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만화. 사카모토 신이치 작) 읽고 다시 훑어보니 너무 흥미롭고 웃긴 부분이 있어서 정리 ridibooks.com/books/10190100…
혁명 직전의 프랑스, 처형인 샹송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샹송가의 인물"이라는 부분은 중의적인 표현이다. 중반 지나면 오빠와 여동생이 투탑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으로 나오는 샤를 앙리는 섬세하고 유약하며 사형인으로 알맞지 않은 성품인데
이 문제로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하는 일이 초반에 나온다. 고문당하는 주인공의 가느다른 신체가 탐미적인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 만화가 중근세에 존재하던 비인간적인 고문, 처형방법에 대해 생각보다는 상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을 주의사항으로 넣어야 할 거 같다.
샤를 앙리는 성미에 맞지 않는 사형인 일을 하며 고통을 주지 않는 사형 방법, 더 나아가 사형이 없는 세상을 꿈꾸고, 여동생인 마리와 함께 권위적인 조모에게 "새 시대는 우리들의 것"이라고 선언하는데... 이 전에 샤를 앙리는 결혼도 아이도 가지지 않고 이 대를 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여동생 마리가 성장하여(14~16세) 베르사유의 처형인 일을 맡게 된 때에 강직해보였던 아버지가 처형인들을 위해 기도하던 숨겨진 기도실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그를 흠모하던 여자와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이 이후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깨닫고 태도가 변한다.
'첫 성관계를 가져 진정한 남성/여성으로 거듭난다' 같은 개념은 전세계적으로 존재하지만 일본에서도 여러가지 맥락과 함께 존재하는데 그 맥락이 거의 합치되어 있어서 웃고 넘겼는데, 다음 장면은 샤를 앙리가 마리에게 무언가를 명령하고 마리가 아버지 흉내를 낸다고 비웃는 장면이다.
섹스를 통해 '남성성'을 획득하고, 그것을 자각하여 남성성을 바로 실현해 보이지만 그의 여동생은 그것을 바로 비웃으며, 남성성의 가면은 그 순간 벗겨진다. 다시 쓰려고 하지만 그 순간 오빠와 여동생의 최초의 균열이 시작된다. 한참 후, 갑자기 샤를 앙리가 자녀를 가졌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이후 그의 장남이 등장하고 샤를이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아이를 고문하는데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았던 고문과 똑같은 고문이다. 자식이 생기고 난 후 아이를 지켜야 하고 가문을 지켜야 한다, 그런 말을 부모가 된 자는 모두 악마가 된다고 압축한다.
이 이후에도 여러가지 전개가 있지만 이게 일괄적으로 말하는 바가 뭐냐면,

기존 사회의 규칙을 거부하던 자가 "남성됨"을 통해 사회에 순응하는 자로 바뀌며 완전히 체제에 녹아들었음을 말하는 것........... 메갈인가? (진짜 이렇게 생각함)
가끔 일본 남성 크리에이터들 보면 "남성됨"이나 가부장제를 극적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좀 흥미롭다... 어디에서 그런 게 나타난건지...

