놔주고 주먹만 꽉 쥐는 뽀. 섫은 지금 아랫배가 끓다 못해서 아플 지경임. 좀 더 길게 놀려주려고 했는데. 슬슬 안되겠잖아. 어쩔줄 몰라하는 뽀 턱 붙잡고 살짝 들어올리는 섫. 가까이서 눈만 마주치고서 말함.

"마음에 들죠?"
"....."
"키스 하고싶고"
"....."
"나랑 자고싶죠" Image
적나라하게 드러난 속마음이 이 순간엔 너무 버거운 뽀. 더 말하지말라고 간신히 섫 손 붙잡고 고개 젓겠지. 여기서 물러나면 구미호가 아니었음. 토끼가 알아서 품으로 들어오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손목 비틀어 빼고, 고개 꺾고 거리 좁히는 섫.

"그래서 저 어떻다고요?"

직접 말해.
네 목소리로.
그럼 이제 진짜 울것 같은 얼굴로 쳐다보는 뽀. 그냥 넘어가면 좋겠는데 허리까지 지분대는거 보니까 절대 그렇개 안해줄것 같음. 차라리 하지말자 해버릴까 싶다가도 이미 몸이 너무 닳아버렸음. 인정하기 싫지만 섫 말이 다 맞았음. 입술 꾹꾹 깨물다가 급하게 섫 손 가져와서 손바닥 누르는 뽀.
"..좋아해"
"누구를?"
"....."
"누구를 좋아해요? 스물일곱 혅정언니?"
"....."
"딱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
"먼저 할까요?"
"......"
"좋아해요, 지엱언니"
"....."
"이제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저 어때요?"
"..좋아해..혅정아"
"...한번 더 불러봐"
"혅정아. 좋아해. 응?" Image
그 말과 함께 토끼는 구미호의 품으로 뛰어 들었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역사가 쓰여졌음. 고집스럽게 옷을 벗지 않는 섫 덕분에 받는 내내 눈을 감으려고 하는 뽀. 그마저도 섫이 재촉하는 탓에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음. 그러다가 제가 해줄 때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울먹거려서 섫이 직접 벗었겠지.
근데 뽀 울먹이는거 보고 섫 완전히 불붙어서 받는 와중에도 손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음. 그렇게 반쯤 뒤집다 만채로 다시 정신없이 이어달렸겠지. 평소에는 여유 주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됨. 계속 섫이 존대로 언니라고 자극하면서 짖궂은 말 쏟아내는 바람에 결국 울어버릴 뽀.
그게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자극이 너무 과해서 그렇다는건 여러가지 손끝에 닿는 감각으로 알고있는 섫. 평소에는 뽀 우는거 못보면서 이럴 때는 울어도 잘 안봐줌. 진짜 힘들고 괴로운건 귀신같이 눈치채는 섫이라. 뽀도 섫이 안멈출거 아는데 습관처럼 고개만 젓는거임.
그렇게 몇시간을 붙들고 있다가 뽀가 진짜 힘들어하기 직전에서야 멈춰주겠지. 잡고있던 팔 놔주면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리는 뽀. 그러면 땀에 젖은 몸 뒤로 붙어서 마른 어깨 위로 입 맞추는 섫. 다정한 후희 받으면서 가쁜 숨 쏟아내는 뽀. 섫은 한참을 몸 여기저기 뽀뽀하다가 옆에 누움.
"씻을 수 있어?"
"...자는거 밖에 못해.."
"응, 그럼 닦아줄게"
"언니는 안 힘들어?"
"더 할 수 있어"
"나 내일 도서관 갈거야.."
"태워다주면 더 해도 돼?"
"어차피 맨날 태워다주자나아.."
"장난이야. 운동 많이 했네, 오늘"

오늘도 따끈하게 데쳐져버린
아기채소와 배가 부른 구미호였음.
비올 때 서로 데리러가는거 보고싶어.
언니 때문에 새벽에 자서 아침에 우당탕 나오느라 우산도 못챙기고 나온 뽀.
하늘이 우중충하긴 했지만 강의 하나
듣고 나오는 사이에 비가 올까 싶어서
섫한테 별말 안하고 강의실 들어감.
강의실이 건물 안쪽에 있어서 듣는동안엔 바깥 소리가 잘 안들렸음.
말이 남들보다 1.6배 정도 빠른 교수님이라 정신없이 강의가 지나가고, 짐 챙겨서 나오는데 복도 들어서자마자 불길한 빗소리가 들림. 급하게 창가로 가보니까
비가 오네. 그것도 엄청 오네. 우산 살려면 편의점까지는 가야됐는데, 하필 또 오늘
씌워달라고 할 친구가 자체휴강을 때렸음.
언니한테 말해볼까.
근데 오늘 약속있다고 했는데.
아까 앞까지 데려다주고 시내로 약속 다녀올테니까 저녁때 보자고 하던 섫이었음. 문앞까지 내려와서 핸드폰 들고 고민 하다가 그냥 강의 끝났다고만 톡 보내는 뽀. 친구들 중에 부탁할 사람 있을까 싶어서 주변 둘러보고, 친구목록 뒤져보겠지.
편의점까지 뛰어가면 얼마나 걸리려나.
조금 빗줄기 잦아들면 뛰어가볼까.
전공책으로 묵직한 에코백 끈만
두손에 쥐고 새까만 하늘 올려다보는 뽀.
근데 도저히 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을듯. 그냥 집가서 씻고 언니 오는거 기다려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빗속으로 뛰어들 찰나였음.
앞머리에 빗방울이 닿기 직전에 몸이 뒤로 당겨지겠지. 허리에 둘러지는 온기에 놀라서 뒤돌아보면 불만스러운 표정의 섫이 있었음.

"왜 연락 안해?"
"...언니?"
"응? 멀쩡한 나 뒀다가 뭐해"

섫 아까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뽀네 학교로 돌아와있었음. 친구들이랑은 하이바이만 하고. Image
내려오면 잽싸게 데려가야지 하고 일부러 뽀한테 얘기안했음.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끝났다는 연락 받고 나온건데 비온다는 얘기가 이어지지 않아서 의아했던 섫. 근데 문앞까지 내려온 뽀가 핸드폰 쥐고 계속 고민하는데 제 핸드폰은 울리지 않아서 솔직히 서운했음. 왜 나한테 말을 안하지.
내가 약속이 있어서?
데리러오는게 귀찮을까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나는 네가 제일 중요한데.
계산을 전부 덜어낸 섫은 생각보다 더 연애에 올인하는 타입이었음. 뽀가 어떤 이유든 필요할 때 연락하지 않은게 속상함. 끝까지 기다리다가 뽀가 진짜 빗속에 뛰어들려고 하니까 놀라서 뛰어온 섫.
허리 끌어안고 품에 넣긴 했는데 그렇다고 속상함이 풀린건 아님. 왜 연락 안했냐고 물어봤더니 당황하는 표정보니까 더 그래. 예민한 성미가 삐쭉대는데 상대가 뽀라서 그게 드러날 정도로 커지진 않겠지. 그냥 고개 돌려서 우산 펴는 섫. 뽀 손 잡고 바싹 끌어당겨서 차로 같이 걸어감.
뽀는 우산 속에서 언니 눈치 보는중. 표정 보니까 딱 봐도 화난것 같아서 잡은 손만 꼼지락대고 있음. 내가 말안해서 화났나. 솔직히 여기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반대로 섫이 연락 안하고 비 쫄딱 맞았다고 하면 저같아도 속상할것 같음. 섫이 모르게 넘어갈줄 알았지만 어쨋든 들켰으니까.
화난것 같은데 또 조수석까지 와서 비 한방울 안맞게 차에 넣어주는 언니 때문에 더 더 미안해지는 뽀. 비맞아서 힘없는 애기채소 됐음. 뽀는 전혀 안젖게 해놓고 자기는 우산 뒷자리에 던져놓고 운전석에 오르는 섫. 그 사이에도 옷이랑 머리가 여기저기 젖었음. 그게 또 뽀는 속상해 죽겠어.
입술 앙 다물고 섫 머리나 어깨 쪽에 젖은거 털어주는 뽀. 그럼 섫은 가만히 그 손길 받고 있다가 살짝 한숨 쉼. 뽀는 그게 화나서 그런줄 알고 바로 움찔하면서 손길 거두는데 섫이 그 손 당겨서 깍지낌. 조금 화난건 맞는데. 그런거 아니라고. 그럼 뽀도 불안하게 밀려오던 먹구름 다시 밀어내버림.
뽀 작은손 이리저리 만지작대다가 운전석에서 몸만 돌려서 뽀 바라보는 섫. 그럼 뽀도 꼬물거리면서 섫이랑 마주보게 몸 돌림. 눈치보면서 귀여운짓 해. 제대로 화도 못내게. 얄밉다는 표정으로 뽀 볼 콕콕 찌르던 섫이 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음.

