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확고한 지지층을 가진 작품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지브리 타래는 끝이라고 말했는데 이 작품에 대한 질문이 넘치기도 하고. 도입부만 지금 써두고 일하고 와서 저녁에 마저 쓰겠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지옥의 강행군이었습니다. 후배가 만들던 작품을 죄다 갈아엎어 다시 만드느라 히사이시 조가 상영 직전까지 촉박하게 음악을 작곡해야 했는데요,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까맣게 불타올라 한동안은 단편에 집중하면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극장 다음으로 영화의 수요가 높은 장소가 어딜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비행기입니다. 비행기는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된 영화 감상의 장소였고 지금도 비행기와 영화는 관련이 깊습니다. 아시아나 항공 같은 경우엔 <국제 아시아나 단편영화제> 같은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한 항공사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에 ‘기내에서 상영할 짧은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의뢰했고 평소 비행기를 좋아하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비행기 추격전을 단편 애니메이션 속에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장편 <붉은 돼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세계 주요 언어로 <붉은 돼지>의 배경을 설명해주는데, 지브리 정도니 세계 진출은 어렵지 않아서 자신감에 넣은 장면이… 아니라 기내 상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남은 흔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혼자 거꾸로 가는 아랍어 돼지가 귀엽더라고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힘들어서 쉬려고 만들던 단편 애니메이션이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넣어서 만들다 보니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불타올랐던 열정에 다시 땔깜을 넣은 격이 되어버린 겁니다... 사실 돼지 머리 인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너캐이기도 하거든요.
“그래 이대로 장편을 만들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만들고 있던 단편 애니메이션을 바로 장편화하기로 결정하니 그것이 바로 <붉은 돼지>입니다. 이제 이 영화는 기내에서 짧게 틀어지고 말 작품이 아니니까 목표로 하는 관객층이 필요해졌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늘 목표하는 관객층을 설정해요.
<마녀 배달부 키키>는 20대 사회초년생 여성들을 위한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12살 즈음의 여자아이들을 위한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는 12살 즈음의 남자아이들을 위한 작품, <벼랑 위의 포뇨>는 6살 즈음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작품이었던 것처럼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의 관객층을 자신과 같이 ‘일에 치어서 뇌가 두부가 되어버린 중년 남성들’로 설정합니다. 이거 실제 미야자키 하야오의 표현입니다. 뇌가 두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어떤 작품이 필요할까요?
1. 스펙터클해야 합니다.
2. 로망을 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3.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애국따윈 인간끼리 많이 하쇼”
이 대사가 얼마나 많은 ‘뇌가 두부가 되어버린 중년 남성들’에게 사이다처럼 들렸을까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남자가 되고 싶다는 로망은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겠지요.
오늘은 ‘뇌가 푸딩...’ 아니 ‘뇌가 두부가 되어버린 지친 남성들을 위한 헌사’ <붉은 돼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그 남자가 돼지가 되어버린 이유>입니다. 그 이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감독 얘기를 해봅시다. 안노 히데아키는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제자입니다. 하지만 <붉은 돼지>가 만들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이가 많이 나빠진 상태였는데요, <마녀 배달부 키키>와 <붉은 돼지>를 보고 안노가 한 악평은 지금도 많이 회자됩니다.
“토미노 요시유키(건담의 아버지) 감독은 팬티를 벗고 (검열삭제)를 덜렁거리면서 ‘이거 봐라, 나 알몸이다!’라고 말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거 봐라, 나 알몸이다!’하고 봤더니 점잖게 팬티를 입고 있다.” 작품이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입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했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한계는 고작해야 데이트 무비 정도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 다음 작품에 일생을 건 역작 <모노노케 히메>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겠죠.
여튼간에 오늘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점잖게 팬티를 입고서 “이거 봐라, 나 알몸이다!”하고 춤을 추는 영화 <붉은 돼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저녁에 뵙겠습니다.
“수십 번 반복해서 봤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자 그는 뜻밖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발끈했다.
“제 작품을 50번 보는 대신 49번은 다른 경험을 해야죠. 반복해서 보는 49번의 시간에 무언가를 잃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만 일하러 갑니다.
타래 시작합니다.
<붉은 돼지: 인간이 인간이었던 마지막 시대의 이야기>
도입에서도 밝혔듯이 <붉은 돼지>는 삶에 지쳐 뇌가 두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게 없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미스터리는 단 하나, '마르코는 왜 돼지, 포르코가 되었나'입니다.
포르코의 본명은 마르코입니다. 어떤 이유에선가 돼지가 되어버린 마르코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말장난인 '포르코'로 바꿔버립니다. 돼지를 뜻하는 영단어 Pork에 본명인 마르코를 덧붙인 말장난입니다.
