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가둥 Profile picture
25 Jul, 275 tweets, 50 min read
폭염이 이어지는 7월, 덕분에 능글연상이랑 아기채소는 요즘 실외데이트하는 날이 많이 줄었음. 여기저기 외곽 놀러다니는거 좋아 했는데 날이 너무 뜨거우니까 실내 전시회, 카페투어, 집데이트 정도로 폭이 좁아졌을듯. 물론 불만이 있는건 아니야. 아직도 둘은 서로만 있으면 뭐든 다 좋았거든.
집에서 섫 카페 여름기념 신메뉴인 빙수 같이 먹어 보고, 뽀가 SNS 뒤져서 알아 온 예쁜 카페들 같이 다니고. 그걸로도 둘은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음. 근데 이제 실내 데이트를 자주 하고, 여름이라 어딜가도 에어컨을 틀어 주다 보니까 그 일교차로 사단이 한번 날것 같지. 뽀한테.
특히 뽀는 데이트 아니면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거기가 유독 더 춥기도 했음. 실내는 에어컨이 쎄서 춥고, 조금만 나오면 더운공기가 내리쬐고. 인위적인 일교차를 맨몸으로 맞이하다가 결국 감기 걸리는 뽀. 그것도 좀 독하게 와버렸음.
어제 밤부터 몸이 으슬으슬 추웠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상태가 영 아닌거야. 목도 따끔거리고, 코는 다 막혔고. 억지로 몸 일으켰다가 머리 띵해서 그대로 다시 누워버리는 뽀. 꼭 일년에 한두번 이렇게 아팠어서 뽀 바로 알았음. 감기 몸살 왔구나, 하고.
밤새 약하게 틀어져 있던 에어컨 끄고 이마에 손 대보는 뽀. 제 손도 뜨거워서 확실하진 않은데 열도 조금 나는것 같음. 끙.. 소리 내면서 이불 끌어다 덮겠지. 오늘 언니랑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약을 먹는다고 해도 바로 좋아질것 같지가 않았음.
그리고 무리해서 나간다고 해도 눈치빠른 언니는 다 알아챌게 뻔했음. 저번에 비오는날 우산 없다고 연락 안한걸로 속상해하던 모습까지 떠오르니까 안되겠다 싶은 뽀. 바로 따끔거리는 목 가다 듬으며 섫 한테 전화검. 나갈 준비하고 있던 섫은 바로 받겠지.
'응, 지금 일어났어?'
'...언니'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나시 위에 셔츠 걸치고 있던 섫 뽀 목소리 듣자마자 표정 굳어짐. 화장대 위에 올려놨던 핸드폰 집어 들고 바로 스피커 해제하는 섫. 아까보다 선명해진 언니 목소리 들으니까 괜히 마음이 놓이는것 같은 뽀.
'목소리가 왜그래'
'..감기 걸린것 같아'
'하..언제부터 그랬어? 어제도 머리 띵하다고 했잖아'
'아침에 일어나니까 몸에 힘이 없어서..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뽀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맴돌았음. 아프고 싶어서 아픈건 아니지만 오늘 외곽으로 드라이브 한다고 섫이 카페 휴무까지 냈거든.
근데 그 정적에서 뽀가 무슨말 할지 벌써 눈치챈 섫. 앞머리 쓸어 올리면서 뽀 입에서 맴도는 말 훔쳐가버림. 

'다른말'
'..어?'
'그거 싫어'
'.....'
'그 말은 안듣고싶어'
'.....'
'다른말 해줘 지엱아'
'.....'
'..언니 너 여자친구잖아' Image
섫은 뽀가 습관처럼 하는 미안하다는 말이 싫음. 내가 이래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는게 항상 불만이었음. 저는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뽀한테 이런 저런 부탁도 잘 하는데, 그럴때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주면서 지금 당장 아프다는 투정보다 미안하단 생각을 먼저 하는 뽀가 이해가 안됨.
순간 욱하긴 했는데 뽀한테만큼은 예민한 성격이 누그러지기도 했고, 지금 뽀가 아픈게 더 걱정이라 다른말 해달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함. 당장 뽀 집으로 달려갈 준비 끝내놓고 기다리는 섫. 

약이 없다든지,
같이 병원가자든지,
그냥 와달라든지.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다른말 해줘.
핸드폰 어깨랑 얼굴 사이에 끼워넣고 차키랑 가방 챙겨드는 섫. 뽀는 '언니 너 여자친구잖아' 라는 말에 꽂혀서 입술만 깨물고 있음. 당연한 말이 갑자기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 몸이 아픈만큼 마음이 얇아진 탓에, 그 보통의 정의가 특별히 행복하고 벅차올라서.
어느덧 미안하다는 생각은 흐려지겠지. 쉬지않고 움직이는 핸드폰 너머로 말을 전하는 뽀.

'..보고싶어'
'.....'
'여자친구 보고싶어'

그 말 듣자마자 몸에 힘 풀려서 핸드폰 떨굴뻔한 섫. 간신히 손가락으로 잡고서 다시 귓가에 가져다 댐. 동시에 뽀의 말이 이어지겠지.
'사랑해에..'

무슨 생각을 한건지 건조해서 갈라지던 목소리가 축축했음. 혹시 우는건가 싶어서 신경이 곤두섰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것 같아. 다른말 하라고 했더니 냅다 사랑고백 해버리는 연하 여자친구 때문에 미치겠는 섫. 얘는 진짜 어디서 온 아기채소인가 싶어. Image
너무 좋으면 말까지 험해지는거 있잖아. 너무 귀여우면 막 터트리고 싶고. 잠깐 핸드폰 떨어트리고서 작게 욕 읖조리는 섫. 마음 좀 진정시키고 나면 사랑한다는 말 두배로 돌려줌. 병원가야 되지 않냐고 했더니 괜찮대. 한번씩 이러는데 보통 하루이틀 쉬면 낫는다고, 좀 더 심해지면 그 때 가겠대.
솔직히 마음같아선 당장 링거라도 맞게 하고 싶은데 일단 뽀가 원하는대로 따라주는 섫. 약은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고 일단 더 자고 있으라고 하겠지. 밥 만들어줄 시간도 없을것 같은 느낌이라 출발하면서 배민으로 주문해놓고 가는길에 죽 포장하는 섫.
약은 있을거라고 하긴 했는데 혹시 몰라서 약국도 들림. 누구를 위해 약을 사는것도 처음이야. 증상을 잘 몰라서 뽀 상태 떠올리며 얘기하겠지. 

"또 감기에 좋은거 있어요?"
"기력도 없는것 같은데..그럴 때는 뭐 먹어야 돼요?"

그렇게 비슷한 질문 세개나 던지고 필요도 없는 약 네개 더 사는 섫. Image
두둑한 약봉지랑 죽 싸들고 익숙하게 도어락 누르고 들어감. 얼마전에 둘이 서로 집 비밀번호까지 공유했음. 그 날 남한테 비밀번호 알려주는건 처음이라고 했더니 하트 웃음 지으면서 기뻐하던 뽀가 떠올라서 와중에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섫.
혹시 잠들었을까 봐 소리 죽이고 들어가는데 뽀가 이불 속에서 작게 손을 들어 보이겠지. 자라니까 왜 안자고. 많이 아픈가. 얼른 신발 벗고 침대 가까이 가보면 뽀가 벽보고 있던 몸 돌려서 간신히 눈 뜨는게 보임. 얼굴 빨개져서 힘들어하는거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것 같은 섫.
죽이랑 약봉지 내려놓고 그 앞에 주저 앉아서 이마랑 목덜미에 손 대봄. 생각보다 열이 많이 나는것 같은데. 제대로 사람 간호해본적이 없어서 허둥지둥 하면서 뽀 손 붙잡았다가, 어깨 쓰다 듬다가 난리난 섫. 뽀는 그 서툰 행동이 다 애정인걸 알아서 가만히 손 잡아다 볼에 가져다댐.
"뭐 필요해? 물 마실래?"
"..손 시원해"

시원하다고 힘없이 웃으면서 손바닥에 대고 얼굴 부비적대는 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서, 더운 숨 내쉬면서 그러니까 섫 순간 엄한 생각 드는데 바로 정신차릴듯. 김혅정 미쳤니. 아픈애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일단 뽀가 하는대로 그렇게 뒀다가, 제 손바닥에 열이 전부 옮겨 붙은 후에야 죽이랑 약 꺼내는 섫. 조금이라도 먹고, 약먹고 더 자자고 하면 뽀는 입맛 없어도 섫 생각해서 고개 끄덕이겠지. 섫이 죽 세팅해 오는동안 봉지에 가득 쌓인 약보고 또 마음이 울렁이는 뽀. 이게 도대체 몇갠지도 모르겠음.
나 진짜 사랑받는것 같아.
내 여자친구가 나 많이 사랑해줘.

지금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언니랑 하는 연애가, 언니가 주는 애정이 평소보다 마음 깊숙이 들어왔음. 우리집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뒷모습도 새삼 꿈처럼 느껴지고.
뽀가 일어나기 힘들까봐 작은 상에다 죽 차려놓고 침대 위로 가져다주는 섫. 안그래도 저보다 체구가 작아서 평소에도 걱정이 되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거의 뽀를 유리구슬 다루듯 할것 같지. 상체 일으켜 주더니 숟가락까지 직접 쥐고 먹여주려고 하니까 작게 웃으면서 어깨 밀치는 뽀.
"혼자 먹을 수 있어"
"좀 오버야..?"

그러면서 머쓱하게 웃는 섫. 그래도 뽀가 웃는거 보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것 같음. 숟가락 넘겨주려다가 듬뿍 얹어진 죽 바라보고 다시 내밀겠지. 

"그래도 이왕 떴으니까 한입만 아-"

그럼 어질어질 행복하게 와앙 받아먹는 뽀. Image
그 이후로는 뽀가 알아서 먹을만큼 먹고 숟가락 내려놓을듯. 그럼 그 밥상 치우고서 미지근한 물 한잔이랑 약봉지 꺼내드는 섫. 되는대로 사오기는 했는데 뭘 먹여야할지 모르겠음. 사실 식탁 위에 자주 먹는 약 남아있는데 그건 말안하고 같이 봉지 뒤적이는 뽀.
"이거랑, 이거만 먹으면 될것 같아"
"잠깐만..사진 찍어놔야겠다"

다음에는 이걸로 사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핸드폰 꺼내드는 언니가 너무 예쁘고 좋은 뽀. 밥 먹으니까 바닥쳤던 체력은 조금 회복돼서 저 하얀 볼 붙잡고 뽀뽀해주고 싶다는 마음만 뭉게뭉게 자라남.
그래도 언니 감기 옮으면 큰일이니까. 빨리 나아서 많이 해줘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 알약이랑 마시는 감기약 같이 꿀꺽 넘기는 뽀. 보통 심하지 않으면 이렇게 약먹고 한숨 푹 자면 나아지곤 했음. 오늘은 섫이 간호도 해줘서 더 빨리 나을 수 있을것 같고 그렇대.
"약먹었으니까 좀 더 자"
"..고마워"
"깰 때까지 옆에 있을게"
"언니 피곤,"
"지엱아"
"....."
"언니 누구야"
"..여자친구"
"그래서?
"..옆에 있어줘"

표정 굳혔다가 뽀가 옆에 있어달라고 손 내밀면 그제야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는 섫. 한쪽 팔은 침대에 기대고, 턱 받친채로 뽀 얼굴 쓰다듬어줌.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확실히 아프다는게 느껴졌음. 평소보다 눈도 푹 꺼져있고, 숨소리도 죄다 막혀있고, 아직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닿는 곳마다 뜨겁고. 몸상태가 그런데도 제 눈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여전히 축축하고 다정해서. 괜시리 울컥하는 섫.
애인이 아프면 내가 다 아픈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는 친구한테 오바한다고 코웃음을 치던 섫이었음. 아프면 아픈거지. 뭘 또 내가 아파. 신파극 찍냐. 가볍게 내뱉고, 스쳐갔던 그 생각이 전부 거만했던 제 자존심이었다는걸 절절히 깨닫겠지.
아파서 힘없이 늘어져있는 뽀를 보니까 심장이 콕콕 쑤셔오는 섫. 데이트하다가 가끔 추워하던 모습만 떠오르고, 도서관 에어컨이 쎄다고 말하던 목소리만 생생해서.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겨주면 지엱이가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쓸모없는 후회만 줄줄 새어나와서.
결국엔 차라리 제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겠지.

지엱아.
나 아픈거 진짜 싫어하거든.
감기 걸리는 것도 너무 싫어.
근데 너 아픈거 보는게 더 힘든것 같아.
나 주면 안될까.
심장이 갑갑하고 아파.

그 말을 전부 하면 무게가 실릴것 같아서 한마디로 압축해서 던지는 섫. Image
"아프지마"

약기운이 돌면서 잠에 빠져 들다가 그건 빼놓지 않고 듣는 뽀. 섫 손 끌어다 잡으면서 고개 끄덕일듯. 섫은 뽀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앉아서 얼굴 들여다 보고, 열나서 이불 끌어내리면 다시 덮어주고 그래.
꼬박 몇시간이 지났을까. 몸이 훨씬 가벼워져서 아까보다 쉽게 눈뜨는 뽀. 다행히 초기에 바로 약을 먹어서 약효가 바로 돌았음. 자는동안 땀까지 쭉 빼서 열도 거의 내려갔겠지. 옷이 땀에 젖어 달라붙는 느낌이 찝찝해서 뒤척이다가 아직까지도 잡혀있는 손을 발견해.
그리고 그 손을 붙잡고 잠이 든 섫까지. 불편한데서 자는건 질색이라고 온몸으로 치를 떨던 사람이 몸까지 구겨가며 침대 끄트머리에 엎드려서 자고 있잖아. 누가봐도 불편해보이는데. 그게 불편하다고 느낄 여유도 없던 사람처럼.
말라버린 땀이 눈물로 번진건지 울컥하는걸 간신히 삼키는 뽀. 잡힌 손은 그대로 두고 쏟아진 머리카락 치워주고, 드러난 얼굴 애틋하게 쓰다듬어 봐. 잘 때 누가 건드는거 진짜 싫어하는 섫. 본성이 달라지진 않아서 미간 찌푸리면서 눈 떴다가 뽀인거 알고는 바로 표정 풀어질듯.
뽀 얼굴이 아까보다는 가벼워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 다리가 저리다는걸 느끼는건 그 다음이고, 허리가 뻐근하다는 생각이 스치는건 그 다음이야. 항상 본인이 최우선인 섫 인생의 우선순위를 제친건 뽀가 처음일것 같지.
본인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도 인지 못하고 있는 섫. 그냥 기지캐 켜면서 상체 일으키더니 뽀 이마에 손 대봄. 확실히 펄펄 끓던 온도는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음. 뽀 표정도 한결 편해 보이고,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하고. 그러다보니 조금 접어서 넣어뒀던 장난끼가 불쑥이는 섫.
몸 일으켜서 침대에 걸터 앉더니 뽀 얼굴 양옆에 손 받치고 얼굴 들이밀듯. 뽀가 놀라서 어깨 붙잡고 밀어내니까 그 손에 깍지껴서 침대에 누르는 섫. 그리고 입 맞출것처럼 다가가다가 몇센치 남겨놓고 이마끼리 쿵 부딪히겠지. 제 이마랑 별반 다르지 않는 온도 확인하고 떨어지는 섫.
"열 많이 내렸네"
"....."
"아니다. 다시 열나나? 얼굴 빨간데"

속으로 '감기 옮으면 안되는데 어떡하지 그래도 하고싶긴 해' 까지 생각하다가 눈까지 감아버렸던 뽀. 섫이 놀린거 알고 평소처럼 얼굴 빨개져서 손 빼내고 이불 속으로 도망가버림. 그럼 그 자세 그대로 이불 밑으로 잡아내리는 섫.
"어디가"
"..도망가"
"기대했어?"
"샤워할래"
"씻겨줄까"
"절대 안돼"

지금은 농담이겠지만 섫은 삐끗하면 진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음. 질겁해서 고개 젓는 뽀 보니까 또 어두운 마음이 꿈틀거리는 섫.