"다음에는 꼭 연락하기"
좀 울먹이는 표정돼서 고개 끄덕이는 뽀. 언니 손 허벅지 위로 끌어 당겨놓고 꽉 잡으면서 말해.

"미안해"
"말로만?"
"어?"
"언니 진짜 속상했는데.."
"엄청 미아안.."
"그게 끝이야?"

섫 이미 세글자로 마음 다 풀렸음.
지금 이러는건 그냥. 울먹이는 얼굴 보니까 또 괴롭히고 싶어져서.
당하는거 한두번 아닌데 뽀는 이럴때마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음. 어차피 뭐라고 해도 본인 만족할 때까지 계속 놀릴게 뻔했음. 근데 또 잘못한게 있어서 말은 못하겠고. 능글맞은 표정인데도 눈에서는 단물이 뚝뚝 떨어져서 말문이 막힘. 마카롱도 팔고, 케이크도 팔더니 이제는 눈으로도 그래.
얄미운데 미안하고, 설레는데 부끄럽고.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해서 괜히 언니 손가락 꽉 쥐면서 장난치는 뽀. 근데 그거 가만히 내려다보던 섫이 더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를 하고 말함.

"무슨 뜻이야 이거?"

그 말에 시선 내렸다가 제가 손가락 중지약지만 잡고 있는거 깨닫고 얼굴 터지는 뽀.
너무 놀라서 확 놓았다가, 또 그거에 놀라서 다시 깍지껴서 잡는 뽀. 섫은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뽀 보면서 웃기 바쁨. 아, 좀 더 놀려주고 싶었는데. 귀여워서 이길 수가 없잖아. 어느새 자기 혼자 끓는 물에 들어가서 보글보글 데쳐지고 있는 아기채소. 섫은 그거 지켜보면서 불조절 해줌.
"언니 화 다 풀렸어"
"...응"
"이번엔 지엱이가 화났나? 얼굴 빨개"
"아니야아.."
"화 안났어?"
"안났어"
"그러면?"
"......"
"화 안났으면?"

사랑한단 말이 듣고싶단 소리였음. 평소에도 자주 주고받지만 이럴때는 꼭 뽀 입에서 그 말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섫. 근데 뽀 지금 진짜 민망해 죽겠음.
평소라면 부끄러워도 말로 했을텐데 지금 입열면 목소리까지 떨릴것 같음. 언니 눈도 못쳐다보겠음. 여기서 하자는 것처럼 보였을까. 조르는걸로 느껴졌나. 나 막 그렇게까지, 어? 그렇지는 않은데. 싫은건 아니지만. 어떡해. 이제 창문에 닿는 빗소리도 어쩐지 야릇하게 들리는것 같은 뽀.
뭐가 됐든 바깥에서 이런 기분 느끼는게 더 못견디겠는 뽀. 일단 어디로든 들어가서 잠깐 언니 떨어트려놓고 진정 좀 하고싶음. 근데 섫은 지금 뭐라도 안해주면 절대 출발안할 기세임. 고민하다가 깍지껴 쥐고있던 손 스르륵 풀어서 섫 손바닥 위로 하트 그리는 뽀. 하나는 모자라니까 네번 그려. Image
근데 민망함에 뽀가 잊고 있던 사실.
둘 사이에 손바닥이 갖는 의미.
네번째 하트를 완성시키고서야
뒤늦게 헉 해서 숨 들이키는 뽀.
놀라서 쳐다보는데 섫 표정이 완전히 굳어있음. 화나서 그런게 아니라 다른 느낌으로. 망했다..., 뽀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급하게 차 출발시키는 섫.
결국 그 날 떨어트려놓기는 커녕
들어가자마자 난리난 언니 때문에
장대비 그칠 때까지 빗소리 한번
듣지 못하는 뽀. 하필 또 하트를 네번이나 그려가지고. 섫이 그거 들먹이면서 끈적거린 덕에 끝나자마자 까무룩 잠드는 뽀. 섫도 습기찬 방에 약하게 제습 틀어놓고 뽀 가슴팍에 파고 들어서 잠듬.
반대로 섫이 우산이 없을 때.
카페 마감 중에 갑자기 비 쏟아져서
통유리에 기대서 창밖만 보고있던 섫.
별다른 고민없이 바로 뽀한테 전화 함.
우산을 안가져 왔는데 혹시 와줄 수
있냐고. 오는김에 언니 집 가자고.
맛있는거 잔뜩 해준다고.
그럼 집에서 공부하던 뽀 얼른
일어나서 우산 두개 챙김.
빗길 걸어올 생각하지말고, 무조건 택시 타고 오라고 택시비까지 이미 송금해버린 언니 때문에 까톡택시 불러서 카페 금방 도착한 뽀.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앞에 택시 멈추는거 보고 가방 챙기는 섫.

"언니!"

해맑게 뛰어 들어오는 뽀를 보는데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치솟음.
비가 저렇게 오는데도 너는 온종일 맑네.
비에 젖어서 울적해진 마음도 다 말라버리게.
바깥에 사람들 없는거 확인하고 뽀 볼 감싸쥐고 쪽쪽 뽀뽀하는 섫. 입술 벌어지고 고개 꺾으려고 하니까 집..집가서.. 하고 어깨 톡톡 두드리는 뽀. 섫은 아쉽게 입맛만 다시다가 뽀 입술 한번 핥고 떨어짐.
또 금방 익어버린 뽀가 우산 하나 건네주는데 그거 받고 살짝 미간 구기는 섫. 뽀는 이미 문열고 우산들고 기다리고 있음. 들고있던 우산 테이블에 내려놓고 달려가서 뽀 우산 안으로 들어가는 섫. 그대로 문 세팅하는데 뽀는 그 틈새로 언니 비 맞을까봐 허둥지둥 아기 코알라처럼 바짝 붙었음.
문 잠긴거 확인하고 비오는 거리를 우산 쓰고 나란히 걸어가는 둘.

"따로 쓰려고 했어?"
"뭔가 습관처럼 그냥.."
"나랑 떨어지는게 습관이야?"
"언니이"
"나 또 서운할뻔 했잖아"
"그랬어..?"
"그랬으면 또 하트 그려주나?"
"이제 안그려"
"두개만?"
"한개두"
"나 안 사랑해?"
"그게 뭐야아"
초록색 우산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 안에서 능글맞은 섫 웃음소리와
애정어린 뽀 목소리가 기분좋게 흔들렸음.
근데 사실 섫 이 날 차 끌고 출근한거였으면 좋겠다. 차까지 조금만 가면 집에 편하게 가는데 뽀랑 같이 우산 쓰고 걸을 기회가 흔치않고, 이 분위기가 좋아서 차 가져왔다고 얘기 안함.
우산 끝에 걸린 물방울을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뽀랑 장난치는게 좋았고, 자꾸 제쪽으로 우산을 기울여주려는 뽀의 애정이 좋았고, 하나의 우산이라는 핑계로 빈틈없이 붙은 우리가 좋았음. 기어이 손바닥 하트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받아낸 섫은 웃으면서 생각하겠지.

종종 우산을 깜빡해야겠다고. ImageImage
둘이 건강한 연애를 시작한지도 몇달. 그쯤되니 슬슬 섫이나 뽀 친구들 사이에서 제대로 소개 좀 시켜달라는 얘기가 나옴. 뽀는 뭔가 부끄러워서 다음에..나중에.. 하고 미뤘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잖아. 친구들이 참다 참다가 아예 날 잡으라고 못박겠지. 결국 애들 보는 앞에서 섫한테 전화하는 뽀.
뽀는 친구들이랑 점심먹고 카페에서 떠드는 중이었고, 섫은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음. 커피 내리다가 주머니에서 진동 울리니까 바로 알바한테 맡기는 섫. 보통 바쁜 시간대는 방해금지모드 해놓는데 뽀 전화만 알람 켜놨음. 항상 일보다는 뽀가 중요했고, 뽀한테 방해금지라는 단어가 붙는게 싫어서.
잠깐 창고 들어와서 바로 전화받는 섫. 무슨일 있는걸까봐 지금 차키까지 꺼내쥐었음.