마르코가 돼지가 되어버린 이유는 두 가지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작품의 내적인 논리에 따르는 것이고 하나는 작품 외적인 현실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는 겁니다. 우선 후자를 살펴보고 전자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학교를 다니던 시대는 68운동과 스튜던트 파워로 촉발된 학생 운동이 일본 사회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가쿠슈인이라는 엘리트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생 운동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못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도 학생 운동에 동참한 일원 중 하나였습니다.
높은 이상을 품고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한 학생 운동의 중심에는 전공투(전학생공동투쟁)가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런 학생 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가 처음으로 만화를 연재한 곳은 공산당 기관지의 청소년판 '소년소녀신문'이었습니다. <사막의 백성>, 나우시카 전신 되는 작품.
전공투는 반대학운동을 전개하면서 학생 운동의 주체인 학생을 자기부정하기 시작합니다. 학생 운동의 주체인 이들에게 '학생'은 기만적인 신분이었고, 해체되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학생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 운동은 최루탄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그리고 1969년 9월 3일 전국전공투 결성대회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처음 등장한 '적군파'의 등장과 함께 학생 운동은 무기력해지기 시작합니다. 적군파의 등장은 무장 폭력과 고립을 주장했습니다. 쇠퇴해가던 학생 운동의 최후가 시작됩니다.
스스로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올라가 무장 혁명을 전개해야 한다던 적군파는 12명의 내부인을 '공산주의형 인간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우치게바 사건'과 '아사마 산장 사건' 등으로 인해 결국 일본의 좌익 학생 운동은 끝내 좌절되고 맙니다.
학생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더 높은 꿈과 이상을 갖게 하자는 이상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학생 운동 경력 때문에 마땅히 취업할 곳이 없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가서도 애니메이터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기도 했는데, 다카하다 이사오와 하야오가 만난 것도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노조 활동을 하면서였습니다. 더 나은 권리를 얻기 위해 태업을 하던 시기여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평생 읽을 동화를 이 시기에 다 읽었다'고.
높은 이상을 가지고 '인간다운 삶'을 얻기 위해 투쟁했던 이들은 결국 학생 운동의 좌절, 일본 사회의 보수화, 그리고 고도자본주의의 일상화 등으로 인해 결국 점차 삶에 찌들어갑니다. 이상은 무너졌고 질척한 현실만이 남았습니다.
<붉은 돼지>라는 제목부터가 그런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붉은 돼지>는 한때 높은 이상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지만 결국 시대와 현실에 좌절하여 자본주의의 세계 속 돼지가 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2. 마르코에 대하여
그렇다면 마르코는 어떤 인물일까요? 애초에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 작품이라 상당히 직접적으로 답이 제시됩니다. 마르코는 전쟁 에이스이고, 아드리아 바다의 파일럿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량과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붉은 돼지>를 둘러싼 논쟁 가운데 하나는 '피오가 왜 포르코를 좋아하는가'입니다. 답은 간단한데. 피오 또한 하늘을 동경하는 하늘의 사람이고 포르코는 개중에서도 가장 전설적인 파일럿입니다. 동경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지요.
포르코의 기량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포르코가 구사하는 비행술인데요, 포르코는 '임멜만 턴'을 자유롭게 구사합니다.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정도의 밀덕이 아니니까 엄청 까다로운 비행 기예를 마스터한 비행의 달인이라는 정도만 이해하면 됩니다.
3. 파일럿
파일럿은 낭만으로 가득한 직업이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자이자 <어린왕자>를 남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파일럿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산업혁명과 전쟁으로 인해 지상에서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유일하게 낭만이 남아있는 곳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붉은 돼지>의 배경이 되는 1929년 말 즈음은 이런 비행의 낭만이 쇠퇴하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파시즘 정권이 유럽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파일럿들은 군에 포섭됩니다. <붉은 돼지>의 배경을 보면, 군대에 들어가지 않은 파일럿들이-
'공적'이나 그런 공적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낭만을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남아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묘사되는 공적들의 모습을 보면 좀 멍청해보이기까지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언젠가 자신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세상이 이랬다면 좋을 텐데'하고 바라는 세계를 그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묘사의 절정이 초반부에 있는데, 공적들은 '아이를 따돌릴 수는 없으니까' 15명의 아이들을 모조리 납치하고 비행기 안은 놀이터가 됩니다.
저 아이들은 지금 공적(하늘의 해적)들에게 납치를 당한 인질들인데 공적들은 아이들에게 꼼짝도 못할 뿐더러 기관총의 총구를 돌리는데도 어쩌지 못합니다. 공적들도 낭만을 쫓아 비행을 시작한 이들이기 떄문에 사실은 바보스러울 만큼 선한 인물들인 겁니다.
