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생각난 김에. 어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웹툰을 쓱 훑어봤다. 원래 같은 컨텐츠를 다른 포맷으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일단 같은 포맷으로도 재독을 잘 안 하는 편이긴 하다만) 뭐 확인할 게 있어서 좀 봤다가 독자 반응에서 좀 흥미로운 부분을 봤다.
전독시는 현재 남판의 독자 태도가 잘 나오는 작품인데 예를 들면 "독식을 좋아하는 성좌" "고구마 전개에 분개하는 성좌" "사이다패스 성좌"... 그 중에는 '호구력'이야기도 계속 나온다. 남판에서 '이 새끼 호구네 하차합니다'는 꽤 흔한 상용구인데, 호구... 쉽게 말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놈이다.
남에게 뭔가 자비나 베풂이 있으면 그 순간 주인공은 호구가 되고, 독자에게 욕을 존나 처먹고, 하차합니다 댓글이 뜬다... 이건 내가 노블레스 있을 때부터 관측되던 현상인데, 그런게 독식에서 나혼렙 같은 것까지 발전한 거고 전독시도 보면 호구소리 안 들으려고 엄청 어거지로 틀어놓은게 보인다.
초반에 "당신이 호구가 아님에 안심합니다" 라는 텍스트가 뜨는 장면이 있다. 남판 독자들이야 이게 주인공이 절대로 꽁으로 남에게 뭐 안 주고 갑질도 해서 이익을 챙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일텐데 웹툰 독자들의 말은 달랐다.
"그래도 성좌들이 주인공 걱정을 해 주네요 호구일까봐 걱정한듯"
띠용
이걸 본 나는 담배 피며 술 바께스로 처마시며 광발작 일어날 듯한 사이키델릭 조명이 번쩍이는 클럽에서 병아리옷 입고 동요에 맞춰 춤추는 유치원생의 순수를 발견한 썩은 어른 1인의 기분이 되는데 이게 또 베댓임... 몇천 추천이 붙어 있는 거고... 그래... 필드가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뭐 호구는 남판소 필드에서만 나오는 말이긴 한데 결국 이것이 시대정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어느정도는 상통하는 맥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음.. 정말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건 <90일, 지정생존자>를 봤을 때도 어느정도 느끼긴 했던 거였다. 웹소설의 소모성이 대중의 입맛에 맞춘거라면
어떻게 이 플롯으로 1화를 보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은 각기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건 알고, 웹소설 또한 '장르소설'로서 폐쇄된 구조가 존재한다. 그러나 매체가 시대성을 가진다고 할 때 이런 특징은 시대성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
서사대 강연에서 시간 비었을 때 김치생존자 드라마 1화부터 5화까지 플롯을 쭉 나열한 다음 "이것을 웹소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할까요? 일단 1화부터 3화는 삭제해야 합니다" 했던 적이 있다. 캐릭터 활용도 이야기하긴 했음. 이러면 고구마라고 하차한다고... (물론 드라마의 의도는 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니까 정말... 많은 것이 이해가 된다 시각매체의 시대 텍스트가 싸워야 하는 것들 2차 구술성의 시대에 구어와 문어가 해야 하는 것들.............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드라마화 될 때, 사실 로맨스 쪽에서는 그건 '로맨스도'가 낮은 작품인데... 라고 말하는 게 있었다. 그러나 팬덤에서 '로맨스도'가 높다 하는 것은 내적 묘사가 많은 것이고 이것은 이미지화, 영상화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정통로맨스'가 잘 영상화되지 않는 것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 영상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액팅과 사건 사고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정통로맨스보다는 하이틴로맨스에 훨씬 가까운 감성을 가지고 있고 거기엔 그런 '사건'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반대로 이런 영상 시대의 사람들이 '소설'로 진입할때, 작가라면 영상물의 문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가진 문제가 있고, 독자 또한 영상물의 독해 외에는 가지지 않았을 때 생기는 문제와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화된 컨텐츠의 강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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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또", '체고에서 유도선수로 활동하는 미성년자가 특정 트랜스젠더가 여탕, 여자화장실에 들어오면 메치고 조르고 꺾어서 즉시 재기시키겠다'고 한 말을 지적했다는 것을 '미성년자싸불했다'고 갈아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는 말인데.
해당 학생의 신원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실제로 불이익이 주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하죠. 신상이 있어야 사실 확인을 하는데.
그런데 해당 미성년자가 자신이 갈고닦은 체육능력으로 특정인을 해하겠다고 발언하면 징계받아야 하는거 맞습니다.
격투기를 배울때 그것이 그냥 동네 도장이더라도 사람을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은 꾸준히 가르칩니다. 현대의 격투기는 대부분 스포츠인데 그 이유는 결국 사람을 쉽게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호구 등의 착용이 필수인거고요. 물론 사람은 쉽게 안 죽습니다. 정말 쉽게 안 죽고,
메일로 가끔 이것저것 묻거나, 또는 순수하게 감상을 보내는 분들이 계신다. 묻는 것에는 대답을 엔간하면 보내는 편이지만 감상... 이건 '소설'에 대한 감상만은 아니고, 쓰는 글들 전반에 대한 것인데 도움이 되었다거나, 좋았다거나,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거나.
반가운 말들이지만 동시에 계면쩍기도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만 이런 글들에는 회신률이 꽤 떨어지고 만다... 내 능력에 칭찬이 박한 인생을 살아서 그런지... (그런 인생 치고는 자신 전체에 대한 자기긍정감이 대단한 것도 참 신기하긴 하다)
칭찬에 '감사합니다' 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글쓰고 난 이후의 일이긴 한데... 아니, 이것도 참 이상하구만. 내 인생에서 유독 박하게 대해지고 공격받은 건 작가로서 받은 것들이라 (...) 하여간, 가끔 익싸에서 말하는 게 흘러들어오는 걸 보면
혁명 직전의 프랑스, 처형인 샹송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샹송가의 인물"이라는 부분은 중의적인 표현이다. 중반 지나면 오빠와 여동생이 투탑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으로 나오는 샤를 앙리는 섬세하고 유약하며 사형인으로 알맞지 않은 성품인데
이 문제로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하는 일이 초반에 나온다. 고문당하는 주인공의 가느다른 신체가 탐미적인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 만화가 중근세에 존재하던 비인간적인 고문, 처형방법에 대해 생각보다는 상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을 주의사항으로 넣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