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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 22 tweets 4 min read
클리셰4 #해성석호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주해성은 다시 안경을 쓰고선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 쇼핑? 괜찮네, 그거. 생각해보니 니가 애들 앞에서 깝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뭐야. 뭔데.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는건데, 적응 안 되게.

- 앞으로도 종종 애들앞에서 꼴값 떨어주길 바란다.
잘 지내보자고 우리.
- 진심?

주해성은 고개만 한 번 대충 끄덕이곤 다시 교실로 향했다. 뭐야, 저 새끼. 묘하게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래도 주해성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거 같아 비서형에게 뒷조사를 부탁했다. 야자를 째고 나란히 교실을 나서는 주해성을 보는 반 녀석들의 시선이
나만큼이나 꼴값이다. 마치 지들의 평화를 위해 주해성이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고분고분 따르며 희생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미안함과 측은함으로 쳐다들 보는데 같잖지도 않아서..

- 이거랑, 이거. 음.. 이것도 괜찮겠네. 야, 입어봐.
- 뭐 하냐?
- 보면 몰라? 니가 입을 거 고르고 있잖아.
주해성에게 어울릴 것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옷들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 뭐해? 안 입어보고.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내가 니 바비인형인 줄 아냐 씹새야?" 하는데 캬~ 표정 좋고, 목소리 톤 좋고!

- 야, 이거 어떻냐? 나랑 커플룩 할래?
- ...지랄도 가지가지다.

결국 주해성이 입어보지 않은 옷들을 내 맘대로 사버리고 손에 들려줬다.

- 나중에 이거 입고 나와.
- 어딜.
- 장소는 차차 생각해볼게.

예상컨데 주해성은 내가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보였다. 뭐 나도 솔직히 니가 내 취향이긴 하다만 왜 이러고 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지금 굉장히 즐겁다는거, 그게 중요할 뿐이다. 어거지로 쇼핑을 끝낸 주해성은 할만큼 했다는 표정으로, "나 간다." 하더니 애써 사준 옷들을 내 차에 밀어넣고 혼자 가버린다.

- 어떻게 된 거야? 주해성이랑 진짜 친해진 거야?

한 3일 전까지만해도 재수없다고
씹어댔던 주해성과 쇼핑을 하러 갔으니 비서형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 그렇게나 싫어하더니 절친이라도 된 거야, 뭐야?

형이 뭐라고 하든말든 주해성에게 어디가냐고 보낸 톡에 처음으로 답이 왔다. '관심 꺼라.'

- 기분은 또 왜 이렇게 업이야? 무섭게.
- 주해성이 나한테만 존나 까칠해ㅋㅋ
- 그게 기분 좋을 일이야?
- 응.
- 변태야? 그게 왜 좋은데. 날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 뭐 그런 드라마 주인공같은 마음인가?

어쩌면 형 말이 반 정도는 맞을수도 있다. 집안배경덕에 이렇게까지 날 하찮게 대하는 사람은 여태 없었으니까.

- 주해성 뒷조사는?
- 알려진 게 없어서 시간 좀 걸릴 거 같은데, 모범생이라며. 뒷조사는 왜?
- 조사해보면 형도 알게 될 거야.

분명 이렇게 하루의 마무리가 좋았다. 좋았는데, 그 기분은 바로 다음 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 석호 너 어제 애들한테 광역 어그로 끌었다며?ㅋㅋㅋ
- 소문 한 번 존나 빠르네.
야자 전 다른 반 놈들 몇 명과 담배를 태우는데, 주해성이 날 무시하는 댓가로 애들을 반 협박했던 어제의 일이 일파만파 퍼져있었다.

- 안 그래도 오늘 그 새끼 때문에 야마도는 중이니까 얘기 꺼내지 마라.

