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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2 50 tweets 8 min read
클리셰21 #해성석호

- 야 씨발 주해성!

쾅! 소리가 요란할만큼 교실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더니 당연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모두에는 주해성도 포함이고.

- 따라나와.

학교에서의 단정한 주해성은 그 나름대로 날 꼴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비서형 말로는 아직 연애초창기라
내가 지금 발정이 나서 그런 거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왜냐면 주해성은 누가 봐도 존나 잘생기고 멋있고 귀엽고 꼴리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옥상으로 앞장서는 동안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저 죽일놈의 양석호가 또 착한 우리 모범생 괴롭히는 구나.
솔직히 난 관심도 없고 1도 상관없는데 주해성은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종종 간섭을 한다. 자기도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거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뭐, 어쨌거나.

- 왜 또?
옥상에 도착해서야 순둥한 모습을 벗고 인상을 찌푸리는 주해성의 목부터 냅다 팔로 감고 잘생긴 얼굴에 오늘도 감탄하며, "키스하고 싶어." 말했다.

- 하.. 여기 학교다.
- 그러니까 키스만 하자는거지. 갑자기 꼴리는 걸 어떡해.
- 가만있다가 왜 꼴려.
- 몰라. 오늘 니가 존나 이쁘고 사랑스럽잖아.
- 어우, 또라이.
- ㅋㅋㅋ넌 나 안 이쁘냐?
- 존나 예쁘다 새끼야.

내 허리를 감아 제쪽으로 당기며 입을 맞추는 주해성은 먼저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진 않지만 사랑이 첨가 된 잠자리가 있던 그 날 이후부터 꽤나 내 애정표현을 잘 받아친다.
더불어 우리는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많이 늘었고, 하루하루 서로의 성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가며 여느 연인들처럼 달달하게 지내고 있지만...

- 나랑 사귄지가 벌써 두 달이다 이 새끼야!

여느 연인들과 달리 꽤 살벌하게 지내기도 한다. 왜냐면 우리는 툭하면 싸우니까. 사실 싸운다기 보단
보통 일방적으로 나 혼자 방방뛰는거에 가깝긴 하다. 과외가 없는 날이라 하교 후 집 데이트를 즐기려 했는데 오늘따라 진동이 아닌 소리로 해 놓은 주해성의 폰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어서 이 사단이 난 거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다가 무슨놈의 톡이 십분에 한 번 꼴로 까톡, 까톡, 까톡, 연속으로
울려대는지 휙 낚아채 확인을 해봤다. 주해성답게 아무런 잠금도 없는 폰에는 카톡을 누르자마자 주르륵 뜨는 확인 안 한 메시지들이 한가득이었고 한 눈에 봐도 죄 영어였으며 눈을 감고 봐도 모두 여자인 게 틀림없어 내 분노를 사게 했다. 좀 내리니까 마지막으로 확인한 대화창이 있길래 봤는데..
- 폰 내려놓고 말해라.
- 뭘 잘 했다고 목소리를 깔아 시발.
- 줘.

읽지않은 톡 전부 여자들이라 빡치긴하지만 저장 된 이름도 그렇고 메시지도 그렇고 영어로 보내오는 걸 보면 대부분은 아마 주해성이 미국에 있었을 때 알고 지냈던 여자들인 거 같았다. 어차피 지금은 만나지도 못하니까
넘어가려 했는데.. 그런 메시지들과 달리, '해성아 토요일 12시에 같이 점심 할까?' 하는 친근한 메시지에, 'ㅇㅇ 우리 호텔 레스토랑에서 보자.' 하고 답까지 해놓은 한국여자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애인이 어딨냐고.

- 왜 빡친건데?
- 이 년 뭐야? 뭔데 토요일 점심때 약속까지 잡냐고.
평소 지긋지긋하게 (나만) 언성을 높이며 싸우지만 그나마 다행히 우리가 그때그때 풀리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예전에 주해성이 화를 낼 거면 무슨 이유에서 화가 난 건지 일단 '말'을 하라 그래서 현재는 내가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분명 좋은 변화이긴하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말은 하지만 행동까지 달라지진 않는다고 해야하나. 아니 어쨌거나 원하는 대로 이유는 얘기하잖아, 그거면 됐지 뭐 시발. 빡치는데 뉴스 진행하듯 차분하게 아나운서 톤으로 말 할까?

