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즈니스의 일부분을 부르는 말. '주식'(stock)이라고 도 함 2. 결과의 공평함 (기회의 공평함은 아님. 모두의 결과가 같아야 된다고)
잘 짱구를 굴려보자. 자연은 어떤가? 토끼와 사자가 똑같은가? 공평하게 나누는가? 아니다.
꽤 많은 현대인들이 결과의 공평함을 주장하는데 이는 자연적이지 않다.
자연적이라는 말은 사실 엄청 무서운 말이다. 모두가 다르고, 잘되는 놈은 더 잘되고, 못난 놈은 도태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철저하고 냉정한 세계관이다.
다윈도 <종의 기원>서문에 이런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새가 아침에 지적이는 소리는 우리 인간에게 듣기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새들에게는 먹고 살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서 다윈의 엄청난 통찰력을 대학생 시절 경험했다. 우리의 감각기관에는 좋게 들리는 것들이 실제로 그 당사자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에 다크에너지라는게 있는데,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감각은 그만큼 모든 자연현상을 살펴보는데에도 탁월하지 않다.
박쥐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 다르고, 인간이 보는 방법이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고, 결과의 불평등을 받아 들이는 것이 자연적인 것이다.
다만, 인간 세상에서 인위적인 가치관 땜에 결과의 불평등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삶은 불공평한 것인데,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는 본인만을 피곤하게 한다.
유아적 사상을 가진 프랑스의 루소가 그렇다. 자연적인 것을 로맨틱하게만 봐라봤다.
물론 삶에 지친 우리가 루소처럼 로맨틱하게 봐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삶은 (인간의 본성은 전쟁 그 자체라고 한) 홉스 처럼 살아야 한다.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봐야 하며, 로맨틱한 것은 도태된다.
어찌보면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 나름대로의 그들만의 경쟁을 하는지도 모름
우리가 복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시작하는 선은 같이 가게끔 만들자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같은 배에 태어난 형제자매도 각 기 다 다른데 어찌 결과의 공평함을 추구할 수 있나?
난 오히려 각 자가 개인적일때, 개인적인 유니크함을 뿜을 수 있도록 사회가 장려해야 한다 생각한다.
창의력을 마음껏 펼쳐서 기존의 시스템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페러다임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진보적 성향의 마인드이고, 그런 앞으로 나가는 사회를 옛 것을 다 배척하기 보다 빌려쓸 수 있는 것을 빌려쓰며 보수해나가야 된다 생각한다. 사회라는 것은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기에
영어단어 equity를 결과의 공평함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로 우리를 속이는 제로섬게임으로 보는 세계관으로 가질 건지,
아님 주식 & 부로 대표되는 포지티브섬게임으로는 세계관으로 가질 진에 따라 우리의 삶의 결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조지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을 참고.
공평함이라는 단어 뒤에 속마음은 무엇일지 잘 말해주는 소설이지만 더욱 철학책 같은 소설.
듣기 좋은 말들 뒤에 숨겨진 이면을 잘 봐야 한다.
<법>이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경제철학자 바스티야가 말했듯,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투자자도.
입에 쓴 것이 약이라고 하고, 달달한 설탕이 우리를 더욱 죽이듯이.
달콤함 그 이면에 숨겨진 것. 그것을 봐야한다.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선동을 당하지 않으려면 본인만의 생각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