'응 지엱아'
'미안. 일하는 중이었지'
'그 말 하지 말랬는데'
'응?'
'뭐가 미안해'

너는 새벽 4시에 보고싶단 이유로 잠 깨워도 괜찮을거라고 했잖아. 덧붙여지는 말에 보글보글 끓는 아기채소. Image
실시간으로 부끄럼타는 뽀 보니까 친구들은 괜히 귀 쫑긋 세우고 있겠지. 뽀가 워낙 첫사랑처럼 앓았던거 알아서 보기 싫거나 그런건 없었음. 내새끼가 이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구나! 이런 느낌. 뽀는 친구들 눈치 한번 보더니 섫한테 혹시 언제 시간 괜찮냐고 물어봄. 친구들이 언니 궁금해한다고.
그럼 섫은 딱 3초 생각하더니 대답할듯.

'오늘 저녁은?'
'오늘???'
'카페 마감 맡기고 갈까?'
'..잠깐만'

뽀가 잠깐 핸드폰 떨어트리고 앞에 보는데 친구 둘은 이미 고개 끄덕이고 있음. 손가락으로 OK 날리는거 보고 다시 통화에 집중하는 뽀. 괜찮다고 하니까 섫은 그럼 7시까지 온다고 하겠지.
뽀가 어수선하게 끊으려고 하니까 건너편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넘어옴. 항상 통화는 자리 피해서 했었는데 좀 부끄러운 뽀.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싫어서 손으로 입가리고 몸 틀고 속삭여줌.

'나두 사랑해. 빨리 보구싶어'

그리고 습관처럼 쪽! 했는데 그 소리는 못줄여서 친구들한테 다 들킴.
근데 뽀 그거 들린줄도 모름. 전화 끊고 아무렇지 않은척 앞에 봤는데 친구 둘이서 서로한테 쪽! 하면서 장난치는거 보고서야 들린거 알고 부끄러워 죽으려고 할듯. 하지마아.. 하면서 테이블에 엎드리는 뽀. 그래도 기분이 싫지는 않아. 언니랑 이렇게 사랑하는게 민망하지만 행복하니까.
그 시간 섫은 전화 끊자마자 앞치마부터 벗음. 나가서 알바한테 일급 두배 준다고 하고 마감까지 부탁하는 섫. 7시까지 시간 있었지만 이대로 갈 생각 절대 없음. 바로 집가서 씻고 옷 갈아입는 섫. 옷장에서 두세벌 꺼내서 비교하다가 제일 깔끔해보이는 옷 입고 화장도 새로 다시 함.
지난 연애들에선 애인의 주변사람 만나는게 솔직히 부담스럽고 귀찮기만 했었음. 그게 어떤 책임감이 되는것 같고, 발목을 묶이는거 같아서. 연애 자체를 널리 알리는게 싫었겠지. 그래서 까톡 프사 같은것도 절대 상대방 사진으로 안해놨던 섫. 근데 뽀 만나고는 그게 전부 다 뒤집혔겠지.
당장 까톡 프사만 봐도 그래. 풍경이나 셀카 뿐이던 내역은 몇달동안 뽀 사진이나 우리 사진이 가득 차있었음. 프로필 뮤직도 우중충한 노래에서 달달한 멜로디가 앞선것도 몇달째. 친구들 보는 것도 사실 섫은 전부터 만나고 싶었음. 한번도 그런적 없었는데 제가 모르는 뽀의 과거, 일상이 궁금했음.
누군가의 일상을 침범하는게 두려웠고, 제 일상에 타인을 들이는게 무서웠던 섫. 근데 뽀한테는 뭐든지 알려주고 싶고, 뭐든지 알고 싶기만 함. 친구들은 오다가다 몇번 마주치는게 다라서 조금 아쉬웠는데. 좋은기회다 생각하면서 차키 챙겨들고 나가는 섫. 괜찮은 이자카야 찍어서 좌표 보내놓음.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보내놓고 출발하면, 로데오에서 시간 보내던 뽀가 친구들 데리고 그 주소로 먼저 가있을듯. 입구부터 고급진 느낌이라 셋이 한번 눈치보다가 들어가면 직원이 인원수 듣고 적당한 룸으로 안내해줌. 셋이 메뉴판 보고 눈커져서 왜케 비싸..? 할때쯤 섫이 문열고 들어올듯.
"늦어서 죄송해요"

약간 어둑한 조명 속에서도 섫은 빛이 났음.
평소보다 차분한 복장에 화장 짙게 한 모습보니까 심장이 쿵쾅뛰는 뽀. 친구 둘은 풍겨오는 연상의 분위기에 눌려서 어정쩡하게 일어나서 인사할듯. 가끔 오다가다 마주치긴 했지만 이 언니 이렇게 예뻤던가 싶음. Image
섫은 당연하게 비워진 뽀 옆자리를 채우며 앉았고, 테이블 밑으로 뽀 손을 찾아 쥐었음. 뽀는 안그래도 매일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따라 작정하고 나온 섫때문에 정신이 없음. 익숙하게 메뉴판 펴서 이런저런 설명해주고 취향 물어보는 섫. 금방 메뉴 뚝딱 정해서 주문까지 마칠듯.
섫은 궁금한게 너무 많았음. 뽀가 평소에 어떤지, 저랑 있을때랑 많이 다른지. 근데 너무 한번에 물어보면 부담스러울까봐 가볍게 분위기 풀면서 대화 이어가겠지. 근데 자꾸 뽀가 빤히 쳐다보는게 느껴짐. 예뻐 죽겠다는 얼굴로. 그거 당장 놀려주고 싶은데 친구들 앞이라 참느라고 고역인 섫.
메뉴들 차례대로 나오기 시작하고, 하이볼도 한잔씩 나눠 마시니까 친구들도 긴장 풀려서 본격적으로 여러 얘기를 나눌듯. 친구들 얘기 흥미롭게 들으면서 음식 하나씩 집어서 뽀 입에 넣어주는 섫. 그게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는게 딱 느껴져서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테이블 밑에서 허벅지 툭툭 치는중.
뽀 친구들이랑 섫의 조합이니 당연히 대화 주제는 거의 뽀였음. 예전에 뽀가 썸탈때 맨날 혼자 웃고, 핸드폰 하면서 가다가 바닥 차고 그랬다는거 들으면서 심장이 간질거리는 섫. 한편으로는 한켠에 아직 남아있는 죄책감이 꿈틀대기도 함. 그 때 저는 무서워서 뽀를 부정하고 상처주기 바빴으니까.
섫 그거 티 안내려고 표정관리 하는데 뽀한테는 다 보일듯. 언니 표정 순간 어두워진거 보고 잡고있는 손 뒤집어서 손등에 하트 왕왕 그려주는 뽀. 그리고 섫이 힐끔 쳐다보면 두손으로 꼭 잡아주면서 눈으로 말해. 괜찮다고. 다 괜찮아졌다고. 그럼 섫은 그제야 씩 웃어보일듯.
그 이후로는 친구들도 신나서 나름 정석적인 질문을 해옴. 지엱이가 왜 좋은지, 얼마나 좋은지. 섫 그 말 듣고 답을 생각하는데 의외로 바로 튀어나오진 않을듯. 예전에는 애인이 나 어디가 좋아? 라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이 나갔음. 넌 눈이 예뻐, 성격이 귀여워, 목소리가 좋아. 그런 흔한 취향들.
그게 한번도 어렵게 느껴진적 없었는데 섫 처음으로 그 질문에 고민이라는걸 해보겠지. 당연히 없어서는 아니야. 너무 넘쳐서 그래. 그냥 지엱이 그 자체를 사랑해서. 어느 하나 꼽는게 너무 어려워서 한참 젓가락 뒤적이며 고민하는 섫. 뽀는 그 정적이 길어지니까 쪼금 속상해지려고 하겠지.
좋은점이 바로 안나오나. 나는 지금 생각만 해도 언니 좋은이유가 수십가지인데. 속상해서 혼자 티안나게 시들해지는 아기채소. 친구들은 그거 발견하고 괜한 질문했나 싶어서 미안해짐. 근데 섫은 그거 다 느끼고도 조급하게 말 얹으려고 하지 않다가, 정말 딱 마음 속으로 결론 났을때 얘기할듯.
"지엱이가 지엱이라서 좋아요"

눈이 큰 사람은 많고,
성격이 귀여운 사람은 많고,
목소리가 좋은 사람도 많아.
너한테는 수많은 부분들이 있지만,
그게 좋아서 네가 좋은게 아니라.
너라서 그 모든 부분들이 좋아.
그러니까.
내 말은.