아, 지엱이 아직 무리하면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미치겠네.
몇시간 전까지 제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빌어놓고 이제 조금 나아졌다고 이런 욕구가 드는게 어이가 없는 섫. 근데 어쩔 수가 없었음. 내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는 마음도, 지금 당장 뽀를 삼키고 싶은 욕구도. 색이 달랐을 뿐 사랑에서 파생된 조각이었으니까.
그래도 네가 힘들다고 하면 안할거야.
다음에 하자고 하면 그럴거야.
근데 지금 너무 닿고 싶으니까.
이렇게 물어만 볼게.

말로는 꺼내지 않은 말을 눈에 가득 담아서 내려다보는 섫. 그럼 뽀는 그거 다 이해하고 밑에 갇혀서 손만 꼼지락 대겠지.
아직 코가 살짝 맹맹하긴 한데 나머지 증상은 잦아들고 없었음. 그리고 일단 하기싫어? 라고 물어보면 그게 아님. 언니랑 하는건 맨날 좋거든. 그리고 오늘 언니가 몇시간 동안 간호해줬고, 약이랑 죽도 사다주고, 예쁜짓만 했으니까. 이번주에 한번도 안하기도 했고. 키스도 하고싶고. 또.
고민하다가 섫 어깨 살짝 잡으면서 마지막 허들을 어설프게 세워보는 뽀.

"언니 감기 옮으면.."
"네가 간호해줘"

섫은 언제나처럼 그 허들을 가뿐하게 넘었고,

"나 땀났어"
"어차피 하면 땀 나"
"몸에 힘도 없고.."
"가만히 있어. 언니가 다 할게"

거짓을 다 지워내고 뽀의 진실을 손에 쥐었음.
결국 오늘도 능글거리는 언니한테 호로록 넘어가는 아기채소. 뽀 위로 이불 대신 섫의 몸이 덮였음. 그래도 힘들까봐 평소보다 훨씬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섫 덕분에 뽀는 한번 더 땀 빼고 샤워하고 뽀송 해졌다는 후문. 저녁에는 컨디션 회복해서 같이 넷플릭스로 영화도 봤다는 비하인드. ImageImage
흘러가는 주말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언니 카페 전용 자리에 앉아서 과제하던 뽀. 잠깐 쉴겸 핸드폰 좀 보다가 단톡방도 확인하는데 친구 하나가 애인이랑 피크닉 다녀왔다고 자랑을 해놨음. 별 생각 없었는데 사진 속에 가지런한 도시락 보니까 얼마 전에 섫이 했던 말이 떠오르겠지.
'나 도시락 싸줘'
'걔보다 더 많이'

질투에 푹 젖어서 말하던 목소리. 몸을 움츠려가며 품에 파고들던 모습도 덩달아 생각이 남. 그 날 이후로 다시 그 주제로 얘기를 하지는 않아서 아예 잊고 있었던 뽀. 모른채로 지낼 수는 있었지만 한번 떠오르고 나니 그 말이 쉽게 지워지지 않음. Image
그러고보니 요즘 바깥 데이트도 잘 안하긴 했는데. 피크닉 하기엔 아직 너무 더우려나. 언니 햇빛 강한것도 싫어하잖아. 사람 많은것도 싫어하는데. 부수적인 걱정들이 줄줄 따라와서 저절로 시선이 바삐 움직이는 섫한테 머무는 뽀. 섫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시선은 바로 느끼고 돌아봄.
바로 눈이 마주치니까 자기가 더 놀라서 움찔하는 뽀. 그럼 섫은 눈 가늘게 뜨면서 잠깐 쳐다보다가 손님 와서 먼저 눈 피함. 왜 또 저런 표정이지. 무슨 생각을 했길래. 입으로는 기계적인 멘트를 하면서 머리 속에서는 이미 아기채소가 앞구르기 뒷구르기 중인 섫.
섫은 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뽀를 잘 알았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까지는 몰라도 그 시선의 농도가 걱정인지, 애정인지, 불안함인지 구별해내는건 섫한테 너무 쉬운일이었음. 방금 눈빛은 애정 95%, 걱정 5%. 섫이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농도였지. 1000% 찐한 애정만 느꼈으면 좋겠는데.
왜냐면 연애에서 만큼은 뽀가 하는 걱정이 백이면 백 쓸데없는거였으니까. 언니가 싫어할까 봐, 언니가 불편하면 어쩌지. 여러 사건들로 많이 옅어지긴 했는데 뽀가 아직 그 생각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는걸 섫은 알았음.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야. 제가 워낙 불편한게 많은 예민한 사람이니까.
뽀한테 관대하다고 해서 주변까지 그러지는 못했던 섫. 전체적으로 기준치가 낮아진게 아니라 뽀한테만 그냥 그 선이 사라진거임. 뽀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섫은 여전히 조금 날카로웠고, 그 감정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음.

더운거 너무 싫어.
저 손님 재수없어.
햇빛 때문에 녹을것 같아.
뽀와 함께 있으면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뽀가 사라지면 어김없이 섫을 불쾌하게 만들었음. 그래서 뽀가 없는 시간에 그런 순간을 만나면 가감없이 그걸 표현했고, 그러다보니 뽀한테는 어쩔 수 없이 쌓이는 데이터가 많았음.
언니가 이런걸 싫어하는구나,
이런게 불편하구나.
그런거.
어떻게 보면 뽀가 걱정을 하는게 당연했음. 사랑하는 사람이 싫다고 하는건 안하고 싶은게 자연스러우니까. 섫도 그걸 알아서 처음에는 데이터가 쌓이지 않게 표현을 숨기기도 해봤는데 며칠도 안지나서 뽀가 요즘 왜 그러냐고, 혹시 화난거 있냐고 울먹거려서 때려치고 아니라는거 밤새워 보여줬음.
그리고 방향을 바꿨음. 나의 불편과 부정이 네 앞에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는걸 뽀에게 각인하는 쪽으로. 뽀가 도화지에 걱정으로 선을 그릴 때마다 섫은 그 위에 애정의 색을 덮어 그림을 완성했고, 그게 몇번이고 반복되면서 뽀도 조금씩 그 전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음.
언니한테서는 나는 예외야.
언니가 품은 예민함이 내 앞에서는
전부 숨을 죽이고 둥글게 변해.

뽀는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섫은 오늘도 옅게 그려진 걱정을 덮기 위해 화려한 물감들을 준비하고 있었음. 일단 우리 지엱이가 어떤 모양을 그렸는지부터 알아야겠지.
사람 좀 빠진 틈에 뽀 테이블로 와서 앉는 섫. 인터넷 탭 9개 띄워놓고 피크닉 명소랑 준비물 검색하던 뽀는 섫 온거 보고 얼른 고개 들고 노트북 당김. 놀라서 그런건데 섫 심기를 건들기엔 충분했지. 한손으로 턱 괴면서 눈썹 까딱이는 섫. 뽀도 무의식에 그런거라 입 앙 다뭄. 헙. 언니 화났다. Image
"지엱아"
"응?"
"언니 고민이 있어"
"..뭔데?"
"여자친구가 눈 마주쳤는데 놀라고, 나한테 노트북도 숨긴다? 왜 그러지?"
"...어.."
"혹시 이제 나한테 질려,"
"그런거 아니야!"

그 말 끝나기도 전에 노트북 보여주는 뽀. 그럼 섫은 울상 짓던 표정 금방 짭웃음으로 바꾸고 가져와서 화면 훑어봄.
또 당했구나 싶지만 언니 입에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오는건 참을 수 없는 아기채소. 금방 포기하고 섫 표정 변하는 것만 쳐다보고 있음. 섫은 "여름에 가고싶은 피크닉 장소 TOP7" 페이지부터 시작해서 비슷한 탭 하나씩 열어보면서 뽀가 혼자 그려낸 걱정의 모양을 짐작하겠지.
제가 여름의 불쾌함을 얘기한건 셀 수없이 많았음. 햇빛 강한것도 싫고, 살 타는것도 싫고, 습기도 싫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뽀가 피크닉을 찾아 보면서 품을 수 있을 걱정은 뻔했지. 그 이후로 고민이 길어지지는 않는 섫. 울퉁불퉁 뽀가 흐릿하게 그려놓은 선 위로 짙은 색의 하트를 칠함.
"내일 가자"
"어??"
"피크닉 어디로 갈까, 어디가 제일 좋아보였어?"

너랑 가는 피크닉은 사계절 다 괜찮아. 이번엔 노트북을 중간에 놓으면서 묻는 섫. 뽀가 한박자 늦어서 멍때리고 있으니까 코끝 살짝 누름. 정신 차리라고. 이제 가려서 보이지 않는 걱정을, 내가 그 위로 그려낸 애정을 보라고.
이제는 제법 섫의 예외에 익숙해져서 하나하나 말해주지 않아도 안에서 뒹굴거리던 걱정을 청소할줄 아는 뽀. 5%의 걱정이 사라지고 애정의 농도가 100%가 된 뽀와 길게 눈 맞추면서 손 잡아 쥐는 섫. 의자 조금 더 옆으로 붙여 앉아서 탭 하나씩 같이 열어봄.
뽀가 한참이나 혼자 들여다봤을 페이지를 한구석이라도 놓칠까 자세히 들여다보는 섫. 네가 흘린 걱정이 화면 어딘가에 묻어있는게 싫어. 전부 다 덮을거야. 그런 마음을 담은채로 뽀 의견 들어보고, 제 의견도 말해가면서 피크닉 장소를 정하겠지.
결국 사람 많은걸 둘다 좋아하진 않아서 조금 외곽으로 나가기로 함. 장소랑 시간 짤 때까지는 섫이 도시락 얘기는 일절 안해서 뽀도 따로 말을 하진 않았음. 섫이 그날의 질투심을 기억 못하는게 차라리 더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근데 탭 하나씩 닫던 섫이 마지막 하나를 남겨두고 멈추겠지.
'피크닉 도시락 추천'

초록색 검색창에는 그 문장이 진하게 쓰여 있었음. 피크닉보다 도시락 생각이 앞서서 제일 먼저 열어놨던 그 탭. 완전히 잊고 있다가 그게 펼쳐지니까 놀라서 아.. 탄식 흘리는 뽀. 섫은 이 탭 처음에 발견했지만 혹시 뽀가 먼저 말하려나 하고 기다린거였음.
뽀가 왜 갑자기 피크닉을 찾아봤고, 도시락을 검색했는지 섫도 다 알거든. 솔직히 방금전까지는 까먹고 있었는데 피크닉 세글자 보자마자 생각이 났음. 그때 나눴던 대화, 그때 겪었던 질투, 그때 내뱉었던 투정. 섫은 그거 알아채자마자 핀트가 나가서 앞에 앉은 뽀 어떻게 못하는게 속이 탔음.
질투에 눈이 멀어서 못나게 한 말을 기억하고 이뤄주려고 하는 뽀가 마냥 예뻐서. 당장 삼켜버리고 싶을만큼 예뻐서. 애정과 비례한 욕구 때문에 불쑥이는거 참느라 죽을맛이었던 섫. 꾹꾹 참으면서 장소까지 고르고, 도시락만 정하고 나면 잠깐 뽀 데리고 어디든 나갈 생각이었음.
근데 도시락 탭을 발견한 뽀가 또 예상치 못하게 섫 버튼을 눌렀음. 언니가 이 탭을 열었다는건 그때 일을 기억했다는거고, 그렇다면 진짜 그 말을 제대로 이뤄주고 싶었던 뽀. 섫이랑 맞잡은 손 제 허벅지 위에 올리면서 미리 생각하고 있던 질문을 함.
"샌드위치 해줄까?"
"....."
"아니면 김밥?"
"....."
"언니가 좋아하는거 해줄게"

모든 말에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음.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예쁘게 감은채로. 이전 연애 때는 등떠밀려서 해준거였지만 뽀 이번엔 진짜 섫한테 하나뿐인 도시락 만들어주고, 또 받고 싶기도 했음. Image
근데 섫은 뽀가 뱉은 문장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서 심장을 때리고, 다시 한번 마지막 문장이 훅 들어와서 이성이 깨부숴졌음.

'언니가 좋아하는거 해줄게'

그런뜻 아닌거 아는데 그런 생각만 가득하니 자꾸 그렇게 해석이 됨. 허벅지 위에 엉켜있는 손들 바라보다가 손바닥 밑으로 파고드는 섫.
그 상태로 손톱 세워서 뽀 손바닥 살살 긁음. 하나만 세워서 툭툭 긁어내던 손가락이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될 때 쯤엔 어느새 얼굴부터 목까지 빨개져있는 뽀. 방금까지 분명 달달했던것 같은데 순식간에 뒤집힌 분위기가 당황스러움. 갑자기? 아직 언니 일하는 중인데? 지금? 여기서?
하도 섫이 예고없이 타오르거나, 이유없이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 왜? 라는 이유는 길게 생각하지 않는 뽀. 거절할 생각은 애초에 선택사항에도 없어서 이 상황에 어디서? 어떻게? 라는 질문만 둥둥 떠다님. 뽀한테서 부끄러움 이외에 거절이 없다는걸 깨달은 섫.
그대로 일어나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차키 챙겨서 나옴. 알바랑 잠깐 대화를 마치고 다시 뽀 앞에 다가오겠지.
이번엔 앉지 않고 서서. 대신 손을 내밀고서.