- 폰 달라고.
- 그래, 가져라!

팍 집어던졌더니 케이스조차 씌워지지 않은 가냘픈 주해성 폰은 책상 모서리에
액정 한가운데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와자작 박살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폰의 운명따윈 지금 내 알바가 아니다.

- 양석호. 계~속 그딴식으로 굴어라?
- ...?

원래 내가 흥분해서 개거품을 물면 주해성은 차가운 표정으로 팩폭을 날려 결국 난 쭈구리가 되는 결론을 맞이했었는데, 이번엔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진열장으로 걸어가더니 눈에 보이는 피규어를 하나 집어 내가 앉아있는 바닥 근처로 사정없이 집어 던진다.

- ...지금 내 피규어 부쉈냐..?

이때부턴 타오를만큼 타올라 눈에 뵈는 것도 없어 손에 잡히는 TV리모컨을 주해성이 서 있는 진열장
근처에 집어던졌는데, 주해성은 마치 날 따라하듯 에어컨 리모컨을 내 근처에 집어던지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깐족거린다.

- 잘 생각해라. 부서지는 건 니 물건이지 내 물건 아니다.

..넌 손해보는 거 없으니까 똑같이 해주겠다 이거지..? 예상치 못 한 상황에 오히려 애초 화났었던 이유보다
주해성 행동에 점점 더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 따라하지마, 썅놈아!

신경질적으로 눈앞에 있는 컵을 던졌더니 산산조각 나는 유리조각들을 보던 주해성은 진열장에서 다음 타겟을 집어 들어 재연이라도 하듯 보란듯이 내 근처에 집어 던진다.

- 따라하지 말라고!
- 니가 안 던지면 나도 안 던질거 아냐.
- 아니 그럼 니가 어떤 여자랑 둘이 데이트 한다는데 내가 씨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건데!

욱하는 성질에 얌전히 옆에 서 있는 공기청전기를 발로 차 넘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날 빤히 보던 주해성은, 누가 데이트 하는데? 하며 진열장의
다음 타겟을 집어 들었는데..

- 야 잠깐! 그거 고이 내려놔라, 던기지만 해봐. 진짜 죽어 씨발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다. 진짜 죽여버릴거야 주해성.
- 죽여라, 시발.

진지한 표정으로 깐족거리니까 더 얄미워서 쌍욕을 했더니 타겟을 손에 쥐고 공중에 붕붕 띄워대는 주해성 행동에 나도 몰래
위협을 느껴 몸이 움찔움찔,

- 잠시만, 아니야, 그거 아니야..

저걸 던져서 날 해칠거 같다는 위협은 당연히 아니고, 주해성 손에 있는 저 물건이 파손되진 않을까 하는 위협에 다급히 협상을 시도했다.
- 알았어, 내가 잘못했나 보다. 그러니까 그거 내려놓고 얘기하자 형. 우린 좀 평화가 필요하잖아. 안그래?
- 넌 꼭 다급하고 불리할 때만 형이지?
- 아니야, 그럴리가! 난 니가 형이어서 항상 듬직하고, 든든하고, 뭐, 그렇거든?! 형 원래 물건 막 집어던지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왜 그래애. 응?
그제서야 주해성은 손에 든 것을 얌전히 다시 진열장에 놓아둔다. 한시름 놓은 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 저게 뭐라고 그렇게 다급했을까, 우리 미친년은?
- 한정판이라고 병신아.

주해성보다 쪼끔 덜 사랑스럽긴 하지만, 이 놈을 만나기 전까진 내게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였던 한정판 피규어는 다행히도 무사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고, 주해성은 떫은 표정으로, "취향 존나 아동틱." 하며 고개를 저어댔다.

- 그럼 이제 얘기해봐. 이 여자는 누군데 토요일에 같이 점심까지 먹기로 한 건데?
- 형수.
- ...넌 겪을수록 또라인거 같다 여봉봉.. 진작 좀 말 했으면 내가 이 지랄까진 안 했을 거 아냐!

