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대, 교수가 질문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매독에 걸렸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렸다. 이 부부에겐 아이가 넷 있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나머지도 건강하지 못하다. 이 부인은 다섯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는 대답한 학생을 바라봅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90년대생까지는 익숙할 이 이야기는, 사실과 무관한 도시전설입니다. 분명한 의도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랄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낙태 반대를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죠.
오늘 이야기 할 작품은 <터미네이터>입니다. 터미네이터는 무명이었고 이전까지의 감독 커리어라고 해봤자 B급 졸작 영화 <피라냐2> 정도가 고작이었던 신인 제임스 카메론을 스타덤에 올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피라냐2>는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짝퉁 영화였는데, 적당한 미국인을 명분상 감독으로 앉히고 멋대로 찍은 영화였기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감독 데뷔로 들떠있던 카메론은 이 때문에 극심한 좌절을 경험했죠.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요. 제임스 카메론은 '끔찍한 외형의 기계 인간이 불길 속에서 일어나는' 악몽을 꾸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 웨이트리스로 생계를 꾸리던 아내, 샤론 윌리엄스의 보필을 받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 시나리오의 성공을 자신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신선했고, 개연성은 튼튼했습니다. 성공할 것을 직감한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사를 찾아가 제작자에게 '1달러에 작품의 판권을 넘기는 대신 나를 감독으로 고용하라' 제안했고 시나리오를 읽어본 게일 앤 허드는 이에 응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과 게일 앤 허드는 사랑에 빠져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만 이건 별개의 이야기. 제임스 카메론은 결혼만 다섯 번을 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린다 해밀턴,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모두 스타로 만든 이 <터미네이터>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터미네이터 속에 숨겨진 어떤 메세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터미네이터는 관점에 따라 낙태 반대 프로파간다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주의 비평 쪽에서는 수도 없이 제기되었던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Termiante'라는 단어가 사실 '낙태'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영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터미네이터의 낙태 반대 메세지는 더 쉽게 읽혔을 텐데요, 오늘은 이 코드로 <터미네이터>를 한 번 감상해봅시다.
주인공
사라 코너
악역
'운명'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운명'입니다. 영화에서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매우 강조되지요.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이고, 암울한 미래로 가는 걸 막는 이야기니까 운명이라는 단어가 주 키워드로 제시되는 걸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낙태 반대의 메세지를 담은 영화로서의 <터미네이터>'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독해해보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 '운명'이라는 키워드도 우리는 달리 읽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의 사라 코너는 소시민입니다. 레스토랑에서 종업원 일을 하는 별 볼 일 없는 여자입니다. 그런 사라 코너에게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집니다. "당신은 미래 세계의 구원자를 낳게 될 겁니다." 흡사 예수를 잉태할 마리아가 된 것입니다.
이른바 '미래 세계'는 그 구원자의 등장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미리 암살자를 보냅니다. 이들의 목표는 사라 코너가 낳을 자식을 '낙태'시키는 것입니다. 터미네이터는 '파괴자'이자 '낙태하는 기계'인 셈입니다.
SF적으로 이 영화를 읽는다면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영리하게 활용한 (포스트)아포칼립스물로 볼 수 있고,
기독교적으로 본다면 예수의 탄생을 막으려는 사탄의 흉계에 비유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앞서 말한대로 '낙태 반대의 프로파간다'로 독해한다면 <터미네이터> 1편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는데요,
'미혼모로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게 된 사라 코너가 [낙태하라]는 사회적 압박에 맞서 아기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유일한 독해법이 아니라는 점, 다시 한 번 이야기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다양한 관점에서 독해될 수 있는 법입니다. 저는 좋은 이야기를 특수한 상황이나 사건에서 보편적인 감성이나 깨달음을 끌어내는 것이라 보기 때문에 더더욱.
이 경우 <터미네이터 1>에서 제시되는 '운명'이라는 키워드는 [별 볼 일 없는 신분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사회적 압박에 시달릴 미혼모로서의 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래 세계에서 온 악마, 터미네이터로 대변되는 수많은 사회적 압박과 시련이 사라 코너를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 코너는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전사로 각성해야만' 합니다.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낳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력한 여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터미네이터 2>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어린 존 코너는 인류의 구원자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불량합니다. '아버지 부재로 인해 아이가 삐뚤어지는 것'은 미혼모에게 있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일까요?
그렇지만 1편에서 사라 코너(와 뱃속에 있던 아기)를 죽이려 했던 악마는 2편에서 미혼모에게 부재한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주면서 극적인 아이러니를 빚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드러나는데요,
사실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은 사라 코너이지 존 코너와 T-800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참가하지 않은 모든 터미네이터 시리즈들이 간과하거나 깜빡한 아주 지극히 분명한 명제입니다.