"가자"

그 얘기는 누구나 들을만큼 크게,

"..진짜 급해"

그 얘기는 뽀한테만 들릴만큼 작게.
뽀는 입술 꾹 물고 짐 챙기기 시작함.
뽀가 다 챙긴 백팩 메려고 하면 그새를 못기다리고 한쪽 어깨에 뽀 가방 메고서 손도 잡아쥐는 섫. 그래놓고 정작 자기 가방은 두고 나와서 알바생이 붙잡게 만듦. 문 붙잡고 있는 알바생 눈치보다가 자기가 달려가서 섫 가방 받아오는 뽀. 서로 가방을 바꿔들고서 빠르게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둘.
섫이 많이 급해보여서 집까지는 못가고 방을 잡으려나 생각했던 뽀. 근데 차 타자마자 뒷목 당겨서 키스해오는 섫 때문에 그 생각은 다 사라져버림. 벌써 조수석에 반쯤 넘어온채로 손 뻗어서 글로브박스 뒤적거리는 섫. 그 손에 한웅큼 쥐여져 나오는 익숙한 물건때문에 눈 감아버리는 뽀.
차에서 한적이 없는건 아니지만 어쨋든 개인적인 공간은 아니라서 그런 일이 많지는 않았음. 조금 걱정도 되는데 언니가 이러는건 지금 진짜 많이 급하다는거거든. 중간에 하다 멈추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시작한다는게. 등골 타고 뜨거운 기운이 퍼져가는 뽀.
결국 조수석 뒤로 젖히고 공간 만들어서 하는데 섫 핀트 나가서 엄청 몰아 붙일듯. 허벅지를 벌려 붙잡고 놔주질 않아서 뽀가 부끄럽다고 한마디 하면 '언니 좋아하는거 해준다며' 그런 무논리로 막고 웃으면서 더 함. 뽀가 다 포기하고 뒤로 손뻗어서 머리 받침대 잡아 쥘 때까지.
받침대를 잡았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섫 등을 잡았다가. 몇번이고 손에 닿은 감촉이 바뀌었는데도 도통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언니 덕에 안고있던 어깨 살짝 깨무는 뽀. 카페 안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조기퇴근했대. 나오면서 알바 보너스 송금해줬대.
결국 뽀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던것만큼 만족할 때까지 하는 섫. 마지막에는 뽀 허벅지에 앉혀두고 하면서 아까 미뤄뒀던 대답을 함.

"샌드위치 해줘"
"아, 언니.."
"김밥도 해줘"
"....."
"그새끼한테 했던 것만 빼고"

그 말과 동시에 거칠어지는 탓에 울먹이면서 두손으로 섫 손목 잡아쥐는 뽀. Image
알았다고 대답도 못하고 다 끝난 후에야 섫 품에 쓰러져서 고개 끄덕이겠지. 그제야 섫은 만족스럽게 웃음.

"너는 뭐 먹고싶어?"
"..몰라아"
"말만 해, 언니가 다 만들어줄게"
"마라탕"
"그건 도시락은 안되니까 오늘 먹자"
"나 졸려.."
"응, 도착하면 깨울게"

그들의 4단계로 매웠던, 어느 주말 낮 ImageImage
평소에 옷스타일이 정반대인 둘. 섫은 치마부터 수트, 가죽자켓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입는데 뽀는 보통 귀엽고 편하게 입음. 딱 대학생 느낌으로. 어느날 집에서 언니랑 찍은 데이트 사진 복습하다가 문득 제 옷이 항상 비슷하다는걸 깨닫는 뽀. 반면에 섫은 거의 매일 옷이 달랐음. ImageImageImage
단지 취향차이였지. 섫은 애초에 뽀 만나기 전부터 꾸미는걸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옷이나 악세사리에도 관심이 많았음. 뽀는 섫이랑 만나면서 예전보다는 관심이 생기긴 했는데 섫처럼 하루하루 신경쓰는것 까진 아니었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옷도 몇벌 샀지만 그것도 보통 무난한 스타일이었지.
섫이 그런 부분에서 불만이 있던것도 아니었음. 뽀가 트레이닝 복을 입든, 투피스를 입든 다 예쁘고 귀엽게만 보이는 섫이라서. 안 입은걸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튼. 평소에 짖궂게 굴어도 예쁘다는 표현은 아낌없이 해주는 섫이라 뽀도 딱히 스타일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해본적 없었음.
근데 어떤 날의 사진을 짚어도 새로운 언니를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똑같이 돌려주고 싶어진 뽀. 강요해서 하는 변화가 아니라 내가 사랑해서 일어난 변화. 그 바람같은 마음이 뽀에게 찾아왔음. 언니처럼 옷방을 만들지는 못해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시작된 뽀의 아기채소 탈출작전.
캘린더에 적어놓은 데이트 표시 노려보다가 늘 애용하던 쇼핑몰 들어가보는 뽀. 거기서 자주 입는 스타일 체크해둔거 해제하고 다른걸로 선택해봄. 언니가 좋아했다던 스타일 떠올리면서. 시크한. 모던한. 마지막에 섹시한 누를 때는 아무도 없는데 괜히 엄한 생각나서 이불 속에 들어가서 누르는 뽀. Image
주르륵 옷 사진들이 뜨는데 뽀 도저히 클릭할 엄두가 안남. 반뼘 밖에 없는 크롭티에, 나시티에. 배꼽 사수하고 다니는 뽀에게는 시도할 생각도 안드는 옷들이었음. 옷마다 제 얼굴 대입해보고 아이쿠.. 하고 넘기길 반복하는 뽀. 의미없이 스크롤만 내리다가 문득 며칠 전에 섫이 했던 말이 떠올랐음.
'어깨 진짜 예쁘다'
'언,니..'
'목선도 예쁘고'

침대 위에서 여유롭게 움직이면서 그런 말을 하던 섫이었음. 그때는 끙끙 앓느라고 그냥 지나쳤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런 뉘앙스의 말을 몇번 더 들었던것 같음. 같이 갈아 입다가도 그랬었고, 같이 목욕할 때도 그랬었네. 진짜 어깨가 예쁜가.. Image
제 외형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뽀지만 특별히 어깨가 예쁘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음. 누군가한테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음. 어깨랑 쇄골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화면 안에 보이는 오프숄더에 시선이 멈추는 뽀. 좀 과해보이는건 넘기고 무난한 오프숄더 몇개 띄워놓고 신중하게 고름.
그날 결국 주문하는데 혹시나 데이트 날짜까지 안올까봐 문의게시판에 비밀글로 이 날까지 오냐고 남겨놓는 뽀. 다음날 오전에 답변 받고서야 마음 편히 옷 배송 오기를 기다림. 다행히 데이트 전날에는 옷이 도착하고, 전날 밤에 미리 시착까지 해보는 뽀. 처음 입어보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지.
어깨가 휑한게 왠지 덜 입은것 같고,
갑자기 막 옷이 내려갈것 같고,
누가 입을 땐 몰랐는데 괜히 부끄러워.
체구가 워낙 작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어깨나 쇄골이 전부 다 드러나긴 했지만 거울 보다보니 괜찮아 보이기도 함. 조금은 언니가 전에 좋아했던 그 섹시한 으른 느낌 나는것 같기도 하고.
섫은 뽀 사귀고 난 뒤로는 취향 얘기 단 한번도 안했음. 뽀가 신경쓸까봐도 그랬고, 취향이 김지엱이 되기도 해서. 그 덕분에 뽀도 과거의 섫 취향에 얽매이진 않았지만 이미 들었던 사실을 지울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꽤 오래 고수했던 취향이라면 한번쯤 제 스타일대로 보여주고 싶기도 했음.
언니 때문에 억지로 바꾸고 싶진 않았지만
언니를 위해서 하고 싶었음. 오일파스타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늘 파스타 면을 쟁여두는 섫이였고,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옆에서 눈을 감는 한이 있더라도 같이 가주는 언니였으니까. 스스로 새롭게 시도를 해본다는 의미도 있었고.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서 섫한테는 옷산거 비밀로 했음. 다음날 거울 앞에서 몇번이나 옷정리 하다가 도착했다는 연락 받고 나가는 뽀. 오늘만큼은 항상 즐겨신던 컨버스는 치워두고 신어본게 손에 꼽는 구두도 꺼내 신었음. 힐은 무서워서 못샀고 굽 조금 있는 깔끔하고 편한 구두.
섫은 가기로 한 식당 주소를 찍고 있었고, 그래서 뽀가 나와서 차에 올때까지 나온줄도 몰랐음.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고개 들었다가 바깥에 서있는 뽀 보고 눈 커지는 섫. 뽀가 걸어나온 현관 보더니 다시 한번 쳐다봄. 뽀는 괜히 민망해서 표정이 굳어. 오늘 더 진하게 바른 입술 꾹 깨물고. Image
섫은 신선한 충격으로 잠깐 할말을 잃었음. 늘 귀엽고 단정한 모습만 보다가 갑자기 예고없이 다른 스타일을 마주하니 얼떨떨함. 그래도 일단 어색할 때마다 입만 히 하면서 웃는거 보니 지엱이는 맞구나 하면서 차 문 열어주는 섫. 뽀가 차타서 벨트 매는동안 핸들에 기대서 빤히 쳐다 봄. 진짜 빤히. Image
뽀가 예상했던 반응은 예쁘다고 난리를 치거나, 놀라거나 그 정도 였는데 이렇게 대놓고 쳐다보기만 하니까 부끄러워 죽겠음.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핸들에 팔 기대고, 그 위에 얼굴 기대서 계속 쳐다만 보는 섫. 그러더니 갑자기 목으로 훅 가까이 다가와서 숨 들이키더니 말함.
"향수 뿌렸어?"

뽀 원래도 향수 뿌렸음. 좋아하는 향 두개 번갈아가면서 뿌렸고, 섫도 그거 좋아라 했었음. 근데 섫이 왜 이렇게 굳이 물어보는지 모를 수가 없는 뽀. 오늘 새로운 향수를 뿌렸거든. 친구가 작년 생일 때 사줬던 향수. 너무 향이 매혹적이라 안어울리는것 같아서 못쓰고있던 그 향수.
나오기 직전에 진짜 고민하다가 뿌렸음. 그것도 조금만. 손목에 살짝. 목에만 조금.
근데 차탄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알아채버린 섫이 좋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 절대 이런거 모르는척은 안해주니까. 굳이 제 입으로 그렇다는 얘기를 들으려고 이러는걸 알아서. 안전벨트 만지작거리면서 말하는 뽀.
"..별로야?"
"응?"
"안어울려?"

모든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음. 향부터 시작해서 오늘 입은 옷까지. 혹시 저한테 안어울리는건 아닐까. 너무 안맞는 옷을 도전한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솔직히 조금은 있었거든.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뽀도 사람이라 섫의 과거가 아주 스쳐가듯 지나가기도 했음.
그게 눌러 앉느냐 지나가느냐에 차이였지. 생각이 스치는건 어쩔 수 없었고. 근데 섫은 뽀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음. 이렇게 물어보는것도 그렇고, 뽀 눈빛에 살짝 일렁인 걱정도 그렇고. 며칠전에 제가 어깨 예쁘다고 했던 말까지 겹쳐지니까 생각이 조금 씁쓸한 곳으로 튀어버리는 섫.
혹시 내가 강요한것처럼 느껴졌나?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스타일이 신경쓰였나?
섫 안그래도 그 때 뽀랑 썸 아닌 썸을 타던 시절에 과거 얘기를 많이 한걸 후회하고 있었음. 그 모든걸 겪고 나서 사랑을 시작했고, 그로인해 단단한 시작이 된건 맞지만 뽀가 일말의 불안함을 갖는것조차 싫었음.
지금 뽀가 너무 예쁘긴 하지만 한번 걱정이 시작된 이상 마음껏 표현을 하기도 좀 그렇겠지. 역시 언니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뽀가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그 스타일이 절대 뽀를 앞서지는 못하는데 그렇게 짐작해버릴까 봐. 평소랑 다르게 즉답을 안하고 뜸들이는 섫.
근데 그 머뭇거림이 뽀한테는 또 다른 걱정이 될것 같지. 이건 예상에 없던 반응이거든. 늘 1초에 망설임도 없이 좋아 예뻐 그러던 사람이 말없이 대답을 뒤로 미루니까 뽀는 당황스러워짐. 그저 작은 점이던 혹시,, 하는 걱정에 힘이 실려서 점점 번져가겠지.

..혹시 진짜 안어울리는건가?
뽀 은연 중에 당연히 섫이 예뻐해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 늘 그랬고, 항상 그렇게 말해줬으니까.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깨닫고 나니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는 뽀. 눈에 띄게 뽀 표정이 어두워지니까 섫은 놀라서 하려던 말 고르던거 당장 때려치우고 어깨부터 잡아 쥠.
"무슨 생각해"
"...안어울려?"
"....."
"진짜 별로..야?"