다시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언성이 높아지는 내게 주해성은 내가 집어던진 잔해들로 가득한 주변 파편들을 피해 원래 앉아있던 곳에 다시 앉으며 아득바득 이를 갈고있는 내게
거절할 수 없는 말을 던진다.

- 키스할래?
- 갑자기?!
- 안 한다고?
- 내가 언제!
- 그럼 이리와.
- 그래!

짜증나는건 짜증나는거고 키스는 키스니까. 키스 한번에 마음이 다 녹아내리는 건 주해성이 잘해서인지 그냥 잘생긴 놈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새끼는 확실히 날 좀 다룰줄 아는게 분명하다.
이제는 서로의 성격과 상황에 따른 대처법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방식으로, 오로지 우리만의 세계가 조금씩 구축되고 있는듯하다.

- 넌 왜 맨날 내가 눈 돌아갈때까지 보고만 있냐? 빨리빨리 설명을 해주면 좀 좋냐고.
- 귀엽다니까? 별 거 아닌걸로 쌩 지랄 발광하는 거.

와.. 진짜 사람 정신병자로 만드네..

- 뭐가 귀엽다고, 뭐.
- 지금 니 꼴이 귀엽다고, 모자란 새끼야.

픽 웃으며 내가 얼굴까지 벌개져서 화를 내며 지랄할 때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엽다는 변태같은 말을 해선 날 부끄럽게 만든다.
- 바람 피울거면 이렇게 어설프게 피우겠냐?
- 아닌거 알아도 욱하는 걸 어떡하라고.
- 일일이 열 내지마 새끼야. 그렇게 안 해도 딴 짓 안해.

오늘도 혼자 화르륵 불타던 날 잘도 가라앉히는 주해성은 아무래도 전생에 말 조련사였나보다.
채찍과 당근의 적절한 비율을 안성맞춤으로 주는거 보면 말이다. 물론 다른사람은 이해하지 못 하는거 같지만.

- ...두 번 싸웠다간 집 하나 무너지겠다 얘들아.

집으로 놀러 온 노아는 바닥에 형체가 불분명할 정도로 박살이 난 잔해들을 보며 박수를 친다.
- 차라리 강도가 들었다고 하지. 이 정도면 거의 상극 아닌가? 하나는 물이고 하나는 불인데 어떻게 사귀냐..?
- 원래 상반되는 사람들끼리 만나야 서로 보완도 되고 좋은거거든?
- 그래서 너네가 서로한테 보완이 되는 부분은 뭔데?
- ..아직은 모르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중.
일주일만 있다 갈거라던 노아는 뭔 재미가 붙은건지 한량처럼 혼자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닌다.

- 가만보면 해성이가 우리중에 제일 열심히 살아. 미국에선 나랑 맨날 사고치기 바쁘더니 한국에선 세상 정신차린 자제분이 됐네.

늦둥이로 태어나 '부둥부둥 잘한다 내 새끼 하고싶은거 다 해.' 취급을
받고 산 나와 달리 엄격한 집안에서 망나니로 살아왔던 주해성은 최근에 종종 가족의 기업행사에 얼굴을 비추곤 했었는데 요즘들어 그런 날들이 잦아지고 있다. 사고뭉치 아들의 한국생활을 지켜보던 엄하디 엄한 부친께서 점점 주해성을 인정하는건지 한두번 데리고 가다 요즘은
웬만한 곳을 다 데리고 다니는 거 같다.

- 이번주말은 무조건 같이 있고 싶었는데.
- 끝나는대로 올게.
- 집으로?
- 어디든. 그러니까 괜히 나 기다린다고 집구석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어디서든 놀고있어라.
- 이렇게 말 하는 거 보니 무슨 날인지 아는구나?
- 니 생일, 씹새야.
토요일이 생일이었는데 하필 그 날 집안 일이 생긴 주해성이 내 생일은 기억이나 할까 싶었는데 알고 있었다는 듯 단번에 말을 해와서 나날이 놀랄 정도로 내게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뭉클하네, 짜식.

- 기억하고 있네?
- 니가 적당히 지껄였어야 잊지.
- ..안 지껄였으면 까먹었겠다?
- 어.