터미네이터 3도, 터미네이터 4도, 터미네이터 5마저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주인공을 존 코너로 설정했죠. 그나마 5편 제네시스 정도가 사라 코너의 이야기로 화귀하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존 코너에 얽매여있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위의 열거한 영화들은 제임스 카메론이 참가하지 않은 반면에 제임스 카메론이 참가한 작품은 <사라 코너 연대기>였다는 점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사라 코너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본인의 영화가 낙태 반대 프로파간다의 영화로 독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정답은 'YES'입니다. 첫번째 증거는 <터미네이터>를 찍은 직후 만든 영화에 있는데요...
<에일리언2>입니다. 에일리언이라는 괴물이 여성이 지닌 임신에 대한 공포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제임스 카메론은 아예 수술대 위에서 배가 찢어지는 악몽을 꾸는 장면으로 이런 모티브를 더 분명히 합니다.
그렇지만 리플리는 자신의 딸을 연상하게 만드는 소녀 '뉴트'를 만나 모성애를 각성, 여전사가 되어 (동일하게 모성애를 지닌 괴물) 퀸 에일리언과 일대일 맞다이를 뜨기에 이릅니다. 여튼 임신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까지의 메타포를 담고 있다 볼 수 있지요.
결국 <터미네이터 1>과 <에일리언 2>는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없는 미혼모가 낙태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임신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결국 모성애를 자각하여 여전사로 각성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서사를 대단히 치밀하게 짜는 감독이기 때문에 여러 관점에서 독해를 할 수 있고, 그래서 위의 관점(낙태 반대 프로파간다)를 제임스 카메론이 정말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보통 이런 메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개연성이 무너질 때'인데 창작물 속에서 개연성이 무너질 때만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쉬울 때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연성이 무너지며 발생한 틈을 통해서 작가의 숨겨진 의도를 옅볼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터미네이터는 적어도 <터미네이터 2>까지는 그런 틈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크페이트>는 다릅니다. <다크페이트>는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을 쓰고 팀 밀러가 연출을 맡았는데, 팀 밀러는 제임스 카메론의 각본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한편으로는 충돌하기도 했기 때문에 균열이 많이 발생했지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쉬워졌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이 <다크페이트>라는 영화가 '제 발 저려 만들어진' 감이 있기 때문에 위의 관점을 제임스 카메론이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로도 사용 가능한 작품이 됩니다.
새벽 3시니까 남은 이야기는 자고 일어나서 마저 합시다.
<터미네이터 2>의 원래 결말을 알고 있으신가요? DVD나 블루레이에서 암호를 입력하면 재생 가능한 감독판의 결말이 있습니다. 사라 코너는 운명을 바꾸는데 성공하고, 존 코너는 인류의 구원자가 되진 못했지만 의원이 되어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인물이 되었단 거지요.
이 결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시사해줍니다. 하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화자는 결국 사라 코너라는 것, 하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관점에서 이 결말은 사라 코너가 얻고자 했던 성취가 결국 '존 코너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것'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결말이란 겁니다.
하지만 이 결말은 시리즈를 완벽하게 끝내버리기 때문에 차기작이 나올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픈엔딩으로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도 이 수정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사실 제임스 카메론의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에게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일종의 보험이었거든요.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돈을 벌어다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인이 영화를 찍고 망할 경우 <터미네이터> 차기작을 찍어주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적인 보험이었습니다.
제작자 "카 감독, 이번에 만들겠다던 <어비스> 말이야. 그거 별로 상업성이 높을 거 같지가 않아서 우리가 투자를 망설이고 있거든."

카메론 "까짓거, <어비스> 흥행 실패하면 <터미네이터 2> 찍어드리죠."

그래서 <터미네이터 2>가 나온 겁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카 감독, 이번에 찍는다던 그 영화 말이야. 사람들이 그런 우울한 영화를 좋아할까? 내용에 비해 돈만 많이 들어가는 거 같은데."

"까짓거, 이번 영화 망하면 <터미네이터 3> 찍어드리죠."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 3>를 찍지 않은 겁니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에요.
결국 제임스 카메론에게 <터미네이터>는 자기가 찍고 싶은 영화를 위한 협상 도구이기도 한 셈이죠. 다만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 전까지는 판권이 카메론이 아닌 영화사에게 있었다는 점도 감안해줘야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후대 사람들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이어가기 쉽게 극장판 결말에서는 문자 그대로 '길'을 열어줍니다. 은유를 정말로 영상화했다는 점에서 유머러스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터미네이터> 판권은 카메론 아닌 영화사에게 있어 누구든지 이어갈 수 있죠.