아까랑 같은 질문인데 느낌이 달랐음. 아까는 아닐거라는 확신에서 던진 말이었고, 이번엔 그 확신이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온 혹시.. 라는 불안으로 던진 말이었음. 그 간극을 놓치지 않는 섫. 걱정 다 집어 던지고 뽀한테 가까이 다가감.
작은 불안을 걱정하다가 더 큰 불안을 쥐여준게 속상하기만한 섫. 뭐가 문제였을까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보이는건 과거의 제 모습이었고, 섫은 과거를 미워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 현재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었음. 과거의 나도 나니까. 그때 상처주고 불안하게 만든것도 결국 나니까.
잘못을 했고, 사과를 했고, 용서를 받았음. 큰 실수를 했지만 결국 뽀는 저를 받아들였고, 그러니 과거의 사건은 거기서 끝났던게 맞음. 남은 잔해들이 한번씩 걸림돌처럼 굴러오긴 했지만 섫은 그걸 무거운 돌덩이처럼 여기기보단 차낼 수 있는 돌맹이로 여겼음. 막을 수는 없지만 없앨 수도 있는.
뽀가 한번씩 과거를 떠올리는거,
제가 그런 뽀를 보며 불안해하는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감정을 길게 가져갈 생각은 없었음.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자라나지 않아.
결국 또 사라지지 않는 현재와
자라날 미래가 이길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확신에 가득찬 눈으로 뽀를 바라보는 섫. Image
"예뻐"
"....."
"지금 식당예약 다 취소하고 싶어"
"....."
"이대로 다시 데리고 올라가고 싶어"
"....."
"나 지금도 너 울리는 생각해"
"....."
"그 옷입고 울면서 나한테 안기는 상상해"
"....."
"나도 이런 생각만 드는게 미친것 같은데 어쩔 수 없네"
"....."
"너 지금 그렇게 예뻐"
뱉어놓고 나서야 말을 좀 포장할걸 그랬나 싶은데 그게 뽀한테는 더 큰 안정을 줬음. 섫은 거짓말을 잘 못했거든. 특히 그 눈빛은 거짓을 전혀 담질 못했음. 그 말을 하면서 섫 눈에 뜨겁게 흘러 넘치는 감정이 뽀의 불안함을 전부 잡아 먹었음. 혹시는 지워지고 다시 더 굳건해진 확신이 들어차.
언니는 날 진짜 예뻐하는구나.
과거는 그때 거기 얌전히 멈춰있네.
나는 앞으로도 한번씩 돌아볼지언정
언니랑 같이 걸어갈 수 있을것 같아.
적나라한 섫의 고백에도 이상하게 부끄러움보단 푸동한 감정이 더 앞서는 뽀. 마음 푹 놓여서 흐아- 하고 웃어 보이는데 섫도 어이없어서 따라 웃음.
"울리고 싶다는데 웃어?"
"웃음이 나는걸 어떡해"
"진짜 울려볼까?"
"이따가아"
"이따가?"

건수 잡았다는 표정으로 눈 반짝이는 섫. 안그래도 가까이있던 몸 더 붙여서 얼굴 들이미는데 뽀 그제야 자기가 한말 깨닫고 웃음이 싹 멈춤. 완전 무의식에 말이 나가버렸음.
오늘 언니가 집에서 자고가기로 했거든. 그런 날에는 보통 했으니까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섫도 같은 생각이긴 했지. 근데 이걸 말로 꺼내느냐 안꺼내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음. 그것도 울리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따가라니. 진짜 좀 참기 힘들어져서 눈썹 찡그리는 섫.
뽀는 말실수를 했다 싶음. 언니 한번 핀트 나가면 못멈추는거 아는데. 거기에 휩쓸려서 얼마 전에도 차에서 했고, 또 얼마 전에는 심지어 카페에서도 했음. 그게 싫은건 아니지만 오늘은 마음먹고 식당 예약도 했고, 꾸미고 나온게 아까운 뽀. 눈빛 달라지기 시작한 섫 얼굴 붙잡고 냅다 뽀뽀해버림.
섫 눈 커지는거 보고 한번 더 쪽,
하니가 또 하고 싶어져서 다시 쪽쪽.
참새처럼 귀엽게 입맞춘 뽀는 섫 눈에서 흥분이 흐려진 틈에 살짝 멀어져서 자세 고쳐앉음. 언니도 몸 다시 시트에 붙여주고 두손 잡아서 핸들 위에 올려줌. 그리고 했던 말을 또 다시 해.

"이따가"
"식당에서?"
"이따가 밤에"
"밤에?"
"침대에서"

식당이라는 말이 분명 장난이겠지만 카페에서 블라인드 내렸으니 괜찮다고 입 틀어막고 했던걸 생각하면 섫한테는 확실히 선을 그어주는게 좋았음. 그리고 뽀 준비한다고 아침밥을 굶어서 지금 진짜 배고픔. 배고파아.. 하고 배 감싸니까 그제야 기어 바꾸는 섫.
근데 브레이크에서 발 떼기 전에 섫이 다시 뽀를 돌아 봄. 능글거리는 표정을 하고. 당장 이따가를 상상하는 눈을 하고. 뽀는 긴장해서 침 꿀꺽 삼키는데 섫은 그거 보고 피식 웃음. 그러니까 내가 진짜 잡아 먹는것 같잖아. 굳이 따지자면 잡아 먹는건 넌데. 손가락 들어서 뽀 쇄골 꾹 누르는 섫.
"이따가는 울려도 돼?"
"..맨날 울리면서 뭘"
"그거 입고 해줄거야?"
"새로 산건데"
"언니가 세탁해줄게"
"....."
"안돼?"
"..알았어어"

그 날 스테이크 맛있게 먹고,
사진도 특별히 많이 찍고,
밤까지 알차게 데이트 하고.
결국 뽀는 이따가 침대에서
오프숄더만 입고 많이 울었다는 후문. ImageImage
언제나처럼 둘이 데이트 하는 저녁. 카페가서 한참 떠들다가 뽀가 보여주고 싶다는 영상 있다고 해서 같이 유튜브 보는 중이었음. 식빵 만드는 영상인데 분위기나 BGM 자체가 몽글몽글해서 지엱이는 참 자기 같은걸 보는구나 싶던 섫. 문득 밑에 관련 영상들 목록을 보게 됨.
거의 베이킹 영상인데 뽀가 다 본건지 대부분 빨갛게 바가 채워져있음. 요즘 이런거 관심있게 보는구나. 나중에 만들어 보자고 할까. 그런 생각 하다보니 카페에 오븐이나 베이킹 도구들 사다놓은게 떠오르겠지. 아직 디저트 전부를 직접 만들진 않지만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어서 준비해놨었거든.
식빵이 빵빵하게 부푸는거 집중해서 보고 있는 뽀. 섫은 그거 귀여워서 한손으로 뽀 볼 잡고 주물주물. 뽀는 능글능글한 시선 느껴져서 힐끔 봤다가, 그래도 식빵 완성되는거 보고 싶어서 핸드폰 보고. 그렇게 몇번 반복하다가 식빵 노릇하게 익은거 보고서야 영상 멈추고 입모양으로만 왜? 그래.
이거 뽀 습관임. 도서관에 자주 다녀서 조용히 안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가끔 입모양으로만 얘기함. 뽀는 자기가 그러는지 모르고, 섫은 알지만 굳이 얘기 안해줘. 시끄러운 장소에서 퍼지는 조용한 귀여움이 좋아서. 항상 눈까지 같이 커지면서 자기 말 설명해주는 아기채소가 귀여워서. Image
살짝 벌어진 뽀 입에 쿠키 먹여주고, 빨대 물려주면서 말하는 섫.

"케이크 만들어 볼래?"
"어? 언제?"
"카페에 다 있어. 주말에 하자"
"진짜?? 근데 나 만들어 본적 없는데.."
"크림 덮고 토핑하는건 그렇게 안어렵대"

이번에 해보고 성공하면 다음엔 빵까지 해보자는 섫 말에 완전 신나버린 뽀.
온몸으로 붕방하다가 사실 몇개 저장해 놨다고 하면서 저장함 보여주는데 죄다 베이킹 영상이야. 생크림 케이크, 브라우니, 얼씨구야 카스테라까지. 뽀 허리 감싸서 제 옆으로 붙이고 어깨에 턱 괴는 섫. 핸드폰 스크롤 왔다갔다 하는 손 감싸듯이 잡고서 물어 봐.
"뭐 제일 하고싶어?"
"언니 뭐 먹고싶은데?"
"나 주려고?"
"..그럼 누구 줘?"

그냥 습관처럼 되물은건데 뽀가 세상 시무룩하게 대답해서 웃음터진 섫. 턱 괸채로 웃으니까 덩달아 뽀 몸까지 같이 들썩임. 얼굴이 바싹 붙어있어서 차마 고개는 못돌리고 시선만 굴리고 있는 뽀. 아 진짜. 미치겠네.
한번씩 뽀가 밖에서 이럴 때마다 죽을맛인 섫. 눈 가늘게 뜨고 보다가 몸 뒤로 젖혀서 쇼파에 기대더니 뽀도 품으로 끌어당김. 졸지에 섫 품에 기대게 된 뽀. 근데 섫이 거기서 안멈추고 무릎에 앉힐 기세로 더 당기길래 안된다고 언니 허벅지 연타함. 엄청 빨리. 근데 아프지는 않게.
진짜 앉힐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러니까 맨날 놀리지. 허벅지랑 뽀 손 사이에 두손바닥 끼워놓고 막다가 깍지껴서 멈추게 만드는 섫. 그대로 백허그 하고 폰 뺏어서 보고있던 페이지 훑어봄. 꼼짝없이 품에 갇힌 뽀는 잠깐 바둥대다가 결국 포기하고 언니 어깨에 편하게 기대겠지.
"나는 이거"

제일 기본적인 생크림 케이크 영상 틀어놓고 뽀한테 폰 넘겨주는 섫. 맛을 고려한건 아니고 케이크 위에 조심조심 글씨 쓰고 과일 토핑할 뽀가 그려져서 골랐음. 뽀는 안그래도 이걸로 하고 싶었는데 언니가 딱 골라서 기분 좋대. 역시 언니랑 나는 운명이다! 그런 생각도 조금 하고.
그렇게 주말에 하루 카페 휴무 달고 베이킹 하는 둘. 뽀는 당연히 카페 마감하고 할줄 알았는데 언니가 그날 바로 인스타에 휴무공지 올리는거 보고 까무라쳤음. 이런걸로 하루를 쉬면 어떡하냐고 방방 뛰는 뽀한테 그럼 이럴때 쉬는거지 언제 쉬냐고 아무렇지 않게 어깨 으쓱했던 섫.
하루 매출이 어쩌구 하는 뽀가 귀엽기만 했지. 언제쯤 여자친구가 성격은 더럽지만 예쁘고 돈많은 영앤리치라는걸 알아주려나 싶기도 했고. 가만 놔뒀더니 걱정이 길어지길래 통장잔고 보여주고 상황 종결시킨 섫. 머쓱하게 웃다가 테이블 누르면서

"언니 부자네에.."

그러는 뽀 보고 죽을뻔했음. Image
섫은 예전부터 티가 은연중에 나는것 빼고는 굳이 여유를 입밖으로 얘기 안하는 편이었음. 꼬아서 보는 사람도 너무 많고, 돈믿고 저런다는 소리 듣는것도 싫어서. 물론 그게 아주 틀리진 않았지만. 애인한테도 불편해할까봐 말한적 없었음. 근데 뽀는 그렇지 않을거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던거지.
그리고 역시나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음. 섫 통장에 빼곡히 들어찬 숫자 보고도 사실 별다른 타격은 없었던 뽀. 여유롭다는건 알고있었고, 생각보다 더 단위수가 커서 놀라긴 했는데 금방 지나갔음. 이 정도면 하루정도 쉬어도 되겠다. 다행이다. 그냥 그런 안심만 얻어간 뽀였음.
그렇게 다시 오늘, 문과 커튼이 굳게 닫힌 카페. 부엌 한켠에 가스도 연결 시켜놔서 점심은 섫이 리조또랑 파스타 만들어줬음. 뽀가 좋아하는 채소 샐러드도 같이. 어제 마감하면서 청소한다고 테이블 다 옆에 밀어놨는데 두개만 넓게 끌어다 놓고 둘이서 맛있게 먹었음.
몇달동안 몇번이나 해준 메뉴인데 뽀는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눈꼬리를 휘었음.

"언니 진짜 이거 팔아도 될것 같애!"

너 지금 그 얘기만 일곱번째 하는건데
알고는 있니. 그래도 말은 안해줄래. 같은 얘기 백번을 들어도 네가 해주는거면 다  좋을것 같아. 계속 해줘. 계속 그렇게 좋아해줘. Image
포크랑 숟가락 양껏 써가면서 배부르게 먹은 뽀. 의자에 늘어져서 배 통통 하다가 언니가 타준 수제메뉴 지엱이라떼도 마셨음. 잠깐 떠들면서 쉬다가 이제 디저트 먹자고 벌떡 일어나는 뽀. 같이 할까 해서 섫도 뒤로 따라 붙는데 기겁하고 말리는 뽀. 자기가 다 해줄거래. 언니 출입금지래.
당연히 같이 할거라고 생각했던 섫. 황당하단 표정으로 앞에 막고있는 뽀 내려다 봐.

"그럼 난 뭐해?"
"다른거"
"다른거 뭐"
"이거 빼고 아무거나"
"..아무거나?"

섫 그 말 듣자마자 바로 태새 바꿔서 가까이 다가옴.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가 막히는 뽀. 악. 또 갇혔어. 언니랑 벽 사이에. Image
그럼 자연스럽게 한손으로 벽 짚고서 키스할것처럼 훅 들어오는 섫. 뽀가 순간 목 움츠리니까 멈춰서 눈썹 움찔함. 싫어? 언니가 눈으로 그렇게 묻는데 아기채소 그럴리가 없거든. 다시 목에 힘 풀고 동글동글 풀어진 뽀가 귀여워서 한참 훑어보다가 다가가는 섫.
처음엔 입술만 맞대고 장난치듯 하다가 뽀가 애닳아서 으응..하고 팔꿈치 잡아 당기면 그제서야 제대로 키스하겠지. 항상 애태우는게 미안하긴 한데 뽀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안할 수가 없음. 지금도 그래. 일부러 뽀가 벅찰거 알면서 숨쉴 틈 안주고 입안 헤집고 다님.
뽀가 슬슬 숨차서 어깨 잡으면 그 손목 잡아다 벽에 붙이고, 벽에 기대있는 허리 안아서 더 당기는 섫. 허벅지부터 배까지 맞닿고 부벼지는 느낌에 손가락 끝까지 뻣뻣해지는 뽀. 섫은 안고있는 몸이 점점 뜨거워지니까 자극받아서 손목 놔주고 뒷목 감싸서 더 깊게 파고들겠지.
아예 몸이 섫한테 잡혀서 여기저기 붙잡다가 결국 목 끌어안는 뽀. 간신히 틈 났을때 언니 뒤로 쌓인 베이킹 도구들 보고 퍼뜩 정신이 차려졌음.

"언니! 케이크!"
"..하고나서 만들면 안돼?"
"힘없어서 못해에"
"하아.."
"한번만 할거야?"

또 그럴 자신은 없는 섫. 답답함 섞인 표정으로 고개 저어.
한번 불붙은 언니 잠재우는게 얼마나 힘든지 많은 경험으로 알고있는 뽀. 하지말라면 안할 사람이지만 그게 억지로 참는거라는걸 아니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 이어서 하고싶은건 마찬가지기도 해서. 결국 미래의 일은 생각 안하고 또 냅다 던지기부터 하는 뽀.
속에 있는거 잠재우고 있는 언니 얼굴 감싸서 입술에 뽀뽀부터 해주고, 제 기분 안좋을때 언니가 달래주던거 생각나서 입술 살살 핥고 떨어짐. 언니가 그거에 놀라서 벙찌든 말든. 우리 아기채소 후진은 없거든. 오직 직진뿐.