개놈의 새끼. 가만 보면 아닌 척 하면서도 은근히 이쁜 짓만 하고 이쁜 말만 하는 거 같은데 꼭 뒷통수 갈기는 소리를 함께하는 주해성을 노려보자 본체만체, 뭐 갖고 싶냐? 묻는다.

-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줄 순 있고?
- 한도 안에선.
- 우주 사줘.
- 우주는 안 팔아 병신아.
- 나도 알아 병신아. 물질적인 건 니가 안 해줘도 부족한 거 없으니까 대신 내가 원하는 거 해줘.

생일기념으로 주해성을 좀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어졌다.

- 뭔데.
- 애교.
- ......
- 애교 보여줘.
- ......
- 애교 보여달라고. 귀염떠는 것 좀 보자. 야야, 이게 어디서 못 들은 척이야, 뒤질라고.

함께 맞이하는 첫 생일이어서 얼마 전부터 들떠 있었던 난, 그 날 바쁠 예정인 주해성 스케줄에 기운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끝나는 즉시 내가 어디에 있든 그 곳으로 오겠다는 말 몇 마디가 꽤나
기분 좋았다. 더군다나 해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평소 보지 못 했던 애교스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한몫하고.

- 엽기다 진짜. 넌 주해성 애교가 보고싶냐...? 너무 끔찍한데?
- 정노아 애교보다 천배는 덜 끔찍할 거 같은데? 내 생일선물에 니가 왜 간섭이야.
얼어붙은 주해성은 노아와 티격대는 내게, "그딴 거 없는 거 알잖아." 하는데, 아니까 하는 말이지 멍청한 새끼야..

- 그러니까 해 달라는 거잖아. 평소에도 애교 부리는 놈이었으면 내가 해달랬겠냐?

틱틱대는 말투로 피곤해하는 주해성에게 피곤함을 가중시켜줬다. 즉흥적인 생각이었지만
곱씹어 볼수록 잘 한 거 같아 속으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본다. 아무리 뻔뻔하고 가끔은 능청스러운 주해성이지만 애교도 그렇게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귀염 떠는 게 상상이 안 돼서 더더욱 궁금해진다.
고대하던 생일을 이틀 남겨둔 저녁. 의외로 식사메뉴 정하기가 쉽지 않다. 주해성을 만나기 전에는 그냥 비서형이 챙겨주는대로 먹거나 술집에서 안주류를 집어먹었던 거 같은데..

- 뭐 먹지.

몸 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치곤 먹을 땐 꽤나 잘 먹어치우는 주해성이다보니 웬만한 건 다 잘 먹는다는
이미지가 생겨 주로 메뉴는 내가 정하곤 했다.

- 간장게장 땡긴다. 어때?
- 그러던가.

평소 메뉴를 정할때처럼 오늘도 내 제안에 가볍게 끄덕이는 주해성이라 별 생각없이 종종 비서형과 갔었던 전문점을 찾았고, 내가 룸으로 들어가는 동안 주해성은 여종업원과 무어라 종알종알 몇마디를
주고받길래 물었다.

- 아까 그 여자랑 뭔 얘기했냐?
- 별 걸 다 궁금해한다.
- 아, 뭔 얘기 했냐고.
- 별 얘기 안 했다 새끼야. 너 이거 집착이다?
- 내가 내꺼한테 집착 좀 하겠다는데 왜?
- ..넌 내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길만 물어봐도 이 지랄 떨 거냐?
- 응.
- 당당하게 대답하지마.
- 안 당당할 건 뭔데. 지나가다가 길을 왜 물어봐, 폰으로 검색해 새끼야.
- 말을 말자.

귀찮다는 듯 대꾸하는 주해성을 보는 건 익숙해서 그닥 감정이 상하지는 않는다. 것도 그럴게, 내가 생각해도 내 시야는 너무 주해성 한정으로 좁아서 자그만거에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니까.
불안해서 그런 건 아니다. 주해성은 연인사이에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오면 제가 먼저 말을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생겼다, 이럴 일이 생길 거 같다. 그러니까 주해성은 꽤 정직하게도 내가 의심할만한 짓은 최대한 안 한다는 거다. 그러므로 아까 여종업원이랑 한 대화내용도
별 거 없을 거란 것을 안다. 근데, 그냥 궁금하다. 난 주해성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주해성은 그런 날 이해하지 못 하지만 내 남자가 외간여자랑 나눈 대화내용 궁금해하는 게 뭐 어때서.

