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을 팔로우할까 싶었다. 멋져보이는 작업을 하고 뭔가 정의로운 곳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분. 그런데 내가 왜 이분을 팔로우하지 않았지?

나는 이러면 몇 가지 검색어로 과거 트윗을 찾아본다. 아니나 다를까 멋지고 정의로워 보이는 사람이 자기가 불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No Role Models는 예외가 없었다. 왜 같은 사람이 관계나 이슈,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비열하고 잔인하고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걸까?

요즘 트위터는 공론장이 아니라느니 타임라인도 편향된다던가 필터버블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걸 올리거나 리트윗하면서
나는 공정하고 깨어있고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그게 위험의 징조다. 나는 틀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같이 내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쳐나간 기억이 없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세상에 무슨 잘못이나 책임, 권력이 있냐던 친구와 연을 끊은 적이 있다.
이게 내 우울의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매일 내가 저지르는 실수와 오류와 죄와 편견과 순응에 진절머리가 나고 숨이 막힌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죄책감에 취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김수영 전집과 윤동주 전집이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김수영을 읽지 않기로 했다.
한 여성 작가의 책을 보았는데. 그분은 진실한 김수영의 태도를 좋아하셨다. 김수영을 찬양하는 시인과 작가는 매우 많다.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 1위라는 설문도 있다.

김수영은 빗길에서 아내를 우산으로 팻는데. 아내를 빗길에 두고 온 것보다 우간이 아까웠던 자신을 반성하는 시를 쓴 적 있다.
티비 프로에서 그 시를 소개하며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잘못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진실성이라니!

[김수영의 연인]을 쓴 김현경 씨는 그 아내다. 45년 전에 버스에 치여 죽은 남편의 작업을 보존하고 알리는 김현경님은 그때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도서관에 김수영 육필 시고 전집이 있었다. 사서 선생님이 남는 예산을 처리하려 사셨는데 거대하고 육중한 원고 사진이다.

그 중 상당수는 김현경 씨의 육필이다. 남편은 김현경 씨에게 원고를 적게 했는데. 아까 말한 그 아내 팬 시를 적는 동안에도 때렸다던가. 그런 기억이 있다.
나는 김수영을 좋아했던 내가 부끄러웠고. 무서웠다. 죄책감은 취하기 쉽고. 찬양 받는 예술이지만. 나는 그게 가장 두렵고 역겹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악이랑 다른 게 뭔가. 아내를 때리지 마. 아내를 때리지 말라고.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런 생각이다.
나는 윤동주 시를 읽으면서 내가 김수영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윤동주가 연애 한 번 하지 않고 짝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되는, 국어 보존과 보잘것 없는 독립 운동을 하다 허무하게 죽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윤동주가 아이와 동생과 주변 여성에게 친절했고
직접 재봉틀을 만지는 사람이지만, 간도를 그리워하고 동시를 쓰면서도, 자기가 일본에 유학간 것을 부끄러워하고. 세상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라도 되려고 행동하다 허무하게 죽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가 나왔을 때 보지 않았다. 롤모델은 죽어서 땅 속에 있고, 내 책임만 남았다.
정의롭고 멋진 나에 취하지도 않을 것이며. 죄책감이 주는 고통에 취하지도 않을 것이며.

매일매일 조금씩 의미 있는 가치를 전하고 개선하면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내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깨닫고 당황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려한다.

• • •

Missing some Tweet in this thread? You can try to force a refresh
 

Keep Current with 탐정토끼 (Taehee Kim)

탐정토끼 (Taehee Kim) Profile picture

Stay in touch and get notified when new unrolls are available from this author!

Read all threads

This Thread may be Removed Anytime!

PDF

Twitter may remove this content at anytime! Save it as PDF for later use!

Try unrolling a thread yourself!

how to unroll video
  1. Follow @ThreadReaderApp to mention us!

  2. From a Twitter thread mention us with a keyword "unroll"
@threadreaderapp unroll

Practice here first or read more on our help page!

More from @stelo_kim

15 Sep
용기있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 자의식 과잉으로 눈물이 나는 것부터 멈춰야겠다. 이렇게 트윗을 쓰는 것도 자의식 과잉 같긴 한데.

[크레이빙 마인드]를 쓴 저드슨 브루어는, 의사에게 마음챙김 명상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의사는 공부하고 일할 수록 공감 능력이 무뎌지는데
너무 많은 죽음을 보다보니. 이게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걸 방어하기 위해 공감을 죽이고 환자 탓이나 세상 탓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브루어는 세상은 복잡하고 모든 게 의사의 책임은 아니며,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친절한 행동에 집중하게 했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떻게 보면 냉담한 것이다. 어제 환자가 죽었는데 지나치게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

의사들은 자기가 더 냉담해진다고 느꼈지만, 환자들은 반대였다. 우리 선생님이 갑자기 따뜻하고 친절해지셨어요... 이게 연구 결과였는데.
Read 4 tweets
14 Sep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연구들을 보면 커리어 초반에 급 상승하다가 성장세가 푹 꺾여요. 의사나 여러 직업은 경력이 쌓일 수록 환자 생존률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선 그래프가 다들 그렇지만. 사람의 실력 성장은 천차만별이고 깔끔한 패턴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강하고 성장하고...
어떤 직업은 전문성이 쌓이지 않기도 합니다. 상당 수 트레이더나 투자자들은 원숭이가 다트 던지거나, 문어가 고른 종목(=무작위)보다 안 좋은 결과를 냅니다.