"이따가 언니 하고 싶은대로 하자"

그 속력으로 언니 펑 터져버리게 해. Image
섫 마음은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팔 밑으로 쏙 빠져나가는 뽀. 해보자아!! 하고 화이팅 하는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자기가 방금 듣고 느낀게 현실인가 의심스러운 섫. 그대로 몸 돌려서 벽에 기대는데 뽀는 이미 빵까지 세팅하고 과일이랑 생크림 준비 하고있음.
제가 달래주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뽀가 기특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 백마디 뻔한 위로보다 한번의 온기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뽀가 혼자 힘들어 할때 섫이 항상 해주던 루트가 있었음. 다가가서 눈을 맞추고,

'기분 좋아질래?'

그리고 뽀가 고개 끄덕이면 다정하게 키스해줬겠지.
그때 꼭 떨어지기 직전에 입술 살살 핥으면서 달랬었거든. 그걸 방금 뽀가 그대로 한거야. 참는게 힘들어 보였는지 달래주겠다고. 결론적으로는 더 속에 불이나긴 했는데 그거 기억하고 그대로 돌려준 뽀의 마음 되새기면서 꾹 참는 섫. 하고 싶은대로 하자. 그 글자만 또박또박 곱씹어 봐.
중간에 몇번 도와주겠다고 나섰는데 그때마다 래서팬더마냥 손에 쥔 도구들 번쩍들고 말리는 뽀 덕에 결국 테이블에 걸터 앉아서 지켜보기만 한 섫.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어. 겹겹이 층을 쌓고, 생크림 꼼꼼하게 덮고, 그 위에 제가 좋아하는 과일들만 잔뜩 올리는 뽀를 보는게 재밌었거든.
글씨 쓸때는 보지 말라고 또 난리를 치길래 강제로 의자에 등보이게 앉혀진 섫. 얼굴 못보는건 좀 불만이긴 한데 뒤에서 뽀가

'언니 보면 안돼. 진짜로 안돼. 보면 이따 맘대루 못해'

쫑알쫑알 얘기하는것도 나름 귀여워서 참고있음. 그리고 진짜 마음대로 할 생각이라. 이따가는.
몇분 지나니까 뽀가 걸어오는 소리 들려서 뒤돌려던 섫. 또 으아앙 하는 목소리가 이어져서 잠자코 뒤돌아 있음. 그러다 뽀가 됐다! 하자마자 웃으면서 돌아본 섫. 케이크 위에 삐뚤삐뚤 써있는 글자보고 웃음기가 서서히 가실것 같지. 

'사랑하는 여자친구❤'

그 말이 심장에 콱 박혀버려서.
둘한테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많았잖아. 여자친구 하고 싶다고 뚝뚝 울던 뽀, 여자친구 하기 싫다고 모질게 내치던 섫. 그리고 엇갈림 끝에 서로의 자리를 갖게된 둘. 이제 진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단어를 이렇게 다시 마주하니까 그때 느꼈던 후회나 자책이 조금 옅어진채로 밀려와버렸음.
오늘이 너무 행복했어서 더 그래. 함께한 순간부터 불행이 없었어서 더 미치겠어. 이렇게 행복한데. 네가 이렇게나 좋은데. 조금 더 빨리 행복할 수 있었던 기회를 버렸다는 생각이 드니까. 다시 돌아가도 그러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쁜짓 해서 상처줬고,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아픈거야.
섫이 울컥해서 케이크만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뽀가 오히려 당황함. 혹시 뭐 잘못썼나 하고 들여다보는데 오타도 없이 잘썼어. 문구나 토핑이 마음에 안드나 하고 안전부절 못하는데 섫은 뽀가 그러고 있는거 보니까 더 마음이 아파. 숨통이 반쯤 막힌것 같아. 울먹이는 얼굴로 뽀 팔 당기는 섫.
얼떨결에 끌려와서 언니 무릎에 앉혀진 뽀. 뭔지 모르겠는데 섫 눈이 축축하게 젖어든거 보니까 또 마음이 아파. 사귄 이후로 한번씩 섫이 이런 표정 짓는걸 본적 있거든. 이유도 대충 알아. 그때 모질었던 자기 행동이 버거워서 이런다는거. 그래서 더 마음이 안좋은 뽀겠지. 이제 정말 괜찮은데.
그럼 섫은 또 그 손길 하나로 서서히 괜찮아지겠지. 어둑한 동굴에 햇빛이 들어온것 마냥. 앞머리를 옆으로 살살 넘겼다가, 볼을 감쌌다가 하면서 어떤 말 대신 안정적인 감정과 애정을 보여주는 뽀 덕분에 차차 마음을 다스리는 섫. 좀 진정 됐을때 뽀 어깨에 고개 푹 묻으면서 그래.
"지엱아"
"웅?"
"사랑해. 언니가 잘할게"
"나두 사랑해. 근데 이미 충분히 잘해"
"더 잘해야 될것 같아.."
"언니"
"응?"
"기분 좋아질래?"

몸 살짝 떨어트리더니 섫 얼굴 감싸고 다정하게 묻는 뽀. 그럼 섫은 눈 몇번 깜빡이다가 말 뜻 이해하고 피식 웃으면서 고개 끄덕여. 응. 기분 좋게 해줘.
늘 섫이 앞서가던 입맞춤이 아니라 뽀가 이끌어가겠지. 다정하게 입안 여기저기 애정을 남기고, 끝나기 전에는 입술을 살살 핥아주고. 거기에 언니랑 달리 아기채소 답게 뽀뽀까지 쪽쪽 덧붙여 주고나면 완전히 평소대로 돌아온 섫이겠지.

다시금 반짝거리는 눈이 깜빡.
다정한 입꼬리가 씰룩.
뽀가 가장 사랑하는 섫의 얼굴. 늘 자신감 넘치는 언니를 사랑하는 뽀였으니까. 만족해서 히- 웃으면 섫이 자연스럽게 케이크 먹자고 화제를 돌리겠지. 대신 몸 돌려서 일어나려는 뽀 허리 붙잡고 다시 제 무릎에 앉혀놓는 섫. 그대로 안놔주고 폰들어서 사진 왕창 찍음. Image
"프로필 바꿔야겠다"
"아! 글씨 너무 못썼어 안돼"
"프린트해서 카페에 붙여둘까"
"절대!"
"근데 지엱아 글씨 망치기 싫은데"
"그럼 끝에 먹을까?"
"그냥 굳혀서 전시해 놓을까.."
"언니이"
"응, 언니 딸기 먹고싶어"

또 능글능글 넘어가는 섫 째려보면서도 그 중에 큰 딸기 하나 집어서 먹여주는 뽀.
결국 글씨부분은 못먹겠다고 하는 섫 때문에 겉에 테두리만 나눠서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뒀음. 이제 배도 부르고 도구들 정리해야겠다 싶어서 안쪽으로 가는데 팔목 잡히는 뽀. 그대로 다시 끌려와서 테이블에 앉혀졌음. 뭐냐는 얼굴로 쳐다보는 뽀한테 웃어주고 남은 생크림 볼 가져오는 섫.
그 안에 적당히 남은 생크림 손가락으로 찍더니 입안에 가져감. 생각보다 많이 달지는 않네.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뽀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거 느껴져서 장난끼가 또 올라온 섫. 뽀 입술에 살짝 생크림 묻히니까 아니나 달라 뭐하냐고 쭝얼거려. 귀엽게.
그럼 그대로 제 입술에도 생크림 살짝 머금고서 키스하는 섫. 서로 입술에서 번진 생크림이 혀가 섞이면서 입안에 퍼지고, 아릿한 단맛에 이상하게 반응을 받는건 미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이었음. 뒷목이 뜨거워지고, 발끝이 오므려지고. 섫이 노골적으로 깊게 들어와서 분위기가 바로 잡혀버림.
무자비하게 느껴질만큼 퍼붓는 느낌에 지금이 그 "이따가" 인걸 깨닫는 뽀. 카페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미 여기서 했던 전적이 있어서 안통할것 같음. 결국 포기하고 섫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뽀. 근데 중간에 허리선 만지면서 입술 뗀 섫이 한 말에 아까 했던 말을 후회하는 뽀겠지.
"케이크 먹을래"
"다시 꺼내줘..?"
"아니"

반쯤 말려 올라간 뽀 티셔츠 붙잡고 생크림볼 옆으로 당기는 섫.

"생크림 올리면 다 케이크지"
"....."
"하고 싶은대로 할거야"
"....."
"오늘은 언니 눈 피하지마"

결국 그날 진짜
원없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한 섫 덕에
해가 지고 카페를 나온 둘이었음. ImageImage
오랜만에 긍한테 연락받은 섫. 본가 올 일이 생겼다고, 볼 수 있으면 밥이라도 먹자길래 섫은 일단 상황보고 다시 연락 준다고 함. 시간의 틈이 있을 때마다 뽀를 만나고 있어서 그 틈을 잠깐이라도 비울 때는 항상 뽀한테 양해를 먼저 구하는 섫. 뽀도 항상 그래왔어서 둘한테는 그게 자연스러웠음.
오늘도 카페 전용석에 얌전히 앉어서 공부하고 있는 뽀한테 다가가는 섫. 의자 빼놓고 앉으니까 뽀가 바로 고개 드는게 별거 아닌데도 참 좋음. 요즘 많이 편해졌다고 동그란 안경쓰고 온것도 너무 귀엽고. 코 찡긋하면서 내려간 안경 올리는것도 귀여워. 섫 눈에는 뭔들 안귀여워 보이겠냐만은. Image
실실 웃으면서 얼굴 구경하다가 뽀가 또 입모양으로만 왜? 그러니까 머리 정리해주면서 말하는 섫.

"긍서가 오랜만에 본가 온다고 얼굴 좀 보쟤서"
"긍서?"
"응, 예전에 카페에서 봤던 걔"
"아 그 동생?"
"키크고 섹시한 동생"

섫이 일부러 그때 했던말 놀리듯이 따라하니까 얼굴 또 빨개지는 뽀.
"언니이"
"응, 언니 여깄어"
"맨날 놀리지"
"네가 맨날 귀엽지"
"..말 안할래"
"장난이야 장난. 아무튼 긍서 온대서 주말에 저녁 한번 먹을까 하고"
"토요일?"
"응. 일요일에는 우리 캠핑가기로 했잖아"
"음...."
"싫으면 편하게 말해. 긍서 다음에 봐도 돼"
"아니 그게 아니구.."
펜끝으로 책 콕콕 찍으면서 눈피하는 뽀. 그리고 그게 할말 있는데 말하기 불편할때 나오는 행동인거 알고있는 섫. 긍 얘기가 많이 불편했나 싶어서 알아서 수습하고 정리하려는데 뽀가 먼저 작은 목소리로 말함.

"나도 같이 보면 안돼..?"
"응?"
"언니 친구 나도 보고싶은데"

그말 듣고 벙찌는 섫.
생각해보니까 그래. 뽀 친구들은 만났는데 정작 제 친구 누구한테도 뽀를 소개해준적이 없었음. 딱히 피한건 아니었는데. 뽀는 사실 전부터 얘기하고 싶었는데 언니가 부담스러워할까봐 몇번 넘기고 지금 얘기한거임. 친구들도 뽀 궁금한데 워낙 이전까지 섫이 애인소개 시켜준적이 없어서 안물은거고.
섫도 이전까지 해왔던게 몸에 익어서 친구들한테 꾸준히 뽀 얘기 하면서도 소개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음. 그게 당연한거지만 섫이 전까지는 당연하지 않은 연애를 오래 해왔어서. 생각지 못했던 뽀 말에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섫. 뽀가 몇번 생각하고 얘기한게 느껴져서 괜히 속상해.
네가 친구들 소개해달라고 하면
그날이라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아직 당연한것들에 전부 물들지를 못해서 부족하게 굴면 요구해도 되는데.
왜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네가 맞추려고 해.

속이 까매져서 씁쓸한 표정인 섫 보고 그제야 아차하는 뽀. 언니랑 모든 욕심은 말해주기로 약속했었거든.
완벽하지 않은 둘이 만나서 하는게 연애다보니 행복한 연애를 하면서도 아직 채 과거를 벗겨내지 못한 부분이 나오겠지. 섫은 무지했던 과거를, 뽀 욕심을 편히 드러내지 못하는 망설임을. 그 과정에 좀 더 타격을 받는건 의외로 섫이야. 제가 상처줬던것 때문에 뽀가 더 그러는것 같아서.
그래도 이제 진짜 전처럼 살고싶진 않아서 섫은 뽀가 그럴 때마다 때때로는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기도 했고, 제가 더 잘하겠다고 씁쓸해하기도 했음. 이 모든게 나아가는 과정이라는건 알고있는 섫. 오늘은 툭 떨궈진 감정을 집어들고 아무렇지 않게 굴어보기로 했대. 정말 당연했으니까.
"주엱이랑 토요일에 같이 봐"
"응..! 근데 혹시나 불편해하면,"
"그럼 안볼거야"
"....."
"주엱이를 안볼거야. 걔는 다음에 봐도 돼"
"....."
"다른 친구들도 다음주에 만나자"
"....고마워"
"그거 말고"
"손님 많은데.."
"사랑해"
"....."
"언니 안사랑해?"
"..사랑해"
"뭐라고?"
"왜그래-" Image
씁쓸한 감정도 잠깐이지. 부정적인 생각을 잘 털어낼줄 아는 섫. 금방 능글거리는 얼굴로 돌아와서 손님들 눈치보는 뽀한테 들이대면서 웃고있음. 일부러 '언니는 이만큼 사랑하는데?' 크게 얘기했다가 작은 손에 입 틀어 막히는 섫. 눈 부릅뜨고 엄한 표정 짓는데 무섭기는 무슨. 마냥 귀여워 죽겠음.
눈만 접어가며 웃다가 살짝 혀내밀고 툭 건드리면 파드득 놀라서 손 떼는 뽀. 귀까지 새빨개져서 어버버 하는데 그것도 귀여워죽겠음. 사귄지 꽤 됐는데도 이런거 면역이 안된게 너무 귀엽잖아. 확 어디 데려가서 잡아먹고 싶어지게. 섫이 눈빛 좀 달라져서 쳐다보니까 급하게 손가락으로 X 만드는 뽀.
뭐야.
지금 안된다고 X 만드는거야?
왜이렇게 귀엽지.
얘 진짜 어떡하지.