"그냥 지엱이가 너무 좋아요"

네가 좋아 죽겠다고. 내가. Image
그냥 어물쩡 넘기는거라고 생각하기엔 섫 눈에서 진심이 줄줄 새고 있었음. 흘러나온 진심은 너무 쉽게 뽀 마음을 적셨고, 잠깐 서운했던 감정도 저 멀리 흘려보내겠지. 친구들은 뭔가 염장이기도 하고, 보기 좋기도 해서 고개만 끄덕이고 말듯. 자연스럽게 또 화제가 전환돼서 대화가 계속 이어짐.
"지엱이가 누구 이렇게 좋아하는거 처음 봐요"
"맞아요 걔 만날 때는 잘 웃지도 않더니"

걔라고 칭해지는 사람이 누군지는 섫도 알았음. 뽀가 전에 한번 짧게 만났던 사람 있다고 했었거든. 사귀기 전에 들었던거라 잠깐 잊고 있었는데. 귀가 쫑긋해서 테이블에 팔 괴는 섫.

"전애인 만날때요?"
그거 듣고 아차 싶어서 친구는 뽀 눈치 봄. 뽀는 이렇게 되물을지 몰라서 섫 눈치 봄. 근데 일단 오래 안만나기도 했고, 진짜 좋아했던거 아니라서 이 정도는 괜찮겠다 싶겠지. 친구한테 대충 고개 눈짓으로 허락해줌. 여기서 뽀가 간과한게 있다면, 김혅정은 태어나길 질투와 소유욕이 강하다는거.
본인이 섫 과거에 크게 신경안쓰니까 더 쉽게 생각한 것도 있었음. 친구들은 고삐 풀려서 이런저런 일화 말해주는데 섫 속에 참을인이 하나둘씩 새겨질듯.

"왜 사겼는지 모르겠어요. 도시락 싸는것도 귀찮아서 겨우 하고 막"

도시락을 싸줬어?

"여행가서도 맨날 우리랑 카톡하고"

여행도 갔었어? Image
급속도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섫. 질투를 삼켰더니 몸부터 뜨거워져서 손잡고 있던 뽀가 놀라서 쳐다봄. 딱봐도 얼굴에 질투가 덕지덕지 붙은거 보고 밑에서 친구들 툭툭 차는 뽀. 그럼 친구들 신나서 얘기하다가 섫 눈치 한번 보고 급하게 얘기 마무리 지을듯. 그럼 뭐해. 섫 소유욕 시동 걸렸는데.
섫도 이 감정이 어이없다는걸 알고있음. 제 무수한 과거들을 깔끔하게 딛고 선 뽀가 옆에 있는데 과거 한자락에도 천불이 난다는게. 근데. 열이 받는걸 어떡해. 아직 나랑 가보지도 않은 여행, 내가 받아본적 없는 도시락. 그걸 타인이 연인이란 이름으로 먼저 받은게 죽도록 싫은걸.
뽀의 일상을 넘어 과거까지 욕심이 나는걸 어찌 막을 수가 없겠지. 내가 좀 더 일찍 널 만날걸. 내가 몇년 더 일찍 그 자리에 나가볼걸. 먼저 널 알아볼걸. 널 좋아할걸. 사랑할걸.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의 후회만 가득 차서 질투랑 같이 터져버리겠지. 섫 웃으면서 잠깐 화장실 간다고 나옴.
그 웃음이 진짜인지 가림막인지 구분할 줄 아는건 뽀 밖에 없었음. 잠깐 고민하다가 뒤따라서 나오는 뽀. 역시나 섫은 화장실 칸에 안들어가고 거울 앞에 서서 질투를 식히고 있었음. 진정 좀 되면 들어가려고 했는데 문 열고 들어오는 뽀 보고 놀라는 섫. 못난 말이 쏟아질것 같아서 눈 피해버림.
"화장실 가려고?"
"아니, 언니한테 오려고"
"...들어가 있어, 금방 가"
"얘기하고 같이 갈래"

뽀는 섫이 질투하는거 알아서 얼른 풀어주고만 싶음. 생각해보니까 만나는 중에 심심치않게 소유욕을 표출하던 섫이었는데 잠깐 그걸 잊은게 실수였지. 이게 어이없게 느껴지진 않아. 섫의 사랑방식이니까.
제가 과거를 덮고 지나갔다고 해서 섫도 그렇게 해야한다며 강요하고 싶지 않았음. 나는 나고, 언니는 언니니까. 섫이 선을 넘어서 질투나 소유욕을 부리는건 아니라서 뽀는 솔직히 이런 모습이 싫지 않았음. 뜨겁고 찐득거리는 애정을 뒤집어쓴 기분이라서. 거울 향해있는 섫 돌려세워서 마주보는 뽀.
"언니 몸 뜨거워졌어"
"....."
"식히고 들어가자"

왜 그러냐는 말을 돌려서 물어보는 뽀. 근데 섫한테는 그 말이 묘하게 자극적으로 들렸음. 질투로 뜨겁게 달궈졌던 몸에 또 다른 열기가 덮쳐오는건 순간이었음. 이미 소유욕이라는 기폭제까지 터져버렸으니. 뽀 손 잡아다가 칸 안으로 밀어넣는 섫. Image
그대로 문 잠구더니 한쪽 벽에 몰아넣고 입술부터 맞물림. 질투에 물들어서 평소보다 더 틈 안주고 밀어 붙이는 섫. 친구들 기다리니까 여기서 더 뭘 할 생각은 아닌데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넘쳐 흘러서 허리 끌어안고 쇄골 만지고 뽀한테 닿으려고 하겠지. 이 모든 행위가 벅차고 짜릿한 뽀.
놀리려고 짖궂게 구는것도 아니고, 여유가 사라져서 무작정 이렇게 거칠게 구는 섫은 또 처음이라 뽀 기분이 이상함. 분명 옷 다 입고 키스만 하는데 벗겨진것 같고, 다른걸 더 하는 기분임. 뽀 허벅지 잡더니 들어 올려서 제 허리에 바싹 붙이는 섫. 그리고 뭘 더 하는건 아닌데 그냥 정신없이 굴어.
뽀가 숨차서 밀어내도 다시 붙어오고, 밀어내도 손목 집아 떼어내고, 엄청 집요하게 키스할듯. 그러다 진짜 숨 차버린 뽀가 입술 살짝 깨물고 손에 힘 쎄게 주면 그제야 조금 밀려나주겠지. 눈앞에서 가쁘게 숨고르는 뽀 보니까 소유욕에 욕구까지 뒤섞여서 약속이고 뭐고 당장 집에 가고 싶어지는 섫.
"애들..기다려"

그래도 그 말에는 번뜩 정신 차려서 간신히 고개 끄덕이겠지. 한숨 길게 쉬면서 뽀 어깨에 얼굴 기대는 섫. 몸 움츠리듯 안기면서 말함.

"나도 도시락 싸줘"
"도시락?"
"걔보다 더 많이"
"..알겠어, 피크닉 가자"
"나랑도 여행 가. 4박 5일로 가. 자주 가"
"응, 일주일도 갈래"
뽀한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 걔한테 있던 감정이 모래라면 언니를 향한 사랑은 해변이었고, 사막이었음. 그깟 도시락 10번도 해줄 수 있고, 언니라면 내일 세계일주를 가자고 해도 배낭 하나 메고 같이 떠날 수 있음. 그만큼 딴딴한 사랑을 하는 아기채소. 찡찡대는 섫 달래면서 꼬옥 안아줌.
"언니가 원하는거 다 해줄게"
"..진짜?"
"응!"

그 말 듣고서 고개 드는 섫. 어느새 질투는 싹 가시고 능글거리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음. 한발 늦게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는 뽀. 무르기에는 이미 늦었고, 그리고 틀린말은 아니기도 함. 섫이 원하면 다 해줄 수 있음. 제가 할 수 있는거라면.
"오늘 집에 가지마"
"..알았어"
"언니 집에서 하자"
"...알았다니까아..."

마지막 대답 하면서 어깨 팍 밀고 먼저 칸막이에서 빠져나오는 뽀. 섫은 따라 나와서 립 고쳐바르며 말함.