재밌다는 듯 히히덕대던 놈들은 입을 다물었는데 내 머릿속은 오늘 날 자꾸 무시하던
주해성으로 가득 찼다. 어제는 잘 지내보자며 쇼핑까지 닥치고 따라오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 투명인간 취급하는데, 생각할 수록 개같네 진짜. 그 새끼는 날 뭘로 보는거야 씨발.

- 먼저 간다.

화르륵 잘 타오르는 내 성격이 담배가 타는 속도보다 빨랐다.
빡치는데 진짜 영상 학교에 확 풀어버릴까 생각하며 교실로 걸어가다 어깨를 스친 놈에게 화의 불씨가 옮겨 붙었다.

- 쳤냐?
- 아니, 친 게 아니라..

얼굴이 낯익은 게 아마도 우리반인 듯한 녀석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웅성웅성 힐끗대는 시선들 사이에 주해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 니가 왜 맞는 줄 아냐?
- 이,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 이유 모르니까 더 맞자, 친구야.

벽에 밀어붙인 채 얼굴이며 복부며 가릴 것 없이 주먹으로 내리 꽂았다.

- 내가, 씨발, 어제, 말, 했지,

한마디 뱉어낼때마다 주먹이 나가고 비명이 울린다.
- 원인은, 무조건, 주해성이라고, 후우... 내 말 알아듣겠어 친구야? 나중에 주해성한테 꼭 물어봐라. 왜 양석호 심기를 건드려서 니가 맞게 만드는 거냐고.

터진 입가에서 흐르는 피가 손에 묻어 놈의 교복에 슥슥 닦고 있는데 귀에 팍 꽂히는 차분한 목소리.

- 지금 뭐 한거야, 양석호?
- 내가 뭘 하든?
- 하아.. 진짜 구제불능이다 넌.

착한 척 위선떠는 너만큼 하겠냐, 씨발? 주해성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웠던 복도는 조용해졌고 맞은 놈을 살피던 주해성은 다른애들에게 양호실로 데려가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날 벌레보듯 쳐다보다 반으로 들어간다.
아니꼬운 표정으로 천천히 뒤따라가다 교실 문 앞에서 멈췄다. 와.. 또라인가 진짜? 기가 막히다 못해 코가 막힌다. 교탁에 서서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반 놈들에게 말을 전하는 주해성은,

- 요즘 반 분위기가 나 때문에 흐려지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
정말, 진짜, 진심,

- 알다시피 양석호가 왜인지 날 너무 싫어해서 내 교우관계를 다 끊어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그 과정이 너희한테 피해를 주는거여서 내가 면목이 없다..

남우주연상감이었다.
- 앞으로는 그냥 나한테 다가오지 말아줘. 차라리 혼자인 게 낫지 나때문에 누군가가 또 다시 피해를 본다면 정말 학교 다니기 힘들 거 같다.. 다시 한 번 사과할게. 미안하다.

평소의 생글생글 웃는 선하디 선한 얼굴이 아닌 심란한 표정을 장착한 채 마치 미안해서 고개도 못 들겠다는 듯한
주해성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짝짝짝 세 번 쳤다. 주해성을 비롯한 반 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날 향했고, 내 표정은 아마도 감탄을 감추지 못 했던 듯 싶다.

- 머리 잘 썼네, 주해성?

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애들의, 다 저 놈 때문이라는 듯한 불쾌한 시선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내게는 오로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죄책감을 가져야하는 비운의 모범생으로 비춰지는 주해성만 눈에 들어 올 뿐이었다. 이제야 오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일부러 하루종일 날 무시해서 이런 상황이 오게끔 만들었던 거다, 저 위선자 새끼가 말이다. 주해성에겐 하루종일 실실 쪼개며 애들 상대해
주는 게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을거고, 그 고단함은 오늘로써 내 난동을 빌미로 날려버릴 수 있는거다. 공식적인 외톨이를 자처함으로써.

- 똑똑한 대처 잘 봤다. 전할 말 끝났으면 따라나와.