가끔 뽀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순수한 귀여움을 폭탄처럼 터트릴 때가 있는데 섫은 그때마다 온몸에 혈액이 두배는 빨리 도는 느낌이었음. 뽀랑 만나면서 본능에 충실하지 않은건 있을 수 없을거라고 자기합리화 하는 섫.
뽀는 지금 좀 억울함. 어제도 했잖아. 사실 어제도 아니야. 오늘 새벽까지 했는데. 또 그런 눈빛이 되길래 진짜 단호하게 안된다고 표시한건데 언니가 오히려 더 불이 붙어 버리니까. 섫 눈에 이글거리는 감정이 너무 여실히 느껴져서 다급하게 손가락으로만 그리던 X를 팔로 크게 그리는 뽀.
섫은 불이 번지다가 뽀가 그러는거 보고 웃음이 확 터졌음. 사색이 돼서 팔로 X 그리는게 순간 그렇게 싫은가? 싶어서 서운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몇시간 전에 몇시간을 했음. 까무룩 잠들던 뽀 떠올리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하는 섫. 제가 하고싶은대로 다 했다간 뽀 기력이 남아나질 않을것 같음.
크게 웃다가 일어나서 여전히 X 그리고 있는 뽀 머리 쓰다듬는 섫. 그러더니 허리 굽혀서 귀에 속삭이고 카운터로 돌아감.

"킵 해둘게"

기어이 안한다는 말은 안하는 섫. 뽀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아니구나 싶어서 얌전히 팔 내리고 안경 치켜올림.
섫은 돌아가서 긍한테 답장 보냄. 토요일에 보자고, 애인이랑 같이 가겠다고. 긍이 놀라서 언니한테 애인 소개 받는거 처음이라고 하니까 섫은 고민하다가 답장 하겠지.

'나도 이렇게 좋아하는거 처음이야'

더 난리인 긍은 제쳐두고 앉아있는 뽀 힐끔 보는 섫.

..진짜 처음이야. 너무 좋아. 너무. Image
그렇게 처음으로 셋이 보게되는 날. 전날부터 긴장 된다고 난리가 났던 뽀. 근데 심장이 빨리 뛰는것 같다고 이거 보라고 언니 손 가져다가 가슴께에 댔다가 한바탕 뒤집어졌었음. 그 덕분에 떨릴 새도 없이 진빠져서 잠들 수 있었던 뽀. 다음날 옷도 몇번이나 골라입고 언니랑 같이 약속장소 나감.
식당 들어가니까 긍이 곧바로 일어나서 인사하고, 뽀는 순간 긴장해서 섫 손 꽉 잡음. 그거 알고 티안나게 손 더 틈없이 마주잡아 주면서 긍한테 뽀 소개하는 섫.

"내 여자친구 지엱이"
"안녕하세요! 저 손주엱이에요. 혅정언니랑 어릴때부터 친했는데 애인 소개받는거 처음이에요. 어떡해"
예전에 멀리서 어렴풋 봤던 긍은 키크고 쿨해보였는데 생각보다 더 발랄한 느낌이라 놀라는 뽀. 저보다도 동생인 것도 신기하고, 볼수록 대형견 같기도 하고. 근데 섫이랑 얘기 주고받는게 너무 친한 언니동생이라 제가 참 우스운 오해를 했었구나 다시 한번 실감했음. 그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긍이 가끔 언니가 예전에 장난 아니었다며, 동생이라 말은 안했지 걱정이 많았다고 너스레 떨면 얼굴 찌푸리고 발 툭툭 차는 섫을 보는것도 새로웠음. 마냥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편한동생 앞에서 나오는 투정이 귀엽기도 했고. 괜히 좋으니까 반뼘 정도 붙으면 섫은 그거 보고 똑같이 가깝게 붙음.
저녁이라 긍이 술 한잔 하자고 하는데 섫은 차도 가져왔고, 요즘 술도 줄이고 있어서 괜찮다고 거절함. 그러니까 진짜 연애하더니 사람이 변했다고 더 오버해서 서운해하는 긍. 섫은 그냥 어깨만 으쓱하고 무시하는데 뽀만 괜히 눈치보다가 한마디 함.

"그럼 제가 마실게요..!"
섫이 놀라서 쳐다보는데 긍은 이때다 싶어서 이햐~! 하고 뽀 앞에 잔 놔줌. 둘이 썸 탈때는 오히려 술도 자주 마셨는데 사귄 이후로는 섫이 술을 많이 줄이는 바람에 서로 제대로 마시는걸 본적 없었음. 뽀가 한번씩 친구들이랑 마시긴 했는데 대부분 맥주나 칵테일이었고. 지금은 소주인데.
뽀가 마냥 술이 약하지 않은건 알지만 섫은 긍의 스타일을 알았음. 마시기 시작하면 안취했다고 허세는 기본에 꼭 술잔 든 사람들 전부 취하고서야 만족하는 긍. 그거 알아서 일부러 뽀한테 권하지도 않았던건데 뽀가 자진해서 마시겠다고 하니까 할말이 없어짐.
뽀가 먹고 싶다는데 말리기는 싫고,
뽀 취한걸 본게 또 흐릿하긴 해서 오랜만에 궁금하기도 해. 그래도 과하다 싶으면 제 선에서 커트해야 겠다고 다짐하고 잔 하나 뺏어서 사이다 채우는 섫. 제 친구 만난다고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마스카라에 셰도우까지 한 뽀가 와중에도 예뻐서 속이 간질거림.
긍은 오랜만에 본가와서 신난다고 달리기 시작하고, 섫은 긍이 신나서 뽀 잔에 잔뜩 따라준 술 조금씩 덜어내면서 신경쓰고 있음. 뽀는 이제 낯가리던게 조금 흐려져서 긍이랑 이런저런 대화하는 중. 웃으면서 사실 그때 한번 주엱씨 오해했었다고 얘기하는데 섫은 그거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함.
더이상 그때의 이야기가 뽀를 짓누르지 않는것 같아서. 가볍게 뱉을 정도의 해프닝이 된것 같아서.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보글보글 사이다 원샷으로 때려넣는 섫. 긍은 그 얘기듣고 웃고 난리났음.

"저랑 혅정언니여? 진짜 말도 안된다"
"언니가 섹시한 스타일 좋아했대서요"
"헐 저 섹시해여?" Image
굳이 따지자면 그런 스타일 아닌가. 생각하면서 고개 끄덕이는 뽀. 그럼 긍은 또 섹시해보이겠다고 포즈 취하는데 옆에서 열기가 느껴짐. 시선 돌리니까 눈에서 불 뿜고있는 섫. 대놓고 턱괴고 삐딱하게 보면서 입모양으로 말함.

'섹시해?'

그제야 섫 질투가 어느정도였는지 떠올리고 입다무는 뽀. Image
지금 달래놓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날걸 알고있음. 여전히 질투심이나 소유욕만큼은 덜어내지 못한 언니라서. 잔에 남은 술 넘기더니 섫한테 가까이 다가가는 뽀. 조금씩 취기가 돌기 시작해서 몽롱해지고 있었음. 의자 잡은 섫 위로 손 포개어서 얹어놓더니 귓속말로 그래.

"언니가 제일 섹시해"
그럼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는 섫. 질투가 심하긴 한데 달래는것도 어렵지 않았음. 순간 그 편해진 얼굴이 귀여워서 볼에 뽀뽀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는 뽀. 아무래도 취해가는구나 싶음. 대신 언니 손등만 엄지로 쓰다듬다가 떨어지는데 섫은 그 덕분에 속으로 김수한무 외우기 시작.
뽀가 일부러 이러는것 같지 않아서 더 미치겠는 섫. 그래도 어제 했으니까 참아보자 하고 술자리에 집중하겠지. 점점 술병이 비워지고, 다른 얘기 하다가 또 뽀가 섫긍 오해했던 이야기가 꺼내짐. 술자리에서 주제가 돌고 도는건 이상한것도 아니였으니까. 섫은 그냥 뽀 반응만 보고 있을듯.
"저 때문에 둘이 또 어긋났던거네여"
"아니에요..! 그냥 제가 혼자 오해한건데"
"언니 걱정마여. 혅정언니 진짜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
"야 주엱아 너도 언니 스타일 아니야"
"주엱씨는 어떤 스타일이 좋은데요?"
"저는 별거 없는데! 그냥 키 작고, 귀엽고...근데 성격은 똑부러졌음 좋겠고..또"
웃으면서 받아치던 섫. 점점 이어지는 긍 얘기에 점점 웃음기 사라질것 같지. 키 작고, 귀엽고, 똑부러지고, 성격은 반대였으면 좋겠고, 템포가 느린 사람. 이성적인 사람. 한사람 밖에 떠오르지 않는 긍의 대답에 섫은 둘 모르게 얕은 한숨 내쉼.

이륵다잖아.
주엱아.
너 차였다며.
이제 잊었다며. Image
저번에 봤을때 분명히 그렇게 말하던 긍이었음. 고백했다 차였다고. 이제 괜찮아졌다고. 근데 지금 이상형이라고 륵 자체를 얘기하는 긍을 보니 사람 마음이 쉽게 접힐리가 없구나 싶은 섫. 너무 오래 힘들어했어서 이제 좀 놨으면 좋겠는데. 제대로 연애 시작하고 나니까 긍이 앓는게 더 마음쓰임.
짧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잊어야 하는 경험을 해봤고, 그게 너무 힘들었어서 섫은 몇년동안 이어진 긍의 짝사랑이 감히 상상도 안됨. 얼마나 사랑하는게 일상이 됐으면 긍은 지금 자기가 말하는게 전부 륵을 가르키는것조차도 모르는것 같았음. 그게 더 안쓰럽잖아. 무의식까지 짝사랑에 물든게.
뽀가 저를 짝사랑하면서 많이 상처받기도 했으니까. 혹시 긍에게 륵이 저처럼 상처주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어서. 언니의 마음으로 걱정이 드는 섫. 그런 말을 해놓고도 헤실헤실 웃는걸 보니까 마음이 더 안좋음. 어느새 좀 취했는지 눈 껌뻑이는 뽀 허리 안아서 옆에 붙이고, 먼저 말꺼내는 섫.
"..륵다는 잘지내?"
"륵다언니 완전 잘지내죠. 월요일에 점심 먹기로 했지!"

차마 괜찮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고개만 끄덕이는 섫. 긁어부스럼 만들지 말자 싶어서 주제 돌리려는데 긍의 과도하게 밝은 목소리가 이어졌음.

"아 언니 여자친구 생겼대요-"
"뭐?"
"너무하죠? 저는 차놓고" Image
섫이 놀라서 할말 잃은동안 긍은 더 말하지 말라는건지 술잔을 들었음. 밝기만 하던 긍 모습이 처음으로 위태롭게 느껴졌지만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같이 잔 들어주는 섫. 멍해져있다가 긍이 잔드니까 으아! 하고 따라서 잔드는 뽀가 오늘따라 더 애틋하게 느껴지겠지. 이 사랑이 참 소중하구나 싶고.
그래도 긍이 더 말하지 않기로 한것 같아서 같이 주제 확 돌려주는 섫이겠지. 다시 뽀랑 긍은 신나서 얘기하기 시작하고 섫은 뽀가 슬슬 취한것 같아서 마무리할 각재고 있음. 둘이 일상 얘기도 하고, 섫에 대한 얘기도 하다가 뽀가 문득 술잔 쥐고있는 긍 보더니 말함.

"주엱씨 손 엄청 크다"
술잔 쥐고있는 제 손 내려보다가 잔 내려놓고 두손 짝 펼치는 뽀. 이렇게 보니까 제 손이 너무 작아보임. 긍도 그런가? 하면서 자기 손 펴서 내려다보겠지. 섫은 그때까진 별생각 없이 뽀 손 보면서 엄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음. 긍이 장난스럽게 말을 던지기 전까지는.

"손은 혅정언니보다 클걸여?"
긍은 오래안만큼 섫이 질투 심하고, 약간 예민한 것도 잘 알았음. 아니나 다를까 살짝 건드리자마자 미간 팍 찌푸리고 쳐다보는 섫이 재밌기만 한 긍. 그래도 더 놀리면 기분까지 상해할거 알아서 툭 건드리기만 하고 빠지려는데 그 말 듣고 가만히 생각에 빠졌던 뽀가 다른 핀트로 폭탄을 터트려버림.
테이블에 올려져있던 섫 손 가져와서 두손으로 꽉 쥐더니 취기 때문에 상기된 얼굴로 웃는 뽀.

"혅정언니 손이 더 예뻐요"
"....."
"하얗고, 손가락도 길고.."

다이너마이트가 한번에 몇백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버렸음. 어이없어서 할말을 잃은 긍과 그냥 말읋 잃어버린 섫. Image
긍은 그냥 이 커플도 꼴값이구나 싶어서 질색하면서 두손 드는데 섫은 뽀가 정확히 뭘 생각하고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서 잠깐 사고회로가 멈췄음. 그러다가 뽀가 취기랑 다르게 얼굴 붉어지고, 괜히 손 만지작거리는거 보고 정신 차리는 섫.