"지엱아"
"또 왜에"
"사랑해"
"....."
"그 새끼보다 훨씬 많이"

네 과거는 못가져도.
현재, 미래.
그거 다 내꺼야. ImageImage
폭염이 이어지는 7월, 덕분에 능글연상이랑 아기채소는 요즘 실외데이트하는 날이 많이 줄었음. 여기저기 외곽 놀러다니는거 좋아 했는데 날이 너무 뜨거우니까 실내 전시회, 카페투어, 집데이트 정도로 폭이 좁아졌을듯. 물론 불만이 있는건 아니야. 아직도 둘은 서로만 있으면 뭐든 다 좋았거든.
집에서 섫 카페 여름기념 신메뉴인 빙수 같이 먹어 보고, 뽀가 SNS 뒤져서 알아 온 예쁜 카페들 같이 다니고. 그걸로도 둘은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음. 근데 이제 실내 데이트를 자주 하고, 여름이라 어딜가도 에어컨을 틀어 주다 보니까 그 일교차로 사단이 한번 날것 같지. 뽀한테.
특히 뽀는 데이트 아니면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거기가 유독 더 춥기도 했음. 실내는 에어컨이 쎄서 춥고, 조금만 나오면 더운공기가 내리쬐고. 인위적인 일교차를 맨몸으로 맞이하다가 결국 감기 걸리는 뽀. 그것도 좀 독하게 와버렸음.
어제 밤부터 몸이 으슬으슬 추웠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상태가 영 아닌거야. 목도 따끔거리고, 코는 다 막혔고. 억지로 몸 일으켰다가 머리 띵해서 그대로 다시 누워버리는 뽀. 꼭 일년에 한두번 이렇게 아팠어서 뽀 바로 알았음. 감기 몸살 왔구나, 하고.
밤새 약하게 틀어져 있던 에어컨 끄고 이마에 손 대보는 뽀. 제 손도 뜨거워서 확실하진 않은데 열도 조금 나는것 같음. 끙.. 소리 내면서 이불 끌어다 덮겠지. 오늘 언니랑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약을 먹는다고 해도 바로 좋아질것 같지가 않았음.
그리고 무리해서 나간다고 해도 눈치빠른 언니는 다 알아챌게 뻔했음. 저번에 비오는날 우산 없다고 연락 안한걸로 속상해하던 모습까지 떠오르니까 안되겠다 싶은 뽀. 바로 따끔거리는 목 가다 듬으며 섫 한테 전화검. 나갈 준비하고 있던 섫은 바로 받겠지.
'응, 지금 일어났어?'
'...언니'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나시 위에 셔츠 걸치고 있던 섫 뽀 목소리 듣자마자 표정 굳어짐. 화장대 위에 올려놨던 핸드폰 집어 들고 바로 스피커 해제하는 섫. 아까보다 선명해진 언니 목소리 들으니까 괜히 마음이 놓이는것 같은 뽀.
'목소리가 왜그래'
'..감기 걸린것 같아'
'하..언제부터 그랬어? 어제도 머리 띵하다고 했잖아'
'아침에 일어나니까 몸에 힘이 없어서..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뽀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맴돌았음. 아프고 싶어서 아픈건 아니지만 오늘 외곽으로 드라이브 한다고 섫이 카페 휴무까지 냈거든.
근데 그 정적에서 뽀가 무슨말 할지 벌써 눈치챈 섫. 앞머리 쓸어 올리면서 뽀 입에서 맴도는 말 훔쳐가버림. 

'다른말'
'..어?'
'그거 싫어'
'.....'
'그 말은 안듣고싶어'
'.....'
'다른말 해줘 지엱아'
'.....'
'..언니 너 여자친구잖아' Image
섫은 뽀가 습관처럼 하는 미안하다는 말이 싫음. 내가 이래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는게 항상 불만이었음. 저는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뽀한테 이런 저런 부탁도 잘 하는데, 그럴때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주면서 지금 당장 아프다는 투정보다 미안하단 생각을 먼저 하는 뽀가 이해가 안됨.
순간 욱하긴 했는데 뽀한테만큼은 예민한 성격이 누그러지기도 했고, 지금 뽀가 아픈게 더 걱정이라 다른말 해달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함. 당장 뽀 집으로 달려갈 준비 끝내놓고 기다리는 섫. 

약이 없다든지,
같이 병원가자든지,
그냥 와달라든지.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다른말 해줘.
핸드폰 어깨랑 얼굴 사이에 끼워넣고 차키랑 가방 챙겨드는 섫. 뽀는 '언니 너 여자친구잖아' 라는 말에 꽂혀서 입술만 깨물고 있음. 당연한 말이 갑자기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 몸이 아픈만큼 마음이 얇아진 탓에, 그 보통의 정의가 특별히 행복하고 벅차올라서.
어느덧 미안하다는 생각은 흐려지겠지. 쉬지않고 움직이는 핸드폰 너머로 말을 전하는 뽀.

'..보고싶어'
'.....'
'여자친구 보고싶어'

그 말 듣자마자 몸에 힘 풀려서 핸드폰 떨굴뻔한 섫. 간신히 손가락으로 잡고서 다시 귓가에 가져다 댐. 동시에 뽀의 말이 이어지겠지.
'사랑해에..'

무슨 생각을 한건지 건조해서 갈라지던 목소리가 축축했음. 혹시 우는건가 싶어서 신경이 곤두섰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것 같아. 다른말 하라고 했더니 냅다 사랑고백 해버리는 연하 여자친구 때문에 미치겠는 섫. 얘는 진짜 어디서 온 아기채소인가 싶어. Image
너무 좋으면 말까지 험해지는거 있잖아. 너무 귀여우면 막 터트리고 싶고. 잠깐 핸드폰 떨어트리고서 작게 욕 읖조리는 섫. 마음 좀 진정시키고 나면 사랑한다는 말 두배로 돌려줌. 병원가야 되지 않냐고 했더니 괜찮대. 한번씩 이러는데 보통 하루이틀 쉬면 낫는다고, 좀 더 심해지면 그 때 가겠대.
솔직히 마음같아선 당장 링거라도 맞게 하고 싶은데 일단 뽀가 원하는대로 따라주는 섫. 약은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고 일단 더 자고 있으라고 하겠지. 밥 만들어줄 시간도 없을것 같은 느낌이라 출발하면서 배민으로 주문해놓고 가는길에 죽 포장하는 섫.
약은 있을거라고 하긴 했는데 혹시 몰라서 약국도 들림. 누구를 위해 약을 사는것도 처음이야. 증상을 잘 몰라서 뽀 상태 떠올리며 얘기하겠지. 

"또 감기에 좋은거 있어요?"
"기력도 없는것 같은데..그럴 때는 뭐 먹어야 돼요?"

그렇게 비슷한 질문 세개나 던지고 필요도 없는 약 네개 더 사는 섫. Image
두둑한 약봉지랑 죽 싸들고 익숙하게 도어락 누르고 들어감. 얼마전에 둘이 서로 집 비밀번호까지 공유했음. 그 날 남한테 비밀번호 알려주는건 처음이라고 했더니 하트 웃음 지으면서 기뻐하던 뽀가 떠올라서 와중에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섫.
혹시 잠들었을까 봐 소리 죽이고 들어가는데 뽀가 이불 속에서 작게 손을 들어 보이겠지. 자라니까 왜 안자고. 많이 아픈가. 얼른 신발 벗고 침대 가까이 가보면 뽀가 벽보고 있던 몸 돌려서 간신히 눈 뜨는게 보임. 얼굴 빨개져서 힘들어하는거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것 같은 섫.
죽이랑 약봉지 내려놓고 그 앞에 주저 앉아서 이마랑 목덜미에 손 대봄. 생각보다 열이 많이 나는것 같은데. 제대로 사람 간호해본적이 없어서 허둥지둥 하면서 뽀 손 붙잡았다가, 어깨 쓰다 듬다가 난리난 섫. 뽀는 그 서툰 행동이 다 애정인걸 알아서 가만히 손 잡아다 볼에 가져다댐.
"뭐 필요해? 물 마실래?"
"..손 시원해"

시원하다고 힘없이 웃으면서 손바닥에 대고 얼굴 부비적대는 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서, 더운 숨 내쉬면서 그러니까 섫 순간 엄한 생각 드는데 바로 정신차릴듯. 김혅정 미쳤니. 아픈애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일단 뽀가 하는대로 그렇게 뒀다가, 제 손바닥에 열이 전부 옮겨 붙은 후에야 죽이랑 약 꺼내는 섫. 조금이라도 먹고, 약먹고 더 자자고 하면 뽀는 입맛 없어도 섫 생각해서 고개 끄덕이겠지. 섫이 죽 세팅해 오는동안 봉지에 가득 쌓인 약보고 또 마음이 울렁이는 뽀. 이게 도대체 몇갠지도 모르겠음.
나 진짜 사랑받는것 같아.
내 여자친구가 나 많이 사랑해줘.