공적들이 포르코의 은둔처를 습격했을 때, 피오가 '자존심도 없냐'며 일갈하는 장면에서 이런 설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공적들을 포함한 아드리아 해의 파일럿들이 쫓고 싶어했던 것은 돈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바로 명예였다고 일갈하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기사들이 쇠퇴한 시대에
뒤늦게 꿈과 이상을 쫓는 기사가 나타나
돈과 명예, 그리고 여자를 쫓는 이야기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거 제목이 <돈키호테>였던가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돈키호테의 안티테제입니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기사도 문학으로 인식하는 저주에 걸린 남자입니다. 하지만 포르코에게 걸린 저주는 돈키호테의 반대입니다. 자기가 돼지가 되는 저주에 걸렸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마법은 자기 자신이 건 것입니다.
포르코가 돼지가 된 이유는 작중에서 대놓고 묘사됩니다. 마르코는 전쟁에 참가해서 동료들을 잃는 참혹한 경험을 합니다. 하늘을 동경하여 파일럿이 되었지만, 현실은 그를 전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 혐오에 걸린 마르코는 스스로 인간이길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돼지가 된 겁니다.
결국 마르코가 포르코가 되어버린 이유는 '낭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포르코로 하여금 끊임없이 '낭만'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옛 기사도 문학이 어땠던가요.
기사도 문학은 기사가 영웅적인 행위를 하여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얻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낭만을 잃어버린 돼지에게 <붉은 돼지>의 세계는 끊임없이 '옛날의 낭만을 기억해내라'고 강요합니다. 좀 집요할 정도로요. "낭만주의 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붉은 돼지>는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경험 이후 낭만이 쇠퇴해가던, 그러나 아직까지는 낭만이 남아있던 '마지막 낭만의 시대'를 그리는 작품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버전의 기사도 문학인 셈이지요.
<붉은 돼지>가 이토록 낭만을 강조하는 이유는 학생 운동의 실패와 좌파 운동이 실패한 현실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학생 운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붉은 돼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삶과 현실에 지쳐 이상을 쫓던 과거를 잊지는 말자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망각과 기억'의 모티브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이런 경험이 기반이 되었겠지요. 미야자키 하야오 세대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끌던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소중한 것을 기억해내라'는 메세지를 유달리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은 '보편성'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선전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메세지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다고 얘기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런 메세지는 다른 역사적 맥락을 거쳐온 우리들에게 와닿는 메세지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붉은 돼지>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는 꿈과 이상을 쫓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실 때문에 좌절하고, 결국 이상을 쫓는 행위를 냉소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거죠.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고, 꿈꾸던 업계에 들어가도 꿈꾸던 일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높은 이상으로 인한 좌절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야오의 작품들이, 특히 <붉은 돼지>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런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위로하는 작품이기 때문이겠죠.
오늘 타래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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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Nov
미야자키 하야오와 이쿠하라 쿠니히코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같은 정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같은 궤에서 탄생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 생각에 우리 세대나 어쩌면 다음 세대는 상상력이 부족한 듯합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하는 거겠지요. 제 생각에 그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거예요.”
“좀 잔인하게 말해서 부모의 시야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모티베이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죠. 아이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겁니다. 아이들이 교류하는 어른이란 게 부모나 선생 정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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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Nov
<벼랑 위의 포뇨>를 다시 보면서 인상적인 장면만 캡처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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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Nov
트렁 르 응우옌(Trung Le Nguyen)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올해 최고의 수확 아닐런지. 이번에 새로 구한 타로 덱의 일러스트를 맡으신 분인데 이 타로 덱 오로지 그림 때문에 산 것이라 작가에게도 관심이 생겨 책도 주문했습니다. 시놉시스가 흥미로워요.
제목은 <The Magic Fish>
베트남 난민 출신 소년 ‘티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만 이 이야기를 베트남어로 전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부모님은 영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티엔은 영어를 배울 때 쓰던 ‘동화’를 이용해 부모님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해나간단 이야기.
아직 책을 직접 읽진 못했습니다. 직구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림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제가 이런 그림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타로 덱까지 내주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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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Nov
<벼랑 위의 포뇨>는 하야오 작품들 가운데 최종보스라 할만합니다. 귀여운 외형과는 달리 가장 난해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든 말든 미야자키 하야오가 난생 처음 직접 작사한 포뇨 주제가는 이 애니메이션이 아동용이라는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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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바그네리안(바그너의 추종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본인의 애니메이션을 바그너 오페라처럼 만들려 시도해왔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가 그 시도를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라는 흔적은 영화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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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Nov
“ 내가 처음으로 쇼거스라는 존재를 본 것은 그 꿈에서였고, 나는 그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 날 아침 ,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완전한 인스머스의 얼굴이었다.” - <인스머스의 그림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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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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