- 내일 저녁에 제주도 간댔지?
- 응.

아직 어린 나이지만 늠름히 제 몫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면 멋있기도 하고, 조금씩 나와 달리 어른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 가끔 집안행사로 피곤해하는 모습을 볼때면 어쩐지 괴리감이 느껴진다. 난 지금의 내 나이를 즐기고 있는데, 주해성은 제 나이 이상의 모습을 보여야 할 테니까.

- 모레 늦게라도 나 보러 오기로 한 거 잊으면 안된다.
- 알았다고. 니 생일 안 까먹고 있다고 쫌.
- 근데.. 입맛 없냐? 왜 이렇게 안 먹어?

아까부터 영양가 없는거만 좀 깨작거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메추리알이나 까먹고 앉아있는 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 게장 못 먹어.
- ? 근데 왜 왔어 미친놈아.
- 니가 먹고 싶다며.
...이건 감동해야 하는 거야, 욕을 해야 하는 거야.. 찡~하고 감동받으려다가도 먹지도 못 하는 곳은 왜 와! 하는 짜증도 나던 순간.

- 난 딴 거 먹으면 되니까.
- 못 먹으면 못 먹는다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벙어리냐?
- 닥치고 게장이나 쳐 먹어.

때마침 룸의 문이 열리더니 난데없이 등장한
음식에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게장 전문집에서 피자 시켜먹는 인간은 처음 봐.. 아까 여종업원이랑 뭔 얘길했나 싶었더만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양해를 구하고 돈을 좀 더 얹어주는 대신 피자를 배달시킨 주해성은 휘황찬란하게 나오는 코스요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피자만 입에 쑤셔 넣는다.
- 못 먹는거야 아님 안 먹는거야?
- 알러지 있어서. 게 먹으면 입술이랑 목 붓고 간지러워.
- 그런 중요한 얘긴 미리 좀 하면 안되냐..?
- 먹고싶다길래 기껏 와줬더니.

안 어울리게 미련한 구석이 있네 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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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3
피에로의 눈물 #서준지우

아웃사이더 피에로의 눈물1, 2 가사에 살만 조금 붙인 썰
한적한 작은 마을에 몇해 전 아내를 잃은 한 사내가 살고 있었어. 항상 붉은색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양새의 입술을 얼굴에 그려놓고선 웃음을 팔며 살았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하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고여있었어.
흐르지도 않고 늘 맺혀있는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에 반사돼 사내의 큰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효과를 더해줬어. 사람들은 그의 노랫가락과 춤사위와 곡예를 보며 즐거워했어. 아무도 맺힌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 그도 옛날엔 눈물자욱 하나 없는 맑은 눈을 가진 자였어. 사랑하는 이와
Read 21 tweets
Jan 3
불완전4 #서준지우

방금전까지 서준을 먼저 유혹해 안겨놓고선 가느다란 목소리로 끝을 선언한 지우를 이대로 보낼수가 없어 옷을 챙겨입고 가려는 앞을 막아선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래도 안 떠나? 이래도 날 안 놔? 이래도 버틴다고?' 마치 서준의 한계를 확인하려는 듯 상처를 주면서도
그만보자는 말은 했던적이 없었으니까.

- 갑자기 내가 싫어진 건 아닐거잖아..
- 그동안 나때문에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속으론 즐겼어.
- 뭐..?
- 무섭지 않아? 네 고통이 날 웃게한다는거.

지우 손목을 잡고있던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아프단 소리 한번을 하지 않는다. 늘 그랬다.
한지우 입에서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는 말은 허락되지 않은 금기어라도 되는 양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감각이 한지우를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완벽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비정상적인 정서.

- 그런 말 듣고싶어서 묻는 게 아니잖아..
Read 21 tweets
Dec 31, 2022
클리셰19 #해성석호

거실 테이블에 앉아 비서형에게 전화해 양주와 안주 좀 조달해달라 했더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딴 걸 요구하냐고 짜증을 내던 형은 5분만에 뭔가가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손에 들고 우리집으로 왔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 온 비서형도, 형을 본 노아도 서로 물음표 상태로
날 쳐다봤고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다.