지금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언니랑 하는 연애가, 언니가 주는 애정이 평소보다 마음 깊숙이 들어왔음. 우리집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뒷모습도 새삼 꿈처럼 느껴지고.
뽀가 일어나기 힘들까봐 작은 상에다 죽 차려놓고 침대 위로 가져다주는 섫. 안그래도 저보다 체구가 작아서 평소에도 걱정이 되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거의 뽀를 유리구슬 다루듯 할것 같지. 상체 일으켜 주더니 숟가락까지 직접 쥐고 먹여주려고 하니까 작게 웃으면서 어깨 밀치는 뽀.
"혼자 먹을 수 있어"
"좀 오버야..?"

그러면서 머쓱하게 웃는 섫. 그래도 뽀가 웃는거 보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것 같음. 숟가락 넘겨주려다가 듬뿍 얹어진 죽 바라보고 다시 내밀겠지. 

"그래도 이왕 떴으니까 한입만 아-"

그럼 어질어질 행복하게 와앙 받아먹는 뽀. Image
그 이후로는 뽀가 알아서 먹을만큼 먹고 숟가락 내려놓을듯. 그럼 그 밥상 치우고서 미지근한 물 한잔이랑 약봉지 꺼내드는 섫. 되는대로 사오기는 했는데 뭘 먹여야할지 모르겠음. 사실 식탁 위에 자주 먹는 약 남아있는데 그건 말안하고 같이 봉지 뒤적이는 뽀.
"이거랑, 이거만 먹으면 될것 같아"
"잠깐만..사진 찍어놔야겠다"

다음에는 이걸로 사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핸드폰 꺼내드는 언니가 너무 예쁘고 좋은 뽀. 밥 먹으니까 바닥쳤던 체력은 조금 회복돼서 저 하얀 볼 붙잡고 뽀뽀해주고 싶다는 마음만 뭉게뭉게 자라남.
그래도 언니 감기 옮으면 큰일이니까. 빨리 나아서 많이 해줘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 알약이랑 마시는 감기약 같이 꿀꺽 넘기는 뽀. 보통 심하지 않으면 이렇게 약먹고 한숨 푹 자면 나아지곤 했음. 오늘은 섫이 간호도 해줘서 더 빨리 나을 수 있을것 같고 그렇대.
"약먹었으니까 좀 더 자"
"..고마워"
"깰 때까지 옆에 있을게"
"언니 피곤,"
"지엱아"
"....."
"언니 누구야"
"..여자친구"
"그래서?
"..옆에 있어줘"

표정 굳혔다가 뽀가 옆에 있어달라고 손 내밀면 그제야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는 섫. 한쪽 팔은 침대에 기대고, 턱 받친채로 뽀 얼굴 쓰다듬어줌.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확실히 아프다는게 느껴졌음. 평소보다 눈도 푹 꺼져있고, 숨소리도 죄다 막혀있고, 아직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닿는 곳마다 뜨겁고. 몸상태가 그런데도 제 눈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여전히 축축하고 다정해서. 괜시리 울컥하는 섫.
애인이 아프면 내가 다 아픈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는 친구한테 오바한다고 코웃음을 치던 섫이었음. 아프면 아픈거지. 뭘 또 내가 아파. 신파극 찍냐. 가볍게 내뱉고, 스쳐갔던 그 생각이 전부 거만했던 제 자존심이었다는걸 절절히 깨닫겠지.
아파서 힘없이 늘어져있는 뽀를 보니까 심장이 콕콕 쑤셔오는 섫. 데이트하다가 가끔 추워하던 모습만 떠오르고, 도서관 에어컨이 쎄다고 말하던 목소리만 생생해서.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겨주면 지엱이가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쓸모없는 후회만 줄줄 새어나와서.
결국엔 차라리 제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겠지.

지엱아.
나 아픈거 진짜 싫어하거든.
감기 걸리는 것도 너무 싫어.
근데 너 아픈거 보는게 더 힘든것 같아.
나 주면 안될까.
심장이 갑갑하고 아파.

그 말을 전부 하면 무게가 실릴것 같아서 한마디로 압축해서 던지는 섫. Image
"아프지마"

약기운이 돌면서 잠에 빠져 들다가 그건 빼놓지 않고 듣는 뽀. 섫 손 끌어다 잡으면서 고개 끄덕일듯. 섫은 뽀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앉아서 얼굴 들여다 보고, 열나서 이불 끌어내리면 다시 덮어주고 그래.
꼬박 몇시간이 지났을까. 몸이 훨씬 가벼워져서 아까보다 쉽게 눈뜨는 뽀. 다행히 초기에 바로 약을 먹어서 약효가 바로 돌았음. 자는동안 땀까지 쭉 빼서 열도 거의 내려갔겠지. 옷이 땀에 젖어 달라붙는 느낌이 찝찝해서 뒤척이다가 아직까지도 잡혀있는 손을 발견해.
그리고 그 손을 붙잡고 잠이 든 섫까지. 불편한데서 자는건 질색이라고 온몸으로 치를 떨던 사람이 몸까지 구겨가며 침대 끄트머리에 엎드려서 자고 있잖아. 누가봐도 불편해보이는데. 그게 불편하다고 느낄 여유도 없던 사람처럼.
말라버린 땀이 눈물로 번진건지 울컥하는걸 간신히 삼키는 뽀. 잡힌 손은 그대로 두고 쏟아진 머리카락 치워주고, 드러난 얼굴 애틋하게 쓰다듬어 봐. 잘 때 누가 건드는거 진짜 싫어하는 섫. 본성이 달라지진 않아서 미간 찌푸리면서 눈 떴다가 뽀인거 알고는 바로 표정 풀어질듯.
뽀 얼굴이 아까보다는 가벼워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 다리가 저리다는걸 느끼는건 그 다음이고, 허리가 뻐근하다는 생각이 스치는건 그 다음이야. 항상 본인이 최우선인 섫 인생의 우선순위를 제친건 뽀가 처음일것 같지.
본인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도 인지 못하고 있는 섫. 그냥 기지캐 켜면서 상체 일으키더니 뽀 이마에 손 대봄. 확실히 펄펄 끓던 온도는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음. 뽀 표정도 한결 편해 보이고,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하고. 그러다보니 조금 접어서 넣어뒀던 장난끼가 불쑥이는 섫.
몸 일으켜서 침대에 걸터 앉더니 뽀 얼굴 양옆에 손 받치고 얼굴 들이밀듯. 뽀가 놀라서 어깨 붙잡고 밀어내니까 그 손에 깍지껴서 침대에 누르는 섫. 그리고 입 맞출것처럼 다가가다가 몇센치 남겨놓고 이마끼리 쿵 부딪히겠지. 제 이마랑 별반 다르지 않는 온도 확인하고 떨어지는 섫.
"열 많이 내렸네"
"....."
"아니다. 다시 열나나? 얼굴 빨간데"

속으로 '감기 옮으면 안되는데 어떡하지 그래도 하고싶긴 해' 까지 생각하다가 눈까지 감아버렸던 뽀. 섫이 놀린거 알고 평소처럼 얼굴 빨개져서 손 빼내고 이불 속으로 도망가버림. 그럼 그 자세 그대로 이불 밑으로 잡아내리는 섫.
"어디가"
"..도망가"
"기대했어?"
"샤워할래"
"씻겨줄까"
"절대 안돼"

지금은 농담이겠지만 섫은 삐끗하면 진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음. 질겁해서 고개 젓는 뽀 보니까 또 어두운 마음이 꿈틀거리는 섫.

아, 지엱이 아직 무리하면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미치겠네.
몇시간 전까지 제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빌어놓고 이제 조금 나아졌다고 이런 욕구가 드는게 어이가 없는 섫. 근데 어쩔 수가 없었음. 내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는 마음도, 지금 당장 뽀를 삼키고 싶은 욕구도. 색이 달랐을 뿐 사랑에서 파생된 조각이었으니까.
그래도 네가 힘들다고 하면 안할거야.
다음에 하자고 하면 그럴거야.
근데 지금 너무 닿고 싶으니까.
이렇게 물어만 볼게.