지엱아.
너 방금 그 말.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 맞지.
진짜 참으려고 했는데. 오늘은 인간의 최소한 인내심으로 참아보려고 했는데. 지엱아. 너 왜 자꾸 나를 인간도 아니게 만들어. 네 앞에서는 다 의미없어 지는것 같아. 일반적인 사고도, 규정되어 있는 모든걸 다 깨부수잖아. 손가락으로 엑스자 그려도 안봐줄거야. 팔로 그려도 안돼. 오늘은 안돼. Image
섫 이미 머리 속으로는 당장 뽀 눕히기도 남았지만 마지막 이성으로 긍이랑 술자리 마무리 했음. 헤어지기 직전에 괜히 륵이 마음에 걸려서 힘들면 연락하라고 한마디 덧붙이고. 긍 어깨 으쓱하고 멀어지는거 보다가 뽀 챙겨서 급하게 차 태우는 섫. 여긴 탁 트인 주차장이라 일단 집으로 가자 하겠지.
뽀는 취기가 점점 올라와서 차 시트에 기대고서 히히 웃는 중. 오늘 언니 친구 만난것도 좋고, 진짜 언니의 사람이 된것 같아서 행복하고. 아무튼 기분 째지는 아기채소. 아까 언니 손보고 했던 엄한 생각은 알코올이 덮어버렸음. 그 생각이 옆에 있는 섫한테 다 옮겨간건 모르고.
오늘은 딱히 같이 외박하자는 말 없었는데 섫 집에 차 세워진거 보고 또 같이 자는구나 싶은 뽀. 행복한 와중에 언니랑 같이 잘생각 하니까 기분 좋아져서 벨트 풀면서도 웃고있겠지. 머리 쓸어 올리면서 버튼 연타해서 벨트 푸는 섫도 잘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음. 같은 잠이 아니라서 문제지.
뽀 손 잡아채서 급하게 건물로 들어가는 섫.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마음이 급하니까 구두굽으로 바닥 탁탁 두드리고 하겠지. 뽀는 또 이마 짚고있는 언니 손만 쳐다보고 있음. 새삼 언니 손가락이 길구나 싶어가지고. 그리고 다시 제 손 펼쳐보는데 너무 작잖아. 손가락도 짧고. 아기손 같아.
딱히 손에 대한 불만이 없었는데 제가 섫 손가락이 길어서 좋다라는 생각을 머금고나니까 반대로 그런 걱정이 들겠지. 내 손가락은 이렇게 작고 짧은데. 언니는 좋아할까. 워낙 섫이 잠자리에서 능숙하게 잘하니까 은연 중에 저는 부족한것 같다고 생각했던것까지 같이 몰려와서 시무룩 채소되는 뽀.
평소라면 그렇게 그냥 넘어갈 감정인데 뽀는 지금 취했고, 오늘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풀어져있었음.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올라가는 숫자만 쳐다보고 있는 섫 부르는 뽀. 섫이 급한 와중에도 응? 하고 쳐다보니까 뽀가 눈앞에 손 펴보이더니 말함.

"..내 손은 어때? 너무 작지"
섫은 고장난것처럼 그 말을 단번에 이해 못하다가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깨달았음. 오늘따라 지엱이가 작정을 했구나 싶고. 그 질문의 의도가 너무 투명해서 헛웃음까지 나오는 섫. 근데 지금 웃어버리면 뽀가 오해할것 같아서 꾹 참고 끓어오르던 열기의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하겠지.
대답은 미루고 뽀 데리고 집에 들어가는 섫. 신발 벗자마자 허리 끌어안고 입 맞추면서 침대 찾아서 움직임. 뽀는 예상 못했는데 지금 당장은 애정이 넘쳐서 어제 했고, X고 그럴 생각할 틈이 없음. 같이 목 끌어안고 키스하다가 자연스럽게 밀리는대로 누우려는데 섫이 갑자기 몸을 뒤집어버릴듯.
순식간에 섫 위에 앉게된 뽀는 놀라서 눈만 크게 뜨고 있겠지. 이런 포지션 안해본건 아니지만 보통은 섫이 마음껏 하는게 먼저였거든. 아니면 또 이 자세가 좋아서 그런가. 오늘은 다리에 힘이 없는데. 속으로 별별 생각을 하는 뽀. 근데 섫은 여유롭게 뽀 손 잡아다가 자기 셔츠 안으로 밀어넣겠지.
놀라서 움츠리는 뽀 달래가며 씨익 웃는 섫. 항상 제 밑에서만 지어주던 얼굴을 보니까 머리가 새하얘지는 뽀. 섫은 급하긴 하지만 뽀의 쓸데없는 걱정부터 지워주기로 했음. 뽀 손 가슴께로 옮기면서 말하는 섫.

"해 봐"
"..언니"
"말해줄게. 네 손 얼마나 좋은지"

천년구미호가 다시 나타났음. Image
뽀는 그거 보고 마음이 동해서 목부터 파고들고, 섫은 취해서 더 급해지는 뽀 적당히 받아주고 하면서 평소보다 훨씬 좋다는 말 많이 해줌. 그 말 할때마다 잡고있는 뽀 목덜미의 열기가 더해져서 진짜 투명하구나 했겠지. 일부러 더 귀에 대고 자세히 좋다고 말해주면 앓는소리 내는것도 귀여웠음.
한바탕 시끄러운 몸짓이 끝나고 뽀가 팔 아프다고 늘어져있는거 딱 30초 끌어안고 토닥여주는 섫. 그리고 끄떡없다는 얼굴로 몸 뒤집고서 탁자에 있던 핑ㄱ ㅓ돔 케이스 들더니 그대로 침대 위에 쏟아냄. 뽀가 긴장한 얼굴로 올려다보는거 느긋하게 마주하면서 그 중에 하나만 먼저 집어드는 섫.
뽀의 걱정은 지나갔고, 이제 제 차례였음. 기대감인지 불안인지 잔뜩 긴장한 뽀 턱 손등으로 쓰다듬어주고 말하는 섫.

"지엱아"
"응?"
"너도 오늘은 말해줘야 돼"
"......"
"언니 손이 얼마나 좋은지"
"......"
"어떨때 좋은지"
"..언니"
"다 말하는거야"

사귄 이후로 가장 솔직한, 뜨거운 밤이었음. ImageImage
별탈없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날, 카페 보수공사를 하게된 섫. 위층 어디서 누수가 생긴건지 천장이 물을 먹는 바람에 급하게 3일 정도 문을 닫게 됐음. 이참에 안쪽에 보기싫던 벽도 갈아 엎기로 했거든. 근데 섫은 이런거 은근 완벽주의라 공사 하는거 다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했음.
인생에 소원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제 카페에 대한 애정이 있었으니까. 이참에 좀 쉬는게 어떻냐는 뽀 말에도 시작하는 것만 확인한다고 카페로 찾아온 섫. 하루종일 있을 생각은 아니었고 보수공사 겸 인테리어도 같이 하는거라 현장에서 디테일한 요구사항을 설명해주겠지.
대충 현장에서 얘기 나누고 지엱이랑 점심이나 먹을까 하고 핸드폰 보던 섫. 카톡 치면서 걷다보니 시야가 좁아졌고, 누수 때문에 젖은 바닥을 못보고 그대로 밟아버렸음. 인부가 보고 놀라서 어, 하는데 이미 늦었지. 그대로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는 섫.
천만 다행으로 머리는 안부딪히고 엉덩방아로 끝나긴 했는데 자칫하면 크게 다칠뻔한 상황이었음. 심장 벌렁거리는거 간신히 진정시키고 놀라서 달려온 사람들 부축받아 일어나는 섫. 구석으로 날아간 핸드폰 보는데 상태가 참담했음. 액정에 여러갈래로 금이 간거보니 한숨이 절로 나와.
상태 확인한다고 여기저기 꾹꾹 누르다가 유리조각까지 슬쩍 보이는거 보고 비닐팩에 핸드폰 넣어두는 섫. 그리고 다른 핸드폰 빌려서 뽀한테 전화 검.

'네 여보세요'

근데 나 진짜 미쳤나. 기분 진짜 더러웠는데 모르는 번호라고 딱딱해진 네 목소리 들으니까 웃음부터 나와. 이상하게.
핸드폰 빌려준 사람은 옆에서 그거 보고 어이가 없겠지. 무서운 얼굴로 부탁하길래 마지못해 폰 빌려준건데 전화 받자마자 피식거리니까. 섫은 그러든 말든 웃음 참느라 뽀한테 말도 못하고 있음.

'누구세요?'
'..흐흐'
'언니?'
'....'
'혅정언니야?'

목소리 바뀌는거 봐.
귀여워 미치겠어. Image
뽀는 웃음소리 듣고 바로 언니인거 알아채고 도서관으로 가던 발을 멈췄음. 카페 간다고 했는데 볼일 다 봤나. 그러면서 시계 보니까 점심 먹을 시간이었음. 혹시 같이 먹으려고 그러나. 근데 왜 언니 폰으로 안하구. 기대감에 표정 좋아져서 언니가 하는말 기다리고 있는 아기채소. 데쳐질 준비완료.
근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건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음.

'언니 넘어졌어'

기다리던 목소리에 담긴 전혀 기다리지 않았던 내용. 그 말 듣자마자 심장 쿵 떨어져서 핸드폰 쥐고있는 손에서 힘 풀리는 뽀. 폰 떨어트릴뻔한거 간신히 쥐어잡고 섫이 하는말에 귀 기울이겠지.
바닥이 젖어있는걸 몰랐대. 넘어졌는데 다행히 어디 부러지진 않았대. 근데 핸드폰 액정이 갈려서 빌린걸로 전화했대. 목소리가 멀쩡한것 같아서 좀 안심이긴 한데 카페 구조를 섫 다음으로 잘아는 뽀는 거기서 넘어졌다는 소리 듣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음. 진짜 큰일날뻔 한거거든.
테이블에 머리 부딪히기라도 했으면. 어디 잘못 짚어서 부러지기라도 했으면.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지는것 같은 뽀. 새삼 제가 언니를 진짜 아끼고 사랑하는구나 깨달을것 같지. 다치는거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것 같았음. 울컥한거 꼭꼭 삼키면서 말하는 뽀.

'어디 다치진 않았어? 괜찮아?'
섫은 그 말 듣고서야 자기 몸 다시 한번 살펴보는데 아래로 축 쳐진 손목이 뻐근한게 느껴졌음. 살짝 힘줘보니까 찌릿해. 아까 넘어지면서 바닥을 짚었는데 그때 충격이 갔구나 싶어. 이제 보니 조금 붓는것 같기도 하고. 손목 돌리면서 인상 구기다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섫.

'손목 조금?'
그럼 역시 멀쩡하진 않구나 싶어서 한숨 내쉬는 뽀. 곧바로 도서관 등지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옴.

'언니 어디야?'
'아직 카페. 이제 나가려고'
'그쪽으로 갈게. 병원 가자'
'에이 그 정도는,'
'같이 가'
'.....'
'무조건 가'

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뽀 목소리에 알았다고 기다리겠다고 하고 끊는 섫. Image
얼마 안지나서 카페로 도착한 뽀는 오자마자 섫 세워두고 여기저기 살펴보기 바빴음. 섫은 은근 덤벙대서 이렇게 다친게 한두번이 아니라 그닥 심각하다고 생각 안했음. 치료하면 되지. 뭐 그 정도. 그냥 뽀가 입술까지 앙 다물고 살펴주는게 귀엽고 좋기만 해. 머금은 웃음기를 못숨기는 섫.
뽀가 웃음이 나오냐고 그러면 입꼬리 내리긴 하는데 얼마 안가 다시 올라오겠지. 같이 병원가는 중에도, 근육이 놀란것 같으니 3~4일은 보조대 끼고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도. 뽀만 혼자 심각하고 섫은 집중하는 뽀를 힐끔거리기 바빴음.

"진짜 더 아픈곳 없지?"
"응, 언니 멀쩡하다니까-"
뽀는 섫이 심각하게 생각 안하는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당장은 이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컸음. 며칠동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카페도 가면 안된다는 제 말에 섫이 곧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그리고 금방 능글거리는 얼굴로 걱정했냐고 붙어오는 섫을 이겨먹을 능력이 없었음.
"많이 걱정했어?"
"당연하지..!"
"언니 되게 사랑하는구나"
"....."
"왜 이건 당연하지 안해?"
"..아니이"
"아니야?"
"....."
"언니는 지엱이 되게 사랑하는데"
"..나두 사랑해"
"그냥 사랑해?"
"굉장히! 몹시!"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서도 연상은 여전히 능글거렸고, 연하는 순진하기 그지없었음. Image
아무래도 다친게 손목이다 보니 불편함이 많을것 같아서 보호대 뺄 때까지 뽀가 섫네 집에 머물기로 했음. 계속 붙어서 챙겨줄 수 있는게 좋기는 한데 하루이틀 지내면서 뽀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음.

'언니 그거 들지마!'
'아 뭐 얼마나 무겁다고'

다친걸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는 언니 때문에.
섫은 비슷하게 몇번 다쳐봤고, 그때마다 어느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낫는걸 경험해서 그런거겠지. 또 죽을만큼 아픈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뽀가 제 집에 와서 하루종일 수발만 드는것도 마음이 불편했음. 솔직히 너무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는게 많으니까 조금 답답한 것도 있었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뽀가 표정을 굳히고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 과정에서 섫도 조금 꽁해진게 있었겠지.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이제 부엌에만 가도 오지 말라고 하는건 섭섭하잖아. 그렇게 섫은 답답함에, 뽀는 걱정에 조금씩 마음이 긁히던 찰나. 딱 4일차에 일이 터질것 같지.
섫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이제 다 나았구나 했음. 손목을 돌리고 힘을 줘봐도 뻐근하지 않길래. 그래도 점심까지는 뽀가 눈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보호대도 계속 차고, 손목도 거의 안쓰고 지냈겠지. 근데 점심 먹고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하필 먼저 눈을 떠버린게 섫이었음.
옆에 곤히 잠든 뽀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다가 얼굴 여기저기 뽀뽀해주고 먼저 거실로 나온 섫. 다시 손목 움직여봤는데 괜찮아. 살짝 힘 줘도 괜찮고. 어둑한 방안 한번 들여다보다가 보호대 살짝 빼보는 섫. 4일동안 안썼더니 조금 어색하긴 한데 따라오는 통증은 거의 없었음.
이 정도면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수 있겠다. 뽀가 4일 내내 요리를 전담했어서 섫은 오랜만에 맛있는걸 먹여주고 싶었음. 제가 하는 요리를 항상 좋아해주던 뽀니까. 어제 볶음밥 먹고 싶다던 말이 생각나서 재료들 꺼내서 간단하게 요리를 시작하는 섫.
뽀가 좋아해줄 것만 떠올리면서 후라이팬을 잡고있던 섫의 생각이 부서진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음. 언니? 소리에 반갑게 고개 돌렸던 섫. 방문 앞에서 화를 꾹꾹 참는듯한 뽀 얼굴 보자마자 웃음기가 싹 가셔버렸음.

"..언니 뭐하는거야?"

그리고 그걸 보는 뽀도 마음이 절대 성하지가 않았음. Image
무리하지 않기로 했는데. 분명히 지키기로 했는데. 눈 뜨자마자 들리는 소리에 놀라서 뛰어 나왔더니 보이는건 탁자 위에 나뒹구는 보호대. 프라이팬을 잡고 흔드는 언니의 손. 그리고 스쳐갔던 대화들.

'보호대 너무 답답해'
'조금만 참아-'
'이제 괜찮은것 같은데'
'같은거 말고 진짜 괜찮아야지'
'손목 괜찮아'
'늦었어어'
'요즘 지엱이 너무 단호해'
'나 없는데서 막 풀고 그러면 안대'
'.....'
'..언니 진짜 그랬어?'
'장난이야 장난. 왜 이렇게 귀엽지?'