노벨상 수상자 카너먼과 게리 클라인은 이런 분야는 안정적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피드백을 얻기 어려워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고
내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느낌이 든다면. 내 학습 전략이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순히 많이 연습하고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다고 실력이 늘지 않아요.

검색하고 피드백을 받고 목표를 세우고 회고하고 개선하는 프로세스와 전략을 통째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Read 5 tweets
14 Sep
이것도 연구가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에 연구가 있죠)

일간 계획보다 월간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더 많은 걸 해내고(양) 각종 업무 수행 능력도 좋았습니다. (수행)

일간 계획은 보통 매일 강의 1개 듣기처럼 경직되게 짜게 됩니다. 하지만 매일 컨디션이 다르거나, 갑작스러운 야근을 하게 되거나
강의가 어제는 쉬웠는데 오늘은 어렵거나 합니다. 그러니 계획을 지키기 어렵고 좌절하거나 절망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일희일비)

반면에 월간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은 유동적으로 일을 조정하고, 오늘 꼭 해내야한다는 부담 없이 하나씩 해나갈 수 있었어요.
설득의 심리학을 쓴 치알디니,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aka GTD)을 데이비드 앨런, 그릿을 쓴 안젤라 더그워스, [탄력적 습관]을 쓴 스티브 기즈는 월간/일간 계획을 조화시키는 중도적인 해답을 제시하는데요.

월간 목표는 큰 흐름과 방향을 잡아놓고. 일간 목표는 유동적으로 분량을 정하는
Read 7 tweets
8 Sep
어떤 분은 구글 말고 유튜브에 검색하세요. 어떤 분은 [리액트를 다루는 기술]이나 [점프 투 파이썬] 같은 책의 목차를 검색하세요. 대기업 기술 블로그부터 찾는 분도 있고, MDN이나 클라우드 기업의 문서, HTML Living Standard를 검색하는 분도 있어요.
검색어를 정할 때 어떤 분은 "REST API"로 치시지만 다른 분은 "Node Express REST API"를 치세요. 여기에 "~이란?"을 붙이거나, "Node 서버"처럼 한국어를 섞어서 한국어로된 검색결과를 찾기도 하시죠.

"REST API 엔드포인트 디자인" 같이 구체적인 검색어를 쓰시기도 해요.
저는 gRPC나 GraphQL같이 비교 대상인 것들도 검색해봐요. 보통 REST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줄줄 이야기해주고. 어떤 통찰은 REST API 설계에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어요.

HTTP 자체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통찰을 주고. 토스 컨퍼런스에 나오듯이 '도메인의 동사'로 API를 짤 수도 있죠.
Read 5 tweets
8 Sep
저는 사이비 종교를 만나면 토론 배틀을 합니다. 교리를 잘 들어본다음에 내부 모순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전생에 착한 일을 해서 환생하는 류의 교리가 있잖아요? 불교 같으면 전생에 식물일 수도 있는데. 식물에는 영혼이 없고, 인간만 영혼이 있다는 교리가 있단 말이죠.

그러면 인구 수 증가가 문제가 되요. 인구가 기원전에는 2억 정도로 추정하는데, 2021년 기준 78억 명이란 말이죠.
76억명의 영혼은 어디서 왔는가!

그러면 영혼이 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시죠. 이러면 2차 공격에 들어가요. 보통 환생은 전생의 죄를 지어서 현생에 업보를 갚고 제사를 지내야한다는 주장의 근거인데.

새로 만들어진 영혼이면 전생에 죄가 없잖아요?
Read 6 tweets
7 Sep
요즘 코칭하면서 만나는 패턴이 있습니다.
"제가 비전공자라 국비를 다니는데"
"제가 부트캠프 출신이라"
"제가 복수전공이라"
"제가 전공자이긴 한데 문과 출신이라"
"제가 전공자인데 학교 공부가 너무 어려워요. ㅠㅠ"

그냥 모든 교육이 사람들을 막막함 속에 방치하고 낙오자로 만드는 게 아닌가
요즘은 부트캠프 수집가에요. 이런저런 부트캠프가 광고나 후기와 달리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나하나 들어보는 중인데요. 뭐...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전공자 부심을 부릴 것도 없는 게. 대학 교육도 처참하거든요. 4학년인데 a, b 변수에 있는 내용 바꾸는 걸 못한다면. 개인이 게으르고 불성실하다고 책임 전가하기 전에 대학의 교육방식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셔야...
Read 5 tweets

Did Thread Reader help you today?

Support us! We are indie developers!


This site is made by just two indie developers on a laptop doing marketing, support and development! Read more about the story.

Become a Premium Member ($3/month or $30/year) and get exclusive features!

Become Premium

Too expensive? Make a small donation by buying us coffee ($5) or help with server cost ($10)

Donate via Paypal Become our Patreon

Thank you for your support!

Follow Us on Twi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