말로는 꺼내지 않은 말을 눈에 가득 담아서 내려다보는 섫. 그럼 뽀는 그거 다 이해하고 밑에 갇혀서 손만 꼼지락 대겠지.
아직 코가 살짝 맹맹하긴 한데 나머지 증상은 잦아들고 없었음. 그리고 일단 하기싫어? 라고 물어보면 그게 아님. 언니랑 하는건 맨날 좋거든. 그리고 오늘 언니가 몇시간 동안 간호해줬고, 약이랑 죽도 사다주고, 예쁜짓만 했으니까. 이번주에 한번도 안하기도 했고. 키스도 하고싶고. 또.
고민하다가 섫 어깨 살짝 잡으면서 마지막 허들을 어설프게 세워보는 뽀.

"언니 감기 옮으면.."
"네가 간호해줘"

섫은 언제나처럼 그 허들을 가뿐하게 넘었고,

"나 땀났어"
"어차피 하면 땀 나"
"몸에 힘도 없고.."
"가만히 있어. 언니가 다 할게"

거짓을 다 지워내고 뽀의 진실을 손에 쥐었음.
결국 오늘도 능글거리는 언니한테 호로록 넘어가는 아기채소. 뽀 위로 이불 대신 섫의 몸이 덮였음. 그래도 힘들까봐 평소보다 훨씬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섫 덕분에 뽀는 한번 더 땀 빼고 샤워하고 뽀송 해졌다는 후문. 저녁에는 컨디션 회복해서 같이 넷플릭스로 영화도 봤다는 비하인드. ImageImage
흘러가는 주말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언니 카페 전용 자리에 앉아서 과제하던 뽀. 잠깐 쉴겸 핸드폰 좀 보다가 단톡방도 확인하는데 친구 하나가 애인이랑 피크닉 다녀왔다고 자랑을 해놨음. 별 생각 없었는데 사진 속에 가지런한 도시락 보니까 얼마 전에 섫이 했던 말이 떠오르겠지.
'나 도시락 싸줘'
'걔보다 더 많이'

질투에 푹 젖어서 말하던 목소리. 몸을 움츠려가며 품에 파고들던 모습도 덩달아 생각이 남. 그 날 이후로 다시 그 주제로 얘기를 하지는 않아서 아예 잊고 있었던 뽀. 모른채로 지낼 수는 있었지만 한번 떠오르고 나니 그 말이 쉽게 지워지지 않음. Image
그러고보니 요즘 바깥 데이트도 잘 안하긴 했는데. 피크닉 하기엔 아직 너무 더우려나. 언니 햇빛 강한것도 싫어하잖아. 사람 많은것도 싫어하는데. 부수적인 걱정들이 줄줄 따라와서 저절로 시선이 바삐 움직이는 섫한테 머무는 뽀. 섫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시선은 바로 느끼고 돌아봄.
바로 눈이 마주치니까 자기가 더 놀라서 움찔하는 뽀. 그럼 섫은 눈 가늘게 뜨면서 잠깐 쳐다보다가 손님 와서 먼저 눈 피함. 왜 또 저런 표정이지. 무슨 생각을 했길래. 입으로는 기계적인 멘트를 하면서 머리 속에서는 이미 아기채소가 앞구르기 뒷구르기 중인 섫.
섫은 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뽀를 잘 알았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까지는 몰라도 그 시선의 농도가 걱정인지, 애정인지, 불안함인지 구별해내는건 섫한테 너무 쉬운일이었음. 방금 눈빛은 애정 95%, 걱정 5%. 섫이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농도였지. 1000% 찐한 애정만 느꼈으면 좋겠는데.
왜냐면 연애에서 만큼은 뽀가 하는 걱정이 백이면 백 쓸데없는거였으니까. 언니가 싫어할까 봐, 언니가 불편하면 어쩌지. 여러 사건들로 많이 옅어지긴 했는데 뽀가 아직 그 생각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는걸 섫은 알았음.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야. 제가 워낙 불편한게 많은 예민한 사람이니까.
뽀한테 관대하다고 해서 주변까지 그러지는 못했던 섫. 전체적으로 기준치가 낮아진게 아니라 뽀한테만 그냥 그 선이 사라진거임. 뽀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섫은 여전히 조금 날카로웠고, 그 감정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음.

더운거 너무 싫어.
저 손님 재수없어.
햇빛 때문에 녹을것 같아.
뽀와 함께 있으면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뽀가 사라지면 어김없이 섫을 불쾌하게 만들었음. 그래서 뽀가 없는 시간에 그런 순간을 만나면 가감없이 그걸 표현했고, 그러다보니 뽀한테는 어쩔 수 없이 쌓이는 데이터가 많았음.
언니가 이런걸 싫어하는구나,
이런게 불편하구나.
그런거.
어떻게 보면 뽀가 걱정을 하는게 당연했음. 사랑하는 사람이 싫다고 하는건 안하고 싶은게 자연스러우니까. 섫도 그걸 알아서 처음에는 데이터가 쌓이지 않게 표현을 숨기기도 해봤는데 며칠도 안지나서 뽀가 요즘 왜 그러냐고, 혹시 화난거 있냐고 울먹거려서 때려치고 아니라는거 밤새워 보여줬음.
그리고 방향을 바꿨음. 나의 불편과 부정이 네 앞에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는걸 뽀에게 각인하는 쪽으로. 뽀가 도화지에 걱정으로 선을 그릴 때마다 섫은 그 위에 애정의 색을 덮어 그림을 완성했고, 그게 몇번이고 반복되면서 뽀도 조금씩 그 전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음.
언니한테서는 나는 예외야.
언니가 품은 예민함이 내 앞에서는
전부 숨을 죽이고 둥글게 변해.

뽀는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섫은 오늘도 옅게 그려진 걱정을 덮기 위해 화려한 물감들을 준비하고 있었음. 일단 우리 지엱이가 어떤 모양을 그렸는지부터 알아야겠지.
사람 좀 빠진 틈에 뽀 테이블로 와서 앉는 섫. 인터넷 탭 9개 띄워놓고 피크닉 명소랑 준비물 검색하던 뽀는 섫 온거 보고 얼른 고개 들고 노트북 당김. 놀라서 그런건데 섫 심기를 건들기엔 충분했지. 한손으로 턱 괴면서 눈썹 까딱이는 섫. 뽀도 무의식에 그런거라 입 앙 다뭄. 헙. 언니 화났다. Image
"지엱아"
"응?"
"언니 고민이 있어"
"..뭔데?"
"여자친구가 눈 마주쳤는데 놀라고, 나한테 노트북도 숨긴다? 왜 그러지?"
"...어.."
"혹시 이제 나한테 질려,"
"그런거 아니야!"

그 말 끝나기도 전에 노트북 보여주는 뽀. 그럼 섫은 울상 짓던 표정 금방 짭웃음으로 바꾸고 가져와서 화면 훑어봄.
또 당했구나 싶지만 언니 입에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오는건 참을 수 없는 아기채소. 금방 포기하고 섫 표정 변하는 것만 쳐다보고 있음. 섫은 "여름에 가고싶은 피크닉 장소 TOP7" 페이지부터 시작해서 비슷한 탭 하나씩 열어보면서 뽀가 혼자 그려낸 걱정의 모양을 짐작하겠지.
제가 여름의 불쾌함을 얘기한건 셀 수없이 많았음. 햇빛 강한것도 싫고, 살 타는것도 싫고, 습기도 싫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뽀가 피크닉을 찾아 보면서 품을 수 있을 걱정은 뻔했지. 그 이후로 고민이 길어지지는 않는 섫. 울퉁불퉁 뽀가 흐릿하게 그려놓은 선 위로 짙은 색의 하트를 칠함.
"내일 가자"
"어??"
"피크닉 어디로 갈까, 어디가 제일 좋아보였어?"