섫은 그게 정말 장난이었음. 뽀랑 한 약속 어기기 싫어서 며칠동안 한번도 푼적 없고, 오늘은 진짜 완전히 괜찮아져서 뺀거였음.
하지만 뽀는 그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고, 그 말 한마디가 오해의 불씨가 돼버렸음.

며칠동안 계속 이랬을까.
내가 안보는 동안 답답하다고
보호대를 풀고. 또 무리를 하고.
나는 보호대 하고있는 언니 손목을
볼때마다 마음 아팠는데.
내 속이 까매지는 것도 모르고.
계속 이랬던거 아닐까.
한틈에 찾아든 의심이 서서히 자라났고, 기어이 뽀가 그 감정을 드러내게 만들었음.

"보호대 언제부터 풀고 있었어?"
"아, 이거 아까 일어나서 뺀거야. 이거 봐. 이렇게 해도 진짜 안아파서"
"오늘 처음 푼거야?"
"응, 방금 풀었다니까"
"전에는 안 풀었어? 한번도?"
"..너 지금 무슨소리 하는거야?"
워낙 눈치가 빠른 섫은 그 물음에 의미를, 뽀가 지금 품고있는 걱정어린 의심을 단번에 읽어냈음.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쌓이던 불편함이 긁혀버리겠지. 걱정해서 그랬다는건 알아. 사랑하니까, 그래서 아껴주려는 마음인건 알아. 근데 나도 그런건데. 나도 네가 걱정되고, 너를 사랑해서 참았던건데.
근데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데.
뭘 묻고 싶은건데.
내가 거짓말 했다고 확신하고 있잖아.

불신 섞인 뽀 눈빛을 견디다가 프라이팬에 하트모양으로 쌓아지던 볶음밥을 보니까 마음이 싸해지는 섫. 가스레인지 불 끄더니 들고있던 뒤집개도 테이블에 내려놓고 두손으로 마른세수하겠지.
한동안 정적이 오가고, 섫은 불쑥 올라오는 날카로운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음. 뽀와 만나면서 많이 다듬어졌을지라도 감정이 격해지니까 예민한 말이 그대로 튀어나갈것 같아서. 아픈 가시를 자르고, 깎아내고. 그렇게 말을 고르는데 뽀는 도리어 화난듯 보이는 섫 때문에 울컥해버렸음.
반응을 보니까 아니었던것 같아. 오늘 처음 풀었다는 말이, 아프지 않다는 말이 진실이라는건 알겠어. 하지만 한번 구멍이 나버린 마음에서는 며칠동안 쌓였던 서운함이 쏟아지고 있었고, 제 앞에서 보여주지 않던 얼굴로 한숨쉬는 섫을 버티기가 힘들었음. 그러게 왜. 사람 걱정돼서 피가 마르게, 왜.
"무리 안하기로 했잖아"
"오늘 처음 뺀거라고 했어"
"오늘 얘기하는거 아니야"
"뭐?"
"언니 넘어졌다는 소리 들었을때,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줄 알았어"
"....."
"손목 퉁퉁 부은거 보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
"언니가 다친거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얘기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뽀가 쌓아온 감정을 흘리기 시작하니까 섫도 울컥해. 뽀를 이해 못하는건 아닌데 섫은 지금 불신 당했다는 사실이 아파서 정신이 없었음. 그 의심이 저한테는 너무 상처였는데 그냥 넘겨버리고 제 얘기를 시작한 뽀가 버겁게 느껴지는 섫. 결국 똑같이 해버려. 제 잘못은 덮고, 제 감정만을 앞세우고.
"내가 언니 보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몇번이나 얘기했지"
"....."
"이렇게 다쳐본적 있다고. 그래서 뭐가 좋은지, 안좋은지 제일 잘안다고. 지엱아 너 그거 들은체는 했어?"
"....."
"그냥 아무것도 못하게 했잖아. 부엌도 들어오지마, 잘때도 위험하니까 떨어져서 자자, 하지말자, 하지마라."
"내가 그거 싫다고 한적 있어? 불편해도 다 참았어. 빨리 나아야 너 요리도 해주고, 다시 같이 자고. 그런거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하라는대로 했잖아"
"......"
"근데 너는 왜.."

말하면서 젖어드는 목소리 한번 삼키고 간신히 말 덧붙이는 섫.

"왜 나를 하나도 안믿어주니"
섫의 내려놓은듯한 목소리에 뽀도 그제야 생각이 좀 맑아지겠지. 아직도 내가 그렇게 못미더운거냐고 젖은 눈으로 말하는 섫을 보니까 마음이 난도질 당하는것 같았음. 되는대로 불신을 던진 후에야 떠오른 과거의 일들, 한번씩 과거에 발목 잡히던 섫의 모습들. 불신을 두려워하던 그 마음들.
안쓰러운 마음과 전부 비우지 못한 서운함이 뒤섞여 넘치기 시작하는 뽀. 근데 마음 아파하는 섫을 보면서 또 느꼈음.

나는 정말 언니 아픈게 싫어
손목이든, 마음이든.
아파서 찡그릴 때마다
그 무늬대로 심장에 멍이 드는것 같아.
내가 언니를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도저히 아픈걸 못보겠어.
결국 먼저 울음이 터져버리는 뽀일것 같지. 상처받은 표정인 섫을 보며 무너져버렸음.

"나는, 언니가 아픈게 힘들어.."
"....."
"언니가 아프면 내가 더 아파서, 숨이 턱턱 막혀. 조금도 안아팠으면 좋겠어"
"...지엱아"
"언니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나는 너무 아파. 작은것도 나한테는 너무 커"
눈물 바닥으로 뚝뚝 떨어트리며 우는 뽀에 상처가 전부 휩쓸려가는 섫. 마음이 저려오는걸 느끼고, 그 언젠가 감기를 앓던 뽀를 보며 애달팠던 기억이 떠올라. 그래. 나도 그랬는데. 차라리 내가 아프게 해달라 빌었었는데. 왜 제대로 보지를못했지. 드디어 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섫.
날카로웠던 감정이 전부 사라지고, 이제 상처 대신 다른 의미로 얼굴이 구겨지는 섫. 뽀는 시선을 피하느라 그걸 보지 못했음. 울음을 끅끅 삼키다가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을 해.

"그냥 나한테, 언니가 너무 커"

그 말을 끝으로 뽀는 고개를 숙였고, 섫이 달려와서 뽀를 끌어 안았음.
숨막히게 끌어안는 섫에 더 큰 울음 토해내면서 허리에 팔 두르는 뽀. 미안하다는 말은 섫이 먼저 했고, 잘못했다는 말을 뽀가 이어서 했음. 둘 다 어떤 의미로든 상처를 주고 받아서 그 두가지 감정이 다 해소될 때까지 서로 끌어안고 두서없이 여러 말을 뱉을것 같지. 미안해. 좋아해. 사랑해.
특히 뽀는 감정에 사랑만 남을 수록 방금 제가 했던 의심이 섫 마음에 얼마나 큰 불안과 상처가 됐을지 가늠이 안돼서 더 울었음.

"미안해. 의심해서 미안해"

단 한순간이라도 불신해서 미안해.
뽀의 그 말을 듣고서야 섫도 울음을 터트렸음.

"지엱,아 나 좀 믿어줘"

불안을 함께 쏟아내면서.
뽀가 울때는 섫이 달랬고, 한발 늦게 섫이 엉엉 울기 시작하니까 감정 먼저 추스린 뽀가 섫을 달랬음. 저보다 큰 몸을 끌어안고서 믿음이 닿도록 여러 말을 속삭여주는 뽀. 그렇게 한참을 눈물에 푹 젖어있다가 섫이 눈물 닦아내면서 먼저 떨어지겠지. 자기 얼굴도 엉망이면서 뽀 눈가부터 만져주고.
그럼 뽀도 가만히 있다가 옷소매 늘려서 언니 눈물 닦아주려고 함. 그게 웃겨서 아직 젖은 얼굴로 피식 웃는 섫. 분위기가 풀어지는 계기가 필요했는데 섫의 웃음이 그 역할을 해줬음. 한바탕 울고 난 뒤라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눈 부었다고 장난칠 분위기는 됐음.
방문 앞에 선채로 얘기 하다가 놔뒀던 볶음밥이 떠오른 섫. 어느덧 평소처럼 돌아온 다정한 눈으로 뽀 눈썹 만지면서 말함.

"밥 먹자"
"응, 언니가 건강한 손으로 만들어줬어"
"왜 그렇게 귀엽게 말해?"
"그냥 말한거야"
"그러지마. 언니 아직 손목 힘 없어"
"....."
"....."
"..아"
"응?"
"변태야!"
분위기를 쉽게 바꾸는게 섫의 매력이기도 했음. 한발 늦게 말뜻을 이해하고 언제 울었냐는듯이 얼굴 새빨개져서 옆으로 도망가버리는 뽀. 그대로 부엌까지 뛰어가는데 프라이팬에 묵직하게 남은 하트모양 볶음밥 발견하고 또 울컥해버림.

내가 이런 사람을, 사랑을.
의심했구나 싶어서.
뽀가 그 앞에 우두커니 서있으니까 대충 왜그런지 알아채는 섫. 느릿하게 부엌으로 따라 들어오더니 수저 두개 챙겨서 테이블에 올려둠. 그리고 하나는 자기가 집어들고 뽀 뒤로 가서 허리 끌어 안을듯. 백허그한 상태로 볶음밥 모서리를 긁어서 수저에 담더니 뽀 입가에 가져다 주는 섫.
"먹어 봐, 맛있어"

울망울망한 눈으로 뒤돌아보는 뽀. 섫은 곁눈질로 그거 보고 웃으면서 응? 하겠지. 건강한 손이 만든거야. 장난스럽게 덧붙이니까 그제야 푸스스 웃고 와앙 받아 먹는 뽀. 열심히 우물대더니 갑자기 파드득 하면서 다시 돌아 봄. 이번엔 맑게 웃는 얼굴로.
"너무 맛있어!"
"너무할 정도야?"
"언니도 먹어 봐"

옆에 테이블에 남은 숟가락 들더니 왕창 퍼서 섫 입에 넣어주는 뽀. 그렇게 멀쩡한 의자 놔두고, 그릇에 담을 새도 없이 서로 먹여주다가 끝날것 같지. 싸움의 끝이 당연하게 사랑이듯, 하트 볶음밥을 먹으며 둘의 작은 틈이 반듯하게 채워졌음.
그리고 그날 밤에 섫이 아직까지 손목이 온전치는 않으니까 방심하고 있던 뽀. 자려고 눕자마자 입술부터 맞물려오는 섫 덕에 분위기 타버리고, 능숙하게 옷부터 말아 올리는 언니 덕에 금방 온몸이 추워지고. 정신없이 끙끙대다가 아무래도 이건 진짜 무리일것 같은 뽀. 섫 팔 잡아다 끌어당김.
"언니 손.."

아까 그걸로 싸웠다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뽀가 그저 사랑스러운 섫. 웃으면서 쪽쪽 뽀뽀해주고 그대로 몸 뒤집어버림. 섫 배에 올라앉은 뽀는 여전히 걱정하는 중. 이 자세라고 무리가 안가는게 아닌데. 오히려 이러면 제 무게 때문에 더 안좋을것 같은데.
뽀가 무슨 걱정하는지 뻔히 보이지만 말을 더 하지않는 섫. 대신 뽀 척추 한번 쓸어 내리더니 앞으로 꾹 누름.

"좀 더 위로 앉아 봐"
"위로?"
"응, 더 위로"

섫이 당기는 손길에 따라 조금씩 무릎 세워서 앞으로 가던 뽀. 어느 순간 섫의 속내를 깨닫고 멈추는데 그땐 이미 허벅지가 붙잡힌 뒤였음.
"언니 잠깐만,"
"지엱아"
"이건 너무.."
"누가 손 쓴다고 했어?"

섫이 웃으면서 말을 마치고, 뽀는 침대헤드를 붙잡고 고개를 젖혔음. 작은 싸움 뒤에 큰 사랑이 피어나듯. 싸웠다 화해한만큼 평소보다 짖궂고, 애정이 눅진한, 기나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음. Image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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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Jul
몸 관리 시즌에는 새벽마다 운동 나가는 섫. 사람 많은거 싫어해서 진짜 일찍 나갈것 같지. 5시에 기상해서 스트레칭하고 바로 나가서 뜀. 동네만 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멀리 한강공원까지 나가서 뛰고 올듯. 아침잠 많은 콩알이는 항상 언니가 들어와서 씻었다는 톡 보낼때쯤 일어남.
운동 나갈 때, 들어올 때. 빠짐없이 연락 남겨주니까 그 아침운동에 크게 신경써본적 없는 콩알이. 365일 그러는것도 아니고 대회 직전이나 체력 기를 시즌에만 하는거니까. 근데 어느날 시즌 때 언니네서 자고 새벽에 깼는데 옆자리 휑한거 느끼고 처음으로 그 아침운동 같이 가보고 싶다고 생각함.
그 생각한 날 밤에 냅다 언니한테 전화 때리는 아기공주. 후진은 없어.

'언니! 내일도 아침에 운동해?'
'그래야지?'
'나두 갈래! 나두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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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Jul
비올 때 서로 데리러가는거 보고싶어.
언니 때문에 새벽에 자서 아침에 우당탕 나오느라 우산도 못챙기고 나온 뽀.
하늘이 우중충하긴 했지만 강의 하나
듣고 나오는 사이에 비가 올까 싶어서
섫한테 별말 안하고 강의실 들어감.
강의실이 건물 안쪽에 있어서 듣는동안엔 바깥 소리가 잘 안들렸음.
말이 남들보다 1.6배 정도 빠른 교수님이라 정신없이 강의가 지나가고, 짐 챙겨서 나오는데 복도 들어서자마자 불길한 빗소리가 들림. 급하게 창가로 가보니까
비가 오네. 그것도 엄청 오네. 우산 살려면 편의점까지는 가야됐는데, 하필 또 오늘
씌워달라고 할 친구가 자체휴강을 때렸음.
언니한테 말해볼까.
근데 오늘 약속있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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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Jun
그냥 못하게 놔둘걸. 왜 잘하라고 했지. 시간이 지날수록 섫의 애정을 걸러낼 수 있는 거름망이 얇아지고 있었음. 그걸 뚫고 들어온 예쁜 마음들이 출발선에 서있는 뽀의 등을 건드리겠지. 툭툭. 아예 밀어버리지는 않지만 재촉을 해. 이제 가고싶지 않냐고. 제 앞에 그어진 선을 내다보는 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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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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