- 아래층에 사는 경호하는 형. 얘는 주해성 친구 정노아.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한 후 비서형은, "갈수록 도련님이 늘어난다..? 적당히 좀 마셔 양석호." 하면서도 주방으로 가 챙겨온 것을 늘어뜨리며 안주거리를 챙긴다.
말려봐야 어차피 의미없는 걸 아니까 속이라도 좀 덜 상하게 하려는 형의 걱정을 알기에, "많이 안 마셔." 누가봐도 믿지않을 거짓말을 던졌다.

- 참, 해성이 넌 일본 안 가?
- 일본을 왜 가.
- 리조트 세우던 거 완공되서 내일 너희 가족 다 행사 참석한다는 거 같던데. 넌 아직 학생이라 그런가?
Read 28 tweets
Dec 31, 2022
클리셰18 #해성석호

아직 질투작전을 시작해보지도 못한데다 주해성은 절대 쉽게 마음을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 한 시점에 너무도 빨리, 그것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얼떨떨하다.

- 수전증이냐? 손 존나 떠네.
-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이게 방금 고백 한 사람의 태도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주해성은 그저 주해성답다. 제 마음을 고백한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난 왜 이 모양이지.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심장마사지를 하며 후하후하 호흡했다.

- 주접떨지 말고 일어나. 가자 좀.
팔을 잡고 날 일으켜 세우는 녀석에게 매달리며, 몸에 힘 다 풀렸어어.. 했더니, 손 많이 가는 새끼. 하며 날 질질끌고 테이블로 간다. 실감이 나질 않지만 그럼에도 주해성의 인정은 어쨌거나 내 기분을 구름보다도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 손 씻고 올게.
Read 53 tweets
Dec 30, 2022
클리셰17 #해성석호

우리는 예정대로 피자집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서야 제대로된 안부를 물었다.

- 내일 도착한다더니?
- 실장이 날짜를 잘못 말해 줬더라고. 근데 너희 되게 친한가보다. 불금에도 만나?
- 아주 각별하지 우리는.

따끈한 피자를 한 조각씩 들며 대화하다 주해성에게 넌시지 물었다.
- 노아한테 말해도 되냐?

뭘? 하는 질문 대신 표정으로 묻는 주해성에게 눈짓으로, '너랑 나.' 했더니 피자를 베어 문다.

- 나한테 할 얘기 있어?
- 주해성이 괜찮다고 하면.
- 니가 언제부터 나한테 의견같은 걸 물었냐?
- 그럼 말 한다?

이제 주해성의 방식이랄지 성격이랄지,
어렴풋이 알게 된 나로썬 꽤나 만족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우리가 사귄다는 얘길 노아에게 해도 되는 걸까 나름 생각도 해 보고 '주해성이 질색 하겠지?' 로 혼자 결론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 나 주해성이랑 연애해.
- 컥, 뭐,뭘 한다고? What? 둘이 뭘 한다고?!
- 연애.
Read 54 tweets
Dec 28, 2022
클리셰16 #해성석호

내 성질이 스스로도 감당이 안돼 눈앞마저 핑 도는 것 같다. 주해성은 고개를 갸웃하고 잠깐 생각하는 듯 하다 금방 입을 열었다. "아, 대충 감이 오네. 알겠으니까 차근차근 얘기해봐." 하는데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담담히 말하는게 너무 좆같아서 다가가 주먹을 날렸다.
- ..다 때렸냐?

맞은 주해성은 여전히 차분한데 난 주먹에서 느껴진 타격감에 놀라 얼어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해성이라 당연히 피할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 했었는데 주먹이 얼굴을 치기도 전에 이미 눈을 감았던 것으로 보아 그냥 맞아 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오히려 놀란 건 나였고
눈물조차 멈췄다. 손도 조금 떨리는 거 같다.

- 미,미쳤어? 왜 안 피하고 있어, 또라이새끼야!

입술이 터져 피가 맺히는데 주해성은 그저 볼 안쪽을 혀로 쓸어보다, "좀 가라앉았냐?" 묻더니 자박자박 걸어 쇼파에 앉아 날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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