반대로 여동생 마리는, 성장 첫 등장부터 투블럭 모히칸 스타일을 하고 나타나고 이 사회의 규칙을 깨는 존재로 세팅된다.
위에 빼먹은 부분이 있네. 샤를이 아버지의 기도실을 발견하면서 그에게도 사실 사형이란 두렵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자신과 같은 나약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곳에서 바로 '남자됨'을 겪었다는 점도 포인트임. 그가 그러했듯 그의 아들도 그러하다.
'남자됨'을 변질과 구태로 표현하여 앙시앵레짐으로 분리하고, 여성 처형인이라는 이유로 더욱 조롱당하는 마리를 룰브레이커로 대비하여 두는데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버리는데...) 정말... 다시봐도... 이렇게까지 '남자됨'을 좆까로 그리는 작품은 못 본 듯... (남성성을 비웃는것과는 다름)
앙리도 주인공인 만큼 그냥 보고 있으면 '너도 네 사정이 있구나' 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그 결 하나하나 곱게곱게 쌓아 '이렇게 네가 싫어하던 꼰대가 되고 사회의 적폐가 되어간다'고 하고있고 그 시작이 남성성이 제일 집착하는 섹스인데다가 '아버지의 약한 부분'에서 시작하는 점이 너무 터짐.
구체제의 핵심이 혈통주의, 가족주의에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그것이 사람들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든다는 점 역시 잘 알고 그런 대사를 때린 거 같은데 그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너무나 웃기고 즐겁다.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의도하여 그렸음이 너무나 명백한 점이 더 즐거운 거 같음.
연출적인 부분에도 꽤 감탄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대유의 방법... 머리가 터지는 걸 석류가 터지는 것으로 대체한다던가 환각으로 보이는 천사들이 악마로 변하는 것으로 무엇이 변했는지 알려준다던가.
후반부 가면 뮤지컬을 즐겁게 본 건지 뮤지컬이나 연극의 모노로그 방식이 사용되는 장면도 몇 개 나온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긴 한데 서술의 방식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듯. 엔딩에서 스탭롤 올리는 방식으로 스탭 이름 적은 것도 인상 깊었다. 후반부에는 영상적인 느낌을 좀 신경썼나 싶고.
너무 웃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상도 보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써두시면 제가 검색해서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즐거운 한 주의 시작 되시길...
인물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참고
첫 컷이 샤를 두번째 컷이 마리
솔직히 말하자면 결국 프랑스 혁명에서 '모두가 평등해진다'며 동원되었던 여성들도 혁명의 끝에서 결국 버림받고 이전보다 더욱 깝깝한 법률로 구속된다는 점이 '마리'가 개혁의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을 더 흥미롭게 한다고 생각함.

• • •

Missing some Tweet in this thread? You can try to force a refresh
 

Keep Current with 김휘빈

김휘빈 Profile picture

Stay in touch and get notified when new unrolls are available from this author!

Read all threads

This Thread may be Removed Anytime!

PDF

Twitter may remove this content at anytime! Save it as PDF for later use!

Try unrolling a thread yourself!

how to unroll video
  1. Follow @ThreadReaderApp to mention us!

  2. From a Twitter thread mention us with a keyword "unroll"
@threadreaderapp unroll

Practice here first or read more on our help page!

More from @Whuibin_Info

9 Feb
"따끔하게 한 마디" 해도 싸불이라고 하던데..?
그냥 뭐라고 하던간에 자기네들 편 아니라고 생각되면 말 갖다붙이고 왜곡해서 싸불이라고 함.
그럴 기술과 능력이 있는,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되는 직업적 윤리가 있는 체육인이,
얼굴, 이름, 작업활동등의 신상이 공개된 개인을 '보면 (최소 상해에서) 죽여버리겠다'고 한 상황인데,

그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줘야 하는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러운 상황으로 보임?
지금 본인이 하는 말이 강간이나 약물 등을 쓰겠다고 낄낄거리며 게시판에 이야기하던 남자들 감싸던, '장난이니까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타일러 보내겠다' 수준의 말인거 알고는 있는 거임? 미성년자는 잘못을 해도 '따끔한 한 마디'로 끝내야 한다는 거임?
Read 10 tweets
9 Feb
이런 이유는 윤리적인 이유 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실질적인 이유도 붙는데요,

책임에 의해 "깽값"이 붙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점을 이용해서 체육인 또는 군인 등에게 시비를 트는 새끼들이 있긴 한데, 세상사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이 건도 그냥 체육인이 신원미상의 누군가를 향해서 저새끼 확 모가지 졸라서 죽여버려야지 하는 거 자체는 뭐... 지탄을 받을 수는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지목된 그 사람의 신상이 노출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당연히 달라지겠죠?
어쨌든 체육은 결국 이론을 몸이 반응할 수 있는 속도까지 숙달시키는 작업이라... 본인이 생각하던 생각하지 않던 효과적으로 타격을 해 버리는데 그게 심지어 보호장구가 있는 상황에서 훈련한 거라서 맨몸에게 먹히면 타격이 크니 당연 깽값이 커지죠...
Read 4 tweets
9 Feb
걍 "또", '체고에서 유도선수로 활동하는 미성년자가 특정 트랜스젠더가 여탕, 여자화장실에 들어오면 메치고 조르고 꺾어서 즉시 재기시키겠다'고 한 말을 지적했다는 것을 '미성년자싸불했다'고 갈아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는 말인데.
해당 학생의 신원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실제로 불이익이 주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하죠. 신상이 있어야 사실 확인을 하는데.