너랑 가는 피크닉은 사계절 다 괜찮아. 이번엔 노트북을 중간에 놓으면서 묻는 섫. 뽀가 한박자 늦어서 멍때리고 있으니까 코끝 살짝 누름. 정신 차리라고. 이제 가려서 보이지 않는 걱정을, 내가 그 위로 그려낸 애정을 보라고.
이제는 제법 섫의 예외에 익숙해져서 하나하나 말해주지 않아도 안에서 뒹굴거리던 걱정을 청소할줄 아는 뽀. 5%의 걱정이 사라지고 애정의 농도가 100%가 된 뽀와 길게 눈 맞추면서 손 잡아 쥐는 섫. 의자 조금 더 옆으로 붙여 앉아서 탭 하나씩 같이 열어봄.
뽀가 한참이나 혼자 들여다봤을 페이지를 한구석이라도 놓칠까 자세히 들여다보는 섫. 네가 흘린 걱정이 화면 어딘가에 묻어있는게 싫어. 전부 다 덮을거야. 그런 마음을 담은채로 뽀 의견 들어보고, 제 의견도 말해가면서 피크닉 장소를 정하겠지.
결국 사람 많은걸 둘다 좋아하진 않아서 조금 외곽으로 나가기로 함. 장소랑 시간 짤 때까지는 섫이 도시락 얘기는 일절 안해서 뽀도 따로 말을 하진 않았음. 섫이 그날의 질투심을 기억 못하는게 차라리 더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근데 탭 하나씩 닫던 섫이 마지막 하나를 남겨두고 멈추겠지.
'피크닉 도시락 추천'

초록색 검색창에는 그 문장이 진하게 쓰여 있었음. 피크닉보다 도시락 생각이 앞서서 제일 먼저 열어놨던 그 탭. 완전히 잊고 있다가 그게 펼쳐지니까 놀라서 아.. 탄식 흘리는 뽀. 섫은 이 탭 처음에 발견했지만 혹시 뽀가 먼저 말하려나 하고 기다린거였음.
뽀가 왜 갑자기 피크닉을 찾아봤고, 도시락을 검색했는지 섫도 다 알거든. 솔직히 방금전까지는 까먹고 있었는데 피크닉 세글자 보자마자 생각이 났음. 그때 나눴던 대화, 그때 겪었던 질투, 그때 내뱉었던 투정. 섫은 그거 알아채자마자 핀트가 나가서 앞에 앉은 뽀 어떻게 못하는게 속이 탔음.
질투에 눈이 멀어서 못나게 한 말을 기억하고 이뤄주려고 하는 뽀가 마냥 예뻐서. 당장 삼켜버리고 싶을만큼 예뻐서. 애정과 비례한 욕구 때문에 불쑥이는거 참느라 죽을맛이었던 섫. 꾹꾹 참으면서 장소까지 고르고, 도시락만 정하고 나면 잠깐 뽀 데리고 어디든 나갈 생각이었음.
근데 도시락 탭을 발견한 뽀가 또 예상치 못하게 섫 버튼을 눌렀음. 언니가 이 탭을 열었다는건 그때 일을 기억했다는거고, 그렇다면 진짜 그 말을 제대로 이뤄주고 싶었던 뽀. 섫이랑 맞잡은 손 제 허벅지 위에 올리면서 미리 생각하고 있던 질문을 함.
"샌드위치 해줄까?"
"....."
"아니면 김밥?"
"....."
"언니가 좋아하는거 해줄게"

모든 말에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음.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예쁘게 감은채로. 이전 연애 때는 등떠밀려서 해준거였지만 뽀 이번엔 진짜 섫한테 하나뿐인 도시락 만들어주고, 또 받고 싶기도 했음. Image
근데 섫은 뽀가 뱉은 문장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서 심장을 때리고, 다시 한번 마지막 문장이 훅 들어와서 이성이 깨부숴졌음.

'언니가 좋아하는거 해줄게'

그런뜻 아닌거 아는데 그런 생각만 가득하니 자꾸 그렇게 해석이 됨. 허벅지 위에 엉켜있는 손들 바라보다가 손바닥 밑으로 파고드는 섫.
그 상태로 손톱 세워서 뽀 손바닥 살살 긁음. 하나만 세워서 툭툭 긁어내던 손가락이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될 때 쯤엔 어느새 얼굴부터 목까지 빨개져있는 뽀. 방금까지 분명 달달했던것 같은데 순식간에 뒤집힌 분위기가 당황스러움. 갑자기? 아직 언니 일하는 중인데? 지금? 여기서?
하도 섫이 예고없이 타오르거나, 이유없이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 왜? 라는 이유는 길게 생각하지 않는 뽀. 거절할 생각은 애초에 선택사항에도 없어서 이 상황에 어디서? 어떻게? 라는 질문만 둥둥 떠다님. 뽀한테서 부끄러움 이외에 거절이 없다는걸 깨달은 섫.
그대로 일어나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차키 챙겨서 나옴. 알바랑 잠깐 대화를 마치고 다시 뽀 앞에 다가오겠지.
이번엔 앉지 않고 서서. 대신 손을 내밀고서.

"가자"

그 얘기는 누구나 들을만큼 크게,

"..진짜 급해"

그 얘기는 뽀한테만 들릴만큼 작게.
뽀는 입술 꾹 물고 짐 챙기기 시작함.
뽀가 다 챙긴 백팩 메려고 하면 그새를 못기다리고 한쪽 어깨에 뽀 가방 메고서 손도 잡아쥐는 섫. 그래놓고 정작 자기 가방은 두고 나와서 알바생이 붙잡게 만듦. 문 붙잡고 있는 알바생 눈치보다가 자기가 달려가서 섫 가방 받아오는 뽀. 서로 가방을 바꿔들고서 빠르게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둘.
섫이 많이 급해보여서 집까지는 못가고 방을 잡으려나 생각했던 뽀. 근데 차 타자마자 뒷목 당겨서 키스해오는 섫 때문에 그 생각은 다 사라져버림. 벌써 조수석에 반쯤 넘어온채로 손 뻗어서 글로브박스 뒤적거리는 섫. 그 손에 한웅큼 쥐여져 나오는 익숙한 물건때문에 눈 감아버리는 뽀.
차에서 한적이 없는건 아니지만 어쨋든 개인적인 공간은 아니라서 그런 일이 많지는 않았음. 조금 걱정도 되는데 언니가 이러는건 지금 진짜 많이 급하다는거거든. 중간에 하다 멈추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시작한다는게. 등골 타고 뜨거운 기운이 퍼져가는 뽀.
결국 조수석 뒤로 젖히고 공간 만들어서 하는데 섫 핀트 나가서 엄청 몰아 붙일듯. 허벅지를 벌려 붙잡고 놔주질 않아서 뽀가 부끄럽다고 한마디 하면 '언니 좋아하는거 해준다며' 그런 무논리로 막고 웃으면서 더 함. 뽀가 다 포기하고 뒤로 손뻗어서 머리 받침대 잡아 쥘 때까지.
받침대를 잡았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섫 등을 잡았다가. 몇번이고 손에 닿은 감촉이 바뀌었는데도 도통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언니 덕에 안고있던 어깨 살짝 깨무는 뽀. 카페 안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조기퇴근했대. 나오면서 알바 보너스 송금해줬대.
결국 뽀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던것만큼 만족할 때까지 하는 섫. 마지막에는 뽀 허벅지에 앉혀두고 하면서 아까 미뤄뒀던 대답을 함.

"샌드위치 해줘"
"아, 언니.."
"김밥도 해줘"
"....."
"그새끼한테 했던 것만 빼고"

그 말과 동시에 거칠어지는 탓에 울먹이면서 두손으로 섫 손목 잡아쥐는 뽀. Image
알았다고 대답도 못하고 다 끝난 후에야 섫 품에 쓰러져서 고개 끄덕이겠지. 그제야 섫은 만족스럽게 웃음.

"너는 뭐 먹고싶어?"
"..몰라아"
"말만 해, 언니가 다 만들어줄게"
"마라탕"
"그건 도시락은 안되니까 오늘 먹자"
"나 졸려.."
"응, 도착하면 깨울게"

그들의 4단계로 매웠던, 어느 주말 낮 ImageImage

• • •

Missing some Tweet in this thread? You can try to force a refresh
 

Keep Current with 둥가둥

둥가둥 Profile picture

Stay in touch and get notified when new unrolls are available from this author!

Read all threads

This Thread may be Removed Anytime!

PDF

Twitter may remove this content at anytime! Save it as PDF for later use!

Try unrolling a thread yourself!

how to unroll video
  1. Follow @ThreadReaderApp to mention us!

  2. From a Twitter thread mention us with a keyword "unroll"
@threadreaderapp unroll

Practice here first or read more on our help page!

Did Thread Reader help you today?

Support us! We are indie developers!


This site is made by just two indie developers on a laptop doing marketing, support and development! Read more about the story.

Become a Premium Member ($3/month or $30/year) and get exclusive features!

Become Premium

Too expensive? Make a small donation by buying us coffee ($5) or help with server cost ($10)

Donate via Paypal Become our Patreon

Thank you for your support!

Follow Us on Twi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