내 이미지는 망나니 재벌 3세에서 쳐죽일놈으로 업그레이드 됐지만 주해성은 제 이미지도 챙기고
귀찮은 놈들을 한 방에 떨쳐내기까지.. 야자를 째고 날 따라나온 주해성이 안경을 벗으며 먼저 입을 연다.

- 잘 했다, 양석호. 오늘 일은 제법 칭찬해줄게.

덕분에 짐을 좀 덜었다는 듯 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 이건 뭐 나무랄데없는 개새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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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
첫사랑5 #서준지우

9월 16일. 윤달처럼 한번씩 생겨나는 날도 아니고 매년 있는 평범한 날짜일 뿐이다. 오늘따라 괜스레 기분이 쳐지는 건 날짜와 아무 상관없다고, 애써 오픈준비에 더 신경쓰고 형기 말에 집중하려 드는 내가 짜증난다.

- 예약제를 할까? 알바를 한명 더 뽑을까?
글쎄.. 우려감이 먼저 들었다. 강서준 지인들이 찾아주는 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잘 되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 요즘 매상 올려주는 거 솔직히 강서준 인맥빨인 거 알잖아.
- 무슨 소리야, 넌 왜 니가 만든 레시피에 이렇게 박하냐? 맛 없으면 아무리 빨 좋아도 소용없다? 시작은 서준이형 인맥빨이
맞긴하지. 그 인맥들 중 인플루언서들이 맛있다고 홍보해준 것도 맞아. 근데 맛 없었으면 홍보가 되겠냐고. 지금은 서준이형 지인들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찾고주고 있잖아. 입소문 타고 있다는건데 자심감 좀 가져.

강서준이 한참 바쁠 시간인 점심때나 저녁때 가끔 도와주러 오기도 해서인지
Read 30 tweets
Oct 30
첫사랑4 #서준지우

- 늦었네?

누구 덕분에 손님이 늘어서 마감이 늦어졌는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구 때문에 피곤이 두배로 쌓이는 거 같다.

- 또 무슨 볼일이 남아서?
- 매일 십분씩 나랑 있어주기로 했잖아.

안 그러면 계속 레스토랑 찾아오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니까 그런거지.
- 일방적인 요구였잖아. 난 이제 너한테 1분도 나눠주고 싶지 않아.
- 오늘 레스토랑 찾아가서 화 난 거야?
- 하.. 그래, 그것도 싫고. 불편하고 몇번을 더 말해줘야돼? 다른사람 감정따윈 안중에도 없지?
- 애기야. 내 번호 차단했어?

이것봐. 대화자체가 안되잖아.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
라도 해야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 나와, 피곤해.
- 차단한 거 풀어주면 비켜줄게.

무슨 자격으로 우리집 문 앞을 막아서서 버티고 있는건지..

- 애기야. 지금은 내가 진심이라고 말해도 못 믿는다는 거 알아. 그래도 나중에 내가 진심이라는 걸 니가 느끼는 날. 그때는 못 이기는 척 넘어와줘.
Read 27 tweets
Oct 29
클리셰범벅3 #해성석호

- 진짜 원하는 게 뭐야?
- 말 했잖아. 내 개가 되어 달라고. 뭐해? 번호 안 찍고. 어려울 거 없어. 전화하면 받고, 부르면 달려오는 거 정도? 간단하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내 폰을 바닥에 툭 떨구고 발로 질끈 밟으며, "좆까, 미친새끼야." 조용히
읊조리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더니 뒤돌아 걷는다. 와, 이렇게 단호하다고? "그냥 가면 후회할텐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에 대고 한 내 말에 뒤도 보지 않고 주머니에 찔러넣은 손만 꺼내어 가운데 손가락으로 대신 답하고선 골목을 빠져나간다.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웃음. 저 새끼랑 어떻게
하면 엮일 수 있을까.

- 어딜 간다고?
- 주해성네 집.
- 왜?
- 친해지려고.
- 뭔 소리야, 갑자기?