그런데 해당 미성년자가 자신이 갈고닦은 체육능력으로 특정인을 해하겠다고 발언하면 징계받아야 하는거 맞습니다.
격투기를 배울때 그것이 그냥 동네 도장이더라도 사람을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은 꾸준히 가르칩니다. 현대의 격투기는 대부분 스포츠인데 그 이유는 결국 사람을 쉽게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호구 등의 착용이 필수인거고요. 물론 사람은 쉽게 안 죽습니다. 정말 쉽게 안 죽고,
Read 11 tweets
9 Feb
메일로 가끔 이것저것 묻거나, 또는 순수하게 감상을 보내는 분들이 계신다. 묻는 것에는 대답을 엔간하면 보내는 편이지만 감상... 이건 '소설'에 대한 감상만은 아니고, 쓰는 글들 전반에 대한 것인데 도움이 되었다거나, 좋았다거나,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거나.
반가운 말들이지만 동시에 계면쩍기도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만 이런 글들에는 회신률이 꽤 떨어지고 만다... 내 능력에 칭찬이 박한 인생을 살아서 그런지... (그런 인생 치고는 자신 전체에 대한 자기긍정감이 대단한 것도 참 신기하긴 하다)
칭찬에 '감사합니다' 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글쓰고 난 이후의 일이긴 한데... 아니, 이것도 참 이상하구만. 내 인생에서 유독 박하게 대해지고 공격받은 건 작가로서 받은 것들이라 (...) 하여간, 가끔 익싸에서 말하는 게 흘러들어오는 걸 보면
Read 20 tweets
23 Oct 20
잠깐 로판에서 흔히 쓰이는 '데뷔탕트débutante'의 용례에 대해서...
흔히 로판에서 '데뷔탕트를 했다' 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죠.

틀린 표현입니다.

먼저 데뷔탕트débutante는 직역하자면 초심자, 데뷔자 정도로 옮길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 글자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데뷔하는 여성'을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프랑스어 사전이건 영어 사전이건 데뷔탕트는 '데뷔하는 여성(단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데뷔탕트를 했다'를 옮기면?

'데뷔하는 여성을 했다' <- 뭔 말이야...
Read 6 tweets
14 Oct 20
참 생각난 김에. 어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웹툰을 쓱 훑어봤다. 원래 같은 컨텐츠를 다른 포맷으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일단 같은 포맷으로도 재독을 잘 안 하는 편이긴 하다만) 뭐 확인할 게 있어서 좀 봤다가 독자 반응에서 좀 흥미로운 부분을 봤다.
전독시는 현재 남판의 독자 태도가 잘 나오는 작품인데 예를 들면 "독식을 좋아하는 성좌" "고구마 전개에 분개하는 성좌" "사이다패스 성좌"... 그 중에는 '호구력'이야기도 계속 나온다. 남판에서 '이 새끼 호구네 하차합니다'는 꽤 흔한 상용구인데, 호구... 쉽게 말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놈이다.
남에게 뭔가 자비나 베풂이 있으면 그 순간 주인공은 호구가 되고, 독자에게 욕을 존나 처먹고, 하차합니다 댓글이 뜬다... 이건 내가 노블레스 있을 때부터 관측되던 현상인데, 그런게 독식에서 나혼렙 같은 것까지 발전한 거고 전독시도 보면 호구소리 안 들으려고 엄청 어거지로 틀어놓은게 보인다.
Read 12 tweets

Did Thread Reader help you today?

Support us! We are indie developers!


This site is made by just two indie developers on a laptop doing marketing, support and development! Read more about the story.

Become a Premium Member ($3/month or $30/year) and get exclusive features!

Become Premium

Too expensive? Make a small donation by buying us coffee ($5) or help with server cost ($10)

Donate via Paypal Become our Patreon

Thank you for your support!

Follow Us on Twitter!