그렇지만 이 결말에서도 화자는 존 코너가 아니라 사라 코너라는 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모든 영화들은 <터미네이터>가 사라 코너의 이야기라는 점을 간과한 채 존 코너, T-800, 그리고 시간여행과 미래전쟁이라는 소재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네시스> 정도가 더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카메론의 성미에는 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0년대 후반,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의 판권을 얻었고 시리즈 1편과 2편을 계승하는 '새로운 3편'이 제작된다고 발표됩니다. 결국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나서서 시리즈에 '전면 수정'을 가하겠다고 선언한 것인데요,
제임스 카메론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사라 코너 역의 린다 해밀턴을 다시 캐스팅한 것입니다.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이 다시 돌아온 것이죠.
그리고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스카이넷 파괴의 확실시, 어린 존 코너의 사망, 타임 패러독스 따위에는 개의치 않는 세계선 등을 내세우며 팬들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을 줍니다. 원래 이런 충격이 제임스 카메론 영화의 묘미이긴 한데 이번 충격은 다른 영화와는 방향성이 좀 달랐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큰 서사'를 잘 구축하는 감독입니다.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비틀기도 잘하죠. 누가 1편에서 압도적인 공포와 서스펜스를 만들어냈던 악역이 2편에서 충실한 조력자로 변신할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런 '비틀기'는 세계의 규칙을 존중하는 선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큰 반감을 주지 않았죠. 제임스 카메론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별명이 '속편의 제왕'이기도 한 이유고요.
하지만 이런 '비틀기'는 세계의 규칙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생각하는 키워드와 관객들이 생각하는 키워드가 서로 달라 괴리를 일으킨 것도 있겠지만, 카메론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에드워드 펄롱을 다시 캐스팅한다는 마케팅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오히려 <다크페이트> 초반부의 그 충격적인 전개들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선언'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은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그리고 어제 <다크페이트>가 사실 제 발 저려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씀드렸었지요.
제임스 카메론에겐 이런 '부차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시리즈가 내재하고 있는 메세지, '낙태 반대의 프로파간다'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작품을 독해할 때 반드시 전제하는 한 가지 명제가 있습니다. 작가도 인간이고 작품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작품도 작가의 의도를 100% 반영하고, 또 전달되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조차도 그렇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의도했든 아니든 <터미네이터>에는 어떤 낙태 반대의 메세지, 여성의 출산 도구화와 같은 문제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다크 페이트>에 와서야 이를 수정하려 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정말로 진지하게 낙태 반대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 <터미네이터>를 만든 것도 아닐 겁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더 보편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가져온 모티브 중 하나가 미혼모와 낙태였고,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메세지일지도 모릅니다.
<터미네이터>는 근본부터가 영화감독으로 정착하고 싶었던 제임스 카메론의 절박함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알면서도, 혹은 전혀 모른 채 나이브하게 넘어간 지점도 있었을 테고요.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변화합니다.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개인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캐릭터가 들어가 있거든요. <다크 페이트>의 T-800, '칼'입니다.
미래에서 온 냉혹하고 자의식 없는 살인기계였던 칼은 인간 사회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을 아끼는 가부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재밌는 유머도 이 안에 녹아있는데, 칼은 전형적인 레드넥(시골 백인 보수층)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어요.
제임스 카메론이 민주당원이고 제임스 카메론의 페르소나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공화당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위트 있는 농담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꼴통 레드넥이지만 시대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인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하니까요.
위에서 팀 밀러 감독과 제임스 카메론의 생각이 충돌하면서 균열이 많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개연성이 무너질 때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는 점도 말씀 드렸죠.
사실 제임스 카메론은 여기서 더 큰 무리수를 던지려 했었습니다. 바로 터미네이터에게는 생식 기능이 있어 인간 사이에 인간인 하이브리드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 장면에서 자신의 메세지를 훨씬 더 강조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러나 팀 밀러에게 이런 아이디어는 설정에 맞지 않는 '무리수'였고, 결국 기각되었습니다. 이 설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좋은 수였는지 나쁜 수였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개인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 시대는 변하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에는 좋은 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의 근본을 뒤엎어서라도 그 속에 숨겨진 어떤 메세지를 수정해야 했던 제임스 카메론처럼요.
그래서 <다크 페이트>에서 '여성'은 더 이상 아이(구원자)를 낳는 도구가 아닙니다. 여성은 그 자체로 구원자가 됩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코드와 메세지도 변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물론 여기에도 한계가 있긴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터미네이터>를 이런 식으로 독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작품 이해에 있어 작가와 독자 사이에 균열이 발생해버린 것이죠. 저 또한 <다크 페이트>가 그런 점에서 아쉬웠고요.
그렇지만 <다크 페이트>의 정신은 본받을 만합니다. 선배 작가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먼저 제시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면 후배 작가는 선배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연구하고, 실수나 문제를 보완할 권리를 가집니다.
앞으로 <터미네이터> 프랜차이즈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어떤 길을 제시했고, 그 길을 따를지 말지는 결국 후대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다 하지 못하고 끝내는 것 같아 아쉽지만 오늘의 타래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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