어제 결국 받지 못 한 주해성 번호는 비상연락망을 가지고 있는 반장에게 전화해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더불어 집주소까지 한큐에 말이다. 선전포고 좀 하러 가보실까?
Read 29 tweets
Oct 29
사랑과 우정 사이6 #8998 #서준지우

아하, 우리 선배님 캠핑 한 번 야무지게 다녀오셨네? 같이 캠핑 가자는 얘기 나눈지 오래 됐는데 혼자 신나게 놀다 오셨겠다?

- 놀다 오느라 피곤하실텐데 어쩐 일로 전화를 다?
- 응? 아, 캠핑 간 거?
- 나랑도 가기로 했으면서.
- 앜ㅋㅋㅋ 너랑도 가야짘ㅋㅋ
- 이제 제가 그냥 '너'가 된 건가요?
- 아니아니, 지우야 그게 아니랔ㅋㅋㅋ

내가 한지우인지 한지우가 나인지 가끔 자아가 왔다갔다 하는데, 나별 촬영때나 방영 당시에는 팬들이 좋아하니까 메이킹 찍고 있으면 서로 더 챙겨주는 척 해가며 몰입을 유도하는 행동을 많이 했었다. 시즌1때는 내가
어색해할까봐 강서준 그 잡채였던 형이 일부러 장난도치고 먼저 말도 걸고 번호도 먼저 물어봐주고 다가와줬지만 열흘 남짓한 촬영기간은 낯가리는 내가 형과 허물없이 지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오히려 방영이후 같이 하는 스케줄도 많이 생기고 팬미팅 준비도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던 거
Read 8 tweets
Oct 28
첫사랑3 #서준지우

사귄 기간보다 헤어진 기간이 더 길고 그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에겐 사랑도 미련도 그리움도 심지어 미움마저도,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았는데 강서준을 다시 마주한지 고작 이틀째. 심란함이 날 덮쳐와 밤잠을 설쳤고 단정했던 내 생활패턴이 일그러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않다. 예전의 내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사라졌던 미움도 다시 고개를 든다. 니가 뭐라고 또 내 일상을 망치려들어..

- 일하다 다치지 말고, 시간나면 내 생각도 좀 해주고.

출근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집 앞에 츄리닝을 입고 서서 잔뜩 졸린눈을 한 채 벽에 기대어 웅얼대며 손을 흔들흔들 인사
하는 강서준에게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 돈 많이 벌어와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강서준이 저러고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한테 뭘 원해서, 제가 얻을 게 뭐 있다고 이런 수고를 하는걸까.

- 넌 진짜 왜 그러냐. 꼭 다칠 거 뻔히 알면서 다치고 싶은
Read 17 tweets
Oct 26
#문기도훈

- 미안해요, 혼자 있으면 자꾸 나쁜소리가 들려서, 진짜 들리는 소린지 내 귀에만 들리는 소린지도 모르겠고, 나는 미칠것만 같은데,
- 도훈아..
- 벌레가 온 몸에 기어다니는 거 같아서, 그래서,
- 서도훈! 정신차려! 괜찮아..

양쪽 어깨를 꽉 잡고 날 바라보게 만들자 안절부절 못 하고
흔들리던 눈동자가 차츰 고요를 찾아간다.

- 천천히 심호흡해.. 아무일도 없어. 안심해도 돼. 아무 소리도 안 들릴꺼야, 그치?

다신 보지않으려 했는데.. 분명 끊어내려 했었는데.. 일주일만에 걸려 온 "마지막으로 한번만 와 줘요, 제발. 부탁이야.." 울먹이는 목소리에 또 정신없이 달려와버렸다.
넋이 나간 듯 핏기없는 이 안쓰러운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오지 않을수가 없었다.

- 고마워요.. 덕분에 진정 됐어요. ...미안..

서도훈이 정신을 차리고 나 역시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후회가 밀려온다. 난 왜 또 여기서 널 다독이고 있는걸까.

- ...그 사람은 어디가고 혼자야.
- 해외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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